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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건체이스는 애플카드, 코인베이스 생태계 통해 스테이블 코인 시장 장악하려고 하나?; 고래들의 비트코인 보유량 증감 추이는 비트코인 가격 예측의 결정적 지표?

국제투기자본과 리플 1: 리플은 이더리움을 대체할까? 리플 투자의 이유들?; 아로가 분석해보니 리플은 BNP파리바, 소사이테 제네랄, 스탠다드 차타드 등 로스차일드 지분이 꽤 들어가 있네?

1-2 세비라 자주인라디오 이 빠가가 로스차일드, 록펠러, 프리메이슨을 하나로 묶어서 보고 섬세함이 없는 건, 1950~1970년대 이들 세력 간 치열한 권력암투의 역사를 몰라서 그렇다; (1) 미국 SEC 등 금융당국의 규제로 록펠러 가문이 오랫동안 유럽 진출을 못했고, 그 유일한 탈출구가 유로달러 시장이었기에, 195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로스차일드와 바클레이즈의 견제를 받으며 유로달러 시장에 진출 (데이비드 록펠러 자서전 Memoir에 나오듯, 로스차일드 은행은 록펠러에게 대놓고 협조 거부) - 1970년대가 되어 뉴욕의 록펠러 은행들이 주도권 장악 (2)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달러 부족 사태는, 로스차일드/CIA가 일으킨 베트남 전쟁으로 악화되었는데, 달러/금만으로 유동성 유지 및 확대에 한계가 있으니 1969년에 만들어진 것이 IMF SDR 체제 (3) 1971년의 닉슨 쇼크와 OPEC의 페트러달러 협상의 배후가 헨리 키신저고, 그 배후가 록펠러 가문인 반면, 로스차일드 가문이 1907년부터 대주주였던 로열더치셸은 페트로달러 체제로 인해 국제시장에서의 영향력이 급격히 약화 됨 (4) 데이비드 록펠러가 로스차일드/유럽 귀족들이 주축인 빌더버그 상임위원회에서 미국 대표로 일본을 넣자고 제안했다 거절당하자 1973년에 만든 게 삼극위원회 (5) 1973년 구상되어 1977년 시작된 국제 결제 메세징 시스템인 SWIFT 역시 은행간 세계화를 목표로 한, 데이비드 록펠러 작품으로 봐야 (6)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언론 및 FED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를 집요하게 공격 - 이란 대사관 사태 (1979-1981) 때도 욕을 먹음 - 지미 카터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서야 (1977-1981) 록펠러 천하가 시작되고,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시대가 되어서는 미국 공화당도 완전히 록펠러화

'JP모건, 중국 원자바오 전 총리 딸과 비밀 계약'

소수몽키: 대형투자자들의 비트코인/이더리움 매집 열풍; 하버드의 비트코인 투자, 미국정부 '경단위의' 퇴직연금에 비트코인 투자 허용, 그리고 JP모건의 비트코인 담보 대출상품 출시

2025년 미국 주식 섹터별 수익률 1. Communications (구글, 메타, 스포티파이, 레딧, 넷플릭스, 디즈니) 2. Industrials (보잉, GE) 3. 원자재 (희토류) 4. 테크 (MS, 엔비디아, 팔란티어, 퍼플렉시티) 5. 금융 (버크셔, JP모건, VISA) 6. 공익사업 (전기, 수도, 가스, 연료) 7. 필수 소비재 (월마트, 코스트코, 코카콜라, 펩시) 8. 부동산 9. 에너지 10. 경기 소비재 (아마존, 테슬라, 맥도날드, 나이키) 11. 헬스케어

제이미 다이먼의 사기질 / 트럼프 대선레이스 책임지던 골드만삭스 비트코인 펀드상품의 선두주자

비트코인을 그렇게 폄하하던 월가의 생양아치들, 제이미 다이먼과 래리 핑크의 태도 변화는 비트코인에 대한 관점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그 가치를 알고 있었지만 매집이 끝난 뒤 홍보를 시작하게 된걸까?

인드라 주장처럼 1830년대 반메이슨 운동의 주역인 Thurlow Weed가 로스차일드 끄나풀이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단 반메이슨 정당이 1830년대부터 휘그당(훗날의 공화당)의 뿌리가 되어 링컨 정부를 지지한 것은 맞고, 로스차일드 역시 링컨 정부를 지지한 것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로스차일드가 밀어주었던 재무장관 솔로몬 체이스는 위드와의 반목 때문에 사임을 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