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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지구당 규제는 무상급식 반대, 페미니스트식 남녀갈라치기 정책들인 여성배려주차구역, 지하철 임산부좌석과 더불어 또 다른 탁상행정인가?

Korea Vlog: Everything's Changing

Seoul Vlog: Memories of Itaewon in the '90s / Expat Community

일본인이 본 1988년의 서울여행기 - 아로가 보기에 한국인들은 지금도 미개하지만, 저 때는 더 미개했다; 1960년대 한일간 1인당 GDP 차이는 약 20배, 80년대는 5배, 그리고 올해 최초로 한국이 일본을 역전했다; 1982년 야간통행금지는 해제되었지만 1988년 당시의 민방위 훈련, 오후 6시의 국기에 대한 경례 등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도 있어 이색적이다

부동산 개발 단기수익만 좇는 한국 日모리 같은 대형 디벨로퍼 안나와

일본이 마감재로 타일을 선호하는 이유는 지진 때문; 고층빌딩이 많아 서울 밀도가 더 높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7층이 몰려있는 파리가 한국보다 용적률이 높다; 고층 빌딩은 빌딩 사이사이 간격이 넓어 생각만큼 밀도가 높지 않다; 반면 저층 빌딩들은 따닥따닥 붙어있어 밀도가 높다; 강북 재개발하면 세운상가 없애고 수직으로 공원을 만들어서 강남과 연결시키면 좋다; 1m 남짓 되는 성벽은 평지면 효과가 없지만, 언덕이 있는 공간이면 강력한 방어터가 될 수 있다

일제의 대만과 조선 식민통치의 차이: 1895년 청나라는 거저주듯 대만을 일본에 줬다 - 애초 변방이기도 했고, 반체제 인사들이 많았던 곳이기 때문; 조선과 달리 대만에는 (스페인,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받은 적이 있긴 했지만) 왕조가 없었다; 일제의 전시장 효과를 위해 조심스럽게 식민 정책이 추진되었다 (1895년, 2년 동안 이민 등 유예 기간 두는 등); 일제는 일선동조론(내선일체)과 민족말살정책에 의거, 원래 일본인이었던 조선인이 중국화되었다고 규정, 강압적 통치를 정당화했고, 이에 따라 조선총독들은 군인 출신이 많은 반면, 대만인들은 원래부터 중국인들이라 여겨 문인들이 총독으로 많이 파견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의 풍수지리를 역으로 활용해 경복궁 뒤에 거대한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는 등 근대와 전통을 대비시킴으로써 조선인들에게 굴욕감을 주었다; 양반들이 살던 북촌은 개발하지 않고, 남촌 중심으로 서울을 개발해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만든 일제 (오늘날에도 명동 땅값이 전국 제일인 이유); 1914년, 일제는 경성 (서울)의 윗부분 잘라 경기도로 만들어 수도 서울을 축소시키고, 도쿄를 부각시켰다; 전통의 파괴에 주력한 일제의 조선통치와 다르게, 대만에서는 신식 건물을 지어주는 등 일제가 대만을 위해 새롭게 무언가를 지어줬다는 이미지; 대만에서는 일본 교과서 그대로 사용한 반면, 일제는 조선의 역사를 부정케하는 조선용 교과서를 제작 및 배포했다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튼의 연구가 보여주듯, '절망의 죽음'과 높은 자살율은 런던, 서울의 예에서 보듯 도시보다는 지방에서 발생한다; 일찍이 사회학의 아버지뻘인 에밀 뒤르켐은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현상이고 원인 또한 사회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정의한 바 있다

자연인보다 차라리 쪽방촌 “부자들은 선택지가 많잖아요” 빈부격차와 끊임없는 경쟁에도 가난한 도시 생활자들은 왜 서울시민 선택했을까 | 도시의 가능성 | #EBS다큐컬렉션

박태웅 2: 자율주행차 아직 멀었다 / 주변 모든 사물이 엠비언트, IoT되는 시대가 온다 /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한국의 저출산 대책 / 근본부터 잘못된 한국교육 / 수도권 집중을 막을 수 있는 법: 타도시 인프라 형성, 메가시티 몇개 더 만들기

박태웅 1: 사회의 다양성,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 / 양극화의 해소가 부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