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좌파의 대부 백낙청은 미국 CIA 블랙요원인가? 1: 부친은 악질 친일파로 교토제국대 법대 출신 백붕제 / 큰아버지는 백병원과 인제대 세운 백인제로 1944년 종로에 900평 넘는 대저택을 소유한 최상류층 - 역시나 납북되어 비참하게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 / 백낙청은 경기도 졸업 이후 미국으로 떠나 브라운대 학사, 하버드대 영문학 석박사 / 유엔 고등학생 때 연설, 브라운대 수석으로 졸업생 대표로 연설 / 부친은 6.25 때 납북 /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 초장기 재임, 퇴임 후 명예교수 - 서울대 인문대를 장악하다싶이 함 / 창작과비평 사주로 고은, 신경숙, 리명희, 도올, 황석영 인맥이며, 초중교 국어교과서 내용에 막대한 영향 끼쳐 / 창비 어려울 때 베스트셀러 내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백낙청과 북한 공작원 한충목의 연관성 / 2000년초 서울대 교수 퇴임 이후에도 더 노골적으로 정치 활동 - 한미 FTA와 MD 반대, 미군철수와 연방제 옹호, 국가보안법 폐지, 천안함 폭침론, 박왕자 피살사건 때 북한 책임 없다고 두둔 등 북한을 옹호 / 역시나 CIA블랙요원으로 추정되는 노엄 촘스키 지지도 받아 / 노무현을 변호하고, 곽노현 단일화 앞장서 / 통진당 13명 국회진출 배후 / 통진당 인맥: 한명숙, 유시민, 이정희 / 김영삼 때 통일부총리 지낸 한완상과 더불어 "원탁회의"를 통해 문재인을 지원 -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라는 카피도 백낙청 작품 / 문재인 정부의 유홍준 문화재정창 임명 / 윤석열 퇴진 운동 배후도 백낙청 / 원불교와 홍석현 인맥? / 백낙청tv 인맥: 한반도평화포럼, 민주연구원, 조국, 이재명 오찬 / 백낙청 왈: 이재명은 김대중 이래 최고의 대통령 - "제2의 촛불개혁"을 강조 / 이재명 다음 대선주자로 조국을 꼽아 / 박원순, 이해찬 장례위원
한국 좌파의 대부 백낙청은 미국 CIA 블랙요원인가? 1: 부친은 악질 친일파로 교토제국대 법대 출신 백붕제 / 큰아버지는 백병원과 인제대 세운 백인제로 1944년 종로에 900평 넘는 대저택을 소유한 최상류층 - 역시나 납북되어 비참하게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 / 백낙청은 경기도 졸업 이후 미국으로 떠나 브라운대 학사, 하버드대 영문학 석박사 / 유엔 고등학생 때 연설, 브라운대 수석으로 졸업생 대표로 연설 / 부친은 6.25 때 납북 /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 초장기 재임, 퇴임 후 명예교수 - 서울대 인문대를 장악하다싶이 함 / 창작과비평 사주로 고은, 신경숙, 리명희, 도올, 황석영 인맥이며, 초중교 국어교과서 내용에 막대한 영향 끼쳐 / 창비 어려울 때 베스트셀러 내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백낙청과 북한 공작원 한충목의 연관성 / 2000년초 서울대 교수 퇴임 이후에도 더 노골적으로 정치 활동 - 한미 FTA와 MD 반대, 미군철수와 연방제 옹호, 국가보안법 폐지, 천안함 폭침론, 박왕자 피살사건 때 북한 책임 없다고 두둔 등 북한을 옹호 / 역시나 CIA블랙요원으로 추정되는 노엄 촘스키 지지도 받아 / 노무현을 변호하고, 곽노현 단일화 앞장서 / 통진당 13명 국회진출 배후 / 통진당 인맥: 한명숙, 유시민, 이정희 / 김영삼 때 통일부총리 지낸 한완상과 더불어 "원탁회의"를 통해 문재인을 지원 -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라는 카피도 백낙청 작품 / 문재인 정부의 유홍준 문화재정창 임명 / 윤석열 퇴진 운동 배후도 백낙청 / 원불교와 홍석현 인맥? / 백낙청tv 인맥: 한반도평화포럼, 민주연구원, 조국, 이재명 오찬 / 백낙청 왈: 이재명은 김대중 이래 최고의 대통령 - "제2의 촛불개혁"을 강조 / 이재명 다음 대선주자로 조국을 꼽아 / 박원순, 이해찬 장례위원
https://www.youtube.com/watch?v=yeXfwSoj3a0
아짐:
원불교는 100년도 안된 자생종교로 그리 크지 않은 교세에 비해서 유명인 교도비중이 상당히 높습니다. 대표적으로 홍라희 외에도 한지성(백낙청씨 부인)= 원불교 여성회장, 법계(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김영란 대법관.. 재계(삼성 이건희.홍나희,
2010년 8월13일자 인터넷 매체 <통일뉴스> 보도에 따르면, 백낙청은 “한충목 대표가 北의 공작원, 김지선, 리창덕, 양철식과 접촉했다고 구속됐는데, 전부 제가 아는 이름이고, 저도 접촉을 많이 했다. 공개적으로 자수한다”고 말했다.
