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Showing posts with the label 유가

유가는 공급과잉이라 인플레 비교적 낮고, 관세로 경기침체 유도+정부 셧다운으로 고용 날라 연준으로 하여금 금리인하 유도하는 트럼프; SVB 사태 같은 조정은 훌륭한 완화 명분이 됩니다.

박종훈: 일본의 장기불황 저페니피케이션은 서방 경제학자들은 일본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나 일본인의 특성 때문으로 해석했으나, 2010년대 이후 일본처럼 되는 현상이 유럽으로 확산 - 이는 일본의 문제가 민족적 특성이 아니라, 청년 인구 감소로 인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종이돈은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부르나, 지난 40년 동안 인플레이션이 없었던 것은 중앙은행 시스템이나 경제학 발전 때문이 아니라, 오직 세계화 때문이었다. / 인플레이션의 재림 (1) 미국 내 공장 건설 강요와 리쇼어링 (2)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막대한 돈풀기 (3) 트럼프 정부의 감세, 관세 정책 (4) 트럼프 정부의 유가 인하 전략 with 빈살만 (5) 트럼프 정부의 인플레 통한 재정적자 줄이기 전략 (6) 이상 기후 (7) 탈세계화: 세계화가 끝나 다른 나라에 마음 놓고 투자하기 어려워졌다. (8) 원자재 무기화: 원자재 가격이 들썩이고 원자재가 무기화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9) 생산가능인구 줄어들며 인건비 상승 /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과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사람들 (실물자산와 대체자산에 투자한 사람들), 그리고 보험산업이 이득을 본다. /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유가 정책이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으며, 인플레이션은 시점만 모를 뿐 재발할 확률이 매우 높다.

국제투기자본과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로스차일드가는 경제적 이득도 챙긴다. 외국인 재산 몰수 때 특혜를 받은 것이다. 석유재벌 록펠러 가문도 러시아 공산당을 돕는다. 1919년 미국 의회 속기록에 정황 증거가 나온다. 공모 대상은 레닌과 함께 혁명을 이끈 트로츠키다. 트로츠키는 도피 당시 뉴저지주 록펠러가 저택에서 공짜로 머문다. 1917년 귀국 때는 특별여권과 여비 등을 지원받는다. 러시아 공산당을 도왔던 전력이 있는 석유재벌 록펠러 가문 뇌물 약발은 공산국가 건설 이후 곧바로 나타났다. 록펠러 소유의 스탠더드 오일이 독점 혜택을 누린다. 러시아 석유를 유럽에 팔아 막대한 수익을 낸다. 러시아를 부정하는 미국 하원이 1932년 비밀거래를 지적했으나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정관계 곳곳에 검은돈으로 형성한 인맥 덕분이다. 러시아 지원 의혹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루이스 맥파든 의원이다. 주미 러시아 무역기구 장부를 들춰보면 전모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재무부와 중앙은행이 비리에 연루됐다는 발언도 한다. 폭로는 휘발성이 컸는데도 흐지부지 끝난다. 맥파든 의원이 석연찮은 사고로 죽은 탓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오월동주라 언젠가는 파탄이 날 수밖에 없다

박종훈: 트럼프가 미국 물가를 낮출 신박한 4가지 전략 - 기업들 협박 (제약회사에 약값 내리라고 최후통첩), 관세 불확실성 부각시켜 가격인상 막기, 통계의 정치화 (통계국장 해임), 빈살만과의 협의로 유가하락

국제투기자본과 이라크, 그리고 사담 후세인 1: 이라크를 지배했던 하심 왕가와 누리 알 사이드 총리는 친영, 친서방 노선을 추구했다; 영국/프랑스의 패배 및 미국/소련/이집트의 승리로 끝난 제2차 중동전쟁 발발 2년 뒤인 1958년, 이라크 군부대 장교였던 압둘카림 카심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붕괴시키고 하심 가문의 파이살 2세를 살해한다 (영국 영토였던 이라크를 빼앗기 위해 미국 록펠러-CIA가 개입한 것일 개연성이 크다); 카심이 1959년 즈음부터 소련에 붙으려고 하자 (그 전까지 이라크는 미국과 소련 사이의 완충지대buffer state였음), 1963년 CIA는 쿠데타를 통해 그를 암살시킨다; 이후 BP/벡텔 등 록펠러계 기업들이 이라크 정권에서 암약하고, CIA는 1968년 다시 한번 쿠데타를 일으켜 사담 후세인 일당에게 권력을 몰아준다; 당대 미국 정가의 기류를 보면, 린드 B. 존슨과 리처드 닉슨 정권은 반공을 표방했던 바트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손자이자 CIA 고위 간부를 지낸 Archibald Roosevelt가 그 연락책이었다; 1959년에 일어난 압둘카림 암살 미수사건을 후세인의 업적으로 포장한 이라크의 1980년 프로파간다 영화 Al-ayyam al-tawila는 뜬금없게도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제작한 Terence Young가 감독을 맡았다;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미국과 CIA는 후세인에게는 인공위성 기술을 제공하고, 이란에게는 이스라엘을 통해 무기를 사들여 자금을 제공하는 등 (이란-콘트라 사건 당시 이란 팔레비 왕조와 이스라엘은 사이가 좋았다) 양면작전을 펼쳤다; 사담의 이라크는 미국 외에도 서유럽, 이집트에서 화학 무기를 수입했다; 1980년의 이란 이라크 전쟁은 보통의 중동전쟁과 다르게 유가를 올린 게 아니라 하락시켰는데, 표면적인 설명은 이란과 이라크가 재정난에 석유를 헐값에 팔아 원유 가격이 안정되었다는 것이지만 (그 덕을 한국의 전두환 정권도 본다), 실은 이라크의 석유 수출 중단에도 OPEC이 여분의 석유를 보관했기에 가능했고, 무엇보다도 1979년 소련을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과의 전쟁에 끌어들인 CIA가 소련으로 하여금 전쟁을 지속시키기 위한 유인책으로서 저유가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1980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에 몰래 개입해서 질질 끌게 만들었던 (그럼으로써 레이건 당선에 기여했던), 데이비드 록펠러의 CIA 연락책, Miles Copeland는 1980년대 중반에도 바트당이 CIA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CIA는 소련 편에 붙었던 이집트의 나세르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그는 밝혔다); 1990년 7월에는 사담의 쿠웨이트 침공 일주일 전에 아랍어가 유창한 여성인 주쿠웨이트 미국대사가 후세인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미국은 아랍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 석유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중동의 유가가 높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 사담의 쿠웨이트 침공을 유도한다; 미군은 사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전부터 이라크의 침공을 대비한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9.11 11년 전인 1990년 9월 11일, 조지 H.W. 부시는 그 유명한 '신세계질서' 연설을 한다; 국제투기자본의 후세인 제거 및 이라크 전쟁의 목적 (1) 아라비아에 미군 주둔시키기 (2) 테러리즘을 '가상 적'으로 하는 세계질서의 창조 및 자신들의 정체 위장 (3) 미 군수산업체와 공화당의 이익 증가 (4) 중동 위기를 통한 유가 조정 (주로 고유가를 통한 석유회사 이익 창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