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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with the label 로스차일드
빌더버그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 (1) 빌더버그에 대한 위키 문서가 처음 만들어진건 2016년 6월 18일로 1954년 만들어진 이 비밀그룹에 대한 실체가 무려 63년만에 공론화되었음을 의미 - 아마 이 즈음부터 빌더버그가 자체 웹사이트도 공개하고, 비밀주의 기조에서 공개주의 기조로 방침을 전환한듯하다 (2) 흥미롭게도 데이비드 록펠러의 최측근인 헨리 키신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폴 볼커 3인방이 빌더버그 회의에도 자주 등장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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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규제위원회 부위원장 (총리 또는 부총리급) 김태유가 제시한 부동산 문제 해결책 1: 노태우 수도권 백만호 부동산 공급으로 집값 안정화되었지만 시간 지나 베드타운이 되었다; 공급정책은 단기적으로는 효과있지만, 부동산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근본적 해결책 아니야 - 실리콘밸리도 공급만으로 해결안되니 텍사스로 옮겨; 유일한 해결책은 인플레이션보다 더 오른만큼 부동산에 대한 초과수익 환수제; 신성장동력으로 이끄는 기업에 대한 투자, 즉 주식에 대한 배당금 과세는 줄이되, 부동산 초과수익은 환수하는 것, 즉 부동산 보유세는 늘리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 / 다만, 김태유 이론의 문제점은 부동산이 불로소득이고 부동산 양극화가 약탈적 경제인 것, 그리고 이것이 한국의 과당경쟁+저출산+높은 자살률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은 정확히 지적했으나, 공산주의 이론처럼 인간의 욕망에 대해 너무 근시안적 접근은 아닌가 하는 것 - 자기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정권 핵심부 인사들 및 재벌들이 규제를 받아들이고 강남 3구 집값에 대한 초과이익을 정부에 순순히 반납할까? 노무현 정부 때도 거래세, 보유세에 더해 종부세까지 더했으나 오히려 부동산 매도호가만 올라갔다; 그리고 그렇게 몇년동안 진흙탕 논쟁 상태에서 지지고 볶고 싸우는 동안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될 게 뻔한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도쿄도 같은 초거대 메가시티처럼 서울-경기도-경기도 외곽지역을 아우르는 '초거대 수도권 라인'을 형성하는게 낫지 않나? 단순히 부동산 가격 뿐 아니라, 서울에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 다 몰려있어 지방균형발전은 애초에 쉽지가 않다 / 네덜란드의 자본투자로 부자가 된 영국과 영국의 자본투자로 부자가 된 미국 / 인간이 불행해지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이 심할 때 - 모두가 가난할 때는 가난에 대한 개념이 없다 - 해서, 행복 연구에서 가난한 나라들의 행복이 높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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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1기 내각에서 로스차일드, 이스라엘, 네오콘, 엑슨모빌, 골드만삭스, CFR, 해리티지 재단 연합이었다면, 2기 내각은 이스라엘, 피터 틸, 일론 머스크, 조지 소로스 영향력이 두드러져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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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투기자본과 프랑스 1: 1974년 대통령이 된 지스카르 데스탱는 삼극위원회 회원으로 친시장주의, 유럽통합, G7, 대서양 관계 등의 국제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 그 후임으로 1981년 대통령이 되는 프랑수아 미테랑은 정부의 핵심 인사이자 대통령 보좌관이었던 엘리자베트 기구(Élisabeth Guigou)가 삼극위원회 회원이었으며, 록펠러계 창가학회 창립자인 이케다 다이사쿠와 만나기도 했다; 미테랑 정부는 데이비드 록펠러 지원으로 일시적 국유화 정책을 펼쳐 로스차일드계 은행들 (프랑스 로스차일드 은행, BNP 파리바, 소사이테 제네랄)을 국유화했고, 프랑스 로스차일드 가문 당주 기 드 로스차일드는 르몽드에 통렬히 비판하는 글을 기고한 뒤 뉴욕으로 도망친다 (결국 5년도 안가 주요 은행들은 시라크 정부 하에서 민영화로 복귀되었지만, 로스차일드 은행은 바클레이즈에 매각됨); 미테랑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1983년 이후 갑자기 시장경제 체제로 선회하였고, 미국 미사일의 서독 설치 반대 시위 때는 미국 미사일을 설치하라고 서독 의회에서 연설하기도 했으며, 반미 세력의 시위를 탄압하거나 소련의 미사일을 철수시키는 일에도 관여를 했다; 그 후임으로 1986년 대통령이 되는 자크 시라크는 원래 록펠러계 데스탱 정부의 총리 출신이고, 1989년 삼극위원회 파리 총회 참가 기록이 있으며, 미국 방문 때는 로널드 레이건, 조지 H.W. 부시, 헨리 키신저, CFR 쪽과 접촉했고, 유연고용제와 민영화를 실시하며 데이비드 록펠러식 신자유주의를 프랑스에서 본격화한다; 이외에도 1956년 수에즈 위기, 2009년 니콜라 사르코지에 의한 NATO 통합군사령부 전면복귀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과의 군사협력 강화를 보면 프랑스는 샤를 드골 이후 국제투기자본 (특히 미국)의 꼭두각시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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