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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대국 영국은 왜 빈곤이 폭증하고 있을까? 빅터 로스차일드의 패배로 인한 영국 노동당 정부 1976년 IMF구제금융, 1980년대 마거릿 대처의 신자유주의, 1990년대 도입된 최저임금은 노동당 보수당 할 것 없이 보편적 정책으로 통용됨, 2010년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의 긴축재정과 복지축소, 2016년 브렉시트로 인한 노동자 계층의 빈곤심화, 그리고 2020년 우한폐렴

1973년 빅터 로스차일드 vs 데이비드 록펠러발 오일쇼크 전쟁 이전에 벌써 미국은 베트남 전쟁과 존슨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으로 인플레가 3.8%로 치솟았고, 이에 미국 연준은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금은 10년마다 상승, 하락 반복했는데, 2020-2025년 금상승기였으니 2025-2030년도 금값 상승할까? 금은 경제위기 때마다 상승하는데, 금값 상승률이 역대 최고였던 것이 1970년대 오일쇼크였으니, 그 당시 달러 기축통화를 놓고 로스차일드 vs 록펠러간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인드라 이 빠가가 빅터 로스차일드가 1970년대에 데이비드 록펠러와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후 자조적으로 "영국이 이제 보통 국가가 되었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런 기록은 일체 찾아볼 수 없음; 이 병쉰색희는 '국유본'과 쪽바리의 역사조작을 맨날 지적하면서, 지가 조작하는 건 생각도 못하나바

1-1 세비라 자주인라디오 이 빠가가 로스차일드, 록펠러, 프리메이슨을 하나로 묶어서 보고 섬세함이 없는 건, 1950~1970년대 이들 세력 간 치열한 권력암투의 역사를 몰라서 그렇다; (1) 미국 SEC 등 금융당국의 규제로 록펠러 가문이 오랫동안 유럽 진출을 못했고, 그 유일한 탈출구가 유로달러 시장이었기에, 195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로스차일드와 바클레이즈의 견제를 받으며 유로달러 시장에 진출 (데이비드 록펠러 자서전 Memoir에 나오듯, 로스차일드 은행은 록펠러에게 대놓고 협조 거부) - 1970년대가 되어 뉴욕의 록펠러 은행들이 주도권 장악 (2)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달러 부족 사태는, 로스차일드/CIA가 일으킨 베트남 전쟁으로 악화되었는데, 달러/금만으로 유동성 유지 및 확대에 한계가 있으니 1969년에 만들어진 것이 IMF SDR 체제 (3) 1971년의 닉슨 쇼크와 OPEC의 페트러달러 협상의 배후가 헨리 키신저고, 그 배후가 록펠러 가문인 반면, 로스차일드 가문이 1907년부터 대주주였던 로열더치셸은 페트로달러 체제로 인해 국제시장에서의 영향력이 급격히 약화 됨 (4) 데이비드 록펠러가 로스차일드/유럽 귀족들이 주축인 빌더버그 상임위원회에서 미국 대표로 일본을 넣자고 제안했다 거절당하자 1973년에 만든 게 삼극위원회 (5) 1973년 구상되어 1977년 시작된 국제 결제 메세징 시스템인 SWIFT 역시 은행간 세계화를 목표로 한, 데이비드 록펠러 작품으로 봐야 (6)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언론 및 FED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를 집요하게 공격 - 이란 대사관 사태 (1979-1981) 때도 욕을 먹음 - 지미 카터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서야 (1977-1981) 록펠러 천하가 시작되고,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시대가 되어서는 미국 공화당도 완전히 록펠러화

챗GPT: UN 상임이사국 (P5) vs G7의 위상 비교 / P5는 빅터 로스차일드 체제의 유산, G7는 데이비드 록페러 체제의 유산 / P5와 G7에 동시에 소속된 미국, 영국, 프랑스의 공통점: 로스차일드 핵심 국가들

19세기~1930년대까지 농업 기반의 저소득 국가들로 이루어졌던 북유럽은 빅터 로스차일드발 사회주의 전시장 효과 때문에 초고속 성장하게 되었고 (마셜플랜 덕도), 80~90년대에는 고부가가치 산업에 투자+EU통합 수혜로 세계에서 가장 잘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