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路 잠언집 II
잠언집 I: https://theworldandaro.blogspot.com/2026/03/i.html
잠언집 II: https://theworldandaro.blogspot.com/2026/03/ii.html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송 오브 로스(The Song of Los)』 (1794년 ~ 1795년)
Gemini said
🏛️ 영원한 가능태의 공간: 로스의 전당과 유사 개념 비교
뭣이 중한디?
- 영화 『곡성』(THE WAILING) (2016년) 대사
"개가 짖어도 행렬(카라반)은 지나간다."
The dogs bark, but the caravan moves on.
- 고대 아랍 혹은 페르시아의 속담
슬프나 즐거오나 옳다 하나 외다 하나
(슬프나 즐거우나, 남들이 옳다고 하나 그르다고 하나)
내 몸의 해올 일만 닦고 닦을 뿐이언정
(내 몸이 해야 할 도리(충성)만 닦고 닦을 뿐이지)
그 밧긔 여남은 일이야 분별(分別)할 줄 이시랴.
(그 밖의 **남은 일(세상의 비난이나 개인적인 이해득실)**이야 걱정(생각)할 필요가 있겠느냐.)
- 윤선도 『견회요』 (1618년)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 하든 내버려 두고."
(Segui il tuo corso, e lascia dir le genti.)
- 단테 알리기에리 (Dante Alighieri) 『신곡(Divine Comedy)』 (1320년경)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워온다."
(The darkest hour is just before the dawn.)
- 토마스 풀러 『A Pisgah-Sight of Palestine』 (1650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
-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소설 제목 (1926년)
(* 원전: 구약성경 전도서(Ecclesiastes) 1장 5절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의미: 전쟁 후 허무주의에 빠진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에게, 인간의 비극과 상관없이 자연의 섭리와 생명력은 영원히 지속된다는 희망과 허무를 동시에 담고 있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것이지, 살아가기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 위화(余华) 《인생(活着)》 (1992년)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의 이슈타르(이난나) 신화
시기: 기원전 2000년 이전 (약 4,000년 전)
내용: 사랑의 여신 이슈타르가 지하 세계로 내려갈 때, 일곱 개의 관문을 지나며 자신의 권능(옷과 장신구)을 하나씩 벗어야 한다. 이때 '절대 의문을 갖거나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규칙이 적용된다.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 창세기 19:26
(* 성경 창세기에서도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할 때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명령을 어긴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된다. 이는 **과거(미련/집착)**를 돌아보는 자는 **미래(구원/새로운 삶)**로 나아갈 수 없다는 냉혹한 진리를 보여준다.)
오르페우스 신화
- 주요 문헌적 출처 및 년도
1) 베르길리우스(Virgil)의 《게오르기카(Georgics)》: * 시기: 기원전 29년경
내용: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가장 아름답고 완성도 있게 서사화한 기록.
2) 오비디우스(Ovid)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 * 시기: 서기 8년경
내용: 에우리디케를 구하러 저승에 갔다가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실패하는 과정과 오르페우스의 죽음을 상세히 다루어 후대 예술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3) 오르페우스교(Orphism) 경전: 시기: 기원전 6세기~5세기경
내용: 단순한 신화를 넘어 영혼의 불멸과 윤회를 다루는 신비주의 종교의 형태로 존재했다.
- 해석: **'금기(Taboo)'**와 '뒤를 돌아봄',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믿음'**의 문제는 동서양 신화와 종교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 중 하나이다.
"의심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상실을 부른다": 오르페우스가 지하 세계(하데스)에서 아내 에우뤼디케를 데려올 때 받은 조건은 **"지상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신이 내 얼굴을 보려고 하는 순간, 우리의 행복은 끝날 것"
- 원전: 《황금 당나귀(The Golden Ass)》 (원제: Metamorphoses)
저자: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Lucius Apuleius)
연도: 서기 2세기경 (약 160~180년 사이)
비고: 에로스와 프시케의 전체 이야기가 문학적으로 완결된 형태로 기록된 최초이자 유일한 고대 로마의 문헌
해석:
1. 왜 얼굴을 보면 안 되었나?
에로스는 아프로디테의 명을 어기고 프시케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어머니의 눈을 피해 그녀를 비밀의 궁전에 숨겨두었다. 에로스는 프시케에게 **"당신이 내 얼굴을 보려고 하는 순간, 우리의 행복은 끝날 것"**이라고 엄격히 경고했다. 그래서 그는 오직 빛이 없는 밤에만 프시케를 찾아왔다.
2. 약속을 깬 결정적인 계기
프시케는 처음에는 행복했지만, 그녀를 시기한 두 언니의 이간질에 넘어가고 만다. 언니들은 "네 남편은 분명 정체를 숨긴 끔찍한 괴물일 것"이라며 프시케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결국 프시케는 남편이 잠든 사이 몰래 등불(기름등잔)과 칼을 준비해 남편의 정체를 확인하기로 결심한다.
3. 금기를 깬 그 순간
프시케가 떨리는 손으로 등불을 비췄을 때, 침대 위에는 괴물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 에로스가 누워 있었다. 프시케는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쳐다보다가, 손을 떨며 뜨거운 등잔 기름 한 방울을 에로스의 어깨에 떨어뜨리고 만다. 잠에서 깬 에로스는 프시케의 배신(약속을 어김)을 깨닫고, **"사랑은 의심과 함께 살 수 없다"**는 말을 남긴 채 곧바로 날아가 버린다.
4. 오르페우스 신화와의 공통점: 에로스와 프시케의 '얼굴을 보지 말라'는 금기와 본질적으로 같다. 두 신화 모두 **눈으로 확인하려는 욕구(이성/의심)**가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신뢰(믿음/사랑)**를 압도하는 순간 비극이 시작됨을 보여준다.
중요성 (잉여포텐셜)
- 바딤 젤란드 『리얼리티 트랜서핑(Reality Transurfing, 2004)』의 주요 개념. 프시케나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본 것은 '혹시나?' 하는 의심 때문이다. 트랜서핑에서는 이를 '중요성을 과도하게 부여하여 잉여 에너지를 발생시킨 상태'로 본다. 이 의심이 균형력을 발동시켜 결국 최악의 시나리오(상실)를 현실로 가져온 것이다. 성경의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는 **'외부 의도'**를 사용하는 핵심 원리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욕망)'이 아니라, '그렇게 될 것임을 이미 알고 선택하는 것(결정)'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실체이다.
"그의 손에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기 적당치 아니하니라."
- 누가복음 9:62
그대는 이 싸움에서 싸울 필요가 없느니라. 그대 자신을 준비하고, 고요히 서라. 그리고 그대와 함꼐 하는 주의 구원을 보라.
- 역대기하 20:17
큰 길을 가는 도중 그 누구에게도 경배하지 말라.
- 누가복음 10:4
길을 가며 그 누구에게도 인사하지 말라.
- 열왕기하 4:29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더라.
- 요한복음 3:3
잠자는 자여 깨어나라.
그리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 에베소서 5:14
그대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꼐서 그대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고린도전서 3:16
연회장은 포도주로 변한 물을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 요한복음 2장 9절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 요한복음 5장 6절
물: 마음(무의식)에 관한 진리
피: 실천
이분은 물로만 오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로 오셨더라.
- 요한일서(1 John) 5장 6절
그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마치 보이는 것처럼 부르시더라
- 로마서 4:17
그대가 기도할 때 이미 받았다 믿으라.
그러면 그렇게 될지니.
- 마가복음 11:24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 마가복음 9:23
너와 그리도 오래 있었는데 너는 나를 모르느냐, 빌립아? 나를 봤던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는 그렇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말하는가? 그대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가?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은 내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한 그 일들을 보고 나를 믿으라.
- 요한복음 14:9-11
예수는 그녀에게 그녀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고, 가서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자 그녀가 대답하기를 , "저에게는 남편이 없습니다."
- 요한복음 4:17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남편이 없다고 말한 것은 옳도다. 왜냐하면 그대에게는 다섯 남편이 있지만 (오감), 그들 모두 지금 너의 남편이 아니기 때문이더라."
- 요한복음 4:17,18
그들이 추수하기까지 4개월이 남았다고 하자,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추수를 하기까지 4개월이 남았다고 그대들은 말하지 말라. 보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들의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이미 그 곡식들이 추수하도록 하얗게 되었느니라.
- 요한복음 4:35
"보이는 것들은 모습을 드러낸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더라."
- 히브리서 11:3
하늘나라의 왕국은 바로 앞에 있더라
- 마태복음 4:17
창녀 라합의 이야기
- 출처: 여호수아 2장
장소: 여리고 성
내용: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살려준 대가로, 여리고가 멸망할 때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구원받은 여인이다. 신약성경(히브리서 11:31, 야고보서 2:25)에서는 그녀의 '믿음'을 높게 평가한다.
네빌 고다드의 해석에 의하면, 창녀는 남자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줄 수 있다. 그래서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이 물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적당한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은 창녀 라합으로 상징됐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 누가복음 17:21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 마태복음 9장 29절
(원전: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According to your faith let it be done to you.)
어원과 맥락: 두 맹인이 예수를 따라오며 고쳐달라고 소리칠 때, 예수가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라고 묻고 그들이 "그러하오이다"라고 답하자 하신 말이다.
철학적 의미: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 기적을 넘어, **'인간의 확신이 현실을 결정한다'**는 강력한 창조의 원리를 담고 있다.)
📖 복음서별 겨자씨 비유 비교 및 핵심 상징
| 구분 | 마가복음 (Mark) | 마태복음 (Matthew) | 누가복음 (Luke) |
| 장/절 | 4장 30-32절 | 13장 31-32절 | 13장 18-19절 |
| 추정 기록 시기 | 서기 65년 ~ 70년경 | 서기 80년 ~ 90년경 | 서기 80년 ~ 90년경 |
| 주요 특징 | 가장 먼저 기록된 원천(자료) | 유대인 독자 대상 | 이방인 독자 대상 |
| 공통 핵심 문구 | - |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 - |
| 핵심 상징 1 | 지극히 작은 시작 | 당대 '가장 작은 것'을 상징하는 관용구로서, 미미하게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와 믿음을 의미함. | |
| 핵심 상징 2 | 폭발적인 성장 | 작은 씨앗이 새들이 쉴 수 있는 큰 나무가 되듯, 내면의 변화와 사상이 갖는 거대한 확장성을 상징함. |
"깊은 잠에 빠졌을 때, 꿈속에서 그리고 밤의 환영 속에서 그는 인간의 귀를 열어, 그들의 지시를 봉인하신다."
- 욥기 33:15,16
사람들이 마음 안에서 미묘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포도를 밟던 어떤 여인이 아니라고,
수많은 국가들이 전쟁에 내몰린 것이
어떤 양치기 소년의 마음 안에서 열정이 깨어난 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결코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산문집 『선악의 정원(The Ideas of Good and Evil)』 중 「상징주의의 예술(The Symbolism of Painting)」 (1903년)
“사건들을 이처럼 묘사했었던 모든 사람들이 꿈을 꾸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새로 써야만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 특히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은 마법의 주문, 마력, 환영들을 영원히 내보내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은 정적인 사람들은 계속해서 상상력이 풍부한 자들이 내보내는 상상의 영향 아래에 놓이게 되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의 가장 정교한 생각들, 정교한 목적들, 섬세한 감정들은 진정한 우리의 것은 아니고, 그것들은 갑자기 내게 떠올랐던 것이다. 말하자면 지옥으로부터 쏟아졌든가, 천국으로부터 내려왔든가 어딘가에서 주어졌다. . .”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산문 「마법(Magic)」 (1901년)
(* 예이츠(W B. Yeats)는 ‘허상이란 없다’는 것을 발견했었던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상상력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자신의 어떤 경험을 적었기 때문이다.)
"Do what thou wilt shall be the whole of the Law." (네 의지대로 행하는 것이 법의 전부가 되리라.)
- 알레이스터 크로울리 『법의 서(The Book of the Law)』 (원제: Liber AL vel Legis) (1904년)
"昼はうつし夜は夢" (낮은 환상, 밤은 꿈)
(낮에 보는 세상은 가짜 현실(うつし, 現)이며, 밤에 꾸는 꿈이야말로 진짜다.)
- 에도가와 란포 (江戸川乱歩) - 외딴섬 악마 (孤島の鬼)
출판 연도: 1929년 ~ 1930년 (잡지 '아사히' 연재)
( * 이 문장은 란포의 평생의 좌우명이기도 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낮의 세계(부동산 수익, 사회적 지위 등)'는 덧없는 환상이며, 오히려 내면의 심연(식의 세계)이 더 진실하다는 유식학적 통찰과 맞닿아 있다.)
사랑은 현자의 돌이니,
그것은 흙으로부터 금을 취하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고 나를
하느님으로 만들더라.
- 안겔루스 질레지우스 (Angelus Silesius) 《체루빈적 방랑자(Der Cherubinische Wandersmann)》 (1657년)
인간은 단지 한 명의 인간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더욱더 높은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오직 신들만을 자신의 동료로 받아들이기에...
- 안겔루스 질레지우스 (Angelus Silesius) 《체루빈적 방랑자(Der Cherubinische Wandersmann)》 (1657년)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창세기 1장 26절에서 27절
"사람이 저를 아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할 것은 이 몸 생김의 뜻을 생각해 보는 일이다. 모든 형상은 뜻이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옛 사람이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요, 발이 펀펀한 것은 땅을 본뜬 것이라 한 말이 웃을 말이 아니다. 눈 귀 코 손 발이 다 쌍으로 된 데도 뜻이 있어야 할 것이요, 육체적 생명의 근본되는 먹을 것이 들어가는 것과 정신적 생명의 양식인 말이 나오는것이 한 구멍으로 하게 되었고, 더러운 찌꺼기를 내보내는 것과 새 생명의 창조를 하는 것이 역시 하나로 되어 있다는 데도 반드시 무슨 뜻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그만두더라도 사람이 두 발로 꼿꼿이 서게 생겼다는 것만은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사람에게서만 보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하늘 땅을 연락을 시키잔 것이다. 그러므로 땅의 힘이내 발로 올라와 머리를 통해 저 까만 하늘에 뻗는다 하는 마음으로 서야 한다. 그래 1만 5천리 지구 중심까지 울림이 내려가도록 힘있게 디디고 서자는것이다. 또 앉을 때면 산처럼 부동의 정신으로 앉아야 한다. 그러면서 아랫배에 힘을 주어야 한다. 옛사람들은 거기를 기해라, 단전이라 해서 정신수양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 왔다."
"인자요산, 지자요수라지. 높고 거룩하고 영원 불변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산에 가야 하고, 깊고 넓고 신비롭고 자라고 활동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바다에 가야한다. 산과 바다는 생명의 정화처다. 평야에서는 세속문명이 발달하고 산과 바다에서는 정신문명이 발달한다. 애급과 메소포타미아와 중국 평원에서는 정치와 경제와 법률과 제도가 발달했고, 인도와 시나이 반도와 희랍에서는 종교와 예술이 발달했다. 사람은 늘 속화를 막아서만 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것을 위해 자연에 가까이 해야 한다. 지구 위에 들판뿐이고 높은 산, 깊은 바다가 없었다면 사람은 짐승의 지경을 못 면했을 것이다."
- 함석헌 《내 안으로부터의 혁명》 (1990년) - 유고집 성격의 선집
행하지 못할 욕망을 심어 주느니 갓난아기를 요람에서 죽이는 편이 낫다
(Sooner murder an infant in its cradle than nurse unacted desires.)
- 윌리엄 블레이크
출처: 『천국과 지옥의 혼인(The Marriage of Heaven and Hell)』 중 「지옥의 격언(Proverbs of Hell)」 섹션
연도: 1790년~1793년경
상상력은 영혼의 감각이다
(The Imagination is the Divine Vision or the Spirit of Prophecy.) / (The Imagination is the Soul's Sensation.)
- 윌리엄 블레이크의 편지
연도: 1800년대 초반 (집필 및 서신 교환 시기)
그대 마음의 정부에서는
그대가 그대 자신의 주이고 주인이기에,
그대의 몸과 정신의 영역이나 환경 모두는,
그대가 그것을 스스로 일으키기 전에는
어떤 불씨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야곱 뵈메
원전: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길(Weg zu Christo)』 (영어 중역본 등에서는 The Way to Christ로 알려짐)
출처 연도: 1622년~1624년경
그대 자신의 가슴을 한 번 제대로 읽어라,
그러면 그대는 두려움을 끝낼 것이다!
이것 외의 다른 빛을 인간은 얻지 못하고, 천년을 헤매게 된다.
- 매튜 아놀드(Matthew Arnold)
원전: 시 「엠페도클레스의 에트나산(Empedocles on Etna)」
출처 연도: 1852년 (시집 Empedocles on Etna, and Other Poems 수록)
어떤 것을 강하게 확신하면 실제로 그렇게 만들 수 있나요? 그러자 예언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든 시인은 그렇다고 믿고 있죠. 상상력의 시대에서 이러한 강한 믿음은 산을 옮겼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떤 것도 확신하지 못하지요.
- 윌리엄 블레이크 <천국과 지옥의 혼인Marriage of Heaven and Hell>
연도: 1790년~1793년경
그대가 보는 모든 것들은
그것들이 단지 외부의 것처럼 나타날지라도
내부에 존재하고 있으니,
그것은 그대의 상상력이고
그곳으로부터 태어나는 유한한 세상은
단지 그림자일 뿐이다.
- 윌리엄 블레이크
원전: 장편 서사시 『예루살렘(Jerusalem: The Emanation of the Giant Albion)』 (제71판 17~19행)
출처 연도: 1804년~1820년경 (집필 및 판각 시기)
모든 것은 상상에서 시작된다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답은 그것과 상응하는 의식수준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자문한다면, 그런 모든 물질적인 해석은 소용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보이지 않는 더 높은 수준에서 외적인 실체의 진정한 의미인 '왜'를 왜곡하게 됩니다. 사건에 대한 물리적인 분석은 오로지 사물의 외형에 대한 분석일 뿐입니다. 그런 식의 분석 과정은 왜 그 사건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사실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의미가 낮은 수준은 의미의 더 높은 수준에서 내려온 것이고, 눈에 보이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흘러 나온 것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인간은 매순간 의미의 무한한 범위 위에 서 있습니다. 의미가 없다면, 이전에 생겼던 어떤 사물이나 사건도 없을 것이고, 지금 존재하는 어떤 사물이나 사건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의식 수준에서는 그것이 공간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물체로 보입니다. 더 높은 의식수준에서는 종이 위에 일정한 규칙에 따라서 문자들을 모아놓은 것을 책이라 생각하며, 또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의식에서는 어떤 의미를 표현한 것이 책이라 합니다. 겉으로 볼 때, 우리는 책의 외형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책의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의미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문자의 배열이라는 눈에 보이는 수준 위에 존재합니다. 만약 외부에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가 없다면, 책은 쓰이지도 않았고 출판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있었으니, 그 말씀은 하느님이었다. - 요한복음 1:1
태초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의미는 의미를 표현한 자와 함께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 '보다 높은 의미의 질서'가 펼쳐진 결과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 네빌 고다드 『모든 것은 상상에서 시작된다(Out of This World)』 (1949)
"에드몬드 단테스는 몬테 크리스토(Christo) 백작이 된다.
인간은 그리스도(Christ)가 된다."
"자신에 대한 관념들은 모두 그것을 느껴 의식 안에 확고히 한다면 살아있는 실체가 되어 자신의 세상에서 쉽게 형체를 얻게 될 것.
이것을 이해한 후에 부활절의 날짜는 매년 바뀌는 반면에 왜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라는 고정된 날짜인지, 그리고 왜 기독교 신앙 전체가 처녀임신에 기초를 두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주가 그대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승리했다고 인식할 수 있는가?
적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든,
혹은 얼마나 위협적이든 개의치 않고,
승리가 그대의 것이란 것을 알면서
고요하게 그대의 믿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가?
만약 그대가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그대는 주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명심하라.
그 보상은 인내한 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인 것, 그것이 지금은 거짓일지라도, 계속 유지한다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 네빌 고다드
원전: 《부활(Resurrection)》 및 《상상력의 힘(The Power of Imagination)》 등 다수의 강의록
연도: 1940년대~1950년대 (주요 활동 시기)
비고: 신비주의적 성경 해석을 통해 '의식이 현실을 만든다'는 법칙을 설파.
"극단적으로 말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봐."
- 이건희
출처: 「삼성 신경영 선언 (프랑크푸르트 선언)」
발표 연도: 1993년 6월 7일
장소: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
(* 당시 이건희 회장은 사장단과 임원 200여 명을 소집해 무려 68일간 350시간이 넘는 회의와 강연을 이어갔다. 그 처절한 변화의 주문 중 가장 유명한 문구로 남았다.
배경: '양(Quantity)'에서 '질(Quality)'로의 대전환
당시 삼성 세탁기 뚜껑이 맞지 않자 직원이 칼로 깎아서 조립하는 불량 현장 영상을 본 이 회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1993년의 이 선언은 "불량은 암(癌)이다"라는 인식 하에, 2류 기업에 머물던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제2의 창업'**이었다.)
언제나 모든 일들이 영원한 시간 속에서
이미 이루어졌다는 자각 속에서 행동하십시오
전능한 하나님이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내면의 평화와 기쁨을 갖는 것이기에
당신은 바로 그 일을 해야만 합니다
당신의 비전과 영감은
당신이 있는 곳이 어디일지라도 찾아내서
자유를 건넬 것입니다
- 모줌다(A.K. Mozumdar) 《왕국의 비밀(The Secret of the Kingdom)》 (1922년)
"자기 능력을 훨씬 넘어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It is our choices that show what we truly are, far more than our abilities.)
-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1998) 덤블도어 교수가 해리포터에게
"今臣戰船 尙有十二(금신전선 상유십이)" — "지금 신에게는 전선이 아직 12척이 있사옵니다."
-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보고서)**에 기록된 발언
(* 맥락: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궤멸하자, 선조는 수군을 폐지하고 육군에 합류하라고 명한다. 이때 이순신 장군이 **"내가 죽지 않는 한 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라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올린 글이다.
명량 해전 당시를 기준으로 볼 때, 12척(나중에 합류한 1척을 포함해 실제로는 13척)은 절망적일 정도로 적은 숫자였다.
단순히 숫자가 적은 것을 넘어, 상대방과의 체급 차이를 보면 이 전투가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1. 객관적인 전력 차이 (조선 vs 일본)
구분 조선 수군 (이순신) 일본 수군 (구루지마 등) 비고
함선 수 12 ~ 13척 약 330여 척 (전투선 133척) 약 25~30배 차이
병력 약 1,500 ~ 2,000명 약 20,000 ~ 30,000명 압도적 열세
상태 칠천량 패전 후 남은 패잔선 승승장구하던 최정예 부대 사기 차이 극심
2. 왜 "적은 숫자"임에도 "있다"고 강조했나?
당시 조정(선조)은 "12척으로는 아무것도 못 하니 수군을 없애고 육군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즉, 국가 경영자의 눈에는 '0'이나 다름없는 무의미한 숫자였다.
하지만 이순신에게 12척은 다음과 같은 의미였다.
a. 전술적 최소 단위: 울돌목(명량)처럼 좁은 길목을 막아서서 1열 횡대로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숫자.
b. 판옥선의 우월함: 일본 군선에 비해 내구성과 화력이 압도적인 판옥선이었기에, 지형만 잘 활용하면 "해볼 만하다"는 계산이 서는 숫자.
3. "12척"이 상징하는 심리학
12척은 물리적으로는 **'전멸 위기'**를 뜻하지만, 이순신이라는 리더의 해석을 거치며 **'역전의 불씨'**로 변했다.
한국인들이 이 명언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는, 우리 인생에서도 '겨우 이것밖에 안 남았나' 싶을 때 이순신 장군의 **"아직 12척이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 엄청난 힘이 되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Copernican Revolution)
사물을 보는 근본적인 발상이 180도 뒤바뀌는 것을 의미.
- 출처: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저서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제2판 서문
고르디우스의 매듭 (Gordian Knot)
출처: 아리아노스(Arrian)의 《알렉산드로스 동정기(Anabasis Alexandri)》 등 고대 역사서
연도: 기원전 333년경 (사건 발생 기준)
원전 맥락: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우스가 묶어놓은 복잡한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왕이 된다는 전설이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이를 풀려 애쓰는 대신 칼로 내리쳐 끊어버렸다. 복잡하게 꼬인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는 과감한 결단을 의미.
콜롬버스의 달걀 (Egg of Columbus)
출처: 지롤라모 벤초니(Girolamo Benzoni)의 저서 《신세계의 역사(Historia del Mondo Nuovo)》
연도: 1565년
맥락: 해놓고 보면 쉬워 보이지만, 처음 시도하는 창의성의 가치를 뜻한다.
역발상(逆發想)
어원: 거스를 역(逆) + 필 발(發) + 생각 상(想). 말 그대로 "생각을 거꾸로 해낸다"는 뜻이다.
출처 및 유래: * 일본의 경제 성장기인 1970~80년대 경영학계에서 사용하던 **'갸쿠하소(逆発想, 역발상)'**라는 용어가 한국으로 유입되었다.
특히 1980년대 한국 경제 신문들과 마케팅 서적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창의적 사고"를 강조하며 대중화되었다.
서구적 기원: 심리학자 에드워드 드 보노(Edward de Bono)가 1967년에 제시한 **'수평적 사고(Lateral Thinking)'**가 역발상의 학문적 토대라고 볼 수 있다.
"2010년, 나는 마흔 살의 나이에 10억 원의 빚을 진 채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길을 잃었다. 어느 날 밤, 세느강 변을 걷다가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이 모든 지옥 같은 고통이 끝나겠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하지만 그때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막내딸의 죽음을 알게 될 어머니의 고통을 생각하니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강변에 주저앉아 엉 오열하며 다짐했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 용기로 다시 한번 제대로 살아보자. 이번에는 내 고집이 아니라, 세상의 성공 원칙을 철저히 배우고 실천하겠다.'"
- 켈리 최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2017)와 《웰띵킹》(2021)
(* 이후 그녀는 전 세계 부자들의 습관과 마인드, 특히 심상화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2010년 9월에 영국에서 초밥 도시락 사업인 '켈리델리(KellyDeli)'를 창업하며 시각화와 확언을 실천하여 지금의 성공을 일궈냈다. 이후 그녀는 약 2년의 준비 끝에 2010년 9월, 단돈 5,000파운드(약 700만 원)의 자본금으로 영국 리용 마트에 1호점을 오픈하며 성공의 서사를 써 내려갔다.)
웅진그룹 회장 윤석금이 말하는 여성의 장점과 단점
여성이 지닌 단점은 첫째, 먼저 앞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즉 도전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물이 깊은지 얕은지 알기 전에는 좀처럼 뛰어들지 않는다. 반대로 남성은 모험심이 강하기 때문에 일단 뛰어들고 본다. 이처럼 여성은 모험심이 약하기 때문에 남들이 하는 것을 지켜본 후에 따라 하려는 습성이 있다. 그러다보니 일반적으로 리더로서의 자질 면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뒤떨어질 수 있다.
둘째, 사회성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어떤 일로 감정을 다치게 되면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 다시 말해 큰일을 위해 사적인 감정을 자제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많다는 말이다.
한편 여성은 남성에겐 부족한 장점도 많이 갖고 있다.
첫째,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는 부지런함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훨씬 부지런하기 떄문에 자신이 맡은 일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외에 스스로 다른 사람이나 조직을 위한 일을 찾아서 한다. 시키지 않아도 필요하다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여성은 조직에 큰 도움이 된다.
둘째, 치밀하기 떄문에 자신이 맡은 일을 대충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단 한 일을 나중에 다시 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결과를 만들지 않는다.
셋째, 정직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조직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여성이 공금을 횡령하는 경우는 드물다.
넷째, 감수성이 뛰어나고 섬세해 타인의 감정에 쉽게 공감하고 언어적인 소통 능력도 뛰어나다.
- 윤석금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 (2009)
나는 평소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꼭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는 중에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의 자리에 오른, 소위 말해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중 하나가 표정이 밝고 즐거워 보인다는 것이다. 표정만이 아니다. 행동 하나하나에서 생동감과 활기가 느껴진다. 아마도 그들의 삶에 '신바람'이 불기 때문일 것이다.
꿈이라고 하는 것은 참 이상해서 머릿속으로 되뇌고 반복해서 말로 하면 어느새 현실로 이루어진다.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난관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있다. 현재는 힘들고 어렵지만 잘 극복하면 훨씬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며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성공하게 되고, 도무지 이겨낼 수 없는 시련이라 여기며 자신의 미래는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로 불행하게 된다.
실제로 나이가 많지 않음에도, 부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이 늙어 자신감을 잃어버리거나 무엇을 시작하기에 이미 늦었다고 단정해버리는 사람의 인생은 너무나 허망하다. 불행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생각을 바꾸지 않는한 불행하게 산다.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적인 사람은 어떤 일을 하든 오래 하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사람의 일이라는 게 참 신기하게도 어떤 일을 할 때 안 될 것이라고 미리 단정하면 정말로 안 되는 쪽으로 일이 흘러가게 된다.
인간은 정신력에 좌우되는 존재다. 이것은 나의 체험에서 나온 신념이기도 하고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얻은 확신이기도 하다. 객관적으로 훌륭한 이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만족할만한 삶을 살지 못하거나, 한 번의 실패로 영영 재기하지 못하고 평생을 비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이들에게선 대부분 정신력이 약하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느냐 그러지 못하느냐는 정신력에 달려 있다.
10여 년 전 만난 한 일본 여성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건강식품 회사에서 세일즈 매니저로 근무하던 아라카와라 씨는 50대 초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실제 나이는 예순이 넘었다고 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나이에 비해 한참 젊어 보이는 그녀의 외모가 아니었다. 세일즈 매니저로 일하는 그녀가 시각 장애인이라는 점이었다. 세일즈는 아무런 장애가 없는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데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하다니 참으로 대단했다. 고객의 얼굴을 기억할 수도 없고, 고객을 방문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세일즈를 하다니! 그런데도 아라카와라 씨는 일본에서 일하는 수만 명의 세일즈맨을 제치고 늘 좋은 성과를 거뒀다. 그를 보며 나는 육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신력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 윤석금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 (2009년)
항상 남들보다 조금 더 나아갔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동네 가게로 심부름을 보내면 동생들은 찾는 물건이 그곳에 없을 경우 그냥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근성이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동네, 더 먼 곳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사 왔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시장조사를 하게 되었다. 어디가 더 싼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동네 가게의 물건값을 꿰고 있는 어머니가 심부름을 시켜도 내 주머니 속에는 꼭 잔돈이 남게 되었다.
나의 가치관이 내 역할과 크기를 결정한다
서울시장은 서울시민을 위하는 마음이 최고로 크면 좋을까? 아니다. 그러면 큰일난다. 서울시와 시민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장은 대한민국을 고민하고, 그 안에서 서울시와 시민을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은? 대통령은 세계를 보고, 세계 속의 한국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므로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자기가 있는, 혹은 지향하는 자리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카테고리에서 고민하고 문제를 직시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CEO가 아닐 때 CEO의 고민을 했고, 나중에 CEO가 되었을 때에는 더 큰 카테고리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 쏟아부어라, 그래야 통한다
무당들이 날선 작두 위에서도 춤을 출 수 있는 것은 신명이 올랐기 때문이다. 그들 말로 신이 내리지 않으면 발을 베이고 마는 것이다. 내가 장구를 배울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손마디마다 피가 맺히고, 내 몸에 땀구멍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만큼 완전히 내 몸을 소진시키며 연습을 거듭하다 보니, 그토록 어려웠던 휘모리 장단이 어느 순간 내 손끝으로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인생도 그러하다. 양적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느냐가 아니라, 미쳤다는 말을 들을만큼 자신의 온 존재를 던질 때 인생의 질적인 도약을 경험할 수 있다.
95년도만 해도 우리나라 음료시장의 90%는 외국산, 그래서 국내산 가을대추를 만든 조운호
조운호와 아침햇살의 성공
조선시대에는 보통 사람들도 쌀 5홉, 요즘으로 치면 한 솥을 한 끼에 먹었다고 한다. 다른 음식이 많지 않으니 밥으로 영양분을 채운 것이다. 쌀은 양질의 탄수화물 덩어리면서도 빵과 같은 밀가루 음식에 비해 두 배 이상 단백가가 높은 고영양 식품이다. 쌀에 없는 것은 비타민A, 칼슘 정도라고 하니 쌀로 모든 영양분을 채운 조상들이 이해가 간다.
밥을 잘 짓기 위해 예전엔 어느 집에나 압력밥솥이 있었으니, 바로 무쇠로 만든 가마솥이 그것이다. 가마솥이 압력밥솥이 되는 것은 단지 무쇠로 만든 뚜껑의 무게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리 무쇠로 만들었어도 수증기의 압력 때문에 무쇠솥뚜껑도 들써걱리게 마련이다. 그러면 밥 짓는 이는 차가운 행주로 솥뚜겅 위를 계속 닦는다. 행주질로 솥뚜껑의 표면이 차가워지고, 뚜껑에 닿는 김은 물방울로 바뀌어 가장자리로 흘러가면서 들썩거리는 솥뚜껑과 솥 사이에 나는 틈을 막아버린다. 그 덕분에 가마솥은 압력밥솥과 같은 효과를 내게 된다. 적당히 김이 빠지게도 하고, 또 적당히 김이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다.
이어령: 왈 자네는 쌀미자의 의미를 아는가? 잘 보면 여덟팔 자 두개를 엎어놓은 글자일세.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 손이 여든여덟 번은 가야 쌀 한톨이 나온다는 걸세.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데, 땅의 기운과 물의 의미가 합쳐져서 만들어낸 순수의 생명체가 바로 쌀이야.
쌀을 가지고 밥은 만들어 먹는 민족은 많았다. 물론 당아시아 국가들이 주로 먹었다. 그런데 이걸 알아야 한다. 숭늉이라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 한국인밖에 없다.
꿈에서 떠오른 아침햇살 홍보구절
"우리는 해방 이후 50년간 외국 브랜드 음료를 바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땅의 진정한 음료의 세계화는 우리 음료는 수출하기에 앞서서, 외국 음료가 판치는 우리 음료 시장에 우리 브랜드를 먼저 자리잡게 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제일기획은 아예 한 술 더 떠서 '3.1독립만세' 부르는 사진을 깔고, '이 땅의 자존심으로 태어났다. 가을대추!'라고 광고를 뽑았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런데 정작 이 광고 시안을 윤 회장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다. 보여주었다가 혹시 반대를 해서 못 나가게 디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외환위기와 애국 마케팅 붐
학생들은 가방에 소형 태극기를 액새서리로 달고 다니는가 하면, 코카콜라의 국내 판매책이었던 한 회사는 '콜라독립 815'라는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아침햇살은 우리 쌀을 소재로 한 음료. 시름에 젖은 쌀 농가들의 쌀 수매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줌.
아침햇살 판매전략
1. 쌀에다 비타민B이 풍부한 현미를 섞어야 한다.
2. 밥이 잘되어 구수하면서도 입에 침이 착 고이는 그 향을 살려야 한다.
3.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이어야 한다.
4. 쌀 음료니까, 그리고 우리가 하얀 옷을 즐겨 입는 민족이니까 색깔은 백색에 가까워야 한다.
5. 한석봉의 기아트에서 영향을 받아 아침햇살 포장 디자인. 이것이 웅진식품의 모든 상품에 문화예술적 요소를 입히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에 문화와 예술을 접목하고자 하는 발상이 시작된 것이다. 건물 앞에 조각이나 세워놓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화와 예술이 상품 그 자체에 스며들게 하는 문화마케팅을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침햇살의 독특한 디자인, 하얀 바탕에 까만 먹으로 그린, 음양의 이치를 상징하는 디자인이 탄생한 것이다.
6. 비수기에 광고
7. 직영점이 아닌 대리점들 공략. 대리점들에게는 파격적인 인센티브 약속.
아침햇살 광고를 윤회장 몰래 진행하고 4번이나 부탁하여 최종 결재를 받아낸 조운호. 그 과감함을 인정받아 승진 3단계를 건너뛰고 웅진식품 CEO가 됨.
조운호와 초록매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음료가 바로 매실 음료였다. '제호탕'이란 것인데 <동의보감>에 따르면 심한 더위를 몰아내고, 열나고 목이 마르는 증상에도 즉효라고 한다. 해마다 단오에는 구우걸 내 의원들이 제호탕을 만들어 왕에게 진상하기도 했고, 정승집 정도면 제호탕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몸에 좋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이런저런 매실 음식을 먹어왔다는 것은 분명 잠재 수요가 있다는 것이다. 잠재 수요가 있다면 소비자가 말하지 않아도 그 욕구에 맞는 상품을 만들어주기만 하면 충분히 팔릴 수 있다는 얘기다.
수요는 있는데 상품화는 안 된 것을 찾아야 한다.
- 조운호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한다》 (2004)
지금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CEO가 된 데이비드 로보코프는 아이디어와 과감한 도전정신 하나로 크게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최고의 CEO들이 참석하는 컨퍼런스를 기획하고 이 사업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그는 무턱대고 전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 에게 초청을 부탁했다. 의외로 키신저는 흔쾌히 동의를 했는데, 단 강연 비용 5만 달러에 조종사 두 명이 딸린 전용비행기, 그리고 운전사가 딸린 리무진을 요청하였다. 그는 돈이 한 푼도 없었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키신저가 참석한다는 소문을 내면서 레이건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헤이그, 그리고 지미카터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머스키의 참석동의도 쉽게 이끌어 내었다. 이런 일련의 행위를 통해 정관계의 거물들 상당수를 컨퍼런스에 참석시킬 수 있었고, 이를 통해 CEO들을 쉽게 컨퍼런스에 참가 접수 시킬 수 있었다. 결국 그 컨퍼런스는 큰 경제적, 그리고 무엇보다 명성을 그에게 가져다 주었고, 이를 토대로 그는 굵직한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업계의 총아로 떠 오를 수 있었다.
- 데이비드 로스코프, 『슈퍼클래스』 (2008년) 요약
율산그룹의 창업주인 신선호가 대한민국에 선사한 충격과 공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세운 기록 몇 가지를 먼저 들여다봐야한다. 신선호가 여섯 명의 대학동창들과 율산실업을 설립한 게 1975년 6월 17일이다. 그리고 코딱지만했던 율산실업이 계열사 14개, 총 직원수 7천명의 그룹으로 1만배 성장하는 데 걸린 시간이 딱 4년이다. 회사를 설립한지 꼴랑 6개월만에 340만 달러의 수출고를 기록하고 다음해에는 무려 열배가 넘는 4,300만 달러를 수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무리 1970년대라고 하더라도 이건 기네스북감이다. 우주 왕복선이 지구 대기권을 벗어날 때 내는 최고 속도가 마하 25다. 그가 회사를 키운 속도가 거의 이 정도 스피드다.
사업을 시작한지 채 2년도 채 안되서 율산실업, 건설, 알루미늄, 중공업, 경흥물산, 서울종합터미널등을 거느린 재벌로 성장한 신선호는 원, 재세와 더불어서 재계로부터 무서운 아이들이라 불렸다. 왜 아이들이냐고? 신선호가 사업을 시작한게 26살, 율산실업을 창업한게 28살일이다. 그리고 율산그룹의 회장이 된게 29살때다. 재계의 영감님들이 보기에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어린 얘들이었다.
이 양반이 대한민국 경제계에 남긴 여파 역시 장난아니다. 그가 금융권에서 끌어다 쓴 돈이 상상을 초월한다. 누적기준으로 2조 3천억원, 1970년대 대한민국 국가 예산의 절반, 서울시 예산의 네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조그만 나라 하나 통째로 사버릴 금액이었다. 진기명기는 이게 다가 아니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율산그룹이 공중분해되고 신선호 회장이 구속됐을때 옷을 벗은 공무원 숫자가 무려 삼천명을 넘는다. 당시 전체 공무원 숫자가 60만명쯤 됐으니 율산그룹 때문에 파면되거나 직위해제된 공무원이 전체의 0.5%에 육박한 것이다. 이건 머 삼천 궁녀도 아니고. 율산 그룹은 그 존재 자체가 파격이었던 회사였다. 그랬기 때문에 TV 드라마로 환생할 수 있었던 거다.
어쨌거나 내가 인상깊게 본건 율산실업을 창업한 젊고 헝그리한 사장 신선호가 보여준 놀라운 문제해결능력이었다. 사업을 막 시작한 신선호는 쿠웨이트발 주문서 한장을 받아들었다. 천만불짜리 주문서였다. 규모는 컸지만 워낙 단가가 낮아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 율산실업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는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어 보이는 주문서를 접수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 주문을 맞춰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배를 통째로 빌리는 용선계약(Charter Party)을 통해 운임을 낮추고 단가를 맞추게 된 신선호는 천만달러 어치의 시멘트를 싣고 목적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착했다. 한데 문제가 있었다. 워낙 많은 배들이 몰려드는 통에 하역일정이 한달 뒤로 잡힌 것이다. 배에 실린 시멘트등 건설자재 50만톤은 뜨거운 날씨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변질되어가고 있었다. 만약 항구에서 더 지체하면 시멘트는 굳어버릴 판이었고 납기는 어긋날 상황이었다. 설상가상 배를 통째로 빌리는 용선계약의 특성상 하역이 늦어지면 지불해야하는 체선료(Demurrage)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었다. 신선호가 과감하게 도전한 첫 대형 물량이 그의 마지막 수출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짐싸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테지만 타고난 승부사 신선호의 위기관리능력은 여기서 발휘된다. 그는 하역순서를 바꾸기 위한 도박을 감행한다. 배 갑판에 가마니를 모아놓고 불을 지른 것이다. 화재가 발생한 선박은 최우선 순위로 부두에 접안시켜 하역을 한다는 점을 알고 선장과 짜고 일부러 방화를 저지른 것이다.
그의 예상처럼 불이 난 율산실업의 배는 다른 화물선들을 제끼고 최우선으로 부두에 접안할 수 있었다. 물론 하역 역시 예정보다 일찍 마칠 수 있었다. 그는 이 도박으로 천만 달러어치의 건설 자재를 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율산실업이 초 고속 성장을 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방화까지 불사하며 납기를 맞춘 그의 재치를 본 중동 거래선은 그의 배짱에 감탄하며 열배나 더 큰 1억 달러어치의 추가주문서를 발행했다. 이 한 건으로 신선호는 회사와 가문, 이 둘을 모두 일으킬 수 있었다.
그의 창의적인 문제해결능력을 볼 수 있는 에피소드는 또 있다. 중동 건설붐으로 항구가 미어터지고 하역이 늦어지자 신선호는 아예 새로운 발상을 시도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쓰였던 고물 상륙함 LST를 20척이나 구입한 것이다. Roll-in , Roll-out 방식으로 트럭이 선박 안까지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보니 율산실업의 배는 늘 누구보다 짧은 시간안에 하역을 마칠 수 있었다. 시간이 곧 돈이자 신뢰였던 당시 상황상 그가 발휘한 기지는 중동 거래선들에게 율산실업이 다른 기업들과는 차원이 다른 회사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율산그룹 신선호 회장 에피소드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전망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우리의 지배에서는 완전히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숙명이나 자연이나 저항할 수 없는 역사의 파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노력이 이성과 원칙과
일치할 때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이 바로 미국을 건설해온 힘입니다."
- 로버트 F. 케네디의 장례식에서 동생 에드워드 케네디가 한 연설의 일부
연도: 1968년 6월 8일
장소: 미국 뉴욕 성 패트릭 대성당(St. Patrick's Cathedral)
공식 명칭: "Eulogy for Robert F. Kennedy"
파동은 곡선으로 움직이니까. 똑같은 파동 두 개가 부딪히면 어떻게 되나? 훨씬 큰 파동이 나오게 되지만 틀린 것끼리 만나면 파동은 상쇄된다. 이것이 저는 만물의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 때 이걸 생각해봐라. 세상은 사람끼리 살게 된다. 마음이란 것 사고방식이고 모든 생각도 파동이다.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을 만나면 통하게 되고,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을 만나면 충돌하거나 마음이 상하게 된다.
이게 인생의 원리다. 누굴 만나더라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특히 고시 공부하는 사람은 자기주관이 뚜렷하다. 자기 주관이 있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안 맞혀주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냐.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서로 상대방의 마음에 맞춰주는 게 쉽다. 쉬운 방법은 상대방이 말할 때 맞장구쳐 주는 것이다. 그 사람이 김이 빠질 때까지 신나는 것처럼 맞장구는 잘 쳐줘야 친구가 된다.
고시 공부할 때 자기 목표에 대한 확신을 계속 심어줘야 한다. 파동이 커지면 입자가 변하고 물이 변해 결정체가 바뀌듯이 자기 스스로 된다고 생각하면서 밀어붙이는 사람만이 된다. 항상 된다는 생각을 반복하면 마음속의 파동이 커지게 되고 에너지가 커진다.
만약 자기 스스로 안되면 외부의 힘, 종교의 힘을 빌려라. 자신의 약한 모습에 실망할 경우 도와주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에 안보이는 신의 세계는 파동의 세계다. 신의 세계는 엄청나게 큰 것이고 신은 가장 큰 파동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작은 파동을 신의 파동에 맞춰야 두 파동이 공명을 일으켜 그 순간 약한 자신이 매우 큰 파동을 일으키면서 힘을 얻을 수 있다.
- 고승덕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
초판 발행: 2003년 1월 20일 (개미와 베짱이 출판사)
"당신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당신의 미래를 만든다."
"미래의 나는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상상해보자.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는 최고의 꿈을 나 자신이 이루었다고 이미지화하자. 그토록 염원하던 자신이 되어 있는 그 이미지, 그것이 바로 당신의 미래다. 그리고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느껴보자. 리얼리티를 최대한으로 살려 실제로 그곳에 있는 듯이 느끼는 것이다. 리얼리티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 미래는 현실이 된다. 강한 리얼리티를 가지면 그 미래에 어울리도록 현재와 과거의 해석이 다시 이루어진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르는 자신을 순식간에 행복의 절정으로 이끌어주는 미래의 사건을 머릿속으로 사실적으로 강하게 그릴 수 있다면 미래에 대한 행동은 완성된다. 만일 현재 단계에서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며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현재의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면 된다. 어떤 상황에 있든 그렇게 확신하는 것만으로도 미래의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토마베치 히데토의 저서 《초시간 뇌》 (2009년)
원제: 《超「時間脳」で人生を10倍にする》 (초 '시간뇌'로 인생을 10배로 만든다)
"우리들의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능력의 예감인 것이며, 자기가 장래에 성취할 수 있는 것의 전조인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들 바깥에서 그리고 미래의 모습으로 우리 상상력에 그려진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 남모르게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열정적인 선취야말로 진정으로 가능한 것을 꿈꾸어 얻은 현실적인 것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방향 하나가 결정적으로 우리들 본성 가운데 들어 있다면, 우리가 이루는 발전의 한 걸음 한 걸음으로써, 정황이 순조롭고 곧은길에 있을 때는 실로 첫 소망의 일부가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원문: "Unsere Wünsche sind Vorgefühle der Fähigkeiten, die in uns liegen, Vorboten desjenigen, was wir zu leisten imstande sein werden." (우리의 소망은 우리 안에 있는 능력의 예감이며, 우리가 장래에 성취할 수 있는 것의 전조이다.))
- 괴테 《시와 진실》 (Dichtung und Wahrheit) 제2부 9권 (1814년)
"(1963년 케네디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서) 나는 장차 내가 정치 활동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빌 클린턴 자서전 《마이 라이프》 (My Life, 2004)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
- 김영삼이 1945년경 중학교 시절 책상에 직접 써 붙인 문구. (출처: 김영삼 회고록 및 대통령기록관 기록)
"나는 이 회사를 5년내에 100억엔, 10년 안에 500억엔, 그 이후로는 수조 원대 규모의 자산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지금의 현실을 보지만, 개척자들은 미래의 현실을 본다"
-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창업 기념식 (직원 2명 앞 연설) (1981년)
"모든 책상 위와 가정에 컴퓨터를"
"A computer on every desk and in every home."
- 마이크로소프트 공식 미션 선언문 (1975년)
"I always knew I was going to be rich. I don't think I ever doubted it for a minute." (나는 내가 부자가 될 거라는 걸 항상 알았다. 단 일 분도 의심한 적이 없다.)
- 워런 버핏 평전 《스노볼》 (The Snowball, 앨리스 슈뢰더 저) (2008년)
"By 1980 I will be the best known oriental movie star in the United States and will have secured $10,000,000." (1980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동양인 배우가 될 것이며 1,000만 달러를 벌 것이다.)
- 이소룡, 친필 서약서 '나의 결정적 목표' (My Definite Chief Aim) (1969년 1월 9일)
"나는 국왕이고 대통령이며 정신계의 왕자이며 사상문화계의 지도자이며 최고 권력자이다."
- 이케다 다이사쿠 《청춘일기》 (若き日の日記) 1950년대 (일기 기록)
(* 일본 창가학회의 창립자이자 공민당의 대표, 일본 정재계의 실력자인 이케다 다이사쿠는 어렸을 때부터 천하를 쥐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그리고 자신이 최고 권력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
"I wanted to play it with a minimum of dialogue... building a character through attitude and movement." (최소한의 대사로, 태도와 움직임을 통해 캐릭터를 구축하고 싶었다.)
-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름 없는 남자' 캐릭터에 대한 의도적 연기 설정 - 영화 《황야의 무법자》 제작 비화 인터뷰 및 자서전적 기록 (1964년)
(* 할리우드의 간판스타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전혀 새로운 느낌의 카우보이 케릭터를 창조해낸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연기한 케릭터는 미래도 없으며, 아무에게도 신경 쓰지 않고, 그 누구도 믿지 않으며, 환경 조건에 따라 가능한 한 많은 폭력을 저지르는데 거리낌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케릭터 설정은 이스트우드가 오랫동안 갈망해오던 이미지였다는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암시하긴 하지만 과거가 베일에 쌓여있는 남자를 상상해 왔고, 태도와 움직임을 통해 이를 재현하고자 했다. 이스트우드의 상상은 좋은 효과를 거뒀고, 그는 역사상 가장 독특한 카우보이 케릭터를 창조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자신의 현실을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우리 내부의 정서적 - 무의식적 - 현실이 자신에게 교훈적인 상황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있는 사람들을 삶 속에서 만나지만 우리는 그것을 그저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 정도로 경험한다. 우리는 매우 깊은 무의식 차원에서 이러한 상황을 지어낸다."
- 진 휴스턴 《가능성의 인간》 (The Possible Human) (1982년)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였던 박지성은 심상화, 자기암시를 꾸준히 실천해온 대표적인 선수 중 한명이다. 2005년 11월 15일 대표팀의 단체 인터뷰 자리에서 박지성은 이렇게 얘기한다.
"경기장에 나설 때마다 내가 최고의 선수라고 다짐합니다. 그라운드에서 좋은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감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자신감을 갖기 위해 어떤 스타 선수보다 내가 뛰어나다고 암시를 걸어요."
박지성은 축구게임광으로, 게임속의 박지성을 통해 이미지트레이닝을 하고는 한다. 그에게 '게임 속의 박지성과 현실의 박지성이 축구로 맞붙는다면?'이라고 기자가 질문을 하자 한참 동안 파안대소하더니 그는 "게임 속의 박지성이 훨씬 낫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하자 "기술·돌파·골결정력 등 모든 면에서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지성의 후배인 손흥민 또한 오스트리아 빈과 친선 경기에서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터뜨린 것에 대해 "꾸준한 이미지트레이닝의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축구 스승인 아버지(손웅정 감독)와 이미지트레이닝에 관한 대화를 많이 한다"며 "다양한 골 기회를 대비한 이미지트레이닝이 습관화된 결과"라고 말했다.
- 박지성 국가대표팀 단체 인터뷰 기사 (2005.11.15)
짐 캐리와 1,000만 달러 수표 이야기
짐 캐리가 무명 시절에 행했던 '1,000만 달러 수표' 이야기는 시각화(Visualization)와 끌어당김의 법칙을 논할 때 가장 상징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가 직접 밝힌 이 이야기의 핵심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상태'**를 스스로에게 각인시킨 과정에 있다.
1. 1985년, 산비탈 위의 똥차와 수표
당시 짐 캐리는 캐나다에서 건너와 할리우드에서 자리 잡지 못한 채, 다 쓰러져가는 중고차를 타고 다니던 무명 배우였다. 그는 매일 밤 할리우드 힐스(Hollywood Hills)에 차를 세우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다음과 같은 행동을 했다.
스스로에게 발행한 수표: 자신에게 **1,000만 달러(약 130억 원)**짜리 수표를 직접 썼다.
지급 사유: '연기 서비스에 대한 대가(For acting services rendered)'.
지급 기한: '1995년 추수감사절'까지로 명시했다.
보관: 이 수표를 지갑에 넣고 다니며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매일 꺼내 보았다.
2. "나는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다"
짐 캐리는 단순히 "돈이 생기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산 위에서 화려한 불빛들을 내려다보며 다음과 같이 상상했다.
"이미 유명한 제작자들이 나를 찾고 있고, 나는 영화를 찍고 있으며, 이 돈은 당연히 내게 올 보상이다."
그는 결과가 이미 일어난 것처럼 느끼는 감각을 훈련했다. 수표가 종이 조각이 아니라 실제 가치가 있는 증서라고 믿으려 노력한 것이다.
3. 10년 뒤의 결과 (1994년~1995년)
놀랍게도 수표에 적은 기한이 다가오기 직전인 1994년, 영화 **《덤 앤 더머(Dumb and Dumber)》**의 출연료로 정확히 1,000만 달러를 받게 된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10년 동안 지갑에 품고 다녀서 낡아버린 그 수표를 아버지의 관 속에 함께 넣어 드렸다. 자신의 성공을 증명하는 징표를 선물로 드린 셈이다.
짐 캐리가 강조하는 주의점
그는 나중에 <오프라 윈프리 쇼> 등에서 이 이야기를 하며 중요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시각화만 하고 샌드위치를 먹으러 가면 안 됩니다. 가서 일을 해야 하죠."
그는 시각화를 통해 얻은 확신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오디션을 보러 다녔고, 끊임없이 캐릭터를 연구했다. 즉, '확신(Belief)'이 '행동(Action)'을 끌어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①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기존 체제(Establishment)가 당신에게 틀렸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당신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다. 기득권층에 도전하고, 그들의 비아냥을 훈장처럼 여겨라."
②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 (Never, Ever Give Up)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안 된다'고 말할 때, 그것을 '시작'의 신호로 받아들여라. 포기하는 순간 당신은 진정한 패배자가 된다."
- 도널드 트럼프 리버티 대학교(Liberty University) 졸업식 축사 (2017년 5월 13일)
(* 1. 리버티 대학교는 어떤 곳인가?
정체성: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복음주의 기독교 대학이다.
위상: 학술적 명성보다 **'보수 우파의 성지'**로 통한다. 공화당 대권 주자라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코스다. 즉, 일반적인 기준에선 '듣보잡'일지 몰라도,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버드보다 권위 있는 곳이다.
2. 트럼프와 리버티 대학의 관계: '제리 폴웰 주니어'
이 관계의 핵심 인물은 당시 리버티 대학교 총장이었던 **제리 폴웰 주니어(Jerry Falwell Jr.)**다.
결정적 조력: 2016년 대선 당시, 도덕성 논란으로 기독교계가 트럼프를 외면할 때 제리 폴웰 주니어가 가장 먼저 "트럼프는 기독교의 가치를 수호할 지도자"라며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정치적 보은: 트럼프는 자신을 믿어준 '아군'을 절대 잊지 않는 스타일이다. 2017년 첫 졸업식 연설지로 리버티 대학을 선택한 것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일등 공신에 대한 최고의 보은이었다.)
그는 "어려운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미학을 가지고 있어 곤란한 일이 일어나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라고 생각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해 버릇하면 실제로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 곤란한 일을 보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시점에서, 세상도 하나님도 "이런 일로 곤란하지 않아요"라는 승리 선언이 되어, 이 한마디로 자신의 승리를 결정짓게 된다는 것이다.
...
교통사고가 나는 꿈을 꿨다면 꿈 속에서 이미 경험한 일이므로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침에 꾼 꿈이라며 불안해 하면 불안이 불행을 불러온다.
경험은 가능한 한 꿈속에서 하는 것이 낫다. 꿈을 꾼다는 것은 신이 지켜준다는 뜻이다. 그것이 진정한 해몽이다.
...
나는 확실히 그 누구보다 욕심이 많다. 부자가 되고 싶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으며 하고 싶은 말도 마음껏 하고 싶고 자유도 원한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들 말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절대 그렇지 않다. 가능하다.
- 사이토 히토리 《곤란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원제: 困ったことは起こらない) (1994), 《운 좋은 놈이 성공한다》 (2012), 《세상의 이치를 터놓고 말하다》 (2014), 《돈의 진리》 (2019)
🌍 세계의 낙관적 표현과 종교적 위안 정리
| 구분 | 표현 (언어/출처) | 의미 및 어원 | 배경 및 심리학적 장치 |
| 낙천적 주문 | 하쿠나 마타타 (스와힐리어) | "문제 없다" (No Problems) | 케냐·탄자니아 일상어에서 유래,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으로 세계적 유행. |
All Is Well (영어/인도 영화) | "모두 다 잘될 거야" | 영화 **<세 얼간이>**의 명대사. 해결보다 **"마음을 속여 용기를 내게 하는 주문"**의 역할. | |
| 평화의 인사 | 살룸/샬롬/살람 (셈어 뿌리) | "완전함", "결함 없음", "안녕" | 히브리어(샬롬), 아랍어(살람)의 어원. 예루살렘(평화의 도시) 지명의 유래. |
| 문화권별 태도 | Que Sera, Sera (스페인/이탈리아어) | "될 대로 되어라" | 미래는 알 수 없으니 순리에 맡기라는 낙관론. |
Inch'Allah (아랍어) | "신의 뜻이라면" | 결과는 인간이 아닌 신에게 달렸다는 겸손과 수용. | |
C'est la vie (프랑스어) | "이것이 인생이다" | 나쁜 상황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달관의 자세. | |
No Worries (호주 영어) | "걱정 마" | 상대의 사과나 감사에 쿨하게 반응하는 호주 특유의 정서. | |
| 심리 및 종교 | 마음챙김 (불교/현대 심리) | 현재에 집중하기 |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을 차단하여 평온 유지. |
"두려워하지 말라" (성경/쿠란) | 신뢰를 통한 공포 극복 | 인간의 본능적인 생존 공포를 '신뢰'로 대체하려는 종교적 확신. |
불립문자(不立文字)
주요 원전: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또는 《무문관(無門關)》
사상적 기원: 서기 520년경 (달마 대사가 중국에 불교를 전파하며 '이심전심'의 도리를 강조하던 시기)
문헌적 확립: 서기 1004년 (《경덕전등록》이 편찬되어 선종의 교리가 문자로 확립된 시기)
(* 아이러니하게도 '문자를 세우지 말라'는 가르침이 100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문자로 기록되어 널리 퍼졌다.)
이심전심 (以心傳心)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이 통한다는 이 말은 불교의 **'선종(禪宗)'**에서 유래한 유서 깊은 성어.
유래: 석가모니가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자 가섭 존자만이 미소 지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의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문헌 및 출처: 『전등록(傳燈錄)』 (정확한 명칭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연도: 1004년 (북송 시대, 도원 송작 편찬)
여기서 "문자를 세우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以心傳心)"는 원리가 확립되었다.
말이 씨가 된다
늘 말하던 것이 결국 사실로 나타나게 된다는 이 속담은 특정 문헌에서 발명된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오랜 구비 전승(민속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래: 언령(言靈) 사상, 즉 **'말에는 영적인 힘이 깃들어 있다'**는 고대 신념에서 기원한다.
조벽암의 『조선속담집』(1939년)이나 이기문의 연구 등에서 "언어의 실현력"을 다루며 공식 기록되었다. 김일부의 『정역』(1885년)에서 수리(數理)로 우주를 선언한 것도 넓게 보면 "말(數)이 씨(현실)가 되는" 과정의 극치라 볼 수 있다.
생사일여 (生死一如)
"삶과 죽음은 본래 하나로 같다"는 뜻으로, 현상적인 생멸(生滅) 너머의 불변하는 본질을 깨닫는 상태를 말한다.
어원 및 문헌: 불교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과 선종의 기록들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시기: 원저자 마명(馬鳴) 보살의 시기(서기 1~2세기) 혹은 진제(眞諦)의 한역 시기(서기 550년경)로 거슬러 올라간다.
몽중일여 (夢中一如)
"꿈속에서도 (깨어있을 때의 의식이) 한결같다"는 뜻이다. 수행의 단계 중 매우 높은 경지로, 잠을 자는 중에도 화두가 끊기지 않거나 자기 의식이 명료한 상태를 뜻한다.
어원 및 문헌: 주로 선종의 수행 지침서인 『서장(書狀)』 혹은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강조된다.
시기: * 『서장』: 대혜종고(大慧宗杲) 저, 1166년경 (남송 시대).
『선가귀감』: 휴정(서산대사) 저, 1564년.
단계론: 불교 수행에서는 보통 정중일여(靜中, 고요할 때) → 동중일여(動中, 움직일 때) → 몽중일여(夢中, 잘 때) → 숙면일여(熟眠, 깊은 잠에서조차)의 순서로 나아간다.
"하나님은 우주의 먼지 한 알만도 못한 지구를 만드느라 6일을 꼬박 일하고... 이 새끼는 진짜로 전지전능한가요?"
- 조지 칼린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You Are All Diseased》 (HBO 스페셜) (1999년)
"종교란 평민들에게는 진실로 여겨지고, 현자들에게는 거짓으로 여겨지며, 통치자들에게는 유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의 저서 《로마 제국 쇠망사(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1776년 ~ 1788년) 제2장에 나오는 표현
(* 해당 문구는 흔히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Seneca the Younger, 서기 4년~65년)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세네카의 사상을 기번이 요약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문장.)
"지상의 빵을 위해 하늘의 빵을 포기하라."
- 도스토예프스키 《까라마조프 형제들》 (1880) 속 대심문관의 명언
(* '대심문관' 편에서 90세의 노인 대심문관이 재림한 예수에게 쏟아내는 말 중 가장 유명한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다. (인간은 자유라는 짐을 감당하지 못하므로, 차라리 자유를 반납하고 배불리 먹여주는 권위 앞에 무릎 꿇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통찰과도 맞닿아 있다. "인간에게는 자유보다 더 큰 고통의 원인은 없으며, 따라서 양심의 가책 없이 복종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것이 인류 최대의 고민이다."
데리다의 '차연'과 교회 권력의 '지연' 전략: 중세 교회는 "예수는 곧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끊임없이 뒤로 미루면서(deferring), 그 '공백기' 동안 지상의 대리인으로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만약 예수가 당장 나타나 결론을 내버린다면 교회의 중재자적 역할은 사라지게 된다.)
<레위기> 20장에 따르면 다음의 죄들은 죽음의 처벌을 받아 마땅한 것들이다. 부모를 비방하는 것, 불륜을 저지르는 것, 계모나 며느리와 성관계를 갖는 것, 동성애, 모녀와 동시에 혼인하는 것, 수간(그리고 그 불운한 동물도 도살한다). 물론 당신도 처형된다. 안식일에 일했다는 이유로. 그 점은 <구약성서>전체에 되풀이해 나타난다.
<민수기>15장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금지된 날에 한 남자가 야외에서 장작을 모으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를 붙잡은 뒤 신에게 어떻게 처리할지 물었다. 신은 그 날 대충 넘어갈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그를 처형하라고 말했다. 모두 그를 야영지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여라."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순진하게 땔감을 모은 그를 위해 슬퍼했을까? 그는 첫 번째 돌이 날아왔을 때 두려움에 흐느꼈을까, 돌들이 마구 머리를 때릴 때 고통에 울부짖었을까?
-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2006)》
인용문: 레위기 20장의 처벌 목록 및 민수기 15장의 땔감 모은 남자 처형 사건
원전: 《성경(Holy Bible)》 구약성서 (개역개정 또는 킹제임스 성경)
연도: 기원전 5세기~기원전 2세기경 최종 편집된 것으로 추정.
"우리의 생식 기관과 배설 기관이 이토록 가깝게 붙어 있는 것을 보라. 이것은 마치 지옥에서 소집된 어떤 비열한 소위원회의 위원들이 잔인하게 키득거리며 이리저리 엮어놓은 것 같다. 그들은 인간에게 가장 고결한 감정인 사랑과 번식의 기능을, 가장 비천하고 불결한 배설의 통로 바로 옆에 배치함으로써 우리를 영원히 조롱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자애로운 설계자의 솜씨란 말인가?"
-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 《신은 위대하지 않다 (God Is Not Great)》 (2007년)
"만약 네가 인체의 내부 구조(근육, 혈관, 장기)를 하나하나 낱낱이 들여다본다면, 그것은 너무나 끔찍하고 혐오스러워(repulsive) 당장이라도 고개를 돌리고 싶을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피와 뼈와 점막으로 뒤엉킨 기괴한 기계와 같다.
하지만 자연(Nature)은 그 추악한 내부 위에 **'아름다운 피부'**라는 덮개를 씌워 놓았다. 우리는 그 겉모습의 균형과 미소에 현혹되어, 우리 몸속에 흐르는 오물과 징그러운 내장의 실체를 망각하고 만다."
원전: 레오나르도 다빈치 수기 (The Notebooks of Leonardo da Vinci) 《해부학 노트(Anatomical Manuscripts)》**와 **《회화론(Trattato della Pittura)》**의 초고가 된 수기들
집필 시기: 1489년 ~ 1515년 사이 (해부학 연구 집중기)
"많은 인간은 그저 음식을 통과시키는 관(管)에 불과하며, 변을 만드는 기계일 뿐이다. 그들의 영혼은 육체라는 아름다운 집에 머물 자격이 없다. 그들의 신체 구조는 정교하고 아름답지만, 그 안의 정신이 비루하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저택에 머무는 미개한 짐승과 같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회화론 (Trattato della Pittura)》 및 그의 수기(Notebooks)
집필 년도: 1490년대 ~ 1510년대 (사후 1651년 출판)
"종교적 비참은 실제적 비참의 표현이자 실제적 비참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그것은 인민의 아편이다." (Die Religion ... sie ist das Opium des Volkes.)
- 카를 마르크스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 (원제: Zur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Einleitung) (1844)
"수가 있어서 수학이 생긴 것이요, 수학이 있어서 수를 지어낸 것이 아닌 것처럼, 신이 있어서 종교가 생겼지, 종교가 있어서 신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그러면 종교로 신의 존재를 증명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종교로써 못 한다면 그밖의 것으로는 말할 것도 없다."
"삶은 선택을 허락치 않는 것이다. 살 수 있으면 살고 살 수 없으면 마는 것이 삶이 아니다. 좋아도 살고 싫어도 사는 것이다. 살 수 있어도 살고 살 수 없어도 살아야 하는 것이 삶이다. 생명이라 하지 않던가. 생(生)은 명(命)이다. 살아라 하는 명령이다. 살리면 살고 말리면 마는 내 마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살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 삶이다.
내가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라는 그 절대의 명령이 나를 낳은 것이다."
- 함석헌 《내 안으로부터의 혁명》 (1990년) - 유고집 성격의 선집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우르과이의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Eduardo Galeano)가 집필한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원제: Patas Arriba: La Escuela del Mundo al Revés, 1998) 책 제목.
"우리를 보라. 모든 것이 거꾸로 되어 있다. 의사는 건강을 해치고, 법률가는 정의를 해치고, 정신과는 마음을 해치고, 정부는 자유를 해치고, 언론은 정보를 해치며, 종교는 영성을 해치고 있다."
- 마이클 일너 (1990년대)
"It is no measure of health to be well adjusted to a profoundly sick society." (깊이 병든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은 건강의 척도가 될 수 없다.)
다큐 <시대정신> (2007) 버전: "깊이 병든 사회에 잘 적응한 육체가 얼마나 건강하겠는가?"
원전: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Think on These Things》 (국역명: 자기로부터의 혁명)
출판 년도: 1964년
상황이 안 좋다는 걸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없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요.
달러의 가치가 많이 하락해서, 은행도 파산하고 있습니다.
상점 주인들은 카운터 밑에 총을 갖고 있고
또라이들은 거리를 휘젓고 다니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도 모릅니다.그리고 밑도 끝도 없습니다.
공기도 안 좋고, 음식도 안 좋습니다.
뉴스에서는 오늘 15건의 살인사건과 63건의 범죄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마치 당연한 일처럼 말이죠.
상황이 안 좋습니다. 점점 더 나빠지죠. 그들은 미쳤어요.
모든 것이 미쳐가는 것 같습니다.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집안에만 앉아 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서히 작아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외치죠 '제발 우릴 집에 있게 내버려둬!'
'토스터기와 TV, 움직일만한 작은 공간만 줘, 그러면 아무 얘기 안 할 테니까.'
'그냥 혼자있게 내버려 둬!'
아니요 나는 그냥 놔두지 않을겁니다.
난 당신들이 미치길 바래요!
시위를 하라는 게 아닙니다. 폭동을 일으키라는 것도 아니예요.
국회의원에게 편지를 쓰라는 것도 아닙니다. 무슨 얘길 써야 할지 저도 모르니까요.
불경기나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거리의 범죄와 러시아인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일단 당신들은 미쳐야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외쳐야 해요.'난 인간이야, 젠장! 목숨은 소중한 거라고!'
자신에게 질문 하십시오.
정부가 공교육을 떠맡아지원하기 시작한 때부터 왜 미국의 교육시스템은 바닥으로 추락하고
왜 모든 문화가 대중매체와 오락으로 완전히 포화됐는지. 정부는 그들이 얻는 것에 댓가를 지불할 뿐입니다.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학교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런 학교의 교육과 그런 학교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을 보십시오. 만일, 그런 학교에서 교육되는 것들이 정부가 원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으면 정부는 교육을 바꿀 것입니다. 정부는 그들이 주문해 왔던것들을 얻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자녀들이 교육받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당신이 너무 많이 생각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엔터테인먼트, 대중매체, TV쇼, 놀이공원, 약물, 알콜, 모든 종류의 엔터테인먼트로 가득 채워 인간을 유흥에 젖어 있게하려는 이유입니다. 당신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게 하여 중요한 인물이 되는 방법을 잃어버리게 하려는 겁니다.
