류시화와 인도
인도 여행기를 쓰기도 했는데, 대단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의 차원에서 인도를 묘사하고 소개해 놓았다. 사실 인도라는 이질적인 문화권에서 겪은 이런저런 경험을 자기만의 긍정적이고 감상적 시선에서 해석한 책들은 서구권에서도 많았는데 문제는 이를 객관적인 여행 정보로 착각하거나 오독하고 여행을 갔다가 다른 차원의 문화 충격과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 류시화 등 어떤 사람들에게는 분명 그 체험들이 인생에서 좋은 계기나 기억이 되었을 것이고 그랬기에 지금껏 일관된 태도로 인도를 이해하고 해석하며 또 그를 통해 만들어낸 다른 결과물들이 인도 여행과 상관없이 어떤 독자들에게는 좋게 이해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개인의 체험일 뿐이라는 점을 필히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류시화의 저서를 읽어본 사람들 중에서 인도를 직접 방문하거나 나무위키의 인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책에 소개된 인도와 현실의 인도는 느끼는 사람에 따라서 많이 다르다. '가난하지만 영적으로 충만하고 행복한 인도인들[2]', '낯선 사람도 반갑게 대해주는 좋은 곳[3]', '뭐든지 느리게 돌아가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적응해서 잘 살고 있고, 직접 방문한 사람들도 거기에 물든다'[4]라고 소개했지만, 인도가 여행지로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나라이고 종교적 감수성이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영적으로 충만한 나라라는 느낌은 받기 힘들다.
이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라는 점에서도 비판받을 만하다. 마치 외국인들이 한국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 '순박하고 조용한 백성들' 따위로 타인의 시선으로 대상화, 타자화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류시화의 여행기를 자세히 보면 1960년대 서구권의 히피 무리들이나 록 가수들(조지 해리슨이라던가)의 인도 여행 경험담과 유사하다.
<인도는 울퉁불퉁하다>를 쓴 정호영[5]은 대놓고 책에서 항목 하나하나를 들어가며 나노단위로 까기도 했다(....) 또한 이옥순 교수[6]는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나 <인도는 힘이 세다>와 같은 저서에서 이와 같은 관점을 비판하고 균형 잡힌 인도에 대한 시각을 위해 노력했다.
사실 인도인들 중에서 ‘영적으로 충만한’ 과 같은 수식어에 큰 감흥을 느끼지 않는 인도인들도 많다. 실제 인도 지식인층에 물어보면 중국을 국가의 롤모델로 삼고 그 정도 입지를 갖기를 원하는 사람이 절대다수이고,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사실에도 오히려 뿌듯해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를 사랑하는 영적인 인도인'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참고로 인도는 핵무기 보유국이며 세계 10위안의 군사강국이자 중국과 국경분쟁중인 나라다. 문화적으로 자부심이 높고 국민성을 자랑스러워하는 인도인들도 영적인 충만성보단, IT 강국, 라마누잔과 같은 위대한 수학자들을 배출한 똑똑한 인도인의 이미지를 선호하기도 한다. 물론 인도 철학은 중국(한자문화권) 철학과 함께 동양 철학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만큼 이 역시 수많은 인도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문화적 가치이지만, 이에 대해서도 '영적 가르침'이나 '영적 충만성' 같은 추상적이고 애매한 이유가 아니라 그 구체적인 업적과 그것이 세계적으로 끼친 영향력을 자랑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다.
몹시 종교적인 나라라고 흔히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과는 다른 면모도 보인다. 특히 남인도의 케랄라나 카르나타카, 타밀나두 주와 같이 첨단 산업 위주로 돌아가는 동네의 고학력 엔지니어들은 서슴없이 스스로를 무신론자로 규정하거나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카스트 제도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하위 카스트, 아웃카스트 출신 지식인들은 기독교로 많이 개종하고[7] 아예 본인의 원래 카스트를 알지 못하도록 이름과 성까지 서양식으로 갈아치우는 경우도 있다.
