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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with the label 최진석
최진석: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그리고 그 시선의 고도는 본질을 꿰뚫는 추상 사유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인류 문명사에서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는 농경과 치수를 위해 기하학이나 천문학 같은 지식을 고도로 발달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차원에 머물렀을 뿐, 현상을 넘어선 근본 원인을 추상화하지 못했다. 그리스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구체적인 데이터에 파묻히지 않고, 이를 보편적 개념과 이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자연 현상 속에서 신의 변덕이나 분노를 읽는 대신 자연의 근본 원리를 묻기 시작했고, 눈에 보이는 감각 세계 너머의 완벽한 점과 선, 즉 이데아를 사유했다. 이 위대한 추상 능력 덕분에 그리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정신적 좌표를 찍을 수 있었고, 문명의 영원한 주류로 우뚝 섰다. 이처럼 그리스는 시선의 높이가 곧 삶의 격조이자 문명의 높이임을 실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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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테이션과 상징을 통해 삶을 향유하는 존재인 인간 / 신화와 상징, 장미의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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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물질적 요소 대 정신적 요소의 비율은 1 대 3이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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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성역의 해체와 무화(無化)를 가장 완벽하게 제도화하고 공식 선언한 정치 체제가 바로 자유민주주의다. 자유민주주의는 권력의 출처에서 신비주의와 신성함을 완전히 걷어냈다. 권력은 하늘이나 혈통 같은 성역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평범한 시민들의 표라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수치화된 계산을 통해서만 정당성을 얻는다. 정해진 임기가 지나면 그 권력이 마법처럼 소멸한다는 사실 자체가 권력의 신성함을 원천 차단하는 장치다. 반면, 독재자나 전체주의자들이 꼭 임기를 연장하여 장기 집권을 꿈꾸는 것은 이 성역 없는 규칙을 거부하려는 속성 때문이다. /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그 어떤 진리나 가치도 공론장에서 비판, 검증,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원칙에 있다. 철학자 칼 포퍼가 말한 ‘열린 사회는 바로 이 비판 가능성이 중단 없이 보장되는 사회다. 과학이든 역사든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증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여기는 성역이니 건드리지 마라”는 선언은 공동체의 합리적 이성과 토론을 마비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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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그렇지 않고서야, 5.18을 법으로 가둘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스타벅스 가지 말라고, 대통령이 나설 수 있겠는가. “손가락”들은 민주주의가 꽃피웠다고 난리지만, 한 여름밤의 “달”은 자유민주주의가 죽었다고 숨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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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인간성의 정의는 생물학적 고정값이 아니라 문명의 지향에 따라 변천해온 드러남과 확장의 역사다. / 과거 산업 혁명기의 기계가 그러했듯이, AI 역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간성을 드러내 줄 것이다. / 기계가 반복적인 육체노동을 대체하자, 인간성에 감춰져 있던 자유 시간과 창의적 여가의 가치가 드러났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한 노동이 인간 본질의 전부인 줄 알았으나, 기계 덕분에 인간은 노동 너머의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표준화 너머의 개성이다. 모든 것이 기계로 찍어낸 듯 똑같아지는 세상이 오자, 역설적으로 인간만이 가진 개성적 차이가 인간다움의 신영토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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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스트의 궤변이 만연했던 시대에 플라톤이 자신의 아카데미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을 들어서지 말라(Ageometretos medeis eisito)"라고 붙혀둔 이유 = "수학 시험 100점 맞고 오라"는 뜻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상(Vibe)에 속지 않는 훈련이 되었는가?"를 묻는 것; 그가 진짜 거르고 싶었던 타깃은 "팩트와 논리 없이, 오직 화려한 말빨과 감성(바이브)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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