깨어나세요. 그리고 판단하세요.
당신이 모르는 사이 당신의 인생을 조종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영화 《네트워크》 명대사 (1976년)
(* "난 미쳤어! 더 이상 참지 않을 거야!(I'm as mad as hell, and I'm not going to take this anymore!)"로 유명한 이 대사는 영화 속 앵커 **하워드 빌(Howard Beale, 피터 핀치)의 연설이다.)
"정말 큰 일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여러분들과 2억 6천만의 다른 미국인이"
"지금 제 말을 듣고 있으니까요!"
"3% 이하의 국민만 책을 읽고"
"15% 이하의 국민만이 신문을 읽고"
"당신이 사실로 믿는 것들을"
"단지 TV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니까요!"
"알 수 가 없었습니다."
"TV는 복음이고, 궁극적 혁명입니다."
"TV는 대통령, 교황, 수상을 만들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습니다."
"TV는 이 불경한 세상의 가장 놀라운 힘입니다. 슬픕니다."
"악한 사람들이 TV를 소유하면"
"만약, 이 세계의 거대기업이"
"이 불경한 세상의 가장 강력하고 빌어먹을 선전의 힘을 지배하면"
"어떤 거짓말이 사실로 둔갑할 지 누가 압니까!"
"자 내 말을 들어보세요.. 들어보세요"
"TV는 진실이 아닙니다."
"TV는 젠장할 놀이 동산입니다."
"TV는 서커스고, 축제이며, 유랑곡예단이며, 만담가이며, 춤꾼이고, 가수고, 마술사고"
"얼간이며, 사자조련사고, 축구선수입니다."
"시간 죽이는 일에 열중해 있어요!"
"근데 당신들은 저기 앉아서 밤이나, 낮이나, 늙으나 젊으나, 백인이나 흑인이나..."
"우리 모두가 그래요!"
"당신들은 번쩍거리는 허상을 믿기 시작해요"
"TV가 실제고 당신들의 인생은 가상이라고 믿기 시작해요"
"TV가 시키는 건 뭐든지 해요"
"TV에서 입는 것처럼 입고, TV에서 먹는것처럼 먹고, TV처럼 애들도 키우고"
"생각조차 TV처럼 합니다"
"이건 집단 정신착란이에요. 이 미치광이들!"
"제발 좀, 당신들은 실존입니다."
"우리는 허상이에요!"
- 조지 칼린 HBO 스페셜 <Life is Worth Losing> (공연 코너명: "The American Dream") (2005년)
(* "그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They don't want you to think too much)"라는 대목으로 유명하며, 지배 계층이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통제하는지 비판하는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다.)
시뮬라크르(Simulacre)
질 들뢰즈: 철학적 정립
원전: 『의미의 논리 (Logique du sens)』 부록 중 「플라톤과 시뮬라크르」
출판 연도: 1969년
개념: 플라톤은 시뮬라크르를 '진짜(이데아)를 닮지 않은 나쁜 복사본'이라 비판했지만, 들뢰즈는 시뮬라크르가 원본의 권위를 부정하고 그 자체로 차이를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긍정했다.
시뮬라시옹(Simulation)
장 보드리야르가 정립한 개념으로, 실재(Reality)와 그것을 흉내 낸 이미지(Simulacre)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개념의 핵심: 원본(실재)이 없는 복사본이 오히려 실재보다 더 실재처럼 느껴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를 **'파생실재(Hyper-reality)'**라고 부른다.
원전: 『시뮬라시옹 (Simulacres et Simulation)』
프랑스어 원전 출판: 1981년
"텔레비전이 바로 진실이다"
-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 (1981년)
(* 이 말은 보드리야르가 현대 사회에서 '실제 사건'보다 '매체에 보도된 이미지'가 더 우위에 있음을 강조하며 던진 화두이다.
실제 사건보다 텔레비전 화면 속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더 강력한 현실로 다가온다는 뜻이다. 즉, "방영되지 않은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냉소적 통찰이다.)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La Guerre du Golfe n'a pas eu lieu)"
- 장 보드리야르 동명의 에세이집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1991)
(* 보드리야르는 걸프전이 실제 전장에서의 물리적 충돌이 아니라, 전 세계 시청자들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소비한 '전자 오락 같은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이 표현을 사용했다.)
이마골로기 (Imagology)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 사회학적 관점이라면, 밀란 쿤데라의 **'이마골로기'**는 이를 심리학적·문학적으로 풀어낸 개념이다.
출처: 소설 『불멸 (Immortality)』
발표 년도: 1990년 (프랑스어판)
개념: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가고 **이미지(Image)**가 지배하는 시대가 왔음을 뜻한다. 실체(실상)보다 그 실체가 어떻게 보여지는가(이미지)가 더 중요해진 현상이다. 쿤데라는 이마골로기스트들이 현대의 진정한 통치자라고 말했다.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예술작품은 아우라를 상실한다. ... 복제 기술은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으로부터 떼어낸다. 복제 기술은 복제물을 대량으로 만듦으로써 단 한 번뿐인 현존성 대신에 대량적인 현존성을 내세운다."
-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1935)
(* 벤야민은 기술복제가 예술의 신비주의(아우라)를 파괴하여 예술을 대중화하고 정치적 해방의 도구로 쓸 수 있다고 보았다. 벤야민에게 아우라의 붕괴는 예술이 '제의적 가치'에서 벗어나 '전시적 가치'로 이동하는 긍정적 진화였다.)
"문화 산업은 대중을 기만하는 장치다. ... 아우라의 소멸은 해방이 아니라, 예술이 상품의 물신성 아래로 완전히 편입됨을 의미한다. 복제된 예술은 규격화된 상품이 되어 소비자들의 비판적 사고를 거세한다."
- 테오도르 아도르노 (Theodor W. Adorno) 『계몽의 변증법 (Dialektik der Aufklärung)』 (막스 호르크하이머 공저) / 1944년 (회람용), 1947년 (정식 출간)
(* 아도르노는 복제 기술이 대중을 기만하는 '문화 산업'의 도구로 전락하여, 사유 능력을 마비시킨다고 존 러스킨적인 엘리트주의적 관점에서 비판했다. 아도르노에게 아우라 없는 예술은 알맹이 없는 시뮬라크르에 불과하며, 대중을 체제에 순응하게 만드는 세뇌 장치였다.)
"군중 속에서 지성은 사라지고 본능만이 남는다. 개별적으로는 현명한 개인들이 모여 군중이 되는 순간, 그들은 단지 어리석은 집단이 될 뿐이다."
"군중은 진실을 갈망한 적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환상을 제공하는 자에게는 기꺼이 노예가 되지만, 그 환상을 깨뜨리는 진실을 말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희생양으로 삼으려 든다."
"군중의 위력을 형성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군중은 논리로 설득되지 않으며, 오직 암시와 자극적인 선동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 구스타프 르 봉(Gustave Le Bon) 《군중심리(Psychologie des Foules)》 (1895)
"선전에서 100%의 거짓말보다는 90%의 거짓말과 10%의 진실을 섞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가 말했다고 잘못 알려진 문장. 흔히 알려진 '78:22' 법칙이나 **'90%의 거짓에 10%의 진실'**과 같은 구절은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있지만, 실제 역사적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위작(僞作)**에 가깝다. 괴벨스는 오히려 **"선전의 비결은 선전하려는 대상이 선전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거짓말을 하더라도 대중이 확인할 수 없는 거대한 거짓말(Big Lie)을 반복하는 전략을 썼다.
개개인의 인간 존재가 공동체를 강요하는 집단이나 조직에 전적으로 흡수되어야만 하는 강제적인 경향이 어떤 제도, 정책적인 환경조건 하에서구조적으로 사회에 번성하고 긴타로 엿처럼 사회에 편재되어있으면, 그 사회를 중간집단전체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세태의 조짐이 보이지만, 일본의 기업이나 직장 조직에는 가족처럼 종업원의 생활 전면을 에워싸고 모든 면에서 예속되고 복종하기를 강요하는 경향이 있었다. 기업은 종업월을 어린 학생처럼 취급하거나 생활지도를 하듯이 사생활에 깊게 관여했다.
물론 일본이라는 국가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복수정당제와 민주적 선거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다. 하지만 국가전체주의의 구소련 노동자와 중간집단전체주의의 일본 회사원을 비교해볼 때, 과연 어느 쪽의 인간 존재가 전반적으로 더 '전체'에 예속되어 있을까? 극히 세세한 부분에서부터 충성 경쟁을 부추기고 정체성을 수탈하는 공동체주의자 일본인이 구소련의 공산 독재자보다 훨씬 근원적으로 시민적 자유를 박탈하고 육체와 영혼을 강제로 전체에 심어 넣는데 성공한 것인지도 모른다.
- 나이토 아사오 『이지메의 구조 (いじめの構造)』 (2001)
(* 이지메를 단순한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주변의 공기를 읽어야 하는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의 사회구조, 학교라는 폐쇄적인 '중간집단'이 가진 구조적 결함으로 분석한 명저)
교사의 권력과 권위
우선 선천적으로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들만 교사가 될 리는 없으니 그 가능성은 제외했다.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크게 성공하겠다는 야망을 품은 사람은 교사를 하고 싶어 할 가능성이 낮다. 넉넉하진 않지만 고정적인 수입에 비교적 여유 있는 휴가를 즐기며 안정된 삶을 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교직을 찾는다. 그렇다면 안정성을 추구하는 욕구가 큰 사람들이 어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걸까? 혹은 교사들이 처한 직업 환경의 특수성이 이상한 사람이 되게끔 하는 걸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교실에서 교사는 강력하고 집중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안 로버트슨Ian Robertson은 그의 저서 <승자의 뇌(Winner Effect))>에서 권력 사용의 기회가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밝혔다. 권력을 갖게 된 인간의 몸에서는 테스토스테론과 도파민 분비가 촉진된다. 이는 사람을 긍정적, 도전적이게 할 뿐 아니라 인지 능력과 자신감을 높여준다. 즉 권력은 사람을 더 똑똑하고 공격적이게 만든다. 권력을 행사하여 성취감과 승리감을 느끼는 사람의 뇌에서 벌어지는 신경 화학작용은 환경에 대한 통제감을 갖게 해 삶에 대한 행복감, 만족감을 높이고 스트레스로부터 사람을 보호한다. 권력의 긍정적 영향이다.
그러나 권력이 뇌에 늘 긍정적인 영향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의 뇌 속에는 그만큼 많은 도파민이 발생하는데, 다량의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은 사람의 공감 능력을 약화시킨다. 목표 달성에 매진하고 실패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특성이 지나치게 강화되면 사람은 최종 목표에만 집중하게 되어 터널처럼 좁은 시야를 갖게 된다.
권력 사용의 기회에 계속해서 노출된 사람은 자기애가 커지면서 오만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평소 우리가 '사회에서 힘 좀 쓴다는 사람들은 다들 왜 저러지?' 하고 느끼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안 로버트슨은 승리와 권력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사람의 뇌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내가 은밀히 품고 있던 생각이 어쩌면 이 이론과 연결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게 '권력' 하면 떠올리는 대상은 교사라기보다는 대통령, 정치가, CEO, 고위직 군인 등이다.
- 김현희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2017)
"동질성이 강화될수록 집단의 배타성은 강화된다"
- 진중권 『폭력과 상스러움』 (2002)
(* 유사 개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나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이론에서 핵심적으로 다뤄진다. 특히 바우만은 『공동체(Community)』(2001년)에서 동질적인 '우리'를 강조할수록 '타자'에 대한 배척이 잔인해지는 **'게토화'**를 경고했다. 일본의 천황제 역시 다른 나라 국가 국민들을 벌레처럼 보고 열등하게 봄으로써 자신들의 전쟁을 정당화했다.)
“비폭력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화해의 희생양을 하나 뺀 모든 사람의 일치다.” (전체 마이너스 1)
- 르네 지라르(René Girard) 『희생양(Le Bouc émissaire)』 (1981)
(*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Scapegoat)' 메커니즘은 모방 욕망으로 인한 공동체 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무고한 희생자를 설정하여 폭력을 전가하고 사회적 질서를 회복하는 보편적 기제)
"집단윤리의 합은 개인윤리의 합보다 낮다"
- 라인홀드 니부어 (Reinhold Niebuhr)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1932년)
"정의는 뱀과 같아서 맨발로 다니는 사람만 문다"
- 오스카 로메로 (Oscar Arnulfo Romero) 산살바도르 대주교
발언 연도: 1980년 (그가 암살당하기 직전의 강연 및 설교들 중)
맥락: "엘살바도르의 법은 뱀과 같습니다. 오직 맨발인 사람(가난한 자)만 물고, 장화를 신은 사람(권력자/군부)은 결코 물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실: 로메로 대주교는 이처럼 군부 독재의 폭력과 불평등을 비판하다가 1980년 3월 24일, 미사를 집전하던 중 암살당했다.
록펠러 가문과 기업 간 결합(Interlock)에 관한 연구
이 연구의 전체 결과물은 록펠러 가문 및 그 관계사들과 연결된 1,000개 이상의 기업 결합 명단입니다. 그 명단이 너무 방대하여, 자칫 독자를 정보의 홍수 속에 빠뜨릴(drowning) 우려 때문에 가공되지 않은 형태 그대로 출판하는 것은 자제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우리는 모든 세부 사항을 나열하기보다, 이 도표화된 자료의 핵심을 선택하고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물론, 하나의 기업 결합 혹은 그 명단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정 기업과 결합되어 있다고 해서 록펠러가 그 회사를 소유하거나 통제한다는 뜻은 분명 아닙니다. 최소한으로 보더라도, 이는 아마도 록펠러 측 대리인들이 자신들과 연결된 해당 기업들과 실질적인 소통을 하고 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진짜 어려운 문제—도서관의 책들만 뒤져서는 결코 답을 얻을 수 없는 문제—는 록펠러 금융 네트워크가 RF&A(Rockefeller Family and Associates) 및 그보다 더 깊숙이 숨겨진 동맹 세력들을 통해, 자신들과 연결된 다른 기업들에 행사하는 영향력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 출처: 록펠러 가문과 기업 간 결합 연구 및 재산 규모 폭로
원전: 《Probing the Rockefeller Fortune》 (미국 의회 청문회 제출 보고서)
저자: 찰스 슈왈츠 (Charles L. Schwartz, UC 버클리 교수)
연도: 1974년
비고: 넬슨 록펠러의 부통령 임명 청문회 당시 가문의 지배력을 조사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 다음 의회 자료들과 더불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보고서다.
1. 1912-3년 푸조위원회는 로스차일드 가신 JP모건 회사에 근무하는 간부들이 112개 기업에서 341개의 이사직을 맡고 있고, 회사 전체 자산은 미국 22개주를 합친 규모임을 밝혔다; 푸조위원회 리포트는 1934-6년 나이위원회, 1974년 넬슨 록펠러 청문회 리포트와 더불어 국제투기자본 재산을 폭로한 주요 자료
2. 1918-19년 미국 상원에서 열린 오버맨 위원회(The Overman Committee)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로스차일드 계열 회사들이 제1차 세계대전 시기 연합국과 미국의 적국인 독일에 자금을 동시에 지원했다
3. 1919년 미국 상원에서 내란선동(sedition) 혐의를 받는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을 조사하기 위해 결성된 러스크 위원회(Lusk Committee)의 보고서에 따르면, 윌슨 정부를 포함한 로스차일드-모건-록펠러 카르텔이 소비에트를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국제투기자본(군수산업체-은행가 네트워크)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가장 결정적 증거는 나이 위원회(Nye Committee)의 조사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4. 1974년 11월 버클리대의 찰스 슈왈츠가 미 상원의 요청으로 제출한 록펠러 일족에 대한 재산 보고서에 따르면, 록펠러 일족이 6400억 달러, 그러니까 대략 700조의 재산을 차지해서 미국 GDP의 약 50%를 차지한다는 이야기는, 이후 음모론자 개리 앨런의 <Rockefeller X-file (1976>에 인용되어 널리 퍼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권력은 이제 인간의 신체를 결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올바른 규격으로 성형(Shaping)한다."
"가장 완벽한 감옥은 죄수가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는 감옥이다."
(Le panoptique est une machine à dissocier le couple voir-être vu.)
-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 (원제: Surveiller et punir: Naissance de la prison) (1975년)
(* 의미: 권력은 우리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길들여서, 결국 '지배자의 가치관'을 '나의 양심'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권력의 내재화ㅡ이것이 푸코가 말한 **파놉티콘(Panopticon)**의 핵심이다. 푸코는 제러미 벤담이 설계한 원형 감옥인 **'파놉티콘(Panopticon)'**을 권력의 상징으로 제시한다. 이 기계적 장치는 중앙 탑에서 죄수를 볼 수 있지만, 죄수는 간수를 볼 수 없게 설계되었다. 죄수는 자신이 '언제 감시당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감시당하고 있다고 가정하게 된다. 결국 물리적 강압 없이도 죄수 스스로 권력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자기 자신을 감시하게 되는 상태, 즉 **'자발적 복종'**의 완성을 의미한다.)
국가는 폭력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이는 사회의 유일한 기구
(원문: "국가는 특정 영토 내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 행사의 독점을 (성공적으로) 주장하는 인간 공동체다.")
- 막스 베버 강연록 『직업으로서의 정치(Politik als Beruf)』 (1919년)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정수(精髓)가 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 바버라 오클리 (Barbara Oakley) 《나쁜 유전자》 (원제: Evil Genes: Why Rome Fell, Hitler Rose, Enron Failed, and My Sister Stole My Mother's Boyfriend, 2007)
권력에의 의지 (Wille zur Macht)
"생명이 있는 곳마다 나는 권력에의 의지를 발견했다. 심지어 복종하는 자의 의지에서도 나는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개념의 구체화: 1883년 ~ 1885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집필 시기)
유고집 출판: 1901년 (니체 사후 여동생 엘리자베스 니체에 의해 편집된 동명의 저서 Der Wille zur Macht)
"기업 내 상위 경영층에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이들은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존재하며, 이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된 원인 중 하나다."
- 클라이브 보디(Clive Boddy)의 논문 "The Corporate Psychopaths Theory of the Global Financial Crisis"
발표 연도: 2011년 (Journal of Business Ethics 게재)
(* 추가 관련 근거: 2012년 출간된 케빈 더튼의 저서 **『사이코패스 테스트(The Wisdom of Psychopaths)』**에서 "영국 내 사이코패스 지수가 높은 직업군 1위"로 CEO를 꼽으면서 이 내용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로부터 명백한 사실은, 모든 사람을 위압하는 공통의 권력이 없는 동안, 사람들은 **'투쟁'**이라 불리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투쟁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A war of every man against every man)**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험악하고, 잔인하고, 짧다."
(In such condition... the life of man, solitary, poor, nasty, brutish, and short.)
-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Leviathan, 1651) 제1부 인간에 대하여 - 제13장 '인간의 복지와 비참함에 관련한 인류의 자연 상태에 대하여'
(*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장 자크 루소, 존 로크의 사회계약론과 비교해 성찰해보는 것은 유익한 작업이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아니, 전 세계의 아돌프들에게 고하는 말이다. 너희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으며, 무엇을 위해 서로 죽여야만 했는가! 그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아니, 영원히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 데즈카 오사무 『아돌프에게 고함 (アドルフに告ぐ)』 (1983년 ~ 1985년) (주간 문예춘추 연재)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사람보다 더 심하게 노예가 된 사람은 없다.
"Niemand ist mehr Sklave, als der sich für frei hält, ohne es zu sein."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 1809) 제2부 5장, 등장인물 '오틸리에의 일기(Aus Ottiliens Tagebuche)' 섹션에 수록된 아포리즘(격언) 중 하나
(* 괴테는 이 문장을 통해 **'무지에서 비롯된 허위 의식'**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자신이 어떤 시스템이나 본능, 혹은 사회적 통념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나는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상태가 가장 구속된 상태라는 통찰을 담고 있다.)
"대중 속에 섞여 있다는 안도감은, 자기 자신이기를 포기한 대가로 얻은 가짜 평화다."
- 에리히 프롬 (Erich Fromm), 『자유로부터의 도피』 (1941년)
"오늘날 시민권의 새로운 전선은 차별(Discrimination)이 아니라, 카버링(Covering)이다."
(The new frontier of civil rights is not discrimination, but covering.)
"우리는 모두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카버링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가장 진실한 부분을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We are all under pressure to be something other than what we are. Covering is a problem for us all because it asks us to surrender our most authentic selves.)
- 켄지 요시노(Kenji Yoshino) 『카버링(Covering: The Hidden Assault on Our Civil Rights)』 (2006년)
"I think that a good philosophy must be based upon kindly feeling. Now, Marx’s philosophy is not based upon kindly feeling. It is based upon envy and hatred... It is more a desire for the unhappiness of the bourgeois than for the happiness of the proletarian."
"나는 좋은 철학이란 반드시 **우호적인 감정(kindly feeling)**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철학은 우호적인 감정에 기초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시기심과 증오에 기반하고 있지요. 마르크스의 철학은 프롤레타리아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보다는 부르주아의 불행을 바라는 욕망에 가깝습니다."
- 버트런트 러셀 NBC와의 인터뷰("A Conversation with Bertrand Russell") (1952년)
"Laski's socialism seemed to be fueled more by a hatred of the rich than by a love for the poor."
"라스키의 사회주의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사랑보다는 부유한 자들에 대한 증오에 의해 더 동력을 얻는 것처럼 보였다."
- 데이비드 록펠러 자서전 《Memoirs》 (2002)
(* 데이비드 록펠러는 런던정경대 재학 시절, 버나드 레빈이나 피에르 트뤼도 등도 수학했던 유명한 좌파 교수 Harold Laski의 강연을 들었는데, 그는 laski가 빈자들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부자들에 대한 증오감으로 좌파가 된 것처럼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주인의 도덕 (긍정과 창조):
"고귀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가치를 결정하는 자라고 느낀다. 그는 타인에게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 ... 그는 스스로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자이며, 가치를 창조하는 자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제260절 (1886년)
(* 주인의 도덕: 자기 긍정에서 출발함. 스스로가 강하고 고귀하기에 그에 걸맞은 행위를 '좋음(Gut)'이라 칭하고, 그렇지 못한 비천함을 '나쁨(Schlecht)'으로 규정함.)
노예의 도덕 (원한과 부정):
"노예의 도덕은 본질적으로 부정의 도덕이다. 그것은 '외부', '타자', '자기 자신이 아닌 것'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아니오'야말로 도덕의 창조적 행위다."
-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제1부 10절 (1887년)
(* 노예의 도덕: 타자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함. 강자에 대한 두려움과 시기심을 '원한'으로 승화시켜 강자를 '악(Böse)'이라 낙인찍고, 그에 대비되는 자신의 무력함을 '선(Gut)'으로 둔갑시킴.)
📊 주인의 도덕 vs 노예의 도덕 비교표
| 구분 | 주인의 도덕 (강자) | 노예의 도덕 (약자) |
| 핵심 가치 | 지배, 자기 긍정, 자부심, 창조 | 순종, 겸손, 연민, 인내 |
| 태도 | 스스로 가치를 결정하고 명령함 | 타인의 시선과 규율에 종속됨 |
| 목적 | 자기 실현과 권력에의 의지 | 집단 속에서의 안전과 생존 |
| 행동 원리 | "나는 선하다" (자기 긍정에서 출발) | "너는 악하다" (상대에 대한 원한에서 출발) |
남자의 행복은 '나는 원한다'는 데 있지만, 여자의 행복은 '그가 (나를) 원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남성의 본성은 악(惡)할 뿐이지만, 여성의 본성은 저열하다.
- 프리드리히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 (1883년) (제1부,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 장)
"남이 모두 착한 일을 하면 나 혼자만은 악한 일을 하겠다. 그 반대도 역시 같다. 영웅이란 자기만의 길을 가는 자를 말한다."
- 시바 료타로 소설 『료마가 간다 (1962-1966)』에서 료마의 대사
근취저신 원취저물(近取諸身 遠取諸物)
"하늘의 형상을 우러러보고 땅의 법칙을 살피며... 가까이는 자기 몸에서 취하고(近取諸身), 멀리는 사물에서 취하여(遠取諸物), 이에 비로소 팔괘를 만들어 만물의 실상을 소통시켰다."
-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하(下) 제2장
(* 《주역》 자체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이 문구가 포함된 '계사전'은 **전국시대(기원전 4세기~3세기)**에 저술되어 **기원전 2세기(한나라 초)**에 현재의 형태로 정립된 것으로 추정)
나는 물론 불교도가 아니기 때문에 감히 불교에 대해 무엇을 아는 것처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부처님은 안다. 알아서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도 안다. 그것은, 부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나는 예수를 통해서 안다. 영원하신 이는 마치
소금과 같은 것이다. 그 지극히 작은 한 알을 먹으면 무한한 전체를 알 수 있다. 또 그것은 마치 빛과 같은 것이다. 지극히 가는
한 가닥을 받아들이면 무한한 전체를 밝힐 수 있다. 또 그것은 마치 바람과 같은 것이다. 그 지극히 연약한 한 숨결을 쐬어
봤으면 영원한 전체의 운동을 알 수 있다. 소금이 어떤 것이냐를 알기 위해 칠대양의 물을 다 마실 필요는 없다. 칠대양의 물을 다
마신 후에야 소금이 짠 것임을 알 수 있다면 소금이 귀할 것이 조금도 없고 그것을 해 보는 것같이 쓸데 없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빛의 경우도, 바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지각히 작은 것을 체험함으로 인하여 그 영원 무한한 전체를 능히 알 수 있게 되는 데
그 귀한 것이 있다.
- 함석헌 《내 안으로부터의 혁명》 (1990년) - 유고집 성격의 선집
"12가 30을 얻으면 세(世)가 되고, 12가 세(世)를 얻으면 운(運)이 되며, 30이 운(運)을 얻으면 회(會)가 되고, 12가 회(會)를 얻으면 원(元)이 된다."
(十二得三十爲世, 十二得世爲運, 三十得運爲會, 十二得會爲元)
- 소강절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11세기 중반)
(* 소강절은 시간을 12와 30이라는 숫자의 배수로 결합하여 우주의 한 주기인 **'1원(一元)'**을 도출했다.
1세(世) = 30년 (인간의 한 세대)
1운(運) = 12세 = 360년
1회(會) = 30운 = 10,800년
1원(元) = 12회 = 129,600년 (우주의 1년)
소강절의 이 계산법은 동양의 '상수철학(象數哲學)'에서 우주의 시간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려 한 최초의 시도로 평가받으며, 후대 성리학뿐만 아니라 근대 증산도 등의 우주 1년 설(129,600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주변화의 원리’에는 ‘근취저신 원취저물’의 명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짙게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근취저신과 원취저물을 연결하는 고리가 음양오행인 셈이다. 이는 곧 ‘하늘의 이치는 땅에 나타난다. 고로 땅을 보면 하늘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역추적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한동석은 동생인 한 박사가 주역 공부의 비결을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하였다.
“천기(天氣) 보는 방법을 배워라. 하늘을 쳐다보면 천기를 보는 거냐? 아니야. 땅을 봐라. 땅에 이렇게 보면 풀이 있고 돌멩이가 있고 이렇게 흔들리지? 지렁이·털벌레·딱정벌레 요거로 천기를 보는 거야. 딱정벌레가 많이 있는 거는 이 지상에 금기가 많이 왔다는 거야.
이제 발이 많은 돈지네가 많이 끓을 때가 있다면 화기가 왔다는 거야. 땅에 지렁이가 많으면 토기가 많다는 것이고. 이렇게 천기를 보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이른 봄인데 금기가 왜 이렇게 많으냐”고 대답하였다.
딱정벌레는 등껍질이 단단하니 금기로 본다. 지렁이는 땅속에 사니 토기로 본다. 이처럼 지상에 어떤 기운을 많이 받은 생물이 나타나면 그 해에 거기에 해당하는 하늘의 기운이 우세한 것으로 추론하였던 것이다. 천기를 보는 것은 일상사 사물에 대해 세심한 관찰을 요한다.
도사의 자질은 세심한 관찰력이 필수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은 관찰력 외에 한동석이 전념한 수도(修道)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이다. 방법은 독경(讀經)이었다. 그는 ‘황제내경’(黃帝內經) ‘운기편’(運氣篇)을 일만독(一萬讀) 가까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치 불교 수행자들이 ‘천수경’(千手經)을 수만독(數萬讀)하듯 그도 운기편을 1만번이나 외웠다. 이는 놀라운 집중력이 아닐 수 없다.
- 조용헌 칼럼, 이야기명리학
우주는 무엇으로써 구성되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움직이며 이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문제는 철학적. 과학적 영역을 떠나 유사이래 지금껏 풀리지 않는 일대의 숙제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문제에 접근하려면 어떻게 연구하여야 할까? 우리는 우주가 운동하는 법칙과 그 본체가 보여 주는 상(象)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서양철학의 우주론은 논설의 정부(正否)는 별도로 하고 우선 그 방법론을 살펴보면 우주의 변화가 인과적이냐, 아니면 목적적이냐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체 오늘날까지 답보상태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써 우주의 변화를 논하려는, 거의 무모함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소우주인 인간과 연관하여 설명하려는 이론의 바탕이 없는 것이다.
반면 동양철학은 음양론과 상수(象數)의 법칙으로 우주의 삼라만상의 무궁한 변화를 설명한다. 즉 陰과 陽이라는 이질적인 두 기운이 지닌 바의 작용으로 인하여 모순과 대립이 나타남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변화작용을 일어나게하는 근본적인 역원이 무엇일까. 동양철학에서는 그것을 가리켜 변화작용의 본체라고 하는 것이다.
그 법칙과 진리를 밝혀 日月의 규칙적인 운행과 인간이나 만물의 화생(化生)과 죽음은 무엇이 그렇게 하게 만드는 것인지, 인간 정신의 본질은 무엇이며 칠정육욕은 왜 생기는지 등의 문제는 진실로 우주변화의 결과이다. 그런즉 그 결과를 인간의 순수이성에 의한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철학의 목적인 것이다.
그러면 그 변화의 본체는 과연 어떠한 것일까?
우주는 본래 지정지무(至靜至無)한 상태에서부터 생겨났다. 다시 말하면 삼라만상을 장식하는 모든 유형물체는 그 시초부터 형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초의 우주는 적막무짐(寂寞無朕)하여서 아무런 물체도 없었던 것이다. 다만 연기(煙氣) 같기도 하여서 무엇이 있는 듯하기도 하고 없는 듯하기도 한 진공(眞空) 아닌 허공(虛空)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태를 상(象)이라 한다.
象이란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즉 形의 반대 개념으로, 有의 반대인 無와 상통하는 개념인 것이다. 그러나 형상계에 있어서 '無'와 '有'의 개념은 절대 '無'와 절대 '有'라는 개념이 아니다. 우주 안에는 절대적인 '有'라든가 '無'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유형은 언젠가는 무형으로 소멸될 운명을 지니고, 무형의 상도 언젠가는 형체를 갖추게 되는 것이므로 형상 속에 있어서의 '有' '無'의 개념은 절대의'有'나 절대의'無'로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주에 미만(彌滿)한 물상(物象)이 이와 같이 절대가 아닌 유무의 形과 象으로 되어 있는 것은 바로 우주를 창조하던 적막무짐(寂寞無朕)한 상태가 그와 같은 유무(有無)의 화합체(和合體)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象(우주창조 初의 象)이 바로 우주의 본체인 것이다. 그 象을 宋대의 성리학은 寂寞無朕이라고 하였고, 一夫 金恒선생은 '묘묘현현 현묘중(妙妙玄玄 玄妙中)'이라 하였다. 적막무짐이란 아무런 동(動)하는 것도 없기 때문에 그 내용을 알 수 없다는 의미이다. '妙妙玄玄 玄妙中'이란 우주의 본체가 통일(統一)하였다가는 분열(分裂)하고 분열하였다가는 다시 통일하는 그 '中'인즉 이것이 바로 우주운동의 본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中'이 바로 염계(濂溪)가 말하는 '무극(無極)' 즉 우주창조의 '中'이며 天地의 본체인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一夫는 삼극지도(三極之道)를 세워서 우주動靜의 本을 논리화하여 놓았던 것이다. 이와같이 無極은 中이며 또한 空의 모체로써 중용지덕(中庸之德)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中의 무극이 태극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동질적인 분파작용을 일으키면서 음도(陰道)의 세력권을 이루게 되는 것이 바로 토(土)작용의 결과이다. 무극은 形이 아니고 象이라 했다. 그 상이란 청탁(淸濁)이 화합한 비청비탁(非淸非濁)의 중성적 존재였다. 이와 같이하여 象에서 有가 창조되는 것이므로 易은 이것을 감위수(坎爲水, 坎卦)라고 한다. '감(坎)'字의 개념은 '土'의 작용이 결핍(缺乏)되어서 '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水는 有의 기본이며 형상계(形象界)의 母體인 것이다.
이와 같이 무극이 태극을 이루어 놓으면 그 속에 내포되었던 陽은 표면을 포위하였던 陰(形)을 확장부연(擴張敷衍)하면서 세계는 陽의 주도권하(선천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때에 온갖 모순과 대립이 나타나서 이 세계는 선악과 희비의 결전장이 되는 것이다.
- 한동석 《우주변화의 원리(宇宙變化의 原理)》 (1966년)
이집트에 Phoenix(不死鳥)라고 하는 靈鳥가 있었는데, 이 새는 500년의 수명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새가 자기 수명을 다하는 500년이 되면 둥지에 육계(肉桂)와 감송향(甘松香) 그리고 몰약(沒藥)을 모아 놓고 분사퇴(焚死堆)를 만들고 그 속에 자신을 분사(焚死)시킨다. 사그라진 그 재(灰) 속에서 다시 살아나 또 500년을 살고, 또 그렇게 하여 영생불사한다는 것이다.
이 전설 속에서 우리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육계(肉桂)나 감송향(甘松香)이나 몰약(沒藥)은 모두 한약재이다. 육계는 木氣의 과항(過杭)을 제어하는 약이고, 감송향은 土化작용을 하는 약이다. 그리고 몰약은 土化된 것을 水中으로 귀장(歸藏, 염장 혹은 수렴)시키는 명약인 것이다. 피닉스가 왜 이와같은 분사퇴를 만들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갈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육계나 감송향은 東에서 西南으로 水中에 귀장(歸藏)하는 것은 금화교역(金化交易)이 완성됨으로써 수중에 침몰(沈沒)하게 되는 象을 말하는 것이다.
- 한동석 《우주변화의 원리(宇宙變化의 原理)》 (1966년)
크로노스는 때(時)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이다. 크로노스는 天地의 아들인데 그것은 자연을 생성하는 '時' 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은 그것을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크로노스는 자기가 자식을 낳으면 잡아 먹어버리므로 세계는 암흑이었다. 그러다가 오랜 후에 그는 아들을 낳아서 길러내는 데 성공하였다. 우주에서는 이 때부터 정신세계가 창조되었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제우스(Zeus)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것을 정신의 원리이며 통수자(統帥者)로서 상징하였다.
그 다음에 제우스는 아테나(Athena)라 부르는 딸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힘(力)과 지혜를 겸비한 여신으로 그리스 사람들의 수호신인 것이다. 아테나는 지혜의 신이므로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낳다고도 한다. 다음엔 제우스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은 아폴론(Apollon)이다. 형벌의 신, 도움의 신, 예언의 신, 음악의 신, 가축보호의 신, 도시와 제도(제도)의 신, 태양의 신으로 숭배되고 있다. 그 다음에 또 딸을 낳았는데 무사이(Musai)이다. 노래, 예술, 시가, 학문의 신으로 불린다. (제우스는 이와같이 3남매를 낳았지만 부인은 각각 다르고, 그 후에는 자식이 아홉(九)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그리스의 제1 신화인 '크로노스의 신화' 이다.
이 신화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크로노스라는 '時의 神' 이 천지의 아들로서 생겼는데 이것은 자연을 생성한 신이기 때문에 그것을 생명의 본원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 때는 암흑의 천지, 즉 만물을 생성하지 못한 정신체가 없는 것이다. 時란 말은 우리가 말하는 바로 土를 의미한다.
우주가 생성될 때 제일 먼저 태극의 象으로부터 이루어 지는데 그 상의 본체가 陰陽, 바로 天地인 것이고, 太極 이전의 無極인 상태가 암흑이다. 다시 말하면 정신이 생기는 것은 金水로 통일되면서 생기는 것인 즉 土化作用 시대는 정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土상태의 본원을 태소(太素)라고도 한다. 그런즉 '時'의 神인 크로노스도 무극의 화생인 土이므로 만물을 生하는 원시(原時)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리켜서 크로노스가 자식을 잡아먹는다고 한 것이다.
그러다가 오랜 후에 크로노스는 제우스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것을 정신의 원리와 통사자로 상징한다는 말은 바로 진(震)으로 모신다는 말인 것이다.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정신의 작용은 진목(震木)에 이르러서 처음 발원되는 것인데 時의 신인 크로노스가 낳은 제우스가 정신계의 대표자가 된다는 말은 그것이 바로 진목을 대표하는 神이라는 말과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易이 震괘로써 장남이라고 하는 것은 震으로써 만물의 생장과 정신활동의 기본을 삼는다는 말이다.
그 다음에는 제우스가 아테나라는 딸을 낳았는데 이것은 지력(智力)을 겸비한 것이므로 수호의 신으로 모신다는 것이다. 그런즉 제우스라는 목신(木神)이 낳은 딸이 지력을 겸비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木은 이화(離火)를 生한다. 오행의 상생 원리는 어떤 한 개의 형상을 생할 때에 반드시 본중말 원리로써 작용한다. 그러므로 木이 통가다리가 분열을 시작할 때에는 一二三의 수가 진(盡)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木이 火를 생할 때에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즉 이것이 木이 火의 기본을 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火의 기본은 陰이다. 火는 陰이 먼저 火를 부착할 수 있는 준비를 한 다음에라야 생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離괘는 巽괘를 바탕으로 하고 생기는 것이요, 오행은 巳火가 먼저 준비를 갖춘 다음에라야 火가 발하는 법이다. 그런즉 이와 같은 火의 바탕을 이루는 음화(陰火)를 상징한 것이 바로 아테나의 여신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여신으로 상징했으며 또는 지력(智力)을 구유(俱有)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수호의 신이라고 한 것은 이 때가 바로 陰火로서 午火로 수호하는 때이므로 그와 같이 말한 것이다. 또한 제우스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한 것은 火의 최고 단계는 반드시 木의 머리에서 갈라져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와 같이 말한 것이다. 그런즉 아테나가 상징하는 것은 분명히 화화작용(火化作用)의 기본을 말하는 것이다.
제우스는 그 다음으로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이름은 아폴론이다. 그런데 그리스 사람들은 이것을 형벌의 신․도움의 신․예언의 신․음악의 신․가축보호의 신․태양의 신으로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즉 아폴론이 상징하는 것은 午火의 작용, 즉 離괘 자체의 작용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형벌은 午火作用의 극점에서부터 金水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세속에서는 화형(火刑)․금형(金刑)․수형(水刑) 등의 제도를 쓰는 것이다. 그런즉 아폴론을 형벌의 신으로 상징한 것은 그 형벌의 기원으로써 神을 삼는 것이다. 또 이것으로써 도움의 신을 삼은 것은 五火는 사실상 土를 창조하기 위한 화형장(火形場)인 것이다. 이것이 비록 정신의 분묘(墳墓)로서의 외면을 가지고 있지만 실은 정신의 창조를 돕고 있으므로 도움의 신을 삼는 것이다. 또 이것으로써 예언의 신을 삼는 것은 예언은 총명에서 이루어지고 총명은 충양(充陽)에서 이루어지므로 그 충양작용의 기본인 午火를 神으로 삼은 것이다. 또 이것으로써 음악의 신을 삼은 바 樂은 火를 기본으로 하고 이루어지며, 音은 水를 기본으로 하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극도설에서도 火는 坎으로 들어가는 象이 나타나 있은즉 이것이 바로 음양의 본원을 이루는 본원, 즉 十土를 이루는 기본이므로 音(陽)․樂(陰) 공동의 신이 되는 것이다. 또 이것을 가축보호의 신이라고 한 것은 가축은 육체를 쓰기 위한 것인데 육체는 土가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火는 土의 자원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폴론이 가장 많은 神으로 상징한 것은 이것이 바로 火의 본질을 표상하는 神인 離卦와 五火의 象을 나타내는 까닭이다.
제우스는 그 다음으로 무사이라는 딸을 낳았는데 이 神은 노래․예술․시가․학문의 신으로 상징되고 있다. 그런데 아폴론이 五火의 신이었다면 이것은 未土의 신이라야 火의 본중말(巳午未)이 완성된다. 그런데 노래는 音에 속하는 것인즉 금화교역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즉 土(未)가 그의 창조기본이 되므로 이것이 노래의 신이다. 우주의 변화란 모두 천지의 술수(術數)다. 그런데 그 술수를 통일하여 점철한 것이 바로 예술이다. 그런즉 그 神은 土의 통일성에 있을 수밖에 없다. 시(詩)라는 것은 노래의 의미표식이다. 표식(標識)이란 것은 동작이 아니고 정지 상태이다. 그런데 우주의 모든 정지 상태는 未土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즉 시가(詩歌)의 神은 여기에서 창조된다. 학문이란 개념은 學은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고 問은 완열(完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즉 學이 완숙되는 곳은 미토통일(未土統一) 이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학문의 神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고찰해 볼 때 크로노스의 신화는 상수학(象數學)의 木火土의 발전 과정을 암시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우주만물의 발전 과정일 뿐이고 통일 과정은 아니다. 정신의 활동 과정인 것뿐이고 창조 과정은 아니다. 더욱이 火의 본중말을 역설함으로써 본중말 원리의 작용 현상을 암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전통성이 있고 역사성이 있다.
그런데 헤겔은 특별히 이 신화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필자도 납득이 가는 점이 있다. 왜 그런가 하면 헤겔의 변증법이 바로 이 신화의 정신 내용과 꼭 같기 때문이다. 이 신화가 木火土의 선천적인 本中末 운동의 발전만을 표시한 것처럼 헤겔도 개념․대립개념․종합개념의 본중말작용으로써 발전 양상만을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화는 철학이 아니므로 그의 전통가치만 있으면 된다. 그렇다고 철학이 신화적 가치만으로써 만족할 수는 없다.
- 한동석 《우주변화의 원리(宇宙變化의 原理)》 (1966년)
원방각(圓方角)
○ 원(하늘/본질): 존재, 죽음, 우주, 무의식에 관한 형이상학적 잠언들
□ 방(땅/질서): 부, 경영, 역사, 시스템에 관한 현실적 잠언들
△ 각(사람/변화): 선택, 도전, 심상화, 행동에 관한 주체적 잠언들
(* 삼신할매, 삼신 사상 등은 한국인의 무의식에 깊게 박힌 **'3의 철학'**이다.
삼신(三神) 사상: 한국인은 우주의 주재자를 '하나'이면서 동시에 '셋'인 존재로 인식했다. 이는 기독교의 삼위일체보다 훨씬 오래된 동북아시아 샤머니즘과 신선 사상의 뿌리이다.
민속 신앙: 아이를 점지하는 '삼신할매', 집안을 지키는 '성주신' 등에서 '3'은 탄생과 보호, 완성을 의미한다.
고조선 건국 신화: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3대 계보와 환웅이 거느린 풍백·우사·운사의 3사(三師) 등, 국가의 기틀 자체가 '3'이라는 숫자에 기반하고 있다.
문헌상 최초 등장 (1916년): 기록상 《천부경》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16년 계연수(桂延壽)가 묘향산 석벽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인쇄하여 배포하면서부터이다. 그 이전의 역사서(삼국사기, 삼국유사 등)나 문집에서는 이 텍스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고증의 부재: 묘향산 석벽의 원본이나 그 실체가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으며, 텍스트에 사용된 용어나 사유 체계가 고대보다는 근대적 민족 종교의 발흥기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환단고기와의 연계: 1911년에 편찬되었다고 주장되는 《환단고기》에 수록되면서 널리 알려졌으나, 이 책 역시 20세기 초의 시대적 고뇌(일제강점기 민족의식 고취)가 투영된 **'근대의 산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1861년(철종 12)에 이운규는 최제우·김광화·김일부를 차례로 불러 각자의 특성에 알맞는 비전을 전수했다고 한다.
최제우에게는 선도(仙道)의 전통을 계승할 자라 하여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至氣今至願爲大降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라는 3·7자 주문을 독송하며 심신을 연마하라고 하였다.
김광화에게는 불교의 전통을 계승할 자라 하여 "남문(南門) 열고 바라치니 계명산천(鷄鳴山川) 밝아온다."라는 주문을 주면서 수련을 하라고 하였다.
김일부에게는 유교의 전통을 계승할 자라 하고, 장차 크게 천시(天時)를 받을 것이니 『서전 書傳』을 많이 읽으라면서 "관담(觀淡)은 막여수(莫如水)요, 호덕(好德)은 의행인(宜行仁)을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하니 권군심차진(勸君尋此眞)하소."라는 시를 남겨주었다고 한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 항목명: 이운규 (李雲圭)
집필/발행: 한국학중앙연구원(구 정신문화연구원)
발행 연도: * 초판 인쇄: 1991년
"십십일일지공(十十一一之空)하며, 천심월(天心月)이 하림(下臨)하니..."
(10과 10, 1과 1이 공의 자리에서 만나니, 하늘 마음의 달이 아래로 임하는구나.)
- 일부(一夫) 김항(金恒, 1826~1898) 《정역(正曆)》 상편 「십오일언(十五一言)」, 「무극후천지서(無極後天之序)」 (1885년)
(* 이 문구는 우주의 근원적인 수(數)인 **10(무극, 十)**과 **1(태극, 一)**이 중첩되고 조화를 이루어 나타나는 **'공(空, 비어있음)'**의 상태를 뜻한다.
십십(十十): 하도(河圖)의 중앙 수인 10(무극)이 안팎으로 작용하여 우주의 완전한 질서를 이루는 상태.
일일(一一): 낙서(洛書)의 시작 수인 1(태극)이 순환하여 다시 근원으로 돌아오는 통일의 수리.
지공(之空): 여기서 '공'은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머금은 우주의 본체'**를 의미. 즉, 선천(봄·여름)의 무질서와 성장이 끝나고 후천(가을·겨울)의 완성된 질서가 들어서기 위한 '텅 빈 충만함'의 시간적·공간적 마디를 뜻한다.)
"북해지수(北海之水)가 남해(南海)로 흐르니..."
(북쪽 바다의 물이 남쪽으로 흘러가니...)
- 김일부 『정역』 (1885년) 「금화오송(金火五頌)」
(* 이 구절이 1977년 출간된 『격암유록』에 와서 "북극이 열리고 바닷물이 이동한다"는 **'북극통개'**와 **'수조남천'**의 서사로 구체화되었고, 탄허 스님 역시 비슷한 주장을 한 바 있다.)
"기(氣)가 지나치고(盈) 삭(朔)이 미치지 못하니(虛), 윤(閏)이 생기는구나. 365와 4분의 1일은 정수(正數)가 아니니, 이는 지축이 기울어 천지가 조화를 잃었기 때문이다."
(기영삭허(氣盈朔虛)하여 윤도(閏度)가 생기니, 이는 선천의 불완전한 역수(曆數)로다.)
- 김일부 『정역』 (1885년) 「금화오송(金火五頌)」
"산술을 포함하는 모든 일관된 공리계에는, 그 체계 안에서는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할 수 없는 문장이 존재한다."
"수학은 일관되면서 동시에 완전할 수는 없다."
(Mathematics is either inconsistent or incomplete.)
-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의 불완전성 정리 (Gödel's Incompleteness Theorems) (1931년)
메소포타미아에서 43,200은 우주의 한 주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숫자입니다. 칼데아의 Berossos가 기원전 280년경에 쓴 글을 보면 바빌로니아에서 만들어진 첫 도시인 Kish와 바빌로니아 신화에서 발생했다고 여겨지는 대홍수 사이의 기간은 432,000년입니다. 바빌로니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창세기 5장 구약성서를 보면 아담의 창조에서부터 노아의 홍수까지 1,656년이 걸리는데, 1,656년에는 총 86,400번의 일주일이 있었고, 86,400 나누기 2는 43,200가 됩니다. 1,656은 또한 1+6+5+6=18이고 이는 9의 2배인데, 9는 4+3+2이지요.
인도 요가에서는 인간이 숨을 쉬고 내뱉는 숫자가 하루에 21,600번이라고 믿는데 21,600x2=43,200이지요. 힌두교의 신성한 경전인 Puranas에서도 우주의 한 주기는 432,000년입니다.
13세기 북유럽 신화 Icelandic Eddas에서 오딘이 머무는 전사의 전당(Warrior Hall)인 Valholl에는 540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문은 한 우주의 주기가 끝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곳에는 800명의 신성한 전사들이 신들과 서로를 죽이기 위해 전투를 벌이는데, 이는 곧 800x540=432,000가 됩니다.
황도대의 12개의 별자리는 25,920년이 한 사이클인데, 이는 우주의 세차주기에 대응합니다. 그런데 25,920을 60으로 나누면(여기서 수메르의 60진법인 soss가 유래합니다) 432가 됩니다. 게다가 2+5+9+2=18이고, 18은 9x2=18, 또는 1+8=9가 되기 때문에 우주를 낳은 여신을 상징하는 숫자 9와도 통하게 됩니다.
현대과학에서도 인간이 숨을 쉬고 뱉는 심장박동수의 횟수가 1분에 60번이 적당하다고 하는데, 1시간에 3,600번, 해서 하루(x24)를 곱하면 86,400번이 되고, 86,400 나누기 2 = 43,200이지요.
그러니까 25,920, 60, 432, 그리고 9라는 숫자가 갖는 상징성은 인류의 거의 문화권에서 나타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주의 어떤 '수학적인 진리'가 인류 문명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변형되어 신화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죠.
- 조셉 캠벨 『외적 우주로의 내적 도달』 (The Inner Reaches of Outer Space: Metaphor as Myth and as Religion, 1986)
(* 카발라의 수비학과 세피로트의 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의 독립년도이자 건국년도인 1776년에 나오는 숫자들을 합해보면(1+7+7+6) '이성의 나이'라는 21이 되된다. 또 이 때 통합된 주들은 13개인데, 숫자 13은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실제로 미국은 이성에 기반하여 세워진 국가로 현재까지 과학기술이 가장 번성한 나라이며, 13개의 주들은 미국 발전의 기틀이 되었다.
- 조셉 캠벨 《신화의 힘 (The Power of Myth)》 (1988) 〈제1장: 신화와 현대 세계〉
"상제께서 고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후로는 무당, 광대, 재인, 창우의 기운을 뽑아 쓰리라' 하시고..."
- 《전경》 공사 2장 15절 (1907~8년 사이)
"예전에는 판이 좁아서 성현들이 나오면 겨우 한 나라를 건지는 데 그쳤으나, 이제는 판이 커서 천하를 한 집안으로 만들기 때문에..."
"무당, 광대, 재인, 창우의 천한 기운을 다 뽑아 써야 하느니라. 그들의 원한이 워낙 크기 때문이니, 그들을 해원시켜 주어야 천하에 화평이 오느니라."
"이제 광대(딴따라)의 기운을 뽑아 세상을 놀이터로 만들고, 온 천하를 노래하고 춤추게 하리라."
- 《도전》 5편 185장 (1992년)
하루는 상제님께서 거울을 들여다보시며 난데없이 웃다가, 화난 얼굴을 하였다가, 입술을 내미시는 등 온갖 표정을 다 지어 보시더니 숯을 가져오시어 용안에 수염도 그려 보시고 볼에도 발라 보시니라.
또 물에 분을 타서 허옇게 바르신 뒤에 광대처럼 빨간 물감을 칠하고 나오시거늘 호연이 “아이고 무서워~!” 하고 고함을 지르니 “인제 이런 속에서 살아야. 이런 속에서….” 하시며 빙긋이 웃으시니라.
- 《도전》 5:96:1~4 (1992년)
한 박사에 의하면 한동석은 6·25를 보는 안목도 특이하였다. 음양오행적인 시각에서 6·25의 발발을 해석하였다. 한반도의 중앙을 가로지는 강은 한탄강인데, 한탄강 이북이 북한이고 이남이 남한이다.
오행으로 보면 이북지역은 북방수(北方水)에 해당하고, 이남지역은 남방화(南方火)에 해당한다. 이북은 물이고 이남은 불이다. 그런데 소련의 상징이 백곰이다.
백곰은 차가운 얼음물에서 사는 동물이니 소련 역시 물이다. 중국은 상징동물이 용이다. 용은 물에서 노는 동물이어서 중국 역시 물로 본다. 이북도 물인데, 여기에 소련의 물과 중국의 물이 합해지니 홍수가 나서 남쪽으로 넘쳐 내려온 현상이 바로 6·25다.
대전은 들판이라서 그 홍수가 그냥 통과하고, 전주·광주도 역시 마찬가지로 통과하였다. 그러나 대구는 큰 언덕이어서 물이 내려가다 막혔다. 울산·마산은 모두 산이어서 물이 넘어가지 못했다. 부산은 불가마이니 물을 불로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경상도가 6·25의 피해를 덜 본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 밖의 예언을 간추려 보면 2010년을 분기점으로 해서 임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러니까 그 전에 될 수 있으면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딴따라’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 또한 그대로 되고 있다.
한동석은 1963년 1월부터 자신이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자신의 죽음이 자신의 생일, 생시인 6월 8일(음력) 인시(寅時)에 닥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 생일, 생시를 넘긴다면 자신이 더 살 수 있을 것이나 아무래도 그것을 넘기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는 스스로 본인의 이러한 운명을 극복하기 위하여 계룡산으로 내려가 보기도 하였으나 결국 자신의 예견대로 6월 8일 축시에 사망하였다. 2시간 정도만 견디면 인시를 넘길 수 있었으나 자신의 생시를 코앞에 두고 그만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임종한 것이다.
가족문제도 그렇다. 생전에 본인이 죽고 난 뒤 온 식구가 거지가 되어 거리에 나앉을 것이라며 대성통곡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과연 본인의 임종 후 가세가 기울어 인사동 집을 비롯한 가산을 팔고 가족이 흩어지는 시련을 겪었다(권경인. ‘한동석의 생애에 관한 연구’ 54쪽).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국토에도 변화가 생긴다고 보았다.
한반도 남쪽이 물에 잠기는 반면 서쪽 땅이 2배쯤 늘어난다고 예언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남쪽지방이 물이 잠긴다는 말은 댐이 들어선다는 말이었고, 서쪽 땅이 2배 늘어난다는 이야기는 서해안에 간척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는 것이 한 박사의 술회다.
한동석은 이처럼 탁월한 한의학자이면서도 동시에 앞일을 내다보는 예언자로서의 면모를 아울러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사상적 뿌리는 어떻게 되는가를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 조용헌 칼럼, 이야기명리학
상놈들의 세상
오늘은 제가 많은 분들이 생각하지 못한 다른 각도에서 북한이 거지가 된 이유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한마디로 가난한 상놈들이 권력을 잡아 상놈의 세상으로 돌아간 겁니다.
저는 사람의 근본을 따질 때 출신성분 이런 것을 따지는 것은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어디 있고, 귀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은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왕이든, 왕좌든, 공주든 높이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출신성분 제일 많이 따지는 나라가 어디냐. 바로 북한입니다. 공산주의 한다는 자들이 계급은 잔뜩 만들어놓고, 출신성분은 왜 그리 따집니까. 저는 북한에서 농민의 자녀로 태어나 금수저들만 간다는 김일성대를 갔습니다. 신분의 벽을 정말 어렵게 넘었죠.
그런데 김일성대에 가니 피눈물이 나더군요. 온통 간부집 자식들인데, 아버지가 뭘 하냐에 따라 점수도 결정되고, 공부 안하고 맨날 놀려만 다녀도 부모가 간부면 직위에 따라 졸업하면 갈 좋은 곳이 다 순서대로 정해져 있습니다.
제 부모가 능력이 없어 농민이 된 것도 아닙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큰 회사도 만들었을 수 있고, 유명한 교수도 됐을 수 있습니다. 하필 출신성분에 인생이 결정되는 북한에 있다보니 우리 집은 북한에서 절대 출세를 할 수 없고 농촌에 쫓겨 온 것이죠. 얼굴도 보지 못한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때문에 말입니다.
북한에서 농민의 자녀는 90% 이상이 농민이 됩니다. 군에 갔다 와도 농촌으로 돌려보내고, 몇 명 대학 보내도 사범대학 이런 걸 보내놓고 농촌 교원, 농촌 의사로 발령을 냅니다. 북한은 그런 신분제 사회입니다.
유튜브하는 탈북여성 중에 아오지언니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생방송할 때도 계속 오는 분이죠. 똑똑한 여성인데, 결혼해서 호주에서 살고 있어 제 방송 한번 부르고 싶어도 여의치는 않죠. 그런데 아오지언니의 유튜브 방송을 통해 탈북 스토리 들으니 정말 역대급 스토리였고, 그 모진 고난을 10대의 나이에 여성으로 이겨내고 온 것을 보니 정말 눈물겨웠습니다. 아오지에서 부모와 3남매가 한국에 와서 잘 살고 있는데, 메일로 이 이야기를 책으로 내면 정말 전 세계 사람들이 감동할 것이라고 했죠.
그러면서 이야기 좀 나눠봤는데 아오지언니가 갖고 온 사진 중엔 할아버지 사진도 있어요. 그런데 이 할아버지가 일제 때 동경제국대학 경제학과를 나왔는데, 손기정 선수와 친구였더군요. 큰 부자도 아닌데 일제 때 동경제국대학 경제학과에 갈 정도면 얼마나 똑똑했겠습니까. 한국에 살았다면 나중에 서울대 총장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인텔리인데 하필 해방이 돼서 북한 지역에 살다가 1950년대 중반 숙청돼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아오지언니의 아버지는 반동자식이 돼 어머니와 함께 아오지탄광으로 추방됐습니다. 아오지탄광 아시죠. 수십 년 동안 탄가루를 뒤집어쓰고 일해서 폐가 다 망가졌죠. 그래도 아오지언니의 부친은 가족을 데리고 목숨 걸고 탈북해 자녀들에게 다시 자유를 찾아주었지만 아오지에 가면 국군포로의 자녀뿐만 아니라 해방 전 제일 똑똑했던 사람들의 자녀들이 널려 있습니다.
탈북자 중에 함경북도, 양강도에서 온 사람들이 많은데, 다 들어보면 출신성분이 걸려서 쫓겨 간 사람들 태반입니다. 즉 해방 전 인재들의 후손들이 북한 오지에 쫓겨 가 고생하다가 탈북해 온 것이죠.
그럼 평양에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가. 해방전 상놈으로 불렸던 사람들의 자식들이 다 삽니다. 해방 전 머슴, 빈농의 자식이면 북한에서 출신성분이 제일 좋은 금수저가 됐습니다. 이들을 북한에선 무산계급, 핵심계층이라고 합니다. 해방이 돼서 자기가 모시던 지주를 때려죽이면 더 핵심군중으로 인정받았겠죠.
제가 예전에 김정은 혈통에 대해 말했는데, 이 김 씨 집안도 평양에서 오랫동안 남의 묘를 봐주던 집안입니다. 완전 상놈의 혈통인데, 해방이 되니 위대한 백두혈통으로 둔갑됐네요. 그리고 해방되니 머슴, 빈농들이 무산혁명이란 것을 통해 북한의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대손손 핵심계층이라고 간부 자리 물려주며 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해방이 되니 머리 좋아 좀 잘 살던 사람들 재산 다 빼앗고, 과거 상놈들이 북한을 타고 앉은 겁니다. 그중에는 역시 해방 전에 출신 때문에 머리는 좋아도 머슴이 되고 빈농이 된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해방 전 일제 치하에서 머리 좋고, 부지런하면 자기 땅 정도는 사지 않았겠습니까. 일제 시대는 그래도 열심히 살면 자기 노력으로 중산층은 가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못된 빈농들이, 일하기도 싫어하고, 배운 것도 없는데다 주인 때려죽일 정도의 못된 심성을 가진 인간들이 권력 잡으니 이렇게 세상을 뒤집어 권력을 쥐어준 김일성에게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충성했죠.
김일성은 이렇게 무식한 계층을 끼고, 유식한 사람들 타도했습니다. 나중에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할 때 좀 배운 사람이어야 공산주의자가 세습이 뭐냐고 불만이라도 가지겠는데, 권력을 잡은 이 상놈들은 반항할 머리도 없었습니다.
북한 지배계층은 김일성의 충실한 졸개가 돼서 가자는 대로 졸졸 따라가고, 저놈 죽이라면 우르르 가서 때려죽이고 그래서 북한이 이 꼴이 났죠. 해방 전 그들이 살던 그대로 거지가 되고 일하기 싫어하는 나라로 말입니다.
북한에서 간부 좀 했다고 탈북한 뒤 서울 와서 목에 힘을 주는 사람도 간혹 보는데, 저는 정말 웃깁니다. 이보세요. 당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당신 부모나 할아버지가 상놈이었기 때문에 당신이 간부가 된 거라고요. 당신 부모나 조부가 해방 전에 진짜 머리 좋고, 엘리트였다면 당신은 양강도, 함경북도에 묻혀 무지렁이가 됐다고요.
김일성은 똑똑한 사람 다 죽이고, 그 유전자 물려받은 똑똑한 후손들까지 다 산간오지 농민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게 하고는, 무식하고 선동에 잘 넘어가는 유전자들을 골라 자기를 호위하는 간부를 시켰죠. 김일성 정권에 아부한 머리 나쁜 조상 덕분에 한 자리 차지하고도 그걸 서울에 와서까지 자랑할 일입니까. 그런 인간들이 권력 잡았으니 지금 북한이 어떻게 됐습니까.
서울에 왔으면 세상이 또 바뀐 겁니다. 김 씨 정권에 부역한 죄로 타도 당하지 않은 거 다행으로 여겨야죠. 서울에 와서까지 일반 탈북자들보다 잘난 척하면 저는 정말 눈꼴이 시려서 못 봐줍니다.
그리고 일반 탈북자들도 북한에서 고위 간부 했다고 폼 잡는 사람이 있다면 머리 숙이지 마십시오. 상놈 조상 둔 덕분에 북에서 여러분들보다 더 잘 나갔을 뿐입니다. 혹 북에서 고위 간부를 했다고, 노동자 농민이었던 탈북자 앞에서 잘난 척 하면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이런 상놈의 자식!” “이런 상놈의 시키!”
실은 그게 욕이 아니라 팩트입니다. 상놈의 자식을 상놈의 자식이라 부르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상놈의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에서 노동자, 농민으로 거지처럼 수모 당하고 살았던 것이고요. 죽지 못해 살다 온 많은 탈북자들은 해방 전 양반의 후손들이었을 겁니다.
여기 한국은 능력에 맞게 사는 세상입니다. 물론 여기도 이제는 부모의 부가 대물림되고 유리 천장이 생겼지만, 상놈 핏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적대계층, 복잡계층이 돼 대대손손 농민의 처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북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제 살아 생전에 북한이 뒤집어져서 혈통 타령, 핏줄 타령하던 인간들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는 꼴을 보고 싶습니다. 합당한 능력의 자리로 말입니다.
끝으로 저는 혈통, 성분을 따지는 거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 다시 강조합니다. 그렇지만 그걸 따지는 시작은 쟤들이 먼저 했고, 그것 때문에 70년 넘게 주름 한번 펴보지 못한 억울한 인생이 얼마나 많이 생겼습니까. 그래서 인간은 평등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제가, 오늘은 마음먹고 북한이 그렇게 따지는 출신 성분의 논리로 똑같이 말해줍니다. 니들 상놈들이 해방이 돼 북한을 타고 앉아 대대손손 상거지의 근성을 대물림하는 바람에 우리까지 상거지가 된거야라고 말입니다.
- 주성하 칼럼
《채근담》 전집(前集)에 나오는 '풍래소죽(風來疏竹)' 구절입니다.
풍래소죽(風來疏竹), 풍과이죽불류성(風過而竹不留聲)
안도한담(雁渡寒潭), 안거이담불류영(雁去而潭不留影)
"바람이 성긴 대나무 숲에 불어오나, 바람이 지나가면 대나무는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기러기가 차가운 못을 건너가나, 기러기가 가고 나면 못에는 그림자가 남지 않는다."
고군자(故君子), 사래이심시득(事來而心始現), 사거이심수공(事去而心隨空).
"그러므로 군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이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은 따라서 비워진다."
- 홍자성 《채근담》 (1603년) 전집(前集) '풍래소죽(風來疏竹)'
(* 집착 없는 마음의 경지를 비유한 최고의 문장으로 꼽힌다)
人心 有一部眞文章 都被殘編斷簡封錮了
有一部眞鼓吹 都被妖歌艶舞湮沒了
學者 須掃除外物 直覓本來 纔有個眞受用
사람은 저마다 마음 속에 한 권의 참된 문장이 있건만
옛 사람이 남긴 책쪼가리 때문에 모두 묻혀 버린다.
사람마다 그 가슴속에는 한가락의 진정한 풍류가 있건만
세속의 요염한 가무歌舞로 인하여 갇혀 버렸다.
모름지기 배우는 자는 외물外物을 쓸어 버리고
근본을 찾는 데 힘쓸 때 비로소 참 문장과 풍류를 얻을 수 있으리라.
- 홍자성 《채근담》 (1603년) 후집(後集) 제8장 또는 제9장
‘연래치소 문전지(年來恥掃 門前地·요즘은 문 앞을 쓸기가 부끄럽기도 하거니와)
항리하무 걸화인(巷里何無 乞火人·내 심정 헤아려 주는 사람도 어찌 이다지도 없습니까)’
- 남사고
출처: 『격암유록(格庵遺錄)』 (또는 남사고의 문집 및 구전 기록)
시기: 16세기 중반 (명종~선조 연간, 1509년~1571년 사이)
우리네 시인들이 아무리 좋은 시를 짓더라도 이 세상 속물들은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世人聞此皆掉頭(세인문차개도두) 세인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머리를 흔드네
有如東風射馬耳(유여동풍사마이) 마치 동풍이 쏘인 말의 귀처럼
- 이백 〈답십구탄(答十句嘆)〉 (750년경)
(* 마이동풍(馬耳東風)의 유래: 따뜻한 동풍(봄바람)이 불면 사람은 기뻐하지만, 말은 귀에 바람이 스쳐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뜻입니다. 남의 비평이나 충고, 혹은 고결한 가르침을 듣고도 전혀 느끼는 바가 없는 **'속물적인 대중'**을 비판하는 비유)
子曰 莫我知也夫 子貢曰 何爲其莫知子也 子曰 不怨天 不无人 下學而上達 知我者其天乎(공자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구나 하니, 자공이 어찌 선생님을 알아주지 않는다 하십니까 하니, 공자가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도 탓하지 않겠다. 인간을 배워 하늘이 알게 하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하늘일 것이다
- 《논어 (Analects)》 헌문편(憲問篇) (BC 5세기경)
고뇌는 위대한 자각과 깊은 심정을 가진 사람에겐 항상 필연적인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Crime and Punishment)》 (1866년)
인간이 근원적이면 근원적일수록 불안은 그 만큼 깊다.
-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 (The Concept of Anxiety)》 (1844년)
불법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며, 다르마를 행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며,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 《대반열반경》 또는 초기 불경 (BC 5~3세기)
지당에 비 뿌리고 양류에 내 끼인 제,
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모였는고.
석양에 짝 잃은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노매.
(풀이: 연못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버들 우거진 숲에는 안개가 자욱한데
사공은 어디로 갔는지 빈 배만 매여 있구나.
저녁 노을 진 서쪽 하늘에는 짝 잃은 외로운 갈매기만 이리저리 날고 있구나.)
- 조헌
출처: 『중봉집(重峯集)』 (조헌의 문집)
시기: 16세기 후반 (선조 연간, 1544년~1592년 사이)
(*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이었던 조헌이 고립된 외로운 인간의 심정을 표현)
새벽 두 시, 세 시, 또는 네 시가 넘도록
잠 못 이루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집을 나와 공원으로 간다면,
만일 백 명, 천 명, 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물결처럼 공원에 모여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예를 들어 잠자다가 죽을까봐 잠들지 못하는 노인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와
따로 연애하는 남편
성적이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자식과
생활비가 걱정되는 아버지
사업에 문제가 있는 남자와
사랑에 운이 없는 여자
육체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사람…
만일 그들 모두가 하나의 물결처럼
자신들의 집을 나온다면,
달빛이 그들의 발길을 비추고
그래서 그들이 공원에 모여
각자에게 서로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그렇게 되면
인류는 더 살기 힘들어질까.
세상은 더 아름다운 곳이 될까.
사람들은 더 멋진 삶을 살게 될까.
아니면 더 외로워질까.
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만일 그들 모두가 공원으로 와서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태양이 다른 날보다 더 찬란해 보일까.
또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그러면 그들이 서로를 껴안을까.
- 로렌스 티르노 《The Power of Personality(인격의 힘)》 (1987년경)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알프레드 디 수자 (Alfred D'Souza) 《행복의 비결 (The Secret of Happiness)》 또는 강연 내용 (1980년대~1990년대에 걸쳐 유명해짐; 한국에서는 《내 이름은 김삼순(2005)》에 인용되며 더 유명해짐.)
가장 아름다운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아이는, 아직 자라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날들은, 아직 겪지 않았다.
네게 말해주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말은, 아직 말하지 않았네.
