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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발 장택상: 파리에 있을 때, 중국의 주은래와 같은 하숙집에 살면서 극장에도 같이 다니는 등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주은래를 두고 "대단한 인물"이라 평했다고. /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에 재학 중인 김영삼을 발탁하여 정계에 입문시킨 것도 장택상이다. 1958년 공화당을 조직할 때는 김대중을 일시적으로 대변인으로 채용하기도 했다.[49]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하여 김영삼, 이승만, 박정희가 셋이 서로 대립하는 사이가 되었으나[50] 나중에 이회창이 당 총재가 되는 한나라당에 이르러서는 그 정당으로부터 국민의힘에 이르기까지 보수 제1정당에서는 저 세 사람 모두를 존경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월이 흘러 3당 합당과 뉴라이트의 부상을 겪으며 보수정당에 셋의 지지자들이 모여 벌어진 일. / 실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버지 박성빈이 장승원 집에 갔고, 그 결과로 둘째 형 박무희가 소작농으로 일하기도 했던 바가 있었는데, 이런 게 당시에는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로 대지주였다. 때문에 박정희는 장택상을 껄끄럽게 생각했다고 하며, 장택상의 정치적 제자가 후에 야당 총수가 된 김영삼이란 것도 박정희가 장택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이러한 배경이 원인이 되었는지 훗날 장택상은 말년에 박정희의 독재에 맞서 싸우는 반독재 투사가 되기도 했다.

이승만과 친일 커넥션: 경찰은 노덕술, 군대는 김창룡 / 장택상: 경찰청장을 지내면서 악질 고문 경관 노덕술 등을 총애하고 의열단을 이끈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조사하고 월북을 권했고 김구의 암살에도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며 발췌 개헌이 통과하는데 공헌하는 등 근현대사 막장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기도 하다. 다만, 장택상 본인도 독립운동가였고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들도 비슷한 선택을 한 경우가 있어서 시대적 한계로도 볼 수 있다. 장택상뿐 아니라 지청천, 이범석, 손원일 등 거물급 독립운동가들도 친일파 출신들을 내치지 않고 기용한 경우들이 있다. 반민특위 해산의 총책임자 이승만도 친일파 등용과는 별개로 대일 정책은 강경 정책을 고수했다. 이는 독립운동가들이 친일파를 안고가려 했다고 보기보단, 미군정이 운영을 위해 친일파들을 검토 없이 수용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일제 치하에서 고위직이나 실무를 담당한 쪽은 대다수가 친일파였고, 미군정은 이들을 일제가 후퇴한 상황에서 한반도의 운영에 써먹을 자원으로 보았다. 미군정이 들어선 상황에서 친일파의 다수가 그대로 자리를 유지했기에 그들이 원했든 원치않든 같은 직장에서 지내게 된 상황이었다. 훨씬 많은 숫자의 독립운동가들을 포함해 수많은 국민들이 친일파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긴 했으나 결국 정치적 이유 때문에 무산되었듯이 독립운동가들이 현대의 시각과 달리 친일파를 품어주려 했다는 시각보다는 독립 이후 정치, 권력, 이념이 더욱 중요해진 근현대사와 그 시대의 한계로 봐야 더 합리적이다. 미군정과 장택상, 1공화국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경력직 경찰 대다수가 친일파였다는 점 때문에 고급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신생 국가 운영에 어쩔 수 없이 필요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장택상은 독립운동가 시절 자신을 직접 고문했던 가창현이란 경찰을 등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를 권력욕과 정치 구도만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실제로 건준이 친일 경찰을 대신해 치안조직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었다곤 하지만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기에 이러한 주장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기도 했고.[32] 그럼에도 노덕술 등 선을 넘은 악질들까지 싸고 돈 점 등은 비판받을 수 있고 현대사의 아쉬운 점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