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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with the label 철학
도올 김용옥 노자가 옳았다 1 - 소국과민에 대한 오해 (형용사 vs 동사적 용법 차이) / 노자 도가도비상도의 도는 영원불멸의 도가 아니다 / 4계절 변화의 극동 vs. 사막-중동-영원에 대한 갈망 / 노자의 변화긍정, 내재적 vs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의 불멸적 이데아, 초월적 / 영원불멸의 도가 참된 존재론의 대상이 아니라고 일갈했다는 점에서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앙리 베르그송의 생명철학,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철학과 통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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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때 철학 전공한 피터 틸: AI 시대, 이과생이 더 위험해지는 이유 / 문과-이과의 역전은 결국 우리 사회의 정당한 재조정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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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의 현상학은 “의식에 세계가 어떻게 주어지는가”를 엄밀히 기술하려는 철학적 방법이고, 불교 명상은 “경험에 대한 집착과 동일시를 끊어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수행”입니다. / 이러한 후설의 생각이 어떻게 하이데거에게 영향을 끼쳣지? 후설은 하이데거에게 거의 결정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후설의 방법을 받아들인 뒤, 그 철학의 중심축을 완전히 뒤집었다고 보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후설에게 현상학의 질문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세계가 의식에 어떻게 주어지는가?” 반면 하이데거는 이것을 이렇게 바꿉니다. “애초에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존재란 무엇인가?” 이 변화가 핵심입니다. 후설에게서 하이데거가 가장 크게 받은 것은 먼저 **‘사물 자체로 돌아가라’**는 태도였습니다. 철학적 이론이나 과학적 개념을 먼저 들이대지 말고, 실제 경험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라는 것이죠. 하이데거도 이 원칙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후설이 여전히 인간을 너무 **‘의식하는 주체’**로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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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그리고 그 시선의 고도는 본질을 꿰뚫는 추상 사유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인류 문명사에서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는 농경과 치수를 위해 기하학이나 천문학 같은 지식을 고도로 발달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차원에 머물렀을 뿐, 현상을 넘어선 근본 원인을 추상화하지 못했다. 그리스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구체적인 데이터에 파묻히지 않고, 이를 보편적 개념과 이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자연 현상 속에서 신의 변덕이나 분노를 읽는 대신 자연의 근본 원리를 묻기 시작했고, 눈에 보이는 감각 세계 너머의 완벽한 점과 선, 즉 이데아를 사유했다. 이 위대한 추상 능력 덕분에 그리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정신적 좌표를 찍을 수 있었고, 문명의 영원한 주류로 우뚝 섰다. 이처럼 그리스는 시선의 높이가 곧 삶의 격조이자 문명의 높이임을 실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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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로버트 피어시그의 quality가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한계를 모두 극복할 제3의 대안인가? / Eric Jorgenson이 말하는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놀이를 하듯, 재미있게 하니 오히려 비즈니스가 더 잘 풀린 사례 / 영국 사이클링 팀이 보여준 누적된 습관의 중요성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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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 스즈키의 영향을 받아 유럽에 선을 전파한 독일인 오이겐 헤리겔이 나치즘에 몰두했던 것은 인상깊은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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