- 나짐 히크메트(Nazim Hikmet)의 《진정한 여행(A True Travel)》 (1935년)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 나짐 히크메트(Nazim Hikmet)의 《진정한 여행(A True Travel)》 류시화 시인 버전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 한국 속담
1. 사람을 편애하는 것에 대한 묘사
형식에게는 재주 있는 학생, 얌전한 학생을 더욱 사랑하는 버릇이 있었다. 무론 아무나 재주 있고 얌전한 사람을 더욱 사랑하건마는 그네는 용하게 그것을 겉에 드러내지 아니하되 정이 많은 형식은 이러할 줄을 모르고 자기의 어떤 사람에게 대한 특별한 사랑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래서 어떤 친구가 형식에게 "자네는 편애하는 버릇이 있나니." 하는 충고도 받았다. 그때에 형식은 웃으며 "더 사랑스러운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 흠이란 말인가." 하였다. 그러면 그 친구가 "그러나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배우는 자를 한결같이 사랑할 필요가 있나니."하고 이 말에 형식은 "그러나 장차 자라서 사회에 크게 유익을 줄 만한 자를 특별히 더 사랑하고 가르침이 무엇이 잘못이랴." 하였다. 이리하여 형식은 동료간에나 학생간에 편애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혹 어떤 형식을 미워하는 사람은 형식이가 얼굴 어여쁜 학생만 사랑한다는 말도 한다. 학생 중에도 삼사년급 심술 사납고 장난 잘하는 학생들은 형식은 얼굴 어여쁜 학생만 사랑하여 시험 점수도 특별히 많이 주고 질문하는 것도 특별히 잘 가르쳐준다 하며 형식이가 특별히 사랑하는 학생을 대하여서는 듣기 싫은 비방도 많이 한다.
2.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에 대한 묘사
형식은 물끄러미 이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십자가에 달린 자도 사람, 가시관을 씌우고 옆구리를 찌른 자도 사람, 그 밑에서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는 자나 무심하게 우두커니 구경하고 섰는 자도 사람, 저편에서 사람을 죽여놓고 그 죽임받는 자의 옷을 저마다 가질 양으로 제비를 뽑는 자도 사람 - 모두 다 같은 사람이로다. 날마다 시마다 인생 세계에 일어나는 모든 희극 비극이 모두 다 같은 사람의 손으로 되는 것이로다. 퇴학 청원을 하는 학생들이나 학생들의 배척을 받는 배 학감이나, 또는 내나 다 같은 사람이 아니며, 저 불쌍한 영채나 영채를 팔아먹으려 하는 욕심 사나운 노파나 영채를 사려 하는 짐승 같은 사람들이나, 영채를 위하여 슬퍼하는 내나 다 같은 사람이 아니뇨. 필경은 다 같은 사람끼리 조곰씩조곰씩 빛과 모양을 다르게 하여 네로다 내로다 하고 옳다 그르다 함이 아니뇨. 저 예수가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로마 병정도 될 수 있고, 그 로마 병정이 예수도 될 수 있을 것이라. 다만 알 수 없는 것은 무엇이 - 어떠한 힘이 마치 광대로 혹은 춘향을 만들고 혹은 이 도령을 만드는 모양으로 혹은 예수가 되게 하고 혹은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는 로마 병정이 되게 하고 또 혹은 무심히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가 함이라. 이렇게 생각하매 형식은 모든 인류가 다 나와 비슷비슷한 형제인 듯 하고, 또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속박되어 날마다 시마다 저희들의 뜻에도 없는 비극 희극을 일으키지 아니치 못하는 인생을 볼쌍히 여겼다.
3. 개화기 여성의 로망스에 대한 묘사
선형은 자기가 좋은 양복을 입고 새깃 꽂은 서양모자를 쓰고 미국에 가서 저와 같은 서양 처녀들과 영어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모양을 상상하고 혼자 웃었다. 자기가 영어를 잘하게 되면 자기의 자격도 높아지고 남들도 자기를 지금보다 더 사랑하고 존경하리라 하였다. 자기가 미국에 가서 미국 처녀들과 같이 미국 대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올 때에 - 그 때에는 암만하여도 자기와 동행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하였다. 그러고 그 동행하는 사람은 남자요... 키 크고 얼굴 번듯한 남자요... 미국서 대학교를 졸업한 남자라 하였다. 선형은 무론 일찍 그러한 남자를 본 적도 없고 그러한 남자가 있단 말도 못 들었거니와 하여간 자기가 미국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올 때에는 반드시 그러한 남자가 자기의 동행이 되리라 하였다. 그러나 태평양 한복판에서 배 갑판 위에 그 사람과 서로 외면하고 서서 바다 구경을 하다가 배가 흔들려 제 몸이 넘어질새 그 사람의 가슴에 넘어지면 어떻게 하나. 그러나 그것이 인연이 되어 본국에 돌아온 후 그 사람과 따뜻한 가정을 짓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고 벽돌 이층집에 나는 피아노 타고... 이러한 것이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선형의 꿈이었다.
4. 무리 중 홀로 정신이 깨인 기생에 대한 묘사
"평양성 내 오륙십 명 기생 중에 나밖에 깨인 사람이 누구냐. 모두 다 사람이 무엇인지, 하늘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중에 나밖에 깨인 사람이 누구냐. 나는 외롭구나, 슬프구나, 내 정회를 들어줄 사람이라고는 너 하나밖에 없고나."하고 영채의 등에 이마를 비비며 영채의 허리를 끊어져라 하고 끌어안는다. 영채는 이제는 월화의 하는 말을 다 알아듣는다.
5. 자립에 관한 문장
"너는 부디 세상 사람에게 속지 말고 일생을 너 혼자 살아라, 옛날 사람으로 벗을 삼아라, 만일 네 마음에 드는 사람 만나지 못하거든."
6. 우주 공간을 빗대어 인생의 고통을 묘사한 문장
"무궁한 시점의 일점과, 무궁한 공간의 일점을 점령한 인생에게 큰 일이라면 얼마나 크고 괴로운 일이라면 얼마나 괴로우랴."
7. 인생의 목적은 생명 그 자체의 현상에 있음을 지적한 문장
우주는 결코 태양이나 북극만으로 그 내용을 삼지 아니하고 만천의 모든 성신과 만지의 모든 만물로 다 그 내용을 삼는다. 그러므로 창궁에 극히 조고마한 별도 우주의 전생명의 일부분이요 내지 지상의 극히 미세한 풀잎 하나 티끌 하나도 모두 우주의 전생명의 일부분이라. ㅌ양이 지구보다 위대하니 태양이 우주의 생명에 대한 관계가 지구의 그것보다 크다고는 할지나 그렇다고 태양만이 우주의 생명이요, 지구는 우주의 생명에 관계가 전무하다고는 못할지라. 또 태양계에 있어서는 태양이 중심이로되 무궁대한 전우주에 대하여는 태양 그 물건도 한 티끌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라. 이와 같이 사람의 생명도 결코 일의무나 일도덕률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요, 인생의 만반의무와 우주에 대한 만반의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충이나 효나 정절이나 명예가 사람의 생명의 중심은 아니니 대개 사람의 생명이 충이나 효에 있음이 아니요 충이나 효가 사람의 생명에서 나옴이라. 사람의 생명은 결코 충이나 효나의 하나의 부친 것이 아니요 실로 사람의 생명이 충, 효, 정절, 명예 등을 포용하는 것이 마치 대우주의 생명이 북극성이나 백락성이나 태양에 있음이 아니요 실로 대우주의 생명이 북극성과 백랑성과 태양과 기타 큰 별 잔 별과 지상의 모든 미물까지도 포용함과 같다.
사람의 생명의 발현은 다종다양하니 혹 충도 되고 효도 되고 정절도 되고 기타 무수무한한 인사현상이 되는 것이라. 그중에 무론 민족을 따라 혹은 국정을 따르고 혹은 시대를 따라 필요성이 무수무궁한 인사현상 중에서 특종한 것 일 개나 또는 수 개를 취하여 만반 인사행위의 중심을 삼으니 차소위 도요 덕이요 법이요 율이라. 무론 사회적 생활을 완성하려면 그 사회의 각원이 그 사회의 도덕법률을 권권복응함이 마땅하되 그러나 결코 이는 생명의 전체는 아니니 생명은 하여한 도덕법률보다도 위대한 것이라. 그러므로 생명은 절대요, 도덕법률은 상대니 생명은 무수히 현시의 그것과 상이한 도덕과 법률을 조출할 수 있는 것이라. 이것이 형식이가 배워 얻은 인생관이다.
8. 세대 간의 단절에 대한 묘사
형식과 그 노인은 전혀 말도 통하지 못하고 글도 통하지 못하는 딴 나라 사람이다. '낙오자, 과거의 사람'이라 하는 생각과 함께 자기가 아무리 새 세상 이야기를 하여도 못 알아듣다가 세상을 버린 자기의 종조부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형식은 그 노인에게 대하여 일종 말할 수 없는 설움을 깨달았다. 계향은 형식이가 오래 서서 무슨 생각을 하는 양을 보다가 형식의 소매를 끌며 "어서 가셔요!" 한다. 형식은 다시 그 노인을 돌아보고 '돌로 만든 사람이라' 하다가 '아니다, 화석한 사람이라' 하였다. 노인은 한참이나 형식을 보더니 무슨 생각이 나는지 눈을 감고 여전히 몸을 앞뒤로 흔든다. 계향은 가늘게,
"아시는 노인이야요?" 한다. 형식은 계향의 어깨에 손을 놓고 걷기를 시작하면서,
"녜, 이전에는 알던 노인이더니 지금은 모르는 노인이 되고 말았어요." 하고 웃으며 계향을 본다. 형식은 생각에 '계향이 너는 영구히 저 노인을 알지 못하리라' 하였다. 그러고 형식은 자기가 처음 평양에 올 때에 이리로 지나가던 생각을 하였다. 머리에 흰 댕기를 드리고 감발을 하고 아장아장 이 길로 지나가던 소년을 생각하였다. 그러고 그 소년은 저 노인을 알았다 하였다. 대동문 거리에서 커다란 유리창을 보고 놀라고 대동강 위에서 '쌩' 하고 달아나는 화륜선을 보고 놀라던 소년은 그 노인을 알았다. 그러나 그러하던 소년은 이미 죽었다. '쌩' 하는 화륜선을 볼 때에 이미 죽었다. 그러고 그 소년의 껍데기에 전혀 다른 이형식이라는 사람이 들어 앉았다.
9. 사랑에 빠졌을 때의 몽롱한 상태에 대한 묘사
평양서 올라올 때에 형식은 무한한 기쁨을 얻었다. 차에 같이 탄 사람들이 모두 다 자기의 사랑을 끌고 모두 다 자기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주는 듯 하였다. 첫바퀴가 궤도에 갈리는 소리조차 무슨 유쾌한 음악을 듣는 듯하고 차가 철교를 건너갈 때와 굴을 지나갈 때에 나는 소요한 소리도 형식의 귀에는 웅장한 군악과 같이 들린다. 형식은 너무 신경이 흥분하여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차창을 열어놓고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어스름한 달빛에 어렴풋하게 보이는 황해도의 연산을 보았다. 산들은 수묵으로 그린 묵화 모양으로 골짜기도 없고 나무나 돌도 없고, 모두 한 빛으로 보인다. 달빛과 밤빛과 구름빛을 합하여 커다란 붓으로 종이 위에 형체 좋게 그린 그림과 같다 하였다. 이렇게 생각하는 형식의 정신도 실로 이와 같았다. 형식의 정신에는 슬픔과 괴로움과 욕망과 기쁨과 사랑과 미워함과 모든 정신 작용이 온통 한데 모이고 한데 녹고 한데 뭉치어 무엇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비겨 말하면 이 모든 정신 작용을 한 솥에 집어넣고 거기다가 맑은 물을 붓고 장작불을 때어가며 그 솥에 있는 것을 홰홰 뒤저어서 온통 녹고 풀어지고 섞여서 엿과 같이 죽과 같이 된 것과 같았다. 그러므로 이 때의 형식의 정신 작용은 좋게 말하면 가장 잘 조화한 것이요 좋지 않게 말하면 가장 혼돈한 상태였었다. 엷은 구름 속에 가리워진 달빛이 산과 들을 변하여 꿈과 같이 몽롱하게 만든 모양으로 그 달빛이 형식의 마음에 비치어 그 마음을 녹이고 물들여 꿈과 같이 몽롱하게 만들어놓았다.
10. 조숙한 천재의 고독에 대한 묘사
형식이가 동무의 재미를 보려면 볼 수 있던 때는 동경 유학하는 동안이었다. 동경에는 자기와 연갑되는 소년이 많았었다. 그래서 동무에 목마른 형식은 될 수 있는 대로 그네와 친하려 하였다. 그러나 형식은 어려서부터 세상에 부대껴왔으므로 어느덧 소년의 어여쁜 빛이 스러지고 얼굴에나 마음에나 노성한 어른의 빛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기와 연갑되는 소년들과 친하려 하여도 그 소년들이 마음을 허하지 아니하였다. 더구나 형식은 그 소년들에게 비하여 학문의 정도에 차이가 많았으므로 그 소년들은 형식을 선배 모양으로 공경하는 생각은 가지되 어깨를 겯고 손을 잡고 동무가 되려고는 하지 아니하였다. 그 소년들은 형식을 대하면 가댁질(* 아이들이 서로 잡고 피하며 뛰노는 장난)하던 것도 그치고 고개를 숙이고 '안녕합시오' 하였다. 형식도 하릴없이 '안녕합시오'하고 대답하였다. 한번은 형식이가 자기보다 두어 살 아래 되는 소년을 붙들고,
'여보, 나하고 동무가 됩시다. 너, 나, 하고 지냅시다." 하였다. 그 소년은 농담인 줄 알고 "녜." 하면서 모자를 벗고 경례를 하고 달아났다. 그 후에도 기회 있는 대로 소년들의 동무가 되려 하였으나 소년들은 헤헤 웃고는 경례를 하고 달아났다. 마침내 형식은 소년의 동무가 되어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평생 자기보다 십여 년이나 어른 되는 이와 친구가 되어왔다. 형식은 일찍 이렇게 자탄하였다.
'나는 소년시대를 건너뛰었어!'
소년시대를 보지 못한 형식의 마음은 과연 적막하였다. 그는 항상 말하기를 '나는 인생의 한 권리를 빼앗겼다' 하였고 또 '그러고 그 권리는 인생에게 가장 크고 즐거운 일이라' 한다. 이러한 말을 할 때마다 형식은 적막한 생각을 이기지 못하여 길게 한숨을 쉰다.
11. 지극한 사랑의 대상을 잃어버렸을 때의 슬픔에 대한 묘사
형식의 정신은 극히 혼란하다. 경성학교에 사직표를 제출할 것은 생각하나 그 밖에는 어찌하여야 좋을는지 생각이 없다. 형식의 머리는 마치 물 끓는 모양으로 부걱부걱 끓는다. 여러 날 정신과 몸이 피곤한데다가 지금 학교에서 극렬한 자극을 받았으므로 형식은 마치 열병 환자와 같이 되었다. 다만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천근만근의 무게로 머리를 내려누를 뿐이다.
아까 교실에서 일어난 사건은 형식에게는 가장 중대하고 가장 불행한 사건이라. 형식의 전 희망은 그 사년급에 있었고 형식의 전 행복도 그 사년급에 있었다. 그 사년급이 있는지라 형식은 적막함이 없었고 그 단순하고 무미한 생활 중에서도 큰 즐거움을 얻어왔던 것이라. 그 사년급은 어떤 의미로 보아 지나간 사오 년간에 그의 재산이었고 생명이었단다. 또 그의 전심력을 다하는 사업이었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에 사년급 삼십여명 학생은 영국히 자기의 정신적 아우와 아들이 되어 마치 자기가 오매에 그네를 잊지 못하는 모양으로 그네도 자기를 잊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자기가 그네를 사랑하는 모양으로 그네도 자기를 사랑하리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한바탕 꿈이었다. 형식은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별로 친한 친구도 없으매 그네를 그처럼 사랑하였거니와 그네에게는 형식 외에 부모도 있고 형제도 이고 사랑스러운 동무도 있었다. 사오 년래 혹 형식을 따르는 학생도 없지는 아니하였으나 가장 따르는 듯하던 이희경에게도 형식은 결코 중요한 사랑하는 자가 아니었었다. 형식은 이런 줄을 모르고 있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오늘에야 비로소 사년급 학생들의 눈에 비친 자기를 분명히 깨달은 것이다.
자기가 전심력을 다해 사랑하여오던 자가 또는 자기를 전심력을 다하여 사랑하거니 하던 자가 일조에 자기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줄을 깨달을 때에 그 슬픔이 얼마나 할까. 아마도 인생의 모든 슬픔 중에 '사랑의 실망'에서 더한 슬픔은 없을 것이다.
형식은 정히 이러한 상태에 있다. 지금 형식에게는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 이번 평양 갔던 일은 변명도 할 수 있으려니와 그것을 변명하는 것은 형식에게는 그다지 필요한 일이 아니다. 그것을 변명한다 하더라도 사년급 학생들이 자기를 사랑하지 아니한다는 진리는 변할 수 없는 것이다. 형식은 자기의 명예를 위하여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명예는 사람에게 셋째로 귀중한 것이다. 형식은 지금은 목숨의 뿌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인생에 발 디딜 데를 잃고 공중에 둥둥 뜬 모양이다. 형식이가 아주 말라죽고 말는지 다시 어디다가 뿌리를 박고 살는지, 이것은 장래를 보아야 알 것이다.
12. 사랑의 기쁨에 대한 묘사
그네의 눈에 나뜨는 웃음은 그네의 마음의 즐거움을 말하였다. 형식은 이제 선형을 만날 것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첫번 선형을 만날 적과 일전 영어를 가르치던 때에 하던 생각을 생각하였다. 형식의 머리는 마치 술 취한 것 같았다. 전신이 아프도록 기쁨을 깨달았다.
13. 외모에 대한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대한 묘사 / 인격만으로 사랑이 가능한지를 자문하는 문장
형식도 자기의 외모가 선형의 마음을 끌리라고는 생각지 아니한다. 약혼한 뒤로부터 형식은 혼자 거울을 대하여 제 얼굴을 검사하여보고 여기는 선형이가 좋아하려니 여기는 싫어하렸다 하여 보며 선형이가 하던 모양으로 자기의 얼굴을 교정하여본다. 그러나 그 얼굴이 선형이가 발로 비비던 얼굴인 줄은 모른다. 그러나 형식은 자기의 인격을 믿고 지식을 믿는다. 자기의 인격의 힘이 족히 선형의 마음을 후리리라 한다. 선형은 아직 어린애다. 자기의 말동무가 되지 못한다. 선형은 아직 자기으 인격을 알아줄 만한 정도가 되지 못한다. 이것이 고통이다. 왜 내게는 여자가 취할 만한 용모와 풍채가 없으며 세상이 부러워하는 재산과 지위와 명예가 없는고 하여본다. 평생에는 우습게 말도 하고 좋아도 하던 용모 재산 지위도 이러한 때를 당하여서는 몹시 부러워진다. 그래서 자기를 부귀한 집 도련님을 만들어보고 호화로운 미소년으로 만들어보고 그러한 뒤에 선형을 자기의 앞에 놓아본다. 그렇게 하여보고 나면 현재의 자기의 처지가 퍽 보잘 것 없게 초라해 보여서 혼자 등골에서 땀이 흐른다. 선형이가 자기를 사랑할까, 도리어 밉게 여기든지 불쌍하게 여기지 아니할까. 이렇게 생각하면 다시 선형을 대하기가 싫다. 내가 선형과 혼인한 것이 앙혼이 아닐까. 그는 돈이 있고 지위가 있고 용모가 있는데 나는 무엇이 있나. 이렇게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게다가 '처갓집 돈으로 미국 유학을 하여' 하면 더 부끄러운 생각이 나고 세상이 다 자기의 못생긴 것을 비웃는 것 같다.
조선에 나만큼 열성 있는 사람이 없고 인격과 학식과 재주가 나만한 사람이 없다. 조선 문명의 지대돌은 내 손으로 놓는다 하던 형식의 자부심은 다 없어지고 말았다. 없어진 것은 아니지마는 그것이 형식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선형의 사랑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형식의 유일한 목적이다. 선형의 사랑을 못 얻을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형식의 유일한 슬픔이다. 미국 유학을 하는 것도 조선의 문명을 위한다는 것보다 선형 한 사람의 사랑을 위한다는 것이 마땅하게 되었다. 사랑의 앞에서는 모든 교만과 자부심이 다 없어지고 만다.
14. 사랑과 육체, 정신의 관계 /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사랑에 대한 묘사
기생을 데리고 노는 것도 좋지마는 기생에게는 무엇인지 모르되 부족한 것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기생이 자기에게 친절한 모양을 보이고 또 그 기생이 비록 자기의 마음에 든다 하더라도 그래도 어느 구석에 조금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 부족한 점은 결코 작은 점이 아니요 큰 점이었다. 그것은 아마 첫째 정신상으로 서로 합하고 엉키는 맛이 없는 것과 또 사랑의 제일 힘 있는 요소인 '내 것'이라는 자신이 없는 까닭이다. 돈을 많이 내어서 기생을 빼어내면 '내 것'이 되기는 되지마는 암만해도 정신적 융합은 인력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외모의 사랑은 옅다. 그러므로 얼른 식는다. 정신적 사랑은 깊다. 그러므로 오래간다. 그러나 외모만 사랑하는 사랑은 동물의 사랑이요, 정신만 사랑하는 사랑은 귀신의 사랑이다. 육체와 정신이 한데 합한 사랑이라야 마치 우주와 같이 넓고 바다와 같이 깊고 봄날과 같이 조화가 무궁한 사랑이 된다. 세상 사람들이 입으로 말은 아니하지마는 속으로 밤낮 구하는 것도 이러한 사랑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은 마치 금과 같고 옥과 같아서 천에 한 사람, 십년 백년에 한 사람도 있을 듯 말 듯하다. 그래서 여자는 춘향을 부러워하고, 남자는 이 도령을 부러워한다. 자기네가 실지로 그러한 사랑을 맛보지 못하매 소설이나 연극이나 시에서 그것을 보고 좋아서 웃고 울고 한다. 조선서는 천지개벽 이래로 오직 춘향 이 도령의 사랑이 있었을 뿐이다. 저마다 춘향이 되려 하고 이 도령이 되려 하거마는 다 그 곁에도 가보지 못하고 말았다. 조선의 흉악한 혼인제도는 수백 년래 사랑의 가슴속에 하늘에서 받아가지고 온 사랑의 씨를 다 말려죽이고 말았다. 우선도 그 희생자의 하나이다.
- 춘원 이광수 『무정, 1917』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부모님이나 조부모들이 만나 사랑을 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희로애락이 격렬히 흔들리는 행위다. 사랑이 역사를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 기술에는 흔히 당사자들의 감정이 누락된다. 지도자의 히스테리나 우유부단함으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트로이 전쟁은 헬레네와 파리스의 사랑이 계기가 됐다. 소설은 역사의 기술에서 누락된 감정을 퍼올려 면면히 그리는 장르다.”
- 세계일보, 소설가 시마다 마사히코 이메일 인터뷰 (2008.01.29)
"국적성이라는 말 자체가 난센스다. 나는 일본 작가이지만 이 점을 의식하고 글을 쓴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디를 가나 내가 일본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일본어를 쓰고 있다는 한가지 밖에 없다. 개인은 있는 장소에 따라 지위도 신분도 정체성도 변한다. 나의 경우 일본에서는 12년 경력의 중견작가이지만 한국에서는 신인이고 프랑스에서는 무명의 한 일본인이다.특정의 범주안에 인간을 규정하는 것을 싫어한다. 범주와 범주 사이에 머무르면서 경계를 허무는 일을 하고 싶다."
"내가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은 반여론 형성이다. 매스미디어의 여론은 일반인들에게 한 가지 생각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를 갖고있다. 소설은 여론을 자극해서 획일성을 줄이는 역할을 해야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국적, 민족성이다. 나는 민족주의를 극히 특정한 한 시기에 유효할 수 있는 정치이념으로 본다. 지금 민족주의를 고집한다면 그건 콤플렉스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성문제는 사회적으로 주입된 남녀의 구별이 문제가 많다는 입장이다. 작품에 동성애 이야기를 자주 거론하는 것도 남녀를 구별하는 기준에 스며 있는 지배의 논리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내가 꿈꾸는 것은 모든 인간과 문화가 수평적으로 소통되는 상태다."
- 시마다 마사히코 중앙일보 남재일 기자와의 인터뷰 (1995년 9월 26일자)
적나라한 불빛 속에서 나는 보았지 만명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을
말을 중얼거리기는 하지만 분명한 뜻을 가지지 않고
듣는채 하지만 경청하지는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같이하지 않는 불협화음의 노래들을 쓰지요
그 누구도 감히 침묵의 소리를 깨뜨리지 않지
"바보들"내가 말했지 "당신들은 몰라요 암과도 같은 침묵이 자라고 있음을
내가 그대를 가르칠 수 있도록 내 말을 들으시요
내가 그대에게 닿을 수 있도록 내 손을 잡아요"
하지만 내 말은 소리없는 빗방울 처럼 떨어져
침묵의 샘에서 메아리쳤죠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네온 신에 허리 굽혀 기도했어
네온이 만들어내는 단어중에 경고의 문구가 번쩍거렸지
네온은 이렇게 쓰여있었지
"예언자의 말은 지하철 벽이나
빈민가 아파트 현관에 적혀있다."
침묵의 소리 속에서 속삭이더군
- 영화 <졸업 (The Graduate)> (1967)의 유명한 주제곡인 사이먼 & 가펑클의 <Sound of Silence(침묵의 소리)> (1964)의 노래가사
수처(隨處): 어느 곳에 임하든, (즉 아뢰야식에서 망상의 작용이 일어나는 그 자리마다)
작주(作主): (그 관념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내 식(識)의 주인이 되라.
입처(立處): 내가 주인 되어 서 있는 그 인식의 지점이
개진(皆眞): (왜곡된 그림자가 사라진) 그대로의 실상(부처의 세계)이다.
- 임제선사 《임제록》, 9세기 중반 당나라
(* 여기서 **'처(處)'**는 아뢰야식(Alaya-vijnana)에서 일어나는 망상과 관념의 작용점, 즉 식(識)이 나타나는 자리를 뜻하는데,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식으로 잘못 해석될 때가 많다.)
어저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 황진이
출처: 『청구영언(靑丘永言)』 (또는 『해동가요』 등 주요 시조집 수록)
시기: 16세기 중반 (중종 연간, 1506년~1544년 사이 활동)
(* 해석: 보낼 때는 언제고 보내놓고 그리워하는 자신의 마음조차 스스로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시.
복잡미묘함: 사랑의 주체인 나조차도 내 마음의 관념 작용(보내고 싶으면서도 잡고 싶은 모순)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노래했다.)
잠시 시대의 어지러움으로부터
그대의 눈과 귀를 돌려라.
그대의 마음이 스스로 정화되기 전엔
이 시대의 어지러움은 그대의 힘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것.
이 세상에서 그대가 할 일은
영원을 지키며 기다리고 응시하는 것
그대는 이미 이 세상사에
묶여 있고 또 풀려나 있으니.
그대를 부르는 때가 오리니
그대 마음을 준비하고
꺼져가는 불길 속
마지막 불꽃을 위해
그대를 던지리라.
-잉게 솔 《침묵의 시간》 (또는 명상 시편 중 하나) (1980년대 초반)
기다려라
너가 보는 너만의 사실들이 있어도 내색하지 마라.
아직은 내색할 때가 아니다.
너가 꿰뚫어보는 너만의 본질이 있어도 너 속내를 드러내지 마라.
아직은 드러낼 때가 아니다.
너의 각(覺)이 남들과 달라도 너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단지 너의 의식 움직임이 남달리 빠르고 날카로울 뿐이니 무릇 때가 존재한다.
그러니 기다려라.
아직은 기다려라.
너의 장점을 너의 취미로 너의 직업으로 삼아 실력을 키워라.
반드시 너의 재능이 빛을 발할 날은 온다.
그러니 기다리고 기다려라.
그동안은 너의 실력을 쌓아올려야 한다.
실력이 차지 않으면 너의 각(覺)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에너지는 서서히 시간차를 두고 쌓이니 조급해하지 마라.
너와 비슷한 부류는 이 사회 곳곳에 포진되어 있고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 답답해하지 말고 외롭다 생각치 말라.
때가 되면 드러나고 모이게 되니 그때 너의 실력을 들고 나오라.
사람들의 의식을 유심히 관찰하라.
너의 타고난 감으로 인간의식의 한계와 그 움직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유추하고 스스로 검증하는 습관을 들여라.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나 절망하지 마라.
너는 충분히 스스로 감지하고 판단하고 인지할 수 있다.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면 망상이 아닌 너의 관찰력을 더욱 키워라.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려 하지 마라.
너는 너만의 생각으로 살고 주변인들은 그들의 생각으로 살고 있다.
의식의 차이란 시간차를 두고 서서히 벌어지게 된다.
너는 너만의 생각과 너만의 통찰력으로 세상을 보아라.
그리고 절대 선동당하지 마라.
선동을 하는 자보다 너의 의식은 더 높으니 절대 휩쓸리지 마라.
매의 눈으로 그들을 관찰하고 지켜보라.
어느 순간 눈을 뜨게 되니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너의 실력을 키워라.
...
오늘 글은 조금은 차별화되고 남다른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글이다.
자신이 보는 눈이 정확한 젊은이들이 있다.
이 친구들은 직관(直觀)과 직감(直感)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래서 주변 사물이나 사람, 또는 어떤 사건을 바라볼 때
본능적으로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이들에게는 있다.
이런 젊은이들은 마인드와 사고 자체가 남다르며 대체로 기(氣)가 세다.
기가 세면 남들과 어울리는데 약간의 장애가 발생하는데 사람들의 기운과 자신의 기운 사이에
유격이 생기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보는 눈과 통찰력이 일반 개돼지들과는 다르다.
개돼지라 함은 Fake info나 Fake news를 전달받으면 그대로 믿는 부류라 할 수 있는데
직관과 직감이 뛰어난 남다른 친구들은 순간 현혹되더라도 이내 곧 그 정보의 진의와 의도를
알아챌 수 있다.
문제는 남다른 눈과 본질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친구들은 그 타고난 기운으로 인해
자신만의 난관들이 있고, 이 난관들을 헤쳐나가서 얼마나 성숙되고 완숙된 인성을 형성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이런 친구들이 10, 20, 30대를 겪을 때에는 때로는 자아도취 되어 스스로 다른 이를 왕따시키기도 하고
지적 자부심에 도취되기도 하면서 인간관계에서 우여곡절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배움이고 공부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의 직감을 믿으라는 것이다.
남들이 어떤 사건 내지는 일을 놓고 어떻게 판단하든지 간에 너가 보는 눈을 믿어라.
그리고 그 결과를 확인해보라.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만의 신념이 생길 것이다.
당신의 직감과 눈은 가장 세련된 생각, 가장 멋있는 생각, 가장 훌륭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항상 지적 성장에 노력하길 바란다.
뛰어난 눈과 직관, 직감은 리더가 갖추어야 할 필수조건인데
남다르다는 것은 일반 개돼지들과는 사고하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으로
자신이 가진 그 힘을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설사 몇 번의 오판을 하여도 이내 곧 꿰뚫어볼 수 있으니
너의 직감을 믿어라!
- 네이버 주신 블로그
"천지는 해와 달이 아니면 빈 껍데기요, 해와 달은 사람이 없으면 빈 그림자니라. 일이 크게 이루어짐은 천지에 달려 있는 것이오 사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나, 사람이 없으면 천지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고로 천지가 사람을 내어 사용하나니, 사람으로 태어나 천지일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 어찌 인생이라 할 수 있으리요."
"사람마다 지혜가 부족하고 도략이 없으므로 천하사를 도모치 못하나니 천하사에 뜻하는 자 어찌 별로히 있으리오. 그대가 만일 도략과 자비가 있다면 어찌 가만히 앉아서 볼 때리오."
"천하창생의 생사가 너희들 손에 매여 있느니라."
"이전에는 판이 좁아서 성(聖)으로만 천하를 다스리기도 하고 웅(雄)으로만 천하를 다스리기도 하여왔으나, 이제는 판이 넓어서 성(聖)과 웅(雄)을 합하여야 하느니라."
"대인(大人)을 공부하는 자는 천하의 장점만을 취하고, 소인(小人)을 공부하는 자는 천하의 단점만을 취하느니라."
- 『도전(道典)』 (1992년)
백성은 다스림의 대상일 뿐, 알게 할 대상이 아니다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
- 공자(孔子): 『논어(論語)』의 민가사유지(民可使由之)
원전: 『논어(論語)』 「태백(泰伯)」 편
성립 시기: 기원전 5세기 ~ 기원전 3세기경 (공자 사후 제자들에 의해 수 세기에 걸쳐 편집됨)
"내가 차라리 천하 사람들을 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寧我負人, 毋人負我)"
- 조조
원전: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 (여백사 사건 직후 조조의 대사)
성립 시기: 14세기경 (원말 명초)
너무 똑똑하지도 말고, 너무 어리석지도 말라.
너무 나서지도 말고, 너무 물러서지도 말라.
너무 거만하지도 말고, 너무 겸손하지도 말라.
너무 떠들지도 말고, 너무 침묵하지도 말라.
너무 강하지도 말고, 너무 약하지도 말라.
너무 똑똑하면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걸 기대할 것이다.
너무 어리석으면 사람들이 속이려 할 것이다.
너무 거만하면 까다로운 사람으로 여길 것이고
너무 겸손하면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말이 많으면 말에 무게가 없고
너무 침묵하면 아무도 관심갖지 않을 것이다.
너무 강하면 부러질 것이고
너무 약하면 부서질 것이다.
- 《코막의 훈계(The Instructions of King Cormac mac Airt)》 (원제: Tecosca Cormaic)
연도: 9세기경 기록 (실제 왕인 코막 맥 아트의 생애는 3세기이나, 문헌은 9세기 아일랜드 수도사들에 의해 구전이 기록됨).
"페루의 비라코차는 만유의 신이며 만물의 창조자다. 그런데도 지구에 내린 그의 모습을 전하는 전설에는 그가 누더기 차림에 손가락질이나 받는 거지로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베들레헴 여관 문전을 기웃거리는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바우키스와 필레몬의 문전에서 걸식하던 제우스와 헤르메스의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아프리카의 장난꾸러기 신 에드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것은 신화에서 우리가 자주 만나는 주제다. 코란은 "어디로 돌아서든 거기엔 알라 신이 계시도다"라는 말로 이를 암시하고 있다.
힌두교에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만물 속에 숨어서 그 영혼이 빛을 발하지 않으나, 뛰어난 지력을 가진 명민한 자의 눈에는 보인다.""
- 조셉 캠벨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 1988)』
감추어진 창조의 질서; 고통의 숨겨진 의미
하디르는 가난한 부락민의 어선에 구멍을 뚫어서 가라앉히고 만다. 그리고나서, 모세가 보는 앞에서 어떤 잘생긴 젊은이를 죽이고 드디어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을의 무너진 성벽을 수리해 준다.
모세는 화를 낼 수밖에 없게 되고 하디를 모세를 남겨두고 떠나야만 한다. 그러나 하디르는 헤어지기 전에 자기의 행위에 대한 사유를 설명한다. 즉, 배에 구멍을 뚫어서 가라앉힌 것은 배의 주인을 위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해적들이 그 배를 훔치러 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는데, 해적들이 돌아간 다음에는 그 배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잘생긴 젊은이는 죄를 범하려는 참이었고, 하디디는 그 젊은이를 죽임으로써 그의 양친을 불명예로부터 구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벽을 수리해 줌으로써 청년들이 몰락에서 구출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보물이 성벽 밑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지나치게 엄격하였던 모센느 비로소 자신의 판단이 조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디르의 행위는 아주 악한 듯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단순하게 파악한다면, 하디르는 경건하고 율법을 준수하는 모세의 무법자적이고 제멋대로인 사악한 그림자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하디르는 그 이상의 존재이며 신의 감추어진 창조적 행위가 의인화된 것이다.
- 칼 융 『기억, 꿈, 사상(Memories, Dreams, Reflections, 1962 - 사후 출간)』
(* 본래 이 이야기는 이슬람의 성전인 **《쿠란(Qu'ran)》 제18장 '알 카흐프(Al-Kahf, 동굴)'**에 수록된 에피소드다.
성경의 인물이기도 한 **모세(무사, Musa)**와 신비로운 지혜의 스승 카디르(알 키드르, Al-Khidr) 사이의 문답과 여정을 다루고 있다.
"불려지나 불려지지 않으나 신은 존재한다"는 융의 격언과 일맥상통한다.)
"전사로서 자신의 의무(다르마)를 생각하라. 정의로운 전쟁보다 전사에게 더 나은 것은 없다. 만일 네가 이 정의로운 전쟁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너는 자신의 의무와 영광을 버리는 것이며 죄를 짓는 것이다."
- 《바가바드 기타》 제2장 31~33절
성립 년도: 기원전 5세기 ~ 기원전 2세기 사이 성립된 것으로 추정
(* 힌두교의 성전인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에서 크리슈나가 전사 아르주나에게 설득하는 핵심 대목이다. 아르주나는 친족을 죽여야 하는 전쟁의 부당함에 괴로워하며 무기를 내려놓으려 하지만, 크리슈나는 '다르마(Dharma, 의무)'를 강조한다.
철학적 의미: 결과(살생)에 연연하지 말고, 우주적 질서 속에서 주어진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라는 메시지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
- 중국 한나라의 종실인 유안(劉安)과 그가 모은 학자들이 공동 집필한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人間訓)〉 편 (BC 139년경)
고난 뒤에 오는 더 좋은 것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히브리서 11장 40절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뼈와 근육을 수고롭게 하며,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궁핍하게 하여 그가 하는 일마다 어긋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 이유는 그의 마음을 두드려 참을성을 길러주고, 그가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해낼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 《맹자(孟子)》 고자장(告子章) 하(下) (BC 300년경)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최초 발표 연도: 1941년
지면: 잡지 『문장(文章)』 4월호
"문제적 인간이란, 별이 빛나는 하늘(절대적 진리)이 사라진 시대에 고향을 잃고 자신의 영혼과 세계 사이의 균열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방황하는 주인공이다."
- 좌르지 루카치 《소설의 이론 (Die Theorie des Romans)》 (1916년)
(* 문제적 인간은 결코 선하거나 악하거나 이분법적인 속성을 가진 인간이 아니다. 루카치의 말을 빌리자면 문제적 인간은 세계와 일치하지 않는 영혼을 지닌, 시대와의 불화를 제 운명처럼 지닌 존재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의지해 좌충우돌하며 '자기 길'을 찾아 떠나는 소설의 주인공격인 존재이다.
낙관적 전망 위에 선 그는 진취적이고 창조적이며 영웅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전망 부재의 실존적 장벽에 부딪힌 문제적 인간은 퇴행적이고 파괴적이며 퇴폐적이다. 긍정적인 인격 속에 이미 부정적 속성이 긴밀하게 결합된 경우도 적지 않다.)
"‘김일성 만세’를 부를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완성된다."
- 김수영 산문 〈김일성 만세〉 (시 〈김일성 만세〉와 같은 맥락에서 쓰인 미발표 유고)
집필 연도: 1960년 10월 (4.19 혁명 직후의 혼란과 해방감 속에서 쓰였다.)
의미: 김수영이 실제로 북한 체제를 찬양한 것이 아니다. 국가 권력이 금기시하는 가장 극단적인 언어조차 용납될 때, 비로소 그 사회의 **'언론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려 한 것이다. 이 글은 당시의 서슬 퍼런 반공 이데올로기 때문에 발표되지 못하다가, 사후인 2008년에야 세상에 공개되었다.
유태인의 전승 핫시딤 우화
폴란드의 수도 크라코의 유대인 거리에 사는 랍비 제켈의 아들, 랍비 아이시크에 대한 것이다.
그는 수년 동안 재난을 겪으면서도 신앙을 잃지 않은 그의 주 하느님께 경건한 종이었다.
어느날 밤 이 경건하고 신실한 랍비 아이시크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은 멀리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로 가서 보헤미아의 왕성으로 나 있는 다리 밑에 묻힌 숨겨진 보물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랍비는 놀랐지만 가는 것을 미루었다. 그러나 그 꿈은 두 번씩이나 나타났다. 세 번째로 꿈의 계시를 받은 그는 용감하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길을 나섰다.
운명의 도시에 도착하자 랍비 아이시크는 다리에 파수병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들은 밤이나 낮이나 그 다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감히 보물을 파내는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매일 아침 디시 와서 다리를 쳐다보고 파수병들을 살피고 석공술과 토질에 대해서 순박하게 연구하며 해질녘까지 서성거렸다. 드디어 수비대장이 그의 집요함에 감동되어 다가와 그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아니면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친절하게 물어보았다. 랍비 아이시크는 꾸밈없이 그리고 대담하게 자기가 꾸었던 꿈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 그 장교는 뒤로 물러서면서 크,게 웃었다.
"딩신은 정말 바보로군요." 대장은 말했다. "그래 꿈 때문에 그 먼 길을 신이 닿도록 달려오셨나요? 어떤 지각 있는 사람이 그 꿈을 믿겠소? 아, 참 내가 꿈을 믿는 자였다면 나야말로 바로 이 순간에 당신과 반대되는 일을 했을 것이오. 나야말로 당신의 바보 같은 순례여행을 떠났어야 할 것이오. 정반대의 방향으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뻔한 것이지요. 제 꿈 이야기를 해 드릴까요?"
불쾌하게 돋은 수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정 있는 장교였으며, 랍비는 그가 따뜻한 사람임을 느꼈다.
"나는 꿈 속에서 어떤 목소리를 들었지요." 보헤미아의 그 기독교인 수비대장은 말했다. 그런데 그 꿈은 내게 크라코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날더러 그리로 가서 제켈의 아들 아이시크라는 유태인 랍비의 집에 숨겨진 굉장한 보물을 찾으라더군요. 그 보석은 난로 뒤 지저분한 구석에 묻혀 있다는 거예요. 제켈의 아들 아이시크라니!" 그 대장은 재기 넘치는 눈으로 또 한번 웃었다. "그라코로 가서 유태인 거리의 모든 집들의 담장을 부순다는 것을 상상만이라도 해보시오. 그 거리의 사람들의 절반은 아이시크라고 불리고, 절반은 제켈이라고 불리지 않습니까? 제켈의 아들 아이시크라니!" 그리곤 그는 자신의 멋진 농담에 웃고 또 웃었다.
순박한 랍비는 열심히 듣고 나서 꾸벅 절을 하며 낯선 친구에게 감사를 표하고 서둘러 곧장 멀리 떨어진 그의 집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서 여태껏 눈여겨보지도 않던 구석을 파고 마침내 그 보물을 찾아냈으니 이로써 그의 모든 불행은 끝이 났던 것이다. 그 돈의 일부로 그는 기도소를 세웠는데 그 집은 오늘날까지 그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
이제 우리들의 불행과 시련을 끝내줄 진짜 보물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먼 곳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 집의 한가운데 후미진 곳에 묻혀 있으니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 속에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 존재 구조의 생명과 온기를 주는 중심 즉 우리들 심장 속 또 깊은 곳―우리가 파낼 수만 있다면―이라 할 수 있는 난로 뒤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상하지만 불변하는 사실은 멀리 떨어진 지역, 낯선 나라, 이상한 곳으로의 성실한 여행을 마친 뒤라야 비로소 우리 탐색의 길을 이끌어주는 내면의 소리의 의미가 우리에게 알려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불변의 사실과 함께 또 다른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내면의 수수께끼 같은 의미를 알려 주는 것은 다른 신조를 가진 이방 민족의 낯선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 하인리히 짐머(Heinrich Zimmer) 『인도의 신화와 예술(Myths and Symbols in Indian Art and Civilization)』 (1946)
(* 1943년 짐머의 사망 후 그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이 편집하여 세상에 내놓은 명저)
파랑새 이야기
우리가 흔히 '파랑새'라고 부르는 동화의 정확한 출처는 벨기에의 상징주의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가 쓴 희곡 **《파랑새(L'Oiseau bleu)》**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1908년 러시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된 연극 대본으로 세상에 나왔다.
줄거리: 가난한 나무꾼의 자식인 **치칠(Tyltyl)**과 미칠(Mytyl) 남매가 병든 이웃집 딸을 위해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찾아 꿈속의 세계를 여행하는 이야기다.
결말의 교훈: 결국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돌아와 잠에서 깨어보니, 자신들이 집에서 기르던 새가 바로 파랑새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표현은 동양권(한국, 중국,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쓰이지만, 그중 송나라와 연결되는 가장 결정적인 문헌적 근거는 송나라의 대표적인 시인 **신기질(辛棄疾)**의 시 구절이다.
왜 송나라일까?
송나라는 중국 역사상 **서민 문화와 야경 문화(등불 축제 등)**가 가장 비약적으로 발달했던 시기다. 등잔기름을 사용하는 문화가 일상화되면서 "등불 바로 아래는 그림자가 져서 보이지 않는다"는 물리적 경험이 **'가장 가까운 진실을 놓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라는 철학적 비유로 고착화된 것. 송나라 이전에도 "가까운 것을 보지 못한다"는 통찰은 있었지만, 다른 사물을 빌려 표현했다.
1) 춘추전국시대 (한비자): "지혜라는 것은 먼 곳(만 리 밖)은 잘 보면서도 정작 자신의 눈썹은 보지 못한다"는 표현을 썼다. (目失鏡, 則無以正鬚眉)
상징: 등잔 밑이 아니라 '내 눈앞의 눈썹'을 비유로 들었다.
2) 당나라 시대: 주로 '구름에 가려진 달'이나 '안개 속의 꽃'처럼 본질이 가려진 상태를 비유했지, 등잔 밑의 그림자를 지칭하는 관용구는 등장하지 않는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본다(指鹿爲馬와는 다른 견지망월 見指忘月)"
어원 및 출처: 《능엄경 (楞嚴經)》
이 비유는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 중 하나인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줄여서 《능엄경》 제2권에 등장한다.
원문 구절: > "如人以手指月示人, 彼人因指, 當應看月. 若復觀指, 以爲月體, 此人豈唯亡失月輪, 亦亡其指."
(마치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 보일 때, 그 사람은 손가락을 따라 마땅히 달을 보아야 한다. 만약 손가락을 보고 그것을 달의 본체라고 여긴다면, 이 사람은 비단 달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 손가락조차 잃어버린 것이다.)
집필/번역 연도: 산스크리트어 원전의 성립 시기는 명확지 않으나, 중국 당나라 때인 **서기 705년(신룡 원년)**에 반랄밀제(般剌密帝)가 한문으로 번역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약 1,300여 년 전의 기록이다.
단하소불(丹霞燒佛) 이야기
때는 아주 추운 겨울날이었다. 단하 선사가 혜림사라는 절에 머물게 되었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 몸이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그러자 그는 법당에 안치된 목조 불상을 가져다가 도끼로 쪼개어 불을 지폈다.
이 광경을 본 주지 스님이 기겁하며 달려와 소리쳤다.
"이 미친 노릇이냐! 어찌 귀한 부처님 몸을 태워 장작으로 쓴단 말이냐!"
그러자 단하 선사는 태연하게 타오르는 재를 뒤적이며 대답했다.
"부처님을 태워 사리(舍利)를 찾으려고 합니다."
주지 스님이 황당해하며 "나무토막인 불상에서 무슨 사리가 나온단 말이냐!"라고 반박하자, 단하 선사가 쐐기를 박았다.
"사리도 나오지 않는 나무토막이라면, 그저 땔감일 뿐이지 어찌 부처라 하겠습니까? 남은 두 구도 마저 가져와 태워버립시다."
- 출처: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송나라 때 도원이 엮은 선종의 역사서로, 선사들의 계보와 일화를 정리한 가장 대표적인 문헌. (권14 '단하천연' 편)
《조당집(祖堂集)》: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선종 역사서(952년 편찬)로, 해인사에 고려대장경 판본이 남아있어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권4)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시대 수선사의 사굴(혜심)이 선가(禪家)의 화두 1,125칙을 모아 정리한 책에도 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
발생 시기 (연도)
인물: 단하 천연(丹霞 天然, 739년 ~ 824년)
시기: 대략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당나라 시대) 사이
장소: 낙양(洛양)의 **혜림사(慧林寺)**라는 절에서 일어난 사건
당시 단하 선사는 이미 깨달음을 얻고 유람하던 시기였으므로, 그의 중년 이후인 800년 전후의 일로 보고 있다.
(* 상(相)에 집착하지 말라는 단하의 이야기는 이슬람 <코란(꾸란)>에서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것이 이와 비슷한 맥락일까?)
오늘은 고대 인도의 뛰어난 영웅이자 武勇(무용)의 神(신)인 ‘인드라’에 관한 얘기를 통해 ‘힌두(Hindu)’ 사람들의 지혜를 들려드릴까 한다. 아주 재미난 이야기이다.
용 또는 뱀의 형상을 한 악마 ‘브리트라’는 세상의 물이란 물을 모두 자기 뱃속에 채워 넣은 채 산 히말라야 정상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 바람에 사람을 포함한 그 어떤 생명체도 살 수가 없었다.
이에 인드라는 하늘에서 그 뱀을 향하여 번개를 날리니 괴물 브리트라는 흩어져버렸다. 그러자 갇혔던 물은 전 세계 곳곳으로 흐르게 되니 모든 생명체들이 소생하게 되었다.
모두가 영웅 인드라를 기꺼이 왕으로 받들었다. 왕이 된 인드라가 취한 첫 번째 조치는 브리트라가 설치던 동안 폐허가 되어버린 여러 신들의 화려 웅장했던 도시를 다시 건립하는 일이었다.
인드라는 뭐든 만들어내는 제작의 신 ‘비쉬바카르만’을 불러 그 누구도 지은 적이 없는 최고의 궁전과 도시를 지을 것을 명령했다.
비쉬바카르만은 천재라는 명성답게 실로 놀라운 광휘의 궁전과 도시를 건축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인드라는 하루 자고날 때마다 더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라 더 많은 테라스와 누각, 연못과 작은 숲들을 추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쉬바카르만은 견딜 수가 없었다. 멋진 조형물을 디자인하고 건립해놓는 속도보다 인드라의 상상력이 훨씬 앞질러가니 그럴 밖에.
이에 상심한 그는 우주의 조물주이자 높은 곳에 거하는 ‘브라마’를 찾아가 청원을 했다. 그러자 브라마는 ‘너는 곧 짐을 벗게 될 것이니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가보렴’하고 답했다.
다음 날 아침 순례자의 지팡이를 든 한 바라문 소년이 인드라의 궁궐 앞에 모습을 나타내어 문지기에게 왕을 배알코자 한다고 청을 해왔다.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인드라는 그 소년을 정중히 궁궐 안으로 모신 다음 잠시 뜸을 들였다가 찾아온 목적을 물어보았다.
아름다운 소년은 상서로운 비구름 속에 느리게 번쩍이는 번개처럼 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 제신의 왕이시여, 당신이 짓고 있는 궁궐에 대해 의문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이미 화려하기 그지없는 궁궐인데 당신은 끊임없이 새로운 주문을 하고 있다니 비쉬바카르만이 무슨 재주로 완성하기를 바랍니까?’
그러면서 소년은 아주 의미심장한 얘기를 덧붙였다.
‘이는 당신 이전의 어떤 인드라도 당신이 완성하려는 그런 궁궐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하고 말이다.
인드라는 기분이 묘했다. 자신 말고 이전의 또 다른 인드라가 있었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던 것이다.
그러나 인드라는 여유를 부리며 웃으며 대꾸했다.
‘아이야, 내게 말해주렴, 네가 보았던 아니 네가 들었던 또 어떤 인드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말이다.’
어린 주제에 네가 뭘 보았으며 또 들었겠냐는 인드라의 예리한 반문이었다.
그러자 아이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네, 참으로 많이도 보아왔지요’ 하고 놀라운 대답을 해왔다. 그리고는 더욱 더 놀라운 얘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오, 제신의 왕이시여, 저는 우주의 무시무시한 종말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매 순환이 끝날 때의 모든 종말을 무수히 보아왔습니다. 모든 것이 용해되어 최초의 순수한 물로 돌아간다는 것과 그 칠흙 같은 어둠 속 거친 大洋(대양) 속에서 또 다시 하늘과 땅이 생겨나고 시간이 지나 새로운 생명들이 창조되는 것을 되풀이해서 보아왔습니다.’
‘우주의 창조를 담당하는 브라마, 그리고 비쉬누 또 우주를 파괴하는 시바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은데, 그 속에 존재했던 인드라야 정말 감히 셀 수도 없다 하겠습니다.’
‘당신의 부하 중에 땅의 모래알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셀 수 있는 자가 없듯이, 일찍이 아무도 그 무수한 인드라를 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자가 알고 있는 바입니다.’
오랜 시간의 얘기를 마치고 소년은 그저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인드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놀라운 얘기를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날카롭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지? 그리고 그 웃음은 무슨 의미이지? 그러나 이미 인드라의 목소리는 속으로 기어들고 있었다.
그러자 소년은 ‘나는 개미들 때문에 웃었습니다만 그 이유를 밝히라고 요구하지는 마십시오’ 하고 답해왔다. (너무 많은 것을 알면 골치 아프다는 식이라고나 할까.)
그러면서 소년은 다시 얘기하는 것이었다.
‘이 비밀 속에 모든 비애의 싸앗과 지혜의 열매가 감춰져 있지요, 세상의 모든 허영의 나무를 도끼로 내리쳐서 그 뿌리를 베고 그 영광을 흩어버리는 비밀입니다. 이 비밀은 하나의 등불이지만 오래된 지혜 속에 묻혀있어 성자들에게조차 감춰져 있지요.’
이유를 밝히지는 않겠다면서 다시 비밀에 대해 얘기하는 저 심사는 무엇인가 하고 궁금해진 인드라는 간청을 했고 소년은 잠시 뒤로 빼는 시늉을 하다가 마침내 얘기해주었다.
‘눈앞에 보이는 저 개미의 행렬, 저 무수한 개미 하나하나가 한 때는 모두 인드라였습니다. 당신과 같이 훌륭한 행위를 한 자는 제신의 왕에 올랐지만, 다시 환생을 거듭하면서 저처럼 개미가 되었습니다. 이 무리들은 한때 당신처럼 모두 인드라였던 것이지요.’
이야기를 마친 소년은 홀연 사라져버렸다. 그 소년은 바로 비쉬바카르만이 찾아가 청원을 했던 우주의 창조주 브라마였던 것이다.
인드라는 더 이상 궁궐을 짓는데 흥미를 잃게 되었다. 모두 허망한 짓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에 인드라는 문득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광야의 운둔 생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름답고 정열적인 왕비는 슬픔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러다가 인드라 왕실에서 지혜가 높기로 이름이 높은 ‘브리하스파티’를 찾아가 하소연을 했다. 더 이상 살 의욕이 없으니 어떡하면 좋으냐고 말이다.
지략이 뛰어난 마법사 브리하스파티는 알았다고 답한 다음 다시 인드라를 찾아가 강론을 했다.
정신적이고 초월적인 지혜와 행복에 대해 얘기함과 동시에 세속적인 德(덕)과 행복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다. 브리하스파티는 균형을 잡아주었고 이에 인드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누그러뜨리게 되었다.
브리하스파티는 통치의 미덕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애기해주었지만, 동시에 세속적인 행복 즉 남녀 간의 애정과 그 性的(성적)인 技巧(기교)에 대해서도 강론을 하고 책을 지었다. (여기서 성애에 관한 저 유명한 책이 카마수트라라고 하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교 때 읽은 바가 있다.)
이리하여 인드라는 지나친 정신적 허영을 버림과 동시에 살아있음의 세속적 행복도 포기하지 않게 되었다. 인드라는 이리하여 끝없이 순환하는 삶의 脚本(각본)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균형 잡힌 지식에 도달하게 되었고 물론 그 뒤로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고 또 누렸다고 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 하인리히 짐머(Heinrich Zimmer) 『인도의 신화와 예술(Myths and Symbols in Indian Art and Civilization)』 (1946)
(* 약간 덧붙이면 인드라는 인도 아리안의 신화에서 번개와 벼락이 神(신)으로 자리잡은 것, 즉 뇌정신(雷霆神)이다. 인드라는 힌두의 종교경전인 ‘리그 베다’ 속에 신에 바치는 讚歌(찬가)에 엄청나게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신이다. 신들이 마시는 술인 ‘소마’를 마시면서 호기를 부리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인드라는 비가 귀한 인도 땅에 비를 몰고오는 신이기도 하다. 앞서의 얘기 속에서 악마 브리트라는 용으로서 이 놈이 물을 다 삼켜버리면 세상은 가뭄이 든다고 믿었던 것이고 인드라는 물을 다시 흐르게 하는 신으로 추앙을 받았다. 그가 사는 궁전에는 천인(天人) 간다루바가 음악을 연주하면 그에 맞추어 선녀 ‘아프사라스’가 춤을 춘다. 아프라사스는 봉덕사 종에 새겨져 있는 허리 가는 섹시한 飛天(비천)상이 바로 그것이다. 인드라는 그리고 불교를 통해 불법의 수호신인 帝釋天(제석천)으로 알려져 있다. 앞에 소개한 이야기는 실로 많은 지혜를 담고 있다. 모든 것이 한때의 영광이라는 점, 욕망은 한이 없다는 점, 그리고 무수히 반복되는 永劫(영겁)의 시간 속에서 우리들 각자는 脚本(각본)에 따라 주어진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 정신적인 지혜와 행복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속의 지혜와 행복도 그에 못하지 않게 중요하다는 中庸(중용)과 均衡(균형)의 정신 같은 것이 그것이다. 힌두의 지혜는 불교나 기독교 그 어떤 종교의 가르침보다 뛰어나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영겁회귀 (Ewige Wiederkunft)
- 프리드리히 니체
원전: 『즐거운 학문 (Die fröhliche Wissenschaft)』 (제341절 '가장 무거운 짐') 및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
출판 연도: 1882년 (즐거운 학문), 1883~1885년 (차라투스트라)
* 죽지 못하는 존재가 겪는 시간의 저주와 **불생불멸(不生不滅)**의 허무를 다룬 걸작들
1) 보르헤스 단편집 『알레프(The Aleph)』 (1949년) - 단편 「불사자 (The Immortal)」
2) 오시이 마모루 『시끌별 녀석들 2기: 뷰티풀 드리머』
3) 다카하시 루미코의 『인어 시리즈』 (1984년 ~ 1994년)
4) 곤 사토시 『파프리카』 (2006년)
5) 『맨 프롬 어스 (The Man from Earth)』 (2007년)
6) 『므네모시네의 딸들』 (2008년)
우리는 여전히 저의 집인 페리선 ‘발레호’ 호에 있습니다. 마침 오후 날씨가 꽤 좋아서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대신 테라스로 나오기로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 자신 뒤에 숨어 있는 ‘무(Nothingness)’라는 기묘한 감각의 신비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우선 저는 눈 뒤에 존재하는 빈 공간, 모든 소리가 흘러나오는 침묵, 그리고 모든 별이 나타나는 텅 빈 공간을 예로 들었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지난 담화에서 저는 모든 것 뒤에 있는 이 기묘한 공허를 ‘신’에 비유했습니다. 형상도 없고 우상화할 수도 없으며, 우리가 전혀 개념화할 수 없는 그런 신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기본적으로, 당신이 정말로 본질에 다다랐을 때 그 공허가 바로 당신의 ‘참된 자아(Self)’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제 우리 문명에서 “나는 신이다” 혹은 “당신은 신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이상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물론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렇게 느꼈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문화에서 신은 우주의 절대 군주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누군가 일어나서 “음, 내가 신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체제 전복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우두머리 본인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우두머리의 아들이라고 주장했고, 이는 다른 모든 사람을 비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문화에는 힌두교도들이 가진 생각, 즉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 모든 유정적 존재가 변장한 신이라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를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 자신을 이 우주로 표현되는 전체 에너지와 동일하고, 연속적이며, 하나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별은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중심입니다. 즉, 중심이 있고 모든 빛줄기가 거기서 뻗어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전체의 형상으로서, 모든 에너지는 빛줄기가 뻗어 나가는 중심이라고 느낍니다. 따라서 우리 각자는 기본적으로 ‘전체’인 그것의 표현입니다.
서구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우리는 신을 군주뿐만 아니라 세계의 ‘제조자’로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를 위대한 엔지니어가 만든 일종의 기계나 인공물로 바라봅니다. 인도에는 이와 다른 개념이 있습니다. 세계를 인공물이 아니라 ‘드라마’로 보는 것이죠. 따라서 신은 우주의 제조자나 건축가가 아니라, 우주의 ‘배우’이며 모든 배역을 동시에 연기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는 우리 각자가 ‘인격(Person)’이라는 아이디어와 연결됩니다. ‘Person’은 라틴어 ‘Persona’에서 왔는데, 이는 그리스-로마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합니다. 이것은 세계에 대한 완전히 다른 개념이며, 제가 보여드리겠지만 이는 놀라울 정도로 타당합니다.
우리는 ‘당신’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스스로를 볼 수 없습니다. 제가 지적했듯이 당신은 당신의 몸이 어떻게 자라는지, 신경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 자연환경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따라서 이 ‘알 수 없는 당신’, 즉 에고(Ego)가 아닌 당신, 그것이 바로 신입니다. 우주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Ground of Being), 즉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항상 존재하는 실재, 현실의 기초에 놓여 있는 실재를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입니다.
이제 좀 더 신화적인 묘사로 들어가 봅시다. 당신이 신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당신에게 모든 시간, 모든 영원, 모든 권능이 주어졌다고 합시다.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제 생각에 당신은 얼마 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겁니다. “어이, 길을 잃어버리자고!” 이는 다른 질문과 같습니다. 매일 밤 당신이 원하는 어떤 꿈이든 꿀 수 있는 권능이 주어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연히 당신은 어떤 시간의 길이든 꿈꿀 수 있습니다. 하룻밤에 75년, 100년, 아니 1,000년의 시간을 꿈꿀 수 있고, 그것은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잠들기 전에 결심할 것입니다. “오늘 밤엔 이러이러한 꿈을 꿀 거야.” 음, 당연히 당신은 모든 소망을 성취하는 것부터 시작할 겁니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즐거움, 가장 멋진 식사, 가장 황홀한 연애, 가장 낭만적인 여행을 하겠지요. 필멸자는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을 듣고 상상을 초월하는 풍경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밤 동안, 어쩌면 한 달 내내 그렇게 멋진 시간을 보낼 겁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당신은 생각하기 시작할 겁니다. “음, 웬만한 건 다 봤어. 좀 더 짜격적인 게 필요해. 모험을 좀 해보자고.” 그래서 당신은 온갖 위험에 위협받는 꿈을 꿀 것입니다. 용으로부터 공주를 구하고, 유명한 전투에 참여하며 영웅이 되겠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당신은 점점 더 터무니없는 일들을 스스로에게 도전할 것이고, 게임의 어느 지점에서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오늘 밤에는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방식으로 꿈을 꿀 거야.” 그래서 꿈의 경험을 완전한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깨어났을 때 얼마나 충격적이겠습니까! 당신은 정말로 스스로를 겁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 날 밤들에는 깨어났을 때의 대비를 위해 더욱 극단적인 경험들을 스스로에게 감행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극심한 가난, 질병, 고통의 상황에 놓인 당신을 꿈꿀 수도 있습니다. 고통의 진동을 가장 강렬한 지점까지 밀어붙이다가 갑자기—우와!—깨어나서 그것이 결국 꿈이었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괜찮다는 것을 발견하겠죠. 그리고 당신은 말할 겁니다. “와, 대박인데! 정말 짜릿했어!”
음, 당신이 지금 이미 그러고 있지 않다는 걸 어떻게 압니까? 모든 문제와 복잡한 인생 상황을 안고 여기 앉아 내 말을 듣고 있는 당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들어가기로 결심한 그 꿈일지도 모릅니다. 마음에 든다면 끝내주는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깨어났을 때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보이십니까? 이것이 드라마의 본질입니다. 드라마를 보러 오는 모든 사람은 그것이 연극일 뿐임을 압니다. 프로시니엄 아치—영화관 스크린—는 이것이 환상이며 실제가 아니라고 말해줍니다. 하지만 배우들은 그것이 실제인 것 같은 기분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즉, 그들은 관객이 불안해서 의자 끝에 걸터앉게 하고, 웃게 하고, 울게 하고, 공포를 느끼게 할 만큼 설득력 있게 연기할 것입니다. 비록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는 독일어로 ‘힌터게당케(Hintergedanke)’, 즉 거의 의식하지 못하지만 늘 알고 있는 ‘이면의 생각’이 있음에도 말입니다. 극장에서 우리는 그것이 연극일 뿐이라는 ‘힌터게당케’를 가지고 있지만, 배우의 거장다움은 그것이 실제라고 우리를 (거의) 설득하려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러니 상상해 보십시오. 가능한 최고의 배우(신)와, 속아서 그것이 실제라고 믿을 준비가 된 가능한 최고의 관객(신)이 있는 상황을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들 모두는 우주의 근본적인 의식, 근본적인 마음이 취하고 있는 수많은 가면들입니다. G.K. 체스터튼의 시구를 빌리자면 이렇습니다.
“이제 거리의 위대한 존재는 / 인간의 어떤 몸짓과도 같아 보이네 / 기묘한 민주주의 속에서 움직이는 / 신의 백만 개의 가면들.”
그리고 물론, 여기 있습니다. 이것이 우주의 보호자인 비슈누의 가면입니다. 보시다시피 이것은 내 눈과 당신들 모든 눈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자가 동일한 중심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가면입니다.
만약 제가 다른 인간을 바라보고 그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면—그거 참 묘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러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눈을 너무 가까이 들여다보는 것에는 당혹스러운 구석이 있습니다. 마치… “나를 그렇게 가까이 보지 마세요. 내 정체를 들킬지도 모르니까요. 내가 진짜 누구인지 당신이 알아버릴지도 몰라요.”라고 하는 것 같죠. 당신은 그 정체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다른 사람이 당신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고 당신이 부끄러워하는 것들, 당신의 결점들, 죄책감을 느끼는 모든 것을 읽어낼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은 비밀이 있을까요? 눈은 우리의 가장 민감한 기관입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의 눈을 보고, 보고, 또 본다면—무엇보다도—당신은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너머를 들여다본다면—물론—그것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인 이유는 바로 ‘우주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코스모스의 눈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누군가의 눈을 깊이 들여다볼 때 당신은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고, 상대방은 도처를 내다보고 있는 동일한 ‘자아(Self)’—이 가면이 다면적인 것처럼 수많은 눈을 가진 그 자아—를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에너지가 수무수한 배역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명백합니다—너무나 명백하죠—왜냐하면 당신이 신이고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통제한다면, 당신은 지루해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했듯이, 그것은 플라스틱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완전히 예측 가능하고, 완전히 알려져 있고, 완전히 투명해서 어떤 신비도, 어떤 놀라움도 없을 것입니다.
또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봅시다. 우리 기술의 목적은 세상을 통제하는 것, 말하자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원하는 무엇이든 얻고 어떤 욕망이든 충족할 수 있는 초전자적 푸시버튼 우주를 갖는 것입니다. 당신은 램프를 가진 알라딘이고, 그것을 문지르면 지니가 나타나 “살라무 알라이쿰, 저는 당신의 겸손한 종입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말하죠.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말입니다. 그러다 얼마 후—제가 묘사한 그 꿈들에서처럼—어느 날 당신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잊기로 결심하고 램프의 지니에게 말할 겁니다. “놀라운 일(surprise)을 하나 다오.” 혹은 천상의 궁정에 있는 신이 그의 재상에게 고개를 돌려 말할지도 모릅니다. “오, 신도들의 지휘관이여, 우리는 지루하구나.” 그러면 궁정의 재상이 대답하겠죠. “오 왕이시여, 영원히 사소서! 하지만 분명 당신의 무한한 지혜로 지루하지 않을 방법을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왕은 대답할 겁니다. “오 재상아, 우리에게 ‘놀라움’을 다오.”
그것이 바로 ‘아라비아나이트’ 이야기의 전체 기초입니다. 여기 매우 강력하지만 지루해진 술탄이 있었고, 그래서 그는 세헤라자데에게 매일 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야기하기—모험에 뛰어들기—가 결코 끝나지 않도록 말이죠.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극장에 가고 영화를 보러 가는 이유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놀라움을 원하며, 놀라움은 당신이 자신을 ‘타자화’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즉, 당신의 통제 하에 있지 않은 어떤 요소가 당신의 경험 속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의 기술이 완전히 성공하여 모든 것이 우리 통제 하에 있게 된다면, 우리는 결국 “새로운 버튼이 필요해”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모든 제어 버튼들 사이에서 우리는 항상 ‘놀라움(surprise)’이라고 적힌 버튼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 위험해지지 않도록 시간 제한을 둘 것입니다. 15분 동안, 한 시간 동안, 하루, 한 달, 일 년… 혹은 평생 동안의 놀라움 말이죠. 그리고 결국 놀라움의 회로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통제권을 갖게 되고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놀라움’이라고 적힌 버튼을 한 번 더 누를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제가 설명해 온 이 일에는 묘한 리듬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리듬은 시간의 경과와 진화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힌두교의 생각과 일치합니다. 그들의 생각은 우리와 반대입니다. 우선, 힌두교도들은 시간을 원형으로, 빙글빙글 도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신의 시계를 보세요. 결국 빙글빙글 돌지 않습니까. 하지만 서구인들은 시간을 직선적인 일방통행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생각을 히브리 종교와 특히 성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얻었습니다. 창조의 시간이 있고, 그다음 종말론적 대재앙—세상의 끝—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과정이 있으며, 그 후에 모든 것이 바로잡히고 모든 질문에 답이 내려지며 각자의 공적에 따라 정의가 실현되는 심판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 후 우주는 어떤 면에서 정체될 것입니다. 영원히 구원받은 자와 영원히 저주받은 자가 나뉘겠죠.
오늘날 우리 중 많은 이가 그것을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서구 역사의 전 과정에서 지배적인 신념이었으며 우리 문화에 엄청나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힌두교도들은 세상이 영원히 리듬을 타며 돌고, 돌고, 또 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 회전을 산스크리트어로 ‘칼파(kalpa)’라고 불리는 기간으로 계산하는데, 각 칼파는 4,320,000년 동안 지속됩니다. [편집자 주: 불교 학자들은 이후 칼파의 기간이 이보다 훨씬 더 길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신화가 그렇듯, 이는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예시적인 의도입니다.] 따라서 칼파는 우리가 아는 세상이 나타나는 기간, 즉 ‘만반타라(manvantara)’입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역시 한 칼파 동안—4,320,000년—지속되는 ‘프랄라야(pralaya)’라는 기간이 오는데, 이는 “세상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때”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신성(Godhead)인 브라마의 낮과 밤입니다. 세상이 나타나 있는 만반타라 동안 브라마는 잠들어 있으며, 우리 모두와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인 것처럼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낮인 프랄라야 동안 그는 깨어 있으며,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혹은 성별 등을 초월한 존재이므로 ‘그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한번, ‘놀라움’ 버튼을 누르는 것이죠.
