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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with the label 고려시대

300~400년 전으로만 가도 한국인들끼리 말이 안 통한다; 다만 언어의 맥락적인 특성을 고려했을 때, 몇개월 정도 같이 지내면 조선시대, 고려시대 사람과 현대 한국인들은 쉽게 대화할 수 있게 될 것; 실크로드 기록에 언어가 안통해 장사를 못했다는 구절은 나오지 않는다 / 고려청자보다 백자가 굽는 온도부터 다르고, 더 만들기가 힘들다 / 고려청자는 사실 파란색이 아니라 비색 / 고려청자의 한자어 청은 회교 (이슬람교) 할 때의 회회청 / 푸른색은 아프가니스탄 청금색이 원료라 매우 희소가치가 높고 비싸다 - 고대 이집트, 이슬람을 통해 전파된 코발트 블루 / 개성사람 탄압하고, 불교를 억눌렀던 조선; 삼강행실도를 보면 정몽주는 담벼락 아래 떨어져 죽었다 / '이단'을 만든 조선시대 성리학 / 도봉서원 터를 파보면 불교 사찰로 가득

이씨 성을 가진 조선시대 유학자들만 그득한 한국의 퇴행적인 지폐 / 유물과 파라오들로 채워진 이집트 지폐 / 소설가, 예술가가 많이 등장하는 스웨덴의 지폐 / 한국의 성씨와 족보문화를 시작하고, 오늘날의 표준말을 만든 고려 왕건은 10만원 지폐에, 강감찬은 5만원 지폐에 적합하다 / 원주민을 미개하게 묘사한 아포칼립토와 인디아나 존스 / 풍뎅이 같이 생긴 쇠똥구리를 신성한 존재가 아닌 혐오스런 존재로 표현하고, 미라를 공포의 존재로 만들어 고대 이집트 역사를 왜곡했던 미이라 / 무슬림을 왜곡한 킹덤 오브 헤븐 / 기황후의 역사 왜곡 / 몽골의 유목민의 정착민과 결합하여 제국을 만든 역사의 선모델이었던 거대한 거란 제국을 한국사는 오랑캐로 폄하하고 있다 / 남녀차별 없이 상속해주고, 재혼도 빈번했으며, 왕의 동성애에도 어느정도 관용적이었던 개방적인 고려사회 - 한국은 90년대 민법에서 동성동본 혼인이 금지되었고, 상속법에서 장남 2, 차남 1, 차녀 1 비율로 상속받게 하는 등 (그마저도 결혼한 차녀에게는 0.25만 주었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미개하다 여기는 무슬림 사회의 성차별적 인식과 별 다를 바 없었다 / '장가간다' (장인의 집에 간다)는 고려시대의 문화, '시집간다'는 조선시대의 문화 / 신사임당은 남편이 '장가'간 탓에 친정에서 편하게 지낸 여성이고, 허난설헌은 시집가서 고생한 케이스 / 한국 문화의 강점이 콘텐츠에 있는 만큼, 러시아나 기타 다른 나라의 화폐처럼, 한국 지폐도 한글이나 음악을 상징화한 형상을 넣으면 좋을 듯; 다만 이것은 '라떼 세대'들이 죽고 난 뒤에야 가능할 것

충선왕은 양성애자 왕인데다 부자 갈등, 원나라에서도 활약한 국제인, 학구적 기질, 개혁 군주의 이미지 등을 생각하면 사극의 소재거리로는 충분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실제 등장한 적은 거의 없다. 이건 충선왕을 다룰려면 원 간섭기 자체를 언급할 수 밖에 없는데 이 시기 자체가 어찌됐든 외세가 개입한 흑역사 요소가 있어 국민정서에 맞지 않아 시청률을 확보하기 힘든 탓도 있다

양고부 삼을나 삼성혈 탐라국 창조 신화에 대한 최초의 문헌은 조선왕조가 편찬한 고려사; 제주 고씨가 탐라국 성주로 기록된 시기는 고려시대 때부터; '을나'라는 표현은 부여, 고구려, 여진족 계통의 언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일 가능성이 높은 제주고씨 유래의 두 가지 가능성 (1) 삼국시대 때 세 씨족 집단이 공동통치하다 신라시대 말기부터 우위를 점한 특정 씨족집단이 있었고, 이들이 고려 초부터 고구려와 자신들의 관계성을 고려하여, 고구려왕의 왕성인 '고'씨를 사용하여 탐라국 성주로 등극했다는 가설; (2) 삼국시대에 편찬된 다른 나라의 문헌상 기록(일본서기, 당회요)과 고려시대에 집필된 삼극사기와는 배치되지만 (이들 서적들에서는 탐라국 성주의 성씨가 고씨가 아닌 전혀 다른 성씨로 기재되어 있다), 조선조 문헌들(고려사, 이원진(李元鎭)의 탐라지 등)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했을 때는, 신라시대 때부터 이미 양, 고, 부 세 씨족집단의 성씨가 사용되었고, 이 중 통일신라 시기부터 고씨가 우위를 점해 성주가 되었다는 가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