백낙청이 언급한 한충목은 북한 공작원들을 만나 指令(지령)을 받고 맥아더 동상 파괴 난동,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등을 벌인 혐의(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회합 등)로 구속 기소된 인물이다.
한충목은 북한의 指令(지령)에 따라 좌파단체들과 연계해 2005년 9월 인천에서 「맥아더 동상 철거 집회」를 열어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등 10여 차례에 걸쳐 반미집회를 주최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특히 북한 공작원들은 한충목에게 ▲ 김일성 수령님을 본받아 대중사업을 강화하고 대중 속에 들어가 대중을 발동해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에 나설 것 ▲김영삼·황장엽 역적들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에 나설 것 ▲미군철수공대위를 결성할 것 ▲미국의 북한인권법안 채택에 심각하게 대처할 것 등의 지령을 내린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공작원들은 또 “FTA, 평택 미군기지 등 공감을 같이하는 투쟁, 大衆(대중)이 참가할 수 있는 투쟁을 통해 각계각층을 반미투쟁으로 불러일으켜야 한다”면서 “시민·環境(환경)단체 등 새롭게 합류하는 단체들과 적극 연대해야 한다”고 지령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백낙청은 당시 행사장에서 “자진해서 혐의사실을 고백하면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상위에 있는 무서운 공작원이 안경호 (6.15북측위) 위원장 같다. 저는 그분도 여러 번 만났다. 그분한테 ‘이래라저래라’ 주문도 많이 들었다. 물론 제가 다 따른 것은 아니지만, 검찰 표현대로라면 지령이 될 수도 있겠다”고 자백했다.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27992
종북파란 친일파입니다.
쪽바리입니다.
백낙청은 북한 간첩이 아닙니다.
국유본 지시를 받아
북한 뉴라이트 조직
(별칭 아이리스, 김정은은 허수아비, 실제 권력은 북 쪽바리 조직이 장악했습니다)
과 접촉했던 것입니다.
이런 인사들이 많습니다.
북한 간첩으로 오인하고 있는데요.
실제로는 국유본 반한 친일 뉴라이트 간첩입니다.
다만, 친일인데 국유본 전술로 인해
친박정희 언론플레이를 하면
친일파 백낙청처럼 비판당합니다.
어차피 백낙청 같은 개색희가
박정희 대통령 때문이 아니라
당시 국유본 분파 투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부상하던 시절이기에
국유본에게 지시를 받건,
친일파답게 발빠르게 행동했건,
언론플레이를 한 것뿐이니
당대 국유본 본사와 동아시아 아시아지부 사이 이해관계 충돌로 보아야 하니
개색희 백낙청에게 어떤 자비심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miavenus&logNo=221113278833&referrerCode=0&searchKeyword=%EB%B0%B1%EB%82%99%EC%B2%AD
한민당부터 살펴 보면 이넘들이 쪽바리 골수들이어서
일제 때부터 지금까지 해처먹고 사는 넘들이라는 걸 아셔야 해요.
민주화다 뭐다 해서 이력 세탁한 넘들이죠.
백낙청 같은 색희가
박정희 정부 반대하면서
애비가 악질 쪽바리이고
자신이 종북 활동했는지를 잘 아셔야 합니다.
백낙청은 애비가 악질 친일파입니다.
중도 좌파 민족주의 박정희 정부를 반대해왔습니다.