우리가 꿈을 꾸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가장 즐겁고 황홀한 꿈을 먼저 꾸고, 그다음 좀 더 모험적이 되어 뜨거운 차원의 경험들을 탐험하게 되는 것처럼, 힌두교도들도 나타난 우주인 만반타라가 네 기간으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이 네 기간은 길이가 다릅니다. 첫 번째가 가장 길고 마지막이 가장 짧으며, 힌두교 주사위 놀이의 던지기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네 가지 던지기가 있습니다. 4의 눈, 3의 눈, 2의 눈, 1의 눈입니다. 4의 눈은 우리 게임의 6처럼 항상 최고의 던지기이고, 1의 눈은 최악의 던지기입니다.
따라서 첫 번째 던지기는 ‘크리타(kṛta)’라고 불리며, 이 던지기가 지속되는 길고 긴 epoch를 ‘유가(yuga)’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유가를 ‘epoch(시대)’로, 칼파를 ‘eon(겁)’으로 번역하겠습니다. ‘크리타’라는 말은 “완료된”이라는 뜻으로, 우리가 “잘했다(well done)!”라고 말할 때와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황금기라고 부르는 세상의 존재 기간으로, 모든 것이 완벽하고 완벽하게 이루어진 때입니다.
그것이 끝나면 ‘트레타 유가(treta yuga)’가 오는데, 이는 3의 던지기를 의미합니다. 이 발현 기간에는 무언가 ‘약간’ 어긋나 있습니다. 즉, 사물 속에 불확실한 요소, 불안정의 요소, 모험의 요소가 들어옵니다. 아시다시피 다리가 세 개인 의자는 네 개인 것만큼 안전하지 않습니다. 균형을 잃고 쓰러지기 좀 더 쉽죠.
그 기간도 매우 오래 지속되지만, 그다음에는 ‘드바파라 유가(dvapara yuga)’라고 불리는 것이 옵니다. ‘드바(Dva)’는 ‘둘’을 의미합니다. 이 기간에는 선과 악, 즐거움과 고통이 균등하게 균형을 이룹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칼리 유가(kali yuga)’가 옵니다. ‘칼리’는 최악의 던지기, 즉 1의 던지기를 의미하며 가장 짧은 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이 기간은 불쾌하고 고통스럽고 악마적인 원칙이 마침내 장악하는 발현 기간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짧은 차례를 갖는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즉, 그들이 모든 유가에 할당한 연수를 합쳐보면, 악한 원칙은 전체 시간의 약 3분의 1 정도만 무대를 차지할 뿐입니다. 그리고 칼리 유가의 끝에 신화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파괴적인 원칙으로 나타난 신인 세상의 위대한 파괴자 시바(Shiva)가 ‘탄다바(Tāṇḍava)’라는 춤을 춘다고요. 그는 푸른 몸에 열 개의 팔을 가졌으며 피부의 모든 모공에서 번개와 불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으로 나타나, 우주가 마침내 파괴되는 춤을 춥니다. 그것은 우주적 죽음의 순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브라마가 깨어나는 순간입니다. 시바가 몸을 돌려 무대 밖으로 걸어 나갈 때, 뒤에서 본 모습은 바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창조주 브라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여드린 가면의 주인공인 비슈누(Viṣṇu)는 보존자입니다. 즉, 수많은 얼굴로 나타나는 신성의 전체 상태인 그 모든 과정의 지속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삶에서 악의 역할에 대한 철학이라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어떤 면에서 합리적이고 자비롭습니다. 보십시오, 만약 신이 세상을 가지고 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그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세상을 창조했고, 자신 외에 이 모든 존재를 만들어 그들이 끔찍한 고통을 겪게 한다면… 말기 암, 나팔탄에 타 죽는 아이들, 강제 수용소, 종교 재판, 인간이 겪는 공포들 말입니다. 어떤 신이 그것을 창조했다고 말하는 시스템 하에서 그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신이 그것을 만들지 않았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으며 전체에 어떤 합리성도 없다면, 그것은 단지 백치가 들려주는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찬,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유일한 출구는 자살뿐이라고 말하기 쉽겠죠. 그것은 터무니없는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가정해 봅시다. 제가 당신에게 묘사한 그런 종류의 것이라고 가정해 보세요. 신이 이 모든 희생자를 거느리고 그들을 보상하거나 처벌함으로써 자신의 정의를 뽐내며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가정해 보세요. 신이 모든 배역을 연기하는 분이고, 나팔탄에 타 죽는 아이가 바로 신이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승리자 외에는 희생자가 없습니다. 경험되는 모든 다양한 역할들, 느껴지는 모든 다양한 감정들은 원래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기로 욕망하고, 결정하고, 의지한 바로 그 존재에 의해 느껴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묘하게도 기독교에도 이와 평행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죠. 성 바오로의 ‘빌립보인들에게 보낸 서간’에는 매우 묘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품으셨던 그 마음을 여러분도 품으십시오. /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이셨지만, /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 오히려 자신을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 그분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서 당신은 정확히 똑같은 과정을 보게 됩니다. 신이 인간이 되어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 심지어 죽음까지도 겪는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리고 성 바오로는 “그 마음을 여러분도 품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의식이 당신 안에도 있게 하라는 뜻입니다—좋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신임을 알았습니다! 깨어나서 결국 당신이 진짜 누구인지 발견하십시오! 물론 우리 문화에서 그들은 당신이 미쳤다거나 신성모독이라고 말할 것이고, 당신을 감옥이나 정신병원에 가둘 것입니다. 그게 그거죠.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인도에서 깨어나 친구나 친척들에게 “세상에, 내가 방금 내가 신이라는 걸 발견했어!”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웃으며 말할 것입니다. “오! 축하하네! 드디어 알아냈군!”
- 앨런 와츠 (Alan Watts, 1915–1973) 에세이 「Cosmic Drama」(1972)
(* 핵심 주제: 힌두교의 '릴라(Lila, 우주의 놀이)'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이 사실은 신이 자신을 잊어버리고 벌이는 거대한 연극이자 꿈이라는 통찰을 담고 있다.)
시바(Shiva)의 춤과 릴라(Lila/Leela, 리라)
1. 어원 (Etymology)
산스크리트어: 리라(Līlā, लीला)
어원적 의미: '놀이(Play)', '스포츠(Sport)', '유희'를 뜻한다.
핵심 개념: 어떤 특정한 결과나 보상을 얻기 위해 하는 '노동(Work)'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 때문에 하는 자발적인 활동을 의미.
2. 시바의 춤 관점에서의 의미
시바의 춤(나타라자)은 우주의 창조, 유지, 파괴를 상징합니다. 이를 '릴라'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a. 목적 없는 창조: 시바가 춤을 추는 이유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즐거워서 춤을 추듯, 우주의 생성과 소멸은 시바의 신성한 **유희(Divine Play)**라는 것.
b. 우주는 신의 무대: 우리가 겪는 생로병사와 우주의 삼라만상은 실체가 있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바가 펼치는 거대한 연극이자 춤사위.
c. 해방(Moksha)의 열쇠: 인간이 고통받는 이유는 이 '릴라(놀이)'를 '진지한 현실'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삶이 신의 춤이자 놀이임을 깨닫는 순간,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 이 철학의 핵심.
3. 출처 (Sources)
'릴라' 개념은 인도 철학 전반에 흐르고, 바크티(산스크리트어: भक्ति , 힌두교에서 신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 사상과도 연관이 깊지만, 시바의 춤과 관련하여 주로 언급되는 문헌과 맥락은 다음과 같다.
a. 브라흐마 수트라 (Brahma Sutra): "Lokavattu lila kaivalyam(신의 활동은 세상을 위한 유희일 뿐이다)"라는 구절을 통해 신의 창조 행위에 어떤 사적인 동기도 없음을 명시.
b. 시바 푸라나 (Shiva Purana): 시바의 여러 현현(Avatar)과 춤이 우주적 유희로서 어떻게 전개되는지 상세히 묘사.
c. 프라탸비즈냐 (Pratyabhijna, 카슈미르 샤이비즘): "우주는 신의 의식(Chiti)이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즐겁게 추는 춤"이라고 정의하며 릴라 철학을 심화.
d. 현대적 해석: 프리초프 카프라의 저서 **《현대 물리학과 동양 사상 (The Tao of Physics)》**에서 '시바의 춤'을 현대 물리학의 입자 운동과 연결하며 '릴라' 개념을 대중적으로 알린 바 있다.
4. 요약
시바의 춤에서 릴라는 **"우주는 신이 그저 즐거워서 추는 춤이자 놀이"**라는 뜻이다. 이는 삶의 모든 비극과 희극을 신성한 유희의 일부로 수용하는 거대한 긍정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아모르파티 (Amor Fati - 운명애)
필연적인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태도
- 프리드리히 니체
원전: 『즐거운 학문』 제4권 276절
출판 연도: 1882년
홀로그램
발명 및 명명 연도: 1947년
출처: 1948년 네이처(Nature)지에 발표한 논문 「새로운 현미경 원리 (A New Microscopic Principle)」
역사적 맥락: 당시 가보르는 전자현미경의 해상도를 높이려는 연구 중에 이 원리를 발견했다. 초기에는 광원이 부족해 상용화되지 못하다가, **1960년 레이저(Laser)**가 발명되면서 비로소 우리가 아는 선명한 입체 영상으로 구현되었다. 데니스 가보르는 이 공로로 197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홀로그래픽 우주론: 현대 물리학(데이비드 붐 등)은 우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홀로그램일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는 우리가 보는 물질 세계가 실제로는 정보의 투영(시뮬라크르)일 뿐이라는 철학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과학적 비유가 된다.
프랙탈
'프랙탈(Fractal)'은 현대 수학에서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과 **'소수 차원'**을 가진 기하학적 구조를 뜻한다. 화엄경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논리를 시각적으로 가장 완벽하게 증명하는 개념이다.
이 용어를 처음 만들고 체계화한 사람은 폴란드 태생의 프랑스/미국 수학자 **베누아 만델브로(Benoit Mandelbrot)**다.
명명 연도: 1975년
원전: 『프랙탈: 형태, 찬스 그리고 차원 (Les Objets fractals: forme, hasard et dimension)』
역사적 맥락: 만델브로는 영국 해안선의 길이를 측정할 때, 측정 단위(자)가 작아질수록 해안선의 길이는 무한히 늘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부분의 모양이 전체의 모양과 닮아 있는 구조를 '프랙탈'이라 정의했다.
유명한 모델: 만델브로 집합(Mandelbrot set), 코흐 곡선(Koch snowflake) 등.
"우리가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지 않을 확률은 수십억 분의 일에 불과하다"
- 일론 머스크, 2016년 6월
Code Conference 2016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 팔로스 베르데스에서 개최)
(* 발언 배경: 리코드(Recode)의 조슈아 토폴스키(Joshua Topolsky)와의 대담 중, "우리가 시뮬레이션 안에 살고 있다는 닉 보스트롬의 논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답변하며 나왔다.
핵심 논리: * 40년 전 게임은 '퐁(Pong)'처럼 조잡한 사각형 두 개와 점 하나였다.
현재는 수만 명이 동시에 접속하는 실감 나는 3D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며, VR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기술 발전 속도가 조금이라도 지속된다면, 조만간 게임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미 그런 문명에 의해 만들어진 시뮬레이션 속에 있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결론이다.
닉 보스트롬(Nick Bostrom)과의 연결
머스크의 이 발언은 2003년 옥스퍼드 대학교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이 발표한 논문 **《당신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는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노리치의 줄리안(Bd. Julian of Norwich, 1342~1416)의 신비경험
어느 날 주리언은 일과를 처리하다가 갑자기 자신이 신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녀의 손바닥에는 무언가가 놓여져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개암만 한 크기의 아주 동그란 물체였다. 그녀는 그것이 어떻게 될지 몰라 굉장히 겁이 났고, 그것이 대체 무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줄리언의 방 안에 늘 머물고 있던 신이 줄리언을 쳐다보고 “그것은 내가 만든 만물이다”라고 말한 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바로 그 순간 노리치의 줄리언은 희망과 평온함을 강렬하게 느꼈다고 적고 있다. 그녀는 갑자기 신이 동그랗고 조그만 개암만 한 물체를 영원히 안전하게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이 그것을 사랑하셨으니 그것은 언제까지나 안전하게 그녀의 손바닥 안에 있을 것이다.
잠시 후 개암만 한 그 물체 역시 사라져버렸다. 노리치의 줄리언의 삶은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줄리언은 그 환상을 통해서 쉽게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었고,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새로운 인생관과 새로운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은 닥쳤다가 사라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조그만 개암만 한 그 물체는 늘 안전할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는 신은 우리를 보호할 것이다. 신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고, 앞으로도 늘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줄리언은 인생이 자신에게 어떤 불행을 몰고온다고 해도 ‘듬직한 신’이 곁에 있는 한 결국에는 안전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의 신비 체험을 떠올리게 한다.)
다스칼로스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성'이나 '절대자'를 **'온토피시스(Ontophysis, 존재의 본질)'**라고 명명하며, 이것이 인간 내면에 이미 깃들어 있음을 강조한다.
"온토피시스는 결코 우리 밖에 있는 어떤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생명력의 근원이자,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본질이다. 우리가 '나(I am)'라고 말할 때, 그 목소리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온토피시스다. 인간의 진화란 결국 자신의 에고(Ego)라는 두꺼운 껍질을 벗겨내고, 우리 안에 내재된 온토피시스의 빛을 온전히 드러내는 과정이다."
- 키리아코스 마르키데스 (Kyriacos Markides) 《불타는 가슴 (The Mountain of Silence), 2001》
한스 카스토르프는 눈송이를 여러 번 확대 렌즈로 관찰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정교하고 규칙적인 조그만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잘 알았다. 아무리 솜씨가 뛰어난 보석 세공업자도 이러한 보석, 별 모양의 훈장, 다이아몬드 브로치보다 더 다채롭고 섬세하게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숲에 잔뜩 쌓여 있고, 산과 골짜기를 뒤덮고 있으며, 그의 스키를 미끄러지게 해 주는 이 모든 가볍고 푸석푸석한 하얀 눈가루는 고향의 바닷가 모래를 생각나게 해 주는 것 말고도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잘 알다시피 눈송이를 구성하는 것은 모래 알갱이가 아니고 무수한 물방울이 응결하여 갖가지 규칙적인 결정을 이루고 있는 입자였다. 이것은 사실 식물체와 인체의 생명 원형질을 부풀게 하는 무기 성분인 물방울의 입자였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고, 신비로운 작은 보석인 이러한 무수히 많은 마법의 별꽃들은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이 없었다. 거기에는 항상 동일한 기본형, 변과 각이 똑같은 육각형이 조금씩 다르게 극히 정교한 모습으로 무한한 독창성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체적으로는 이러한 차가운 작품마다 절대적인 균형과 얼음장 같은 규칙성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 점이 이 꽃의 무시무시하고 반유기적이며 반생명적인 요소였다. 그것은 무척이나 규칙적이었고, 생명을 이루는 유기물이 그렇게까지 정연한 법은 결코 없었으며, 생명은 그것을 치명적이라고 느꼈고, 죽음 그 자체의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한스 카스토르프는 고대의 신전 건축가가 기둥을 배열할 때 왜 남몰래 일부러 약간 파격의 미를 추구했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 토마스 만(Thomas Mann) 『마의 산(Der Zauberberg)』
출판 연도: 1924년
집필 기간: 1912년 ~ 1924년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약 12년 동안 집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보르헤스의 단편 <원형폐허 Las ruinas circulares>(1940)에서는 '불에 타죽을 수 없는 인간'이 등장한다.
보르헤스의 주인공이 불에 타죽지 않는 이유는 그가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는 동양 철학의 영향을 받아 인간은 꿈속의 등장인물처럼 실체가 없다고 생각했다.
...
보르헤스의 작품에서 가장 반복되는 테마 중 하나는 **'개별 자아의 부정'**이다.
그는 "한 사람이 셰익스피어의 시를 읽을 때,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이 바로 셰익스피어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의 단편 **<불사조의 파당>(1944)**이나 **<신학자들>(1947)**에서는 두 대립하는 인물이 결국 신의 관점에서는 동일한 존재였음을 깨닫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만물에 신성이 깃들어 있고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범신론적 사고와 닿아 있다.
...
보르헤스는 범신론의 대표 주자인 바뤼흐 스피노자를 무척 존경했다.
그는 스피노자를 위해 시를 쓰기도 했으며, "신, 즉 자연(Deus sive Natura)"이라는 스피노자의 명제를 문학적으로 변주했다.
보르헤스에게 우주는 신이 만든 피조물이 아니라, 신 그 자체이거나 신의 꿈이었다. 우주라는 거대한 도서관 자체가 신의 현현이라고 본 것이다.
...
범재신론(Panentheism)과의 접점: "신의 글자"
범재신론은 "세계가 신 안에 있지만, 신은 세계보다 크다"는 입장입니다. 보르헤스의 단편 **<신의 글자(La escritura del Dios)>(1949)**는 이런 관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감옥에 갇힌 마술사가 표범의 점무늬에서 우주 전체를 요약하는 단 한 글자의 '신의 문장'을 발견한다.
그 문장을 깨닫는 순간, 마술사는 개인의 고통과 자아를 잊고 우주 그 자체가 된다. 세계 안에 신의 질서가 암호화되어 있다는 이 설정은 범재신론적 세계관과 매우 흡사하다.
우나무노는 스페인의 작가인데, 그가 쓴 <안개>는 필연과 우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를 제공한다.
이 책은 주인공 아우구스토가 거리에서 한눈에 반한 에우헤니아를 쫓아가는 것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에우헤니아에겐 이미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에우헤니아를 향한 그의 관념적 사랑과 복잡한 현실이 꼬이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그녀의 사랑을 쟁취하는 듯 싶지만, 결국 그녀의 배신으로 끝나버린다. 그 배신의 고통을 참지 못했던 아우구스토는 자살을 결심한다. 이것이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모든 것이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나려는 찰나, 갑자기 작가 우나무노가 소설 속에 직접 뛰어든다. 이 책의 진정한 백미는 후반 31장부터이다. 자살을 결심한 주인공 앞에 나타난 그는 "너는 자살할 수가 없어.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으니까…."라고 이야기한다. 아우구스토란 인물은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이며, 환상의 산물일 뿐이므로 아우구스토에겐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자살을 허락하지 않는 작가와 논쟁하는 주인공 아우구스토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창조자인 작가 우나무노와 피조물인 주인공 아우구스토, 그들 중 진정한 실체는 누구일까? 아우구스토는 소설 속 등장인물인 자신을 작가의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수 있다면, 신 또한 같은 마음으로 작가 우나무노를 죽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자신은 자율적 의지를 가지고 행동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한다. 여기서부터 존재와 허구의 실체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현실은 소설이되고, 소설이 현실이 되는 독특한 상황을 작가는 '소셜'이라 표현한다. 우리 모두가 '소셜적 실체'에 불과하며, 결국은 모두가 원하든 원하지 않는 죽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더 큰 무한한 존재에 의해 조정되고, 운명지워진다는 것이다.
결국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다. 인간은 누구든 운명에 굴복하여 결국 '죽음'이란 것을 피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이다. 그러나 주인공 아우구스토처럼, 창조주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피력할 수 있는 자율적 의지를 가진 존재하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 미겔 데 우나무노 《안개 (Niebla)》 (1914년) 요약
유무중도(有無中道)
기원: 붓다의 가리야나경 (Kaccayanagotta Sutta)
시기: 기원전 5세기경 (석가모니 생존 시기)
핵심 의미: '있다'와 '없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중도의 견해. 유무중도(有無中道)는 만물이 존재한다(有)는 집착과 존재하지 않는다(無)는 극단을 모두 벗어난 불교의 근본 이치이다. 고정된 실체가 있다는 견해(상주론)와 사라져 없어진다는 견해(단멸론)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생기고 사라지는 연기(緣起)의 도리를 통찰하는 지혜를 의미한다.
연기법과의 관계: 유무중도는 연기적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며, 존재에 대한 양극단(유/무)의 집착을 떠나는 것.
생각을 믿으면 나는 괴롭다. 그러나 생각의 배후를 캐물으면 괴로움이 그친다.
- 바이런 케이티(Byron Katie) 『네 가지 질문』 (Loving What Is) (2002년)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내 생각일 뿐, 내 삶이 아닙니다.
생각에 집착하면 두렵고 고통스러워집니다.
생각을 생각하지 않을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모든 문제는 생각에서 비롯되며
그 생각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아무도 내게 상처 줄 수 없습니다.
오직 나만이 나에게 상처 줄 수 있습니다.
- 바이런 케이티(Byron Katie) 『네 가지 질문』 (Loving What Is) (2002년)
뉴턴의 편지 (1693년 1월):
"내가 당신과 함께 살 수 있다면, 나는 내 삶의 나머지 부분을 당신과 함께 보내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기쁨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파티오의 편지:
"당신이 계신 곳 근처에 방을 구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건강이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의 행복은 끝났다. 이 세상에서의 나의 생명은 끝났다. 이제 나에게는 남은 것이 없다."
(My happiness is gone! my life as a happy one is ended! the world is gone for me!)
- 빅토리아 여왕
(* 빅토리아 여왕이 1861년 12월 14일, 남편의 죽음 직후 자신의 큰딸(빅토리아 공주)에게 보낸 편지와 일기에서 고백한 내용. 그녀는 또한 삼촌인 레오폴드 국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나의 세계는 그와 함께 사라졌다.")
"誰も触れない 二人だけの国 / 君の手を離さぬように"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둘만의 나라 / 네 손을 놓지 않도록)
- Spitz (스피츠) <Robinson (로빈슨)> (1995)
"기다리고 있을게. 너의 숲에서."
(待ってるよ、きみの森で。)
- 노자와 히사시 원작 일드 《잠자는 숲(1998)》 대사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
(거친 풍파 위의 다리처럼, 내가 기꺼이 몸을 뉘어 당신을 건너게 하리라.)
"When you're weary, feeling small / When tears are in your eyes, I will dry them all"
(당신이 지치고 작게 느껴질 때 / 당신의 눈에 눈물이 고일 때, 내가 모두 닦아줄게요)
- 사이먼 앤 가펑클 (Simon & Garfunkel) <Bridge over Troubled Water> (1970년)
When you're down and troubled (당신이 낙담하고 괴로울 때) And you need some loving care (누군가의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할 때) And nothing, nothing is going right (어떤 일도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Close your eyes and think of me (눈을 감고 나를 생각해 봐요) And soon I will be there (곧 내가 그곳으로 갈게요) To brighten up even your darkest night (당신의 가장 어두운 밤조차 밝혀주기 위해서)
You just call out my name (그저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돼요) And you know wherever I am (내가 어디에 있든 당신도 알잖아요) I'll come running to see you again (당신을 다시 보러 달려갈 거라는 걸)
Winter, spring, summer or fall (겨울, 봄, 여름, 혹은 가을이든) All you have to do is call (그저 부르기만 하면 돼요) And I'll be there (내가 그곳에 있을게요) You've got a friend (당신에겐 친구가 있으니까요)
- 제임스 테일러 (James Taylor) <You've Got a Friend> (1971) (캐롤 킹 원곡 리메이크)
"言いたいことも言えないこんな世の中じゃ POISON"
(하고 싶은 말도 못 하는 이런 세상은 독(POISON)이야)
"偽りの中で生きたくはない"
(거짓 속에서 살고 싶지는 않아)
...
"時に戦うことも必要なのさ / 自分らしさ突き通すため"
(때로는 싸우는 것도 필요한 거야 / 나다움을 끝까지 관철하기 위해서)
- 소리마치 다카시 (反町隆史) <POISON> (1998년)
"나의 사랑은 남풍을 타고 달려나가요 (私の恋は南の風に乗って走る)"
- 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 〈푸른 산호초(青い珊瑚礁)〉 (1980) 가사
そして ぼくらは いつもの えがおと すがたで
소시테 보쿠라와 이쯔모노 에가오토 스가타데
그래서 우리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와 모습으로
ほこりに まみれた ふくを はらった Oh
호코리니 마미레타 후쿠오 하랏타 Oh
먼지투성이가 된 옷을 털었지 Oh
この てを はなせば おとさえ たてない
코노 테오 하나세바 오토사에 타테나이
이 손을 놓으면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おちてゆく コインは にどと かえらない
오치테유쿠 코인와 니도토 카에라나이
떨어져가는 코인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아
きみと ぼく ならんで
키미토 보쿠 나란데
너와 나 나란히서
よあけを おいぬいてみたい
요아케오 오이누이테미타이
새벽을 앞질러보고 싶은
じてんしゃ
지텐샤
자전거
On Your Mark
On Your Mark
いつも はしりだせば
이쯔모 하시리다세바
언제나 달려나가면
はやりの かぜに やられた
하야리노 카제니 야라레타
잠시 스쳐가는 아픔..
On Your Mark
On Your Mark
ぼくらが それでも やめないのは
보쿠라가 소레데모 야메나이노와
우리들이 그래도 그만두지 않는 건
ゆめの しゃめん みあげて いつかは
유메노 샤멘 미아게테 이쯔카와
꿈의 경사면을 올려다보며 언젠가는
ゆけそうな きが するから
유케소―나 키가 스루카라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야
- Chage and Aska (차게 앤 아스카) <On Your Mark> (제자리에 서서) 1995)
(* 이 곡의 핵심은 **"On your mark(제자리에)"**다. 이는 외부 환경이 어떠하든 다시 자신의 자리(主)를 잡고 시작하겠다는 '수처작주'의 전형을 보여준다.)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 날 보는 너의 그 마음을 이젠 떠나리"
- 피노키오 <사랑과 우정 사이> (1992년)
"겨울 바다로 가자. 메워진 가슴을 열어보자.
스치는 바람불면 너의 슬픔 같이 하자."
- 푸른하늘 <겨울 바다> (1988년)
"이밤 왠지 그대가 내곁에 올것만 같아
그대 떠나버린 걸 난 지금 후회 안해요
그저 지난 세월이 내리는 빗물 같아요
그렇지만 문득 그대 떠오를 때면
이 마음은 아파올거야
그 누구나 세월가면 잊혀지지만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 양수경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1989년)
나는 외로움 나는 떠도는 구름
나는 끝없는 바다위를 방황하는 배
그댄 그리움 그댄 고독한 등대
그댄 저높은 밤 하늘에 혼자 떠있는별
사랑하고 싶지만
그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어
그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해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자꾸만
멀어지는 당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만 흘리네
- 박영미 <나는 외로움 너는 그리움> (1990년)
중2때까진 늘 첫째 줄에
겨우 160이 됐을 무렵
쓸만한 녀석들은 모두 다
이미 첫사랑 진행 중
- 델리스파이스 <고백> (2003년)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싱그런 바람 가득한
그대의 맑은 숨결이 향기로와요
길을 걸으면 불러보던 그 옛 노래는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네
하늘을 보면 님의 부드런 고운 미소
가득한 저하늘에 가을이 오면
- 이문세 <가을이 오면> (1987년, 4집)
"We didn't start the fire / It was always burning since the world's been turning"
(우리가 그 불을 지핀 게 아니에요 / 세상이 돌기 시작했을 때부터 불은 언제나 타오르고 있었죠)
"No, we didn't light it, but we tried to fight it"
(아니요, 우리가 불을 붙인 건 아니지만, 우린 그에 맞서 싸우려 노력했어요)
- 빌리 조엘 <We Didn't Start the Fire> (1989년)
"Honesty is such a lonely word / Everyone is so untrue"
(정직이란 참으로 외로운 단어예요 / 모두가 너무나 진실하지 못하죠)
"Honesty is hardly ever heard / And mostly what I need from you"
(정직이란 좀처럼 듣기 힘들지만 / 내가 당신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기도 해요)
- 빌리 조엘 <Honesty> (1978년)
"Sing us a song, you're the piano man / Sing us a song tonight"
(우리에게 노래를 불러줘요, 당신은 피아노 맨이니까 / 오늘 밤 우리에게 노래를 불러줘요)
"Well, we're all in the mood for a melody / And you've got us feelin' alright"
(우리 모두 멜로디에 취하고 싶거든요 / 당신이 우리 기분을 좋게 해주네요)
- 빌리 조엘 <Piano Man> (1973년)
"例えば 君がいるだけで 心が強くなれること"
(예를 들어, 네가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강해질 수 있다는 것)
"何より大切なものを 気付かせてくれたね"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깨닫게 해주었어)
- 코메코메 클럽 (米米CLUB) <君がいるだけで (네가 있는 것만으로, 1992)>
"Strumming my pain with his fingers / Singing my life with his words"
(그의 손가락으로 나의 고통을 연주하고 / 그의 가사로 나의 인생을 노래하네)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의 노래로 나를 부드럽게 죽이네 - 황홀경에 빠뜨리네)
- Roberta Flack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1973년)>
북한군 병사의 탈출기 〈1〉
2024년 8월 높은 장벽과 철조망 7개, 지뢰밭을 통과해 한국으로 귀순한 북한군 병사 출신의 강민국 씨.
2024년 8월 높은 장벽과 철조망 7개, 지뢰밭을 통과해 한국으로 귀순한 북한군 병사 출신의 강민국 씨.
그는 여단 병원에서 도망쳤다. 더 있으면 시체로 나와야 할 것 같았다. 누가 봐도 뼈밖에 안 남은 몰골의 강민국은 9년 넘게 군에서 복무해 이제 제대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은 고참 병사였다. 하지만 남은 1년을 버틸 수 없었다.
하루에 3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쉬는 날도 없이 공사판에서 버티던 강 씨는, 열흘 전 배가 너무 아파 병원에 실려 왔다. 하지만 병원에서 딱히 해주는 것은 없었다.
엊그제 군의관이 들어왔다. 링거라도 맞아야 한다고 했다. 술병, 맥주병 상관없이 끓는 물에 넣었다가 꺼내면 링거 병이 된다. 강 씨에게 온 병은 마침 투명한 병이었는데, 주사액을 본 강 씨는 경악했다. 병 안에 숱한 부유물들이 둥둥 떠다녔다. 저 이물질들이 혈관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싫습니다. 놓지 마세요.” 저항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강제로 링거를 맞았다. 그날 저녁부터 고열이 심하게 나기 시작했다.
다음날 군의관이 다시 들어왔다. 또 링거를 들고 왔다. 그리곤 “오늘은 좀 더 정제를 잘해서 이물질이 거의 없어. 이거라도 맞지 않으면 넌 죽어”라고 말해주었다. 전날 링거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또 맞았다.
“내가 여기에 있다간 생체실험 대상이 돼서 죽겠구나.”
강 씨는 2년 전에도 다리에 종기가 생겨 군단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 달 동안 병원에서 33명의 군인이 죽어 나갔다. 모기에게 물렸다가 부어서 죽은 병사, 자창을 치료 못 해 팅팅 부어 죽은 병사 등등 병명은 각자 달랐지만, 원인은 하나뿐이었다. 항생제가 없기 때문이다.
집에 전화해서 항생제를 살 돈을 전달받은 병사는 장마당에서 항생제를 구입해 맞을 수 있었다. 그때 강 씨도 집에서 보내준 돈으로 항생제를 사서 나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집이 갑자기 가난해져서 돈을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2년 전 숱한 군인들이 병원에서 죽는 것을 본 트라우마가 머릿속에 그대로 있는 상황에서, 이번엔 자신이 죽을 차례가 온 것이다. 병원에서 놔주는 링거가 뭔 진 몰라도, 별 효과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살려면 도망쳐야 했다. 집에 가봐야 치료할 능력도 되지 않고, 또 탈영병이라고 처벌받을 것이 뻔했다.
“그래. 이판사판. 남조선밖엔 갈 곳이 없구나. 가다 죽으나, 있다가 죽으나 뭔 차이가 있겠는가.”
그때는 몰랐다. 삼엄한 감시의 눈을 피해 5m 높이의 장벽, 고압선 3개가 포함된 7개의 철조망, 교묘하게 숨겨진 감지선 하나를 넘고, 그리고 또 지뢰밭을 통과해야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2024년 8월, 그는 자유를 향해 떠났다.
● 고성으로 가는 길
군사분계선으로 가려니 일단 강원도 고성까지 가야 했다. 병원에서 제일 가까운 친척 집에 찾아가 북한 돈 3만 원을 빌렸다. 쌀 3~4㎏을 살 수 있는 액수였다.
길에서 남쪽으로 가는 화물자동차를 탔다. 북한엔 돈을 받고 사람을 태워주는 버스 역할을 하는 ‘써비차’들이 있다. 고성까지 2만 원을 내라고 했다. 군인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차를 타도 끝이 아니었다. 고성은 최전방 지역이라 특별 통행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화물차에 오른 강 씨는 주변을 관찰했다. 허름한 군복을 입은 대위가 보였다.
군복 꼴을 보니 가난한 병종의 군관임이 틀림없었다. 이런 사람은 적은 뇌물에도 넘어간다. 강 씨는 대위에게 다가가 차고 있던 전자시계를 내밀며 “고성에 일 보러 가는데 여행증이 없으니 도와 달라”고 했다. 그 시계 구입가는 북한 돈 2만 원. 쌀 3~4㎏ 정도 살 수 있는 액수다. 군관이 시계를 훑어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단속초소가 나타났다. 여행증 검열을 하려 적재함에 오른 군인에게 군관은 자신의 공무 여권을 보여주며 강 씨는 자기가 데리고 가는 부대원이라고 소개했다. 북한에서 군관들이 스폰서 역할을 할 대원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너무 일상적인 일이다.
초소 군인은 별 시비를 걸지 않고 지나갔다. 이들도 뇌물 받는 데선 프로들이라, 사람을 보자마자 견적을 낸다. 돈이 나올만한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야지, 가난한 군관을 건드려봐야 뇌물도 없고, 입만 아프다는 것을 안다.
무사히 고성에 도착한 강 씨는 장마당부터 찾아갔다. 이제부터 한국까지 가려면 먹을 것이 있어야 했다. 수중에 남은 1만 원으로 북한에서 만든 과자 1㎏과 담배 두 갑을 살 수 있었다. 인근 뒷산에 올라갔다. 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에겐 고성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저기 보이는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남조선이란 정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로로는 갈 수가 없으니, 도로가 보이는 산비탈을 타고 내려갈 생각이었다.
날이 너무 더워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금방 갈증이 찾아왔다. 하지만 생사가 결정되는 출발선에 서고 보니 육체적 고통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 “탈영병 잡으러 갑니다.”
2024년 8월 17일 밤. 어두워지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로가 보이는 산비탈을 따라 걸으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걸어보니 너무 힘들었다.
금강산은 사실상 돌산이다. 어둠 속에서 바위를 넘고 또 넘으며 가다 보니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가다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도로 옆으로 뻗은 철길로 내려왔다. 아직 분계선까진 많이 남아있으니, 여기엔 경비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쯤 걸어갔을 때 갑자기 앞에 무장을 한 군인이 전짓불을 켜며 불쑥 나타났다. 그는 부소대장급인 상사 견장을 단 강 씨를 보더니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위기의 순간이 되니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어, 나 저기 저 동네에 있는 모 부대 부소대장인데, 저기 앞에 민경 초소에 탈영병 잡으러 가. 우리 소대원의 친구가 민경 초소에 있는데, 거기 놀러 간다고 하고 나타나지 않았어. 낼 판정 받아야 하는데, 너무 급해서 새벽에 지휘관들이 찾으려 나설 수밖에 없어.”
새벽에 탈영병을 잡으러 간다는 말은 설득력이 전혀 없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번엔 군인이 “배낭 좀 봅시다”라고 했다. 배낭 안의 손전등을 봤다면, 새벽에 손전등도 켜지 않고 가는 그를 의심이라도 할 법하지만 이 군인은 처음부터 과자 봉투와 담배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담배 한 갑을 꺼내 주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전짓불 때문인지 저기서 한 명이 또 다가왔다. 남은 담배 한 갑을 보더니 또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이때 또 한 명이 나타났다. 이번엔 순찰을 도는 중대장이었다. 강 씨는 배낭을 발로 차 옆으로 밀어놓았다. 손전지가 발견되면 재미없을 것 같았다.
중대장이 또 누구냐 물어서 강 씨는 아까 했던 거짓말을 다시 되풀이했다. 갑자기 담배를 받은 군인이 나서서 열심히 강 씨 편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담배를 받았다는 것을 말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중대장이 “어떻게 생긴 병사냐”고 물어서 학교 다닐 때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며 열심히 설명했다.
중대장이 그의 설명을 들으며 자주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의 의미를 강 씨는 안다. 북한군 부대들엔 워낙 탈영병들이 많아서, 지휘관들에겐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일이 중요한 임무였다.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찾아다녀야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던지 중대장은 갑자기 강 씨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중대 본부로 끌려갈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중대장은 “아무리 급해도 여긴 밤에 돌아다니면 안 되는 곳”이라며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인상착의를 잘 들었으니 혹시 그 탈영병이 여기로 지나가면 잡아서 보내주겠다”라고도 했다. 천운이었다. 강 씨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돌아서서 왔던 길로 다시 걸었다.
그들이 안 보이게 되자 그는 이번엔 도로를 건너 반대쪽으로 갔다. 밤에 보니 도로 좌측은 논이어서 거기로 에돌아가면 될 듯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거기는 논이 아니라 갈대숲이었고, 깊은 수렁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쯤 갔을까. 갑자기 몸이 쑥 빠지더니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허우적거릴수록 그의 몸은 점점 더 수렁에 들어가 어느새 목까지 잠겼다.
“이대로 죽는구나” 싶은 절망 속에서도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보려고 열심히 손을 휘저었다. 연꽃인지, 갈대인지 모를 뿌리가 손에 잡혔다. 하나를 잡고 끌어당기니 뽑혔다. 이번엔 여러 대를 손으로 모아 조심조심 끌어당겼다. 더 이상 몸이 빠지지 않았다. 뿌리가 뽑히면 그도 죽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조금씩 끌어당기기를 한 시간 넘게 반복한 끝에 겨우 몸을 뽑아낼 수 있었다. 수렁에서 나온 그는 다시 도로를 건너 산으로 올라갔다.
온몸이 젖어 기진맥진한 그는 산에 올라가 돌 틈에 몸을 숨기고 쓰러졌다. 어차피 곧 날이 밝을 것이니 여기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밤에 또 움직일 계획이었다. 배낭을 꺼내보니 과자가 죽이 돼 먹을 수 없게 됐다. 이제 식량마저 떨어진 것이다.
● 또다시 마주친 잠복초소
2024년 8월 18일. 동해에서 해가 떠올랐다. 이제 따뜻한 햇살에 옷과 몸을 말리고 잠을 자면 됐다. 해가 떠오른 지 30분쯤 지나 잠이 들까 했는데 갑자기 말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그가 숨은 바위틈 바로 30m 위에 북한군 잠복초소가 있었다. 두 명의 군인이 잠복 초소에서 나오더니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들은 잠복초소에 있는 이불을 꺼내고, 겉옷을 벗어 햇볕에 말리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삐쭉 섰다. 밤에 그가 조금만 더 올라갔다면, 올라오다가 소리만 냈다면, 여기가 아닌 저기에 자리를 잡았다면…. 그가 그 돌 틈에서 주저앉은 것은 천운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1분 1초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잠을 자다가 소리를 낼까 봐 그날 낮엔 하루 종일 쥐 죽은 듯이 돌 틈에 박혀 있었다.
그렇게 낮 동안 잠을 자지 못하고 지내다가 다시 밤이 되자 산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낮에 산 아래를 보니 남쪽으로 연결된 도로가 보였다. 도로는 관리가 되지 않은지 꽤 오래돼, 양옆으로 풀이 키 높이로 무성했다. 도로에 바짝 붙어 풀을 헤치며 가기 시작했다. 밤이지만, 둥근달이 떠서 사방이 잘 보였다.
500m쯤 갔을 때, 갑자기 앞에 시꺼먼 물체가 나타나 깜짝 놀랐다. 야간 잠복을 나와 잠을 자는 군인이었다. 9시도 채 되지 않았지만, 낮에 농사니 뭐니 고역을 치르며 기진맥진해 야간 근무에 나오자마자 곯아떨어진 것이 뻔했다. 잠을 자던 군인도 인기척을 듣고 벌떡 일어났다. 여기서 주저하면 끝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견장을 보니 입대한 지 3년쯤 돼 보이는 군인이었다. 20m쯤 떨어져 자는 병사가 한 명 더 보였다. 9년의 ‘짬밥’이 본능적으로 나왔다.
“야, 어느 부대야.” 초저녁에 갑자기 웬 상사가 나타나 호통 치니 상대가 움츠러들었다.
“누구십니까.” “나 저 앞에 민경 초소 부소대장이야.”
호통을 치면서 상대의 복장을 보니 상의는 얼룩무늬 군복을 입었지만, 모자와 하의는 낡은 누런 군복을 입었다. 이건 복장 위반 사항이다. 게다가 무기도 없다. 근무에 나와 잘 때 누가 훔쳐 갈까 봐 총을 근처에 숨겨두는 병사들이 많다. 상대가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강 씨는 몰아붙였다.
“너 근무에 나와 이리 자는 거 분대장이 알아? 그리고 복장이 이게 뭐야? 총은 또 어디 가고. 너희 부대 이거 안 되겠네. 조국은 널 믿고 있는데, 넌 여기서 잠이 와?”
풀이 죽은 병사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부소대장 동지, 여긴 밤에 못 갑니다. 돌아가십시오.”
강 씨는 병사를 한 번 더 째려보고 뒤로 돌아 걸었다. 떨어져 자고 있던 한 명은 그때까지 일어나지 않고 계속 잠을 자고 있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얼마쯤 돌아오다가 다시 산에 올랐다.
병원에서 떠날 때부터 강 씨는 하늘을 향해 수없이 기도했다. 종교가 뭔지 전혀 모르지만, 절망적인 상황이 되니 하늘을 보며 “살려 달라. 무사히 남조선에 가게 해 달라”는 기도가 계속 나왔다. 어쩌면 그 기도가 통했을까. 밤에 두 번 단속됐는데 모두 빠져나오는 기적이 일어났다. 산에 올라가니 드디어 멀리 분계선의 철책 불빛이 보였다. 여기서 하루 더 머물며 정찰해야 하겠다고 판단했다.
● 장벽과 고압 철조망
2024년 8월 19일. 몸을 숨기고 산 아래 도로를 감시했다. 하루 종일 도로로 차 한 대가 지나갔을 뿐 조용했다. 멀리 해변에서 시작돼 산을 타고 구불구불 올라간 콘크리트 장벽이 보였다.
장벽을 어떻게 넘을지 생각해 봤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장벽이 있다고 돌아갈 순 없었다. 어차피 앞을 막아서는 것은 다 넘어가리라 결심하고 떠난 몸이 아닌가.
어둠이 깔리자, 그는 낮에 봐뒀던 코스를 타고 다시 움직였다. 한참을 가니 드디어 장벽이 나타났다. 막상 앞에 가보니 높이가 5m는 돼 보였다. 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공사 잔해들이 주변에 널려있었다. 도무지 넘을 방법이 없어 장벽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참 내려갔는데, 장벽 아래에 물이 빠지도록 만든 배수구가 보였다. 배수구에 들어가 보니 쇠살창이 설치돼 있었다. 혹시나 해서 시도했는데, 머리가 살창 사이로 들어갔다. 머리가 들어가면 몸도 빠질 수 있을 것이다.
한참을 낑낑거리며 드디어 쇠살창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가 당시 몸에 뼈만 남아 45㎏도 채 되지 않는 상태가 가능한 일이었다. 조금만 살이 쪄도 불가능했을 일이다. 다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배수구를 지나 장벽의 반대쪽에 도착하니 두 사람 정도 나란히 걸을 정도 너비의 순찰로가 나오고, 순찰로 옆에 고압 철조망이 두 개 있었다. 1만 볼트의 전기가 흐른다고 해서 악명이 자자한 ‘만선’ 철조망이었다. 북에서 분계선에 전기철조망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군인은 없는지라, 강 씨도 떠날 때 이미 각오했던 일이다.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찾아 철조망에 대봤더니, 전압이 어찌나 센지 마른 나뭇가지를 통해서도 손바닥에 찌릿하고 전기가 흘렀다. 땅에서 맨 아래 전기선까지 높이는 10㎝ 정도였다.
군에서 배운 대로 강 씨는 나뭇가지 두 개를 이용해 전기선을 20㎝ 정도 들어 올린 뒤, 그 아래 땅을 파고 조심스럽게 통과했다. 1.5m 앞에 있는 두 번째 철조망도 같은 방법으로 통과했다.
철조망 사이엔 모래를 깔아놓은 ‘흔적선’이 있었다. 발각되면 안 되기 때문에 첫 번째 철조망을 통과한 뒤 구멍을 메우고, 지나온 흔적도 손으로 잘 다듬어 놓고, 두 번째 철조망 구멍도 또 메웠다.
전기철조망 두 개를 통과한 뒤 마지막 철책 지역까지 향해 냅다 달렸다. 전기철조망과 민경이 관리하는 최후의 철책까지 거리는 4㎞ 정도 떨어져 있다.
마지막 철책은 전등들이 켜져 있어 불빛을 보며 가면 됐다. 하지만 중간 지역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이라 그의 키를 넘는 나무와 풀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동남아 열대 우림과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전등이 보이지 않아서 한참 가다가 나무가 나타나면 타고 올라가 방향을 재확인했다. 나무에 올라가 확인하는 것을 열 번쯤 반복하니 드디어 철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풀을 헤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은 목이 마른 것이었다. 8월의 고온 속에서 하루 넘게 물을 먹지 못했다. 가끔 물웅덩이도 나타났다. 하지만 물이 휘발유가 덮인 것처럼 번들번들했다. 침을 뱉어봤더니 퍼지지 않았다. 그런 물은 썩은 물이라 마실 수 없었다.
● 5중 철조망과 지뢰밭
그가 도착한 마지막 철책 지역은 약 1m 간격으로 철조망이 다섯 겹 설치돼 있었다. 전등도 많이 달아서 주변이 환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약 5m 높이의 감시탑이 있었는데, 거기에 군인이 올라가 아래를 감시했다.
강 씨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감시탑으로 기어갔다. 감시탑 바로 아래엔 그늘이 져 있었다. 밝은 불빛을 보는 군인은 발아래 어두운 지역을 잘 보지 못할 것이라 타산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격언에 목숨을 맡겨 보기로 한 것이다.
감시탑 위의 군인은 한국 노래를 흥얼흥얼 부르고 있었다. 강 씨도 그 노래를 안다.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노랫소리가 높아지면 강 씨도 슬금슬금 움직였다.
드디어 첫 번째 철조망에 도착했다. 여기 철조망은 전기철조망보다 더 빡빡했다. 땅과 마지막 선의 높이는 불과 5㎝ 정도였다. 나무꼬챙이를 받쳐 놓고 손에 피가 나도록 땅을 팠다. 통과했다. 지나온 땅은 손으로 흔적이 남지 않게 다시 고르게 했다. 두 번째 철조망도 같은 방법으로 통과했다.
“괜스레 힘든 날, 겁 없이 전화해.” 두서없이 흘러나오던 노랫소리가 뚝 끊긴다. 강 씨도 숨을 죽이고 엎드려 있었다. 이번엔 중얼중얼~. 그러다가 콧노래. 다시 한국 노래….
세 번째 철조망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번 철조망은 땅을 팔 수가 없었다. 땅이 있어야 할 곳에 유리와 못을 잔뜩 박은 콘크리트 블록들이 깔려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위기를 헤치고 왔지만, 이번은 도무지 통과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돌아갈 수도 없었다. 철조망 중간에 갇힌 강 씨는 “여기서 죽는구나”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또 앞으로 기다릴 삶을 떠올려도, 그때보다 더 절망스러운 일은 없을 듯하다. 그는 미친 듯이 땅을 팠다. 블록이 얼마나 깊은지는 몰라도 그래도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쳐야 했다.
기적은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일어나는 법이다. 블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블록은 통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5㎝·40㎝·50㎝ 되는 블록을 땅에 박은 것이었다.
조심스럽게 블록을 겨우 빼냈는데, 교묘한 복병이 숨겨져 있었다. 블록 바로 앞에 땅 위 5㎝ 높이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실선이 설치돼 있었다. 자칫 발견하지 못했을 수 있었지만 천만다행으로 그의 눈에 보였다.
블록을 뽑은 구멍으로 빠져나가면 실선을 건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선이 전기선인지도 알 수 없어 뚫어지게 관찰하니 알루미늄선이 아니라 철선이었다. 그러면 전기선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걸 건드리면 감시탑에 신호가 전달될 것이 뻔했다.
지난해 파주 맞은 편 북한 지역에 새롭게 정비를 마친 철조망과 감시탑. 고성에서 강 씨가 통과했던 감시탑과 구조가 같다. 동아일보 DB
지난해 파주 맞은 편 북한 지역에 새롭게 정비를 마친 철조망과 감시탑. 고성에서 강 씨가 통과했던 감시탑과 구조가 같다. 동아일보 DB강 씨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방법을 찾아냈다.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들을 모아 철선을 두껍게 칭칭 감았다. 건드려도 흔들리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성공했다.
철선을 넘어 네 번째 철조망에 도착했다. 이 철조망엔 전기가 흐르고 있었다. 앞서 고압 철조망을 두 개나 넘은 경험이 있기에, 이것도 나뭇가지로 들어 올리고 땅을 파서 넘었다.
다섯 번째 철조망은 2.5m의 가시철조망이었는데, 위에 원형 철조망이 타래로 감겨 있었다.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위로 기어 통과하려고 철조망을 쥐고 힘을 주는 순간 삑~하는 소리가 났다. 철조망을 고정한 기둥과 쇠줄이 마찰하면서 나는 소리였다.
다행히 힘을 많이 주지 않았던 데다, 한국 노래에 심취한 병사의 취향 덕분에 발각되지 않았다. 그나마 제일 구멍이 큰 틈을 찾아 몸을 밀어 넣었다. 장벽의 쇠살창도 여윈 몸 덕분에 넘었는데, 이것도 머리만 들어가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성공했다. 대신 철조망의 가시에 군복과 살이 수없이 뜯겼다.
마침내 그는 보초병의 발밑에서 다섯 개의 철조망을 모두 벗어났다. 아직도 한국 노래를 흥얼거리는 보초병을 향해 속으로 외쳤다.
“그래, 너는 여기서 한국 노래나 불러라. 난 한국에 간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9번의 ‘데스게임’을 넘어온 그에게 남은 마지막 미션은 지뢰밭 통과였다.
강민국은 지뢰밭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지뢰밭을 통과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일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달이 밝았다는 점이었다. 떠날 때는 분계선을 넘을 때 비가 오거나 날이 흐려 어둡기를 원했는데, 막상 장벽과 철조망을 통과해 보니 달이 밝아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움직였다면 분명히 여러 번 실수를 했을 것이지만, 달이 밝아 철조망을 관찰하며 통과할 수 있었다.
지뢰밭을 달빛 아래 조용히 관찰하니 짐승들이 다닌 발자국들이 보였다. 며칠 전 내린 폭우와 이후 이어진 고온의 날씨로 땅이 빨리 말라 단단해지다 보니 발자국이 또릿하게 보였다. 이것도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였다면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짐승 발자국을 따라 이동했다. 적어도 짐승이 지나갔다면 선으로 연결된 대인지뢰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목함지뢰는 어쩔 수 없으니 운에 맡겨야 했다. 강 씨는 이동 방향을 산 아래 도로로 정했다. 아무래도 도로엔 지뢰가 그리 많이 묻혀 있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이동할 때 그는 네발걸음으로 움직였다. 네 발로 가면 무게가 분산돼, 두 발로 가다가 지뢰를 밟는 것보단 안전할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한참을 철조망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도로가 나타났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16년도 넘었던 때라 도로에도 풀이 울창하게 자라 있었다. 그런데 도로라고 지뢰가 매설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도로 가운데 흙이 깔린 곳을 만났는데, 위에 대전차 지뢰가 잔뜩 설치돼 있었다. 대전차 지뢰는 사람의 몸무게엔 터지지 않는다는 상식을 알고 있던 터라, 조심스럽게 밀어내고 통과했다.
얼마쯤 더 가니 도로가 굽은 구간이 나타났다. 거기서부턴 북한 초소에서 발견할 수 없는 사각지대였다. 이제부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철조망을 통과해 네 발로 정신없이 2㎞쯤 왔는데, 불쑥 차단봉이 나타났다. 북한에서 만든 엉성한 차단봉도 아니고, 또 글씨체도 북한식이 아니었다.
‘드디어 남조선에 왔구나.’ 그때의 감격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달빛 아래 차단봉 옆에 있는 CCTV가 보였다. 중국 영화에서 CCTV를 봤기에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나를 보고 있구나’ 싶어 벌떡 일어났다. 이제부턴 네 발걸음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군복도 털면서 CCTV 앞을 괜히 서성거렸다. 빨리 나를 발견하라는 나름의 신호였다.
그는 북한에서 9년 동안 보초를 서본 군인이었다. 차단봉 건너편에서 근무에 나온 군인이 졸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가 보초선을 통과하면 누군지 모를 한국 군인이 처벌을 받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막 도착한 한국에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군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멀리서 웅얼거리는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정지. 정지”라고 했다. 하지만 강 씨는 정지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북한에선 ‘섯’이라고 하지 정지라고 하진 않는다.
● 처음 본 한국군
한참을 기다리다가 더는 기다릴 수 없어 할 수 없이 차단봉을 넘어 걸어갔다. 좀 가다 보니 철조망과 통문이 나타났다. 그 앞에 서니, 스피커 소리가 더 긴박해졌고, 잘 들렸다.
“지금 대상은 불응하고 있다. 접근하면 사격하겠다. 귀순 의향 있으면 손을 들라.”
대상이 뭐고, 불응이 뭐고, 귀순이 뭔 말인지는 몰랐지만, 사격과 손들라는 말은 알아들었다.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스피커가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고 했다.
통문이 열리더니 10여 명의 군인이 쏟아져 나왔다. 그를 땅에 눕히더니 뒤로 손을 묶었다. ‘이게 환영이냐’는 생각이 스쳤다.
“동행자는 없습니까. 추격조는 없습니까.” “없습니다.”
“필요한 것 없습니까.” “물을 좀 주세요.” 누군가 물병을 가져다 입에 대주었다. 벌컥벌컥 마시고 또 마셨다.
나중에 들은 바지만, 한국군은 그가 북한 지역에서 움직일 때부터 적외선 카메라로 지켜봤다고 한다. 하지만 네 발로 움직이니 짐승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한국 지역에 도착해 벌떡 일어서서야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두 손을 묶인 와중에도 강 씨는 한국군을 관찰했다.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이 너무나 멋진 군복이었다. 신발도 멋진 소가죽 군화였다.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하는 군인들도 이들처럼 잘 입진 못했다.
거기에 방탄복과 방탄모, 야시경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강 씨는 북한군 생활 9년 동안 방탄복이나 야시경을 본 적이 없다. 소총도 번쩍번쩍한 것이 녹을 열심히 닦아내기에 급급한 북한군의 낡은 자동보총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거기에 마중 나온 군인들의 키는 대체로 강 씨보다 한 뼘씩 컸다. 강 씨도 부대에서 키가 큰 30% 축에 들어갔는데, 한국 군인들은 훨씬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고, 피부에서 기름기가 돌았다.
‘아, 나를 마중하느라 키가 큰 군인들을 골라내서, 차려 입히고 나온 거겠지.’
강 씨는 자기 몰골을 살펴봤다. 가뜩이나 낡은 군복이 다 찢겨 있었다. 갑자기 기가 죽었다.
군인들이 그에게 안대를 씌우더니 차에 타게 했다. 차에서 에어컨이 나오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 맞아본 에어컨 바람이었다.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하나 풀렸다.
‘이렇게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이 더위에 저런 군복과 방탄복을 입고도 견딜 수 있었구나.’
그가 한국에 도착한 시간은 2024년 8월 20일 새벽 2시경이었다.
● 죽을 받아 들고 눈물 흘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22사단 본부. 도착해 안대를 풀어주었다. 본부의 군인들도 똑같은 군복차림이었고 다들 키가 컸다. 그제야 자신을 맞은 군인들이 일부러 골라 뽑아온 사람들이 나온 것이 아닌 줄 알았다.
들어가자마자 코로나 검사부터 했다. 여성 군의관들이 새벽에 나오게 만들어 짜증 났는지는 몰라도 딱딱한 인상으로 그를 검사했다.
‘나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그런 생각은 곧 풀렸다. 한 장교가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어서 “배가 고프다”고 대답했다. 이틀 동안 꼬박 굶었다. 실은 병원에서 탈출하고부터 거의 먹지 못했다.
장교는 “준비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이어 “몸을 씻고 싶다”고 하자 그를 목욕탕에 데리고 갔다. 씻고 나오니 한국군 운동복을 주었다.
목욕하는 사이 식사가 준비됐다. 그가 한국에 오면서 가장 기대한 것이 첫 식사였다. ‘그래도 고기는 주겠지’라고 엄청나게 기대했는데, 죽 한 그릇이 달랑 나왔다. 처음엔 크게 실망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교의 말이 눈물이 쏟아졌다.
“오래 굶었다가 갑자기 먹으면 탈이 나니, 일단 죽부터 먹으면서 점차 식사량을 늘여야 합니다.”
‘나는 남조선을 해방하겠다고, 남조선 괴뢰군을 때려잡겠다고 10년을 군사복무 했는데, 이들은 나를 동포로, 형제로 맞아주는구나.’
멀건 죽 속에서도 뭔가 씹혔다. 썩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전복이었다. 죽을 먹고 아침에 다시 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차가 늘어선 도로. 포장 상태가 너무 좋아 흔들리지 않는 도로가 눈에 보였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북한군에서 운전병이었기 때문이었다.
● 운전병으로 입대하다
강 씨는 18세였던 2015년 북한군에 입대했다. 학교 다닐 때 학급반장도 하는 등 공부를 잘했지만, 어머니는 군에 가라고 했다.
“너는 출신성분이 걸려 간부가 될 순 없으니, 군에 가서 평생 써먹을 기술이나 배워라.”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평양에서 중앙당 간부를 하던 할아버지는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당의 의료 정책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산골로 추방됐다. 아버지가 열심히 노력해 동해안의 한 도시로 이사를 왔지만, 거기까지였다.
부모들이 열심히 로비한 덕분에 강 씨는 입대하면서 200달러는 뇌물로 써야 갈 수 있다는 군 운전수 양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양성소 과정은 1년이었다. 1년 동안 10분 정도씩 화물차를 세 번 몰아보고 졸업했다.
전체 양성소 인원은 800명 정도. 1개 대대가 120명 정도인데, 대대마다 1958년부터 생산된 ‘승리58’ 목탄 화물차가 실습용으로 1대씩 있었다. 이 차는 손으로 스타찡(리코일 스타터)을 1~2시간 교대로 돌려야 발동이 걸렸다. 그렇게 겨우 엔진을 돌려도 엔진에 목탄 재가 계속 차서 수시로 차가 멈춰 섰다.
그래도 그가 간 운전사 양성소는 총참모부 직속이라, 군단별로 한 개씩 있는 운전사 양성소보다는 훨씬 사정이 좋았다. 겨울엔 목탄 만들 참나무를 찍어오기 위해 깊은 산에 3시간 넘게 걸어갔다가, 나무를 등짐으로 메고 다시 돌아왔다.
늘 배가 고팠다. 알루미늄 공기에 훌쩍 들어간 옥수수밥, 멀건 소금국, 염장무 3형제 반찬이 1년 내내 제공됐다. 염장무를 아무 양념도 없이 채를 치고, 동그랗게 썰고, 깍두기처럼 썬 것이 염장무 3형제다.
그냥 썰어주면 되지만, 과거 김정일이 군인들에게 3가지 반찬을 무조건 제공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람에 모양만 달리해 그릇에 담는다. 이렇게라도 사진을 찍어 위에 보고하지 않으면 반찬 3가지를 보장하라는 지시를 어긴 것이 된다. 능력은 없는데, 하라고는 하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 목탄차, 쌀겨차, 가랑잎차…
1년 동안 양성소 생활을 마치고 부대에 배속됐다. 그의 대대엔 전투차량으로 등록된 화물차가 8대가 있었다. 하지만 가동할 수 있었던 차량은 그가 복무하던 내내 2대뿐이었다.
나머지는 각목을 이용해 땅에서 띄워 보관만 했다. 이 차들은 전쟁이 나도 가동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동되는 2대를 위해 부품들을 오랫동안 뜯어내 사용했기 때문이다. 바퀴도 철심이 다 드러난 쓰다 버린 폐타이어가 붙어있었다.
지휘관은 “네 차를 몰고 싶으면 부품을 사 와서 끼우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도 빈말임을 누구나 안다. 설령 부잣집 자식이어서 부품을 사서 갖고 와도 고참들이 또 뜯어갈 것이 뻔했다.
그나마 강 씨의 부대는 총참모부 직속이라 괜찮은 부대라서 대대에 가동되는 차 2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2대로 각종 건설장에 노력 동원도 나가고, 후방 물자도 실어 오고, 김장철에 배추나 무도 실어 왔다.
그가 입대할 땐 북한군 부대에 참나무 숯으로 가동되는 목탄차만 있었는데, 유엔의 대북제재가 심화하면서 화물차들의 연료가 다양하게 바뀌었다. 어떤 연료로 움직이는가에 따라 차에 이름이 붙었는데, 목탄차, 쌀겨차, 카바이드차, 알탄차, 메탄가스차, 가랑잎차 등으로 나뉘었다.
목탄차는 힘이 좋지만, 참나무 숯을 구하기 힘들었다. 쌀겨차는 탈곡한 벼 껍질로 가는 차였다. 장점은 연기가 적게 났고, 힘도 좋았고, 벼 껍질을 구하기 쉬웠다. 가다가 정미소가 있으면 쌀 4㎏ 정도 살 수 있는 돈인 2만 원에 화물차 적재함 가득 채울 수 있는 벼 껍질을 구입할 수 있었다. 대신 조수가 적재함에 타서 쉴 새 없이 난로에 껍질을 넣어야 했다.
비슷한 차가 가랑잎차인데, 아무 가랑잎이나 쓰진 못하고 참나무 가랑잎을 써야 했다. 이 차는 조금만 먼 곳에 가려면 적재함에 가랑잎을 가득 실어야 했고, 조수는 벼 껍질보다 더 열심히 난로에 가랑잎을 넣어야 했다.
알탄차는 알처럼 빚은 무연탄을 적재함의 난로에 넣어 가는 차였다. 카바이드와 메탄 차는 연료 구입비가 비쌌다. 휘발유나 디젤유가 없으니, 위의 대용 연료를 사용했는데, 대신 자동차 부품이 너무 자주 고장 나 한번 갔다 오면 분해해서 그을음을 긁어내야 했다. 이것이 2024년 현재의 북한군 실태다.
● 북한군 지휘관 운전사
북한군 부대들에서 부품과 연료난으로 처절하게 싸우고 있을 때, 그나마 상황이 좋은 차들은 고위 군관들이 타는 승용차였다.
북한군은 일정한 계급 이상인 군관에게 공무용 차를 주는데 이를 직무차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당국이 승용차 부품이나 연료를 직무차에게 특별히 공급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엔 비밀이 있다.
북한에서 어느 정도 돈이 있는 부유층들은 자식을 군에 보낼 때 승용차를 중고로 사서 보낸다. 북한군 군관들이 타는 차는 중국제 우와즈, 북경, 신비라는 브랜드인데, 북한에서 북경 중고차는 2000달러 정도 하고, 우와즈나 신비는 1500달러 정도 거래가 된다.
이렇게 차를 서서 입대하면, 운전수 양성소를 마치지 않아도 곧바로 여단장이나 사단장 등 고위 군관의 직무차 운전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군 복무 내내 승용차를 운용하는 연료나 부품 등은 본인이 집에서 돈을 가져와 대야 한다.
대신 좋은 점은 규율 생활도 하지 않고, 동원에도 빠지며, 자기 방에서 편안하게 군 복무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제대할 때 지휘관이 대학 추천권을 준다.
차를 살 수 있다는 것은 잘 사는 집 자식이란 의미다. 운전사는 지휘관의 집안 경조사나 먹거리 등도 챙겨야 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반대급부로 지휘관은 운전사를 얼마든지 휴가 보낼 수 있다. 운전사 두 명 정도만 채용해 교대로 굴리면, 1년에 절반은 집에 가서 놀면서 군 복무를 마칠 수 있다.
이렇게 차를 갖고 입대한 운전사를 채용한 지휘관이 북한군 전체에서 10% 이상은 된다.
그렇다고 국가에서 준 차를 타고 다니는 다른 지휘관은 규정대로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도 다 부유한 집안 자식을 자기 운전사로 채용해서 연료나 부품을 대게 한다. 즉 북한군 고위 간부들의 운전사는 부잣집 자식인 것이다.
지휘관 운전사도 어느 지역인지, 어느 직책인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평양 인근에서 지휘관 운전사를 하려면 집을 팔아야 한다고 소문이 났다. 자기 돈으로 군용차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고, 지휘관 가족까지 운전사가 다 먹여 살려야 한다.
북한에서 권력이 막강하고, 돈이 아주 많은 진짜 부자들은 자식들을 운전사로 보내지 않는다. 어쨌든 직무차 운전사는 10년을 복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짜 권력층 또는 부자는 자식을 집 근처 부대에서 편안하게 5년 정도 복무하게 한 뒤 입당시켜 대학을 졸업하게 한다. 부모의 권력이 너무 세면 지휘관들이 뇌물을 달라는 얘기도 못 하고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권력이 없는데, 돈이 많으면 아예 소속 중대 정도는 먹여 살린다. 대신 자식은 후방 물자 구입이란 명목으로 집에 와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제대한다.
대한민국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강민국 씨. 이제 그는 목숨 걸고 찾은 자유의 의미를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
● 로또 맞은 운명
2023년 말 강 씨는 김정은이 지시한 공사에 차출됐다. 김정은이 지시한 날짜까지 공사를 마치지 못하면 누가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지휘관들은 군인들을 인정사정없이 일을 시켰다.
강 씨는 수 톤짜리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그 넓은 작업장에 중장비가 3대뿐이고, 그마저도 수시로 고장 나거나 부품이 없어 사실상 인력으로 모든 작업을 해결해야 했다.
아침 기상 시간은 새벽 4시. 청소하고 밥을 먹고 5시에 공사장에 나간다. 세수는 어림도 없고, 이를 닦을 시간이 있는 날은 행복한 날이었다.
12시까지 오전 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다. 저녁은 6시가 아니라, 그날 과제를 마친 새벽 1시쯤에 제공됐다. 그걸 먹고 이가 바글거리는 모포(담요)를 덮고 3시간을 잤다. 1953년 전쟁이 끝난 뒤 북한군 모포는 딱 3번 바뀌었다. 수십 년을 사용한 모포는 사실상 누더기나 다름이 없지만, 수면시간이 3시간인 환경에선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배불리 먹는 것도 아니었다. 옥수수밥에 멀건 소금국을 먹고 일어서면 그때에야 배고픈 게 느껴졌다. 허약 환자들, 결핵환자들이 속출했지만, 날짜를 맞추지 못하면 떨어질 처벌이 무서워, 군인들에겐 단 하루의 휴식일도 허용되지 않았다.
강 씨는 이런 환경에서 7개월을 버티다가 결국 쓰러졌다. 병원에 가니 내시경도 하지 않고 위경련이라고 했다. 여단 병원 수준에선 수면 내시경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강제로 내시경을 삼키라고 했는데, 너무 아파 넘어가지 않았다. 수면 내시경을 하려고 하면 사회 병원에 가서 돈을 내야 했는데, 너무나 비싸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북한의 민간병원은 ‘도 인민병원’ ‘군 인민병원’ 이런 식으로 불렀는데, 3년 전부터 간판에서 인민이란 말을 뺐다. 돈받고 치료하면서 인민병원이라고 부르기에 멋쩍어서인지도 모른다.
진단도 받지 못한 채 그는 뭔지 모를 찌꺼기가 떠다니는 수액을 맞다가 결국 탈북을 선택했다. 집에서 약 살 돈을 보내줄 수 있었으면 탈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탈북하는 내내 아픈 배를 쥐어 잡고 이동했다. 그런데 그렇게 아팠던 위가 한국에 와서 약 몇 알을 먹으니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북한에 있었으면 진단도 못 내리고 생사람만 잡을 뻔했다.
여러 조사를 마치고 강 씨는 올해 1월 서울 근교 지역에 임대주택을 받고 한국 사회에 나왔다. 불과 10개월 정도 남짓한 한국 생활이지만, 너무나 행복하다. 어디든 다닐 수 있고, 인권을 존중받아 좋고, 배고픔을 몰라 좋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대학에 가라고 권했다. 그래서 한국 정착 2개월 만에 ‘다음학교’에 입학해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다음학교는 남북 청소년이 함께 공부하는 서울시 등록 대안교육기관이다.
이런 준비를 마친 끝에 얼마 전 가천대 물리치료학과에 입학했고, 내년 3월부터 다닐 예정이다. 더 좋은 대학에 가지 왜 물리치료학과를 선택했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가 물리치료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죽을 뻔한 운명이 한국에 와서 새롭게 태어나게 됐으니, 자신도 누군가를 치료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물론 지금의 결심이 옳은 것인지 확신은 없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많은 것들이 아직 뭐가 뭔지 모른다. 하지만, 어찌 되든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는 세계에서 가장 극악한 감옥에서 탈출한 엄청난 행운아다.
인민의 탈출을 막기 위해 북한은 약 240㎞의 남쪽 국경에 5m 높이의 장벽을 세우고, 8중 철조망을 만들고, 없는 전기를 아낌없이 공급하고 있다. 철조망 밖의 지뢰밭과 장벽 밖의 무수한 감시초소와 잠복초소까지 생각한다면, 감옥도 이런 감옥이 또 어디에 있을까.
