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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석유 이야기 1: "전후 1989년까지 미국은 64차례 타국의 정권교체 쿠데타를 실행했다." (Lindsey A. O'Rourke) / 1909년 중동에서 페르시아만 오일 발견된 이후 중동은 국제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된다; 빅터 로스차일드 케임브리지대 친구인 킴 필비의 아버지 존 필비가 BP의 부름으로 이란 석유개발에 몰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윈스턴 처칠의 승인 하에 CFR/BP 이사였던 앨런 덜레스와 월가 로펌 Sullivan & Cromwell 주도로 CIA/MI6는 석유 국유화를 노리던 모하마드 모사데크를 축출시킨다; 1954년 모사데크 축출 및 원유 컨소시엄은 세계 최대 규모의 원유 강도 사건 - 라자 팔레비는 보상금으로 석유값을 BP에 싸게 공급

국제투기자본과 윈스턴 처칠, 영국 금본위제: 할애비가 프리메이슨이자 아버지, 어머니대부터 로스차일드 가문과 친하게 지냈던 윈스턴 처칠은 재무부장관 시절이던 1925년, 영국을 제1차 세계대전 시기 폐지했던 금본위제로 다시 복귀시켰는데, 이는 그 자신이 인정하듯 타의에 의해 이루어졌다 (바로 윌슨과 레이건의 금융정책이 타의에 의해 이루어졌듯이); 바로 시티 오브 런던 금융가들 (그 대표가 로스차일드), (훗날 나치를 지원했던) 영란은행 총재 몬태규 노먼, 고전적 경제학자들, 국제 금융 세력 등이 금본위제를 ‘영국의 명예’로 간주하며 압박했던 것이다; 처칠은 영국 재무부의 정치적 책임자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금융 엘리트의 입장을 수용하는 입장에 가까웠다; 그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었고, 주변 조언에 의존한 결정을 내렸다고 뒤늦게 고백

자주인 라디오 이슬람 테러리즘,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우크라이나와 CIA, 냉전, 하버드 대학교의 연관성 관련 2

자주인라디오: 제1차 세계대전의 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