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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투기자본과 유로달러, 그리고 빅터 로스차일드와 데이비드 록펠러의 치열한 권력투쟁 1: 냉전의 비밀 - 소련의 유로달러 대금은 유대계 민간 은행들(대표적으로 상업은행인 모스크바 나로드니 은행 런던 지점과 로스차일드 영향권의 런던 금융가)에 예치되어 있었다 / 미국정부가 FED 규제를 받지 않는 유로달러를 용인한 이유는 미국 내 규제를 피하면서도 미국 대기업(Multinational Corporations)들이 해외로 뻗어나가는 자금줄 역할을 해서 +해외 국가들의 금태환 요구 묵살가능+미국 국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미국 국내 금융시장 위기시 해외에서 차관 빌리기 용이 (안전밸브 역할) / 1950~60년대 당시 록펠러 등 미국 기업과 은행들은 미국 본토의 돈을 꺼내 해외에 마음대로 공장을 짓거나(FDI) 대출을 해줄 수 없었다 - 다만, 인드라 지적과는 다르게 법적 주체가 SEC(증권거래위원회)라기보다는, 달러 유출을 막으려던 미국 재무부와 연준(Fed)의 3대 자본통제 조치 때문 / 금태환제로 돌아가자는 것이 돌머리 같은 주장인 이유 중 하나는 1970년대 이전 브레턴우즈 체제하에서는 미국채의 무한 공급이 금태환제 때문에 불가능했다 - 즉, 당시의 미국채 공급은 지금처럼 월가 금융 시스템을 통해 전 세계 민간 투자자에게 마구 파는 상품이 아니라, 해외 중앙은행들이 미국의 금 금고를 털어가지 못하도록 묶어두는 '볼모(정치적 타협물)'에 가까웠다 / 미국이 트리핀의 딜레마를 감수하며 기축통화를 고수한 이유 (1) 구조적 강달러와 미국기업의 자산가치 극대화 (2) 시뇨리지의 극대화 및 화폐무한발권을 통한 무한신용창출 - 미국이 저지른 베트남 전쟁 등 통화팽창의 고통을 전세계가 부담해야함 (3)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독점과 제재 권력 - 모든 국제 무역이 달러로 결제된다는 것은, 전 세계 모든 돈의 흐름이 결국 뉴욕 연준의 청산 시스템(CHIPS 등)을 거쳐야 함을 의미 - 미국은 총칼을 들지 않고도 마음에 안 드는 국가나 기업의 달러 계좌를 동결하거나 차단하는 방식으로 '금융 핵무기'를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 1950~60년대 빅터 로스차일드의 데이비드 록펠러 규제 및 파트너쉽 거부: '현지 화폐(Local Currency) 결제망 배제' / 로스차일드를 비롯한 런던 시티 세력은 자신들의 '금융 인프라 장악력'을 과신한 나머지, 미국 자본의 '깡패 같은 확장력'을 과소평가하는 치명적인 안이함을 보였다 ① "판돈(통화)이 바뀌어도 도박장(런던)은 우리 것이다" ② 넬슨 록펠러-린드 B. 존슨 등에게 지시한 "미국의 자국 규제(족쇄)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 하지만 런던 세력은 미국 월가 재벌들의 집요함을 간과했다. 데이비드 록펠러를 비롯한 미국 은행가들은 로스차일드가 파운드화 결제망 진입을 막아버리자, 역으로 런던 시티 한복판에 '유로달러 시장'이라는 우회 통로를 개척해 거꾸로 런던의 유동성을 흡수해 버렸다

국제투기자본과 박정희, 록펠러, 그리고 한강의 기적 4: 1961년,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 후원으로 건국된 이스라엘의 마파이당이 박정희 정권을 세계 최초로 승인 / 1962년, 넬슨 록펠러와 박정희의 최초 밀접 접촉 / 1963년, 록펠러계 걸프 석유가 한국 정부와 울산 정유공장 건설을 위한 합작 투자 계약을 체결 - 당시 박정희 정부는 걸프사에게 한국 내 석유 공급 및 유통에 대한 사실상의 독점적 권한과 파격적인 면세 혜택을 부여 / 케네디라운드가 끝난 직후인 1968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일반특혜관세제도(GSP)가 채택되었다 - 논리: "선진국들이 서로 관세를 낮추다 보니(케네디라운드), 상대적으로 개도국의 제품은 가격 경쟁력이 더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니 개도국 제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더 낮춰주자." - 한국이 직접적 혜택을 봄 / 넬슨 록펠러계 린든 B. 존슨(Lyndon B. Johnson) 정부(1963~1969)는 베트남 전쟁의 대가로 한국에 엄청난 ‘무상 원조(Aid)’와 국방 지원, 그리고 경제 개발 차관(1억 5천만 달러 규모)의 물꼬를 터주었다 / 로스차일드 가문과 이스라엘의 아시아 대리인인 샤울 아이젠버그는 유럽의 유로달러와 차관을 한국으로 끌어오는 대동맥 역할을 함 - 포항제철 설비 우회 조달, 고리 원전 1호기, 월성 원전 1호기 도입 당시 차관 조달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 등이 그의 업적 / 1969년, 박정희에게 400만 달러 비자금 제공한 록펠러 계열 석유회사는 걸프 오일 - 로스차일드계 스위스 UBS 통해 제공 (문명자 기자 폭로 내용) / 한국에 가장 많은 차관(Loan)과 상업차관의 기회를 제공하며 한국 경제의 펌프질을 도운 미국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정부 - 미국은 직접 원조를 줄이는 대신, 세계은행(IBRD), 아시아개발은행(ADB) 및 미국의 수출입은행(EXIM Bank)을 통해 한국이 대규모 상업 차관과 공공 차관을 빌려 갈 수 있도록 길을 대폭 열어주었다 / 프레이저 보고서(Fraser Report)의 한계: 미국과 세계은행은 한국의 경제개발 방향을 사사건건 통제하고 반대했으며, 특히 포항제철(종합제철소) 건설은 "깜냥이 안 된다"며 펀딩을 전면 차단했고 이 때문에 포항제철은 한일협정(1965년)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 청구권으로 1968년에 설립되어, 1970년에 착공 시작, 1973년에 생산을 시작했다 - 목숨을 건 네고: 박정희 정부는 일본을 찾아가 "이 돈 안 받으면 안 받았지, 제철소 못 지으면 우리 미래는 없다"며 청구권 자금을 제철소 건설 자금으로 전용하겠다고 일본 정부를 설득해 낸다. 일본의 기술(신일본제철 등)과 자금을 끌어와 미국의 방해 공작을 우회한 것이다 / 데이비드 록펠러의 1971년, 1974년 방한과 JP모건체이스의 민간 신용대출 확대: 체이스맨해튼 은행은 당시 한국 영업을 대폭 확장하며 한국 정부와 주요 기업(현대중공업, 대한항공 등)의 대형 프로젝트에 수천만 달러 규모의 상업차관을 직접 대출해 주거나 신용보증을 섰다. 록펠러가 움직이자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시티은행 등 미국의 메이저 금융사들도 연달아 한국에 대출을 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