탈북하다가 전기에 붙어 죽고, 총에 맞아 죽고, 지뢰를 밟아 죽은 이는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북한이란 감옥에 갇혀 생지옥을 경험하는 2000만 동포들을 생각하면, 강 씨는 로또보다 더한 행운을 얻은 사람이다. 그리고 뭐든 새로운 도화지에 그릴 수 있는 28세일뿐이다. 서울의 하늘 아래에서 오늘도 그의 꿈은 새싹처럼 자라고 있다.
- 주성하 칼럼, 동아일보·남북하나재단 공동기획 (2025)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
탄허 스님(1913~1983)은 유불선(儒佛仙)에 통달한 근대 한국 불교의 대강백으로, 수행자의 자질에 따른 공부법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말했다. 탄허는 평소 **'근기별 수행론'**을 강조했다.
이 내용은 탄허의 법문집인 《피안으로 가는 길》(1982)이나 여러 대담 기록에 나타나며, 특히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입적 전까지 대중들에게 설파하셨던 수행의 위계이다.
1. 상근기 (상등):
"상근기는 한 마디 말 끝에 곧바로 깨치거나(言下大悟), 스스로 마음의 근원을 돌이켜 보아 본질을 꿰뚫는다. 이들에게는 별도의 방편이 필요 없으며, **오직 스스로의 성품을 관조하는 것(반조자성, 返照自性)**만으로 족하다."
2. 중근기 (중등):
"중근기는 스스로 깨치기에는 업이 두터우나 지혜가 있으므로, 경전(經典)을 깊이 읽고 성현의 가르침을 문자로 배우며, 선지식(스승)을 찾아 묻고 답하며 이치를 따져 깨달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3. 하근기 (하등):
"하근기는 지혜가 부족하고 번뇌가 많아 이치를 설명해도 알아듣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오직 만트라(진언)를 외우거나 염불을 하게 하여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방편을 써야 한다. 일념으로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비로소 마음의 문이 열린다."
"Extraordinary claims require extraordinary evidence."
(특별한 주장에는 특별한 증거가 필요하다.)
- 칼 세이건 《에덴의 용들(The Dragons of Eden, 1977)》 및 TV 다큐멘터리 시리즈 《코스모스(Cosmos), 1980》
"A wise man, therefore, proportions his belief to the evidence. ... In such cases, we weigh the opposite experiments. We deduct the smaller number from the greater, and believe with a force according to the leftover."
"현명한 사람은 증거에 비례하여 자신의 믿음을 조절한다. ... 이런 경우 우리는 상반되는 경험들의 무게를 잰다. 우리는 큰 수치(증거의 양)에서 작은 수치를 차감하며, 그 남은 차이만큼의 강도로 그것을 믿는다."
- 데이비드 흄 《인간 오성에 관한 탐구(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748년
헬무트 슈미트가 쓴 논문의 가장 충격적인 주장은 인간의 의지가 '이미 과거에 결정되어 저장된' 데이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관찰자가 결과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양자 상태가 '결정되지 않은 중첩 상태'에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나중에 피실험자가 데이터를 보는 순간 **파동함수 붕괴(Collapse of the state vector)**가 일어나며, 이때 의지가 개입해 과거의 결과를 결정짓는다는 논리입니다.
게다가 20년동안이나 데이터가 일관되게 나왔고, 독립적 참관인 제도까지 있었습니다.
반론:
슈미트의 실험실에서는 유의미한 데이터가 나오지만, 그를 믿지 않는 회의론자나 다른 연구진이 같은 장비로 실험하면 결과가 '0'으로 수렴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슈미트의 자료는 통계적으로는 놀랍지만, 실제 현상의 크기는 매우 미미했습니다. 예를 들어, 50:50의 확률을 50.1:49.9 정도로 바꾸는 수준이었습니다.
학계의 시각:
이렇게 미세한 편차는 난수 생성기의 아주 미세한 하드웨어적 결함, 온도 변화, 혹은 측정 장비의 전자기적 노이즈에 의해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독립 참관인이 있어도 장비 자체의 물리적 한계까지 완벽히 통제했느냐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는 것이죠.
헬무트 슈미트 및 지지자들의 관점:
"마음은 물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는 관찰자가 보는 우주에서는 실제로 난수의 파동함수가 의지에 반응하여 붕괴합니다.
회의주의자의 우주:
"그런 비과학적인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믿는 관찰자가 보는 우주에서는 결어긋남(Decoherence)이 완벽하게 작동하여 어떤 변칙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 헬무트 슈미트 논문 "Observation of a Psychokinetic Effect Under Highly Controlled Conditions", 1993년. (Journal of Parapsychology 게재) 해석
Garret Moddel 박사에 대해
이 영상에서 초능력을 규명하는 과학적 실험들에 대해 이야기한 화자(개랫 모델 박사)는
- 스탠퍼드 대학 전자공학 학사(학부생 시절, 파이베타 카파 회원),
- 하버드대 물리학 석/박사,
- 100편에 달하는 peer-reviewed 논문 작성,
- 33개의 특허 보유,
- 켄 윌버가 한 때 공부했던 콜로라도 볼더 대학 물리학과 정교수 등
주류학계를 대표하는 커리어를 가졌다고 봐도 손색이 없을만큼 빵빵한 이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https://www.colorado.edu/ecee/sites/default/files/attached-files/moddelcv2017a.pdf
박사의 CV
더군다나 본래 유물론자로 초능력 현상에 회의적이었던 사람이었다.
초능력이 사기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연구를 하다가 오히려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한 여러 현상들을 직접 목격하면서, 초능력을 믿게 된 케이스다.
그냥 헛소리만 줄창 해대는 뉴에이지 얼간이들보다는 더 신뢰가 간다고 할 수 있다.
...
개랫 박사는 로저 넬슨의 Global Consciousness Project 연구를 긍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는데, '실험자 효과(experimenter effect)' 때문이다. 개랫 박사에 따르면 실험자, 특히 첫번째 관측자의 의식(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은 언제나 실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데, 넬슨은 그것을 간과하고 RNG 데이터의 분포를 순전히 실험의 인과 관계로 생각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초능력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실제로 관련 실험을 할 때 회의적인 결과를 얻고, 초능력에 호의적인 사람들은 호의적인 결과를 얻는다는 말이다.
개랫 박사는 '실험자 효과'를 실험하기 위해 자신이 사장으로 있던 회사에서 특수한 형태의 RNG 두 개를 제작했다. Controller RNG가 Subject RNG를 랜덤한 시간에 끄고, Subject RNG의 총 산출량이 컴퓨터에 기록되는 실험이었다.
약 300번의 반복된 실험 끝에 개랫 박사는 놀랍게도 Subject RNG가 멈추어지기 1초 전에 무작위에서 벗어난 통계학적 증거(strong deviation from randomness)를 발견했고, 이는 확률적으로 1/40에 달했다. 1,000번의 실험을 거듭했을 때는 이런 가능성이 발생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졌다. 이는 Subject RNG가 사전에 Controller RNG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지만, 반대로 개랫 박사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는 후자가 맞았다. 개랫 박사가 Subject RNG가 멈추어지는 속도(bit rate)를 바꾸자, 놀랍게도 이러한 효과는 완전히 사라졌다. 특정한 기대를 갖고 실험을 했을 때는 기대했던 결과를 나타난 반면, 그 이후에는 그와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Princeton Engineering Anomalies Research에서 Bob 박사가 달라이 라마에게 RNG에게 의식이 있냐고 물었더니, 달라이 라마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것이 의식이 있다고 생각하면 의식이 있는 것이고, 의식이 없다고 생각하면 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신이 있다고 생각하면 신이 있는 세상의 증거를 보게 될 것이고, 신이 없다고 생각하면 신이 없는 세상의 증거를 보게 될 것이다.
이와 동일한 논리에서 개랫 박사는 벡스터의 식물 연구(식물에게 의식이 있어 주변 식물이 고통을 받는 것에 의식적으로 반응한다는 연구)에 회의적이다. 벡스터 자신의 '실험자 효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게 중관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의 의식이 빚어내는 하나의 환상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양자역학의 파동함수조차도 어쩌면 궁극적으로 마음이 빚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
기타 영상에서 소개된 실험들
1) 개랫 박사 수업 중 학생들의 선천적 투시 능력을 테스트
박스에 담겨진 정체불명의 물건을 반에 가지고 와서 학생들에게 "이게 뭘까?" 하고 물어봤더니, 상당히 비슷한 비율로 맞춘 학생이 많았고, 어떤 여학생은 정확히 정답을 맞췄다. 물건의 정체는 가정에서 흔히 쓰는 물건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potato mesher.
개랫 박사는 전직 CIA초능력 부대요원을 초청해 학생들에게 투시(clairvoyance) 능력을 가르치게 만들기도 했다.
2) 투시 학습을 통해 개랫 박사는 학생들과 나스닥에 $5,000불을 투자해 7일 연속으로 이익을 거뒀고, 누적된 순이익은 $35,000에 달했다.
▶ 관련 논문: “Stock Market Prediction Using Associative Remote Viewing by Inexperienced Remote Viewers,” C. C. Smith, D. Laham, and G. Moddel, J. Scientific Exploration, 28 (1), 7-16 (2014). Article
3) 전류 피부 저항 반응(Galvinic Skin response) 검사 시, 어떤 특정한 자극(=horn. 호른)이 주어지기 몇 초 전에 피부가 반응을 함. 물론 피험자는 이 음악이 연주될 것이라는 것을 몰랐음. 무의식적인 예지(precognition)의 사례.
...
시사점
a. 인간의 의식이 electron 단위의 미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당연히 거시 세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거시세계의 경우 미시세계에 비해 더 복잡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현실이 인간의 의도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훨씬 더 지속적이고, 강렬한 믿음이 필요할 것이다.
b. 기계를 프로그래밍할 때,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분자(molecule)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를테면 전기적 RNG를 컴퓨터에 연결해, 숫자 1을 '검은색 dot', 숫자 0을 '하얀색 dot'으로 치환시킬 수 있다고 하자. 그렇게 숫자 0과 1을 이용한 랜덤 bit을 이미지로 만든다. 그러면 당신이 상상한대로 그 이미지대로 만들어질 것이다.
- Garret Moddel Ph.D. - Remote Viewing and the Reality of Psychic Phenomena | Waking Cosmos 유튜브 인터뷰 (2019) 요약
1. 도널드 호프만의 인터페이스 이론
인간의 지각은 진실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진화했다. 우리가 보는 시공간과 물체는 실제 현실이 아니라, 컴퓨터 바탕화면의 아이콘과 같은 인터페이스다. 아이콘이 복잡한 회로를 숨기고 조작을 돕듯, 시공간은 근본 실재를 은폐하여 인간이 생존 게임에만 집중하게 한다.
2. 시공간 너머의 구조: 진폭다면체(Amplituhedron)
물리학자들은 입자 충돌 계산에서 시공간 개념을 버렸을 때 수백 페이지의 수식이 단 몇 줄로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그 중심에 **'진폭다면체'**라는 기하학적 구조가 있다. 이는 시공간과 양자역학이 우주의 근본이 아니라, 그 외부의 고차원적 원리에서 파생된 결과물임을 시사한다.
3. 의식적 에이전트 네트워크
호프만은 진폭다면체 배후에 **'의식적 에이전트'**들의 상호작용이 있다고 주장한다. 물리적 세계는 수많은 의식적 존재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거대한 소셜 네트워크(트위터 등)와 같다. 물리학이 관찰하는 패턴은 이 방대한 의식 작용을 아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세부 정보를 삭제했을 때 나타나는 통계적 잔상이다.
4. 2022 노벨 물리학상과 국소 실재론의 붕괴
양자 얽힘 실험을 통해 **'국소 실재론'**이 허구임이 증명되었다.
국소성(Locality) 부정: 정보는 시공간의 제약(빛의 속도)에 묶여 있지 않다.
실재론(Realism) 부정: 관찰자와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은 없다.
결국 우주는 인간의 마음과 독립된 공간이 아니며, 시공간은 근본 실재가 아니다.
- 도널드 호프만(Donald Hoffman) Tom Bilyeu 유튜브 인터뷰 (Your Life Is A Simulation Prison! - Consciousness Extends Beyond Death & Spacetime?) (03.22.2024) 요약
자신의 과학적 신념을 유지하려는 그의 결의를 본 내 마음은 나중에 사이캅(칼 세이건이 속한 회의주의자 단체)과 이른바 '화성효과'를 둘러싼 스캔들에 의해서 더 확고해졌다. 점성술의 정체를 폭로하겠다는 의도로 시작된 그들의 작업에서 프랑스 통계학자인 미셸과 루이즈 고칼랭 부부가 이름난 운동선수들의 출생 천궁도는 상승점이나 남중점에 화성이 위치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도 놀랐지만, 점성술을 반박하기는 커녕 오히려 지지한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통계적으로 이런 일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은 오백만분의 일이었다. 나중에 이들 부부는 다섯 행성과 열한 가지 직업을 놓고 점성술의 예지력을 실험하면서 의미심장한 사실들을 발견했으며, 그들의 관찰 결과는 이후의 다른 연구가들에 의해서도 되풀이 되었다. 고칼랭의 연구 결과가 발표된 뒤 사이캅의 폴 크루츠와 조지 에이벌, 마빈 젤린이 그 보고에 격분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비판을 위해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자기들도 조사를 했는데, 서로 많은 의견을 교환한 뒤에 고칼랭의 연구 결과를 인정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그들 자신의 조사 자료를 변조했다. 이 사기극은 사이캅의 공동 설립자이자 운영위원회 회원인 데니스 롤린스의 스타베이비 라는 논설을 통해 알려졌다. 사이캅은 진실 발견을 위해 존재하는 단체가 아니라 관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기 위한 단체임을 깨달은 롤린스가 초상현상에 대한 무차별 마녀사냥보다 정직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환각과 우연을 넘어서(원제: Beyond the Brain)》 (1985년)
융이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그가 진료했던 정신분열증 환자 중 한 명이 태양을 보고 융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태양의 한가운데에 페니스가 달려 있죠? 저게 흔들리며 바람이 불어요." 이 말을 들은 융은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태양의 페니스가 바람을 일으킨다"라는 모티브가 고대종교 가운데 하나인 미트라교의 기도서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환자가 그 종교의 기도서를 읽은 적은 없었다. 이 일은 있은 뒤로 융은 환자의 발언을 단순한 망상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거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고, 그 사람은 그 힘과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동시에 융은 세계 각지의 신화와 전설을 조사해 거기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를 조사해보았는데, 그 결과 다양한 민족이 마음 깊은 곳에 '공통되어 있는 부분 = 집합적 무의식'을 갖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 출처: 칼 융 《리비도의 상징과 변화(Wandlungen und Symbole der Libido)》 (1912) 및 자서전 《기억, 꿈, 사상(Memories, Dreams, Reflections)》 (1962)
시기: 1901년 ~ 1905년 사이 (부르크휠츨리 병원 근무 시절)
상세: 이 환자는 1901년에 입원한 환자로, 융이 이 일화를 기록한 것은 1910년경. 융은 환자가 말한 '태양의 관(tube)' 모티브가 1910년 알브레히트 디트리히가 출판한 **〈미트라교 기도서(A Mithraic Ritual)〉**의 내용과 일치함을 발견하고, 개인적 경험을 넘어선 **'집합적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다.
어느 날 융은 기이한 환상을 경험한다. 융은 밤중에 깨어 전날 장례를 치룬 친구를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문득 융은 죽은 친구가 방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후 친 구는 수 백미터 떨어진 자신의 집으로 융을 데려갔다. 융은 그 친구를 따라갔다. 그리고 친구는 서재에서 적색 표지의 책 한 권을 가리켰다. 너무도 기이한 체험이어서 융은 다음날 아침 죽은 친구의 서재를 직 접 찾아가서, 환상에서 가리킨 적색 표지의 그 책의 제목을 확인해 보았다. 그 책의 제목은 <死者의 유산>이었다.
- 출처: 칼 융 자서전 《기억, 꿈, 사상》 제9장 '사후의 삶' 부분 (1962)
시기: 1920년대 초반 (융의 친구 한스 쿠쉬만(Hans Kushmann)의 사후로 추정)
상세: 꿈속에서 친구가 가리킨 책의 정확한 제목은 **《죽은 자의 유산(The Legacy of the Dead)》**이 아니라, 에밀 졸라의 《사자의 유산(Les Héritiers Rabourdin / The Heirs)》 혹은 유사한 제목의 책으로 알려져 있다. 융은 이 경험을 통해 정신이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운다.
황금 풍뎅이와 동시성 (Synchronicity)
어느 날 정신의학자 융은 한 여자환자를 상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삶을 너무나 합리적으로 살려는 태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상담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그 여자가 융에게 자신이 꾼 풍뎅이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풍뎅이는 이집트 신화에서는 재생 혹은 환생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융은 꿈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그녀가 바야흐로 심리적 재탄생을 겪을 때가 왔음을 느끼고 그것을 이야기해주려던 찰라 창문에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고개를 돌려보니 유리창 밖에 풍뎅이 한 마리가 있었다. 융이 사무실 창밖에서 풍뎅이를 본 건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한다 ― 융은 그 꿈을 해석해주고 난 뒤에 풍뎅이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환자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지금까지의 자신의 태도를 바꾸었고 그때부터 환자의 치료가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마치 시공간의 장벽을 넘은 듯 이렇게 정신의 심상이 현실의 사건들과 불가해하게 일치되는 현상을 융은 ‘동시성(synchronicity)’라고 불렀다.
- 출처: 칼 융의 논문 〈동시성: 비인과적 연관 원리(Synchronicity: An Acausal Connecting Principle)〉 (1952)
시기: 1920년대 후반 ~ 1930년대 사이
상세: 융의 환자가 꾼 꿈속의 보석은 '황금 풍뎅이(Scarabaeid)'였고, 실제 창문을 두드린 곤충은 **금풍뎅이(Cetonia aurata)**였다. 융은 이 '의미 있는 일치'를 설명하기 위해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와 협력하여 동시성 이론을 정립한다.
어느 날 융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순간 뒷머리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그 순간 그의 환자 가운데 한 사람이 권총자살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총알은 마침 융이 심한 통증을 느낀 부 분에 박혀 있었다. 1918년 융은 영국인 수용소의 지휘자로 있으면서, 자기(Self)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형 상화되어 나타나는 像을 그림으로 옮겼다. 그 그림은 황금의 성 모양을 한 만다라였다. 얼마 뒤에 리햐르 트 빌헬름이 융에게 보낸 책 안에는 융이 그렸던 만다라 그림이 놓여있었던 것이다. 융은 이러한 정신적 사건과 물질적 사건의 의미있는 일치를 동시성(Synchronicity) 이론으로 부르 고, 이와 같은 정신현상에 대하여 진지하게 논의한다. 사실 융이 최초로 이론화한 동시성 이론은 우리시 대의 양자물리학적 세계상의 정신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많은 과학자들은 융의 저 이론 에 대하여 다각도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실로 융에게 있어서 텔레파시나 예언현상은 신비한 체험 이나 주관적 환상이 아니라 자명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 출처: 칼 융 자서전 《기억, 꿈, 사상》 (1962)
시기: 1940년대 후반 ~ 1950년대 초반
상세: 융이 호텔에서 겪은 이 신체적 통증 일화는 그가 말한 '비로컬적(Non-local)' 정신 현상의 전형이다. 정신적 사건이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이 경험은 훗날 양자역학의 '양자 얽힘' 현상과 비유되기도 한다.
융은 1918년부터 만다라를 그리기 시작했고, 10년 뒤인 1928년 동양학자 리하르트 빌헬름으로부터 중국 도교 연금술 서적인 《황금 꽃의 비밀(The Secret of the Golden Flower)》 사본을 받는다. 그 책에 묘사된 '황금 꽃'의 구조가 자신이 그린 만다라와 일치함을 보고 융은 동서양을 관통하는 무의식의 상징 체계를 확신한다.
- 출처: 칼 융 자서전 《기억, 꿈, 사상》 (1962) 및 《황금 꽃의 비밀》 서문 (1928)
융은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가지 說法>을 마흔 한살이 되던 1916년에 개인적으로 내놓았다. 이 설법은 죽은 자들이 질문을 하고 융이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문헌의 전체적인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융은 죽은 자와의 대화를 하였던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 문헌은 융이 죽기 바로 전에 어렵게 세상에 공개되었다. 하지만 결론부에 있는 글자 수수께끼인 아나그람마(Anagrama)는 끝끝내 밝히지 않았다. 그 암호의 열쇠를 공개하지 않고 융은 죽었던 것이다.
- 칼 융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가지 설법(Septem Sermones ad Mortuos)》 (1916)
(* 상세: 이 텍스트는 융의 '빨간 책(The Red Book)'의 부록처럼 쓰인 신비주의적 저작이다. 초기 영지주의자 **바실리데스(Basilides)**의 이름을 빌려 썼으며, **아나그람마(Anagrama)**는 이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20자의 수수께끼 같은 문장이다. 융은 생전에 이를 풀이하지 않았으며, 현재까지도 연구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영원의 철학
- 올더스 헉슬리가 쓴 《영원의 철학》 (The Perennial Philosophy, 1945)은 방대한 '비교 종교학 보고서'다.
동서양 성자, 신비주의자들의 어록을 수집하고 헉슬리의 주해를 단 철학적 백과사전.
(* 이 책보다 선배격인 책들: 최초로 유불선을 통합하려고 한 모자(牟子)의 《모자이혹론》 (서기 2세기 후반), 당나라의 종밀이나 송나라의 주희, 명나라의 왕양명의 유불선 통합 시도들, 그리고 서양으로 건너와서는 리처드 모리스 버크(Richard Maurice Bucke)의 《우주적 의식(Cosmic Consciousness)》 (1901)와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1902) - 그의 후배격인 책은 물론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 《물리학과 도(The Tao of Physics, 1975)》 같은 뉴에이지 책들이다.)
"의식의 심층으로 내려가면 '개인적 무의식'을 넘어 '집단적 무의식'의 층위에 도달한다. 이 영역의 하부, 즉 **M 영역(Mythological field)**은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지는 신화적 공간이다. 이곳은 논리적 언어가 해체되고 원형적 이미지가 출렁이는 곳으로, 샤먼의 황홀경(Ecstasy)이나 영매의 신들림, 환각 체험이 발생하는 장소이다. 인간은 이 영역에서 개별적 자아를 넘어 우주적 생명력과 조우하며,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사물들 간의 유기적 결합을 목격하게 된다."
- 이즈쓰 도시히코 《의식과 본질》 (1983년)
일본 문학에선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모노가타리의 주된 정서 아와레와 자주 비교된다"고 한다. 아와레는 대상에 몰입하여 그로 인해 얻는 정취를 말하지만, 오카시의 경우 사물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그로부터 얻는 흥취를 일컫는다.
예를 들어, 공양을 드리고 있는 스님을 보았다고 할 때 아와레의 관점에서는 공양을 드리는 스님의 마음으로 들어가 그것에 깊은 공감을 하며 몰입하는 반면, 오카시의 경우 공양을 드리는 스님의 모습 그 자체와 그 주변 배경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느끼는 멋을 추구한다 차이가 있다.
에도시대의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규정한 것처럼, 일본인의 정서는 <겐지모노같리>의 모노노 아와레 정서가 주류가 되어 왔다고 볼 수 있지만(현대 일본인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양보를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것도 대상물과의 일치에 의한 '모노노 아와레'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오카시'도 일본인의 미의식으로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일본인들이 지진이나 화산 폭발 등이 일어났을 때 침착함을 잃지 않거나 가까운 사람과의 사별에도 슬픔을 자제하는 것 등이 이 '오카시' 정서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X의 의식을 성립시키는 본질은 일반자이다. 결국 꽃의 성질이란 어떤 꽃에게도 공통되는 일반적인 성질이다. 이렇게 본질이 일반성을 갖는데 반해 실재하는 존재는 개별적이다. 이 꽃을 진짜 이 꽃으로 체험하는 경우, 이 꽃에는 그냥 꽃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무엇인가가 나타나고 있다는 존재감각이 활동하고 있다. 이 꽃을 일반적인 꽃이 아니라 이 꽃답게 만드는 다른 차원의 리얼리티가 있고 그것은 일반자, 즉 보편적 본질과는 다른 또 다른 하나의 본질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이 근원적 존재감각으로부터 나온다."
이슬람의 스콜라 철학은 이런 시점을 가지고 본질을 둘로 나누었어요. 일반자, 즉 보편적 본질 마히야와 개체적 본질 후위야로. 요컨대 실재하는 꽃을 앞에 두고 '이 꽃'의 '이'에 절대적인 역점을 둘 것인가(후위야), '꽃'에 역점을 둘 것인가(마히야)에 의해 본질론은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심지어 정반대의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독특한 개별 사물의 독자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리얼리티를 개별 사물의 존재론적 구조 자체의 내부에서 찾아 본질로 삼는 것이 후위야입니다. 이런 입장을 철저하게 밀고 나가려고 한다면 '보편적 본질'은 이성의 추상작용에 의해 만들어낸 개념적 일반자의 위치로 폄하되어 그 실재성을 박탈당하지 않을 수 없게 되요. 그러나 이런 개체주의에 정면으로 반대하여 마히야의 실재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상가들이 동서양에 적지 않게 존재했고 그들은 보편적 본질이 실재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왔어요. 이들에게 보편적 본질은 단순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농밀한 존재감을 지닌 리얼리티를 말하구요.
일반자로서의 본질은 말, 즉 사물의 이름과 매우 친밀하게 결합되어 있어요. 본질의 실재성을 긍정하는 입장이건 부정하는 입장이건 이 점에 관해서는 똑같죠. 본질의 실재를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말이 본질 환기적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고 긍정하는 입장에서는 말이 본질 지시적으로 작용한다고 봐요. 쉽게 말하자면 꽃이라는 이름이 본래는 실재하지 않는 꽃의 본질을 망상적으로 불러일으킨다고 보는 입장(본질 환기)과 실재하는 꽃의 실재하는 본질을 지시한다고 보는 입장 차이가 있을 뿐인 거죠. 이렇게 말이 의미하는 일반자, 즉 '마히야가 실재인가 비실재인가' 하는 문제는 불교철학의 입장과 힌두철학의 입장의 존재론적 대립의 주축으로 인도사상의 오랜 역사를 통해 왕성하게 논의되어 왔구요.
불교처럼 마히야를 부정하여 떨쳐 버리려는 입장과 달리 일반자인 본질의 실재성을 긍정하는 입장에서는 마히야가 어떤 형태로 실재하는지, 의식 차원에서 그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를 규명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거죠.
보편적 본질의 실재성에 관한 주장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서 보여주는 것이 3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기준은 '실재하는 본질'을 사람이 의식의 어떤 층에서 어떤 모습으로 받아들이는지예요. 이 작업을 위해 의식을 표층의식과 심층의식으로 나눴어요. 물론 의식에 표면이나 심층이 있을 리 없지만 일상적인 조건아래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의식들(대승불교의 무의식, 릴케의 의식의 피라미드 밑바닥 같은)을 심층의식이라고 하기로 한 거죠.
- 이즈쓰 도시히코 《의식과 본질》 (1983년) 요약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의 일부이다."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고 묻지 마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 존 던 《명상 17 (Meditation XVII)》 (시집 《병상의 기도문(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 중 일부 (1624년)
(* 존 던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중병(발진티푸스로 추정)에서 회복하며 쓴 글이다.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장례식 종소리를 들으며, 타인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임을 깨닫고 쓴 처절하고도 숭고한 성찰이다.)
Q. 왜 다른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A. 아까 말했던 평화 때문이었다. 그리고 박사 논문을 쓸 때 아주 희한한 경험을 했다. 아시아 여성 해방이 논문 주제였는데 이전에 아무도 쓰지 않아서 모델이 전혀 없었다. 아시아 전역을 누비며 인터뷰를 해서 쓰려는데, 주위에서 이런 논문은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논문으로는 박사가 될 수 없다는 문화 권력의 압력이었다.
나는 죽어도, 죽은 서양 남자의 이론에 대해서는 쓰고 싶지 않았다. 살아 있는 아시아 여성에 대해서 쓰고 싶은데, 기독교 신학 안에는 그것을 담아낼 방법론, 그릇이 없었다. 고민을 많이 하고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때 선을 배우고 있었는데, 기독교와 불교를 섞어서 기도와 명상을 하곤 했다. 그때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면서 내가 몸 밖으로 나가는 경험을 하게 됐다. 그런데 그때 어떤 분이 나타나서, 계속 나를 도와줬다. 꿈에 나타나서 내가 필요한 자료며 논문을 일러줬다. 어떤 때는 패널 토론까지 시켜줬다(웃음). 밤에 자다가 깨어나서 막 메모를 하곤 했다. 그렇게 해서 3년 동안 안 써지던 논문을 두 달만에 끝냈다. 거의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은 느낌이었다. 그분과 여러 신화적인 경험이 많았다.
Q. 그분이 누구인가?
A. 내가 꿈에 똑같은 질문을 했다. '당신 누구입니까, 이름을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하니까 '꿘인'이라고 답하더라.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50~60대 아주머니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종교 백과사전을 뒤지다 보니까 꿘인이 나왔다. 관세음보살이 중국에 가서 여신이 되었는데 그 여신의 이름이 꿘인이라는 것이었다. 너무너무 놀랐다. 왜 중국 여신이 나에게 나타났을까. 명상할 때 그분이 나타난 풍경이 낙산사 앞에 있는 의상대 같았다.
그래서 한국에 오자마자 거기를 찾아갔다. 나는 그 절이 어떤 절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너무너무 커다란 관세음보살이 서 있었다. 갑자기 내 인생의 퍼즐이 착착착 맞아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난 기독교의 신학 박사학위를 쓰면서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져 있을 때, 나를 도와준 신화적 인물이 중국의 여신이었고, 그것은 관세음보살의 현현이었다, 그리고 나는 관세음보살이 나타나는 낙산사에 와 있는 것이었다.
주지스님한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정식으로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융이 이런 얘기를 했다. 우주에 신화적인 것들이 떠돌다가 어느 순간에 동시적으로 나타나 얘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내가 하바드에 교수로 있을 때 숭산스님을 만나 불교에 대한 속성 과외를 받고 제자가 되었다. 매일 두 시간씩, 할아버지가 손녀 가르치듯이 '옳지, 옳지' 하시며 가르쳐 주셨다. 숭산스님이 '대광명'이라는 법명을 내리셨다. 그때 하바드 대학원생으로 있던 현각 스님도 만났다. 그 다음에 틱 낫한 스님도 만나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
- 현경 교수 <시사저널> 665호 인터뷰 (2002년)
존스홉킨스 의대의 저명한 정신의학자인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박사의 LSD 세션을 체험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 환각상태에서 보았던 상징은 뉴기니 말레쿨란 부족의 어머니 여신이었다. 이 여신은 여성의 몸에다 돼지의 얼굴을 한 섬뜩한 외모를 갖고 있으며, 저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앉아 복잡하게 얽힌 신성한 미궁을 지킨다. 말레쿨란 부족은 미궁을 그리는 연습에 엄청난 시간을 소비하는데, 그것이 저승으로의 여행에서 성공하는 필수 조건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로프 박사의 세션에 참여했던 참가자나 그로프 박사 본인도 이런 상징에 대해 보거나 들은 적이 전혀 없었다(이 상징은 그로프의 친구인 조셉 캠벨이 나중에 말해준 것이었다).
-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Stanislav Grof) 《코스믹 게임, 1998》 요약
"뇌는 의식의 생성처가 아니라, 의식이라는 거대한 장(field)을 수신하고 변환하는 '통로'나 '중계기(relay station)'에 불과하다. 마치 라디오 수신기가 방송국에서 보내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전달하는 통로인 것처럼, 우리의 뇌 역시 우주적 의식을 물리적 현실로 번역해 주는 장치다."
-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Stanislav Grof) 《코스믹 게임, 1998》
나는 목성과 달이 만난 날 UFO를 본 이후, 딱히 누구라고 특정할 수 없는 존재와 묘한 소통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기분 탓이거나 사춘기 특유의 불안한 심리 상태가 불러온 상상일 뿐이라고 치부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매일 일어나는 사실을 계속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 목소리는 늘 바람의 속삭임 같이 불쑥 마음에 울렸다
‘파동’을 느끼기 시작하면 곧 파동과 함께 사람과 장소에 관한 정보가 흘러들어온다. (...중략...) 예를 들어 부부가 거실에서 다퉜다고 하자. 그러면 거실에는 싸움의 파동이 남고, 다음 날 두 사람이 다시 거실에 갔을 때 그 파동의 영향으로 또 다툴 수도 있다. (...중략..) 반대로 온화한 에너지가 남아 있는 장소에 가면 그 영향으로 내 마음도 편안해진다. 이것이 파동의 가장 중요한 작용이다. 파동은 주위와 조화를 이루려고 한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주변 공간이나 곁에 있는 사람과 같은 파장을 내보내려고 한다.
과거와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냈을 뿐이며, 사실은 ‘지금’이라는 살아 움직이는 우주만이 존재한다.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일직선의 시간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지금’만이 존재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 줄리앙 샤므르와 《가려진 질서, 2022》
"많은 구루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도 연구하고 있는 우주의 비밀이지만, 저와 같이 체험이 곁들여졌을 때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해 버리시는 경우도 종종 있거든요. 저 역시 이 책을 쓰면서 독자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금 불안했지만, 동시에 제 경험을 최대한 진솔하게 전달해야 했죠.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됨(oneness)'의 체험을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현실적인 언어로 서술해야 했는데, 이 점이 이 책을 쓰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입니다.
그 외에는 제가 삶으로 증명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기에 비즈니스 운영 외에도 미국, 프랑스, 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서 북토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 관점에서는 독자 분들이 UFO, 사후 세상, 영혼, 혹은 이 세상 밖에 무엇이든, 이런 것들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경험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냐는 것입니다. 즉, 핵심은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이죠."
"'하나됨'의 경험으로 저는 스스로를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인지하게 됐습니다. 지금의 저는 예전이라면 절대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하고 있어요. 먼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두려움 없이 강연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전에는 청중들이 분리된 개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전체의 일부, 즉 제 일부라고 보기 때문에 가능했죠. 또, 두려운 변화 앞에서 새로운 기회를 알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첫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수학을 못했던 제가 의식이 확장되는 경험을 통해 사업 계획 과정에서 필요한 수학적 계산도 모두 잘해낼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예전처럼 스스로에게 한계를 짓지 않고, 컴포트 존을 벗어나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습니다.
일상에서는 대인 관계가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단단하게 형성하는 방법을 알게 됐기 때문이죠. 사업적으로 프로젝트를 실현하고자 할 때 이 점이 핵심적으로 작용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타인의 마음을 더 공감하며 도울 수 있게 됐습니다. 성공의 키워드는 '공감'입니다. 진정 성공하고 싶다면 타인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공감할 수 있어야 하기에 아주 중요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죠. 프랑스인인 제가 이 책을 일본어로 집필했다는 것도 놀라운 기적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모국어로도 쉽지 않은 일인데, 외국어로 책 한 권을 쓰는 건 아마도 가장 어려운 작업일 겁니다. 한 번도 책을 낸 적 없던 제가 외국어로 책을 쓴다는 건, 동시에 두 가지 목표에 도전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이 책 자체가 증거입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제게 알려준 완벽한 사례죠. '하나됨'을 경험한 후로 저는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제 한계를 알게 되니, 전보다 훨씬 빠르게 배우고 모든 면에서 능력이 향상됐죠. 제 인생의 판도가 뒤바뀐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줄리앙 샤므르와 yes24 인터뷰 (2022.11.17)
"아름다움은 그 자체에 있지 않고 그 배경에 있다. 그 서는 동산, 그 가을, 그 하늘, 그 바람에 있다. 또 기러기를 그 깃이나 소리를 볼 때에는 아름답달 것이 별로 없지만, 그것을 푸르고 한없이 넓은
가을 하늘가에 날려놓고 그 한 소리 길게 뽑는 것을 들을 떄는 공작이 봉황이 꾀꼬리가 떼로 몰려든가 해도 비길 바가 되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기러기의 아름다움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오 그 사는 배경에 있다.
그럼 무엇이 아름다움이냐? 첫째 알아야 할 것은 아름다움은 하나를 나타냄이라는 것이다. 너희는 옷이 아름답다면 곧 그 옷감이 무언지 그 빛깔이 어떤지 그것부터
생각하지만 아름다움은 그 내용되는 자료에 있는 것이 아니요, 그 나타내는 방법에 있다. 조화에 있다. 조화란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됨이다. 전체의 각 부분부분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잘 어울려 하나를 이루는 것이 곧 조화다. 조화의 화는 하나됨이다. 저고리와
치마가 따로 놀아서는 아니 되고, 오소가 신발이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아니 된다. 양복에 미투리를 신어도 보기 싫거니와 일하는
베잠방이에 구두를 신어도 보기 싫다. 그래 짚신엔 제날이 제일이라는 것이다. 말을 타면 경마 잡히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 함석헌 《내 안으로부터의 혁명》 (1990년) - 유고집 성격의 선집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내게 있다. 산을 보고 장엄한 것을 느끼는 것은 내 손에 산, 곧 높고 장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꽃을 보고 아름다움에 취하는 것은 내 손에 꽃이 있기 때문이다. 꽃이 내 손에 아름다움을 만든 것 아니다. 내 손에 있는 꽃이 그
꽃이라 부르는 것에 부딪쳐 자기를 알아보게 된 것이다. 내 속에 성인이 있으므로 내가 성인을 알아보고 사모하고, 내 속에 도둑이
있으므로 도둑을 알아보고 미워하는 것이다. 이가 내게 있으므로 내가 이를 알고, 도가 내게 있으므로 내가 도를 체험한다.
하나님이 내 속에 계시므로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 모습대로 사람을 지었다는 것이다. 어떤 철학자는
"하나님이 자기 모습대로 사람을 만든 것 아니라, 사람이 제 모습대로 하나님을 만들었다"하고는 큰소리나 하듯 뽐내지만, 그소리가 그
소리다. 어떤 종교가도 그 소리를 하는 포이에르바하 이상으로 종교적일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한
예수보다도 더 무신론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브라만이 아트만이요, 아트만이 브라만이다.
사람의 정신이 곧 하나님의 정신이다. 하나님없이 사람에게 정신이 있을리 없고, 그 대신 사람에게 정신이 있는 이상은 그 정신의 근본인 하나님이 없을 리 없다. 하나님이란 곧 절대정신이다."
- 함석헌 《내 안으로부터의 혁명》 (1990년) - 유고집 성격의 선집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꿀 사망학, 유체이탈 보고서
두바이에 가기까진 석달 정도 여유가 있었으므로 나는 도서관에서 업무 관련 공부를 하며 틈틈이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있었다. 마음이 편치 않아 그런지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서관 말고 딱하니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사는 게 항상 이 모양일까.. 큰 욕심 안내고 나름대로 착실히 생활했고 특별히 나쁜 짓을 한 적도 없으니 죄가 있다면 전생에 있을 것이다.. 대충 이런 불만을 마음 속에 품고 있다보니 윤회에 관한 책이 서가에 꽂혀 있는 게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사람에게 최면을 걸어 전생을 볼 수 있게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전생이란 걸 UFO처럼 부정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선뜻 믿기도 어렵다는 어정쩡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 예전에 TV에서 연예인들이 최면을 받으며 전생퇴행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영화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가 침을 뱉는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고, 전체적으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책엔 한가지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최면 상태에서 자신이 전생에 요나라 사람이었다며 이상한 말로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최면을 건 사람이 전문가를 통해 알아봤더니 그 문맥에 맞는 고 몽고어가 틀림없고, 사어가 된지 오래라 그 말을 아는 사람이 몽골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했다는 것이다.
만일 전생이란 게 정말 존재하고 최면을 통해 알아낼 수 있다면, 내가 왜 이런 인생을 사는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만일 내가 특정한 사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라면, 나는 두바이에 가서는 안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국에 남아 글을 마무리지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거라면 그렇게 망상에 빠져드는 이유 또한 알 수 있을 것이고 미련없이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사실 여부를 좀더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도서관에 있는 윤회 (혹은 그 전단계인 임사체험) 관련 책들과, 전생이 비과학적인 허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책을 모조리 읽어보기로 했다.
양쪽 다 그럴듯한 주장을 하고 있었지만, 소위 회의주의자들(과학에 위배되는 현상을 체험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사기꾼 아니면 싸이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약간 공정치 못한 방법으로 논쟁에 임하는 것처럼 보였다. 초자연 현상의 보고 사례들은 그 특성상 엉성하고 미심쩍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예컨대 UFO 목격담이 한해동안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UFO 연구가들마저도 그중의 99%가 신빙성이 없다고 본다. 그런데 회의주의자들은 만만한 사례들만 골라 집중 공략한 뒤, 정작 중요한 1%의 사례들은 '여태껏 봐놓고도 모르느냐, 안봐도 뻔한 거다'라며 아예 상대를 하려들지 않는 것이다. (아마추어 회의주의자가 윤회에 관한 그 1%의 사례를 파헤쳐 보겠다며 책을 쓴 경우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억지스럽고 모순된 논리로 일관을 해 끝까지 읽기가 고역스러울 정도였다. 이런 류의 책을 쓰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왜 드문지 알 것 같았다)
회의주의자들은 사례보다 (과학) 이론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이론을 만든 사람들은 뛰어난 지성을 가진 과학자들이라 오류가 있을 수 없지만, 사례를 목격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수준이 쳐지는 '평민'들이므로 이론보다 비중있게 취급돼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편견에 불과할 수 있다. 다음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가 쓴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1960년대 말에 체코에서 캐나다로 이주해온 내 동생 파울과 그의 아내 에바는 둘 다 정신과 의사이다. 그들은 온타리오의 해밀턴에 정착하여 맥마스터 대학의 정신의학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의 의사 면허를 얻기 위해 시험을 치러야 했던 그들은 생계를 위해 둘 다 정신과 병원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시험공부는 저녁과 주말의 시간을 이용했다. 잠을 조금밖에 못자는 긴장된 나날이 이어지면서 결국 에바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늦은 시각까지 공부하고 있던 어느날 밤 그녀는 이상한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들리는 증상은 심각한 정신병, 좀더 자세히 말하면 편집형 정신분열증에 직결되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로서는 아주 두려운 일이었다. 두려움을 극복한 후 그녀는 그 목소리가 모국어인 체코 말이나 자신이 유창하게 구사하는 영어가 아니고 알지 못하는 외국 말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정신분열증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었다. 정신분열증 상태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명령하고 협박하고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등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특정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에바는 그 목소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그것이 어떤 언어인지도 몰랐지만 체계적인 언어처럼 명료하게 들렸고 그냥 애매모호하게 지껄이는 소리 같지는 않았다. 거기에 어떤 의미있는 정보가 담겨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그래서 그 메시지를 기록하여 어학에 능한 사람들과 상의해 보기로 했다. 영어와 달리 체코어는 표음 문자였으므로 어떤 단어든 들리는 것을 소리나는 대로 받아 적어 나중에 정확히 재현할 수 있었다.
마침 파울은 얼마전에 캐나다에 온 크로아티아 출신 의사 아사프를 만났었는데 그는 보통 사람과 달랐다. 기억력이 아주 뛰어난 그는 여러 개의 언어를 가르칠 수 있는 수피 셰이크(회교 민족의 가장, 족장, 교주)였다. 에바가 아사프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노트에 기록한 메시지를 읽었을 때 아사프는 깜짝 놀랐다. 그 메시지는 고대의 아라비아어였는데, 비전으로 이루어진 수피 문헌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중략)
70년대 초에 나는 또다른 체험을 하고 나서, '목소리 환청' 현상에 대한 자세가 크게 바뀌었다. 내가 배운 정신의학에서는 그것을 심각한 정신이상 증세로 규정하고 있었다. 에살렌 연구소가 표방하는 인간의 잠재력 탐구 취지에 공감하여 많은 센터들이 생겨났는데 그중 하나인 캘리포니아 소노마 웨스터벡 농장에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점심 시간에 농장 주인인 팻 웨스터벡이 잠시 그곳을 찾은 헬렌 슈크만과 빌 셋퍼드라는 두 심리학자를 내게 소개했다. 헬렌은 임상과 연구를 겸하는 심리학자로서 뉴욕시 컬럼비아 대학의 의학심리학 조교수였고, 빌은 그녀와 함께 일하는 의료 센터의 의학심리학 교수이자 헬렌이 속한 부서의 책임자였다.
함께 식사하면서 헬렌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자신과 빌 사이의 관계에 문제가 있어 감정적으로 크게 긴장되어 있던 어느 시기에 아주 상징적인 꿈과 심상들 및 목소리를 체험하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말이 아닌 어떤 종류의 텔레파시에 의해서 무언가를 빠르게 받아적도록 요구하는 것 같았다. 놀라운 것은 그 목소리가 자신을 예수라고 소개한다는 사실이었다. 유태인이고 무신론적 과학자, 심리학자, 일류 대학의 교육자였던 헬렌은 너무나 어이가 없었고, 에바가 그랬었듯이, 정신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헬렌이 읽은 적 없는 성서의 긴 문장을 정확히 인용하면서 그 문장의 여러가지 번역문에 있는 오류에 대하여 아주 특별한 언어적 해석을 가했고, 그녀는 이런 정보의 정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빌과 헬렌은 목소리의 모든 내용을 출판했고 그 책은 30종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환각과 우연을 넘어서> 中
위의 사례는 과학에 종사하는 전문가들, 특히 환청을 정신병 증세로 알고 있던 사람들이 겪은 것이라 그만큼 신빙성이 있다. 의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 중에는 그러한 체험을 겪고도 비밀에 붙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알려져봐야 득될 게 없기 때문이다. 윗글에 소개된 사람들도 자신의 체험을 공개할 때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본다. 특히 주변 동료들로부터 쏟아지는 따가운 눈총을 각오해야 했을텐데, 실제로 윗글을 쓴 의사도 회의주의자들의 타겟이 되었고, 결국 그 수장격인 칼 세이건과 만남을 갖게 됐다. 다음은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대화를 기록한 것으로 역시 <환각과 우연을 넘어서>에 소개돼 있다.
<칼은 결국 나에게 공개적으로 만나 그 분야에 관련된 이론적인 문제들을 토의하자고 요청했다. 나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보스턴에 있는 그의 호텔 방에서 그를 만났다. 이 만남의 다른 참가자들에는 내 아내인 크리스티나와 칼의 아내인 드루얀, 하버드의 정신과 의사이자 연구가이며 우리 두 사람의 친구인 존 맥이 포함되었다.
칼은 토론에 앞서 나에게 의학과 심리학을 공부한 전문가로서의 책임을 상기시키고, 학계에서 인정받는 지식인들의 말은 세상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을 숙지하여 공중 앞에서 말을 조심하도록 당부했다. 이어서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일반인에게 분명하고 완전한 과학적 사실을 제공해야할 의무를 갖는 것이 과학자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런 다음 여러가지 장난과 사기, 협잡에 의해 사람들이 속고있는 일련의 사례들을 인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數)를 이해할 수 있다는 '영리한 한스'라는 이름의 독일산 말을 거론했고, 이탈리아에서 발굴된 어떤 형상이 거인의 화석이라고 주장하는 거짓과 그 외의 몇가지 사례를 들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그의 말이 우리가 토론하기로 했던 주제와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고 한마디 했다.
"그러면 당신은 무엇이 우리의 토론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가 물었다.
"초개인적 체험의 실체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타인이나 다른 생명체와 하나가 되는 체험, 실제의 유체이탈 체험, 원형적인 존재와 존재계들의 심상, 조상과 민족과 카르마에서 비롯된 계통발생학적 기억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것들이 관련 자료도 사실 근거도 없고 현실적 사례들과는 무관한 환각이나 환상입니까?"
"실례를 보여주시오." 그가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나는 몇개의 예를 들어, 비일상적 의식상태에 든 사람들이 물질계의 여러 측면과 동화되거나 집단무의식의 역사적 원형적 영역을 체험하고 이번 인생에서 보통의 수단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례들 중 셋은 짐승과 동화된 체험이었고, 둘은 역사적인 사건들이었으며, 하나는 뉴기니의 말레쿨라 섬에 전하는 무서운 여신의 불명료한 원형적 심상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칼은 평정을 되찾아 권위적으로 가르치는 자세를 취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이 그것입니까? 좋습니다. 그것은 설명하기 쉽고, 크게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미국 아이들은 하루에 보통 여섯 시간 정도 텔레비젼을 봅니다. 그들은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보는데 거기에는 노바(과학시리즈 물)라든가 디스커버리 채널과 같이 과학지식을 포함하는 것들도 있지요. 그들은 그것을 대부분 잊어버리지만 그들의 머리는 놀라운 기관이어서 그것을 모두 기록합니다. 그러면 비일상적 의식상태에서 그 정보를 사용하여 새로운 정보 같이 보이는 것을 만들어내지요. 그렇지만 당신도 아시다시피 오관을 통해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정보는 입수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런 정보가 있다면 그것은 이번 인생의 어느 시기에 어디선가 입수된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실망했다. 칼은 물질주의 과학의 신조가 되어버린 영국 경험주의자들의 옛 속담을 인용하고 있었다. "감각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지성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 고객들의 체험에 새로운 정보처럼 보이는 어떤 것이 들어 있다면 그들은 언제 어디선가 어떤 식으로든 이번 인생에서 오관을 통해 그것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과학을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달리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음을 느끼고 나는 죽음의 과정을 연구하는 분야인 사망 심리학을 마지막 방책으로 선택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이 분야의 연구가들은 임사 상황에서의 유체 이탈 체험과 관련해서 약간의 관찰 기록들을 보유하게 되었다. 여타의 초개인적 현상들과 달라서 이 체험은 좀더 쉽게 입증된다. 이것은 베스트셀러 서적과 텔레비전의 토크쇼를 통해서, 할리우드 영화들을 통해서까지 널리 알려졌으므로 내 주장을 입증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임사 상태에서 유체가 이탈되어 있는 동안 육체를 떠난 의식이 오관을 통하지 않고 주변 환경과 원거리의 상황을 인식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사망심리학적 연구 결과들을 제시했다. 켄 링의 '심안心眼 (1999)' 이라는 책은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들이 분리된 의식에 의해서 주변환경을 인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시각 효과를 체험했고 그들이 본 것은 사실과 일치했다. 켄의 말을 빌면, 그들은 실제의 유체이탈 체험을 한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나는 또한 심장외과 전문의로 환자들의 임사체험을 연구했던 마이클 세이봄의 '죽음의 회상(1982)'이란 책을 인용했다. 나는 칼에게, 마이클 세이봄의 환자들 중 한 사람이 수술하는 동안 심장이 정지되었던 자신의 소생 과정을 자세히 서술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사람은 분리된 자신의 의식이 우선 천장 부근에서 수술 과정을 지켜 보았다고 보고했다. 흥미를 느낀 그의 의식은 좀더 가까이서 관찰하기 위해 수술 기구들 중의 하나인 계측기 위로 내려왔다. 소생한 뒤의 인터뷰에서 그는 수술팀의 작업에 따라서 계측기의 바늘이 움직이는 것까지를 포함한 전 과정을 기억하여 마이클 세이봄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런 경우를 얘기하고 나는 칼에게, 그의 세계관으로는 이 사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지 물었다. 그는 잠깐 동안 주저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일은 물론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방금 들은 말이 믿어지지 않아 내 귀를 의심하면서 물었다.
"무슨 뜻이지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단 말씀입니까? 심장외과 전문의인 마이클 세이봄이 자신의 환자들과 함께 행한 연구에 근거하여 보고한 내용입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을 당신은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그 모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번에는 대화가 좀더 길게 중단되었다. 칼은 대답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말씀드리지만," 그가 결국 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세상에는 많은 심장외과 전문의가 있습니다. 아무도 그 의사를 몰랐을 것이고, 그래서 그는 주목을 받기 위해 황당한 이야기를 꾸며낸 겁니다. 일종의 자기홍보 계략이지요!"
충격이었다. 칼의 세계관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자적인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증거가 통하지 않는, 절대로 부서질 수 없는 신조나 교리 같은 것이었다. 우리의 토의는 넘어설 수 없는 장벽에 도달했음이 분명했다. 칼은 새로운 자료들에 적응하려면 자신의 신념체계가 조정 변경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기보다도 자신의 과학 동지들이 온전하고 성실하다는 점을 인정받고 싶어했다. 우주가 어떤 것이고 그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없는지 자신은 잘 알고 있다는 믿음이 너무 강해서 도전적인 자료들은 조사해볼 마음이 전혀 없었다.
자신의 과학적 신념을 유지하려는 그의 결의를 본 내 마음은 나중에 사이캅(칼 세이건이 속한 회의주의자 단체)과 이른바 '화성효과'를 둘러싼 스캔들에 의해서 더 확고해졌다. 점성술의 정체를 폭로하겠다는 의도로 시작된 그들의 작업에서 프랑스 통계학자인 미셸과 루이즈 고칼랭 부부가 이름난 운동선수들의 출생 천궁도는 상승점이나 남중점에 화성이 위치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도 놀랐지만, 점성술을 반박하기는 커녕 오히려 지지한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통계적으로 이런 일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은 오백만분의 일이었다. 나중에 이들 부부는 다섯 행성과 열한 가지 직업을 놓고 점성술의 예지력을 실험하면서 의미심장한 사실들을 발견했으며, 그들의 관찰 결과는 이후의 다른 연구가들에 의해서도 되풀이 되었다. 고칼랭의 연구 결과가 발표된 뒤 사이캅의 폴 크루츠와 조지 에이벌, 마빈 젤린이 그 보고에 격분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비판을 위해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자기들도 조사를 했는데, 서로 많은 의견을 교환한 뒤에 고칼랭의 연구 결과를 인정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그들 자신의 조사 자료를 변조했다. 이 사기극은 사이캅의 공동 설립자이자 운영위원회 회원인 데니스 롤린스의 스타베이비 라는 논설을 통해 알려졌다. 사이캅은 진실 발견을 위해 존재하는 단체가 아니라 관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기 위한 단체임을 깨달은 롤린스가 초상현상에 대한 무차별 마녀사냥보다 정직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환각과 우연을 넘어서> 中
선천적인 맹인이 임사 상태에서 깨어나 병실 내부의 모습에 대해 이런저런 진술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세이건은 그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심장병 환자가 임사 상태에서 자신의 수술 광경을 내려다 본 사례에 대해서만 억지스런 설명을 내놓는다. 심장외과 전문의들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홍보전략 차원에서 사기극을 벌였을 거란 것이다. 심장외과 전문의가 임사체험에 관한 책을 내는 게 어떻게 홍보전략이 되는 건진 모르지만 세상엔 워낙 벼라별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정말 그랬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의 사례를 보자. 일본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임사체험>이란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체외이탈(유체이탈)의 구체적 사례는 이번 취재의 초반부터 여러 사람에게서 충분히 들어왔다. 그러나 남에게 전해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본인에게 직접 듣고, 게다가 그것이 현실 체험설(유체이탈이 대뇌의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설)의 증거가 될 수 있는 사례를 만나기는 불가능했다. 마리아의 사례처럼 누군가가 이미 확인한 것을 간접적으로 재확인하는 사례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그것이 객관적 진실인지 알지 못하는 사례를 내 자신이 처음으로 확인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런 사례를 발견하는 게 이번 취재에서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IANDS (국제임사연구협회)의 도움을 얻어 여기저기 찾아다닌 결과, 겨우 찾아낸 이가 미국의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에서 운송업을 하고 있는 앨런 설리반 씨(59세)였다.
설리반 씨는 3년전 심근경색 발작을 일으켜 하트포드 병원으로 실려가 응급 수술을 받았다. 그때 체외이탈하여 자기의 수술 광경을 천장 부근에서 바라보았다. 그때 본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그것이 정말 그 당시의 수술 모습과 객관적으로 합치하는지 자신을 수술했던 의사를 만나 확인해두고 싶다고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재빨리 병원에 연락을 취해 그 의사로부터 승낙을 받았기 때문에 나와 TV 취재팀이 설리반 씨와 동행하게 되었다. 뜻밖에도 그 의사는 다카다 유지라는 일본인 의사였다. 다카다 씨는 젊은 시절 미국에 의학 공부를 하러 왔다가 여기에 눌러앉아 의사가 되었는데, 벌써 20년이나 그 병원에서 심장외과의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설리반 씨가 의사인 다카다 씨와 만난 것은 퇴원 후 처음이었다. 퇴원 후에도 몇번인가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에 온 적은 있지만, 만난 것은 심장내과 담당 의사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카다 씨에게 자신의 임사체험을 말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실은 수술 후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입원하고 있던 중에 설리반은 자기 체험을 얼핏 간호사에게 말한 적은 있다. 그러자 그 간호사는, "당신은 마취약 때문에 좋은 꿈을 꾼 거예요. 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 임사체험 같은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은 우리 엄마나 믿지, 난 믿지 않아요."라고 간단하게 부정했다고 한다. 그런 탓으로 그 후 다른 사람들에게 거의 말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IANDS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었는데, 자기 체험이 전형적인 임사체험이란 걸 알게 되어 적극적으로 입을 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설리반 씨의 체험은 수술 중에 체외이탈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후속편도 있다. 그 전모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수술대 위의 내 육체는 나라기보다 진정한 나를 둘러싸고 있던 포장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봐도 아무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지요. 수술대 위의 나는 보기에도 끔찍하게 갈갈이 찢겨져 있었지만, 나 자신에게는 전혀 고통이 없었어요. 수술 장면을 보고 있는 사이에 점점 지루해졌습니다. 그래서 좀더 여행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뒤로 설리반의 임사체험이 기술되는데 이 부분은 생략하겠다. 다시 다치바나의 얘기가 계속된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진척되면 진위의 확인은 불가능하겠지만, 처음에 나온 수술 장면에 대해서는 그 장소에 있었던 의사의 이야기와 대조할 수 있다. 그래서 대조를 해보니 이상할 정도로 사실과 부합했다. 아래에서 설리반 씨의 이야기와 의사 다카다 씨의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그 당시까지 설리반은 수술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수술실에 관한 예비지식이라고 해봐야 TV 드라마의 수술실 장면 정도밖에 없었다. 게다가 설리반 씨는 구급차로 실려가서, 심장 카테터 검사를 받자마자 수술실로 옮겨진 후 곧 마취되었기 때문에 수술실 안을 관찰할 틈도 없었다. 그래서 설리반 씨가 수술실의 광경을 자세히 본 것은 체외이탈을 한 후였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많은 사람들이 내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다섯 명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가운데 두 사람이 열심히 내 다리를 수술했습니다. 나는 문제가 있는 건 심장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저 의사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지요. 다카다 선생님은 내 머리 쪽에 계셨어요. 그 양쪽으로 각각 의사와 간호사가 한명씩 있었고, 또 내 머리 쪽에 커다란 흰 모자를 쓴 간호사가 한명 있었으니까, 선생님을 제외하면 모두 다섯명이었지요."
다카다 씨에게 물어보니 사실이었다. 설리반 씨의 심장은 관동맥이 동맥경화를 일으켜 심근경색을 초래하고 있었다. 따라서 관동맥에 우회로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 우회로로 쓰이는 혈관은 보통 다리 혈관을 잘라 이용한다. 심장 수술을 하기 전에 다리를 절개하여, 그 혈관을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드러내 놓아야 한다. 다리 쪽에 있던 두 명의 의사는 그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심장 수술에 상당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설리반 씨가 진짜로 보지 않았다고 한다면 두 명의 의사가 다리 수술을 하고 있었던 것을 설리반 씨가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불가사의하다.
"위에서 보니 내 눈 부분이 알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덮여 있었어요. 도대체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다카다 씨에 의하면 그것은 만에 하나 잘못해서 환자의 눈을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환자의 눈을 감게 하고, 그 위에 계란 모양의 안대를 얹어 테이프로 고정시킨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환자가 수술 중에 의식을 회복하여 눈을 떴다고 해도, 환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체외이탈의 해석 가운데, 마취가 도중에 약해져서 환자가 어렴풋이 의식을 회복한 상태에서 눈을 조금 떠서 외부를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설리반 씨의 경우는 그것조차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후 또 한번 놀란 것은 모두 장화를 신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왜 장화를 신고 있었을까 의아했어요."
다카다 씨에 의하면 확실히 다카다 씨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장화를 신고 있었다고 한다. 그 장화는 도전성(導電性) 물질로 만들어져 있는데 옷에서 발생하는 정전기 같은 것을 접지하기 위해 신는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마취약 에테르처럼 전기 불꽃으로 폭발 위험이 있는 물질이 수술실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그런 장화를 신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런 위험스런 물질이 사라졌기 때문에 장화를 신을 필요가 없어졌지만, 지금까지도 습관처럼 모두 신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카다 선생님은 가슴 위로 팔짱을 끼고 팔꿈치를 좌우로 내밀면서 그 팔꿈치로 뭔가를 가리키며 여러가지 지시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양 팔꿈치가 새의 날개처럼 보였어요. 새가 날개를 퍼덕이고 있는 것 같았지요.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이 이제 어디로 날아가려는 건가 생각했어요."
이에 대해서 다카다 의사는 무슨 말인지 몰라했지만, 동료 의사가 그게 바로 다카다 의사의 버릇이라고 증언해 주었다. 수술 전에 양손은 반드시 살균한다. 그 손으로 또 어딘가를 만지면 세균이 달라붙는다. 그게 두려워서 팔꿈치를 손 대신 사용하는 거라고 한다.
"그리고 다카다 선생님은 검고 어두워 보이는 안경을 끼고 계셨지요. 그 때 이외에는 안경을 끼고 계신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이것도 사실이었다. 다카다 씨는 수술 때만 특별한 확대경이 달린 안경을 착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전등이 세 개 있었던 것을 기억해요. 그 가운데 하나는 램프가 여러 개 달린 것이었는데, 그게 가끔 내 시야를 가렸기 때문에 그걸 피해서 봐야 했어요. 나머지 두 개의 전등이 있었던 것은 기억하지만.."
램프가 여러 개 달린 것이라고 말한 것은 수술대 위를 비추는 무영등(無影燈)이다. 천장 한 구석에서 내려다본다면 확실히 그것 때문에 시야가 가려질 것이다. 또 다른 전등 하나는 다카다 의사가 머리에 달고 있던 헤드라이트였을 거라고 하는데, 다른 하나는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엄청나게 큰 기계가 다카다 선생님의 바로 뒤쪽에 있었어요. 어디에 사용되는 기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큰 것임에 틀림 없었어요."
다카다 씨에 따르면 그 위치에 있는 큰 기계라는 건 심장 수술에 사용되는 인공심폐 장치를 말한다고 한다.
"내 가슴이 절개되어 심장이 보였어요. 이런 대수술이라면 피가 대량으로 흐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피가 흐르고 있지 않아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심장은 피 때문에 붉은 색을 띠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흰빛을 띤 자색으로 핏기가 전혀 없어서 또 놀랐어요. 그리고 심장이 하트 모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트 모양과는 전혀 닮지도 않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또 놀랐지요. 심장은 유리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 부분은 유리 테이블이라는 점만 빼면 모두 사실과 합치한다. 혈액 순환은 인공심폐 장치와 연결되어 그쪽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수술 중의 심장에는 전혀 혈액이 공급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흰빛을 띤 자색인 것이다.
결국 설리반 씨의 수술 묘사는 마지막의 유리 테이블이라는 한 가지만 제외하면 거의 완전하게 수술 현장의 모습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요소가 여러가지 있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앞에서 그런 사례에 대한 하나의 해석으로, 귀로 들은 이야기 등 다른 감각 기관에서 얻은 정보를 종합하여 시각상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한다는 유력한 설이 있다고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그 설로 해석할 수 있을까. 우회로로 사용하는 혈관을 다리 부분에서 절취하는 장면이라든가, 장화, 확대경이 달린 안경, 다카다 씨의 팔꿈치 움직임, 심장의 색깔 등은 다른 감각 정보를 통해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물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임사체험에 관한 자료를 추적하고 있으면 이처럼 어떻게 해도 통상적인 과학으로는 전부 해석할 수 없는 현상과 부딪치는 것도 사실이다. 다카다 씨도 이런 사례를 접하고는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마취가 수술 중에 약해져서 의사의 말을 들었다든가 하는 그런 사례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주 들었고, 나 자신도 지금까지 몇 차례 경험한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수술 중의 환자가 이처럼 상세하게 마치 진짜 보고 있었던 것처럼 묘사하는 건 처음입니다. 여기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릴 수 있는지 솔직히 말해 나는 모르겠어요. 다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으니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겠지요. 우리들은 사실 앞에서는 겸허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인간이 가진 능력이란 것이 과학으로는 아직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니까요. 과학이나 수학으로는 전부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거지요. 그런 것조차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 또한 사실 앞에서 겸허하지 않은 태도입니다. 사실 일본에 계신 내 어머니는 불교 선종의 신자인데, 일종의 영적 능력을 가진 분입니다. 점을 쳐서 분실물이나 사람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여러가지 일을 하시지요.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정확히 들어맞아요. 비록 지금 나는 의사 노릇을 하고 있지만, 과학만능주의자는 아니기 때문에 예전부터 이런 현상을 봐도 별로 놀라지 않아요.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이런 일이 어쨌든 존재한다는 건 인정해야 하지요."
이것이 정신적인 것에서 유래하는지는 차치하더라도, 확실히 설리반 씨의 사례는 과학적 해석론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실체험설의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진짜 천장에서 현장을 보고 있었던 거라면 틀릴 리가 없는 오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심장이 유리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건 어떤 상태였던가. 설리반 씨의 기억 속에서도 그것은 조금 애매하지만,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아직 심장은 절개된 흉부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아래에 거울이 있는 듯했어요.아니면 작은 유리 테이블인지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혹시 내 몸 옆에 있었을지도 몰라요. 어쨌든 심장이 흉부 속의 원래 있던 위치에서 유리 테이블로 옮겨졌던 거지요."
사실을 확인해보니, 이런 일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심장의 우회로 수술은 심장을 꺼내서 유리 테이블 위에 얹어놓고 진행하지 않는다. 심장이 몸에 붙어 있는 채 행하는 수술인 것이다. 정말 그가 수술 장면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면 어째서 이런 잘못이 생기는 것일까. 잘못 본 것일까. 아니면 기억이 잘못된 것일까.
억지로 해석을 하자면, 흉강 내부가 혈액과 점액에 젖어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데 비해 심장만은 피가 빠져서 자색으로 변해 있기 때문에 그 둘의 대비로 인해 심장이 유리 위에 얹혀져 있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다른 억지 해석을 해보면 앞에서 말한,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고 생각한 여러가지 요소라도 다른 기회에 어딘가에서 본 것이 잠재의식에 남아 있었을 거라든가, 누군가가 힌트가 될만한 것을 말했을 거라는 이유를 들어 틀림없이 목격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결국 설리반 씨의 체험은 어떤 해석이라도 모순되는 점이 남고, 어느 한 가지 해석으로 일관하려고 하면 상당히 억지스런 추론이 될 수밖에 없다. 설리반 씨 자신은 자기가 정말로 육체 밖으로 이탈해서 객관적인 현실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체험에 의해 자신의 인생관이 뿌리째 바뀌었다고 한다.
"나는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불가지론자로서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그 체험을 한 후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종교를 믿게 된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미국인이 믿고 있는, 인간의 형태를 한 그런 하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게 된 건 아니예요. 내가 벽 너머에서 보았던 그 에너지와 사랑으로 가득 찬 빛 자체, 그것이야말로 신일 거라 생각해요. 신이란 형체가 있는 게 아니라, 그런 에너지로 모든 곳에 존재하면서 우리가 원할 때면 언제든 그 부스러기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존재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서부터 나는 완전히 마음이 바뀌었어요. 그때까지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로 흑인이나 호모를 대단히 싫어했고, 여러 사람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 다치바나 다카시 <임사체험> 中
이런 일은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회의주의자들은 설리반과 다카다가 은밀히 입을 맞춰 사기를 친 거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의 사례를 보자. 역시 다치바나의 임사체험에서 발췌한 것이다.
< 미국의 소아과 의사 멜빈 모스 박사는 우연히 임사체험을 한 환자와 만난 것을 계기로 이 체험에 흥미를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다.
"그것은 1983년의 일이었어요. 나는 아직 인턴 연수 중인 소아과 의사로, 아이다호 주의 작은 마을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날 수영장에 빠졌다가 구출된 아홉살짜리 여자 아이가 응급실로 실려왔습니다. 발견되었을 때는 얼굴을 아래로 한 채 수영장에 떠 있었다고 하는데, 응급실에 실려왔을 때는 호흡 정지 상태였어요. 수영장에 떠 있었던 시간이 약 20분, 게다가 병원에 실려와서 심폐소생술을 할 때까지가 약 19분, 도합 39분간이나 호흡 정지 상태에 있었던 것이죠. 혼수 상태에 깊이 빠져 있었는데, 측정기로 재어보았더니 의식 레벨이 3 (최저 의식 레벨. 뇌사가 의심되는 상태)으로 뇌간 반응도 없어서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열심히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더니, 기적적으로 숨을 돌리더라고요. 목숨을 건진 아이는 바로 300 킬로미터 떨어진 솔트레이크의 큰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혼수 상태에 있을 때밖에 보질 못한 거지요. 그리고 2주 후 아이가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길래, 문병 겸 그후의 상태를 보려고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나를 보더니 '엄마, 이 분이 내 코에 튜브를 꽂았던 의사 선생님이야.'라고 어머니에게 말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어요. 내가 콧속으로 인공호흡 튜브를 넣은 건 확실해요. 그렇지만 깊은 혼수 상태에 빠져 있던 아이가 그걸 알 리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의학 상식으로는 깊은 혼수 상태의 환자는 의식이 완전히 사라져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거든요. 꿈조차 꾸지 않는다고 우리들은 배웠어요. 비록 낮은 레벨의 의식이 존속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런 환자는 필시 건망 증상이 되기 때문에 나중에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배웠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아이가 그런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엄청난 놀라움이었죠."
모스 박사는 아이에게 수영장의 사고 당시에 대해 물어보려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물에 빠지게 되었는가 그 원인이 불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수영장에 빠졌을 때의 일 가운데 기억나는 게 있니?" 라고 물어보니 케이티라는 그 여자아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만났을 때의 일 말인가요?"하고 놀랄 만한 대답을 했다. 깜짝 놀란 모스 박사가 차분하게 물어보자, 케이티는 불가사의한 체험을 말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들고 보니 아이는 공중에 붕 떠서 자기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임사체험이지요.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임사체험의 존재조차 몰랐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병원에서 자기가 받았던 응급조치에 대해 말했는데, 내용부터 순서까지 모든 게 현실과 일치했던 겁니다. 나말고도 또 한 사람, 키가 큰 의사가 있었다는 것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어요. 숨을 다시 쉬게 된 후 병실에서 실려 나가 큰 기계 속에 넣어졌다고 말했는데, 그 기계의 묘사를 들어보았더니 그건 CT 촬영 장치였어요."
