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설계' 허화평 재산 2000억 이상, 검찰이 환수하기로 했다"; 병쉰 오마이만 단독보도한걸 보면 신빙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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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12일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과 새역사국민운동(공동대표 이영훈)이 공동 주최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공개포럼'에서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 비서실장으로 12.12쿠데타 주동세력이었던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이 행사 자료를 보고 있다. 허화평 이사장은 12·12 군사반란 및 5·18 관련 사건으로 기소되어 반란중요임무종사와 내란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8년으로 감형됐고,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징역 8년이 확정됐다.
▲지난 8월 12일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과 새역사국민운동(공동대표 이영훈)이 공동 주최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공개포럼'에서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 비서실장으로 12.12쿠데타 주동세력이었던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이 행사 자료를 보고 있다. 허화평 이사장은 12·12 군사반란 및 5·18 관련 사건으로 기소되어 반란중요임무종사와 내란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8년으로 감형됐고,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징역 8년이 확정됐다. ⓒ 권우성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부장검사 소정수)가 '쓰리허'(허화평, 허삼수, 허문도)의 핵심이자 '5공의 설계자'로 불리는 허화평 현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이 미래한국재단을 통해 축재한 재산을 조사했고, 내년 9월부터 이를 환수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허화평 이사장이 '전두환 비자금'을 횡령·착복해 정부출연기관의 후신인 미래한국재단의 재산을 개인재산으로 사유화했다며 '허화평 재단'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김충립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 보안반장(아래 김 전 반장)은 검찰조사를 받은 직후인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 한 단독인터뷰에서 "검찰은 내가 주장한 금액보다 더 많은 허화평 이사장의 재산을 확인했고, 이를 내년 9월부터 환수하기로 했다고 들었다"라고 전했다.

김 전 반장이 고발장에 적시한 '허화평 재단'의 재산 금액이 '2000억 원'이라는 점을 헤아리면 검찰은 조사를 통해 이보다 더 많은 재산을 찾아냈고, 이를 내년 9월부터 환수하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내년에 '2000억 원 이상'의 금액을 환수한다면 신군부 인사 중 거액의 범죄수익금을 환수당한 사례로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로 기록될 예정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2205억 원의 추징금 중 약 900억 원을 미납한 채 사망했고(2021년 11월), 그보다 한달 먼저 사망한(2021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은 생전에 2628억 원의 추징금을 완납했다.

2023년부터 '허화평 재산 국고 환수' 주장… 600억 원에서 2000억 원으로 늘어

 서울 종로구 효자동 '미래한국재단' 서울 분소 간판. '5공 설계자'로 알려진 허화평(87)씨가 재단 이사장이다. 미래한국재단 전신인 현대사회연구소는 1981년 국무총리 소속기관이던 사회정화위원회 산하 정부 출연기관으로 설립됐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허화평씨를 연구소장에 임명하고, 93억 원의 일해재단 자금과 3억 원의 정부 자금을 연구소에 지원했다. 2005년 '재단법인 미래한국재단'으로 조직이 개명되면서 '허화평 사유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 종로구 효자동 '미래한국재단' 서울 분소 간판. '5공 설계자'로 알려진 허화평(87)씨가 재단 이사장이다. 미래한국재단 전신인 현대사회연구소는 1981년 국무총리 소속기관이던 사회정화위원회 산하 정부 출연기관으로 설립됐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허화평씨를 연구소장에 임명하고, 93억 원의 일해재단 자금과 3억 원의 정부 자금을 연구소에 지원했다. 2005년 '재단법인 미래한국재단'으로 조직이 개명되면서 '허화평 사유화' 의혹이 제기됐다. ⓒ 네이버 거리뷰 갈무리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은 지난 2024년 11월 19일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을 '전두환 비자금 은닉'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은 지난 2024년 11월 19일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을 '전두환 비자금 은닉'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 김충립

