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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 Climate Hoax Is Finally Over 2 - 기후위기를 예방해야한다면서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온 COP30 촌극과 빌 게이츠, 알 고어의 말바꾸기 / 빌 게이츠를 포함한 억만장자들이 AI 데이터 센터의 에너지 부족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Larry Fink)는 2024년 4월, 태양광과 풍력으로는 AI 구동에 근접할 수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 게이츠는 미국 내 단일 최대 토지 소유주이며, 제프 베이조스가 그 뒤를 쫓고 있습니다.

국제투기자본과 버트런트 러셀 4: 1920~1950년대 세계정부 기획자로서의 버트런트 러셀 (1) 록펠러 가문-채텀하우스---버트런트 러셀---페이비언 협회-런던정경대-록펠러 2세, 데이비드 록펠러-사회주의 커넥션 (2) 케임브리지 사도회, 핵무기 사용 옹호, 원자폭탄 도면, Random Variables를 통한 버트런트 러셀-빅터 로스차일드 커넥션 (3) 300인 위원회, 채텀하우스, 필그램 협회 커넥션 (4) 미국, 일본, 한국, 캐나다, 독일, 이탈리아 자유(민주)당/친영 친미 프리메이슨 커넥션 (5) 버트런트 러셀-프리메이슨 인도 자와할랄 네루 커넥션 (6) 록펠러 가문-예일대학교-Yali in China-마오쩌둥, 록펠러 가문-IPR(태평양 관계연구소)-조지 마셜-국공 내전 공산당 승리-마오쩌둥, 그리고 데이비드 록펠러-OSS---마오쩌둥---저우언라이-버트런트 러셀 커넥션 / 록펠러-러셀이 꿈꾼 '자유'는 국가의 간섭에서 벗어나 시장이 지배하는 자유이며, 개별국가의 주권이 해체되고 UN 같은 세계정부가 대두하는 자유다

빅터 로스차일드의 패착 2: MI5와 BIS, 그리고 모건 상사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로스차일드 가문은 록펠러-러셀 기획대로 영국을 몰락시키고 (이를테면 미국의 영국에 대한 가혹한 무기대여법이 그렇고, 미국 포트녹스에 금을 모이게 만들어 영국의 금본위제 종주국으로서의 지위를 붕괴시킨 것이 그랬으며, 독일군 공급으로 인해 영국 본토가 쑥대밭이 되게 방치한 것이 그렇다. 핵개발은 원래는 영국이 원천기술 갖고 있었으나 독일군 공습으로 미국에서 해서 맨해튼 프로젝트가 탄생했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은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 되었으며, 유지비용 문제로 인도를 포기해야 했다), 미국과 소련에 힘을 몰아주었으며 (소련에 대한 미국의 무기대여법은 거의 무상증자 수준이었다), 미국을 도구삼아 초국가적 세계정부 (UN)를 만들려고 했다 - 그 상징적 사건이 브레튼우즈 회의에서 영국인 케인즈 (빅터 로스차일드의 케임브리지 사도회 선배) 대신 미국인 화이트 (빅터 로스차일드의 KGB 간첩)의 제안을 수용해 미국 (달러) 중심 금융질서를 만든 것이고, UN본부 부지를 록펠러 2세가 기증한 뉴욕의 토지 위에 세우게끔 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악역(패권의 폭력성)은 록펠러와 미국이 맡게 하고, 로스차일드는 그 배후에서 데이터와 결제망을 쥐고 수익을 챙긴다"는 빅터의 기획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미국의 힘이 강성해지면서 1950년대 중반부터 MI6의 하청기관이었던 CIA은 독립했으며, 채텀하우스의 미국 지부였던 CFR는 독자적 권한을 갖기 시작한다; 그나마 1950년대에는 로스차일드 권력이 먹여줬으나, 196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어긋나기 시작한다; '영국이라는 국가 패권을 희생시켜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재편하려는 상위 세력간 합의'는 결국 빅터가 방심한 사이, 로스차일드에서 록펠러로 패권이 넘어간 것이다

킹-빙 사건(King-Byng Affair, 1926): 록펠러 2세의 베프인 대표적 록펠러계 윌리엄 라이언 맥켄지 킹(William Lyon Mackenzie King)의 자유당이 (버트런트 러셀-프리메이슨-록펠러 연합으로 만들어진 일본 자민당의 당명을 연상시킨다) 록펠러 빽 믿고 의회해산 해달라 요청하자, 영국 왕실을 대표하고 (로스차일드-영국을 대표하는) 캐나다 보수당을 챙기던 줄리안 빙 총독이 거절한 사건; 빙 총독의 결정으로 보수당이 정권을 잡았지만, 보수당 정부도 며칠 못 가 의회에서 불신임당하고 맙니다. 결국 선거가 치러졌는데, 여기서 킹 총리의 천재적인(혹은 영악한) 정치질이 발동합니다. 킹의 전략: "영국에서 보낸 총독이 감히 캐나다 국민이 뽑은 총리의 말을 무시해? 이건 영국의 간섭이다!"라고 선동했습니다. 민심의 동요: 캐나다 국민들은 스캔들은 잊어버리고 '캐나다의 자존심' 문제로 받아들였고, 킹 총리는 선거에서 승리하며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 이 사건 이후, 캐나다와 영국의 관계는 완전히 재정립되었습니다. 총독의 권한 박탈: "총독은 총리의 조언(요구)을 거부할 수 없다"는 관례가 대못처럼 박혔습니다. 영국과의 법적 분리: 1926년 '밸포어 선언'과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이어지며, 총독은 '영국 정부의 대표'가 아니라 단순히 **'국왕의 상징적 대리인'**으로 격하되었습니다. / 1960년대 사카린 밀수 사건의 본질이 중앙정보부 내 김종필 세력 (MI6, 로스차일드) vs 이후락 세력 (CIA, 록펠러)였던 것을 상기시키는 사건 / 무지랭이들의 착각과 다르게 하나의 세계정부는 존재하지 않으며, 국제투기자본 내에서도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는 여러 분파가 있다 / 해서, 국제투기자본의 빌 클린턴이나 도널드 트럼프도 최근 엡스타인 사건으로 곤혹을 치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