CT 장치에 대해 아이가 예비지식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 내용이 정확했기 때문에 믿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CT 촬영을 하고 돌아온 후 아이의 시야는 어둠에 휩싸여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공포에 떨고 있자, 금발 여성이 그리로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주위에 빛이 확 비치는 것이었다. 거기는 아주 큰 터널 속이었다.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는데, 소녀를 이끌고 하늘 쪽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아름다운 꽃이 가득 피어 있는 아름다운 곳이 나타났다. 거기에는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즐겁게 놀았다. 그 중에서도 마크와 앤디라는 남자아이와 친해졌다.
하나님이 그곳에 와서 지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케이티는 천국에서 놀고 있는 게 재미있었기 때문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네가 돌아가지 않으면 어머니가 어떻게 되겠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상에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사이 예수님이 그곳으로 와서 '어머니와 만나고 싶지 않니?'라고 묻길래 만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바로 눈이 떠졌다고 한다.
이런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모스 박사는 솔트레이크의 병원에 소녀가 처음 의식을 회복했을 때의 일을 문의해 보았다. 그랬더니 소녀가 처음으로 한 말은 '마크와 앤디는 어디 있어?'였다고 한다.
"케이티가 의식을 되찾은 날에 가족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케이티의 어머니에게 물어 보았더니 소녀가 말한 그대로였던 겁니다. 모두가 함께 식사를 한 것, 입고 있던 옷, 남동생과 여동생의 모습 등 말한 그대로였어요. 케이티는 나에게 말하기 전에 자기 체험을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케이티의 말에 맞춰 어머니의 기억이 수정된 건 아니었지요. 내가 이유를 말하지 않고 그 어머니에게 그 날의 기억을 말하게 하자, 케이티의 말과 일치했던 겁니다." >
- 다치바나 다카시 <임사체험> 中
자, 이번엔 어떤 설명을 해볼 수 있을까? 모스 박사도 주변의 관심을 끌려고 케이티의 어머니를 매수해 아이에게 거짓말을 시킨 걸까? 하지만 모스 박사는 이후 4년동안 수많은 유사 체험자들을 대상으로 이 문제를 연구했다. 단순히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면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는 걸까? 그리고 초자연 현상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관심을 끌려고 유치한 짓도 서슴지 않는 걸까. 나 같은 경우, 지난 10년동안 익명으로 글을 올렸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알릴 생각을 안했기 때문에 관심에 굶주린 케이스는 아닌 게 분명하다. 그보다는 메시아 망상에 빠진 오타쿠 쪽으로 혐의를 두는 게 적절할 것이다. 실제로 나 자신도 내가 그 쪽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항상 품고 살아왔다. 나는 그럴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초자연 현상의 목격자들을 100% 정신병자나 사기꾼으로만 몰고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정상은 아닐 것 같다. 어떤 면에선 나보다 증세가 심한 건지도 모른다. 나는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기 때문에 설령 망상에 빠져 있다 해도 아주 심각한 상태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학설을 혼자만 문제 삼는다는 면에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버트 베커의 '생명과 전기'란 책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책엔 기존의 패러다임을 약간이라도 벗어난 과학자가 얼마나 조직적인 압력과 박해에 시달리는지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연구의 자유'란 주어진 패러다임 안에서의 자유일 뿐인 것이다. 과학자들이 집단적인 착각에 빠져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해도 지나치게 터무니 없는 것만은 아니며, 실제로 과거에 그런 전례가 몇번 있기도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특정 세계관으로 교육 받아 비슷비슷한 견해를 공유하게 된 과학자 그룹과는 달리, 초자연 현상의 경험자들 사이엔 어떤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개중엔 초자연 현상에 아무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많고, 그런 현상에 거부감이나 냉소적인 태도를 지녔던 사람들도 많다. 그런 현상을 보고한 뒤 현실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사람들마저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모조리 정신병자로 몰아세우기 보다는 기존의 패러다임에 뭔가 결함이 있는 건 아닌지를 검토해 보는 쪽이 좀더 과학자다운 자세 아닐까?
UFO 목격 사례가 모두 백건이라 쳤을 때 그중 99건이 허위로 판명돼도 단 한 건만 살아남으면 UFO는 존재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UFO는 수만건의 목격 사례를 갖고 있으며 유령이나 임사체험, 유체이탈 등의 목격담은 아마 그 수십배는 될 것이다. 물론 초자연 현상의 목격자 중 상당수는 과학적인 사고력도 부족하고 뭐든 덜컥 믿어버리는 순진한 성향의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회의주의자 못지 않은 사고력과 관찰력을 지닌 이들도 더러는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앞에서 이미 나는 그런 사례들을 소개한 바 있다)
과학은 UFO나 유령 같은 현상 뿐만 아니라 누구나 관찰할 수 있는 현상들 중에도 제대로 설명을 못해내는 사례가 많다. 흰개미가 집을 짓는 과정이라든가, 반딧불 수만 마리가 동시에 빛을 점멸하는 현상 등은 기존의 입자 중심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게다가 과학만이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도 아니다. 서양 의학자들도 효능을 인정하는 침술의 경우,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는 발견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침술은 과학과는 다른 과정, 아마도 전체를 먼저 통찰한 뒤 세부사항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는 과정을 거쳐 생겨났을 것이다. 어떤 방법이 다른 방법보다 특별히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각기 장단점이 있고, 과학 같은 경우 헛발질이나 불필요한 오버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나무에만 집착하고 숲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길을 한번 잘못 들어서면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전체를 조감하면서 부분을 퍼즐처럼 맞춰나가는 방법을 택한다면 초자연 현상에 좀더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현상들이 하나의 일관된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어 퍼즐을 맞추기가 어렵지 않은데다 수많은 목격 사례들을 체계적으로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회와 관련된 책 중에 주목할 만한 것으로 마이클 뉴턴이란 심리학자가 수천명의 사람들을 전생퇴행시켜 알아낸 사실들을 기록한 '영혼들의 여행'이란 책이 있다. 최면상태의 전생에서 죽음을 맞이한 뒤 사후세계로 넘어갔을 때 사람들이 무엇을 보게 되는지를 일일이 추적하여 기록한 글이다. 그 많은 사람들의 진술이 비록 표현도 제각각이고 진술의 범위도 천차만별이지만 결국은 모자이크처럼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형성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인간의 실체는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며 지구는 영혼의 성장을 돕는 일종의 훈련장 같은 곳이다. 영혼은 인간으로 환생하기 전에 생몰 시기와 직업, 가족관계 등 인생의 기본 골격을 진보한 영혼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디자인한다) 이 책은 디노의 책과도 공통 분모를 지닌다. 디노의 책은 주로 물질세계의 원리를 다루지만, 결국은 '영혼들의 여행'과 비슷한 맥락의 주장을 담고 있다.
이 두 책은 진화론에 대해 '부분적으론 맞지만 전체적으론 틀린 얘기며 사실을 거꾸로 설명하고 있다'는 공통된 입장을 표방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다) 물론 윤회와 관련된 많은 책들은 서로 모순된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치되는 부분이 본질적인 성격을 띠는 반면, 모순되는 부분은 지엽적인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류의 저술들은 상호 모순이 어느 정도 생길 수밖에 없다. 가령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지구 견문록'을 저술했다 치자. 한 명은 '지구인들은 동성끼리 결혼하지 않는다'고 쓰고, 다른 한 명은 '지구인들은 동성끼리도 결혼을 한다'고 썼다면 서로 모순된 진술 중에 하나는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관점이 약간씩 다를 뿐인 것이다. 다만 지구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외계인들에겐 둘 중 하나가 (혹은 양쪽 다)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들이 단순논리를 과신하고 그걸 '과학적 사고'로 여기는 종족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TV에서 전생퇴행을 했을 때 엉터리 결과가 나오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몇몇 책들과 내 개인적인 체험을 종합해 추론해 보면 이렇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영적인 현상에 민감한 사람들은 타고난 자질과 함께 환경적인 요인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 세속잡사에 과도하게 몰입될수록 영적인 감수성도 떨어지며, 현실에서 한발짝 벗어나 관조하는 상태가 될 때 감수성 또한 고조가 된다. 선천적으로 이런 기질을 타고나는 사람도 있지만, 기질은 그렇지 못해도 외적인 시련이 겹친다든가 혹은 특별한 수련을 통해 심리적으로 초연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또 기질은 타고났지만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세속적인 이익을 얻는 데 관심을 쏟는다든가 하면 감수성이 저하될 수도 있다. (영능력과 인격은 상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전생퇴행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의 세계가 존재함을 이미 체험으로 알고 있는, 즉 감수성을 본래 타고난 사람이거나, 해결할 수 없는 고민거리 등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가라앉고 초연한 상태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TV에서 최면을 받는 사람들은 한창 잘 나가는 연예인이나 피디 등, 대체로 현실지향적이고 감각세계의 화려함에 몰입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들은 최면 상태에서 조작된 기억을 끄집어낼 확률이 그만큼 높은 것이다.
...
영혼은 과학으로 입증된 적이 없다?
죽은 영혼과 교류하는 샤머니즘의 전통은 유독 서구에서만 명맥이 끊겼다가 19세기 들어 화려한 부활을 했다. 샤머니즘을 억압해온 기독교의 귄위가 급격히 쇠퇴했기 때문이다.
‘마녀’나 ‘마법사’ 같은 부정적 용어 대신, ‘영매(medium)’란 중립적 명칭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이 근대적 샤먼들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들여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심지어 영혼의 몸을 즉석에서 물질화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강신술 모임은 미국과 유럽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어, 링컨과 나폴레옹 3세, 빅토리아 여왕 같은 당대의 유명인사들까지 모임에 참석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과학계에선 극심한 반감을 드러냈으며 급기야 몇몇 과학자들이 발벗고 나서 검증을 시도했다.
검증에 나선 과학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진공관 발명으로 작위를 받은 윌리엄 크룩스 경, 무선전신의 개척자로서 역시 작위를 받은 올리버 롯지 경, 면역학의 창시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샤를 리셰, 아르곤 가스를 추출해 역시 노벨상을 받은 존 레일리 경, 다윈과 함께 진화론을 공동 창시한 알프레드 월리스, 아일랜드 왕립과학원 물리학 교수인 윌리엄 바레트, 미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 등, 학계에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탄탄한 입지를 다진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학자들은 이런 연구를 함으로써 초래될 불이익과 따가운 눈총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속임수를 막기 위해 자신의 연구실로 영매를 불러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오랜 격론 끝에 미지의 세계로부터 정보를 전달받는 기술만큼은 속임수가 아니란 결론이 내려졌다. (이 결론이 내려지기까지 조사원이 영매의 집에 몇 년간 상주했으며 사립탐정이 고용되어 영매가 정보를 은밀히 수집하는지의 여부가 철저히 조사됐다)
그러나 영매가 알아낸 정보들이 텔레파시로 받아낸 것이냐 아니면 정말 영혼으로부터 전달된 것이냐를 놓고 의견이 서로 엇갈렸다. 초반엔 텔레파시 설이 우세했지만, 조사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면서 텔레파시 설 대신 영혼설을 입증하는 메시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전해왔다. (예를 들면 영매가 전혀 모르는 라틴어나 희랍어로 대화를 주고받는다든지 하며 텔레파시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정보를 보내는 식이었다)
마침내 1922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지에서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고 영능력의 실재 여부를 확인하기로 했다. 이에 외과의사의 아내인 미나 크랜던이 ‘마저리’란 가명으로 심사에 도전, 결국 1924년 상금을 받게 됐다. 그러나 전직 마술사이자 엉터리 영매술 폭로 전문가인 해리 후디니가 이에 반발, 3회에 걸친 실험이 다시 재개됐다. 후디니는 머리와 손만 나오도록 만든 나무 상자를 가져와 크랜던을 안에 가두고 실험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랜던은 1차 실험을 성공시켰고, 나무상자를 불가사의한 힘으로 열어젖혀 후디니를 당황케 했다. 2차 실험은 나무상자에 갇힌 크랜던이 상자 안에 있는 종을 울리도록 미션이 부여됐다. 그런데 실험 도중 크랜던의 죽은 오빠이자 지배령인 월터가 후디니의 음모를 비난하고 나서는 일이 벌어졌다. 종소리가 나지 않도록 안에 고무를 끼워놓았다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후디니가 상자 안에 몰래 접자를 넣어뒀다는 말도 했다.
실제로 상자를 열어보니 종에 고무가 끼워 있었고 접자도 발견됐다. 그러나 후디니는 크랜던이 몰래 감춰둔 그 접자를 이용해 1차 실험 때 마술쇼를 벌였다며 반격을 가했다. 후디니의 사후에 그의 조수가 후디니의 지시로 자신이 접자를 상자에 넣었음을 고백했지만, 결국 크랜던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다.
이 일로 크랜던은 강신술 신봉자들 사이에 저주와 지탄의 대상이 됐고, 후디니는 자신의 성과(?)를 <후디니, 보스턴 영매 마저리의 속임수를 잡아내다>란 책으로 펴내며 기염을 토했다. 그는 회의주의자들 사이에 아직까지 전설적 인물로 추앙받고 있는데 1969년 영국의 BBC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정도였다. 그러나 유가족의 반발로 다큐멘터리가 담지 못한 비화가 하나 있었다.
후디니는 크랜던 심사가 있고 2년 뒤 복막이 터져 52세의 나이로 죽는데 죽기 직전 아내에게 사후세계가 정말 존재하면 저승에서 메시지를 보내 확인시켜 주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 유언은 그의 미스테리한 죽음과 연관된 듯하다. 후디니는 죽기 직전 어느 강연에서 ‘나는 복부를 맞아도 충격을 받지 않는다’며 몇몇 남자들에게 자신의 배를 주먹으로 쳐보라는 주문을 한다. 그런데 이때 잘못 맞아 복막이 터진다. 처음엔 별로 심각한 증세가 아니어서 활동을 계속했고 의사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위가 갈수록 악화돼 결국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 아마도 후디니는 일련의 상황에 불길한 예감을 느낀 나머지 영계에 관한 유언을 한 게 아닌가 싶다)
메시지를 전할 영매의 이름은 미리 지정하지 않았으며, 누구든 자신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암호를 통해 확인하도록 했다.
후디니 부부가 사용한 암호는 매우 정교한 시스템을 갖춘 것이었는데 여기엔 사연이 있다. 이 부부는 젊은 시절 속임수로 강신술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 적이 있었다. 이 시기에 이들은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은밀한 의사교환을 할 수 있는 암호 시스템을 고안했는데 say, now, speak 같은 일상적 단어 10개에 일련번호를 매겨놓은 것이었다. 후디니가 단어를 몇 개 나열하면 이게 숫자를 거쳐 다시 알파벳으로 변환되는 시스템이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파트너로 일하면서 암호를 이용한 대화를 능숙하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
후디니가 죽고 2년 뒤 아더 포드란 젊은 영매가 나타나 후디니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가 받은 메시지는 암호 체계와 정확히 들어맞았으며, 부부만이 알 수 있는 은밀한 내용이 담긴 메시지로 변환되었다. 결국 후디니의 아내 베아트리스는 아더 포드를 통해 죽은 남편의 메시지를 전달 받았다는 성명서를 공식 발표했다. 이 성명에 대한 증인은 '유나이티드 프레스"의 H. R. 잔더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지의 부편집장인 J. W. 스탠포드 등이었다.
그러나 후디니의 동료 회의주의자들은 사기꾼에 불과한 여자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다. 또한 후디니 부인이 아더 포드와 내연관계라는 등의 악성 루머를 퍼뜨렸다.
마저리 크랜던의 몰락 이후 강신술 모임에서 온갖 이적을 선보이는 <피지컬 영매>들은 점차 자취를 감췄으며, 아더 포드처럼 영혼과 접촉해 필요한 정보만을 얻어내는 이른바 <멘탈 영매>들이 주류로 부상했다.
멘탈 영매의 부상은 영화 산업과도 관련이 있다. 19세기 말까지 강신술 모임은 서커스 입장료의 4배를 받아도 사람들로 미어터질 정도로 흥행이 되는 비즈니스였다. 그러나 영화가 대중화되면서 갈수록 식상한 레퍼토리에 조작논란마저 휩싸인 강신술은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영매들은 신기한 볼거리의 제공에서 순수한 정보의 전달로 역할조정을 해야 했던 것이다.
진지한 실험대상이 된 마지막 피지컬 영매는 ‘스텔라 C’로 알려진 스물두살의 간호사 스텔라 크랜쇼였다. 가녀린 외모에 수줍은 성격의 그녀는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테이블을 공중에 들어 올려 산산조각 낼 정도로 강력한 염력의 소유자였다. 전문영매를 능가하는 능력에 놀란 연구자들은 3년에 걸친 엄격한 실험을 수행했다.
우선 속임수 방지를 위한 테이블이 특별 제작됐다. 이 테이블은 큰 것과 작은 것 두 개로 이루어졌는데, 큰 테이블 안에 작은 테이블을 끼워 넣을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작은 테이블 안엔 물건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하모니카와 오토하프 같은 작은 악기들이 담겨졌다. 이 상태에서 공간을 밀봉한 뒤 다시 거즈로 테이블 사면을 덮었다. 외부를 통해선 작은 테이블로의 접근이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러나 크랜쇼는 손발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작은 테이블 안의 악기들을 연주했다.
가장 놀라운 건 프라이스가 고안한 ‘텔레키네토스코프’가 작동된 것이었다. 이 장치에는 건전지가 들어 있어 스위치에 압력이 걸리면 밸브가 빛을 내도록 돼 있었다. 외부에선 보이지 않도록 스위치 부분을 비누 거품으로 덮고, 거품이 마르지 않도록 다시 판유리로 뚜껑을 만들어 밀봉했다. 그 상황에서 크랜쇼는 염력으로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나 비누 거품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림자 장치’ 실험도 그 못잖게 놀라웠다. 스위치를 누르면 빛이 나오면서 스위치를 건드린 사람의 그림자가 스크린에 곧바로 비추도록 고안된 장치였다. 이때 스크린에 사람의 형체를 한 계란형의 그림자가 비쳐졌다.
크랜쇼는 이밖에도 미래를 예언하고 실험실의 온도를 섭씨 17도에서 6도로 갑작스레 떨어뜨리는 등 다양한 능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들의 원인을 알고 싶어 실험에 응했을 뿐, 능력을 입증하는 일엔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심령 현상에도 전혀 무관심했다. 크랜쇼는 1928년 결혼과 함께 더이상 실험에 참여하지 않고 평범한 주부로 일생을 마쳤다.
피지컬 영매가 아닌 멘탈 영매의 능력에 관한 최근의 연구는 미국 애리조나 대 심리학 교수인 게리 슈워츠에 의해 행해졌다.
슈워츠는 회의주의자들의 집요한 반박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약간 황당한 실험을 준비했다. 실험에 동원한 영매들에게 아무런 사전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 실험에서 누가 어떤 정보를 어떤 영혼으로부터 받길 원하는지 일체의 암시나 단서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실험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도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고, 정보를 받는 대상자를 영매와 멀리 떨어진 지역에 격리시키는 등 이중맹검(double blind)과 삼중맹검 (triple blind)으로 난이도를 높여갔다. 영매는 지배령의 도움을 받아 정보를 쥐고 있는 영혼을 스스로 찾아내야만 했다.
그러나 일급영매들은 이처럼 막연한 상황에서도 정보를 받아냈다. 이들이 받은 정보는 다시 과학적 통계 처리를 통해 결과가 분석됐다. 슈워츠는 2005년 "The truth about medium"이란 책에 그간의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이 책은 소위 ‘회의주의자’들도 내용을 제대로 반박 못하고 있다. 반박을 할래야 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회의주의자들은 이 책의 서문에 소개된 내용, 즉 슈워츠가 자신을 찾아온 영매에게 간단히 사전 테스트를 하는 부분을 콜드 리딩(cold reading)이라며 트집 잡고 있을 뿐이다. ('콜드리딩'이란 대충 분위기를 봐가며 눈치로 감을 잡은 정보란 뜻) 물론 이는 슈워츠가 정식 실험에 들어가기 전에 맛보기로 예비 테스트를 소개한 내용에 불과하므로 사실상 실험 내용에는 반박을 할 수 없었음을 실토한 셈이다.
영혼의 존재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으며, 입증이 불가능한 문제란 해묵은 편견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점을 어느 정도 가늠하셨으리라 믿는다.
...
죽은 영혼과 교류하는 샤머니즘의 전통은 유독 서구에서만 명맥이 끊겼다가 기독교의 권위가 급격히 쇠퇴한 19세기에 화려한 부활을 했다. ‘마녀’나 ‘마법사’ 같은 부정적 용어 대신, ‘영매(medium)’란 중립적 명칭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이 근대적 샤먼들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영혼의 몸을 즉석에서 물질화시키는 등의 이적을 선보였다.
이러한 교령회는 미국과 유럽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어, 링컨이나 나폴레옹 3세, 빅토리아 여왕 같은 당대의 유명 인사들까지 모임에 참석할 정도였다. 그러나 과학계에선 반감을 표했으며 급기야 일부 과학자들이 나서서 검증을 시도하게 된다. 검증에 나선 과학자들은 진공관 발명으로 작위를 받은 윌리엄 크룩스 경, 무선전신의 개척자로서 역시 작위를 받은 올리버 롯지 경, 면역학의 창시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샤를 리셰, 아르곤 가스를 추출해 역시 노벨상을 받은 존 레일리 경, 다윈과 함께 진화론을 공동 창시한 알프레드 월리스 등, 학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속임수를 방지하기 위해 영매를 연구실로 불러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고, 오랜 격론 끝에 미지의 세계로부터 정보를 전달받는 기술만큼은 속임수가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이 결론이 내려지기까지 조사원이 영매의 집에 수 년 간 상주했으며 사립탐정이 고용되어 영매가 정보를 은밀히 수집하는지의 여부가 조사됐다). 그러나 영매가 알아낸 정보들이 텔레파시로 받아낸 것인지, 아니면 정말 영혼으로부터 전달받은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초반엔 텔레파시설이 우세했지만, 검증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면서 텔레파시설 대신 영혼설을 입증하는 메시지를 영계로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전해오기 시작했다 (영매가 전혀 모르는 라틴어나 희랍어로 메시지를 보내 다른 사람이 받은 메시지와 퍼즐처럼 짜맞추도록 하는 식이었다).
영매와 마술사의 공방
마침내 1922년 과학 잡지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서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고 영매술의 실재 여부를 확인하기로 했다. 이때 외과의사의 아내인 미나 크랜던이 ‘마저리’란 가명으로 심사에 도전해 1924년에 상금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전직 마술사이자 엉터리 영매술 폭로 전문가인 해리 후디니가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3회에 걸친 검증 실험이 재개됐다. 후디니는 머리와 손만 나오도록 만든 나무 상자 속에 크랜던을 가두고 검증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랜던은 1차 실험을 성공시켰고, 나무 상자를 불가사의한 힘으로 열어젖혀 후디니를 당황케 했다.
2차 실험은 나무 상자에 갇힌 크랜던에게 상자 안에 있는 종을 울리게 하는 미션이 부여됐는데, 실험 도중 크랜던의 죽은 오빠이자 지배령인 월터가 후디니의 속임수를 비난하고 나서는 일이 벌어졌다. 종소리가 나지 않도록 안에 고무를 끼워놓았다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후디니가 상자 안에 몰래 접자를 넣어뒀다는 말도 했다. 실제로 상자를 열어보니 종에 고무가 끼워져 있었고 접자도 발견됐다. 그러나 후디니는 크랜던이 몰래 감춰둔 그 접자를 이용해 1차 실험 때 마술쇼를 벌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디니의 사후에 그의 조수가 후디니의 지시로 자신이 접자를 상자에 넣었음을 고백했지만 결국 크랜던은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고 영매술은 사기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 일로 크랜던은 영매술 신봉자들 사이에서 지탄의 대상이 됐고, 후디니는 자신의 성과(?)를 <후디니, 보스턴 영매 마저리의 속임수를 잡아내다>란 책으로 펴내며 기염을 토했다.
이후로 후디니는 회의주의자들 사이에서 전설적 인물로 추앙받고 있는데 1969년 영국의 BBC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정도였다. 그러나 유가족의 반발로 다큐멘터리가 담지 못한 비화가 하나 있었다.
후디니는 크랜던 심사가 있고 2년 뒤 복막이 터져 52세의 나이로 죽는데 임종 직전 아내에게 사후세계가 정말로 존재하면 저승에서 메시지를 보내 확인시켜 주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메시지를 전할 영매의 이름은 미리 지정하지 않았으며, 누구든 자신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암호를 통해 확인하도록 했다.
후디니 부부가 사용한 암호는 매우 정교한 시스템을 갖춘 것이었다. 원래 이 부부는 젊은 시절 속임수로 강신술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 적이 있었고, 이 시기에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의사교환을 할 수 있는 암호 시스템을 고안했다. say, now, speak 같은 일상적 단어 10개에 일련번호를 매겨놓은 것이었다. 후디니가 단어 몇 개를 나열하면 이것이 숫자를 거쳐 다시 알파벳으로 변환되는 시스템이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파트너로 일하면서 암호를 이용한 대화를 능숙하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
후디니가 죽고 2년 뒤 아더 포드란 젊은 영매가 나타나 후디니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가 받은 메시지는 암호 체계와 정확히 들어맞았으며, 부부만이 알 수 있는 은밀한 내용이 담긴 메시지로 변환되었다. 결국 후디니의 아내 베아트리스는 아더 포드를 통해 죽은 남편의 메시지를 전달 받았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 대한 증인은 <유나이티드 프레스>의 H. R. 잔더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부편집장인 J. W. 스탠포드 등이었다. 그러나 후디니의 동료 회의주의자들은 사기꾼에 불과한 여자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다. 또한 후디니 부인이 아더 포드와 내연관계라는 등의 악성 루머를 퍼뜨렸다.
마저리 크랜던의 심사 이후 교령회에서 온갖 이적을 선보였던 <피지컬 영매>들은 점차 자취를 감췄으며, 영혼과 접촉해 필요한 정보만 얻어내는 이른바 <멘탈 영매>들이 주류로 부상했다.
물질주의와 낡은 신앙의 양극단 사이에서
이렇게 서구사회에 등장한 이른바 ‘영매’들은 물질주의와 낡은 종교의 양 극단을 지양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했다. 또한 노예해방이나 인권신장 같은 개혁적 운동이 태동하는 데 한몫을 하기도 했다. 영매들은 이른바 ‘심령주의(spiritualism)’라 불리는 새로운 사상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심령주의의 기본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며, 윤회를 통해 진화한다.
- 신은 우주를 다스리는 법칙이자 사랑이다. 분노하고 질투하는 기독교의 신은 인간의 창조물일 뿐이다. 인간의 불행은 인과의 법칙에 따라 스스로 불러들인 결과일 뿐, 신이 내리는 징벌이 아니다.
- 기독교에서 묘사하는 식의 천국과 지옥은 없다. 영의 세계는 지상의 삶의 연속이며, 다른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진화의 정도에 따라 여러 계층으로 구분된다.
심령주의의 이러한 세계관은 당시 서구사회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던 낡은 기독교와 새로운 물질주의의 양 극단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심령주의는 특정한 존재에 의해 정립된 사상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신뢰할 만한 정보로 인정받는 게 이 책에서 소개하는 실버 버치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새로운 타입의 교령회
실버 버치의 영매였던 모리스 바바넬(1902~1981)은 피지컬 영매의 시대가 저물고 멘탈 영매가 주류로 부상하던 시기에 등장한 인물이다. 무신론자였던 바바넬은 10대 후반의 나이에 우연히 참석한 교령회에서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내다 다른 참석자들과 논쟁을 벌이게 된다. 이때 바바넬은 몇 달간 교령회에 참관하면서 진위 여부를 조사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수락한다.
그렇게 참관한 모임 도중 그는 잠이 들고 말았는데 깨어난 뒤에 자신이 아메리카 인디언의 영매가 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그뒤 바바넬은 자신의 교령회를 시작했지만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이 모임을 통해 메시지를 전한 인디언 영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결국 이 모임은 열성 회원이자 유명 저널리스트였던 해넌 스와퍼의 모임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점차 외국에까지 입소문이 퍼졌다.
바바넬은 1932년에 심령주의 신문인 사이킥 뉴스를 공동 창간하고 편집자가 되었는데, 자신의 교령회에 대한 소식은 끝내 싣지 않았으며 그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넌 스와퍼가 신문을 통해 교령회의 메시지를 알리자고 설득해 결국 바바넬은 제안을 수락하되 자신은 익명으로 남기로 한다. 이때 인디언 영이 자신의 이름을 ‘실버 버치’로 정하게 된다.
바바넬은 접신 상태에서 의식을 잃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바늘로 찌르는 등의 자극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실버 버치는 환생을 인정한 반면, 바바넬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환생 같은 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버 버치가 자신의 제2 인격이라는 주장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모임의 참석자들과 바바넬의 아내인 실비아(이 책의 편저자)도 두 존재의 인격이 다름을 증언했다.
바바넬은 80세를 일기로 타계하기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자그마치 60년 동안 교령회를 했기에 방대한 양의 자료가 쌓여 있고 편집해서 출간된 서적만도 15권에 이른다. 일본에서는 대부분 번역되어 있으나 국내에는 1980년 대에 한 권이 나와 바로 절판된 상태다. 이 책은 모리스 바바넬의 아내인 실비아 바바넬이 편역한 를 번역한 것이다.
- 《머니 매트릭스(2009)》 저자 김성진 개인 웹사이트 (김모의 유리바다 - 현재 폐쇄 됨)
2ch식 유머 모음
2ch - 오늘 09시 13분 발 전철에 투신 자살 합니다.
2ch - 뚱땡이가 말하면 멋진 대사
2ch - 이상한 감각을 써보자
2ch - '게임세계의 손실이 현실에 반영된다'는 철학을 가진 위험한 게임
2ch - 「이 게임은 절대 안 팔려」싶은 게임의 제목을 생각해보자
2ch - 면접시험장에서 "이 놈... 엄청나다"하고 생각나게 만드는 방법
자고 나니 유명해져 있었다.
"I awoke one morning and found myself famous."
- 출처: 바이런의 비서이자 친구였던 **토머스 무어(Thomas Moore)**가 쓴 바이런의 전기, **《Life of Lord Byron》**에 기록된 내용.
배경 사건: 1812년, 바이런이 자신의 장편 서사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의 1, 2권을 발표하자마자 런던 사교계와 문단이 발칵 뒤집혔던 사건을 회고하며 한 말.
"나는 영국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영국을 버렸다."
- 바이런
(* 바이런은 평소 의회에서 노동자 편을 들거나 기득권을 비판하는 시를 써서 미움을 사고 있었다. 사교계는 그의 이혼 스캔들을 구실 삼아 **"천재 시인이기 이전에 부도덕한 괴물"**이라며 낙인을 찍었고, 길거리에서 야유를 받거나 클럽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미지의 종국으로 떠밀리는 느낌을 받고 있다. 내가 그것에 이르는 순간, 내가 불필요하게 되는 순간, 나를 갈가리 찢는 데는한 입자의 원자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인류가 힘을 모두 합치더라도 나를 해칠 수는 없을 것이다."
- 에마뉘엘 드 라스카즈(Emmanuel de Las Cases) 《세인트헬레나의 회상록(Le Mémorial de Sainte-Hélène)》
연도: 1816년 ~ 1821년 사이의 회고 (유배 기간 중 발언)
맥락: 나폴레옹의 **운명론(Fatalism)**을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대목이다. 그는 자신이 역사의 도구이며, 자신의 임무가 끝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자신을 해칠 수 없다는 강력한 확신을 가졌다. 이는 네빌 고다드가 말한 '창조의 확정'이나 사르트르의 '실존적 결단'과도 묘하게 닿아 있다.
"스물다섯 살 때! 나는 내가 뭐가 될지 예상할 수 있었어. 그때 이미 세계가 내 밑에서 전개되는 것을 보았어. 마치 내가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것처럼."
- 에마뉘엘 드 라스카즈(Emmanuel de Las Cases) 《세인트헬레나의 회상록》 또는 구르고(Gourgaud) 장군의 기록
연도: 1810년대 후반 회고
맥락: 1795년 포도탄 사격으로 파리 폭동을 진압하고 총사령관으로 급부상하던 시기를 회상한 것이다. 이미 젊은 나이에 잡스가 말한 '직관'을 통해 자신의 거대한 미래를 예견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무정부상태에 진력이 나서 그걸 마감하고 싶어하고 있었어. 다른 누군가가 나섰더라면 내가 나서지 않았을거야. 인간은 인간일 뿐이야. 상황과 여론이 호의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여론이 모든 것을 다 결정해.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다고 생각해? 아냐, 여론이 교황들에게 대항한 거야. 앙리 팔세가 로마와의 관계를 단절했다고? 아냐, 국민들의 여론이 원했던 거야. 프랑수와 일세 때 프랑스는 칼빈파의 신교가 될 뻔했어. 군주에게 그렇게 권했지만, 몽모랑시 원수가 반대해서 그렇게 되지 않았어. 그리고 프랑스는 항상 이탈리아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도 작용했지. 샤를르껭도 망설였어, 하지만 본질적으로 카톨릭인 나라의 군주로서 감히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거지."
- 에마뉘엘 드 라스카즈(Emmanuel de Las Cases) 《세인트헬레나의 회상록》
연도: 1816년경
맥락: 나폴레옹은 자신을 '민중의 의지'를 대변하는 인물로 규정했다. 푸코가 분석한 '권력의 담론'처럼, 권력은 한 개인의 힘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여론/담론)이 만들어낸 결과물임을 간파한 통찰이다. 김정운 교수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폴레옹은 당시의 혼란스러운 여론을 '황제'라는 명분으로 완벽하게 **편집(Editing)**한 인물이다.
"진정해, 나는 소위를 칠 년 동안 달았어. 그래서 오늘날 이렇게까지 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어."
- 오 년동안 소위 계급을 달고 있던 사람이 진급에서 제외되었다며 나폴레옹 앞에서 선처를 요구했을 때
출처: 부리엔(Bourrienne)의 회고록 혹은 나폴레옹 일화집
연도: 통령 정부 시절 (1799년 ~ 1804년 사이의 일화로 추정)
맥락: 성급한 성공을 바라는 이에게 던진 말이다. 잡스가 "산도 움직이는 단순함"에 도달하기 위해 치열한 인고의 시간을 보냈듯, 나폴레옹 역시 밑바닥에서 보낸 7년의 시간이 자신의 본질을 만들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교황이 그 책을 얻으려고 나를 많이 괴롭혔어. 확실한 것은 그 당시 여론이 유일신에 호의적이었어. 유일신을 이야기하기만 하면 환영을 받았어. 여건이 조성된 거지. 나하고 마찬가지야. 내가 사회에서 아주 미미한 존재였지만 여건히 조성되고 여론이 호의적이어서 황제까지 된 거야."
- 에마뉘엘 드 라스카즈(Emmanuel de Las Cases) 《세인트헬레나의 회상록》
연도: 1810년대 후반
맥락: 여기서 '그 책'은 보통 가톨릭과의 화해를 이끌어낸 **'정교조약(Concordat)'**이나 관련 문서를 의미한다. 그는 종교조차 시대적 요구(여론)에 따른 정치적 도구로 보았다. 자신이 황제가 된 것 역시 개인의 야망보다는 '여건의 조화'가 이뤄진 결과라고 분석하는데, 이는 끌어당김의 법칙에서 말하는 **'정렬(Alignment)'**의 역사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나는 인생에서 복을 받았다는 건 인정해야 해. 인생에 뛰어들자마자 권력을 잡고 항상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살았으니까. 내가 복종해야 할 군주도 법도 없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모스크바에서 죽었어야 해. 그랬더라면 군인으로서의 영광에 오점이 없고 정치적으로도 세계 역사에 표본으로 남았을 거야. 아니면 워털루에서 죽었어야 했어."
- 에마뉘엘 드 라스카즈(Emmanuel de Las Cases) 《세인트헬레나의 회상록》 및 오메라(O'Meara)의 기록
연도: 1817년경
맥락: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예술 작품(Work of Art)**으로 보았던 나폴레옹의 시각이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영광이 정점에서 멈췄어야 완벽한 '비극적 영웅'의 서사가 완성되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바그너가 추구한 '종합예술'처럼 자신의 삶이 완벽한 구조를 갖추길 원했던 편집광적인 면모가 보인다.
우리 한 명 한 명이 모두 창조자이고, 만들고 싶은 것을 마음속으로 염원하며 우주로 보내면 우주는 거울처럼 그것의 실체를 비춰준다. 하나부터 열까지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며 첫 단계는 ‘생각하기’부터 시작한다. 생각은 희뿌연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이 점점 형태를 갖춘 실체가 되어 물질적 차원에서 구현된다.
- 줄리앙 샤므르와 《가려진 질서, 2024》
"대부분의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인데요. 거대한 우주에서 우리는 매우 작은 존재입니다. 우리도 우주의 일부이며, 심지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의 세포들은 우주의 구조를 본뜬 듯 닮아있죠. 그렇기에 우리가 생각하고 갈망하는 에너지가 강렬할수록 우주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아기의 태동이 엄마에게 전해지듯 당연한 것입니다.
엄마는 아기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알아보고,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고, 그걸 채워주려 노력하겠죠. 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품고 있는 거대한 우주는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채워주고자 합니다."
- 줄리앙 샤므르와 yes24 인터뷰 2022.11.17
"전심전력으로 살면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인생에는 모두 깊은 의미가 있다. 모든 것은 인도되고 있다."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한부 인생 극복하게 한 '역경력'"
"곧 막을 내리는 2022년. 한 해를 돌아볼 때면 언제나 두 문장이 마음에 떠오른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 깊은 의미가 있다." "모든 것은 인도되고 있다." 이 말들은 지나간 과거의 모든 것을 치유하고 미래로 향하는 우리를 깊이 격려한다. 여러분들도 이 두 문장을 가슴에 품고 멋진 한 해 보내시길."
- 타사카 히로시 트위터(@hiroshitasaka) 게시글 및 저서 《운명을 이끄는 법(2022)》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 에크하르트 툴레 《The Power of Now: A Guide to Spiritual Enlightenment》, 1997
"현실적인 사람은 하느님의 영의 것들을 받지 않나니, 그것들은 그들에게 어리석다 생각되기 때문이고, 그는 그것들을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그것들은 영적으로만 분별되는 것이기 때문이더라."
- 고린도전서 2:14
"나는 요즘의 모든 사실주의자나 비평가들과는 전혀 다른 현실성과 사실성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나의 이상주의가 그들의 소위 사실주의보다도 더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로서는 거의 환상적이거나 상식 밖의 일로 여겨지는 것이 오히려 가장 깊은 현실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일 수가 있다. 일상적인 사건을 그저 피상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사실주의일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전혀 그 반대인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의 서신(Letter to Nikolai Strakhov)
작성 시점: 1869년 3월 10일 (러시아 구력으로는 2월 26일)
(* 맥락: 당시 도스토예프스키는 걸작 **《백치(The Idiot)》**를 막 완간한 시점이었으며,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이나 사건들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평가들의 공격에 대응하며 친구이자 비평가인 스트라호프에게 보낸 편지에 이 내용을 적었다.
비일상의 본질: 노지마 신지처럼,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살인, 광기, 극단적인 심리 상태처럼 흔치 않은 사건들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숨겨진 본질과 진실을 더 극명하게 드러낸다고 믿었다.)
“리얼한 세계를 취재하여 글 쓰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취재가 점점 심화되어 감에 따라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세계가 눈앞에 점점 다가옵니다. 리얼한 세계의 극한 부분은 모든 의미에 있어서 통상적인 인간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 넘는 곳에 존재합니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를 통해 만난 철학가 베르자예프를 소개한다. 베르자예프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소설가라기보다는 위대한 사상가로 보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있어서 모든 관념은 인간의 운명, 세계의 운명, 신의 운명과 결부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 자신만의 “인간의 운명, 세계의 운명, 신의 운명”론을 전개해 갔다고 한다. 다카시는 그를 만남으로써 이전과는 스케일 상에 있어서 완전히 차원이 다른 사고를 하게 되었다고. 일본 사회라는 틀에 갖혀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으로 세계 전체, 우주 전체까지 사고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천년 단위의 과거와 미래, 심지어는 “신의 운명”까지 생각하게 되었다나."
-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1995》
시대정신 (Zeitgeist)
유래: 독일어 'Zeit(시간/시대)'와 'Geist(정신)'의 합성어입니다. 한 시대에 지배적인 지적, 문화적, 도덕적 분위기를 뜻한다.
출처: 독일의 작가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가 처음 사용했으나, **헤겔(G.W.F. Hegel)**의 저서 **《역사철학 강의(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Weltgeschichte)》**를 통해 철학적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연도: 1769년(헤르더의 초안) / 1837년(헤겔의 사후 출간된 강의록)
현승원의 자신감
대학생 시절, 자기보다 영어를 잘하는 고등학생에게 영어과외를 해줬다. 비결은, 매일 6시간 동안 인터넷 1타 강사의 강사를 철저하게 베끼며 치열하게 노력한 것. 어느 분야든 1등을 찍은 사람에 대한 신앙을 가졌다. (<성경>도 최고의 책이라서 계속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그대로 똑같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과외하는 동안 질문은 일체 받질 않았고, 현승원의 과외를 받은(?) 학생은 2달 뒤에 그 학년 내에서 영어 시험 전체 1등을 했다.
...
무언가를 처음 할 때는 효율, 비효율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
처음에는 비효율적이어도, 나중에는 처음에 들인 것만큼 시간이 많이 들지 않는다.
돈만 더 드는게 아니면 바로 해!
빨리 결정하고 실행하라.
...
학원 면접에서 떨어지자:
"원장님은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를 잃으셨습니다." 문자답변
현승원이 과외를 한다고 하자 누군가 "너 중고등학교 때 공부 못했잖아?" → 개의치 않았다.
- 현승원 유튜브 (2022)
1. 2000년대 초반, 일본에는 없는 기술을 한국에서 배워옴. 아버지의 부탁 덕분에 한국에서 무료로 성형외과 기술을 모방할 수 있었다. 한국 국적을 갖고 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2. 성형미용이 없는 일본의 작은 동네에서 영업시작
3. 작은 방에서 시작했고, 마을잡지에 광고를 기재하는 식으로 작게 시작해서 리스크를 줄임
4. 무한 확장 시도. 혼자 벌어서는 부자가 못됨; 나를 3명, 30명으로 복사해야 한다. 원장만 다른 사람이면, 점포를 몇개를 내도 상관없다는 일본 의료 시스템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이 경우, 원장들만 컨트롤할 수 있으면 된다. (한국은 법적으로 이게 안 된다.)
5. 여름에 매출이 줄어들어, 계절이 다른 지역(ex. 오키나와)에 새로운 점포를 냄.
6. 직원들에게 부드럽게 대하기; 처음에 엄하게 하니 직원들 5명이 그만뒀다. 직원들에게 질책하라고 한 한국 선배 의사의 성형외과는 망했다. 부드럽게 대해야 한다. 부드러운 인격자일 필요는 없고, 이건 일종의 스킬이다.
1. 처음에는 철저하게 업계 1위를 모방해야 한다.
2. 5년 동안 이 짓을 한다.
- 유튜버 JM, 아소 도루 (麻生 泰 / あそう とおる) 인터뷰 (2023)
1.
한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는 증조부가 생존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간의 모든 추억도, 현재도, 전부 방금 전에 뇌가
적당히 만들어낸 것일 수 있다. 가상현실과 현실의 구분은 자기 자신은 절대로 할 수 없는 법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세계가
유령처럼 가짜일 가능성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과 똑같이 존재한다.
2.
도쿠가와 이에야스(일본의 에도시대를 연 군주)의 존재를 기록에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용한다면, 장소나 흔적이 명확한 기록으로 남겨져 있는 다이다라 법사(전설상이 거인
이름)도 믿어야 말을 한다. 따라서 사회의 상식 또는 기록의 객관성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3.
역사적 인물로서의 이에야스는 사실이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이에야스'는 별개의 인물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때로 이에야스를
알고 있는 착각을 일으키는데, 이것은 '이에야스'라는 말이 가져오는 정보를 담고 있는 기억의 창고와 우리들의 실제 체험을 담고
있는 기억의 창고가 같은 창고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류이다. 역사적 기록이란 인류 전체의 '공동환상'일 수 있다.
4.
기억의 창고가 텅비거나 신용할 수 없게 된다면 1분도 살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두뇌는 거짓말로라도 기억이라는 손님을
구슬리려고 한다. 그래서 두뇌는 기억의 창고 안에서 어울리는 재고품을 꺼내 와서, 마치 지금 입고된 것처럼 얼버무리는 것이다.
손님은 신선한 것과 전혀 구별은 못 한다.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버린 뇌는 그 후 아귀를 맞추기 위해 장부를 고치기 시작한다.
5.
양자역학(원자 속에서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에는 '불확실성 법칙'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양자의 모양은
관측할 때까지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자처럼 작은 것은 운동량을 관측하면 위치가, 위치를 관측하면 운동량이 확실하지 않게
된다. 위치를 결정하면 그 순간 운동량은 무한대로 부정확해지고, 운동을 재면 이번에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은 즉
관측자가 관측한 바로 그 때에 비로소 관측대상의 모양이나 성질이 결정된다는, 그리고 그것이 결정되기 전까지 대상은
'확률적'으로밖에 파악할 수 없다는, 전혀 자연물리학 답지 않은 결론이다. 양자역학은 '주체와 객체는 완전히 분리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 이후의 당연한 명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왜냐하면 불확실성 법칙은 '관측하는 행위 자체가
대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자역학의 극단적인 이론은 이 세상은 과거를 포함해서 '관측자가
관측한 시점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의 과학으로 알 수 있는 우주란, 실로 우리들의 생존에
알맞게 되어 있다. 왜 이렇게까지 잘 만들어져 있는가 하면, 그 이유는 단 하나, 관측하는 주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이
예상하게 하는 결론은 인간을 우주의 일부로 볼 것인가, 우주를 인간의 일부로 볼 것인가 하는 분기점을 가리킨다. 만약 우주가
인간의 일부라면, 분명 세상은 우리의 뇌가 만들어낸 환상일 것이다.
- 교고쿠 나츠히코 데뷔작 《우부메의 여름》
초판 발행: 1994년 9월 (코단샤 노벨스)
우리는 우주의 역사를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추적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순행적인 추적은 잘 정의된 출발점과 진화 과정을 가진 단일한 역사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역사들을 역행적으로, 즉 현재에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추적해야 한다. 일부 역사들은 다른 역사들보다 확률이 더 높을 것이며, 대게는 우주의 창조에서 출발하여 현재 상태에서 끝나는 어떤 단일한 역사가 역사들의 합에 지배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주의 다양한 가능 상태들에 대응하는 다양한 역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주론과 인과관계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파인만 합에 기여하는 역사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무엇이 측정되느냐에 의해 존재한다. 역사가 우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찰을 통해서 역사를 창조한다.
-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위대한 설계』 (The Grand Design, 2010)
"죽음은 미지의 대륙이며, 우리는 그곳을 탐험하는 항해사(타나토노트)들이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타나토노트(Les Thanatonautes)』 (1994년)
영원이 무한한 시간 지속이 아니라 무시간성으로 이해된다면, 현재에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것이다.
- 루트비히 비트켄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년도: 1921년 (독일어판 초판) / 1922년 (영문판 초판)
"진짜 죽음은… 슬픔조차 인식할 수 없는 상태, 그래서 참 슬픈 것”
“한밤중에, 새벽 3-4시에 가장 아프다. 그때 나는 신의 존재를, 은총을 느낀다. 고통의 한가운데서 신과 대면한다. 동이 트고 고통도 멀어지면 하나님도 멀어진다. 조금만 행복해도 인간은 신을 잊는다(웃음)”
- 이어령, 조선비즈 김지수 기자와의 인터뷰 (2022)
"이제 나는 죽어도 좋다"
- 마르셀 프루스트
(* 프루스트는 1922년 11월 18일, 만 5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가 죽기 전후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Fin(끝)"이라는 글자: 프루스트는 사망하기 약 6년 전인 1916년경에 이미 소설의 마지막 권인 『되찾은 시간』의 결말 부분을 써두었다. 그는 비서인 셀레스트에게 **"이제 끝(Fin)을 썼어. 이제 나는 죽어도 좋아."**라고 말하며 안도했다.
2) 마지막 순간의 교정: 죽기 직전까지도 그는 침대 위에서 교정지에 메모를 덧붙였다. 심지어 숨을 거두기 불과 몇 시간 전인 새벽 3시 30분까지도, 소설 속 인물인 '베르고트'의 죽음 장면을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자신의 임종 고통을 관찰하며 수정 사항을 받아 적게 했다. 자신의 죽음마저 소설의 재료(실상)로 사용한 것이다.)
이전 본지에서도 보도했듯이, 생전 비밀리에 무덤을 구입했던 타무라. 자신의 노후에 대해 물어 보면, "타무라 류의 사생관"을 밝혀 주었다.
"나는 이제 "조용히 죽고 싶다 "라는 느낌 일까"
일본 드라마 계를 오랜 견인 해 온 타무라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없는 것일까? 부활을 바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리고는 조용히 사라질 뿐이다"라고 부정하는 타무라.
그러나 겁없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계속한다.
"영화도 텔레비전도 하고 있었고, 무대도 했어. 쇼와에서 출발, 헤이세이까지, 이미 충분히 하지 않았을까. 레이와(令和)는 아직이지만..."
- 타무라 마사카즈 생전 마지막 인터뷰 <여성자신> (2019)
"I am about to take my last voyage, a great leap in the dark."
(나는 이제 마지막 여행을 떠나려 한다. 어둠 속으로의 위대한 도약을.)
"여기에 진정한 철학자의 돌이 누워 있다(This is the true philosopher's stone)."
- 토마스 홉스, 1679년 (홉스가 사망한 해에 기록된 일화)
(출처: 존 오브리(John Aubrey)의 저서 《Brief Lives》 (지인들의 짧은 전기 기록물))
"Pluck up thy spirits, man, and be not afraid to do thine office; my neck is very short; take heed therefore thou strike not awry, for saving of thine honesty."
(기운을 내게, 사람아. 자네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두려워 말게. 내 목은 아주 짧으니, 자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빗나가지 않게 조심하게나.)
"이 수염은 반역을 저지른 적이 없으니, 도끼에 잘릴 이유가 없다네."
(Pity that [my beard] should be cut, that has not committed treason.)
- 토마스 모어(Thomas More)
출처: 토마스 모어의 사위 윌리엄 로퍼(William Roper)가 기록한 **《The Life of Sir Thomas More》**에 나오는 일화들
[사고실험] 육체는 사라지고, 인간의 의식과 기억만 무한대로 확장된다면?
스가와라 소우타(菅原そうた)의 단편집 《모두의 토니오짱(みんなのトニオちゃん), 2001》의 단편인 5억 년 버튼 (5億年ボタン), 스티븐 킹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Skeleton Crew), 1981》의 《조운트(The Jaunt)》, 그리고 교고쿠 나츠히코 《망량의 상자 (魍魎の匣), 1995》에서 공통적으로 탐구한 주제
"예술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 오스카 와일드
원전: 평론 「예술가로서의 비평가 (The Critic as Artist)」
출간 연도: 1891년 (단편집 『의도(Intentions)』에 수록)
"과거는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머물러 있다가 언제든 사물을 통해 되살아난다. 순간적인 시간을 정복해 영원한 시간에 도달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출간 연도: 1913년 ~ 1927년 (총 7편으로 나누어 출간)
(* 프랑스의 동성애 작가였던 마르셀 프루스트는 심한 천식을 앓아 침대에서 누워지내며 요양생활을 했지만, 소설을 써야 될 때면 침대에서 박차고 일어나 소설을 썼다. 그것도 25년동안 꾸준히 말이다. 그렇게 해서 4천여 페이지의 대작이 완성되었다. 그 사람에게는 '의식의 흐름'을 주제로 한 소설 한편을 완성하는 것이 인생의 일대 사명이었던 것이다.
"오겐키데스카? 와타시와 겐키데스. (お元気ですか? 私は元気です)"
(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 이와이 슌지 《러브레터 (Love Letter, 1995)》
(* 죽은 연인과 동명이인인 여자에게 보낸 편지가 닿으며 시작되는, 기억의 재구성이다. 설산에서 죽은 연인을 향해 내뱉는 이 외침은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니다. 과거의 슬픔(결핍)을 털어내고 현재의 자신을 긍정하려는 처절한 작별 선언이자 치유의 주문이다.)
"정결하면서도 대담하고, 몽환적이면서도 이지적인 헤세의 작품은 전통과 애정과 기억과 비밀로 가득하다. 그의 작품은 상쾌함을 문화적 의미에서 새로운 정신적인 단계, 실로 혁명적인 단계로 고양시킨다."
- 토마스 만이 1928년에 쓴 **〈헤르만 헤세에 대하여 (Über Hermann Hesse)〉**라는 제목의 산문(또는 헤세 전집의 서문)
(* 주로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 독어판 서문이나 토마스 만의 비평집에 수록되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데미안》이 준 **전율적인 충격(electrifying influence)**을 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시대의 신경을 정확히 건드렸다."
- 출처: 1948년 미국에서 출판된 《데미안》 영문판 서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부쳐 (Introduction to Demian by Hermann Hesse)〉 및 토마스 만의 산문집 《열두 사람의 초상》 등.
"학교란 얼마나 이상한 곳인가. 같은 또래의 수많은 소년소녀들이 모여들어 저 비좁은 사각 교실에 나란히 책상을 놓고 앉는다. 얼마나 시시하고 얼마나 유별난, 그리고 얼마나 굳게 닫힌 공간인가."
"몇천 명, 아니 몇만 명의 학생이 스쳐간 이 낡은 학교에서는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그 뭔가가... 또는 이 공간 안에 겹겹이 배어 있는 에너지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스며 들어온다."
"몇천 명이나 되는 이 학교의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하나하나 미묘하게 다르고, 또 조금씩 변화된 다양한 이야기가 매일 만들어지고 있다."
"학교라는 건 돌고 있는 팽이 같은 것이다. 항상 똑같은 위치서 똑바로 서서 빙글빙글 돌고 있다. (중략) 팽이는 내내 똑같은 하나의 팽이지만 끈을 쥔 사람, 치는 사람이 자꾸 바뀌는 것이다."
"일회성의 직선적인 시간 안에 있는 학생들. 이른바 영원과 찰나. 그 상반된 두 시간의 어긋남이 학교를 극장으로 만든다."
- 온다 리쿠 『여섯 번째 사요코(六番目の小夜子)』 (1992년)
(* 정말 좋은 책들은 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 속 이미지가 생생해져 급기야는 내 삶의 일부로 흡착되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는 '노스탤지어의 전령'이라는 온다 리쿠가 쓴 책들이 특히 기억 속에 오래 남아 내게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그녀의 영향 때문에 나는 '고등학교'라는 장소에 대해 추억과 몽환이 가득한 장소, 그리고 나의 못다한 청춘의 비극을 상징하는 장소로 생각하게 된다. 그녀 덕분에 내 안에서는 어떤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에너지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이 확장된 것이다. 동급생들끼리 한밤에 '걷기 운동'을 하여 추억을 만든다는 주제의 『밤의 피크닉』 도 또다른 예다.)
백운학의 예언
(1) 5·16 혁명 직전 (1961년 초)
시기: 5·16 혁명이 일어나기 약 2~3개월 전.
상황: 김종필이 거사를 앞두고 자신의 운명을 시험해보기 위해 서울 종로 5가 근처에 있던 백운학을 찾아갔다.
백운학의 예언: JP의 관상을 보고 **"당신, 조만간 큰일을 저지르겠구먼. 성공하겠어. 하지만 그 뒤에는 아주 긴 세월 동안 2인자 자리에 머물 관상이야."**라고 예언. 실제로 혁명은 성공했고, JP는 평생 '영원한 2인자'로 남았다.
(2) 박정희 암살(10·26) 예언 (1970년대 후반)
시기: 10·26 사태가 발생하기 전.
백운학의 예언: 백운학은 박정희 대통령의 관상을 두고 **"임금의 관상이긴 하나, 말년에 쇠(금속)에 의해 비명횡사할 운명"**
- 김종필 《김종필 회고록 1: 소치(小痴) 김종필》 (중앙일보 '소치 김종필 증언록' 연재분 단행본)
해당 대목: 제1권 중 〈5·16 전야〉 혹은 〈관상가 백운학과의 만남〉 관련 챕터.
연재 및 발간 시기: 2015년 중앙일보에 연재되었으며, 단행본은 2016년에 발간.
"박 도사 (박재현)는 이병철 회장의 신임을 받아 신입사원 면접 때 관상을 보기도 했다. 그는 이병철에게 '당신은 목(木)의 기운이 강하니 이름에 '별(星)'을 넣어 삼성(三星)이라 하라'고 조언했다.
또한 1979년 가을, 그는 지인들에게 '올해 잎이 지기 전에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길 것'이라 예언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관상에서 '혁명으로 얻은 권력은 혁명으로 끝난다'고 말했다.
- 조용헌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2002년)
야산 이달 선생은 1950년 봄, 충남 부여의 청강당(聽江堂)에서 제자들에게 갑자기 **"곧 큰 홍수가 날 것이니 짐을 싸서 남쪽으로 떠나야한다"**고 명했습니다. 당시 날씨는 매우 화창했기에 제자들은 의아해했으나, 선생의 명에 따라 안면도 등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가 본 '홍수'는 물이 아니라 **'피의 홍수(전쟁)'**를 의미했습니다. 그는 주역의 괘를 통해 북풍(공산군)이 남하하는 형국을 읽어낸 것입니다. 실제로 전쟁이 터지자 안면도로 피신한 제자들은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때 **"개미가 이사를 가면 큰 비가 온다"**는 비유를 들어 시대를 경고했습니다.
- 탄허 《주역의 산책, 1982》, 최창조 《한국의 명당, 1984》, 《야산 이달 선사 일대기, 2002》
(1) 경전의 수준 비유 (대학원생 vs 대학생)
탄허 스님은 방대한 불교 경전을 체계화하며 다음과 같이 비유했습니다.
a. 화엄경
(대학원 수준): 탄허 스님은 《화엄경》을 "불교의 정수이자 우주의 원리를 담은 최고봉"으로 쳤습니다. 이를 대학원 과정에
비유하며, 현상과 본질이 하나로 융합되는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를 설명하는 궁극의 텍스트로 보았습니다.
b. 법화경·능엄경 (대학 수준): 《법화경》이나 《능엄경》 등은 대승불교의 핵심을 다루는 학부(대학생) 수준으로 분류했습니다.
c. 아함경·법구경
(초·중등 수준): 《법구경》이나 《아함경》 등 소승 경전은 수행의 기초와 윤리적 삶을 다루기에 초등 또는 중등 교육 과정에
비유했습니다. 이는 경전을 깎아내린 것이 아니라, 공부의 단계적 편집(Editing)을 강조한 것입니다.
(2) 유·불·선 및 기독교 비교
탄허 스님은 각 종교를 '인간 완성'이라는 목적지로 가는 서로 다른 경로로 보았습니다.
유교 (인륜의 도): 사회적 관계와 윤리를 다루는 '살아가는 법'의 기초.
도교 (양생의 도): 자연과 하나 되어 무병장수하고 정신을 맑게 하는 법.
불교 (본성의 도):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생사를 해탈하는 궁극의 가르침.
기독교와의 비교: 기독교의 '사랑'과 '하느님'을 불교의 '자비'와 '자성(自性)'의 관점에서 풀이했습니다. 그는 "기독교는 종교의 문(門)이고, 불교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간 방 안의 진리"라는 식의 통합적 부감을 제시했습니다.
- 출처: 탄허 《부처님이 계신다면, 1981》, 《피안으로 이끄는 사자후, 1982》, 《탄허록, 2012》(사후 출판)
"네놈들이 말하는 이타주의나 사랑이란 건, 사실 자기 안의 썩어가는 에너지를 밖으로 싸지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하는 '배설 행위'에 불과하다. 타인을 돕는다는 위선은, 단지 '나는 너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는 지독한 자기 확인일 뿐이다.
모든 행위는 자기보존의 몸부림이다."
- 무묘앙에오 《폐허의 붓다, 1992》
"인간은 자기가 특별한 줄 알지만, 사실은 프로그래밍된 대로 움직이는 육체라는 이름의 기계일 뿐이다. 도덕? 신념? 그런 건 기계가 녹슬지 않게 뿌리는 기름칠에 불과해. 네놈들이 살아있으려고 발버둥 치는 꼴을 보면, 마치 불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의 그로테스크한 춤사위를 보는 것 같아 역겹기 짝이 없다."
- 무묘앙에오 《어느 죽음의 수기, 1990》
"일체의 모든 행위는 오직 하나,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공포'에서 기인한다. 네놈이 명상을 하고 도를 닦는 것조차 사실은 '나'라는 쓰레기를 영원히 보존하고 싶어 하는 지독한 탐욕의 편집이다. 깨달음조차 자아의 최후의 도피처일 뿐이다."
- 무요앙에오 《반역의 깨달음(反逆の悟り), 1994》
(* 조선 명상계에서 유명한 무묘앙에오은 사실 만다라케 출판사가 돈벌이를 위해 만들어낸 가상 인물로 1994년에 죽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68세인 2017년 2월까지 살아 있었다 - 그 정체는 에오의 제자를 자처했던 스즈키 호잔으로 (본명은 모름), 평생 인간혐오에 골초로 살다 폐암에 걸려 죽었고, 1980년대 오쇼 라즈니쉬 씹색희의 영향으로 사이비 종교 교주가 된 것으로 보인다. '에오=스즈키 호잔'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은 그의 사후인 2017년에 출판사 만다라케가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진실로 드러났다. 만다라케 사장 후루카와 마스미는 아직도 에오의 유품을 경매시장에서 팔고, 복각본을 출판하고, 조선의 멍청한 정신세계사 독자들에게 책 팔아먹으며 돈벌이 중이다. 이 사기극의 끝은 결국 "깨달음을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가장 돈이 된다"는 냉혹한 자본주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폐암으로 극심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자신의 상태를 관찰하며, 끝까지 허무주의를 유지하며 자아의 완전한 파괴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에오는 뼛속 깊은 냉소주의자, 허무주의자 그 자체였다고도 볼 수 있다.)
"きちがいじゃが仕方がない" (미쳤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미친 짓이라는 건 알지만, 인간의 업(業)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 요코미조 세이시 《옥문도 (獄門島)》
출판 연도: 1947년 ~ 1948년
(* 요코미조 세이시는 일본적 폐쇄성과 혈연의 비극을 다루는 데 독보적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문장은 《이누가미 일족》이나 《옥문도》에서 발견된다.)
"높은 곳에 오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풍경이 있다."
- 《하얀거탑(白い巨塔)》 자이젠 고로의 대사
방영 연도: 2003년 10월 ~ 2004년 3월 (후지 TV 개국 45주년 기념 드라마)
(* 더 높은 지위(망상)를 차지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주인공 자이젠 고로의 가치관을 대변.)
프랑스어 원문:
"L'existence consiste à changer, changer à se mûrir, se mûrir à se créer soi-même indéfiniment."
한국어 번역:
"존재한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고, 변화한다는 것은 성숙하는 것이며, 성숙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엘랑 비탈(Élan vital, 생명의 도약) 관련 핵심 원문:
"L'élan vital... consiste essentiellement dans un courant de créativité lancée à travers la matière."
(생명의 도약(Élan vital)은... 본질적으로 물질을 관통하여 던져진 창조성의 흐름에 있다.)
- 앙리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L'Évolution créatrice)》 (1907년)
(* 베르그송은 이 저술을 통해 생명은 단순히 기계적인 법칙이나 결정론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폭발적인 추진력(엘랑 비탈)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참은 날마다 새로운 체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사람은 날마다 자기를 새롭게 한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꼐서
부활하신 다음 그 호숫가에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기사가 있다. 거기 보면 제자들이 육지에 올라와 보니 숯불이 피워져 있고
빵과 생선도 있었다. 주님은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라 하셨다고 한다. 무슨 뜻인가? 이미 넉넉히 있는데 왜 하필 방금
잡은 것을 가져오라 할까? 오늘에는 오늘의 체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리는 맨 첨부터 있는 영원한 진리지만 그것이 날마다
새롭게 체험되어야 생명이다. 오늘날 사람이 라디오, 텔레비전을 놓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속에 날마다 새로운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심심하다, 지루하다, 스트레스니, 노이로제니 하는 것은 다 삶이 역겨워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런 인생은 죽은 인생이다.
- 함석헌 《내 안으로부터의 혁명》 (1990년) - 유고집 성격의 선집
"생명은 '확산-수렴의 원리'다. 생명은 될수록 번져 나가려 한다. 물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번져 나간다. 방전이 되면 빛이 사방으로
번져 나간다. 빛도 소리도 열도 그저 방사되어 나가려 한다. 크게는 본체에서부터 작게는 사람의 속의 생각에 이르기까지 그저 번져
나가려고만 하는 것이 그 근본 경향이다. 그러나 그러는 한편 또 거두어들이려는, 될수록 모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는 창조요, 하나는 안식이다. 하나에서 진보주의가 나오고 또 하나에서는 보수주의가 나온다. 보수 없이 진보도 될 수 없고 진보
없이 보수도 될 수 없다. 늘 변하지 않으려 하면서 또 돌변하려 하는 것이 생명이다. 진화는 여기에서 나왔다."
"있음과 없음은 둘이 아니요, 있음과 생각과도 둘이 아닐 것이다. 있다하면 없는 것이요, 없다 하면 있는 것이다. 참 생각이야말로
있음이요, 참 있음이야말로 생각이다. 있다 함은 벌써 생각이 끊어진 것이요, 생각하면 벌써 있음은 깨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모순이다. 그러나 모순과 통일이 딴 것 아니다. 모순은 의식된 통일이요 통일은 의식된 모순이다. 생명은
이것으로써 자기초월을 해 나간다. 인격의 본질은 자기초월이다. 내가 나를 아는 것이 긍정이면서도 자기부정이 된다. 내 지식의
내용으로 된 것이 나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격은 자기반성으로 자기부정을 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순간 자기는 자기 이상일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쉬임없이 자기초월을 해 가는 것이 인격이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완전히 되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의 사람된 까닭은 자아의식, 자아주장이 있는데, 그 자아의식 자아주장을 성립시킨 것은 하나님 곧 절대자다. 내가
'나'를 만든 것 아니라, '나'는 누구에게 나들어졌다는 것이 자아의식의 밑바닥이다. 내가 '나다'할 때 벌써 거기 '너'가
있었다. 그리고 그 너야말로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내가 그를 안 것 아니라, 그가 나를 있게했다. 내가
무한을 아는 것 아니라, 무한이 자기 제한을 함으로써 내가 생겼다. 그러므로 '나'속에는 두 법칙이 있다. 절대자에 돌아가려 하는
생각과, 내가 주인이 되려 하는 생각, 이 두 모순되는 생각이 서로 싸우는 것이 인생이다. 문제의 근본은 나에게 있다. '나'란
생각 아니하고는 살 수 없는데, 또 '나'를 주장하면 전체자에 대한 반역이다. 자아의식 자체가 벌써 하나님에 대한 반항이다.
내가 죄를 지은 것 아니라, '나' 그것이 벌써 죄다. 나는 하나님에게까지 가잔 것인데,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면 죄다. 그래서
"야아,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하는 것이다."
"켱긴다는 것은 둘이면서 하나가 됨이다. 곧은 바늘은 어디 가도 걸리지 않고 어디에 떨어져도 찾을 수 있다. 몸이 켱기면 어떤 방해물 속에서도 빠져나올 수가 있고 마음이 켱기면 어떤 복잡한 문제도 풀 수가 있다. 삶과 죽음을 다 알면 둘이 아니다. 그래 생사일여다. 생사가 하나가 못되고 둘이기 때문에 살까 죽을까 혹하고 걱정하는 것이다. 나만 알고 전체를 모르며 전체만 말하고 나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공이냐, 사냐 번민을 한다. 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가 곧 나임을 안다면 공사의 충돌이 있을 리 없다. 빙공영사하는 것이 참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지만 멸사봉공도 참 공이 못 된다. 정말 공은 사가 되고 정말 사는 공이 된다. 그것은 공사의 대립을 초월해서만 되는 일이다. 그리고 공사를 초월하는 사람이면 그는 두 손에 공과 사를 다쥐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삶도 아니요 죽음도 아니다. 삶도 죽음도 아닌고로 살 수도, 죽을 수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 함석헌 《내 안으로부터의 혁명》 (1990년) - 유고집 성격의 선집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
물은 물이 아니요, 산은 산이 아니로다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
(* 이 유명한 3단계의 선(禪)적 변증법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선승 청원유신(靑原惟信) 선사의 법어에서 유래했다.
흔히 성철 스님이 1981년 방장 취임 법어에서 인용하여 한국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그 원천은 1,000년 전 송나라 시대에 편찬된 선종의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1. 청원유신 선사의 3단계 깨달음 (원문 및 해석)
청원유신 선사는 수행의 깊이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세 단계로 설파했다.
[1단계: 미망의 단계 (Affirmation)] "노승이 삼십 년 전 참선을 하기 전에는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였다." (사물의 외양과 명칭에 갇혀 있는 상식적인 수준의 인식.)
[2단계: 부정의 단계 (Negation)] "그러다가 나중에 선지식을 만나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게 보였다." (현상의 공(空)함을 깨닫고, 고정관념과 실체가 없음을 아는 '부정'과 '파괴'의 단계.)
[3단계: 재긍정의 단계 (Transcendence)] "이제 휴식처를 얻고 나니 예전과 마찬가지로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이로다." (본질을 꿰뚫어 본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완전하게 긍정하는 '절대 긍정'의 단계.)
