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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 병쉰 양키는 조선인 노예 출신 무희였던 아내 리진을 버렸나? 리진은 파리에서 목도한 서구 여성들의 육체에 열등감을 가졌나? 자신을 노예로 대하는 조센징들에 대한 분노, 낙후된 조선에 대한 분노, 남편에 대한 원한, 프랑스와 서구에 대한 열등감과 동경과 원한이 그녀로 하여금 자살을 택하게 만들었는가?

세계 3대 도시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유행시킨 사람은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 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Saskia Sassen) 교수입니다. 그녀는 1991년 《세계도시 (The Global City: New York, London, Tokyo)》라는 기념비적인 저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책에서 사센 교수는 자본의 세계화와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전 세계 경제를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지휘하는 '핵심 거점'이 생겨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최상위에 있는 세 도시로 뉴욕, 런던, 도쿄를 지목했습니다. / 2026년 현재 시점에서는 도쿄보다는 파리가 더 어울리며, 4위는 싱가포르와 도쿄가 경합 중

태국이 식민지가 되지 않은 이유: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균형+라마 4세, 5세의 탁월한 외교능력

인도 '칼파브릭샤(Kalpavriksha)'와 중동/이슬람 지니의 램프의 유사성: 고대 인도와 중동(페르시아)은 실크로드와 해상 무역을 통해 수천 년간 철학, 종교, 설화를 교류했습니다. 힌두교의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 개념이 서쪽으로 이동하며, 인격체인 '지니'라는 형태로 변형되어 램프와 결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일본에 파리증후군이 생긴 이유: 이상과 현실이 괴리가 심할수록 인간은 우울증을 겪고 절망하게 된다

1964년 니키타 흐루시초프 축출 이후 시작된 브레즈네프 시대의 데탕트 움직임과 데이비드 록펠러의 막대한 대소련 투자는 록펠러-로스차일드 카르텔의 합동작전인가? 실제로 록펠러 단독으로 이렇게 행동했다기에는, '소련 석유수출의 주요 통로'는 미국 기업보다는 유럽의 로스차일드계 에너지 기업들 (이탈리아의 ENI, 영국의 로열더치셸, 프랑스의 GDF/Total 등) 이었다 / 인도네시아 수카르노의 석유 국유화는 빚좋은 개살구로 실제로는 로스차일드의 소련에 의지해 석유수출을 했다 - 이것을 이해한다면 제국주의 대 반제국주의,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라는 20세기의 역사적 통념이 얼마나 공허하고, 철저히 경제적 엘리트들에 의해 설계된 '무대'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된다 2

포퓰리즘 부결시킨 스위스의 높은 민도; 프랑스, 조센징과 비교되는군; 위대한 정치는 그것을 수용할만한 자격을 갖춘 국민에게만 어울리는 것

전세계 모든 분쟁의 원흉이자 진정한 악의 축 영국 2: 영국에 의해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방글라데시(분할 당시에는 동파키스탄)의 국경선인 ‘래드클리프 라인(Radcliffe Line)’이 만들어진 과정 = 인도 땅을 밟아본 적도 없는 법률가에게 전권 위임 / 영국이 인도 대륙을 지배하면서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힌두교도와 무슬림이 힘을 합쳐 영국에 대항하는 것. 실제로 1857년 세포이 항쟁 때 두 종교가 연대하자 위협을 느낀 영국은 의도적으로 두 집단을 이간질하기 시작. 이른 바 분할통치 전략. 힌두교도 중심의 '인도국민회의'가 민족 운동을 이끌자, 영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이슬람교도들을 부추겨 '전인도무슬림연맹'을 만들도록 지원. / 오늘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영토분쟁 원흉도 영국의 듀랜드 라인 / 오늘날 중동 비극의 뿌리인 중동의 비극: 사이크스-피코 협정 (Sykes-Picot Agreement) 역시 영국이 원흉 / 아프리카 비극의 원흉도 영국 - 1884년 베를린 회의를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등은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면서 종족, 언어, 문화, 역사적 경계선을 완전히 무시 / 중국, 인도를 아편으로 병들게 한 것도 모잘라 한반도를 얄타회담 때 두개로 나눌 계획을 세운 것도 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