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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투기자본과 공산주의, 러시아 혁명 1: 마르크스와 친했던 무정부주의자, 프리메이슨 바쿠닌: 마르크스와 로스차일드는 일심동체; 흔히 알려진 것처럼 맑스는 가난하거나 힘든 삶을 산 적이 없었다; 독일에 영토의 30%를 넘겨준 볼셰비키 정부; 스탠더드 오일, 로열더치셸, BP, JP모건, Arm & Hammer, 유니온퍼시픽 등 소련에서의 활동으로 영업이익 급증; 파리코뮌 사태 때 로스차일드 소유 건물 200여개는 무사; 레닌과 로스차일드 때문에 망한 노벨 왈: Nationlization is a beautiful word for a very ugly thing; 레닌의 '선택적 국유화': 내셔널시티은행 등 로스차일드 은행 제외한 은행 국유화 - 해외 금 결제독점; 하베스트 인터내셔널, 웨스팅하우스, 스탠더드 오일, 뉴욕라이프 등 미국기업들도 국유화 피해갔다; 레닌이 설립하려고 했던 해외투자은행 제이콥 쉬프의 돈 레닌에게 인출해준 사람이 은행장, 해외담당 여신국장은 막스라고 제이피모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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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대 막스 뮐러: 교육을 통해 인도를 정복하자 / 영국의 조작된 인도역사를 받아들인 인도 지배계층의 믿음과 배치되게 최근 유전학 연구에서는 인도 상류층이 아리안이 아닌 오히려 원주민 유전자를 보존하고 있어 / 영국과 동인도회사의 멍멍이들: Rja Ram Mohan Roy, 마하트마 간디, 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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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라는 환상: "모두가 대기업을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양당 체제는 일당 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말을 연상시키는 미테랑 전 총리 부인의 폭로: 미테랑 왈, "세계은행과 신자유주의에게 이미 발목 잡혔다. 정부는 장악했어도 권력은 잡지는 못했다"; 뉴딜 정책 입안자 Rexford Tugwell의 발언: 뉴딜은 망했다; 미국 클리블랜드 상원의원 Frederic C. Howe: "입법을 할 수 있어야 큰 돈을 번다", "사회가 당신을 위해 일하도록 하라", "미국 상원 의회는 독점주의자들의 안식처다. 국민복지 슬로건처럼, 국민을 대표하는 이들이 아니다. 이들은 대기업의 이사이며, 변호인이며, 중개인이다."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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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투기자본과 베르사유 조약, 독일의 하이퍼 인플레이션, 그리고 나치 독일의 발흥1: 베르사유 조약에 조인한 영국 측 필립 사순, 미국 측 대표 폴 워버그 - 로스차일드계; 미국과 독일에서 각각 중앙은행장이었던 워버그 형제는 빌헬름 쿠노를 독일총리로 임명; 인플레로 똥값이 된 독일 경제 장악한 국제투기자본; 국제투기자본의 히틀러와 나치당 지원은 제2차 대전 준비용; 독일 중앙은행장 얄마르 샤흐트와 영국 중앙은행장 몬태규 노먼의 재임기간이 거의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 록펠러 스탠더드 오일은 히틀러 대선자금 지원; 그 외에도 지멘스, Bosch, 티센 등이 히틀러에게 자금 지원; BIS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의 서방세계 자금 통로 - CIA 아버지인 앨런 덜레스도 역할; 존 포스터 덜레스, Sullivan & Cromwell, 카네기 재단, 시티 오브 런던은 독일 중앙은행 총재 샤흐트에게 30억 달러 지원; 미국 자본 I.G. 파벤이 나치 독일을 키웠고, Zyklon-B를 만들었으며, 그것으로 유태인을 학살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도 기업도 모두 이 학살에 동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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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세비라 자주인라디오 이 빠가가 로스차일드, 록펠러, 프리메이슨을 하나로 묶어서 보고 섬세함이 없는 건, 1950~1970년대 이들 세력 간 치열한 권력암투의 역사를 몰라서 그렇다; (1) 미국 SEC 등 금융당국의 규제로 록펠러 가문이 오랫동안 유럽 진출을 못했고, 그 유일한 탈출구가 유로달러 시장이었기에, 195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로스차일드와 바클레이즈의 견제를 받으며 유로달러 시장에 진출 (데이비드 록펠러 자서전 Memoir에 나오듯, 로스차일드 은행은 록펠러에게 대놓고 협조 거부) - 1970년대가 되어 뉴욕의 록펠러 은행들이 주도권 장악 (2)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달러 부족 사태는, 로스차일드/CIA가 일으킨 베트남 전쟁으로 악화되었는데, 달러/금만으로 유동성 유지 및 확대에 한계가 있으니 1969년에 만들어진 것이 IMF SDR 체제 (3) 1971년의 닉슨 쇼크와 OPEC의 페트러달러 협상의 배후가 헨리 키신저고, 그 배후가 록펠러 가문인 반면, 로스차일드 가문이 1907년부터 대주주였던 로열더치셸은 페트로달러 체제로 인해 국제시장에서의 영향력이 급격히 약화 됨 (4) 데이비드 록펠러가 로스차일드/유럽 귀족들이 주축인 빌더버그 상임위원회에서 미국 대표로 일본을 넣자고 제안했다 거절당하자 1973년에 만든 게 삼극위원회 (5) 1973년 구상되어 1977년 시작된 국제 결제 메세징 시스템인 SWIFT 역시 은행간 세계화를 목표로 한, 데이비드 록펠러 작품으로 봐야 (6)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언론 및 FED에서 데이비드 록펠러를 집요하게 공격 - 이란 대사관 사태 (1979-1981) 때도 욕을 먹음 - 지미 카터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서야 (1977-1981) 록펠러 천하가 시작되고,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시대가 되어서는 미국 공화당도 완전히 록펠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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