"남성은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여성성인 아니마를 통해 삶의 의미와 감정을 회복하며, 여성은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남성성인 아니무스를 통해 지혜와 행동력을 얻는다. 이 내면의 동반자를 인식하지 못할 때, 우리는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밧줄에 묶여 조종당하게 된다."
- 칼 융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 (1928) 중 발췌 및 재구성
(* 융은 우리가 외부 세계에서 만나는 이성(Opposite Sex)에게 끌리는 이유가 사실은 내면의 아니마/아니무스를 그 사람에게 **'투사(Projection)'**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흑암천과 공덕천 이야기
어느 집에 한 여인이 찾아왔다. 기품있는 절세미인에 값진 옷과 보석을 걸치고 있었다. 집 주인이 "누구신지요?"하고 정중히 묻자 여인이 답하길 "나는 공덕천(功德天)입니다. 가는 곳마다 행운과 재물을 주지요."라고 대답했다. 집 주인은 기뻐 어쩔 줄 모르며 향을 피우고 꽃을 뿌리는 등 야단법석을 떨며 여인을 극진히 집으로 모셔들였다. 그런데 여인 뒤에 웬 여인이 또 하나 서있었다. 끔찍하게 못생긴 데다가 옷도 더러운 누더기였다. "아니, 댁은 누구요?"라고 주인이 묻자 여인은 "나는 흑암천입니다. 가는 곳마다 재난을 가져오고 재물이 소진되게 하지요."라고 대답했다. 주인이 기겁을 해서 칼을 갖고 나와 휘두르며 "썩 꺼져라. 가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고함쳤다. 그러자 여인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참 어리석군. 방금 그대가 집에 영접한 여인이 바로 나의 언니요. 우리는 쌍둥이로 반드시 붙어 다니게 되어 있소. 내가 떠나면 그 여인도 떠날 것입니다." 주인이 공덕천에게 확인하자 맞다고 하며 "내가 여기 있으려면 내 동생도 여기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12권 '성행품(聖行品)
성립/번역 년도: * 이 이야기가 포함된 북본(北本) 열반경은 인도의 승려 **담무참(Dharmakṣema)**에 의해 서기 421년경 한문으로 번역되었다.
원전인 산스크리트어 경전의 성립 시기는 대략 서기 2~3세기경으로 추정된다.
힌두교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신은 칼리인데, 이 여신은 무섭고도 자비로운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여신의 네 팔은 우주적 권능을 상징한다. 즉 위 왼손에는 피 묻은 칼을 들고 있었고, 그 아래의 손은 참혹하게 잘린 인두의 머리카락을 거머쥐고 있으며, 위의 오른손으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손짓하고 있고, 그 아래 손으로는 은혜를 나누어주고 있다.
- 조셉 캠벨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 1988)』
1. '승강기(昇降機)'에 대한 고찰
"서양 사람들이 만든 기계 이름에는 그들의 직선적인 의지가 담겨 있다. **'엘리베이터(Elevator)'**나 **'에스컬레이터(Escalator)'**를 보라. 그 어원은 '위로 올린다'는 뜻의 'Elevate'와 'Escalate'에 있다. 내려가는 기계도 버젓이 엘리베이터라고 부른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위로 올라가는 **상승(Ascension)**의 한 방향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은 그것을 **'승강기(昇降機)'**라 번역해 부른다. 거기에는 '오를 승(昇)'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릴 강(降)'자가 나란히 붙어 있다.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는 동양의 음양(陰陽) 사상이 기계 이름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서양인이 '높이'라는 수직의 한 점을 향해 돌진할 때, 한국인은 오르고 내리는 순환의 리듬을 본다."
2. '나들이'에 관한 고찰 (『한국인 이야기』 등 재구성)
"영어의 'Outing'이나 'Going out'은 밖으로 나가는 발산의 행위만을 지칭한다. 하지만 우리말에는 **'나들이'**라는 기가 막힌 단어가 있다. **'나다(陽)'**와 **'들다(陰)'**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단어다.
나가는 것만으로는 '나들이'가 되지 않는다. 반드시 다시 돌아와 '들어야' 비로소 나들이가 완성된다. 이것은 삶과 죽음의 관계와도 같다. 이승으로 '나오고' 저승으로 '드는' 것, 그 거대한 우주적 순환을 우리 한국인은 일상의 산책과 같은 '나들이'라는 단어 속에 갈무리해 둔 것이다. 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서구의 문명과는 달리, 한국의 언어는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오는 원형의 지혜를 가르치고 있다."
- 이어령 『신한국인 리포트』 (1989), 『생명이 자본이다』 (2013)
집대성 시기: 2020년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ㅁ'은 물(水)이요, 'ㅂ'은 불(火)이다
"우리말의 **'ㅁ'**은 입술을 굳게 닫아 안으로 가두는 소리다. 그것은 만물의 근원인 **'물'**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모든 것을 적시며 안으로 스며든다. **'몸', '맘', '무덤'**처럼 생명과 죽음이 안으로 수렴되는 세계다.
반면 **'ㅂ'**은 그 닫힌 입술을 깨뜨리고 터져 나오는 소리다. 그것은 위로 솟구치는 **'불'**이다. **'빛', '살별(혜성)', '벌판'**처럼 밖으로 뻗어 나가고 타오르는 생명력의 폭발이다. 한국인은 이 'ㅁ'의 정적인 수용과 'ㅂ'의 동적인 발산 사이에서 우주의 리듬을 읽었다."
- 이어령, 『한국인 이야기: 꼬마 신랑과 각시 (2020)』 및 초기 에세이 재구성
"진달래는 '지는 달래'다. 꽃이 피는 것은 지기 위해서이고, 지는 것은 우리를 달래기 위해서다."
- 다석 류영모
출처: 『다석어록』 (제자들이 받아 적은 그의 강의록 및 일기인 '다석일지'를 바탕으로 함)
연도: 1950년대 ~ 1960년대 (다석이 서울 종로구 연경당 등에서 강의하며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던 시기)
관련 저서: 박영호 편저, 『다석 류영모의 명상록』 등
(*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는 한국어의 음성학적 상징성을 통해 우주의 섭리와 영적인 진리를 풀어낸 독창적인 사상가였다. 특히 **'진달래'**라는 꽃의 이름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의 소멸을 통찰한 대목은 한국어 신비주의의 정수로 꼽힌다. 류영모는 우리말의 소리가 가진 영적인 힘에 집중했습니다. 그에게 '진달래'는 단순히 봄에 피는 꽃이 아니라, '지고 또 달래는' 우주의 리듬이었다.
신비주의적 해석: 류영모는 '진달래'라는 소리 안에 **"삶은 곧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며, 그 소멸의 미학이 인간의 영혼을 달래고 정화한다"**는 고도의 형이상학을 담았다.)
"먹는다"는 것은 배고픔이 아닌 '합일(合一)'의 갈망
"한국인이 '마음을 먹고', '나이를 먹고', '겁을 먹는' 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서구인에게 세계는 'I have(나는 가진다)'라는 소유의 대상이거나 'I look(나는 본다)'이라는 관조의 대상이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세계는 **'I eat(나는 먹는다)'**의 대상이다. '먹는다'는 것은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허물고, 대상을 내 몸속으로 받아들여 **완전한 하나(Assimilation)**가 되는 신비한 합일의 과정이다. 남남이었던 음식이 내 피가 되고 살이 되듯, 외부의 가치나 시간(나이)을 내 존재의 일부로 화하게 하려는 강렬한 존재론적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 이어령,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1963)』,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2020)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프랑스어 원문: Le désir de l'homme, c'est le désir de l'autre
- 자크 라캉(Jacques Lacan) 《세미나(Le Séminaire)》 제1권
시기: 이 개념이 본격적으로 정립되고 널리 알려진 시기는 1953년~1955년 사이의 강연들을 통해서다.
대중적인 미디어 인사였던 말콤 머거리지(Malcolm Muggeridge)는 빅터 로스차일드(Victor Rothschild)에 대해 언급하며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누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막상 정말 부유한 사람을 만나보면 그는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로스차일드 본인 또한 이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돈이 많다는 것이 반드시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 인디펜던트, 1986년 12월 5일)
로스차일드의 얼굴에서 평온함이 뿜어져 나오는가? 그렇지 않다. 그는 담배를 상당히 많이 피운다. 그는 내게 과거에 줄담배를 피우는 체인스모커였으나, 의사의 권고에 따라 끊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가진다는 것은 곧 종말일 것이다. 모든 긴장이 제거되고, 모든 욕망과 모든 열정이 다 소진된 상태 말이다.
모든 것을 갖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갖지 못한 것과 같다.
그리고 그 반대로, 신비주의자들이 흔히 주장하듯,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갖는 것일 수도 있다.
Malcolm Muggeridge, a popular media personality, talking about Victor Rothschild, said in an interview, "It is ironic. Everyone wants to be rich, but when you meet a very rich man he is never happy."
Rothschild, himself, confirms this: "Having a lot of money does not necessarily mean that one is happy..." (The Independent, 5 De., 1986)
Does Rothschild's face exude tranquility? It does not. He smokes rather a lot. He told me he used to be a chain smoker, and on the doctor's advice decided to give it up.
To have all would be the end. All tension removed. All desire, all passion spent.
To have all would be to have nothing.
And the other way around, as mystics often assert, to have nothing might very well be to have all.
- 필립 J. 데이비스 (Philip J. Davis) 《Mathematical Encounters of the Second Kind》 (1996년)
"돈으로 살 수 없는 건 없어.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전부 쓰레기야."
- 이와이 슌지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Swallowtail Butterfly, 1996)》
(* 맥락: 가짜 돈을 만들고 꿈을 쫓는 밑바닥 인생들의 냉소와 절망이 담겨 있다. 모든 것이 자본으로 치환되는 세상에서 '나비'처럼 날아오르고 싶었던 소망이 역설적으로 표현된 문장이다.)
"여기에는 에테르(Ether)가 가득해."
- 이와이 슌지 《릴리 슈슈의 모든 것 (All About Lily Chou-Chou, 2001)》
(* 맥락: 현실의 고통(이지메, 배신)에서 도망쳐 릴리 슈슈의 음악이라는 가상 세계에 접속한 소년들의 유일한 안식처를 뜻한다. 하지만 그 에테르조차 결국 현실의 칼날에 찢겨나가는 비극의 전초전이 된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원전: 《대학장구(大學章句)》 중 '격물치지보망장(格物致知補亡章)'
연도: 서기 1189년경 (주자가 평생에 걸쳐 다듬은 《사서집주》가 완성되어 간행된 시기)
즉물궁리(卽物窮理)와 활연관통(豁然貫通)
"일일이 격물하여 힘쓰기를 오래 하면, 어느 날 아침에 활연히 관통함에 이르게 된다." (至于用力之久, 而一旦豁然貫通焉.)
내용: 사물 하나하나의 이치(理)를 끝까지 파고들다 보면(궁리), 어느 순간 세상 모든 만물의 이치가 하나로 연결되어 환하게 밝아지는 경지에 이른다는 뜻.
원전: 《대학장구(大學章句)》 중 '격물치지보망장(格物致知補亡章)'
연도: 1189년경 (주자가 평생에 걸쳐 완성한 《사서집주》의 핵심 내용)
“타들어 간다. 타들어가.”
라고 걸으면서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이다바시로 가서 전차를 탔다. 전차는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다이스케는 전차 안에서,
“아, 움직이는구나. 온 세상이 움직인다.”
라고 옆 사람에게 들릴 만한 소리로 말했다.
나중에는 세상이 온통 새빨개졌다.
그리고 다이스케의 머릿속을 중심으로해서 뱅글뱅글 불길을 내뿜으며 회전했다.
다이스케는 머릿속이 다 타버릴 때까지 계속 전차를 타고 가겠노라고 결심했다.
- 나쓰메 소세키 『그 후(それから, 1909)』 마지막 장면
나는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든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야기할 게 너무 많다. 이야기해야만 할게 산처럼 쌓여있다. 온
세계에서 너말고 내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너와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 무엇이 됐건 모든 걸 너와 둘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도리는 한참동안 전화 저쪽에서 말이 없었다. 마치 온 세계의 가랑비가 온 세계의 잔디밭에 내리는 것
같은 침묵만이 이어졌다.
나는 그동안 줄 곧 유리창에 이마를 바짝 붙이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미도리가 입을 열었다.
“자기, 지금 어디 있는 거야?”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고개를 들고, 공중전화 부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그곳이 어딘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랄 것도 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아무데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은 대학을 봉쇄하고 혁명을 외쳤지만, 기동대가 투입되자마자 가장 먼저 이발소로 달려가 머리를 깎고 정장을 맞추러 갔다. 그리고는 미쓰비시나 미쓰이 같은 대기업에 들어가 누구보다 성실한 회사원이 되었다. 그들이 부수려 했던 시스템의 가장 견고한 부품이 된 것이다." (와타나베의 회상 및 나가사와와의 대화 중 재구성)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 1987』
고도를 기다리며 (Waiting for Godot)
(* 사무엘 베케트의 회곡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1948)의 결말에서 주인공들은 결국 고도를 만나지 못한다.
작품은 "오늘은 안 오지만 내일은 꼭 온다"는 전령(소년)의 말로 끝이 나고, 주인공들은 떠나기로 결말을 내리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는 기묘한 상태로 막이 내린다.
이 작품은 현대 연극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 **부조리극(Theatre of the Absurd)**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사람들이 베케트에게 "고도가 도대체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 그는 **"내가 알았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고도는 신(God), 죽음, 희망, 혹은 아무것도 아닌 것 등 독자가 해석하기 나름인 존재인 셈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의 소설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1985)를 보면 딜러와 손님이 등장하여 실랑이를 벌이는데, 파는 사람은 어떻게든 이윤을 붙여서 팔려고 하고, 사는 사람은 어떻게든 싸게 사려고 해서, 이 양자는 결코 양립하지 못한다. 이는 곧 '파는 자'와 '사는 자'의 관계가 인간관계의 본질이라는 메세지를 던져준다. 프란츠 카프카의 《성》(1926)과 츠게 요시하루의 《나사식》(1968)도 비슷한 주제.)
야수의 밤
1993년 개봉된 프랑스 영화 <야수의 밤(Les Nuits IFauves)>의 시나리오를 쓴 시릴 콜라르는, 이 영화는 한 소녀와 사랑에 빠진 동성애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온갖 모순을 깊이 파고들어간 조각 난 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으며, 대중은 그것을 이해했다. 감독과 주인공 역할까지 맡은시릴 콜라르는 이유 없이 방황하는 반항아나 신판 제임스 딘이 아니라,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자신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고 또 자신처럼 비극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와닿도록 자신의 문제를 말할 수 있는 주인공이자 영웅이 되었다. 콜라르는 목적 없음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나는 가능한 한 많은 도시를 '방문하며' 이 나라 저 나라를 급하게 여행하는 미국인 관광객처럼 인생을 살았다. 그리고 나는 절대적으로 고독했다." 그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성관계를 나누었다. 그러나 만남은 번번이 "끝없이 반복되는 비극"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욕망은 "결코 서로 연결되지 않는 섬이나 사건" 같았다. 비록 성적 흥분이 그에게 일시적으로 "전능하다"는 느낌을 주었지만 "지옥을 향한 나의 추락은 실체가 없는 그림자 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소설보다 끔찍하다. 소설은 끝이 있지만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1986년~1991년)
"세상은 원래부터 미쳐 있었다.'
"당신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은 미쳤고 당신 역시 미쳤다. 아닌 척 위선 떨지 말아라."
- 나카시마 테츠야, 영화 <갈증> (2014)을 만들며
"악은 아무것도 아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조차 악을 행하실 수 없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Nihil est igitur malum, cum id facere ille non possit, qui nihil non potest.)
"모든 존재는 선(Good)을 향해 나아갈 때만 진정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선에서 벗어난 악인은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잃어버린 것이며, 엄밀히 말해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들은 그저 존재의 결핍 상태일 뿐이다."
"악인이 번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악행이라는 감옥에 이미 갇혀 있으며, 선한 자는 고통 속에서도 영혼의 자유를 누린다."
"운명의 본질은 변화다. 운명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돌아가는 수레바퀴가 멈추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Si manere incipit, fortuna esse desistit.)
"네가 가진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은 네 자신 안에 있다. 외부의 행운은 결코 너를 행복하게 만들 수 없으며, 그것이 사라진다고 해서 네 본질이 훼손되는 것도 아니다."
- 보에티우스 (Anicius Manlius Severinus Boethius) 《철학의 위안(De Consolatione Philosophiae)》 (524년)
(* 보에티우스는 로마의 고위 관직에 있었으나, 반역죄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시기에 이 책을 썼다. (사마천의 <사기>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화려한 권력의 정점에서 죽음의 공포가 도사리는 지하 감옥으로 추락했을 때,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철학'이라는 여인과 대화하는 형식을 빌려 집필했다.
"선은 악의 결핍"이라는 철학적 맥락: 이는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보에티우스가 완성한 논리로, 악을 독립된 힘이 아니라 '빛이 없는 상태가 어둠인 것처럼, 선이 빠져나간 구멍'**으로 보는 시각.
참고로, 보에티우스는 서기 524년(또는 525년)에 매우 잔혹하게 처형되었다.
처형 방식: 당시 동고트 왕국의 왕 테오도리쿠스는 보에티우스가 동로마 제국과 내통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기록에 따르면 그를 곧바로 참수하지 않고, 머리에 밧줄을 감아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강하게 조이는 고문을 가한 뒤 몽둥이로 때려죽였다고 전해진다.
비극의 역설: 그는 이 끔찍한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감옥에서 평온하게 《철학의 위안》을 써 내려갔다. 육체는 파괴되었지만, 그의 정신은 '운명의 수레바퀴' 위로 올라타 죽음을 초월한 셈이다.)
석달개 vs 홍천귀복: 능지처참 앞 극명한 대조
석달개의 의연함 (1863년)
석달개는 능지처참(凌遲處斬)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형벌을 당하면서도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상황: 같이 형을 집행받던 부하 장수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해 비명을 지르거나 공포에 떨자, 석달개는 눈을 부릅뜨고 **"죽는 것이 무엇이 두려우냐!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당당하게 죽어라!"**라고 호통을 쳤다.
결과: 그를 처형하던 청나라 관리들과 구경하던 군중들조차 그의 강철 같은 의지에 압도되어 경외심을 느꼈을 정도였다.
홍천귀복의 비굴함 (1864년)
태평천국의 마지막 천왕(天王)이었던 **홍천귀복(洪天貴福)**은 석달개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상황: 홍수전의 아들인 그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붙잡혔다. 처형 전날까지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청나라 관리들에게 아부하는 글을 썼고,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내내 통곡과 비명을 그치지 않았다.
기록: "그의 울음소리가 성안에 가득 찼고, 죽기 직전까지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장소: 중국 사천성 성도(成都)
주요 문헌 출처:
《촉구기략(蜀龜紀略)》: 사천성에서 일어난 태평천국군과의 전쟁을 기록한 사료다.
사천 총독 낙병장(駱秉章)의 승전 보고서: 석달개를 생포하여 처형한 후 조정에 올린 공식 문서다.
《태평천국야사(太平天國)》: 정사 외에 당시 민간에 퍼진 이야기와 목격담을 정리한 기록이다.
2시간 전만 해도 고결하거나, 비열하거나, 가지가지의 꿈과 욕망에 차 있던 사람들이, 몇 백의 사람들이, 이제는 피범벅이 된 굳은 손발을 팽개친 시체가 되어, 능보에, 참호에, 이슬이 촉촉이 내린 꽃이 만발한 골짜기에, 세바스토폴의 장례 교회의 마룻바닥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어제와 그대로였다. 샛별은 사푼 산의 산마루 위에서 반짝이기 시작했다. 깜박이던 별들은 서서히 하얘져 갔다. 불타오르는 듯한 진홍빛 아침 노을이 동쪽 하늘 한쪽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자줏빛의 긴 구름이 엷은 야청빛 지평선을 따라 흩어져 달려갔다. 모든 것은 어제와 그대로였다. 장대하고 아름다운 태양이, 생기에 찬 온누리에 사랑과 행복을 약속하며, 또다시 둥실 떠올랐다.
- 레프 톨스토이, 《세바스토폴 이야기》 (1855년 ~ 1856년)
(* 크림전쟁에 대한 묘사)
“주변 분들이 잘해주셨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어려운 점도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북한군에 끌려간 뒤 피란을 다니느라 고생이 심했습니다. 항상 주변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어린이 3명이 수류탄을 갖고 놀다가 터지면서 온몸이 파편으로 터져나갔습니다. 그들을 보면서도 무서워하거나 동요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죽고 살아가는 것이 당시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허리춤에 돈을 가득 숨긴 채 피란생활을 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허리춤의 돈이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돈이 전부 사라지면 가족 모두 한강에 가서 자살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때 어머니의 말씀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돈이 떨어지면, 그냥 그렇게 자살하는가 보다’ 하고 운명처럼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그때 모든 한국 사람들이 저 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 춘원 이광수 막내딸 이정화의 중앙일보 인터뷰 (2014년)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없는 것과 같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être) (1984)
(* 언어적 배경: 본래 독일어 속담인 "Einmal ist keinmal(한 번 일어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을 소설의 도입부에서 인용하며 작품 전체의 철학적 토대로 삼았다.
의미: 인생이 영원히 반복되지 않고 단 한 번으로 끝난다면, 그 삶은 무게를 갖지 못하고 깃털처럼 가볍다는 뜻. 계획도, 연습도 할 수 없는 '단 한 번의 삶'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Zero)과 다름없다는 허무주의적 통찰.
니체의 영겁회귀와 대척점에 서 있는 작품.
핵심 주제: **'가벼움(Lightness) vs 무거움(Heaviness)'**의 대립.
인생이 영원히 반복된다면(영겁회귀) 그 삶은 무겁지만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인생은 단 한 번뿐(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없는 것과 같다)이기에, 모든 행위는 깃털처럼 가볍고 허무하다. 쿤데라는 이 참을 수 없는 허무(가벼움)를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를 묻는다.)
"수년이 지난 후, 총살형 집행 소대 앞에 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아버지를 따라 얼음을 찾아 나섰던 그 먼 옛날의 오후를 기억해 냈다."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Cien años de soledad)』 (1967년)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나는 당신네 인간들이 믿지 못할 것들을 보았어... 그 모든 순간들은 시간 속에서 사라지겠지, 마치 빗속의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 리들리 스콧 감독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년) 인조인간(복제인간) 로이 배티가 죽음 직전에 남긴 이 대사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 있다면, 기한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내 사랑의 유효기간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
- 왕가위 『중경삼림 (Chungking Express)』 (1994년) 명대사
"Here lies one whose name was writ in water."
(여기, 그 이름을 물 위에 쓴 자 잠들다.)
- 존 키츠(John Keats) 묘비 문구 (1821년)
(* 키츠는 1821년 2월 23일, 결핵으로 인해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문구는 그가 죽기 직전 친구들에게 자신의 묘비에 이름이나 날짜 대신 써달라고 유언한 내용이다.)
"나의 영화는 사실 모두 비극이다. 다만 나는 그것을 희극으로 찍었을 뿐이다."
- 주성치
(* 주성치의 이 유명한 통찰은 특정 영화의 대사가 아니라, 그의 연기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자 인터뷰를 통해 굳어진 명언이다.
1. 출처와 시기
주요 출처: 2000년대 초반, 특히 **《소림축구》(2001)**와 **《쿵푸허슬》(2004)**이 세계적으로 성공하며 그의 예술적 깊이가 재조명될 무렵 행해진 각종 인터뷰(CCTV와의 인터뷰 등)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었다.
시기: 이 생각의 원형은 그의 자전적 영화인 **《희극지왕》(1999)**의 제작 시기부터 구체화된 것으로 보인다.
핵심 발언: > "나는 내 영화가 희극(Comedy)이라고 생각하며 찍은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비극(Tragedy)을 찍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웃는 것을 보고 내가 희극 배우라는 것을 알았다."
2. 철학적 배경: 무뢰한의 페이소스
이 말은 찰리 채플린의 명언인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와 맥을 같이 한다.
뒤집힌 세상의 생존법: 주성치 영화의 주인공들은 늘 사회의 최하층민(찌질이, 쓰레기 줍는 이, 사기꾼)이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객관적으로 비극이지만, 주성치는 이를 과장된 몸짓(무뢰두, 無厘頭)으로 표현하여 희극으로 승화시킨다.
마이클 일너와의 연결: 의사가 건강을 해치고 정부가 자유를 파괴하는 '뒤집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를 가장 웃기게 표현하는 주성치의 방식은 그 자체로 세상에 대한 저항이다.
3. 《희극지왕》(1999)과 이 명언의 관계
이 명언을 가장 잘 시각화한 작품이 바로 **《희극지왕》**이다.
장면: 주인공 사우(주성치)가 도시락 하나를 얻기 위해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나는 배우다"라고 주장하는 모습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비극이지만, 관객은 그의 엉뚱한 진지함에 웃음을 터뜨린다.
본질: 이 영화의 프롤로그에서 바다를 향해 외치는 **"노력! 분투!"**는 비극적 운명을 희극적 에너지로 돌파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를 만든 목적은 아니다."
"A ship in harbor is safe, but that is not what ships are built for"
- 존 A. 셰드 (1928년)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 찰리 채플린
출처: 가장 유력한 출처는 1952년경 채플린이 자신의 영화 **《라임라이트(Limelight)》**를 홍보하며 진행한 인터뷰와, 이후 발간된 그의 자서전(My Autobiography, 1964년) 및 관련 전기들.
"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唯一の復讐の方法は、彼らより楽しく生きることだ。)
- 무라카미 류 『69 (식스티 나인)』 (1987년) & 에세이집 『모든 남자는 소모품이다』 (1987년)
"우리가 바리케이드를 치고 학교를 점거했던 것은 체제를 뒤엎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즐거웠기 때문이고, 여자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축제가 끝나자 우리는 미련 없이 취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이 가장 '즐거운' 다음 놀이였으니까."
- 무라카미 류 『69』 (1987년) 후기 및 관련 에세이 요약
"나는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것을 방해하는 시스템이나 관습은 가차 없이 버려야 한다."
- 무라카미 류 『모든 남자는 소모품이다』 (1987년)와 『무라카미 류의 요리소설집』 (1988년)
Q. 어렸을 때 히피문화와 록음악을 들으며 프리(free)한 정신세계를 탐독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렇게 버라이어티 한 삶을 살게 될 거란 생각을 하셨는지? 왠지 일본 학생들은 학원입시와 명문 학교에 대한 열망이 남달라(한국도 마찬가지 지만) 어렸을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는 느낌이 강한데 무라카미 류씨는 엄격한 교사를 부모로 두셨지만 자유로운 학교생활을 하신 것 같다. 학창시절을 얘기해주신다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셨나요?
A. 그것은 길고 긴 이야기입니다. 즐겁고 원했던 인생을 보냈다기 보다는, 싫어하는 것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는 자세로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Q. 무라카미 씨는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다 하고야 마는 인생을 사시는 것 같습니다.바로 그 점이 한국 관객과 독자들이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마지막으로 인생선배로 한국 팬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A. 50이 넘은 작가의 조언같은 건 필요없다, 라는 느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의 인생을 선택하여 취하기를 바랍니다.
- 무라카미 류 Movist 인터뷰 (2005년 12월 1일 목요일)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마치 놀이를 하듯 하라.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했을 뿐이다. 인생의 의미란 무엇이든 갖다 붙이면 그만이다. 진정한 의미란 살아 있음 바로 그것이다.
전사의 방식이란 삶에 대해 '예'라고 하는 것. 그 모든 것에 "예"라고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라. 우리는 이 세상의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지만, 기쁨 안에서 사는 삶은 선택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면 우리는 단단히 잘못 짚은 셈이다. 이 세계는 완벽하다. 그것은 혼란의 도가니이다. 이 세계는 항상 그렇게 혼란의 도가니였다.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키려 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임무는 자신의 삶을 바로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계획에 두었던 삶을 기꺼이 내팽개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를 기다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니까.
낡은 허물을 벗어던져야만 새로운 껍질이 나오기 때문이다.
예전 것에 집착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어떤 형상에 매달리게 되면 우리는 썩을 위험에 직면한 것이다.
지옥이란 말라붙은 삶이다.
욕심꾸러기. 뭔가를 고수하려 하고 붙들어 놓으려고만 하는 우리 안의 그 욕심꾸러기를 반드시 없애 버려야만 한다.
현재의 형상에만 매달리면, 우리는 다음의 형상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계란을 깨뜨리지 않고서 오믈렛을 만들 수 있겠는가.
파괴가 있은 다음에 창조가 있다. 완벽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모든 과정은 우선 뭔가를 깨뜨리는 것과 연관된다. 생명이 움트기 위해서는 반드시 흙이 부서져야만 한다. 씨앗이 죽지 않는다면 식물이 생길 수 없다. 빵이란 결국 밀의 죽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생명이란 다른 생명들을 희생시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생명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의 삶에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삶을 경험하는 것, 고통과 기쁨 모두를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 안의 더 깊은 힘을 찾아내는 기회는 삶이 가장 힘겹게 느껴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
삶의 고통과 잔인함에 대한 부정은 결국 삶에 대한 부정이다.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예"라고 말할 수 있게 된 후에 우리는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어떤 것에 대해 의례적으로 공정한 태도를 지니는 것은 곧 그것을 모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길을 따라 삶을 계속해 나아가는 동안에는 혹시 새똥이 떨어진다 해도 그걸 닦느라 신경 쓰진 마라.
현재 처한 상황을 희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영적인 거리를 얻게 된다. 결국 유머 감각이 여러분을 구원하리라.
영원은 여기와 지금으로 이루어진 차원이다. 신은 여러분 안에 살고 있다. 자신의 중심에서 살아가라.
당신의 진정한 의무는 공동체로부터 멀리 떠나 당신만의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너는 할지니"라고 하는 용을 죽여라. 그 용을 죽인 사자는 비로소 아이가 된다.
깨뜨리고 나옴은 희열의 모범을 따르고 옛 장소에서 떠나고 당신의 영웅 여정을 시작하여 당신만의 희열을 따르는 것이다.
뱀이 그 허물을 벗어 버리듯 지난 날을 내팽겨쳐라. 당신만의 희열을 따르라. 영웅적인 삶은 각자만의 모험을 실행하는 것이다.
모험으로의 부름을 따르는 것에는 아무런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미리 안다면 그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당신이 긍정적으로 경험하지 않는 것은 결국 부정적으로 경험될 것이다.
당신은 숲으로 들어간다. 그것도 가장 어두운 곳을 골라서, 그곳에는 아무런 길도 없다. 만약 그곳에 어떤 길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길이다. 그것은 당신 자신의 길이 아니다. 만약 다른 누군가의 길을 따라간다면 당신은 자신의 잠재력을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심연 속으로 내려감으로써 우리는 삶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이 비틀거리며 넘어지려는 곳, 거기에 당신의 보물이 묻혀 있다. 당신이 차마 들어가기 겁내던 바로 그 동굴이, 당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의 원천임이 밝혀진다. 동굴 속에 숨어 있던 그 무시무시하던 저주받은 것이 바로 그 중심이 된다.
영적인 것을 사랑하게 되면 세속적인 것도 얕보지 않을 것이다.
인생여정의 목적은 공감이다. 당신이 여러 대립자들을 지나쳐 왔을 때, 이미 공감에 도달했던 것이다.
겉으로는 따로따로인 듯 보이는 사물들도 근본적으로는 하나에 불과하다. 대립자의 세계 너머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경험되는 통일성과 동질성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스미 라마크리슈나는 말했다. "깨달음을 찾으려는 자라면 마치 머리에 불붙은 사람이 연못을 찾는 것과 같은 간절함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당신이 모든 것을 원한다면 신들은 그것을 주리라. 하지만 당신은 반드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거대한 풍파 속에서도 신과 같은 침착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마치 디오니소스가 표범에 올라타고도 갈가리 찢기지 않은 것처럼.
"삶의 길을 가다 보면 커다란 구멍을 보게 될 것이다. 뛰어 넘으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넓진 않으리라." - 아메리카 인디언.
- 조셉 캠벨 《신화와 인생(Thou Art That / Pathways to Bliss), 2004》 - 사후출간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고 집중력도 발휘되며 지속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것을 필사적으로 찾고 발견해내어 그 분야에서 기성세력에 도전하여 사회에서 인정받고 지위를 단단히 한다는 것이 전 세계의 상식이다. 그러나 이 나라 일본에서만은 그렇지 못하다.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어떤 직종이라야 주위에 어울릴 수 있고, 세상에 대한 체면도 서는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노력한다.
그러고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기란 아주 쉬운 일이며, 그런 짓을 필사적으로 하고 있으면 제대로 된 인간이 되기 어렵다, 좀 더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말을 어렸을 적부터 줄곧 듣게 된다. 그 경우의 노고란 코나즈가 해온 강도 높은 연습과 같은 것이 아니라, 한 직장에 오래 머물기 위해 인내의 방법을 배우는 그런 시시한 것이다.
그래서 무의미하게 고생한 사람이 인기가 있다. 인기인도 고생담을 즐겨 말한다.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 사회인가.
- 무라카미 류 에세이집 『자살보다 SEX』 (2003년)
(* 무라카미 류는 이 책에서 **"희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국가나 공동체가 주는 '가짜 희망(망상)'에 속지 말라고 경고한다.
- 자살의 상징성 (망상): 여기서 '자살'은 물리적인 죽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정해준 틀(공장식 교육, 사회 시스템)에 순응하며 자신의 생명력을 포기하는 **'정신적 자살'**을 의미한다.
- SEX의 상징성 (실상): 'SEX'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가장 근원적이고 개별적인 **'생명 에너지(엘랑 비탈)'**를 상징한다.
무라카미 류의 일침: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상태로 시스템의 부품이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도박이다.")
"애당초 일이냐 취미냐 하는 양자택일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생활의 기반인 일 자체가 재미있고 거기에서 사는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지, 안 그러면 살고 있으면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고 만다. 타인이 주는 월급을 대신해 하는 일로는 절대 만족할 수 없다. 거기에는 자신의 의지라는 것이 전혀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용주의 목적은 고용인을 만족시키는 것에 있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충족에 있다. 공무원의 세계에서도 그 점은 다르지 않다. 상사는 부하를 출세의 도구로밖에 생각지 않는다. 직장은 '사육장'이다. 아무튼 직장이란 인간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노동자라는 호칭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 실질적인 처지는 바로 노예이다.
폭력으로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자진해서 노예의 처지를 선택하다니, 생각이 있기는 한 것인가.
인사이동, 전근, 배속, 출세 등 모든 것이 상부의, 거의 말조차 나눠 본 적이 없는 타자의 의견에 따라 결정되는 굴욕적인 신분인데, 어디에 자유가 있다는 말인가.
직장인을 선택한 그 순간에 유일하고도 최고의 보물인 자유를 직장에 고스란히 헌납한 셈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자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바판을 푼돈에 팔아넘겼다는 것을 왜 자각하지 못하는가.
수입이야 많든 적든, 소박하나마 성취감을 얻을 수 있고 평생을 매진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면 자영업밖에 없다. 요컨대 이 세상에 직장인이라는 직업은 없다 치고 일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
"생애를 다 바쳐도 좋을 만큼의 궁극적인 목표와 목적은 환영 따위가 절대 아니다. 차분히 기다리고 말없이 시시각각 관찰하는 끈질김만 잃지 않는다면, 반드시 찾을 수 있고 언젠가 만날 수 있는 현실 자체이다. "
...
"진정한 목적을 지닌 자는 타인과 교류하는 것을 성가셔 한다.
투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가 생긴 순간 시간이 귀중해져 인간관계를 꼭 필요한 범위로 좁힌다.
고독하고 암담한 쪽은 이들이 아니라, 타인과 맺은 끈끈한 관계를 끊지 못하는 목적 없는 인간들이다. 타인과 불필요하게 교류하면서 유난히 밝은 척하거나 오기를 부리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인간들이다.
나는 칠십 가까이 살면서 절체절명, 고립무원, 사면초가 등의 궁지에야말로 명실상부한 삶의 핵심이 숨겨져 있음을 느꼈다. 그 안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과정에야말로 진정한 삶의 감동이 있다고 확신했다."
- 마루야마 겐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원제: 『人生なんてくそくらえ』, 2013)
"나는 학교라는 곳을 좋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선생들은 대부분 편협하고 사이코패스 같은 면이 있었으며, 학생들을 때리는 것을 정당화했다. 내 기억 속의 학교는 그저 규격화된 인간을 찍어내는 공장이었고, 나는 거기서 맞았던 기억과 불쾌함밖에 없다."
- 무라카미 하루키 『해뜨는 나라의 공장』 (1987년)
(* 하루키는 여러 에세이에서 학교 교육과 교사에 대한 강한 혐오를 드러낸 바 있다. 와세다 대학에 대해서도 꽤 부정적인 시각을 많이 드러냈는데, 오늘날 와세다 대학에 그의 아카이브를 모아둔 건물이 있다는 것이 우스운 부분.)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 『공교육에 관한 5차 보고서』 (1791년)
"나는 생각하는 사람들의 나라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노동자들의 나라를 원한다."
- 존 D. 록펠러, 일반 교육 위원회(General Education Board) 제1차 보고서 (The Objective of the Board)
연도: 1903년 (위원회 설립) / 1906년 (보고서 공식 발행)
비고: 록펠러 재단의 초기 교육 방향성을 설정하며 발표된 문건
“공교육의 목적은 젊은이들에게 지식을 제공하고 지적 잠재력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가급적 많은 학생들을 안전한 수준으로 획일화시키고, 모범 시민이 될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불만의 요소들을 제거하고, 개성을 없애는 것이다. 이게 바로 미국 공교육의 목적이다.”
- H.L. 멘켄 잡지 <The American Mercury> 에세이 (1924년 4월)
"Our education system is modeled on the interests of industrialism and in the image of it. Schools are still organized on factory lines — ringing bells, separate facilities, specialized separate subjects. We still educate children by batches; we put them through the system by age group. Why do we do that?"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산업주의의 이해관계에 맞춰졌고, 그 모습을 본떠 설계되었습니다. 학교는 여전히 공장 생산 라인처럼 조직되어 있습니다. 종소리가 울리고, 시설은 분리되어 있으며, 과목별로 나뉘어 있죠. 우리는 여전히 아이들을 **'배치(batch, 일괄 처리 단위)'**로 교육합니다. 연령대별로 묶어 시스템에 집어넣는 것이죠. 도대체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 켄 로빈슨(Ken Robinson)
가장 유명한 강연: TED 강연 "학교가 창의성을 죽이는가? (Do schools kill creativity?)"
관련 저서: 《최고의 나를 찾는 법 (The Element)》 또는 《학교 혁명 (Creative Schools)》
연도: 2006년 (TED 강연), 2009년/2015년 (저서)
* 원래 학습장애로 고생했으나 결국 하버드대 교수가 된 토드 로즈도 비슷한 주제를 심도깊게 탐구한 바 있다.
"한국의 공교육을 보면 공장과도 같다. 반복을 하고 암기를 하고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등교를 하고 하교를 하는 것이다. 마치 공장근로자들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과 같은 기능을 학교가 하고 있는 셈이다."
- 2005년 앨빈 토플러 미래한국 인터뷰 (미래한국, 2005.9)
"한국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하루에 15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 2008년 엘빈 토플러 인터뷰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교육 시스템의 요구에 순응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는 후배들도 절망하지 마세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고, 자신의 관점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세요. 자신의 지적 능력이 학교에서 요구하는 방향으로 쓰이기보다는, 지적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을 요구하세요.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이걸 공부해야 해”라는 변명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얘기하세요. 교육이라는 것은 잘 활용하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적을 올리기 보다는 배움을 위한 목적으로 공부를 하세요.
시스템은 우리 학생들이 모두 똑같아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표준화된 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고 있으며, 학교가 정한 룰에서 벗어나 색다른 시각을 가지는 학생들은 실패한 자들로 평가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 Erica Goldson, 미국 Coxsackie-Athens 고등학교 졸업식 연설 (2010년)
"학교는 '유능한 노동자'를 만드는 세뇌 장치에 불과하다."
"지금 당장 세뇌에서 풀려나, '자신의 시간'을 살아야 한다."
"지식은 인터넷에 널려 있다. 중요한 것은 지식을 외우는 게 아니라 '최적화'하는 능력이다."
- 호리에 다카후미 《모든 교육은 '세뇌'다》 (2017년)
(1)
"어떠한 내용이든 상관없으니까 내가 강의한 내용과는 관계없는 내용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논술을 작성해볼 것."
그러자 대부분의 학생이 자유로운 논술을 하지 못하고 내가 강의한 내용을 그대로 기술했는데, 바로 그런식인 것이다. 특히 도쿄대학 법학부는 전통적으로 그런 주입식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지금은 더욱 심해졌다. 예를 들면, 1909년부터 1913년까지 법학부의 외국인 교사를 맡았던 하인리히 벤티히는 이렇게 말했다. "첫째로 지적해야 할 점은 시험 방식이 단순히 교재를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것을 장려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학생들은 독일 학생들과 달리 처음 학교에 발을 들여놓는 날부터 늘 시험에 대한 공포에 시달린다. 그들은 학년 말에 실시하게 되는, 그떄까지 들은 강의에대한 시험에 합격하는 일에만 매달려 먼 장래를 걱정하고 전문적인 수양을 쌓느 것보다는 학년시험을 위해 충분한 준비를 하는 것을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는다. 그리고 교사의 말이나 그들이 추천하는 교과서본문에 의지하는 것을 시험에 합격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시험을 치렀을 때는 다음과 같은 상태였다고 한다.
"매우 드문 예를 제외하면, 검열을 받는 모든 시험 답안에서 공통적인 특징은 가능하면 자신의 독립적 판단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답안들은 실제로 한 두 강의의 내용을 그대로 제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자신의 독자적인 생각을 논하라'라는 주의를 주어도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80년 후에 경험한 것과 똑같은 현상이 이미 오래전에 발생했던 것이다.
메이지 시대의 학생 한명은 당시의 강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질서정연한 낭독 강의, 학생들은 속기 기계처럼 한 순간의 쉴 틈도 없이 교수의 강의 내용을 필기한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필기제도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대학 입학생 대부분이 과학을 총체적으로 공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일본인의 과학 지식 수준이 놀라울 정도로 저하되어 이제는 일본의 자애가 지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 교육 과정을 개정할 때마다 과학 네 과목의 이수율이 현저히 줄어들여, 지금은 물리 이수율이 10%에 가까워졌고 지구과학 이수율은 10%에 훨씬 못 친다. 이것은 고등학교의 교육 과정이 바뀜과 동시에 대학입시제도가바뀌면서 고등학생, 특히 문과 학생은 과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20세기가 이미 끝났는데도 20세기에 발견된 과학적 사실이 나름대로 확실하게 실려 있는 것은 생물학 뿐이고, 화학은 19세기의 발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리학인 경우에는 훨씬 더 오래전에 발견된 과학적 사실들만이 실려있다.
(2)
에세이에서 자유로운 주제를 선택한 학생 한 명은 (해외에서 귀국한 자녀인 듯하다) 일본의 교육을 논하며,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조사하여 그 내용을 발표하고 서로 토론하는 훈련을 받고 있다고 기술했다. 이에 반하여 일본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은 지식을 주입시키고 학생들은 그대로 외우기만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사회에 나갔을 때 일본인은 외국인에 대해 자기 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도쿄 대학 학생들은 일본형 주입식 교육의 세계 속에서만 슈퍼 엘리트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운 것을 그대로 머리 속에 입력했다가 시험을 볼 때 출력하는 것은 잘 하지만, 자신의 머리로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슨 주제를 선택하고 무슨 내용을 논하든 자유라고 말했는데도, 배운 내용만을 그대로 옮겨 적는 길을 선택한 학생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인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불문과에 다녔던 내 동기들 중에도그런 학생들이 있기는 했다. 동기생 중에서 졸업 성적이 가장 뛰어난 S라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가지고있지 않은 전형적인 학생이었다. 졸업 논문을 쓰게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머리로는 논할 주제를 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임 교수를 찾아가 주제를 정해달라고 했다. 이 소문이 나자 그녀는 불문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지고 이씨 않은 수재'는 우리 시대에는 극히 적은 숫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이들이 다수를 이루게 되어버렸단 말인가?
(3)
3학년 D군은 '현재의 지구는 이제 구할 수 없는 말기 암 환자 같은 존재'라는 인식에서 논술을 시작하여 이런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지금의 과학과 기술을 결집시켜 지금의 환경 상태의 현상 유지를 도모하고, 이 말기 암 환자인 '지구'의 목숨을 연명하여 멸망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인류 전체가 그 사태에 연착륙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주간 다이아몬드>지가 "인사부장이 솔직하게 선택한 대학랭킹'이라는 기사를 발표했다. 이것은 상장기업이나 그에 버금가는 600개 기업의 인사부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여 대학들을 평가한 것인데, 도쿄대학은 어느 항목에서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종합 득점으로는 7위에 그쳤다. 요컨대 지금의 입시제도는 '이해력이 빠르고 요령이 좋은' 학생을 선발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개성', '창조성', '정신적 자립'이라는 요소는 등한시 되고 있는 것이다. 교수들은 요즘 학생들에 대해 '주어진 과제는 확실하게 처리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규명하려는 의욕을 가진 자립적인 학생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자주하곤 한다.
- 다치바나 다카시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東大生は馬鹿になったか)』 (2001년)
현재의 중, 고등학교 교육 환경은 후자에 해당되는 '오랜 시간 숙고하는 사고 방식'을 충분히 훈련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입학 시험을 통해 문제를 어떻게 단시간 동안 풀 수 있는가 하는 전자의 사고 방식을 훈련시키는 것이 태반인 것 같다. 이것은 불행하고 불완전한 교육이다. 장시간 동안 생각하는 훈련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깊이 생각할 수가 없다. 따라서 앞에서 말한 지혜의 깊이도 키워지지 않는다.
- 히로나카 헤이스케 『학문의 즐거움』 (1982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의 90%가 실용적으로 쓸모없다는 것을 안다.
- 닐 포스트먼 『죽도록 즐기기』 (1985년) 혹은 『교육의 종말』 (1995년)
"인문학, 다시 말해 일반 교양 교육의 중요한 포인트는 그 일반성에 있다. 한국에서는 영어 general이 '일반'이라고 번역되는 순간, '일반 대중', '일반직' 등 수준이 낮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불행한 오해가 발생하지만, 제너럴은 '대장', '장군'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하급 지휘관은 자신이 지휘하는 부대만 바라보면 되지만, 장군이 되면 군 전체를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에 제너럴인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과학적 유토피아 소설인 <뉴 아틀란티스>는 과학자들을 여러 가지 서열에 따라 구분하는데, 그 방식이 사뭇 흥미롭다. 가장 낮은 계급은 실험을 하는 사람들이다. 두번째로 낮은 계급은 외국으로 건너가 실험 데이터를 가지고 오는 '광명의 상인'들이다. 그 다음은 실험을 어떤 식으로 해야할지, 그 결과로부터 무엇을 이끌어내야 할지 생각하는 '편집자'들이다. 그 위의 계급은 동료의 실험을 조사하여 거기에서 무엇을 이용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전문직인 '자원부여자'들이다. 가장 높은 계급은 다양한 현상에서 과학자들이 발견한 것을 토대로 고찰한 일반적 명제를 통합하여 좀 더 큰 통찰을 이끌어내는 '자연의 해석자'이다. 베이컨이 정의한 과학의 수준은 물질적 차원에서 정신적 차원으로 이행할수록, 또는 자연과학적 차원에서 철학적 차원으로 이행할수록 높아진다."
- 다치바나 다카시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2001년)
이대 국문과 교수 당시에 박사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박사를 안 딴 이유는 비범하게도 감히 누가 이 이어령이의 논문을 심사하겠는가였다.
- 이어령 일화
이어령: '에비'란 말은 유아 언어에 속한다. 애들이 울 때 어른들은 '에비가 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을 사용하는 어른도, 그 말을 듣고 울음을 멈추는 애들도 '에비'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른다. 67년도의 문화계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단어가 바로 '에비'다. 문화의 침묵은 문화인 자신들의 소심증에 더 많은 책임이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에비'를 멋대로 상상하고 스스로 창조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김수영: 우리나라 문화인이 허약하고 비겁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을 그렇게 만든 더 큰 원인은 정치권력의 탄압이다. 해방 직후와 4.19 이후를 회상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서랍 속 불온한 작품이 아무 거리낌 없이 발표될 수 있는 사회가 현대 사회이며, 그런 영광된 사회가 머지않아 올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이어령: 이승만 독재가 끝났을 때 참여 시인들의 저항은 시작되었다. 창조와 참여의 언어는 시체에 던지는 돌이 아니다. 문화를 정치 수단의 일부로 생각하는 오도된 사회참여론자들이 예술 본래의 창조적 생명에 조종을 울리고 있다.
불온한 작품이 서랍 속에 있는 한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을 밖에 내놓을 때 비로소 그 문학은 참여하는 것이다. 봄이 오듯 영광된 사회는 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참여의 본질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개혁하자는 것이다.
김수영: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문화의 본질은 꿈을 추구하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령이 말하는 오도된 참여론자들은 교정될 수 있는 일시적 현상이지만, 한번 상실한 정치적 자유는 쉽게 회복될 수 없다. 우리의 질서는 조종을 울리기 전에 벌써 죽어 있다.
이어령: 김수영의 추종자이기도 한 60년대의 젊은 비평가들은 "문학은 진보 편에 서야 한다"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만을 모든 문학 작품에 강요하고 있다. 자기 이데올로기에 맞으면 삐라 같은 글도 명작이라 치켜세우고,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어떤 작품이라도 반동의 낙인을 찍고 있다.
김수영: 나는 문화의 본질로서의 불온성을 말했다. 정치적 불온성으로 좁혀 구분하지 말라. 불온성은 예술과 문화의 원동력이며, 인류의 문화사와 예술사는 불온의 수난을 담은 역사이다.
이어령: 김수영의 불온성이 좁은 의미로 해석되는 까닭은 "서랍 속 불온은 작품"이라 했기 때문이다. 문학적 불온이라면 무엇 때문에 서랍 속에 있겠는가. 문학의 가치는 동시적 불온성의 유무로 제한될 수 없다.
- 1968년 김수영 대 이어령 불온 논쟁
백악관 선거 사무소: 여보세요? 노르마 (이탈리어에서 규범, 모범을 뜻한다) 부인과 통화할 수 있습니까
그녀: 접니다. 누구시죠?
사무소: 백악관입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후보가 당선될지 부인에게 물어보려고 전화했습니다.
그녀: (귀찮은 듯) 또요? 여론조사 회사에서도 벌써 전화가 왔고 하이퍼풀 닷컴(Hyperpool.com)에서도 물어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또 전화를 했지요? 전 더 이상 당신들 조사에 응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을 찾아보세요.
사무소: 부인, ‘이것은 여론조사가 아닙니다.’ 진짜 선거입니다. 우리가 선거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은 부인밖에 없습니다! 보십시오, 만약 부인에게 묻지 않으면.......
그녀: 만약 부인에 묻지 않으면, 만약 부인에게 묻지 않으면....... 다른 전화에서도 모두 똑같이 말했어요. 그런데 왜 바로 나죠?
사무소: 다른 사람들이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까? 부인이 최소완벽표본(CMP)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CMP이지요. 모든 여론조사 기관의 CMP이고 오늘부터는 백악관의 CMP도 되셨습니다. 노르마 부인 당신은 전미 통계학자들의 꿈이며 가능성의 이론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패러독스입니다.
그녀: 뭐라구요?
사무소: 부인의 우리의 CMP라구요! 모든 여론 기관들은 몇 년 전부터 표본 인터뷰 자들의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아시겠지만 이런 식으로 전화를 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드니까요. 우리는 점점 더 그 수가 줄어드는 표본들을 시험했습니다. 1,000명, 100명, 10명....... 중요한 것은 표본의 의견이 국민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점입니다. 여론조사의 기능이 그것 아닙니까? 다수의 의견을 알기 위해서는 소수에게 물으면 됩니다. 얼마 전부터 투표를 여론조사로 대체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엇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신뢰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을 찾아내기까지 말입니다. 우리는 노르마 부인 당신의 의견이 대다수 미국인의 의견과 꼭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에 등장하는 뮐러 씨처럼 말입니다. 부인에게 어떤 질문을 하든 부인은 늘 대다수 미국인들과 똑같은 대답을 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큰 걸음을 떼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부인은 우리에게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자, 준비되셨습니까? 부인 생각엔 어느 후보가 당선될 것 같습니까?
그녀: 잠깐만요, 지금 내가 어떤 대답을 하든 그것이 이 순간 대다수 미국인의 의견과 일치한다는 뜻인가요?
사무소: 바로 그겁니다. 공화당 후보가 당선될지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지 말씀해주시기면 하면 됩니다.
그녀: 내가 말하는게.......
사무소: …… 선거의 당선자를 결정하게 될 겁니다!
그녀: 하지만 투표는요?
사무소: 생략하도록 합시다! 선거권 행사만으로 충분해요. 투표는 돈 낭비, 시간 낭비입니다. 부인이 당선자를 말씀해주세요. 그러면 투표함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온 거나 마찬가지 일겁니다.
그녀: 내가 만일 아무나 말한다면요?
사무소: (화가 나서) 노르마 부인, 우리는 부인이 어떻게 결론에 도달하든 관심이 없습니다. 부인은 동전 던지기를 하실 수도 있어요. 그럴 경우 우리는 대다수의 유권자들도 동전 던지기로 투표할 사람을 결정했다고 가정하는 겁니다. 부인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결과만 말씀해주세요.
그녀: 내가 되는 대로 대답한다면 어떻게 그걸 신뢰할 수 있죠?
사무소: 걱정할 것 하나 없습니다. 되는 대로 대답했을 경우에도 부인에겐 전혀 잘못이 없으니까요!
그녀: 잘못이 없다구요?
사무소: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수백만 명 중에서 부인을 찾아냈습니다! 몇 년이 걸렸지만 지금 우린 부인이 실수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부인은 우리의 CMP이고 부인의 의견은 당연히 대다수 미국인의 의견이니까요. 예를 들어 작년에 부인은 플로리다로 휴가를 가고 싶어하지 않으셨나요, 맞습니까?
그녀: 맞아요.
사무소: 그것 보십시오. 대다수 미국인도 바로 그걸 원합니다.
그녀: 하지만 이건 쉬운 경우예요.
사무소: 부인은 브릴라스픽 식기세척기를 사고 싶어하시죠? 미국인의 75%가 바로 그 제품으로 설거지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녀: 물론이죠, 브릴라스픽을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사무소: 보셨지요? 당신은 놀랍게도 표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 이런,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실 수 있죠?
사무소: 물론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압니다. 우리는 백악관에서 과학적 여론조사를 수행하는 연구원들입니다.
그녀: (울먹이며) 난 내 의견이 다른 대다수 사람들의 것과 같다는 게 싫어요. 난 독창적이고 싶다구요!
사무소: 확인해 볼 테니 잠시 기다리십시오! 맞습니다! 대다수 시민들이 원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 로베르토 카사티, 아킬레 바르치 <논쟁의 대가들> (이탈리아어 원제: Prima lezione di filosofia, 2004년)
"요즘은 미국 잡화점 체인의 판매원들이 "오늘 제가 모실 가장 중요한 고객은 바로 '당신'입니다"고 적힌 배지를 옷깃에 달거나, 폭스 TV처럼 "보도는 우리가, 결정은 당신이"라는 문구를 보여주거나, 키프로스의 어떤 관광 포스터처럼 "당신만의 해변"이라고 홍보하는 것이 인기인 듯 싶다. 그러나 '당신'으로 지칭되는 자신들이 실제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이런 문구들이 오히려 더 짜증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지구화, 그 이후의 결과들』 (원제: Globalization: The Human Consequences) 혹은 그의 저서 『액체 현대(Liquid Modernity)』 계열의 강연문/에세이에서 인용
년도: 1998년 (원전 출간 기준)
"모조인간의 수는 착실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체도 없는 존재이므로 확인이 불가능하다. 혹시, 당신의 주위에 벌써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물론 모조인간은 미치광이는 아니다. 안드로이도 컴퓨터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인간이다. 그 때문에 음산하다."
- 시마다 마사히코 <나는 모조인간> (1986년)
Little Boxes - Malvina Reynolds
Little boxes on the hillside, Little boxes made of tickytacky
언덕배기 작은 상자집들, 싸구려 자재로 만들어진 작은 상자집들
Little boxes on the hillside, little boxes all the same
언덕배기 작은 상자집들, 작은 상자집들 모두 똑같네
There's a green one and a pink one and a blue one and a yellow one
그린도 있고 핑크도 있고 블루도 있고 옐로우도 있네
And they're all made out of ticky tacky and they all look just the same.
모두 싸구려 자재로 만들어졌고 모두 다 같아 보이네
And the people in the houses all went to the university
그 집에 사는 사람들 모두 대학에 갔다네
Where they were put in boxes and they came out all the same,
상자 안에 있던 사람들, 그들 모두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네
And there's doctors and there's lawyers, and business executives
의사도 있고 변호사도 있고 회사 사장들도 있네
And they're all made out of ticky tacky and they all look just the same.
모두 싸구려 자재로 만들어졌고 모두 다 같아 보이네
- 미국 드라마 <Weeds> 주제곡 (2005년)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뒤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네모난 오디오 네모난 컴퓨터 TV
네모난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한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걸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 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다 온통 네모난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네모난 아버지의 지갑엔 네모난 지폐
네모난 팜플렛에 그려진 네모난 학원
네모난 마루에 걸려 있는 네모난 액자와
네모난 명함의 이름들
네모난 SPEAKER 위에놓인 네모난 테잎
네모난 책장에 꽂혀있는 네모난 사전
네모난 서랍속에 쌓여있는 네모난 편지
이젠 네모같은 추억들
네모난 태극기 하늘높이 펄럭이고
네모난 잡지에 그려진 이달의 운수는
희망없는 나에게 그나마의 기쁨인가봐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 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 화이트 유영석 <네모의 꿈> (1996년)
"비슷한 사건 일어나도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다른 국가 사례랑 달리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통령 가서 소리 지르고 국무총리한테 물세례 한다. 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한데 대통령만 신적인 존재가 돼서 국민의 모든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게 말 안 되는 거 아니냐.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냐."
- 정예선 (정몽준 막내아들), 세월호 사건 즈음에 (2014년)
"한국인들은 레밍(들쥐) 떼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그 뒤를 따른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민주주의는 적합하지 않다."
- 존 위컴의 '레밍(들쥐)' 비유 (1980년)
출처: 1980년 8월 8일, AP 통신 및 LA 타임스 인터뷰.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 시절)
맥락: 12.12 사태와 5.18 민주화운동 이후 전두환 장군이 실권을 장악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한국인의 집단적 속성을 비하한 발언으로, 당시 큰 외교적 파장을 일으켰다.
"플라톤, 호메로스, 카프카와 같은 인문 고전이 애플을 만든 힘이다"
- 스티브 잡스 애플 제품 발표회 및 전기 등 (2010년 / 2011년)
(* 그러면 플라톤, 호메로스, 카프카는 애플의 어디에 들어있는가? 아이폰을 분해해보면 그것이 나오나? 애플의 제품에 플라톤이나 호메로스의 명언이 쓰여있는 걸 본적이 있는가? 인문학의 지식 그 자체는 애플의 제품에 찾을 수 없다. 그러면 애플의 제품 어디에 인문학이 들어있을까? 애플 제품의 사용자경험(UX), 높은 품격, 기술을 발굴하고 결합시키는 창의성(멀티터치기능, 앱스토어 등), 마케팅 능력 등에 인문학이 녹아있다. 정확히 말하면 인문학 지식이 아니라, 인문학 공부를 통해 얻은 '인문학적 소양'이 애플의 성공을 만든 것이다.)
부적응자, 반역자, 말썽꾸러기들. 그들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입니다.
The misfits. The rebels. The troublemakers.
The ones who see things differently.
그들은 규칙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존중심도 없습니다.
They are not fond of rules.
And they have no respect for the status quo.
여러분은 그들을 칭찬할 수 도 있고,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말을 인용할 수도 있고, 믿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들을 칭송하거나 아니면 비방할 수도 있습니다.
You can praise them, disagree with them, quote them, disbelieve them, glorify or vilify them.
다만 한 가지,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About the only thing you can’t do is ignore them.
Because they change things.
그들은 발명하고, 상상하고, 치유하고, 탐험하고 창조하고, 영감을 줍니다.
그들은 인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They invent. They imagine. They head.
They explore. They create. They inspire.
They push the human race forward.
혹자는 그들을 미친 사람이라고 볼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들에게서 천재성을 엿봅니다.
While some see them as the crazy ones, we see genius.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충분히 미쳤기에,
그들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Because the people who are crazy enough to think they can change the
world, are the ones who do.
다름에 대해 생각해보십시오.
Think different.
- 애플사 ‘미친자들에게 바치는 시(Here’s to the crazy ones)’ (1997년)
"젊은이를 타락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을 존경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The surest way to corrupt a youth is to instruct him to hold in higher esteem those who think alike than those who think differently.)
- 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 (1873년~1876년)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들은 이미 모두 차례가 끝났다."
(Be yourself; everyone else is already taken.)
(원전: "인생의 주된 목표는 자기표현이다. 자신의 본성을 완벽하게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여기 있다.")
- 오스카 와일드 『심연으로부터 (De Profundis)』 (1905년)
(* 와일드가 1897년 감옥에서 쓰고 사후인 1905년에 출간된 『심연으로부터』에서 와일드는 타인의 기준에 맞추는 삶을 '모방'이라 부르며 경멸했다.)
길의 감식자(Connoisseur of roads)
원문: "나는 길의 감식자야. 평생 길을 맛보며 살아왔지. 이 길은 끝이 없어.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지."
(I'm a connoisseur of roads. I've been tasting roads my whole life. This road will never end. It probably goes all around the world.)
- 구스 반 산트 감독 <마이 프라이빗 아이다호 (My Own Private Idaho, 1991)>에서 리버 피닉스의 대사
만인의 연인 (The Universal Lover / America's Sweetheart)
이 표현은 특정 문학 작품이 아니라, 1910~20년대 초기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에서 탄생한 마케팅 용어
천재 중의 천재 (The Genius of Geniuses)
인류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지적 능력을 보여준 인물들에게 헌사 된 표현. 존 폰 노이만이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을 묘사할 때 쓰였다.
"시간의 여행자(방랑자)에게"
-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열네살』 (1998년)에서 타임슬립을 한 친구가 주인공에게 보낸 편지
"그 녀석이 나보다 잘난 게 없고 나도 그 녀석보다 잘난 게 없다는 거지.
좋은 집에 살거나 좋은 차를 탄다고 잘난 건 아냐! 단지 그 녀석들은 그게 갖고 싶었던 거뿐이야
도쿄대 나왔다고 잘난 거 없어.
올림픽 나왔다고 잘난 거 없어.
정치가라고 별로 잘난 거 없어. 단지 그 녀석들은 그렇게 되고 싶었던 거 뿐이야.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란 게 있는 거야. 아무리 발버둥 쳐도 꼴찌밖에 될 수 없는 녀석도 있어.
인간은 제각각 세포란 녀석이 틀리니까 .
뭣보다 말야... 타인을 내차 떨어뜨리면서까지 사람 위에 서고 싶어 하는 노력 따위 말야.
뭐하나 잘난 거 없지 않으려나?
우리들은 자동차나 TV가 아냐. 다른 것과의 성능을 싫어도 비교당하지.
그런 시선... 그런 사회는... 이제 지긋지긋해.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가르쳐 주었지.
그저 저곳에 힘껏 피어 있던 그녀. 인간의 가치를 견주는 메이져(measure)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어떤 머리를 하고 있으며 어떤 몸을 하고 있는가로 간단히 판단하려 하는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를 거절해!
우리들을 견주는 모든 놈들의 입을 틀어막아!
너희들 자신은 무력하다며 쳐져 있을 생각인가?
모순을 느끼고, 분노를 느껴서, 소리를 내어「노」라고 말하고 싶을 때,
나는, 내 친구는... 모두 함께 할 거야."
- 노지마 신지 드라마 『미성년』 (1995년) 마지막회의 옥상씬
僕の耳をあげる。 君の声を聞かなくて住むのなら。
僕の口をあげる。 もう誰とも話したくないんだ。
나의 눈을 줄게. 더 이상 널 보지 않아도 된다면.
나의 눈을 줄게. 너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면.
나의 입을 줄게. 더 이상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昨日、とても明るかった空が、 たった一日でどんより曇ってしまう。
それが極単純に僕たちの世界なんだ。
어제 그토록 밝았던 하늘이 단 하루 만에 어둠침침하게 흐려졌다.
그것이 극히 단순한 우리들의 세계인 것이다.
僕はとても疲れて、このまま眠ってしまいたい。 このままだと、負なのだろうか。
悔しいけど僕はそれでもきっと眠ってしまうんだろう。
나는 너무 지쳐서, 이대로 잠들어 버리고 싶어. 이대로라면 져버리는 걸까.
분하지만 나는 그런대도 분명 잠들어 버리고 말겠지.
僕はきっと殺されるんだろう。
ある時は、猫の爪で持って遊ばれる小さな鳥のように、
ある時は、腹を空かした狼の群れの牙で、
僕は追い詰められ、いたぶられながら、そして確実に殺されるだろう。彼らによって。
나는 반드시 살해당할 거야.
어느 날은 고양이의 발톱에 걸려 농락당하는 작은 새처럼,
어느 날은 배가 고픈 늑대 무리의 송곳니에,
나는 쫓기며, 고통 받으면서, 결국 확실히 살해당할 거야, 그들에 의해서.
悲しみや怒りや、まして喜びの顔、 忘れよう。 僕は岩になるんだ。
もう何も感じない。 僕は顔のない岩になるんだ。
슬픔과 분노와 기쁨의 얼굴을 잊자. 나는 바위가 되는거야.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 나는 얼굴이 없는 바위가 되는거야.
集団で他人を傷つけるハイエナたちよ。鏡を見たことがあるのかい?
君も。君も。君も。 僕にはみんな同じ顔にしか見えはしない。姿無き悲しいものたちよ。
집단으로 타인에게 상처 주는 하이에나들이여. 거울을 본 적이 있는가?
너도. 너도. 너도. 나에게는 모두 같은 얼굴로 밖에 보이지 않아. 형체가 없어 슬픈 자들이여.
過ちを課したことのない者だけが、 石をとり彼に投げつけるといい。
気をつけろ!聖書の教えでなど、きっと彼らに通じないんだ。
小さな良心からの勇気など、簡単に踏み躙られるんだ。
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자만이, 그에게 돌을 던져라.
조심해! 성서의 가르침 같은 건, 분명 그들에게 통하지 않아.
작은 양심에서 나온 용기 같은 건, 간단히 짓밟아 버릴 수 있어.
もうすぐ、 きっともうすぐ、 この暗闇から解放されるんだ。
その時が来ること、ただひたすらに信じて、
僕は口をつぐむ、耳をふさぎ、そして目を閉じた。
조금만 있으면, 분명 조금만 있으면, 이 어둠으로부터 해방되는 거야.
그 날이 올 거라는 오직 그 하나만을 믿고서,
나는 입을 다물고, 귀를 막고, 그리고 눈을 감았다.
例えば、 僕が死んだら、 どうかこのことを忘れないで欲しい。
人を痛みづけ、傷つけても、 決して君自身は、 救われはしないんだと言うこと。
そこにはさらに無限の暗闇が広がり、差しの振り手も、ついには見えなくなってしまうんだ。
만약 내가 죽는다면, 부디 이것만은 잊지 말아 줘.
사람을 아프게 하고, 상처 입혀도, 결코 네 자신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거기에는 더욱더 무한의 어둠이 펼쳐져 누군가 내미는 손도 결국 보이지 않게 되어버릴 거야.
- 노지마 신지 드라마 『인간실격』 (1994년) 오프닝 나레이션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인간은 가면을 쓴다. 하지만 극한의 고통(Pain)이나 죽음 앞에 섰을 때, 비로소 그 가면이 벗겨지고 **인간의 진실(眞実)**이 드러난다. 나는 그 발가벗겨진 인간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을 뿐이다."
- 《노지마 신지 각본집 - 인간실격》 후기 (1994년 발행) 및 잡지 《다빈치》 인터뷰 (1990년대 중반)
"폭력을 아름답게 미화하거나 가볍게 다루는 것이 진짜 위험한 것이다. 나는 폭력이 초래하는 절망적인 고통과 파멸을 생생하게(Raw) 묘사한다. 시청자가 그 고통에 진심으로 눈물 흘리고 공포를 느낀다면, 그것은 도덕 교과서보다 훨씬 강력한 **'폭력에 대한 억제력(Deterrence)'**이 된다."
- 노지마 신지 TBS 《성자의 행진》 (1998년) 제작 발표회 및 일본 방송비평가협회(GALAXY AWARD) 수상 소감 중 일부.
"시대가 가벼운 작품을 원하는 부분도 없지 않겠지만, 오히려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접근할 수도 있다. 사회적 소재를 다룬 작품을 쓰는 것은 안티가 생겨날 것을 각오하고 '파이어니어(개척자)' 감각을 가지는 것이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작품을 역사에 남기려 할 때에는 팬만 있어서는 안 된다."
"다른 방송국들은 이러한 소재를 어려워했고, 다른 작가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터부시하는 소재들을 많이 썼다. 그전에 오락적인 작품으로 이미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작품을 방송할 때는 항의와 압력도 많았다. '집 없는 아이' 때는 방송국으로 폭탄이 배달됐는데, 한 배우의 매니저가 그걸 열어 보는 바람에 손가락을 모두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내가 영향을 받은 한 사람을 들라 하면 역시 셰익스피어다.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인기를 얻어 장사를 해야 하기도 하지만, 공감 받기보다는 존경받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시청자를 압도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일부러 문학적인 표현을 차용하기도 한다. 쉽게 읽히는 인기 작가는 되고 싶지 않다."
