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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대 왕조는 음양오행을 신봉하여 신라는 금에 해당하는 숫자 9를, 고려는 수에 해당하는 숫자 6을, 조선은 목에 해당하는 숫자 3,8을 신봉; 고려시대 때 의종은풍수지리 신봉해 정자, 궁궐 지었지만 몽골에 정복당해; 조선시대 때 광화군이 실각한 이유는 풍수를 지나치게 신봉해 파주로 도읍을 옮기려고 했고, 또 나중에는 인왕산으로 옮겨 궁궐이 2개 생겼기 때문; 러시아 라스푸틴과 한보사태의 교훈 상기시켜; 조선은 왜구 막기 위해 4대산에 둘러싸인 곳에 도성을 - 쇄국주의와 폐쇄주의 상징 - 오늘날 한강 중심으로 강남, 강북으로 개편된 서울은 다른 형태의 풍수관이 필요; 왕의 면류관이 시야를 가리는 것은 임금으로서 사람을 두번 주의깊게 보라는 뜻; 한국 샤머니즘과 도지구타법, 복숭아가지, 그리고 윤석열 정부 행사에 초대된 74명의 의미 - 임시정부 이후 74년?; 복숭아와 관계있는 도지구타법은 전근대 시대의 미개했던 전두엽절제술 떠올려; 한국 대통령 말로가 불행한 것은 풍수지리 문제가 아닌,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 때문; 한국인의 주술적 사고가 강한 것은 주입식 교육 문제; 풍수지리는 주술과 다르게 합리적, 보편적, 일관적 - 각 분야 전문가들이 좋은 터로 의견이 일치하는 곳이 좋은 터; 윤석열이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한 것은 용이 임금을 상징하기 때문?; 원래 용산은 일제시대 때 묘지터여서 풍수적으로 좋지 않다; 단, 김두규 교수 주장과 다르게, 무덤이 많은 도쿄 도심, 이를테면 오모테산도, 같은 곳은 상급지 중의 상급지; 예외는 언제나 있다

유현준: 위치에너지와 시가총액의 상관관계; 조선시대 배산임수가 합리적인 이유

일제의 대만과 조선 식민통치의 차이: 1895년 청나라는 거저주듯 대만을 일본에 줬다 - 애초 변방이기도 했고, 반체제 인사들이 많았던 곳이기 때문; 조선과 달리 대만에는 (스페인,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받은 적이 있긴 했지만) 왕조가 없었다; 일제의 전시장 효과를 위해 조심스럽게 식민 정책이 추진되었다 (1895년, 2년 동안 이민 등 유예 기간 두는 등); 일제는 일선동조론(내선일체)과 민족말살정책에 의거, 원래 일본인이었던 조선인이 중국화되었다고 규정, 강압적 통치를 정당화했고, 이에 따라 조선총독들은 군인 출신이 많은 반면, 대만인들은 원래부터 중국인들이라 여겨 문인들이 총독으로 많이 파견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의 풍수지리를 역으로 활용해 경복궁 뒤에 거대한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는 등 근대와 전통을 대비시킴으로써 조선인들에게 굴욕감을 주었다; 양반들이 살던 북촌은 개발하지 않고, 남촌 중심으로 서울을 개발해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만든 일제 (오늘날에도 명동 땅값이 전국 제일인 이유); 1914년, 일제는 경성 (서울)의 윗부분 잘라 경기도로 만들어 수도 서울을 축소시키고, 도쿄를 부각시켰다; 전통의 파괴에 주력한 일제의 조선통치와 다르게, 대만에서는 신식 건물을 지어주는 등 일제가 대만을 위해 새롭게 무언가를 지어줬다는 이미지; 대만에서는 일본 교과서 그대로 사용한 반면, 일제는 조선의 역사를 부정케하는 조선용 교과서를 제작 및 배포했다

노먼 포스터의 HSBC 건물의 놀라운 점: 첨단 빌딩에 풍수지리 요구한 홍콩 건축주의 요구를 창조적인 방법으로 해결했다 (feat. 유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