CIA 블랙 요원으로 추정하는 노엄 촘스키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miavenus&logNo=221265527860&referrerCode=0&searchKeyword=%EB%B0%B1%EB%82%99%EC%B2%AD
박정희 정부 때인 1970 년대부터
남북 국력 격차가 역전이 되는 것은 물론
남북 국력 격차가 너무 극심해서 그대로 두어서는
즉각 남한 중심 통일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 쪽발 일성 가문 역사 왜곡 및 찬양 및 박정희 대통령 비하하기.
둘,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병쉰 만들기.
셋, 북핵 개발.
(단, 북핵 개발은 단지 한국 분단 체제 유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해서, 김종필 라인이 통일 한국 노선이라면,
쪽발 후락 라인은 분단 고착 한국 노선입니다.
1980 년대 중반 전두환 정권이 워커힐에서 북한 측과 비밀리에 접촉했었는데
이는 친일 반한 친 쪽발 민주당 노선인 쪽발 후락이 주선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당시 전두환은 쪽발 일성더러 위대한 민족 해방 장군으로 불렀습니다.
국유본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고 광주 항쟁을 일으키고 전두환 정권을 세울 때,
북한 측에서 혁혁한 공이 있었고,
광주 항쟁 이후 수습 문제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고 봅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과 주한 미국 대사, CIA 지부장이었던 도널드 그레그.
그가 현재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습니다.
도널드 그레그가 김대중 납치 자작극, 육영수 여사 시해, 박정희 대통령 시해,
광주 항쟁, 전두환 정권 탄생, 환빠 양성,
주사파 양성, 김대중 정권 탄생에 관여했다고
인드라는 보고 있습니다.
해서, 도널드 그레그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육영수 여사 시해 및 박정희 대통령 시해, 광주 항쟁 등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miavenus&logNo=221235172593&referrerCode=0&searchKeyword=%EB%B0%B1%EB%82%99%EC%B2%AD
백낙청은 애비가 악질 친일파입니다.
중도 좌파 민족주의 박정희 정부를 반대해왔습니다.
CIA 블랙 요원으로 추정하는 노엄 촘스키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2010년 8월13일자 인터넷 매체 <통일뉴스> 보도에 따르면, 백낙청은 “한충목 대표가 北의 공작원, 김지선, 리창덕, 양철식과 접촉했다고 구속됐는데, 전부 제가 아는 이름이고, 저도 접촉을 많이 했다. 공개적으로 자수한다”고 말했다.
백낙청이 언급한 한충목은 북한 공작원들을 만나 指令(지령)을 받고 맥아더 동상 파괴 난동,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등을 벌인 혐의(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회합 등)로 구속 기소된 인물이다.
한충목은 북한의 指令(지령)에 따라 좌파단체들과 연계해 2005년 9월 인천에서 「맥아더 동상 철거 집회」를 열어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등 10여 차례에 걸쳐 반미집회를 주최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특히 북한 공작원들은 한충목에게 ▲ 김일성 수령님을 본받아 대중사업을 강화하고 대중 속에 들어가 대중을 발동해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에 나설 것 ▲김영삼·황장엽 역적들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에 나설 것 ▲미군철수공대위를 결성할 것 ▲미국의 북한인권법안 채택에 심각하게 대처할 것 등의 지령을 내린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공작원들은 또 “FTA, 평택 미군기지 등 공감을 같이하는 투쟁, 大衆(대중)이 참가할 수 있는 투쟁을 통해 각계각층을 반미투쟁으로 불러일으켜야 한다”면서 “시민·環境(환경)단체 등 새롭게 합류하는 단체들과 적극 연대해야 한다”고 지령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백낙청은 당시 행사장에서 “자진해서 혐의사실을 고백하면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상위에 있는 무서운 공작원이 안경호 (6.15북측위) 위원장 같다. 저는 그분도 여러 번 만났다. 그분한테 ‘이래라저래라’ 주문도 많이 들었다. 물론 제가 다 따른 것은 아니지만, 검찰 표현대로라면 지령이 될 수도 있겠다”고 자백했다."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27992
출판사 창작과비평사의 발간인이며, 1963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 문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순수문학을 비판하고, 민족문학, 참여문학을 주창하며, 이에 대한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는 등 민족 문학의 폭을 넓히는데 이바지했다. 그가 제시한 민족 문학론, 분단 문학론은 대한민국 문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반독재, 반미 운동 등 정치 운동에도 참여했다. 본인이 직접 나서기 보다 주로 배후에서 조정을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정치 평론, 논쟁 등에 참여하고 선거 때 후보 단일화를 주도하는 등 정치권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55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브라운 대학교 영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외국어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어 고등학교 때 이미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고 한다.
