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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와 금주법 2: 존 D. 록펠러가 금주법 (1919-1930)을 서포트한 것은 석유의 경쟁상대였던 (에디슨과 포드가 예찬했던) 에탄올 시장을 완전히 도태시키고 1930년대의 석유 only 독재시대를 열기 위해? / 록펠러는 곡물로 연료를 만드는 에탄올을 농부들의 먹거리를 빼앗는 행위이자 토양을 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알코올 금지 움직임에 가세했다. 그는 스스로를 독실한 침례교 교인으로 포장했다 / 알코올 자유 법안 통과 (1906년):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1906년에 알코올 자유 법안을 만들어 의회에서 224대 7로 통과시켰다. / 사회 위생 센터 설립 (1913년): 연준 설립과 소득세 통과를 이룬 록펠러 주니어는 와바그(Paul Warburg)와 함께 사회 위생 센터를 설립했다. 이 센터의 역할은 소득세 도입을 위한 노동자들의 수익을 조사하는 것과 동시에, 석유화학이 전 산업 분화로 진출할 가능성을 모두 탐색하는 것이었다 / 소득세와 금주법의 연계: 1913년 소득세 통과 이후 정부 수입이 증가하자, 록펠러 지지 세력은 "소득세로 충분하니 주류세를 없애고 금주법을 만들자"고 설득할 수 있었다. 1918년 국세 수입의 75%가 소득세에서 나왔으며, 이는 주류세를 없애고 금주법을 도입하는 데 설득력을 제공했다 / 1925년 독일의 아이게 파벤(I.G. Farben)과 결탁하여 에탄올이 독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고 휘발유만 계속 들어가도록 조치했다 / 록펠러 2세는 1930년에 콜롬비아 대학 총장 니콜라이 머레이 버틀러에게 편지를 보내, 공화당과 민주당이 협력하여 금주법을 폐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뉴욕 타임스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보도됨).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록펠러를 칭찬했다.

1973년 록펠러계 CIA국장 리처드 헬름스가 MKUltra 관련 자료를 모두 없애고, 1974년 뉴욕타임스가 CIA와 록펠러 재단이 후원한 MKUltra의 실체를 폭로하고, 1975년 넬슨 록펠러가 허겁지겁 사건에 대해 규명한 것은 빅터 로스차일드의 공격 때문인가? 2

워싱턴 움직이려는 일본 국화클럽 2

면접관 몰래 AI 쓰고는 "실력"…퇴학 후 75억 쓸어담은 방법

아마존도 '극대노'한 한인 학생 정체..."빅테크 다 뚫었다" - 현행 테크기업 실시간 코딩 면접제도의 허점 드러내

석유회사와 친환경 운동을 배후에서 동시 조종하는 록펠러 일족 2

구 15개 일본 재벌이 GHQ의 통치 이후 해체되었다는 건 과장되었다; 후루카와 재벌의 경우도 마찬가지; 1대 당주는 시부사와 에이이치와의 친분으로 사업을 일으켰고, 2대 당주는 일찍이 요코하마에서 미국으로 유학한 코넬대학교 화학과 출신으로 후루카와 광산회사를 창립; 3대 당주는 게이오 고등학교를 졸업 후 컬럼비아 대학에 유학했으며, 남만주철도회사 창립위원으로서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군수물자 조달; 4대 당주는 하버드대 출신으로 GHQ에 의해 공직추방 당했으나, 하버드대 시절의 인맥을 살려 재벌해체나 공직추방의 영향을 최소화하였고 후루카와 임업 사장 역임; 5대 당주는 게이오 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으로 후루카와 전기공업 사장을 역임; 현 6대 당주는 가쿠슈인 경제학과 출신으로 후루카와 임업 사장 역임 중; 현재 후루카와 계열사들은 미즈호 계열; 2~4대가 미국 유학을 했던 것이 특이한 점; 메이지 시대인 1860년대 후반부터 쇼와 초기인 1920년대 말까지 일본 재벌 대부분은 국제투기자본 (미국, 영국)과 커넥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