여러 관점들 중에서, '가난하지만 영적으로 충만하다'는 시선이 '우리가 가끔 힐링하고 싶을 때 저렴하게 찾아갈 수 있도록 너희는 그냥 그렇게 계속 그 자리에 개발도상국, 후진국으로 남아있어라'는 것을 전제한다는 부정적인 해석도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영적 가치는 가난과 부유함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은 관련 서적만 살펴봐도 손쉽게 알 수 있다'고 반론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또 '너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립서비스'라는 재반론이 가능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소위 '영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부유하면서도 영적으로 충만한 나라' 라고 말하는 나라는 아무리 찾아봐도 하나도 안 나오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오히려 저러한 반론을 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관점과 주장이 어떤 맥락에서 나타난 것인지 잘 모르고, 그저 피상적으로 이상화된 담론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냐고도 지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영적인 가치'란 결국 68 운동의 한 갈래와 뉴에이지 운동으로부터 나타난 가치, 즉 근대적 합리성이나 과학 우선주의등에 대한 반감에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개인의 부와 명예, 성공이나 국가의 부국강병과 같은 근대적, 물질적 가치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 는 관점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 물질적 가치에만 골몰하여 더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다. 하지만 영적인 가치를 잃는다면 부유함이나 권력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 고 말하는 것이며, 이들이 인도와 같은 나라들을 예찬하는 것도 "그들은 부유함이나 영향력, 권력같은 근대적이고 세속적인 가치보다 영적인 가치를 더 소중히 하기에 가난해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기고 살아갈지는 각자의 자유이고 권리이므로 저런 가치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인도'를 소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너는 근대적 발전의 성과에 힘입어 대다수의 인도 사람들보다 더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누리고 있고, 많은 인도 사람들은 그 근대적 발전의 성과를 누리지 못해서 불편하고 고통받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냐? 라며 애매한 가치를 내세워 눈 앞의 부조리를 부정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이 이뤄지고 있는 것. 그런데 이 비판을 반박하기 위해 "영적인 가치가 꼭 빈부에 구애받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치사한 말돌리기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류시화의 필력이나 인지도는 인도를 방문하며 쓴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1997년), 지구별 여행자를 비롯한 관련 저작으로 얻어진 바가 크다고 평가하는 사람 또한 많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내 이름은 칸 같은 영화나 인도 출신의 사람들이 직접 쓴 실생활을 기록한 작품들이 들어오기 전, 인도에 대한 환상을 널리 퍼트렸다.
특히 본인 스스로 인도의 유명한 명상가로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도 알려졌던 오쇼 라즈니쉬의 제자로 입문하면서 그의 저작품들을 활발하게 번역해 소개하기도 했다.
이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라는 점에서도 비판받을 만하다. 마치 외국인들이 한국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 '순박하고 조용한 백성들' 따위로 타인의 시선으로 대상화, 타자화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류시화의 여행기를 자세히 보면 1960년대 서구권의 히피 무리들이나 록 가수들(조지 해리슨이라던가)의 인도 여행 경험담과 유사하다.
<인도는 울퉁불퉁하다>를 쓴 정호영[5]은 대놓고 책에서 항목 하나하나를 들어가며 나노단위로 까기도 했다(....) 또한 이옥순 교수[6]는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나 <인도는 힘이 세다>와 같은 저서에서 이와 같은 관점을 비판하고 균형 잡힌 인도에 대한 시각을 위해 노력했다.
