헵의 법칙과 인간 무의식의 강화 효과, 대니얼 카너먼의 손실회피 성향와 쇼펜하우어의 행복론, 구르지예프의 자동기계와 칼 융의 무의식론, 그리고 신사고운동의 함의
심리학과 뇌과학에 헵의 법칙(Hebb's Rule)이라는 유명한 이론이 있다. "함께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들은 서로 간의 연결이 더 강해진다"는 뇌 학습의 기본 원리이다.
풀밭을 여러 번 지나다 보면 길이 생기듯, 뇌도 자주 함께 쓰이는 신경 경로를 더 넓고 단단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새로운 언어나 기술을 배울 때 관련 신경세포들이 반복해서 동시에 신호를 주고받으며 연결이 튼튼해져 기억이 형성된다.
하여, 자주 쓰는 기억세포들은 많이 쓰면 쓸수록 다음 번에는 노력이 덜 필요하게 된다. 자전거 타기도 처음에는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의식적인 생각을 안하고도 자유자재로 탈 수 있게되는 것처럼 말이다.
헵의 법칙은 인간의 기억과 감정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특히 트라우마와 같은 과거의 부정적 사건에 더 강하게 적용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손실회피(loss aversion)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는데, 사람들은 같은 크기의 이득보다 같은 크기의 손실을 더 강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흔히 “$100을 얻는 기쁨보다 $100을 잃는 고통이 더 크다”는 식으로 요약되곤 한다. 그는 인간의 기억과 평가에서 나쁜 순간, 특히 강렬한 고통이나 불쾌한 피크가 전체 경험 평가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9번 기분이 좋다가도 1번 기분을 잡치면 계속 그 생각이 나서 하루종일 기분이 안 좋은 것과 비슷하다.
쇼펜하우어의 『삶의 지혜에 관한 아포리즘』에도 정확히 똑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는 사실상 이렇게 말한다. 현명한 사람은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상태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 이유를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몸 전체가 건강해도 한 군데만 아프면 우리의 의식은 건강한 나머지 전부가 아니라 그 아픈 한 곳에 붙들린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모든 일이 잘 풀려도 한 가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우리는 그 한 가지를 계속 생각하고, 잘 풀린 나머지 일들은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에게는 쾌락·행복은 '소극적' 특성을 갖고 있지만 (지속 기간이 짧다), 고통은 '적극적' 특징을 갖고 있다 (지속기간이 길다). 행복의 요체는 쾌락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줄이는 데에 있다는 거다.
인간이 고통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데에는 물론 진화론적 이유가 있다. 간단히 말해, 인간이 부정적 자극에 더 기민하게 반응해야 생존에 유리하게끔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fight-or-flight mode"라는 번연계의 생존 메커니즘이 없었다면 인간은 더 강한 포식자들에게 진즉에 멸종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상태가 과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생체 면역력이 떨어지며, 수명이 줄어든다. 언제 등 뒤에서 칼이 꽂힐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사는 야쿠자들의 수명이 짧은 이유 중 하나다 (물론 과도한 음주와 유흥 등의 무절제한 삶, 공격으로 인한 부상 후유증, 암살로 인한 단명 등의 이유들도 있겠지만).
하여, 대다수 인간들의 뇌세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끊임없이 과거의 부정적 기억들을 소환해내고, 또 현재의 상황들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도록 와이어링wiring되어 있다. 헵의 법칙에 근거한 '부정적 기억의 강화 효과'가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신사고운동(New Thought Movement) 내지는 '끌어당김의 법칙'의 관점에서 보면 더 극단적인 해석이 가능해진다. 인구의 대부분은 하루하루 부정적 기억/상황에 attention과 energy를 주는 삶을 살아가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부정적 현실을 적극적으로 창조하는 인생을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결핍을 현실로 끌고오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구르지예프가 인간을 자동기계에 비유했듯이, 대다수 인간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과거에 형성해놓은 자극(습관)에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삶을 살며(대체로 좌파는 좌파의 프레임에서, 우파는 우파의 프레임에서,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의 프레임에서, 무신론자는 무신론자의 프레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비슷한 생각을 유지한다; 즉, 인지부조화에 걸려 비슷한 논리를 반복하며, 자신의 입맞에 맞는 이야기만 취사선택하여 '확증편향'을 강화한다), 결코 과거의 인식틀을 깨지 못하고 살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칼 융 식으로 말하면, “당신이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는 한, 무의식이 당신의 삶을 지배할 것이고 당신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오래되고 단단한 습관을 깨부수기 위해서는in order to break the habit of old self 뇌의 와이어링, 즉 배선 형태를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번에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 처음에는 하루에 5분, 10분이라도 자신이 되고자becoming하는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뇌의 근육을 변화시키는 연습을 해야하고, 익숙해지면 그 시간을 계속 늘려나가야 한다. 이것이 일정한 임계점을 넘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헵의 법칙이 기존처럼 부정적 기억을 강화하는데 쓰이는게 아니라 긍정적 기억을 강화하는데 쓰이게 될 것이고, 그러면 긍정적 현실을 창조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티끌모아 태산이고, 구층 누각도 한줌 흙에서 시작되듯이, 시작은 작더라도 그 끝은 창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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