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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송이 쓴 철학서 "웃음: 희극의 의미에 대한 에세이": 인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고 사는데, 이것이 가짜 공포임을 알게될 때 웃게된다 (찰리 채플린의 희곡처럼); 지금 웃음이 나와?🤨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한국인들? 한국인은 예측이 어긋났을 때 고통을 느끼고 분노하게 된다; 가소롭다의 '가소'는 옳을가에 웃음가를 써서 웃음을 유발하는 사람; 웃음은 한국 문화에서 부정적인 의미; 할리우드에서는 광대 케릭터가 주인공이지만, 한국 영화에서는 가벼운 역할로 메인 케릭터가 되지 못한다; 한국에서 웃음은 사회적 위계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 나보다 사회적 위계가 낮은 사람이 웃으면 분노를 유발하게 된다; 루이 14세 이전의 프랑스의 문학에서 희극은 비극보다 아래였다 - 희극은 광대들만의 잔치; 미국의 표현: I will have the last laugh (내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동양의 재밌는 유머는 해석 가능하고, 언어유희가 가능한 유머; 서양은 선넘고 과장하는 것이 유머; 서양에서는 동종업계 사람들끼리 이해하는 자학적인 개그도 많이 한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장르는 영화는 시사적인 영화, 드라마는 가족 드라마 - 주제가 묵직할 수밖에 없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 뇌가 더 집중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자주하는 한국인들의 뇌는 급격한 산업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한국인들의 생존본능일 수도; 또 사람들이 행복할 때와 힘들 때 언제 더 연결됨을 느끼는지 후자가 더 크다; 인생을 아름다워 (1997)와 La Grande Illusion (1937) - 나치 치하에서의 고된 삶을 웃음으로 희화화; 울다와 노래하다는 독일어 등에서 비슷하다; 한국어 장레식 울음소리도 '곡소리'라고 한다; 프랑스인의 인생관: "인생은 즐기다 가는거야" (프랑스 요리가 맛있는 이유) vs 한국/일본인의 인생관: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지"; 나는 내 기억을 찍는 영화감독

어릴 땐 몰랐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이야기; 괭이부리말 아이들, 아홉살 인생,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일맥상통하는 부분 있다

당나라의 문장가 한유가 말하는 명문장의 조건: 풍부한데 한마디 군더더기가 없고 축약했는데 놓친 게 없다

이문열: 무엇이 한 어린 영혼을 들쑤셔, 말과 글의 그 비실제적 효용에 대한 매혹을 기르고,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모방의 열정과 그 허망한 성취에 대한 동경으로 들뜨게 한 것일까. 스스로의 문학적인 재능에 대한 과장된 절망과 또 그만큼의 터무니없는 확신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소중한 젊은 날을 탕진하게 한 뒤, 마침내는 별 가망 없는 언어의 장인(匠人)이 되어 남은 긴 세월 스스로를 물어 뜯으며 살아가게 만든 것일까.

프랑스의 상징주의 문인 스테판 말레르메와 그 제자 폴 발레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정신적 전복의 체험', '실존적 위기의 체험'

마루야마 겐지: 지배계급 위해 움직이는 국가를 대부분 ‘내 나라’로 착각; 국가는 추상적 대상이 아닌 지배계층, 즉 '자본가'의 것; 원전이 그렇게 안전하다면서 왜 도쿄에는 짓지 않나? 돈이 말라 있는 시골 사람들 국가가 나눠주는 ‘사탕’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는 것; 내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은 권력과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