1955 Youth Forum: Teenagers in America |
1956년에는 UN이 주최한 만 17세 미국 교환 고등학생 4명 중 1명인 한국 대표로 출연했다.
브라운 대학교 졸업 당시 전체 졸업생을 대표하여 졸업 연설을 하였고, 하버드 대학교 영문학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석사를 마친 후 일시 귀국하여 군 복무를 마쳤는데, 친일명문가 자손, 미국 아이비 리그 대학원 출신이라는 남다른 배경 외에도 자진 입대한 것 때문에 지식인 사회에서 주목을 받았다. 유학이 합법적 군 기피 수단이었던 시절에 입대를 위해 귀국한 그의 사연은 1960년 한 일간지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다시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1963년 2월 4일 영문과의 이양하 교수가 타계하여 서울대에 교수 자리가 난다. 이에 귀국하여 1963년 25세의 나이로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전임강사로 부임했다. 현재는 없어진 제도이나 사실상 정교수가 보장된 자리이다. 1972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6년 1월, 당시 27세로 서울대 전임 강사이던 때에 서울시 종로구 공평동 태을다방 옆 문우 출판사 한 켠을 빌어 창작과비평 1호를 펴냈다. 130여 쪽에 불과한 얇은 잡지에서 그는 순수문학을 “지배 계급의 오락과 실리에 이바지”하는 도구라고 폄훼, 비판하면서, 분단 현실을 극복하고 서민의 고통을 대변하며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는 것이 문학과 지식인의 소명임을 선언했다. 그는 문인을 시대를 이끄는 지식인으로, 문학을 민중의 현실을 보듬는 손길이라고 주창했다.
그 후 '창작과비평' 편집인으로서 진보적 평론 활동으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창비는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정황과 맞물려 민주화를 열망하던 지식인 사회의 통로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아르놀트 하우저가 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완역하였다.[3] 이 책은 한국의 진보 문학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1974년 10월 유신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해직되었다가 1980년 복직되었다.
1974년 11월 고은과 함께 진보 문인 단체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결성을 주도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한국의 진보, 참여 문학계를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잡았으며,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확대 개편되었고 2007년 '한국작가회의'로 또다시 명칭을 바꾸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백낙청은 꾸준히 참여하면서 이사장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백낙청은 자신이 발행하는 창비와 작가회의 활동을 통해서 참여문학, 민중 문학계의 대표주자로 고은을 띄워주기 시작한다. 백낙청은 당시 성추문으로 얼룩져 있던 고은의 과오를 철저히 묻어둔 채 고은을 '우리 문학사의 우뚝한 존재, 미당 서정주를 쉽게 넘어선다.'고 찬양하여 고은을 한국 문학계를 대표하는 문학가로 만들었다. 결국 이문열처럼 고은을 비판한 작가는 그로 인해 문인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었고 한국 문단에 백낙청과 고은을 중심으로 한 악성 파벌이 형성되어 2017년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나서야 백낙청과 고은의 오점이 재조명되었다. 그나마도 고은은 너무나 명확한 죄가 있기에 반쯤 매장당했으나, 백낙청의 경우에는 아직도 문예계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창비가 고수해온 민중ㆍ민족문학 기조는 거의 무너졌다고 보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선거 때마다 진보 지식인 사회를 대표하여 민주 개혁 진영 후보단일화를 주문한 것에 대해서도, 민주 개혁 진영이 보수 성향의 국민들로부터 오히려 외면을 받게 만든 것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일부 정치인들은 "선출되지도 않은 권력인 이른바 '진보 원로'가 왜 민주적 정당성도 없이 뒤에서 정치인들을 배후 조종하느냐"란 이의 제기를 하기도 하였다. 특히나 부친과 백부가 납북된 처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 보수로부터 받는 비판보다 진보로부터 받는 비판이 더 크다. 후보 단일화로 진보 진영을 민주당계의 '민주 개혁' 세력의 종속물로 만들고, 계급적 좌파 정치 세력보다 우파 정치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2002년 국내 유일의 시청자 참여방송인 재단법인 시민방송 RTV의 이사장역할을 맡았다.(2007년까지)
2003년 교수직을 정년 퇴임하였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정년 퇴임 이후에도 민족 문학론의 관점에서 통일운동 등의 일선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통일 문제와 관련하여 그는 '연방제 통일론'을 적극적으로 설파하여 '연방제 전도사'라고 불린다. 하지만 연방제 통일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 통일반대론 참고.
