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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투기자본과 이라크, 그리고 사담 후세인 1: 이라크를 지배했던 하심 왕가와 누리 알 사이드 총리는 친영, 친서방 노선을 추구했다; 영국/프랑스의 패배 및 미국/소련/이집트의 승리로 끝난 제2차 중동전쟁 발발 2년 뒤인 1958년, 이라크 군부대 장교였던 압둘카림 카심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붕괴시키고 하심 가문의 파이살 2세를 살해한다 (영국 영토였던 이라크를 빼앗기 위해 미국 록펠러-CIA가 개입한 것일 개연성이 크다); 카심이 1959년 즈음부터 소련에 붙으려고 하자 (그 전까지 이라크는 미국과 소련 사이의 완충지대buffer state였음), 1963년 CIA는 쿠데타를 통해 그를 암살시킨다; 이후 BP/벡텔 등 록펠러계 기업들이 이라크 정권에서 암약하고, CIA는 1968년 다시 한번 쿠데타를 일으켜 사담 후세인 일당에게 권력을 몰아준다; 당대 미국 정가의 기류를 보면, 린드 B. 존슨과 리처드 닉슨 정권은 반공을 표방했던 바트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손자이자 CIA 고위 간부를 지낸 Archibald Roosevelt가 그 연락책이었다; 1959년에 일어난 압둘카림 암살 미수사건을 후세인의 업적으로 포장한 이라크의 1980년 프로파간다 영화 Al-ayyam al-tawila는 뜬금없게도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제작한 Terence Young가 감독을 맡았다;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미국과 CIA는 후세인에게는 인공위성 기술을 제공하고, 이란에게는 이스라엘을 통해 무기를 사들여 자금을 제공하는 등 (이란-콘트라 사건 당시 이란 팔레비 왕조와 이스라엘은 사이가 좋았다) 양면작전을 펼쳤다; 사담의 이라크는 미국 외에도 서유럽, 이집트에서 화학 무기를 수입했다; 1980년의 이란 이라크 전쟁은 보통의 중동전쟁과 다르게 유가를 올린 게 아니라 하락시켰는데, 표면적인 설명은 이란과 이라크가 재정난에 석유를 헐값에 팔아 원유 가격이 안정되었다는 것이지만 (그 덕을 한국의 전두환 정권도 본다), 실은 이라크의 석유 수출 중단에도 OPEC이 여분의 석유를 보관했기에 가능했고, 무엇보다도 1979년 소련을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과의 전쟁에 끌어들인 CIA가 소련으로 하여금 전쟁을 지속시키기 위한 유인책으로서 저유가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1980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에 몰래 개입해서 질질 끌게 만들었던 (그럼으로써 레이건 당선에 기여했던), 데이비드 록펠러의 CIA 연락책, Miles Copeland는 1980년대 중반에도 바트당이 CIA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CIA는 소련 편에 붙었던 이집트의 나세르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그는 밝혔다); 1990년 7월에는 사담의 쿠웨이트 침공 일주일 전에 아랍어가 유창한 여성인 주쿠웨이트 미국대사가 후세인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미국은 아랍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 석유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중동의 유가가 높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 사담의 쿠웨이트 침공을 유도한다; 미군은 사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전부터 이라크의 침공을 대비한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9.11 11년 전인 1990년 9월 11일, 조지 H.W. 부시는 그 유명한 '신세계질서' 연설을 한다; 국제투기자본의 후세인 제거 및 이라크 전쟁의 목적 (1) 아라비아에 미군 주둔시키기 (2) 테러리즘을 '가상 적'으로 하는 세계질서의 창조 및 자신들의 정체 위장 (3) 미 군수산업체와 공화당의 이익 증가 (4) 중동 위기를 통한 유가 조정 (주로 고유가를 통한 석유회사 이익 창출)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는 동유럽과 소련의 완전해체를 위한 국제투기자본의 작업;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친소 보수 대표들의 미스테리한 죽음; 경제가 가장 튼튼했던 루마니아에서 유일하게 수장이 살해된 이유?

전쟁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미국-베트남 전쟁 (1955-1975), 소련-아프간 전쟁 (1979-1989), 핀란드 - 소련 전쟁 (겨울전쟁) (1939-1940), 영국-보어 전쟁 (1899-1902)

1982년 6월 7일 레이건과 요한 바오르 2세의 만남 - "폴란드를 움직여 소련을 붕괴시키는 인류 역사상, 최대 비밀 동맹 중 하나" - 레이건정부 수석 안보 보좌관, 리처드 앨런

러시아식 유머 모음

"외계인이 소련군 돌로 만들었다"…美 CIA 보고서 ‘화제’

“알카에다요? 그거 미국이 만들었어요.”(힐러리 클린턴 2011.12.27) 1-2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모두를 같이 통제한다." (Henry Kissinger, 1973); 골다 메이어, 안와르 사다트 모두 키신저와 핫라인 갖고 있었다; 4차 중동전쟁 발발 직전, 골다 메이어는 공습경보를 6차례나 무시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게 준다는 항공모함을 안 주었다; 데이비드 록펠러가 가장 인상적인 지도자로 꼽았으며, CFR의 단골 초청 멤버였던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는 이스라엘 대상으로 파죽지세로 승리할 때 돌연 공격을 멈추었다; 2군단과 3군단의 거리도 40km나 벌려놓았다; 이 전쟁의 여파 네 가지 (1) 석유 기반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화 (2) 이스라엘 (로스차일드)의 일방적 독주시대 끝나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한몸으로 움직이게 됨 (3) 미국 (록펠러-키신저)이 소련 (로스차일드) 대신 중동세계 중재자로 등극 (4) 1978년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과 아랍권 분노로 이집트는 아랍연맹에서 축출되고 안와르 사다트는 1981년 아랍 근본주의자에게 암살당함

제이콥 쉬프는 독일의 유대계 은행과 리먼 브라더스 등에 호소하여 러일전쟁 때 일본을 경제적으로 지원했다; 그는 또한 1917년에는 레닌과 트로츠키에게 각각 2,000만 달러의 자금을 제공하여 러시아 혁명을 지원했다. 그리고 혁명이 완수되고, 소련이 수립된 이후로도 경영자 일족 중 쉬프의 족벌이 있었던 퍼스트 내셔널 은행, 뉴욕 록펠러의 체이스 맨해튼 은행, JP모건 등과 협조하여 소련에 대한 대출을 계속 이어갔다.

헨리 포드의 포드사와 나치 독일, 소비에트 커넥션

국제투기자본과 한국전쟁 3-1

국제투기자본과 한국전쟁 2-2

러시아 짜르에게 폭동을 일으켰던 유태인들; 스탈린은 로스차일드 눈치를 봐서 반유대주의자였고, 유태인 숙청을 했음에도, 1948년 5월 17일 세계 최초로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고 (미국은 1949년 1월 31일이 되서야 이스라엘 인정), 이스라엘의 유엔가입에 찬성했으며, 또 벤 구리온에게 무기도 지원해줬는가? 그러나 로스차일드 측과 관계가 틀어졌는지 1953년 2월 9일 시온 테러리스트, 텔아비브 소련대사관 폭탄 테러 발생; 2월 12일 소련-이스라엘 단교; 그러다 3개월 뒤 의문사; "소련이 무기를 줘서 이스라엘을 살렸다." (D. Ben-Gur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