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자키 준이치로의 《Some Prefer Nettles》
번역
모기장이 다시 사각거렸다. 이번에는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사가 더듬거리며 안으로 들어와 가나메의 베개맡에 있는 램프를 손으로 찾아 스위치를 켰다.
“좀 더 큰 전구로 가져다드릴까요?”
“이 정도면 충분해요. 옛날 책들은 원래 글씨가 크니까.”
“덧문은 열어둘까요? 너무 더우면 안 되잖아요.”
“그러면 좋겠어요. 나중에 제가 닫을 수 있으니까요.”
오히사가 나가고 나자 가나메는 스스로 모기장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방은 그리 크지 않았고, 삼베 모기장이 공간을 다시 잘라놓으니 더욱 비좁아져 두 개의 요가 거의 맞닿을 정도였다. 가나메와 미사코에게는 색다른 잠자리 배치였다. 집에서는 여름밤이면 가능한 한 큰 모기장을 치고, 히로시를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이 양쪽 끝에서 잠을 잤다.
가나메는 조금 따분한 듯 엎드려 몸을 돌리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연녹색 모기장 너머 도코노마에 걸린 그림을 알아보려 했다. 수수하고 중성적인 색조의 그림으로, 풍경화인 듯했고 세로보다 가로가 길었다. 하지만 모기장 안에만 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에 방의 나머지 부분은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그림의 세부도 화가의 서명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 아래에는 그가 청화백자로 된 향로라고 짐작한 물건이 그릇 안에 놓여 있었다. 방 안에는 은은한 향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그는 이제야 처음 그 냄새를 알아차렸다. 매화 향인 것 같았다.
순간 그는 침대 옆 어두운 구석에서 오히사의 희고 희미한 얼굴을 본 것 같았다.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가 곧 정신을 차렸다. 그것은 노인이 아와지에서 가져온 인형이었다. 얌전한 물방울무늬 기모노를 입은 여자 인형이었다.
열린 창문으로 갑자기 바람이 불어들더니 소나기가 시작되었다. 가나메는 굵은 빗방울이 나뭇잎을 때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한쪽 팔꿈치로 몸을 일으키고 나무가 우거진 정원의 깊숙한 곳을 바라보았다. 비를 피해 들어온 작은 초록색 개구리 한 마리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기장 옆면 중간쯤에 달라붙어 있었다. 침대맡 램프 빛이 개구리의 배에 반사되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됐군.”
미닫이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옛날식 일본 책을 예닐곱 권 한 팔에 안고, 모기장 너머 어둠 속에 희끄무레하게 앉아 있는 것은 인형이 아니었다.
맞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Some Prefer Nettles》 이야기야. 한국어로는 보통 **《여뀌 먹는 벌레》**로 알려져 있어.
짧게 요약하면, 가나메와 미사코라는 부부가 이미 서로에게 애정이 거의 식었지만, 이혼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를 이어가는 이야기야. 가나메는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에 끌리면서도 동시에 일본의 전통문화, 특히 장인의 예술·인형극·고전적인 여성상에 점점 매혹된다. 미사코는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아들과 가족관계, 체면 때문에 결혼을 바로 끝내지 못한다. 소설은 이 부부의 붕괴 과정과 함께 근대 일본인이 서구화와 일본 전통 사이에서 겪는 정체성의 갈등을 보여준다.
핵심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어.
-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관계가 즉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는 욕망뿐 아니라 가족, 습관, 체면, 책임으로 묶여 있다.
- 근대화와 전통의 충돌이 개인의 내면에도 그대로 들어온다. 가나메의 결혼문제는 단순한 부부문제가 아니라, 서구적 근대성과 일본 전통 사이에서 흔들리는 그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 다니자키는 어느 한쪽을 단순히 찬양하지 않고, 인간은 모순된 욕망을 동시에 품고 산다는 걸 보여준다. 새것을 원하면서도 옛것에 끌리고, 자유를 원하면서도 기존 관계를 놓지 못한다.
한 줄로 요약하면:
《Some Prefer Nettles》는 무너져가는 결혼생활을 통해, 사랑·욕망·전통·근대성 사이에서 갈라지는 인간의 내면을 그린 소설이야.
맞아. 그렇게 읽는 게 작품의 핵심에 상당히 가깝다. 다만 도쿄 = 서양 / 오사카 = 동양처럼 완전히 일대일로 놓기보다는, 도쿄 = 근대화·서구화된 일본 / 간사이의 오래된 세계 = 전통 일본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해.
