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투기자본(미국/일본/조총련)-북한 커넥션 2; 1989년 정주영 방북 주선, 89~90년에 있었던 북한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교섭 배후, 95년 일본 자민당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당시 간사장이 대북 쌀 지원을 할 때도 대북 밀사역할, 97~98년 현대 금강산개발사업 교섭과정 배후, 정몽헌을 북한에 연결시켜준 장본인,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배후였던 한국계 일본인 요시다 다케시; 요시다의 아버지는 김일성과 친분이 있었고, 요시다 본인은 조총련에서 활동했으며, 김정일과 친한 사이였다 - 2000년대 이후 정체가 드러난 다음에는 밀사로서의 가치가 떨어져 대북 무역 사업에 종사; 미국인 브로커이자 무기상 김영완 역시 요시다처럼 베일에 싸인 인물로, 현대그룹 정몽헌, 국정원, 민주당 권노갑, 김대중 정부 비서실장 박지원과 함께 복잡하게 얽혀 불법 대북 송금을 도왔다; 왜 조총련/자민당과도 관계가 깊은 일본인 브로커와 미국인 브로커(CIA?), 국정원이 한국 민주당과 북한정권, 종북좌파를 후원해왔는지 생각해봐야할 것; 노무현 정부의 특검 연장 불허는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와 마찬가지로 친북 정권임을 보여준다; 노벨상 위원회 멤버의말 - 김대중이 북한에 뇌물먹인거 알았으면 노벨상 안 줬을 것
국제투기자본(미국/일본/조총련)-북한 커넥션 2; 1989년 정주영 방북 주선, 89~90년에 있었던 북한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교섭 배후, 95년 일본 자민당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당시 간사장이 대북 쌀 지원을 할 때도 대북 밀사역할, 97~98년 현대 금강산개발사업 교섭과정 배후, 정몽헌을 북한에 연결시켜준 장본인,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배후였던 한국계 일본인 요시다 다케시; 요시다의 아버지는 김일성과 친분이 있었고, 요시다 본인은 조총련에서 활동했으며, 김정일과 친한 사이였다 - 2000년대 이후 정체가 드러난 다음에는 밀사로서의 가치가 떨어져 대북 무역 사업에 종사; 미국인 브로커이자 무기상 김영완 역시 요시다처럼 베일에 싸인 인물로, 현대그룹 정몽헌, 국정원, 민주당 권노갑, 김대중 정부 비서실장 박지원과 함께 복잡하게 얽혀 불법 대북 송금을 도왔다; 왜 조총련/자민당과도 관계가 깊은 일본인 브로커와 미국인 브로커(CIA?), 국정원이 한국 민주당과 북한정권, 종북좌파를 후원해왔는지 생각해봐야할 것; 노무현 정부의 특검 연장 불허는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와 마찬가지로 친북 정권임을 보여준다; 노벨상 위원회 멤버의말 - 김대중이 북한에 뇌물먹인거 알았으면 노벨상 안 줬을 것
https://m.youtube.com/watch?v=-TFXZzFizPo
https://ko.wikipedia.org/wiki/%EC%9A%94%EC%8B%9C%EB%8B%A4_%EB%8B%A4%EC%BC%80%EC%8B%9C
요시다 다케시(일본어: 吉田 猛, 1956년? ~ )는 재일 한국인으로, 한국 이름은 박박이다.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재학 중인 1983년 조총련이 운영하는 일본 학교법인 오학원에 포섭되어 간첩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국군보안사령부에 연행되어 고문, 기소, 처벌받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3월 16일 박박에 대한 간첩조작 의혹사건에 대한 조사를 개시하여, 동년 6월 30일 오학원 이사장 오영석 등이 사망했기에 박박이 간첩행위를 정말 지시받았는지 여부를 조사할 수 없어 그 범죄사실이 조작되었는지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박박이 보안사에 의해 고문을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로서 형법 제125조 폭행, 가혹행위죄에 해당하며 형사소송법 제420조7호, 제422조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진실규명결정 판정을 내렸다.
2011년 7월 박을 비롯하여 윤용진, 이정후 등 사건 관련인들에 대한 재심이 개시되었고, 같은 해 12월 서울고법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등의 자백이 고문에 의한 임의성 없는 진술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2012년 6월 대법원이 고법의 판결을 확정하여 관련인들은 사건 28년만에 무죄가 확정되었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00041119341
현대의 대북창구는 송호경 아.태 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지만 이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한 인물은 요시다 다케시라는 재일동포 로비스트인 것으로 알려졌다.
요시다씨는 40대 초반으로 일본과 북한간 무역을 전문으로 하는 신일본산업사장을 맡고 있다.
요시다씨는 일본내에서도 손꼽히는 "북한통" 친북인사로 이 분야에서는 이름이 꽤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89~90년에 있었던 북한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교섭을 막후에서 중개했으며 97~98년의 현대 금강산개발사업 교섭과정에도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같은 인연으로 이번 남북정상회담 협의에서도 우리 정부와 현대를 상대하는 북한측 파트너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내에서도 일부 최고위층들만 그를 직접 만났을 만큼 베일에 가려 있는 인물이다.
요시다 타츠유키씨는 김일성 주석과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90년 일본의 유력 정치인이었던 가네마루씨의 방북과 북한에 억류됐던 후지산마루호 선장 등의 석방 등 북~일간 주요 사안을 중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요시다 다케시씨는 아버지가 신일본산업의 사장 신분으로 로비스트로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지난 80년대 이 회사의 평양 주재원으로 오랫동안 북한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https://www.donga.com/news/amp/all/20021004/7869099/9
김대중 정부와 북한 지도부와의 밀사로 활약해 온 재일동포 2세 출신 일본인 요시다 다케시(吉田猛) 신일본산업 사장은 지난해 이후로는 거의 북한 관련 창구 역할을 하지 않고 본업인 북한과의 무역업에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70년대부터 북-일간 비밀파이프 역할을 해오며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사업을 따내는데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나 최근 들어 그의 ‘존재’가 너무 알려지는 바람에 ‘밀사’로서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90년대 북-일간 접촉 때는 물론 95년 일본 자민당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당시 간사장이 대북 쌀 지원을 할 때도 대북 밀사역할을 하는 등 대표적인 대북 창구역할을 해왔으나 요즘 들어 전혀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8월 말 북-일 정상회담 계획이 발표되기 며칠 전에도 전혀 다른 인물이 국회를 돌며 북-일 정상회담 관련 물밑접촉을 조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일본의 한 소식통은 “1, 2년 전까지만 해도 대북 관련 비밀업무는 반드시 요시다를 통해야 했지만 요즘에는 다른 인물로 대체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현대아산의 사업이 진전되지 않으면서 표면적인 활동은 크게 줄었다”면서 “그러나 일본 투자자를 북한에 소개하는 등 무역상사로서의 중개업은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요시다 사장이 경영하는 신일본산업은 최근 북-일 무역이 부진해지고 투자중개 사업도 크게 감소하자 지난해 회사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사무실도 도쿄 번화가인 마루노우치에서 간다로 이전했다. 한편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은 4일 금감위에 대한 정무위 국감에서 요시다 사장이 현대, 아태평화위 인사와 만난 시기와 장소,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공개했지만, 이 같은 정보를 입수한 경위나 출처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제13-15대 국회의원 권노갑 權魯甲 | Kwon No-gab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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