2005년 6.15 공동 선언실천 남측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6년에는 북핵문제에 관해서 미국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안전 보장을 해주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북한의 주장을 미국이 무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6년 참여정부 말기에 진보 좌파 계열에서조차도 노무현 정부가 실패라는 비판이 이어지자, 노무현 개인의 스타일 때문이라는 투로 이야기했다. 그는 "참여정부에 모든 책임 있는 건 아니다. 책임은 참여 정부에도 분명히 있고, 진보개혁세력에도 있고 보수적인 거대 야당이나 거대 언론에도 골고루 있다. 참여 정부의 책임 중에서도 정부의 정책 실패와 대통령 통치 스타일에 관한 부분 등을 구별해야 한다. (국민 지지도 하락에) 정부의 정책 실패도 있고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국민의 지지를 잃게 한 면도 분명히 있다"라고 말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때 범여권 후보 단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0년 서울특별시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진영의 후보 단일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곽노현 후보로 단일화를 이끌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천안함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다. ('비판' 항목에 후술)
특히 2015년에는 신경숙의 표절 사건과 관련하여 많은 문인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표절인데도 '의도적 표절로 볼 수 없다.'며 무리하게 실드를 쳐주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이때 백낙청과 창비에 대한 비판의 선봉에 선 사람이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 권성우 교수이다. #
2015년 11월 25일 창비 편집인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아직도 창비 지분 31.1%를 보유한 최대 주주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데다 새 발행인, 주간, 부주간을 맡게 될 차세대 인사의 상당수가 그와 사제 관계 등으로 엮여 있기 때문에, 아직도 창비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
그 후 공적인 자리에 등장하지 않았다 2020년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자살하자 시민대표로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제20대 대선 때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했고#, 선거 후에도 오마이TV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이 김대중 이후의 최고의 정치지도자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퇴진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먼 친척으론 12촌 지간의 시인 백석[4]과 백선엽,[5] 백종원이 있다.
원불교 여성회 초대 회장 및 사단 법인 한울안 운동의 대표를 맡은 한지현 前 광운대 교수가 부인이다. 백낙청 교수는 원불교 영어교전 번역을 주도하는 등 부인과 함께 원불교 내에서 많은 역할을 하였다. 공식적으로는 무교지만 원불교의 가르침에 매우 호의적이다.
장녀 백영경(白英瓊)은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 창비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장남 백웅재(白雄在)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미식 평론가 및 전통주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차남 백연재(白然在)는 호주국립대학교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북한이 (주로 안보 문제로) 논란과 사건사고를 일으킬 때마다 주로 다른 세력이 북한에 악영향을 준 것이라는 논점일탈을 고집하기만 하였다. 그가 주장하는 분단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평론하는 데에는 앞장섰으나, 북한의 사회를 비판하는 것에는 함구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북의 독재를 용인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고은과 백낙청을 필두로 한 한국 문학계의 일부 세력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북한의 세습 독재를 옹호, '만악의 근원 미제국주의', 동료 문인의 성추문 사건 등을 옹호함으로써 그가 평생을 추구해 왔다고 주장하는 문학의 자유화를 방해하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한국 문학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또한 한국 순문학계에서 주변 문인들이 도서정가제를 강력히 추진할 동안, 백낙청은 도서정가제를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입장을 표한 적이 없어 독자들의 도서정가제가 악법이라는 호소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생겼다.
신경숙 표절 사건이나 고은 성폭력 사건 파문에서 보여줬던 미온적이거나 노골적으로 문제 당사자를 편드는 태도는 백낙청 역시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대통령 담화는 거의 초법적인 조치였다. (중략)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내놓은 7·7 선언 이래 남북 관계 22년의 성과를 단번에 없애버리는 것이다. 동시에 남북 관계의 발전과 맞물려 진행되어온 한국 민주주의를 다 뒤엎을 수 있는 엄청난 행위다. (중략) 박정희는 말하자면 일시불로 정변을 일으켰고, 전두환은 12.12와 5.17의 2회 할부로 헌정 질서를 뒤집었다. 이번 정권은 군사 쿠데타를 안하는 대신 5년 장기 할부제로 야금야금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변질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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