장인 — ‘전통 일본’을 살아 있는 취향으로 보존하는 사람
미사코의 아버지는 단순한 보수적인 노인이 아니다. 그는 분라쿠, 고서, 전통 인형, 향, 기모노, 옛 생활양식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향유하는 인물이야.
그래서 그는 가나메에게 일종의 대안적 삶의 모델을 보여준다.
가나메는 처음에는 서양식 생활과 현대적 취향을 가진 사람인데, 장인을 따라 전통 예술을 접하면서 점차 이런 세계에 끌린다. 장인은 말하자면:
“근대 일본이 버리고 있는 과거의 미학을 끝까지 살아내는 인간”
이다.
동시에 중요한 건, 다니자키가 그를 단순히 ‘좋은 전통의 수호자’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거야. 그는 자신의 취향에 맞게 여자와 생활환경까지 미학적으로 연출한다. 즉 전통은 자연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보존·재현된 세계이기도 해.
오히사 — ‘전통적 여성성’이 인간의 모습으로 구현된 존재
오히사는 미사코와 거의 정반대야.
미사코는 비교적 현대적이고 자신의 욕망을 가진 여성이고, 결혼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한다. 반면 오히사는:
- 기모노
- 얌전한 행동
- 전통적인 말투와 몸가짐
- 남성에게 순응하는 태도
- 옛 일본의 미적 분위기
를 체현한다.
그래서 가나메에게 오히사는 단순한 여성이 아니라 하나의 미적 이상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네가 방금 읽은 장면도 그래서 상당히 중요해.
가나메가 어두운 곳의 인형을 오히사로 착각하잖아.
이건 거의 노골적인 상징이야.
오히사 ↔ 일본 인형
즉 가나메의 눈에서 오히사는 점점 ‘살아 있는 여성’이라기보다 전통 일본의 미학을 구현한 아름다운 대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오히사는 전통의 아름다움인 동시에 남성의 취향에 맞게 만들어진 여성이라는 불편한 면도 갖고 있어.
미사코와 오히사의 대비도 중요함
대략 이런 구조야.
| 미사코 | 오히사 |
|---|---|
| 현대 여성 | 전통적 여성 |
| 독립적 욕망 | 순응적 |
| 현대적 결혼의 위기 | 옛 남녀관계 |
| 현실적 인간 | 미적 대상으로 이상화됨 |
| 가나메에게 익숙해서 욕망이 식음 | 낯설고 오래된 것이라 새롭게 매혹됨 |
그래서 가나메가 오히사의 세계에 끌리는 건 단순히 다른 여자에게 끌리는 것이 아니라,
서구화된 현대 일본에서 전통 일본으로 미적 취향이 이동하는 과정
이기도 해.
도쿄 vs 오사카는 서양 vs 동양인가?
대체로 맞지만 조금 수정해야 한다.
더 정확하게 하면:
도쿄 = 근대 일본 / 서구화 / 새로운 생활양식
간사이·오사카·교토·아와지의 옛 문화 = 전통 일본 / 고전적 미학
이 대비야.
다니자키 본인에게도 이건 상당히 자전적인 문제였어. 그는 원래 도쿄 출신이고 젊었을 때는 서구적·도시적·모던한 것에 강하게 매혹됐지만, 관동대지진 이후 간사이로 옮긴 뒤 전통 일본문화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Some Prefer Nettles》는 바로 그 전환기에 쓰인 작품이라, 가나메의 변화가 어느 정도 다니자키 자신의 미적 전환을 반영한다고 읽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오사카 전체 = 전통”은 아니다. 오사카도 이미 상당히 근대적인 상업도시야. 작품이 이상화하는 건 현대 오사카라기보다 간사이에 남아 있는 오래된 문화층이야.
그래서 작품 전체 구조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가나메의 결혼 위기는 동시에 일본 근대인의 문화적 정체성 위기다.
그는
서구화된 현대성 ↔ 일본의 전통
미사코 ↔ 오히사
현대적 자유 ↔ 전통적 질서
살아 있는 현실 ↔ 미학적으로 완성된 과거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리고 다니자키가 아주 흥미로운 건 전통이 더 아름답다고 느끼면서도, 그것이 인형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세계일 수도 있다는 점까지 동시에 보여준다는 것이야.
그래서 오히사를 인형으로 착각하는 장면은 작품 전체의 핵심 이미지 중 하나라고 봐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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