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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with the label 존 F. 케네디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교수: 거시지표로 보면 평균 성장률 8.5%의 고도성장시대였다. 하지만 경제 성장만 놓고 보더라도 폭과 깊이가 널뛰기했던 불확실하고 아슬아슬한 시기였다. 13%를 성장한 시기가 있지만 저성장에 이어 마이너스 성장으로 추락한 시기도 있었다. 외환보유액이 언제든지 바닥날 수 있는 불안한 나라였다. 8.5% 성장률 속엔 수많은 고민과 긴장과 갈등이 있다. (박정희는) 엄청난 리스크 테이크를 하는 모험가였다. 그는 보통사람이라면 택하지 않을, 또 택하지 못할 리스크를 계속 선택해 나갔다. 박정희의 전략은 3H로 설명할 수 있다. 고위험, 고성장, 고비용(High risk, High payoff, High cost)이다. 민간부문과 기업을 확장시켰지만 시장방식이 아니었다. 1965년엔 정기예금 금리를 하룻밤 새 연 15%에서 연 30%로 올려 은행으로 돈을 끌어 모았지만 대출 이자율은 그보다 낮춰 투자 위축을 막았다. 역금리제다. 또 사채시장을 혼수상태에 몰아 넣은 1972년의 8·3 사채 동결조치도 마찬가지다. 재정으로 기업을 지원하고 채무를 완화시켰다. 그런데 그런 돈이 기업 투자로 이어질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었겠나. 대박 가능성이 높지 않았는데 대박 나게 만들었고, 그러기 위해 많은 비용과 희생이 따랐다. 박정희는 그런 길을 갔다. 규모가 중간 정도의 국가라면 60년대가 스스로의 힘으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케네디 라운드로 선진국의 관세 철폐가 대대적으로 이뤄져 수출 진흥을 통한 산업화의 창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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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투기자본과 CIA 최고권력자였던 방첩국장 제임스 앵글턴 (JP모건, 록펠러 재단, 밴더빌트, 해리먼, 로스차일드-윌리엄 스티븐슨-MI6, OSS-CIA-제임스 앵글턴-예일/옥스퍼드, 모사드, 이스라엘-킴 필비, 빅터 로스차일드 라인), 그리고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의 전모 3: 덜레스는 윌리엄 스티븐슨의 제자였지만, 앵글턴은 스티븐슨과 '혈맹' 수준의 유대를 맺고 있었고, 영국 로스차일드 라인에서 오는 핵심 정보는 덜레스를 건너뛰고 앵글턴에게 직접 전달되기도 했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1961년 '피그스만 침공' 실패 책임자인 국장(덜레스)과 작전차장은 쫓겨났지만, 방첩국장 앵글턴은 살아남았다. / 케네디 암살사건은 (1) 록펠러계 앨런 덜레스 해임에 대한 보복, (2) 베트남 전쟁 확대 거부에 대한 보복과 산업 패권수호 (석유/군산복합체), (3) 이스라엘의 핵무장 저지에 대한 보복, (4) 연준의 통화발권력 독점을 위해 로스차일드-록펠러 연합이 일으킨 것으로, 병쉰 인드라 분석처럼 빅터 로스차일드 단독소행이 아니다 - 넬슨 록펠러, 앨런 덜레스가 참여한 워런위원회도 케네디 암살사건을 덮기에 급급 / Gemini를 통해 알게 된 CIA와 존 F. 케네디 암살사건의 전모에 대해 충격을 받은 아로 - 이렇게 정확하고 꼼꼼하게 분석이 가능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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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을 둘러싼 '빅터 로스차일드+황제파'와 '데이비드 록펠러+귀족파' 사이의 동상이몽 2: 빅터가 이 전쟁을 통해 (1) 냉전체제의 고착화, (2) 미국 민주당 대통령 입지 약화 및 데이비드 록펠러의 민주당을 노동당으로 대체 (공화당은 이미 장악했었음), (3) 권위주의, 제국주의 (알제리 전쟁) 책임 물어 자신에게 반기를 든 프랑스 드골 정권 입지 약화, (4)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지지 통해 중국의 국력 약화 및 냉전 체제 고착화, (5) 반문화를 유포시켜 마약 등으로 젊은이의 노동자계급 운동으로의 투신을 차단을 노렸다면, 데이비드 록펠러+귀족파는 베트남 전쟁을 통해 드골의 금태환 요구+미국의 금 고갈+달러 가치 폭락과 재정적자를 명분삼아 제한적 통화량 발행만을 허용하는 브레튼우즈 (금본위제) 체제를 폐지하고 (닉슨 쇼크), G5+삼극위원회+OPEC을 중심으로 한 페트로달러 신자유주의 체제를 만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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