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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with the label 데이비드 록펠러
록펠러 카르텔이 키운 유로달러의 역사1: 로스차일드발 미국 SEC/FED 증권규제로 인해 1950년대 이전 미국의 해외기업 직접투자는 불가능했고, 1950-60년대에는 유로달러 형태로만 해외투자가 가능했다; 유로달러의 형태 (1) 런던 자회사를 통해 유럽인, 일본인들에게 달러 대출 (2) 미국 단기국채 T-Bill 판매 (3) 유로채 매입 통해 유럽에 간접투자 (4) 제한적으로 자회사 통해, 유럽이나 일본에 프로젝트 파이낸스나 공동투자(consortium finance) - 석유 플랜트, 조선소, 인프라 건설 등; 국제투기자본, 특히 록펠러 계열은 1960년대 유로달러를 통해 미쓰비시, 피아트, BP에 자금을 대출해줌 - 각각 일본, 이탈리아, 영국 경제를 키움; 유로달러의 상징적 출발점은 1956년 런던의 모스크바 나로드니 은행(Moscow Narodny Bank) 사건 - 소련은 냉전 상황에서 미국 내 달러자산이 동결될 위험을 우려했음. 그래서 런던지점에 달러를 예치했는데, 이 달러 예금이 미국 은행이 아닌 영국은행 간 거래로 재운용되면서 ‘유로달러 시장(Eurodollar market)’이 형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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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빅터 로스차일드 vs 데이비드 록펠러발 오일쇼크 전쟁 이전에 벌써 미국은 베트남 전쟁과 존슨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으로 인플레가 3.8%로 치솟았고, 이에 미국 연준은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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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10년마다 상승, 하락 반복했는데, 2020-2025년 금상승기였으니 2025-2030년도 금값 상승할까? 금은 경제위기 때마다 상승하는데, 금값 상승률이 역대 최고였던 것이 1970년대 오일쇼크였으니, 그 당시 달러 기축통화를 놓고 로스차일드 vs 록펠러간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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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세비라 자주인라디오 이 빠가가 로스차일드, 록펠러, 프리메이슨을 하나로 묶어서 보고 섬세함이 없는 건, 1950~1970년대 이들 세력 간 치열한 권력암투의 역사를 몰라서 그렇다; (1) 미국 SEC 등 금융당국의 규제로 록펠러 가문이 오랫동안 유럽 진출을 못했고, 그 유일한 탈출구가 유로달러 시장이었기에, 195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로스차일드와 바클레이즈의 견제를 받으며 유로달러 시장에 진출 (데이비드 록펠러 자서전 Memoir에 나오듯, 로스차일드 은행은 록펠러에게 대놓고 협조 거부) - 1970년대가 되어 뉴욕의 록펠러 은행들이 주도권 장악 (2)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달러 부족 사태는, 로스차일드/CIA가 일으킨 베트남 전쟁으로 악화되었는데, 달러/금만으로 유동성 유지 및 확대에 한계가 있으니 1969년에 만들어진 것이 IMF SDR 체제 (3) 1971년의 닉슨 쇼크와 OPEC의 페트러달러 협상의 배후가 헨리 키신저고, 그 배후가 록펠러 가문인 반면, 로스차일드 가문이 1907년부터 대주주였던 로열더치셸은 페트로달러 체제로 인해 국제시장에서의 영향력이 급격히 약화 됨 (4) 데이비드 록펠러가 로스차일드/유럽 귀족들이 주축인 빌더버그 상임위원회에서 미국 대표로 일본을 넣자고 제안했다 거절당하자 1973년에 만든 게 삼극위원회 (5) 1973년 구상되어 1977년 시작된 국제 결제 메세징 시스템인 SWIFT 역시 은행간 세계화를 목표로 한, 데이비드 록펠러 작품으로 봐야 (6)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언론 및 FED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를 집요하게 공격 - 이란 대사관 사태 (1979-1981) 때도 욕을 먹음 - 지미 카터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서야 (1977-1981) 록펠러 천하가 시작되고,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시대가 되어서는 미국 공화당도 완전히 록펠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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