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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성역의 해체와 무화(無化)를 가장 완벽하게 제도화하고 공식 선언한 정치 체제가 바로 자유민주주의다. 자유민주주의는 권력의 출처에서 신비주의와 신성함을 완전히 걷어냈다. 권력은 하늘이나 혈통 같은 성역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평범한 시민들의 표라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수치화된 계산을 통해서만 정당성을 얻는다. 정해진 임기가 지나면 그 권력이 마법처럼 소멸한다는 사실 자체가 권력의 신성함을 원천 차단하는 장치다. 반면, 독재자나 전체주의자들이 꼭 임기를 연장하여 장기 집권을 꿈꾸는 것은 이 성역 없는 규칙을 거부하려는 속성 때문이다. /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그 어떤 진리나 가치도 공론장에서 비판, 검증,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원칙에 있다. 철학자 칼 포퍼가 말한 ‘열린 사회는 바로 이 비판 가능성이 중단 없이 보장되는 사회다. 과학이든 역사든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증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여기는 성역이니 건드리지 마라”는 선언은 공동체의 합리적 이성과 토론을 마비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