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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그동안 나는 '조슈-이토 히로부미-일본 육군-야마가타 아리토모-흑룡회'를 미쓰이-로스차일드 파벌에, '사쓰마-일본 해군-야마모토 곤노효에'를 미쓰비시-HSBC/베어링/자딘매디슨 파벌에 연결시켜 생각해왔으나, 좀 더 생각해보니 거꾸로 연결시킨 것이었다; 사실 그 반대의 관계가 맞다; 이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사건이 1914년, 조슈-일본 육군 파벌의 대장격인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배후로 의심되는 지멘스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드러난 사실은 독일 지멘스가 일본 해군에 뇌물을 줬을 뿐 아니라, 로스차일드-빅커스가 미쓰이 물산 및 일본 해군과 오랜 협력관계였다는 사실이다; HSBC/베어링/자딘매디슨 세력은 미쓰비시와 조슈 5인방을 적극 활용, 1850년대부터 일본에 개입해왔고 (이토 히로부미의 경우, 영국 프리메이슨 세력이 영국유학을 시켜줬다. 이토 히로부미가 1872년 10월 14일 도쿄 신바시 요코하마를 잇는 최초의 철도 건설을 건설한 것도 Oriental Bank Corporation로부터 돈을 빌려써서), 메이지 정부 역시 영국 Oriental Bank Corporation와 HSBC 자본을 빌려써서 1894-5년 청일전쟁을 했으나, 로스차일드 자본은 1904-5년 러일전쟁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일본에 개입해서 미쓰이를 키워줬다 - 한편으로는 러일전쟁을 통해 일본 해군을 키워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쓰이/미쓰비시/오쿠라 재벌을 통해 흑룡회를 후원하고 중화민국 장제스와 일본 육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 로스차일드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남만주철도회사의 대주주가 되었다; 일본의 석유 수입 역시 로스차일드의 셸 컴퍼니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다; 그러나 이 역학구도가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은데, 이토 히로부미나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미쓰이/미쓰비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기도 했고 (19세기 후반, 일본 선박의 90% 가까이 장악했던 미쓰비시 해운에서 보듯, 미쓰비시에게 더 힘을 실어줬지만), HSBC/베어링/자딘매디슨 계열의 오리엔탈 은행은 1873년 미쓰이 재벌에게 융자를 해주었으며, 미쓰비시 2대 총수 이와사키 야노스케는 1897년 로스차일드 지령으로 일본에 금본위제를 우격다짐으로 도입한 마쓰카타 마사요시와 인척 관계를 맺기도 했다; 여튼 1904-5년이 중요한 분기령이 되는 해다 - 그 이전까지는 미쓰비시-HSBC/베어링/자딘매디슨 파벌이 일본을 대리통치했고, 그 이후부터 1937년 만주사변 전까지는 미쓰이-로스차일드 파벌이 일본을 대리통치했다

구 15개 일본 재벌이 GHQ의 통치 이후 해체되었다는 건 과장되었다; 후루카와 재벌의 경우도 마찬가지; 1대 당주는 시부사와 에이이치와의 친분으로 사업을 일으켰고, 2대 당주는 일찍이 요코하마에서 미국으로 유학한 코넬대학교 화학과 출신으로 후루카와 광산회사를 창립; 3대 당주는 게이오 고등학교를 졸업 후 컬럼비아 대학에 유학했으며, 남만주철도회사 창립위원으로서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군수물자 조달; 4대 당주는 하버드대 출신으로 GHQ에 의해 공직추방 당했으나, 하버드대 시절의 인맥을 살려 재벌해체나 공직추방의 영향을 최소화하였고 후루카와 임업 사장 역임; 5대 당주는 게이오 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으로 후루카와 전기공업 사장을 역임; 현 6대 당주는 가쿠슈인 경제학과 출신으로 후루카와 임업 사장 역임 중; 현재 후루카와 계열사들은 미즈호 계열; 2~4대가 미국 유학을 했던 것이 특이한 점; 메이지 시대인 1860년대 후반부터 쇼와 초기인 1920년대 말까지 일본 재벌 대부분은 국제투기자본 (미국, 영국)과 커넥션이 있었다

세계 최초로 아로가 밝히는 일본 최초의 주식회사, 다이이치칸교은행 회사명의 비밀: 회사명에서 대놓고 '나 로스차일드-모건계'요, 하고 고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