허화평 이사장이 주도하고 있는 미래한국재단의 전신은 현대사회연구소로, 이 연구소는 지난 1981년 국무총리 소속기관이던 사회정화위원회 산하 '정부출연기관'으로 설립됐다. 특히 지난 19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허화평 이사장을 연구소장에 임명하고, 93억 원의 일해재단 자금과 3억 원의 정부 자금을 연구소에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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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해재단(현 세종연구소)은 전두환의 호('일해')를 딴 재단으로 '전두환 비자금'을 만들기 위한 조직이었다. 하지만 허화평 이사장이 지난 2005년 현대사회연구소를 '재단법인 미래한국재단'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정부 출연기관'을 '개인재단'으로 사유화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 전 반장은 지난 2023년부터 최근까지 경찰과 검찰,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허화평 이사장을 '전두환 비자금 횡령·착복 혐의'로 고발하면서 철저한 조사를 통한 국고 환수를 주장해왔다. "허화평이 전두환이 조성한 비자금 93억 원과 노태우 정부 지원금 3억 원 등 96억 원을 지원받은 후 600억~700억 원으로 추정되는 재단의 자산을 개인 사유재산으로 착복했기 때문에 철저히 조사해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김 전 반장이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한 '허화평 재단'의 재산 금액은 처음에는 '600억~700억 원'이었다가 '1000억 원대'에서 '2000억 원대'로 늘어났다. 여기에는 그의 지속적인 노력과 <오마이뉴스>의 추적 보도가 영향을 미쳤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24년 11월 18일 "[단독]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1000억 넘나"라는 기사를 통해 미래한국재단이 지난 2014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에서 3개동 1000세대 이상의 오피스텔 개발사업을 시행해 분양했고, 그 수익금으로 같은 해 서울 송파구 가락동 소재 16층짜리 업무용(오피스) 빌딩을 매입했다고 단독 보도한 바 있다. 그러면서 "기존에 600억 원대 안팎으로 추정되던 재단의 재산은 1000억 원대가 훌쩍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동안 확인된 미래한국재단 보유 부동산은 서울 종로구 신교동 개인주택과 효자동 4층 건물(재단 서울분소), 서울 강남구 신사동 상가건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판교역 SK HUB A-244호(재단 본부) 등이었다. 여기에다 김 전 반장과 <오마이뉴스>의 추적으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오피스텔 빌딩(8층)과 서울 송파구 업무용 빌딩(16층)이 추가됐다.

이러한 재단 재산의 사유화 의혹과 관련, 미래한국재단 측은 당시 "현대사회연구소가 재단의 전신은 맞지만 당시 재산은 다 사라졌고, 지금은 정부 지원이나 출연금을 받지 않고 어렵게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라며 "여러 명의 이사들로 구성된 기관으로 자금 착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반박해왔다.

검경의 '무혐의 처분'에 재고발… "성남시가 얼마에 매입하고 보상했느냐를 꼭 확인해야"

 미래한국재단이 시행해서 분양한 판교역 SK HUB 오피스텔의 현재 모습.
▲미래한국재단이 시행해서 분양한 판교역 SK HUB 오피스텔의 현재 모습. ⓒ 오마이뉴스 구영식
 미래한국재단이 지난 2014년에 매입한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업무용 빌딩.
▲미래한국재단이 지난 2014년에 매입한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업무용 빌딩. ⓒ 오마이뉴스 구영식

2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허화평 재단'의 재산의 뿌리는 '성남시 분당구 하산운동'(서판교)에 있던 땅이다. <오마이뉴스>의 취재에 따르면, 미래한국재단의 전신인 현대사회연구소는 원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산운동 산 26-4번지(서판교)에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판교신도시 개발이 시작되면서 정부는 서판교에 위치한 현대사회연구소 부지를 공공택지로 수용하고, 동판교 땅(경기도 성남구 분당구 백현동 529번지)을 대토(代土)했다. 재단은 이렇게 대토 받은 땅에 판교역 SK HUB 오피스텔 개발사업을 벌였다.

대토 보상제는 토지를 강제수용당할 경우 토지보상법('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평가기관에 의뢰해 토지의 감정가격을 확정한 뒤 가격에 맞는 사업 지역에 토지 조성 공사가 완료된 토지를 수용자에게 돌려주는 제도다.

김 전 반장은 지난 3월 서울 경찰에 낸 재고발장에서 "허화평은 1981년 4월부터 운영되던 '현대사회연구소' 대지 즉 성남시 분당구 하산운동 산 26-4번지 6557m²를 1987년 1월 '현대사회연구소' 이름으로 매입 등기를 하였다"라며 "그러나 (그로부터) 7년 후인 2004년 1월 허화평은 위 대지를 성남시에 팔았는데, 이때 땅 주인이 '현대사회연구소'이던 것을 '미래현대재단'으로 소유주 이름을 바꾸어 성남시에 매매하였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즉 성남시는 수년 후 토지 보상을 할 때 '현대사회연구소'가 아니고 '미래한국재단'으로 보상하였고, 허화평은 아무도 모르게 국고를 횡령, 착복하였다"라며 "허화평이 성남시에 팔 때 소유주를 '미래한국재단'으로 바꾸었고, 이 재단은 정관을 변경하여 (사업 목적을) 부동산 건축, 임대, 매매업으로 변경시킨 후 부동산업을 하면서 2000억 원이라는 거액을 보유하게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김 전 반장은 성남시가 '성남시 분당구 하산운동 산 26-4번지'를 수용하면서 미래한국재단에 '얼마의 보상금'을 지급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반장은 "최근 성남시를 방문하여 매입가격과 보상가격을 확인하였으나 '알려줄 수 없다'고 하였다"라며 "다만 성남시가 수사기관에는 매입가격과 보상가격을 알려주겠다고 공문을 보내왔기 때문에 '언제 얼마에 매입하였고, 언제 얼마를 보상했느냐'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밝혀지면 사건의 전모가 잘 밝혀질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15일 검찰조사받아… 검찰 "액수가 더 많고, 내년 9월부터 환수할 예정"