사실 인도인들 중에서 ‘영적으로 충만한’ 과 같은 수식어에 큰 감흥을 느끼지 않는 인도인들도 많다. 실제 인도 지식인층에 물어보면 중국을 국가의 롤모델로 삼고 그 정도 입지를 갖기를 원하는 사람이 절대다수이고,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사실에도 오히려 뿌듯해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를 사랑하는 영적인 인도인'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참고로 인도는 핵무기 보유국이며 세계 10위안의 군사강국이자 중국과 국경분쟁중인 나라다. 문화적으로 자부심이 높고 국민성을 자랑스러워하는 인도인들도 영적인 충만성보단, IT 강국, 라마누잔과 같은 위대한 수학자들을 배출한 똑똑한 인도인의 이미지를 선호하기도 한다. 물론 인도 철학은 중국(한자문화권) 철학과 함께 동양 철학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만큼 이 역시 수많은 인도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문화적 가치이지만, 이에 대해서도 '영적 가르침'이나 '영적 충만성' 같은 추상적이고 애매한 이유가 아니라 그 구체적인 업적과 그것이 세계적으로 끼친 영향력을 자랑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다.
몹시 종교적인 나라라고 흔히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과는 다른 면모도 보인다. 특히 남인도의 케랄라나 카르나타카, 타밀나두 주와 같이 첨단 산업 위주로 돌아가는 동네의 고학력 엔지니어들은 서슴없이 스스로를 무신론자로 규정하거나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카스트 제도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하위 카스트, 아웃카스트 출신 지식인들은 기독교로 많이 개종하고[7] 아예 본인의 원래 카스트를 알지 못하도록 이름과 성까지 서양식으로 갈아치우는 경우도 있다.
여러 관점들 중에서, '가난하지만 영적으로 충만하다'는 시선이 '우리가 가끔 힐링하고 싶을 때 저렴하게 찾아갈 수 있도록 너희는 그냥 그렇게 계속 그 자리에 개발도상국, 후진국으로 남아있어라'는 것을 전제한다는 부정적인 해석도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영적 가치는 가난과 부유함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은 관련 서적만 살펴봐도 손쉽게 알 수 있다'고 반론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또 '너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립서비스'라는 재반론이 가능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소위 '영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부유하면서도 영적으로 충만한 나라' 라고 말하는 나라는 아무리 찾아봐도 하나도 안 나오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오히려 저러한 반론을 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관점과 주장이 어떤 맥락에서 나타난 것인지 잘 모르고, 그저 피상적으로 이상화된 담론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냐고도 지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영적인 가치'란 결국 68 운동의 한 갈래와 뉴에이지 운동으로부터 나타난 가치, 즉 근대적 합리성이나 과학 우선주의등에 대한 반감에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개인의 부와 명예, 성공이나 국가의 부국강병과 같은 근대적, 물질적 가치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 는 관점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 물질적 가치에만 골몰하여 더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다. 하지만 영적인 가치를 잃는다면 부유함이나 권력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 고 말하는 것이며, 이들이 인도와 같은 나라들을 예찬하는 것도 "그들은 부유함이나 영향력, 권력같은 근대적이고 세속적인 가치보다 영적인 가치를 더 소중히 하기에 가난해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기고 살아갈지는 각자의 자유이고 권리이므로 저런 가치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인도'를 소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너는 근대적 발전의 성과에 힘입어 대다수의 인도 사람들보다 더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누리고 있고, 많은 인도 사람들은 그 근대적 발전의 성과를 누리지 못해서 불편하고 고통받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냐? 라며 애매한 가치를 내세워 눈 앞의 부조리를 부정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이 이뤄지고 있는 것. 그런데 이 비판을 반박하기 위해 "영적인 가치가 꼭 빈부에 구애받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치사한 말돌리기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류시화의 필력이나 인지도는 인도를 방문하며 쓴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1997년), 지구별 여행자를 비롯한 관련 저작으로 얻어진 바가 크다고 평가하는 사람 또한 많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내 이름은 칸 같은 영화나 인도 출신의 사람들이 직접 쓴 실생활을 기록한 작품들이 들어오기 전, 인도에 대한 환상을 널리 퍼트렸다.
특히 본인 스스로 인도의 유명한 명상가로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도 알려졌던 오쇼 라즈니쉬의 제자로 입문하면서 그의 저작품들을 활발하게 번역해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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