- 노지마 신지 인터뷰, "한국 드라마, 후반부 이야기 고갈 우려" (2013.05.03)
오나라 오나라 아주오나
(오시느냐 오시느냐 아주 오시느냐)
가나라 가나라 아주가나
(가시느냐 가시느냐 아주 가시느냐)
나나니 나려도 못 노나니
(만나려 해도 만나지 못하니)
아니리 아니리 아니노네
(아니리 아니리 아니 노네)
헤이야 디이야 헤이야다라니노
(후렴구 - 특별한 의미 없는 음률)
오지도 못하나 다려가마
(오지도 못한다면 나를 데려가주오)
- 이병훈 PD 연출 《대장금》(2003~2004) OST
"사랑? 웃기지 마. 이젠 돈으로 사겠어. 돈으로 사면 될 거 아냐!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다시 태어나면 나무가 될 거예요. 한번 뿌리 내리면 다시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될 거예요."
- 윤석호 PD 연출 《가을동화》 (2000년) 대사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한정서! 너 나 좋아해, 안 좋아해? 좋아한다고 말해! 말하란 말이야!"
- 《천국의 계단》 (2003년) 대사
모든 것이 무너져있고
발 디딜 곳 하나 보이질 않아
까맣게 드리운 공기가 널 덮어
눈을 뜰 수 조차 없게 한대도
거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얼마나 오래 지날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견딜 수 있어 날개를 펴고 날아
결국 멀리 떠나버렸고
서로 숨어 모두 보이질 않아
차갑게 내뱉는 한숨이 널 덮어
숨을 쉴 수 조차 없게 한대도
거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얼마나 오래 지날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견딜 수 있어 날개를 펴고 날아
여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얼마나 오래 지날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견딜 수 있어 날개를 펴고 날아
- 이승열 <날아> (2014년) - 드라마 《미생》 OST
"인간이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정직해지지 못하는 법입니다. 자신을 실제보다 더 좋게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죠."
- 구로사와 아키라 《라쇼몽(羅生門)》 (1950년)
"사람의 선의는 믿지만, 당하면 배로 갚아준다."
- 이케이도 준 (池井戸潤) 원작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2013년) 대사
한자와: 역시 이사님과 저는 전혀 다르군요. (은행원으로서 어떤 회사에 대한 대출 여부를 결정할 때) 이사님처럼 0인지 100인지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공장을 꾸려나갈 수 없다면 자본 제휴나 기술 제공 같은 다른 방법도 있었을 겁니다. 이 나라의 뛰어난 기술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한다. 그것이 은행원으로서의 저의 정의입니다.
오오와다: 무슨 유치한 소리인가? 그 정의를 관찰한 탓에 은행장님도 그만두게 됐잖나.
한자와: 저도 그래서 그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
오오와다: 웃기지 마라! 혼자서 도망칠 생각인가 본데 그렇게 둘 순 없지.
한자와: 도망친다구요?
오오와다: 자네한테만 알려주지. 나는 이 은행을... 그만둔다.
한자와 잘 듣게, 지금 우리 은행을 한번 보라고.
(한자와가 자신이 근무하는 은행이 과거에 저지른 불법 대출을 폭로한 까닭에) 주가도 폭락, 신용도 폭락.
조만간 하쿠스이 은행에도 밀릴 거야.
침몰이라고, 침몰.
그런 은행에 누가 남고 싶겠어?
죽어도 싫어, 죽어도 싫다고!
한자와: 이사님은 정말...
오오와다: 이제 이 은행은 끝입니다.
한자와: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겁니다.
여기에는 그 힘이 있습니다.
오오와다: 힘들다고 얘기했잖아.
한자와: 저는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오오와다: 자네가 말했어. 그렇게 말한다면 자네가 책임지게. 은행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게 누군가 당신입니다. 은행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면 자네가 마지막까지 책임지게.
한자와: 무슨 뜻입니까?
오오와다: 그 유치한 정의를 내세워서 침몰 직전인 도쿄 중앙은행을 재건해보라는 말이다!!!
미리 말하지만 자네의 정의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위에 서야 한다. 그러니까 은행장이 되는 수밖에 없다. 한자와, 한번 해보게. 나카노와타리 은행장님과 내가 자네 대신 그만두는 거다. 자네도 그 나름의 책임을 지게!
한자와, 대결이다! 만약 은행장이 못 된다면 자네가 여기서 무릎 꿇게. 하지만 만약 은행장이 된다면 내가 여기서 무릎 꿇겠네. 하지만 말이지 그떄는 내가 자네를 은행과 같이 철저하게 박살 내주겠어. 자네 아버지가 마음대로 죽어서 자네가 나한테 원한을 품은 탓에 내 은행원 인생은 엉망진창이 됐어!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자네를 모든 인생을 걸고 박살 내주겠어. 도전을 받게. 도전을 받으라고!
한자와: 알겠습니다. 도전을 받아들이죠.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봐주지 않겠습니다.
철저하게 당신을 박살내주겠습니다!
오오와다: 좋다. (한자와 나오키의 사직서를 갈기갈기 찢으며)
할 수 있으면 한번 해 봐!
그럼 가겠네.
- 이케이도 준 (池井戸潤) 원작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시즌 2 (2020년) 대사
"켄지 군, 놀~자!
- 우라사와 나오키 《20세기 소년》 (1999년 ~ 2006년) 대사
"나를 봐! 내 안의 괴물이 이렇게 커졌어!"
- 우라사와 나오키 《몬스터 (MONSTER)》 (1994년 ~ 2001년) 대사
"범인, 알아버렸는데요."
- 츠츠미 유키히코 연출 《케이조쿠 (ケイゾク), 1999》 시바타 준의 대사
"당신이 한 짓은 전부 다 간파했어!"
"돈토코이!
- 츠츠미 유키히코 연출 《트릭, 2000》 대사
"에... 후루하타 닌자부로데시다."
- 미타니 코키 각본 《후루하타 닌자부로, 1994》 대사
"신의 한 수를 위해서."
- 오바타 타케시 만화 《히카루의 바둑》 (1998년 ~ 2003년) 후지와라노 사이의 대사
"내가 바로 정의다!" (야가미 라이토의 대사)
"인간이란 재밌군" (사신 류크의 대사)
- 오바타 타케시 만화 《데스노트》 (2003년 ~ 2006년) 대사
"살아서 돌아가자. 반드시."
- 오쿠 히로야, 《간츠 (GANTZ, 2000년 만화 / 2004년 애니메이션화)》 대사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가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신카이 마코토 《초속 5센티미터 (秒速5センチメートル), 2007》 대사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사랑은 인간을 약하게 만들 뿐이야."
(아쿠츠 레이지) – 사랑을 믿지 않는 호스트 레이지의 차가운 가치관을 보여주는 문장.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야."
(아코) – 눈이 보이지 않는 여주인공 아코가 세상과 사랑의 본질에 대해 던지는 말.
-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 (愛なんていらねえよ、夏, 2002) 대사
"부정의한 평화와 정의로운 전쟁, 어느 쪽을 택하겠나?"
(고토 키이치) –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
"이 도시의 평화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위장된 평화다."
(아라카와) – 현대 사회의 안일함을 꼬집는 대사.
"전쟁이 평화를 낳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공포만이 평화를 유지시키고 있을 뿐이야."
- 오시이 마모루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2 (Patlabor 2: The Movie), 1993》 대사
"살아라. 그대는 아름답다."
(아시타카) – 원한에 사로잡힌 산(원령공주)에게 던진, 생명 그 자체에 대한 긍정의 한마디
- 미야자키 하야오 《원령공주, 1997》 대사
"사건은 회의실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야! 현장에서 일어나는 거라고!"
"올바른 일을 하고 싶다면, 위로 올라가라."
- 모토히로 카츠유키 연출 춤추는 대수사선 (踊る大捜査線, 1997) 대사
"일본 사람들이라는 게, 나쁜 놈을 사형시키자고 속으로는 생각해도 그걸 입 밖에 내는 사람을 곱지 않게 보는 거야. 속내와 겉내를 구분하는 민족의 음습합이지."
오카자키는 뭔가 깨달은 듯 입을 열더니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TV를 봐도 사형에 반대하는 사람밖에 안 나오더군요."
"음, 게다가 백안시당하는 것은 정치가뿐만이 아니라네. 우리도 그렇지 않나.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주고 있는데도 손가락질 당하는 거지. 극악범을 죽여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따위 아무도 안 해 준다니까."
난고는 한숨을 섞었다.
- 다카노 가즈아키 『13계단』 (2001년)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 기리노 나쓰오 『아웃』 (1997년)
"폭력을 다룬 어떤 미국 소설도 비할 바가 못 된다."
- 기리노 나쓰오 『아웃』 (1997년)에 대한 US투데이 서평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데 있어 다자이보다 뛰어난 작가는 드물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1948년)에 대한 뉴욕타임스 서평
"I look at the world and I notice it's turning /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세상을 바라보니 세상은 그저 돌아가고만 있네, 내 기타가 부드럽게 흐느끼는 동안)
- 비틀즈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1968년)
"Imagine there's no heaven / It's easy if you try / No hell below us / Above us only sky"
- 존 레논 (John Lennon) <Imagine> (1971년)
"No I won't be afraid / Oh, I won't be afraid / Just as long as you stand, stand by me"
- 벤 E. 킹 원작의 존 레논 <Stand By Me> (1975년)
옛날 옛적에, 어느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열여덟 살이고,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다지 잘생긴 소년도 아니고, 그리 예쁜 소녀도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외롭고 평범한 소년과 소녀다. 하지만 그들은 이 세상 어딘가에는 100퍼센트 자신과 똑같은 소녀와 소년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길모퉁이에서 딱 마주치게 된다.
"놀랐잖아, 난 줄곧 너를 찾아다녔단 말이야. 네가 믿지 않을지는 몰라도, 넌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야"라고 소년은 소녀에게 말한다.
"너야말로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인걸. 모든 것이 모두 내가 상상하고 있던 그대로야. 마치 꿈만 같아"라고 소녀는 소년에게 말한다.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아 질리지도 않고 언제까지나 이야기를 계속한다. 두 사람은 이미 고독하지 않다. 자신이 100퍼센트의 상대를 찾고, 그 100퍼센트의 상대가 자신을 찾아준 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속에 약간의, 극히 사소한 의심이 파고든다. 이처럼 간단하게 꿈이 실현되어 버려도 좋은 것일까 하는......
대화가 문득 끊어졌을 때, 소년이 이렇게 말한다.
"이봐, 다시 한 번만 시험해보자. 가령 우리 두 사람이 정말 100퍼센트의 연인 사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어디선가 다시 만날 게 틀림없어.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났을 대에도 역시 서로가 100퍼센트라면, 그때 바로 결혼하자. 알겠어?"
"좋아"라고 소녀는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시험해볼 필요는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100퍼센트의 연인 사이였으니까. 그리고 상투적인 운명의 파도가 두 사람을 희롱하게 된다.
어느 해 겨울, 두 사람은 그해에 유행한 악성 인플루엔자에 걸려 몇 주일간 사경을 헤맨 끝에, 옛날 기억들을 깡그리 잃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이 눈을 떴을 때 그들의 머릿속은 어린 시절 D.H.로렌스의 저금통처럼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현명하고 참을성 있는 소년, 소녀였기 때문에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다시 새로운 지식과 감정을 터득하여 훌륭하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정확하게 지하철을 갈아타거나 우체국에서 속달을 부치거나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75퍼센트의 연애나, 85퍼센트의 연애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소년은 서른두 살이 되었고, 소녀는 서른 살이 되었다. 시간은 놀라운 속도로 지나갔다.
그리고 4월의 어느 맑은 아침, 소년은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 하라주쿠의 뒷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해 가고, 소녀는 속달용 우표를 사기 위해 같은 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해 간다. 두 사람은 길 한복판에서 스쳐 지나간다. 잃어버린 기억의 희미한 빛이 두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 비춘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다.
그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그러나 그들의 기억의 빛은 너무나도 약하고, 그들의 언어는 이제 14년 전만큼 맑지 않다.
두 사람은 그냥 말없이 서로를 스쳐 지나, 그대로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고 만다.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 *
나는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꺼내보았어야 했던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일본 출판년도: 1981년 (잡지 '트레플' 7월호에 처음 발표)
수록 단편집: 《칸가루 일기》(カンガルー日和, 1983년 출간)
"가장 간단한 그림으로 당대를 드러내고, 위로하는 작품"
"정형화된 청소년의 재현이 아닌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10대 소녀 이야기"
"나는 어릴 적 사춘기라는 정글에서 어떤 야수들과 싸워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여중생 A]를 읽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 마음 깊숙이 꼭꼭 숨겨놨던 거울을 꺼내는 기분이 된다. 이처럼 허5파6은 마음을 그리는 작가다."
"단순히 주인공의 성장서사가 되기를 거부하는 만화"이며, "세대적 감수성과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의 사회상을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
상황 1
A: 안녕? 혹시 너희도 XX 팬이니?
B: 응! 너도?
상황 2
C: 얘들아 얘 내 친군데..
D: 안녕~
상황 3
E: 아니 거기서 민첩을 찍고..
F: 아니! 방어구 기술부터...
G: 어 나도 그 게임 하는데!
장미래: ??? 어떻게 저런 말을 쉽게 하지 (어떻게 저렇게 쉽게 친해지지)
...
"어떻게 저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을까? 아이돌 노래야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
A: 왜 ㅋㅋ 숨쉬는 것도 어색하다고 하지?
B: 아 ㅋㅋㅋ 그럴까? 걘 그럴 것 같아.
장미래같은 애들이 진짜 다루기 쉬운 게 ㅋㅋㅋ 좀만 잘해주면 엄청 고마워하거든.
...
교사: 그럼 두명씩 짝을 지어봅시다.
미래: 드디어 지옥같은 짝직기 시간이 돌아왔군.
"모두 그룹에 속해있다. 나는...? "
...
"화면이 꺼지면 어두운 기억들이 기다렸다는 듯 나를 덮쳐온다. 음침한 애... 또라이! 답답해! 음침하다거나 또라이 같다거나 답답하다거나, 그런 것은 다 다른 사람에 의해 규정된다. 나는 또라이... 나는 음침한 , 나는 답답한 애..."
"이런 것들 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이잖아."
"그냥 나인 게 잘못인 걸까"
...
나는 다시 지각을 하게 되었다. 아차피 학교에 일찍 가도 보고 싶은 사람이 없으니까.
...
평소에 전혀 보지 않는 한국 드라마는 이럴 때 보면 정말 재미있다.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은 평범한 설정이지만, 예쁘고 말랐다. 남자 주인공 또한 멋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다. 그에 벗어난 사람들은 조력자이거나 응원자의 역할을 맡을 뿐이다.
이런 짧은 손가락과 무 다리로는 주인공은 말도 안 되고, 악녀도 못 되지. (요즘엔 악녀가 더 예쁘더라) 내가 저 장르에 낄 사람이 아니란 건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는데도 저런 장면을 볼 때마다 누가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아픈 데는 익숙해지지가 않는군.
- 허5파6의 만화 《여중생A》 (2015년) 대사들
버려진 자의 사막
- 만화가 허5파6의 블로그 제목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여러분이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할 때, 어른들은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결코 묻지 않는다. 어른들은 '그 애 목소리는 어떻든? 그 앤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 수집을 하니?' 등의 말을 하는 법이 없다.
그 대신 그들은 '그 앤 몇 살이니? 형제는 몇이지? 몸무게는 얼마니? 그 애 아버지 수입은 얼마니?' 따위만 묻는다. 그래야만 어른들은 그 애를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가에는 제라늄 꽃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앉아 있는 분홍빛 벽돌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상상해 내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1억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아, 참 좋은 집이구나!'라고 소리친다."
...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가 대답했다.
"넌 나에게 아직은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불과해. 그래서 난 네가 필요하지 않아. 너 역시 내가 필요하지 않지. 나도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일 뿐이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돼.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
길들이기의 조건: '참을성'과 '책임'
"네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It is the time you have wasted for your rose that makes your rose so important.)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You become responsible, forever, for what you have tamed.)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Le Petit Prince) (1943년)
* 핵심 키워드: 관계를 맺는다(Establish ties),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Unique in all the world), 소비한 시간(Time you have wasted).
"그것은 최고의 시대이기도 했고, 최악의 시대이기도 했다. 지혜의 시대이기도 했고, 어리석음의 시대이기도 했다. 믿음의 시절이었고, 불신의 시절이었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1859년)
"정말로 고통스러운 것은 두 시대, 두 줄기의 문명, 두 가지 종교 사이에 끼여 있을 때다. (...) 한 시대의 인간이 두 시대, 두 가지 생활 양식 사이에 끼여 모든 자명함과 도덕,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상실하게 될 때 그것은 진정한 지옥이 된다."
-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1927년)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夜の底が白くなった。)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雪国)』 (1937년)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까지는 계산할 수 없었다."
(I can calculate the motion of heavenly bodies, but not the madness of people.)
- 아이작 뉴턴 (남해 회사 주식을 샀다가 폭락해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린 뒤)
사건 발생 및 발언 연도: 1720년
출처: 이 문장은 뉴턴의 저서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그의 사후에 전해진 구전(Anecdote) 및 전기적 기록을 통해 알려졌다.
특히 뉴턴의 조카딸 캐서린 콘듀잇(Catherine Conduitt)의 남편이자 뉴턴의 친구였던 **존 콘듀잇(John Conduitt)**의 회고록과 기록 등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퍼졌다.
"성욕이란 이러한 호사스러운 세계의 모든 속임수 중의 정수.
성욕이란 이루 말할 수 없고 무한하며 엄청나게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손에 넣는 것은 가련할 정도로 보잘 것 없기 때문."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제2권 제44장 <성애의 형이상학(Metaphysik der Geschlechtsliebe)>
출간 연도: 1819년 (제1권 초판), 1844년 (해당 내용이 포함된 보충판 제2권 출간)
박경리: 일본은 야만입니다. 본질적으로 야만입니다. 일본의 역사는 칼의 역사일 뿐입니다. 칼싸움의 계속일 뿐입니다. 뼈속깊이 야만입니다.
도올: 아니, 그래도 일본에서는 이미 나라 헤이안 시대 때부터 여성적이고, 심미적인 예술성이 퍽 깊게 발달하지 않았습니까? 노리나가가 말하는 '모노노아와레' 같은.
박경리: 아~ 그 와카(和歌)나 하이쿠(俳句)에서 말하는 사비니 와비니 하는 따위의 정적인 감상주의를 말하시는군요. 그래 그런건 좀 있어요. 그리구 그런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순수하지요. 그러나 그건 일종의 가냘픈 로맨티시즘이에요. 선이 너무 가늡니다. 너무 미약한 일본 역사의 선이지요. 일본 문명의 최고봉은 기껏해야 로맨티시즘입니다.
박경리: 스사노오노미코토(素淺鳴尊, 天照大神[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 남동생)의 이야기가 말해 주듯이 일본의 역사는 처음부터 정벌과 죽임입니다. 사랑을 몰라요. 본질적으로는 야만스런 문화입니다. 그래서 문학작품에서도 일본인들은 사랑을 할 줄 몰라요. 맨 정사뿐입니다. 치정(癡情)뿐이지요. 그들은 본질적으로 야만스럽기 때문에 원리적 인식이 없어요. 이론적 인식이 지독하게 빈곤하지요. 그리고 사랑은 못하면서 사랑을 갈망만 하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디 문인(文人)의 자살을 찬양합디까? 걔들은 맨 자살을 찬양합니다. 아쿠타가와(茶川龍之介,1892~1927), 미시마(三島由紀夫,1925~1970), 카와바다(川端康成,1899~1972) 모두 자살해 죽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그들의 극한점인 로맨티시즘을 극복 못할 때는 죽는 겁니다. 센티멘탈리즘의 선이 너무 가냘퍼서 출구가 없는 겁니다. 걔들에겐 호랑이도 없구, 용도 다 뱀으로 변합니다. 난 이 세상 어느 누구 보다도 일본 작품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내 연령의, 내 주변의 사람들조차 일본을 너무도 모릅니다. 어린아이들은 말할 것두 없구요. 일본은 정말 야만입니다. 걔들한테는 우리나라와 같은 민족주의도 없어요. 걔들이 야마토다마시이(大和魂) 운운하는 국수주의류 민족주의도 모두 메이지(明治)가 억지로 날조한 것입니다. 일본은 문명을 가장한 야만국(civilized savages)이지요.
- 월간 『현대철학』 (창간호) 「박경리, 도올에게 일본을 말한다」 (1990년 10월)
(* 이후 박경리 유고 산문집 『일본산고(日本散考)』 (2010년 출간) 등에 수록되어 대중에게 더 널리 알려졌다.)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이 지위는 주권을 갖는 일본 국민의 총의(総意)에 기초한다."
(天皇は、日本国の象徴であり日本国民統合の象徴であつて、この地位は、主権の存する日本国民の総意に基く。)
- 일본국 헌법(日本国憲法) 제1조
공포일: 1946년 11월 3일
시행일: 1947년 5월 3일
"현대 문명의 척도로 본다면, 독일인이 45세라면 일본인은 12세 소년과 같다."
- 더글라스 맥아더, 미국 상원 군사외교위원회 청문회 증언 (1951년 5월 3일)
* 맥락: 일본인의 지적 능력을 비하한 것이라기보다, 민주주의라는 현대 정치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성숙도가 아직 초기 단계(유아기)에 머물러 있다는 통치자적 시각에서의 발언
벚꽃 끝물이야. 나무에 달려있는 동안 벚꽃은 계속 더욱 완벽해지지.
그리고 마침내 완벽해지면 지는거야.
그리고 물론 벚꽃이 땅에 떨어지면 완전히 짓뭉개지지.
그러니 벚꽃이 지면서 공중에서 이리저리 흩날릴 때만 아주 잠깐 가장 완벽한거야.
내 생각에는 오직 우리 일본 사람만이 그걸 이해할 수 있다고 봐. 안 그래?
- 데이비드 미첼 《유령이 쓴 책(Ghostwritten, 1999)》
일본 사람들은 왜 그런지 벚나무라고 하면 어쩔 줄을 모른다. 매년 꽃놀이 시즌이 되면 언제 피는지, 현재 얼마 정도 피었는지, 언제 지는지를 따지면서 안절부절못한다. 피기 시작했다고 하면 꼭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그것은 벚꽃이 흔히들 말하듯 미련 없이 순식간에 피었다가 순식간에 지는 꽃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기이한 꽃이기 때문일 것이다.
벚꽃의 개화는 정말이지 극적인 변화다. 아키히코였나, 누가 이야기했지만, 꽃이 없으면 벚나무는 상당히 수수한 나무다. 자기 주장을 하지 않고 조용히 개울가를 장식하고 산속에 묻혀 있는 나무. 하지만 일단 꽃을 피우면 그 존재감은 어마어마하다. 어딘지 모르게 과하고,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 길을 걸을 때면 늘 열에 들뜬 것 같은 기이한 기분, 확실히 말해서 광기 같은 것이 느껴진다.
- 온다 리쿠 《흑과 다의 환상》 (2001)
"선생은 아직 그 재미를 모르시나 보군요."
- 신유한 《해우록》 (1719년)
(* 1719년 조선 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한 신유한 제술관은 그의 일본 방문기인《해우록》에 일본의 남색 풍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적었다.
특히 신유한이 남색 풍습을 비난하자 에도 시대 일본 제일의 조선통이며 근엄한 유학자인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는 <선생은 아직 그 재미를 모르십니까?>라고 반문하여 묻는 이를 아연케 했다고 한다.)
요노스케는 7세에 이성에 눈을 떠 60세가 되기까지 사랑을 나누었던 여자가 3742명, 남색 상대가 725명이었다.
- 이하라 사이가쿠 《남색대감(男色大鑑)》 (1687년)
"지음을 만난다면, 남위(男妾)와도 바꾸지 않으리라. 무식한 노파 같으니, 왜 굳이 사기를 쳤는가!"
- 포송령 《요재지이》 (1766년)
(* 소년을 여장시켜 첩으로 판 노파가 등장하는데, 그에 대한 포송령의 평)
“여성이 독립적이 될 때 미소년 애호가 생겨난다”
...
"미소년이라 함은 '샤워 중이거나 자고 있을 때나 혹은 아무 때나 덮치고 싶은, 즉 가지고 싶고 어루만지고 싶고 귀여워서 깨물어 주고 싶은 존재'를 말한다."
...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고 전 한국적인 차원에서 말하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과 개인주의, 물질적 풍요 속에 떠받들리며 자란 신세대가 필요했듯이 나는 야한 남자가 좋다고 온 나라를 들쑤시기 위해서는 관능적으로 해방된 남성들과 그런 남성들을 원하는 여성들이 자립할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토대가 절실하다."
...
남자는 어떻게 변하는가?
성적 대상화의 전당에 오른 남자
요즘의 매스미디어를 보면 단연코! 예쁘고 잘 생긴 남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한국의 추이는 확실히 그렇다. 90년대를 우려먹었던 '부드러운 남자'는 이미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버린 것인지 당연한 조건 취급이고, 무조건 '예쁜 남자', 여자 뺨치게 이쁜 꽃미남들이 넘실거린다. 전엔 십대취향의 보이그룹 정도에나 한두 명 끼어 들었던 진짜 미소년급들이 요새는 제법 자주 보인다. 전엔 십대와 이십대 초반의 순정만화매니아들 사이에서나 통하던 미소년 신드롬이 이젠 상당히 대중화된 편이다. '꽃미남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들어선 것만 봐도 엄청난 발전이다.
무엇보다도 남자들 스스로가 귀여운 남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사태의 진지하고도 바람직한 측면을 말해준다. 무리 속에서 인기 있고 싶은 것이 인간과 영장류의 특성이다. 남자는 여자들이 터프한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터프해 보이려고 애쓰지만, 미소년이 인기 좋다고 하면 어떻게든 이뻐 보이려고, 얼굴이 안 되면 귀염성 있는 태도로라도 인기를 얻으려고 애쓰게 되어있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인기 있는 여자가 되기 위해 청순한 척, 귀여운 척 혹은 섹시한 척을 하는 것과 똑같다.
여자들도 계속해서 본격적이 되어갈 남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해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는 아마도 '민망해서'란 이유에서인지 섹시한 척하는 남자까지는 못 나오고 있지만 그것도 그리 먼 일은 아닐 것이다. 남자가 섹시한 척을 하고 그걸로 여자들한테 인기를 끌더라도 그게 남자의 명예에 해가 되지는 않는 사회분위기라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적 위신'의 문제라는 것은 인간에겐 놀랍도록 중요해서 '남자가 여자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아야'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는 까닭으로 개명한 요즘 세상에도 당연하다는 듯 수많은 여자들은 양보와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선택의 폭이 좁을 때, 사소한 차이는 결정적이 된다. 그러니 남자들은, 확실한 여자들의 환호라는 백그라운드 지원 없이는 자기의 섹시한 매력을 함부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여성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여자들이 경제력이 쎄져서? 여자들이 사회진출을 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서야 여자들은 자기를 보호해줄 남자 대신 자기가 귀여워할 남자들을 선호한다. 경제력 있는 남자만 쳐다보는게 아니라 무조건 이쁜 남자 보는 재미에 모든 시름을 잊기도 한다. 즉 경제력을 가졌다고 자동적으로 독립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한 개인으로서 자신을 중심에 놓고 살며 생각하고 거취를 결정해야 독립적인 여성이 되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미소년 신드롬이 점차 매니아에서 일반 대중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여자들의 미감의 독립이었다. 이는 당연 성적 취향의 변화를 동반한다. 먼저 만화 속에서나 보고 즐기던 어여쁜 소년 같은 남자를 현실 속에서도 원하는 여자들이 많아졌기에, 그 기대에 부응해서 스스로 예쁜 남자가 되어줄 남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미소년의 이미지는 마치 청순한 소녀의 이미지처럼 성적인 매력과는 상관이 없을 듯이 보이는 매우 고상하고 미적인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역시 성적인 의미를 갖는다. 꼭 애인구함이 아니더라도 예쁜 남자 담론은 생활의 일부로 번성하면서 여자들의 새로운 성적 취향에 일조하고, 현실의 연애사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상화가 남자를 해방한다
남자들의 아름다움, 또는 성적 매력이라는 것은 대낮에 커피샵에서 벌이는 여자들의 수다꺼리로 적절한 주제가 되었다는 것을 이제 남자들은 무시할 수가 없다. 아니,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뼈빠지게 일해 처자식 먹여살리면서, 이뻐지기까지 하라고? 이미 아저씨된 나는 죽으란 말이냐? 하는 불만들도 나올만 하다. 하지만 외모의 압력을 똑같이 받는 것이야말로 온전한 남자가 되기 위해선 거쳐가야만 하는 과정이다. 이미 취업을 위해서라면, 성형수술도 불사하는 남자들의 얘기는 이미 뉴스거리도 안 되는 것이 요즘이다. 앞으론 장가가기 위해서 성형수술하는 남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를 두고 남자도 여자처럼 고생해봐라, 차원에서 즐거워하는 근시안적인 보복심리에서 벗어나 좀 넓은 시야를 가져보자. 외모경쟁의 압박이라는 부산물만 볼 것이 아니라 남자가 아름다와질 마음을 먹고 자신을 가꾸기 위해 매순간 돌아보게 된다는 인류사적인 전환을 보잔 말이다. '사내답게' 보이기 위해 남자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희생을 했다. 기쁘고 슬프고 두려운 더없이 인간적인 감정들도, 섹시하고 신기한 자기 몸에 대한 나르시시즘도, 알록달록 예쁘고 귀여운 장신구들로 자신을 치장하는 재미도, 이 모든 것에서 파생되는 균형잡힌 인격과 인생의 폭도 남자는 가질 수 없었다.
남자들이 쓸데없는 서열싸움에 목숨을 걸고, 별것도 아닌 일로 사람들 괴롭히는 건 욕구불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은 남자도 예쁜 옷을 입고, 어디 가서 귀여운 척을 하고 사랑받을 수 있고 가족에 대한 의무와 봉사 외에도 뭔가 진지하게 추구할 자기 인생을 갖고있다면, 그렇게까지 늙어갈수록 탐욕을 부리고 추잡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고 뒷구멍으로는 호박씨 열심히 까는 한국인의 양식이라는 것이 바로 이 '바람직한 남자'가 내몰린 막다른 골목이다. 그러니까, 이 웃기는 사회구조를 바꾸고 싶다면, 무엇보다 남자를 해방해야 한다.
남자를 해방 안 하고서는 여자는 해방이 안 된다. 아무리 인권을 들먹이고 평등을 주장해도, 고를 만한 남자가 없이 다 치사빤스인 놈들밖에 없으면 그 올바르고 훌륭한 여자들은 다 어디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는단 말인가? 남자들이 '사내다움' 속에 갇혀 자기의 '인간다운' 욕망들을 죽일 것을 강요받는 한, 그들은 계속해서 복수를, 혹은 보상을 원할 것이다. 그 내역이 아주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는 걸 결혼생활을 해본 여자나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윈윈 전략?
지금 여성이 전세계적으로 받고 있는 차별과 억압에 대해서, '응징'을 하고 바로잡으려 들어서는 별 효과가 없을 거라고 난 생각한다. 범죄가 안 일어나려면 사회가 평안해야 되듯이, 대증요법보다는 원인박멸이 근본적인 것이다. (물론 치안도 잘 되어 있어야겠지만) 여성차별과 성폭력의 주범으로 '남자'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미련한 짓이다. 남자 모두를 죄인 취급하는 건 범죄자를 무죄인양 만들고 남자들을 공범으로 묶어주는 효과밖에는 안 낳는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남자도 스스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술먹고 깽판치는 "남자다움"의 즐거움이 아니라 자신내면의 즐거움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여성의 규범"에 동화시키자는 것이다. 자기 즐거움이 없고 권력만 있으면 사람이 폭력적이 된다. 괜히 구중궁궐 대비마마들이 폭력적 군주성향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똑같이 자신의 몸을 성적 매력을 내뿜는 사랑스러운 존재로서 즐기고, 남들의 기대를 받고, 시선을 자랑스럽게 누리게 된다면 굳이 욕구불만에 시달리며 스스로는 박탈당한 色을 밖에서 약탈해올 필요도 없고 치사하게 권력이나 힘을 이용해서 남들을 괴롭히는 재미로 살아갈 이유도 감소할 것이다.
그리고 물론 성적인 대상화로 인한 폭력의 위험에도 똑같이 노출된다. 본래 폭력은 권력관계의 상하 문제였지 남녀의 문제가 아니었다. 앞으로는 단순히 여자들이 남자를 희롱하는 것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무차별 성희롱이 문제가 될 것이다. 남자가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당하는 것은 벌써부터도 있었던 일이지만 앞으로는 그것이 더 두드러지고 공론화될 것이다. 그런 것은 감히 있을 수 없는 일로서 숨겨야만 유지가 되었던 '남자'라는 틀은 이제 적용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범죄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또 인류의 공적으로 처벌해야만 하는 범죄일 뿐이지, '힘없고 불쌍한 여자들'만이 당하곤 하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아니다.
이제야, 남자들은 여자의 분노와 두려움을 이해할 가능성이 생긴다. 앞으로 남녀를 통털어 사회적 강자, 혹은 돈 많은 계급과 돈이 없어 젊음과 아름다움을 갈취당하는 계급의 구도가 형성되어버릴 위험성을 부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위협을 이겨낼 수 있는 충분히 생산적이고 건강한 문화를 만들 가능성 역시 엄존한다.
여자들 또한 스스로가 빠져있는 피해자 혹은 약자 담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아무 대책 없이 단지 남성중심사회를 비난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안일하고 조잡한 양심이다. 나는 사회적으로 차별 받는 여성이니까,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함으로써 자기가 가해자가 아닌 것으로 만족하고 자기의 불만스러운 인생을 합리화하는 것은 그만둘 때도 되었다. 싸우려면 이길 싸움을 할 일이다.
남자는 여자와 다르다, 하지만 닮아간다
물론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그러나 남자의 안에 들어있는 '위험한' 수컷성이라는 것은 다루기 나름이다. 얼마든지 무해한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는데, 계속 비뚤어진 채로 내버려둘 이유가 없다. 남성의 공격성이 퇴화하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다. 미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는 [섹스란 무엇인가?](지호 2000)에서 인간 남성의 짐승적 특성이 약화되는 이유로 인구조밀과 네오테니(neoteny, 어린애성)를 든다.
인류가 문명을 건설하고 도시에 오밀조밀 모여살게 되면서부터, 계속해서 남자는 호전성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린애성이야말로 인간의 특징이고, 인류진화의 경향성이다. 미숙아로 태어나 평생을 놀이하고 학습하며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고, 변해가는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점점 남자들의 얼굴이 어리고 이뻐지는게 다 이유가 있었다. 먹고 살기 편하고, 싸울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문명의 방향은 계속해서 확산되고, 피드백된다.
그리고 어린애성을 늙어죽을 때까지도 간직하는 강자가 누구냐면 바로 여성이다. 지금 경제에서 또 전체적인 인간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분명히 여성화의 흐름이다. 위계구조를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로 바꾸는 것은 단지 탈산업화의 흐름이 아니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모델이 필요하고, 여성적인 관계들은 훌륭한 준거가 된다.
그래서 미소년 신드롬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미감적으로 표현하는 사건인지도 모른다. 여성성, 혹은 어린애성을 최고도로 발휘한 남자가 바로 미소년이니까. 유행이야 변하기 마련이니 좀 있으면 섹시한 남자가 뜰 지도 모르고 귀여운 갑바맨이 뜰지도 모를 일이지만, 남자는 변화한다는 기본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남자는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욕망의 라이트를 자신에게 비추어야 한다. 내 속의 어둡고 어두운 욕망은 나도 몰라, 여자는 미스테리인가봐, 하면서 헛소리 못 하도록, 그러니까 최상품을 내놓아 보라니까, 하고 압박하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다. 투명한 욕망은 가능하며 공정한 관계도 그렇다.
...
청소년 보호는 불가능하다
한동안 나라가 원조교제로 들썩거리더니 얼마 전엔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인터넷 실명공개'까지 물의를 일으켰다. 이에 대해서는 이중처벌이라는 반박도 가능하고, 공개방식의 문제로 동명이인의 피해가 우려되기도 한다. 그리고 진짜 '원조교제'에 대한 처벌이라면 일방적 처벌이라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원조교제(청소년 성매매)는 과연 범죄인가? 힘없고 어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못된 어른들이 저지르는 성범죄인가? 엄연한 성폭행과 같이 은근슬쩍 섞어 공표해도 되는 범죄인가? 아니라고 본다. 왜냐면 청소년들은 이미 자기 의사에 따라 행동할 수 있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어른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유로운 두 개인이 만난 원조교제'라는 환상을 주조할 수는 없다. 처음부터 '원조'라고 하는 사항이 들어있는 한, 자원(젊음이든 돈이든)의 불균형으로 인한 매매가 예상되고, 시장이 형성되면 나름의 매카니즘이 돌아가니까.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는 온통 십대만이 돈쓸 자격이 있는 것처럼 야단법석 젊음의 가치를 흩뿌리면서 한편으로는 '청소년보호'를 이야기한다. 그것이 진짜 '보호'이든 '족쇄'이든 간에, 이미 자란 몸에 적절한 욕망과 능력과 의지가 있음에도 사회가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임금 파트타임 노동 외에는 모든 돈벌이 수단을 박탈당한 청소년들이 그저 참고만 있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중 일부가 변칙적인 방법을 택하는 건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보호가 아니라 권리다. 애정생활의 권리, 자기 인생을 살 권리, 자긍심을 지닌 한 사람으로서 온전해지기 위해 존중과 동시에 배려를 받을 권리 말이다. 십대는 애정관과 노동관을 형성하고 인간관계와 인격수양을 쌓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로서, 그 다양한 시도와 모험의 정당성을 사회는 인정하고 적절히 지원해주어야 한다. '보호'의 망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들 역시 앉아서 불평만 하고 있는 불행한 낭비를 걷어치워야 할 것이다. 사춘기가 빨리 오고 인생이 일찍 문을 열었으면 그게 맞게 사회적 지위를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젊음의 특권을 고취시키는 양하는 이동통신회사나 의류회사에만 봉사하다 청춘을 보낼 순 없다. 직접 나서서 권리를 요구해라. 자기자신에 대한 권리를, 현재를 움직일 수 있는 권리를.
...
남자를 죽이는 남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남자들이 있다. 하나는 길거리에서 가래침을 크엑~하고 뱉어대는 남자들이고 또 하나는 지하철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는 남자들이다. 물론 남생각 안 하고 담배피우는 사람도 싫지만, 그것은 남녀불문이니, -.-; 싫어하는 남자로 유형화하기엔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종종 사람 짜증나게 하는 일이지만, 현대사회의 남자들은 자기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오줌을 갈기던 그 옛날 수컷의 버릇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남들이 불쾌해하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 특히나 한국남자들의 안하무인은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인류가 만든 문명사회라는 것은 '인구조밀'을 특징으로 한다. 게다가 도시라는 것은 원래가 자연적으로는 도저히 유지가 불가능할 인구를 인공적으로 과밀거주하게 만드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니던가? 그래서 지금까지 문명사회의 남성은 자기 안의 호전성을 죽일 수밖에 없었고, 그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덕분에 요즘의 젊은 남성들 중에는 예의바르게 자라나 자연스럽게 남을 배려하고 자기의 몸놀림을 조심하는 싹싹한 친구들도 제법 많다.
남자들의 짐승적 특성이 약화되는 현상에 대해 린 마굴리스는 [섹스란 무엇인가?](지호 2000)에서 두 가지 동기를 제시한다. 하나는 방금 말한 인구조밀이고 또 하나는 인류 진화의 경향성인 네오테니(어린애성)이다. 네오테니란 인간이 다 커서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린 성질을 갖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란 미숙아로 태어나 평생을 놀이하고 학습하며 새로운 것을 찾아 변해가는 존재다. 여기에, 지금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유연하게 타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린애성을 갖는 것은 더욱 필수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수컷성을 죽이고 좀더 부드럽고 유연한 몸과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남자들이야말로 미래를 차지할 남성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더더욱 많아져 버릇없는 남자들의 세력을 눌러버려야 나라가 잘 될 것이다.
내 생각에, 아름다운 남자란 반드시 잘 생기고 풋풋한 젊음을 과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더 본질적인 것이 있다. 지금 세상에서, 아름다운 남자란 자기 안의 수컷성을 죽일 줄 아는 남자다. 지하철처럼 여럿이 나누어쓰는 공간에서, 자기 몸집이 크더라도 1인당으로 주어진 공간으로 일단 만족하고 거기서 넘치지 않도록 남을 생각해줄 수 있는 남자, 자기의 냄새를 아무데서나 불쾌한 방식으로 내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은은하게 자기 존재의 향기를 풍길 수 있는 남자, 그런 남자가 바로 아름다운 남자인 것이다.
...
아름다운 남자들에게 바라는 것
내가 요즘 이뻐하는 미소년은 Y2K의 마츠오 유이치군이다. 깎아놓은 듯한 턱선과 오똑한 콧날이 모든 만화의 미소년들을 그냥 눌러버린다. 일부러 이쁜 척, 귀여운 척하지 않아도, 보고만 있으면 그냥 항복이다. 내가 유이치군에게 바라는 것은 딱 하나뿐, 저얼대로 변하지 말 것, 그 미모 그대로 30대까지, 가능하면 40대까지도 가주는 것이다.
너무 미소년한테 바라는 게 많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장국영을 본다면 그렇게 불가능한 요구는 아니다. 맨날 미청년이었다가 40대가 된 요즘에야 겨우 30대쯤으로 보이니까. 그 미모가 가장 아름답게 꽃피었던 [천녀유혼]과 [아비정전]에서 벌써 30대였다는 준엄한! 사실에 이 세상 모든 남자배우들은 반성을 해야한다.
이상하게도 여자배우들은 인기가 높아가고 나이를 먹으면서 더 아름다워지고 날씬해지는데, 남자배우들은 친근한 느낌을 핑계로 아저씨가 되어간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만 봐도 그렇게 빛나던 미소년이었던 과거가 무색하게도 갈수록 터프한 척만 늘더니 요즘엔 연기를 위해서란 이유로 살까지 쪘다. 비슷한 연배의 에드워드 펄롱이 그래도 아직은 꽃미남의 미모가 살아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 남자배우들의 때 이른 노화증세 역시 특기할 만하다. 한때는 장국영 닮았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이경영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 괜시리 미남컴플렉스를 깨느라고 수더분해지려고 하고 있는 장동건이나 정우성이 나중에 어떻게 될런지, 아주 아찔해지려고 한다. 영화 [친구]로 장동건의 인기는 치솟았지만, 그 뒤안엔 그래도 일찍부터 건질 만한 꽃미남이었던 그가 사천만의 인기를 얻으려고 '친근한' 남자가 되어가는 것을 가슴아파하는 여성팬들의 눈물이 있다. 배우 입장에서는 폭넓은 팬층이 욕심나겠지만, 남자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헌신짝처럼 버려도 되는 무가치한 것이란 말인가? 편안함 같은 덕목은 자기 애인에게나 바라고 배우에겐 오로지 아름다움만을 바라는 여성팬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를 가꾸고 만드는 남자는 이 나라엔 정녕 없단 말인가?
아름다운 남자는 유전자의 덕으로 생겨나지만, 그 미모를 지키는 것은 의지의 몫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충동질하거나 억누르는 것은 여성들의 '기대'다. '일반적인' 기대에만 매달리지 않고 아름다움의 의지를 관철하고 나가는 남자들도 이젠 좀 보고싶다.
...
남성의 여성화! 여성의 남성화?
요즘엔 왠지 터프한 여자가 인기가 있는 듯하다. 물론 얼굴은 무지무지 이뻐도 되지만, 하는 짓 역시 무지막지 터프해도 괜찮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흥행성공도 별로 신기할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전부터 남자들은 계속해서 부드러워지고 있었으니, 앞으로도 남성의 여성화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생물학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환경오염과 스트레스의 영향으로 남자들의 정자수가 줄어들고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하는 것은 분명 남성의 약화다. 이에 대해 미생물학자 린 마굴리스가 내리는 해석이 재미있다. 이미 인류는 매우 성공적으로 번식했으므로 이제부터 성적 번식은 감퇴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인구밀도의 증가에 따라, 그리고 인류 자체가 내재한 어린애성(neoteny)이라는 특성의 심화에 따라 남성성은 순화되어갈 수밖에 없다.
트렌드란 바뀌는 것이어서 앞으론 터프한 여자 대신 야시시한 여자가 인기를 얻을 수도 있고, 부드러운 남자들에도 물리는 날이 오면 막강한 근육을 자랑하는 갑바맨이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근저에서 진행되는 남성의 여성화는 멈추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도리어 앞으로 갑바맨은 완력을 자랑하고 여성 위에 군림하는 마초맨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 몸을 잘 알고 계발하며 스포츠와 춤을 즐기는 잘 빠진 야한 남자라든가, 혹은 순진하고 귀여운 갑바맨 식으로 재미난 유형이 되어 인기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남성이 여성화되는 흐름은 동시에 여성이 남성화되는 경향과 피드백을 이루기 마련이다. 이때 남성성은 꼭 호전성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여성들이 실질적인 힘, 즉 사회적인 힘을 갖고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을 중요시하고 싶다.
지금 전체적인 인간사회의 흐름은 여성화이다. 이에 대해서는 헬렌 피셔가 [제1의 성](생각의나무)에서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수컷들의 위계구조와 경쟁, 폭력의 방식들을 이와 전혀 다른 '여성적 방식', 즉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와 협력에 바탕을 두는 새로운 방식들이 대체하는 변화가 지금 경제에서 또 전사회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탈산업화, 정보화 사회에서는 유연한 여성이 유리하다는 얘기다. 권위적인 남성은 도태될 것이다. 이제 남성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
남자가 불쌍하다!?
여자들은 여자라서 불만이 많다. 여자는 생리도 해야되고, 애도 낳아야 되고, 게다가 키우기까지 한다. 또 결혼하면 왜 집안일을 우선으로 떠맡는 것인지, 앉아서 곰곰 생각하자면, 사회한테도 자연한테도 '매우 불만'일 수밖에 없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남자는 적당히 편하게 하고 다녀도 멋진데 여자는 죽어라고 꾸며도 중간밖에 안 간다. 선진국에서 못 태어나서, 부자집에서 못 태어나서 요모양인거다, 라고 논지를 돌리기엔 너무나 그 차별이 확연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여자는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여자라서 다행이다'. 여자라서 억누르고 귀찮게 하는 모든 사회적인 제약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멋지게 꾸미고 다닐 수 있고 자신의 색을 발현해도 돌맞지 않는다는 것, 이게 바로 세상 살 맛이다. 차별은 깨부수면 되고, 권리는 쟁취하면 된다. 하지만, 치마를 못 입는 남자는 어디 가서 데모할 곳이 없다.
그렇게 보면 남자들은 불쌍하다. 칙칙한 양복 색깔 안으로 들어가야 인간대접을 받는다. 그나마 젊은이들은 좀 화려한 색의 옷을 추구할 수가 있지만, 슬프게도 이건 밥벌어 먹고사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얘기다. 요즘은 세상이 달라지고 있고, 그동안 여자들이 애써 자기 권리를 찾아온 만큼 이제 남자들도 자기네 色을 드높이려고 애쓰는 중이지만, 문화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당분간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걸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진실은, 그래도 노력한다면 쉽게 다 가질 수 있는 건 남자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매력을 결정하는 양대 요건을 외모와 능력이라고 봤을 때, 장기전에서는 남자가 단연 유리하다.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여자는 아직까지는 아무리 운이 좋더라도 자기의 최고 가치인 외모를 유지,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과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여자는 피부도 얇은 편이고 근육보다는 지방이 많은 몸이라서 부지런히 관리하지 않으면 쉽게 노화해 버린다. 하지만 남자는 피부도 두껍고 근육질이라 그렇게 쉽게 쳐지지도 않고, 뭐든지 타격을 덜 받는다. 단지, 쓸데없는 타격을 주는 습관-음주흡연-만 없애면 된다. 무슨 남자가 그러냐는 남들의 잔소리만 꺼버리면 된다. 한마디로, 그저 자기 하나만 잘 하면 되는 것이다. 자기네 장점을 좀 개발하면 좋으련만, 여전히 많은 남자들은 오로지 돈많은 남자가 되기 위해 무한한 희생을 되풀이하고 있다.
- 남승희 《나는 미소년이 좋다》 및 인터넷 칼럼들 (2001년)
<26단> 설렘−가슴 두근거리는 것
참새 새끼를 기르는 것. 어린아이가 뛰어노는 곳 앞을 지나가는 것. 고급 향을 태우며 혼자 누워 있는 것. 박래품 거울이 조금 어두워진 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신분이 높은 남자가 내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시종에게 뭔가 묻는 것. 머리 감고 화장하고 진한 향기 나는 옷을 입는 것. 그런 때는 특별히 보는 사람이 없어도 가슴이 설렌다. 약속한 남자를 기다리는 밤은 빗소리나 바람 소리에도 문득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心ときめきするもの 雀の子飼。ちご遊ばする所の前わたる。よき薰物たきて、ひとり臥したる。唐鏡のすこし暗き見たる。よき男の、車とどめて、案内し問はせたる。頭洗ひ、化粧じて、香ばしうしみたる衣など着たる。ことに見る人なき所にても、心のうちは、なほいとをかし。待つ人などのある夜、雨の音、風の吹きゆるがすも、ふと驚かる。
<175단> 어느 여방의 이별
어느 곳에 무슨 기미(君)라는 여방이 있었는데 9월경 아주 지체 높은 집 자제는 아니지만 풍류인으로 평판이 높고 실제로도 정취를 잘 아는 남자가 그 여방을 찾아가게 되었다. 같이 밤을 보내고 날이 밝아 올 무렵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 여자에게 여운을 남기려고 마음을 다해 이별을 고했다. 그 여자도 남자와의 이별이 아쉬웠는지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뜰로 나간 남자는 얼마 안 가서 멈춰 서고 말았다. 아무래도 미련이 남아 그대로 돌아갈 수 없던 것이다. 울타리 그늘에 잠시 몸을 기대고 서 있다가 다시 그 여자에게 말을 더 해 두려고 돌아서는데 여자가 움직이는 기척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새벽녘 달이 아직 떠 있으면서”라고 읊조리며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그 여자 옆으로 가발이 떨어져 달빛을 받아 윤이 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남자는 정신이 번쩍 들어 그대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그 사람이 들려준 것이다.
ある所に、なにの君とかや言ひける人のもとに、君達にはあらねど、そのころいたう好いたる者に言はれ、心ばせある人の、九月ばかりに行きて、有明のいみじう霧りみちておもしろきに、名殘思ひいでられむと、言葉を尽くして出づるに、今は去ぬらむと、遠く見送るほど、えも言はず艷なり。出づるかたを見せて立ち歸り、立蔀の間に、陰に添ひて立ちて、なほ行きやらぬさまに今ひとたび言ひ知らせむと思ふに、「有明の月のありつつも」と、忍びやかにうち言ひてさしのぞきたる髮の、頭にも寄り來ず、五寸ばかりさがりて、火をさしともしたるやうなりけるに、月の光もよほされて、驚かるるここちしければ、やをら出でにけり、とこそ、語りしか。
<251단> 남자란 존재
거창하게 준비해서 맞이한 사위가 얼마 안 가서 발길을 끊어 버리면, 장인(丈人) 되는 사람은 정말 속상하고 실망스러울 것이다. 주변 사람들 모두 장인을 동정하는데 사위는 그런 장인의 마음을 조금도 모를 것이다.
어떤 잘나가는 세도가 집안에서 사위를 맞이했는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사위가 오지 않게 되었다. 그 집안에서는 난리가 나고 유모와 같이 친밀도가 높은 시종들은 사위의 험담을 마구 해 댔다. 그런데 그 사위가 이듬해 정월에 장인(藏人)이 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정말 놀랄 일이야. 아무개 따님한테 발길을 끊어 버려 관직은 어림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라고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려 아마 본인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다가 6월에 팔강(八講)이 있었는데 그곳에 사위도 오고 딸도 온 것이다. 장인이 되어 능직 하카마 바지에 검은 반비를 말쑥하게 차려입고 나타난 사위는, 속곳 끈을 그 딸의 우차 손잡이에 걸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앉아 있었다. 그 딸의 심정이 어떨까 하고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딱하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그 사위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잘도 있더이다”라고 했다.
역시 남자란 상대방을 딱하게 여긴다든지 그 사람 마음을 신경 쓴다든지 하는 배려심과는 거리가 먼 존재인 것 같다.
いみじうしたてて壻取りたるに、ほどもなく住まぬ壻の、舅にあひたる、いとほしとや思ふらむ。
ある人の、いみじう時にあひたる人の壻になりて、ただ一月ばかりもはかばかしう來でやみにしかば、すべていみじう言ひ騷ぎ、乳母などやうの者は、まがまがしきことなど言ふもあるに、そのかへる正月に蔵人になりぬ。「あさましう、かかるなからひには、いかで、とこそ人は思ひたれ」など言ひあつかふは、聞くらむかし。
六月に、人の八講したまふ所に、人々集まりて、聞きしに、蔵人になれる壻の、れうの表の袴、黑半臂など、いみじうあざやかにて、忘れし人の車の䲭の尾といふ物に、半臂の緖をひきかけつばかりにてゐたりしを、いかに見るらむと、車の人々も、知りたる限りはいとほしがりしを、異人々も、「つれなくゐたりしものかな」など、後にも言ひき。
なほ、男は、もののいとほしさ、人の思はむことは、知らぬなめり。
- 세이쇼나곤 《마쿠라노소시(枕草子, 베갯머리 서책)》 (1001년)
백인 최초의 일본학 박사인 존 카터 코벨(1912~1996)은 한중일 세 나라의 특성을 한마디로 요약할 말을 찾다가 영어의 C자로 시작하는 낱말을 떠올렸다. 그리하여 중국은 통제(Control), 일본은 작의(Contrived), 한국은 무심(Casual)이라는 단어가 적합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삼국의 도자기를 비교해보면 이런 대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말하였다.
중국 도자기는 가마와 유약의 사용을 철저하게 관리한 결과 특히 도자기에서 완벽의 경지를 이뤄냈다. 일본인들은 도자기의 예술성을 과도하게 발전시킨 나머지, 자의식이 담긴 작의적인 것이 됐다. 가령 가마에서 구워낸 화병의 한 귀를 일부러 구부리거나 깨버리는 식이다. 한국의 도공은 언제나 자연스럽기 짝이 없고 무심해서, 이들이 만들어낸 도자기에는 도공의 기질과 불이 어떻게 작용했는지가 그대로 반영된다.
그리고 한국 조경과 도자기에 나타난 '무심함'은 솔직함, 또는 직설적인 성격과 통한다. 코벨 박사가 일본의 교토보다 서울에서 더 편히 지낸다고 말한 이유는 지극한 미소로 일관하는 교토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솔직한 서울사람들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스이마셍(죄송합니다)'를 남발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일본인들보다, 치고박고 싸우면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더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 존 카터 코벨 『Korean Impact on Japanese Culture: Japan's Hidden History』 (1986년)
선을 긋는 일본인 선을 넘어오는 한국인
- 문화심리학자 한민의 저서 『선을 긋는 일본인 선을 넘어오는 한국인』 (2020년)
(* 이어령의 '축소와 확대' 개념을 현대 심리학적 관점에서 **'경계(Border)'**라는 키워드로 발전시킨 책.
일본 (선을 긋는): 일본인의 심리를 '메이와쿠(남에게 폐 끼치지 않음)'와 '우치-소토(안과 밖)'로 분석. 이들은 자신만의 선을 긋고 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동시에 남의 선을 넘지 않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다.
한국 (선을 넘어오는): 한국인은 '우리'라는 개념 아래 서로의 선을 허물고 간섭하는 것을 '정(情)'과 '관심'으로 여긴다.)
"한국인은 **'보자기'**의 문화다. 무엇이든 싸고 묶어서 크게 만드는 확대 지향의 에너지를 가졌다. 비빔밥처럼 서로 다른 것을 섞어 하나로 크게 아우르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일본인은 **'부채'**나 **'도시락(벤토)'**의 문화다. 넓은 부채를 접어서 품안에 넣고, 거대한 자연을 정원에 축소해 담으며, 커다란 음식을 작은 상자에 정갈하게 구획 지어 담는 **'축소 지향'**의 미학을 가졌다. 일본인의 힘은 작게 줄이고 정밀하게 다듬는 데서 나온다."
- 이어령 『축소지향의 일본인 (縮み志向の日本人)』 (1982년)
(* 한일 차이 요약: 한국은 '비빔(융합/확대)'의 역동성, 일본은 '다듬음(절제/축소)'의 정밀함)
"혁신은 발명하는 능력이 아니라, 발명한 것을 쓸 줄 아는 능력에서 온다."
- 데이비드 랜디스 (David S. Landes) 『국가의 부와 빈곤 (The Wealth and Poverty of Nations)』 (1998년)
(* 원문 취지: 중국은 화약과 나침반을 '발명'했지만, 그것을 파괴적인 군사력과 세계 정복의 도구로 '혁신'한 것은 서구였다는 점을 지적. 리콴유 역시 서양이 동양을 이긴 이유는 지식과 기술을 제도화 (institutionalize) 했기 때문이라 이야기한 바 있다. 축적된 지식이 동양에선 출판을 하지 않아 죽었지만, 서양에선 출판했고 비판받고 더 개선되어 나타났다.)
니담은 서양이 이길 수 있었던 이유를 역설적으로 **동양의 '지나친 완성도'**에서 찾았다.
1) 동양의 유기체적 세계관: 동양은 하늘과 땅, 인간이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라고 믿었다. 이는 높은 도덕성과 조화를 낳았지만, 자연을 객관적인 '수치'와 '법칙'으로 분리해서 정복하려는 수학적·기계적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2) 관료적 봉건주의: 중국의 뛰어난 관료 시스템은 기술을 국가 통제하에 두었다. 이는 안정적이었지만, 서구의 자본주의적 경쟁이 만들어낸 '폭발적인 혁신'을 허용하지 않았다.
3) 서구의 '분석적 칼날': 서양은 자연을 신의 섭리로부터 분리해 해부하고 분석했다. 니담은 이를 **'수학적 가설의 실험적 검증'**이라는 근대 과학의 방법론이 오직 서구에서만 확립된 결정적 이유로 보았다.
- 조지프 니담 『중국의 과학과 문명』 (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발간 시작: 1954년 (첫 권 출간 이후 그가 죽은 뒤에도 제자들에 의해 계속 보완되어 수십 권에 이르는 방대한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핵심 질문: "과거 어느 문명보다 앞서 나갔던 중국의 과학기술이, 왜 근대 산업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서구에 역전당했는가?"
서양이 동양을 이긴 이유: 서양이 잘나서가 아니라 유럽이 위치한 유라시아 대륙의 축(Axis)이 가로로 길어 작물과 가축의 전파가 쉬웠고, 지리적 파편화(산맥과 강) 덕분에 국가 간의 치열한 경쟁이 기술 발전을 가속화했다.
- 재레드 다이아몬드 (Jared Diamond) 『총, 균, 쇠』 (1997년)
"연구자들은 공항이나 대학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설문 조사를 요청한 뒤, 답례로 펜 한 자루를 고르게 했다. 펜은 다섯 자루가 한 세트였는데, 그중 **네 자루는 같은 색(예: 검은색)**이었고 **한 자루만 다른 색(예: 주황색)**이었다.
결과는 극명했다. 미국 학생들은 압도적으로 **'희귀한 색깔'**의 펜을 선택했다. 그들은 남들과 다른 것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독특함(Uniqueness)을 확인하려 했다.
반면 동아시아 학생들은 대부분 **'흔한 색깔'**의 펜을 골랐다. 그들에게 유별난 색을 고르는 것은 집단의 조화를 깨뜨리거나 튀어 보이려는 부정적인 행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동양인들에게는 다수가 선택하는 '평범함' 속에 머무는 것이 곧 안전과 화합을 의미했다."
- 리처드 니스벳 『생각의 지도』 (원제: The Geography of Thought: How Asians and Westerners Think Differently...and Why, 2003)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天は人の上に人を造らず人の下に人を造らずと言えり)
- 후쿠자와 유키치 『학문의 권장 (学問のすすめ, 가쿠몬노 스스메)』 (1872년)
(* 만민평등(萬民平等)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후쿠자와 유키치는 평등사상을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의 제국주의 행보를 적극 옹호하였다.)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은 적을 추격해 쓰러뜨리고 그 여자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 것이야. 그 여자들의 몸을 침대와 베개 삼아 노는 것, 이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일세.
- 칭키즈 칸
(* 페르시아의 역사가 **라시드 앗 딘(Rashid-al-Din Hamadani)**이 집필한 **『집사(Jami' al-tawarikh, 1307년경)』**에 기록됨)
"취하면 미인의 무릎을 베고 눕고, 깨어나면 천하의 권력을 쥐노라."
(醉臥美人膝 醒掌天下權)
- 이토 히로부미의 한시 「낙중작(洛中作)」
시기: 1860년대 후반 ~ 1870년대 초반 (메이지 유신 전후)
"조선은 본래 논할 가치가 없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당면의 적은 지나(중국)이기 때문에 우선 병사를 파견해 경성에 주둔 중인 지나 병사를 몰살하고 바다와 육지로 대거 지나에 진입해 곧바로 북경성을 함락시켜라."
"눈에 띄는 것은 노획물밖에 없다. 온 북경을 뒤져 금은보화를 긁어모으고 관민 가릴 것 없이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빠뜨리지 말고 '창창 되놈'들의 옷가지라도 벗겨 가져와라."
“언젠가 한 번은 인도, 중국의 현지인 등을 다스리는 것에서 영국인을 본받을 뿐만 아니라, 그 영국인까지도 노예처럼 압제해 그 수족을 속박시키고 동방의 권세를 우리 한 손에 움켜쥐자고 장년 혈기가 넘치던 시절에 내밀히 마음속에 약속”
- 후쿠자와 유키치 『시사신보(時事新報)』 (1894년),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福翁自伝) (1899년)
"서구의 국가들은 아직 개척되지 않은 세계의 지역들을 식민화하고, 그 거주민들에게 문명의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이 자신들의 손에 달려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렇지만 이제 극동의 바다에서 떠오르는 우리들 일본인들은, 이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작업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사람들(서양인들)은, 하지만, 우리가 이 작업에 필요한 능력을 가졌는지 의심하곤 한다."
("Western nations have long believed that on their shoulders alone rested the responsibility of colonizing the yet unopened portions of the globe and extending to the inhabitants the benefits of civilization; but now we Japanese, rising from the ocean in the extreme Orient, wish as a nation to take part in this great and lorious work. Some poeple, however, are inclined to question whether we possess the ability requisite to this take.")
- 타케코시 요사부로 『일본 식민 통치사 (Japanese Rule in Formosa)』 영문판 서문 (1907년)
Japan as Number One
- 에즈라 보겔이 1979년에 출간한 책 《Japan as Number One》.
표현의 기원: 'Japan as Number One'이라는 파격적인 표현은 에즈라 보겔이 이 책의 제목으로 사용하면서 전 세계적인 고유명사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일본의 경제 성장을 '한강의 기적'처럼 '동양의 기적'이라 부르기는 했으나,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될 것이라고 학술적으로 선언한 것은 보겔이 처음이다.
배경: 당시 미국은 오일 쇼크와 베트남 전쟁 후유증으로 신음하던 반면, 일본은 제조업과 교육 시스템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하버드대 교수였던 보겔은 "미국이여, 일본의 시스템을 배워라"라고 일갈하며 이 책을 냈다.
2.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과의 연결
보겔의 책이 '일본의 저력'을 분석한 외부의 시선이었다면,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NO」と言える日本)》**은 내부에서 터져 나온 오만함의 상징이다.
출간 연도: 1989년 (버블 경제의 정점)
저자: 이시하라 신타로(정치인), 모리타 아키오(소니 창업주)
내용: "미국의 군사력도 일본의 반도체 기술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이제 일본은 미국의 눈치를 보지 말고 당당하게 거절(No)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결 고리: 보겔이 1979년에 뿌린 '1위'라는 찬사가 10년 동안 일본인의 무의식 속에 '우월감'으로 자라났고, 그것이 1989년 버블의 광기 속에서 '미국을 뛰어넘었다'는 오만함으로 폭발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3. 버블 시대 재팬의 오만함과 몰락
1980년대 후반 일본은 전 세계 부의 정점에 서 있었다.
광기: 도쿄 황거(皇居)의 땅값이 캘리포니아 전체 땅값보다 비쌌고, 일본 기업들이 뉴욕의 록펠러 센터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사들였다.
오만의 대가: "일본 방식이 세계 표준"이라 믿었던 그들은 1990년 버블이 붕괴하며 '잃어버린 30년'의 늪에 빠졌다. 보겔이 찬양했던 시스템이 오히려 변화를 가로막는 족쇄가 된 셈이다.
무너진 도쿄, 그리고 비밀리에 진행되는 의문의 프로젝트!
제3차 세계대전 이후 붕괴된 도쿄
그곳에 새로 건설된 혼란스러운 도시 ‘네오 도쿄’ (2019년 배경)
오토바이를 몰며 폭주를 일삼던 소년 ‘카네다’는
친구 ‘테츠오’가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하며
정부의 비밀 프로젝트 실험체가 되었음을 알게 되는데…
—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영화 《아키라》 (1988년) 소개문구
(* 흥미로운 건, 1988년의 일본은 풍요로웠지만 영화 속 '네오 도쿄'는 파괴와 혼돈으로 가득했다는 점이다. 마치 다가올 버블 붕괴와 일본의 몰락을 예견한 듯한 이 지독한 냉소주의가 《아키라》의 진정한 힘이었다.)
두견새 이야기
울지 않는 두견새를 마주했을 때 각 인물이 보인 태도다.
1) 오다 노부나가: "울지 않으면 죽여버려라, 두견새" (나카누라바 코로시테시마에)
자신의 명령이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가차 없이 제거하는 단호하고 잔혹한 성격을 상징한다.
2) 도요토미 히데요시: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들어라, 두견새" (나카누라바 나카세테미세요)
기발한 책략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황을 반전시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능수능란함을 뜻한다.
3) 도쿠가와 이에야스: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려라, 두견새" (나카누라바 나쿠마데 마토우)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는 신중하고 끈기 있는 면모를 보여준다.
- 원전 출처: 『갑자야화(甲子夜話, 캇시야와)』
저자: 마쓰라 세이잔 (히젠국 히라도 번의 번주)
집필 연도: 1821년 ~ 1841년 사이 (약 20년간 집필)
후지TV 《기묘한 이야기》 (1990~) 에피소드
1. 떠들석한 식탁(1994년)
고등학생인 코지는 부모님, 할아버지와 누나까지 어느 집보다도 화목한 가정에서 산다. 늘 언제나 가족이 모두 함께 모여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그의 집. 대학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코지의 합격자 발표에 가족 모두가 기뻐한다. 그런데 다음 날 누나가 프랑스로 갑자기 유학을 간 사실을 알게되고, 그 때 부터 주인공의 가족들이 하나 둘 떠나게 된다. 영문을 알 수 없게 된 주인공….
2. 자기 카운슬러(2004년)
주인공은 오디션에서 매번 낙방하는 보잘것없는 배우 지망생이다. 연기력도 부족하고 인생에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어 고민하던 중, **'자기 카운슬러'**라는 기묘한 상담소를 발견한다.
"일본 만화는 인간의 내면을 흔든다고 생각합니다. <진격의 거인>의 예를 들면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상대를 맞이하며 계속되는 절망을 얻지만 조금씩 한걸음 한걸음 희망을 얻습니다. 즉, 일본 만화는 약자를 위한 컨텐츠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인간의 내면의 약함을 건드려서 그 인간으로 하여금 나쁘게 말하면 세뇌, 좋게 말하면 안정을 취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장, 꿈, 감성 이런 것들을 잘 끌어내는 것입니다. 어쨌든 독자에게는 판타지와 대리만족감을 완전히 충족시킵니다."
- 네이버 블로그 댓글
역시 아로님의 비범한 통찰력은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빛나네요.
맞습니다. 저 역시 혼자 있기를 매우 선호하고 회사에서 구조정리하듯 정기적으로 제 주변의 인연들을 갈아치우는 것을 서슴치 않지만, 항상 내면의 언저리 어딘가에서는 늘 근원적인 사랑에 대한 동경과 합일에 대한 충동이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동성과 이성을 가리지 않고 사람의 체온을 느끼는 Hug를 참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저와는 다른 이성의 체온을 느끼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살갖과 살갖이 부딪치며 그 사람의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는 따뜻한 체온을 느끼는 게 왜 그렇게 좋은 것인지...
그래서 그런지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들은 시간 날 때 마다 마치 아기처럼 안고 업고 난리도 아니랍니다. 특히나 저는 아마도 영계에서 설계했을 법한 모종의 이유로 인해 현생의 7살에 불현듯 홀연이 무의식에서 의식이 생성되는 경험을 체험했고 그래서 그전의 경험들은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아있던 터라 분리되어 있던 대상과 하나되고자 갈구하는 힘이 더 컷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이비 종교에도 한 때 빠져 봤었고 유란시아책을 깊게 신봉하는 이유 또한 그런 것들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로님 말씀처럼 대상을 좀 더 크게 확대하고 축소하느냐의 차이지, 태아와 어머니와의 결합, 사랑이라는 화학적 감정을 느끼는 남녀가 서로 결합하고자하는 근원적인 욕구는 분리되어 있던 신과 합일되고자 하는 주제로 필연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사실 인간이 진선미를 추구해나가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신과 하나 되기 위한 장구한 흐름의 한 일환인데 아로님 같은 대현자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추구하고자하는 것이 신과 하나 되기 위한 행동의 단초임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거의 십년 만에 다시 사회와 고립이 되다 보니 과거에 수시로 진행했던 인연과의 단절을 스스로 시행하면서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사람들과 친근하게 지내고자 하는 욕구가 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속에 섞이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이중적인 모순을 봅니다. 이 고질적인 외로움에 대한 갈증이 해갈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로님 댓글을 보면서 30년 전에 즐겨들었던 넥스트의 노래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즐겨 들어주시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fMgmy1VItBY 하나 더 있습니다. 이상은의 에코송이라는 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BGidYwJbxs
아로님 같은 현자께서 몸소 찾아와 이렇게 가치있는 댓글을 남겨주시니 저로선 참 영광입니다. 고이고이 박제해서 기억하고 싶을 정도의 가치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아무쪼록 건강 조심하시고 따뜻한 온기가 맴도는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유파시현, 네이버 블로그 댓글 (2022)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