 지난 18일 인터뷰를 위해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
▲지난 18일 인터뷰를 위해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충립 전 특전사 보안반장. ⓒ 오마이뉴스 구영식

하지만 김 전 반장의 고발에 대해 경찰은 공소시효 완성 등의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이와 별도로 지난 2024년 11월 대검찰청에도 고발장을 냈고, 이 고발사건은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로 넘어갔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아서 올 5월 경찰에 재고발했으나 다시 무혐의 처분했다(8월). 그런 가운데 대검에 고발장을 제출한 지 1년 10개월 만인 9월 초에서야 검찰로부터 고발 내용에 대해 조사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에 김 전 반장은 지난 15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총 3시간 동안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에서 조사받았다. 그는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먼저 "허화평 이사장은 전두환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던 1979년만 해도 자기 집도 없는 빈 몸이었는데, 5공이 끝난 뒤 20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갖게 됐다"라며 "이는 국가의 돈을 횡령한 것이어서 '어떻게 빼돌려서 2000억 원의 재산을 만들었는지'를 조사해 달라고 고발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 전 반장은 "검찰에 가서 허화평과의 관계, 고발 경위, 조사해야 할 비리사항 등 내가 고발했던 내용을 그대로 진술했고, 검찰이 내 진술내용을 사건기록에 첨부했다"라며 "조사가 끝난 뒤에 담당검사를 따로 만났는데 '선생님이 오랫동안 끈질기게 물고넘어져 검찰도 이 사건을 뭉개지 않고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조사를 거의 다 마치고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김 전 반장은 "검찰의 사건기록이 500쪽은 넘어 보였고, 성남시 하산운동 땅, 재단 소유 부동산 등과 관련한 등기부등본을 조사했고, 성남시가 허화평 이사장에게 토지보상금으로 얼마를 줬는지도 다 조사한 것 같았다"라며 "그래서인지 내가 고발장에 적시한 금액이나 건수보다 더 많고, 독립몰수제가 시행되는 내년 9월부터 환수한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독립몰수제는 지난 8월 국회를 통과한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을 가리킨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에 따르면 범인의 사망이나 해외도주, 불특정 등으로 공소제기가 불가능한 경우에도 범죄수익임이 명백한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거나 추징할 수 있다. 유죄판결과는 별개의 절차로 범죄수익을 몰수하거나 추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검찰이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김 전 반장이 고발장에 적시한 금액인 '2000억 원' 이상의 재산을 축재한 사실을 확인했고, 이를 독립몰수제가 시행되는 내년 9월부터 환수할 계획이라는 얘기다. 다만 김 전 반장은 "검찰이 내게 '공소시효가 지나서 허화평 이사장 개인에 대한 사법처리는 어려우니 그 점에 대해서는 양해해 달라'고 했다"라고 전했다.

김 전 반장은 "검찰이 '고발을 취하할 의사는 없느냐?'고 물어서 '고발 취하는 안 한다'고 했다"라며 "허화평 이사장은 12.12(신군부 군사쿠데타)를 정당화하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몰고, 5공(전두환 등)과 광주(5.18)의 화해 시도를 방해하고, 책 발간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전두환을 영웅화하고 있는데, 그것을 철회하지 않는 한 고발을 취하할 수는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허화평 이사장의 재산문제가 수습된다고 해도 다른 건들 때문에 계속 고발하려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악연' 허화평과 김충립은 누구?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이 전두환씨 장례 이틀째인 지난 2021년 11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2021.11.24 [공동취재]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이 전두환씨 장례 이틀째인 지난 2021년 11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2021.11.24 [공동취재] ⓒ 연합뉴스

육사 17기인 허화평 이사장은 제1군단 작전처 교육장교, 제1공수특전단 게릴라전 교관, 제9보병사단 대대장과 작전참모, 정보사령부 특검단 검열담당관을 거쳐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에 근무하며 10.26(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과 12.12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허삼수 보안사령부 인사처장, 이학봉 보안사령부 대공처장 등과 함께 '보안사 3인방'으로 불렸다.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는 대통령비서실 보좌관으로 임명돼 '5공의 설계자' 혹은 '전두환 정권 2인자'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정무제1수석으로 좌천됐다(1981년 12월). 지난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사건이 터졌을 때 전두환 대통령 친인척의 공직 사퇴를 건의했다가 전두환 대통령의 눈 밖에 났고, 결국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1982년 12월).

이후 육사 17기 동기이자 '쓰리허'의 멤버인 허삼수 전 보안사 인사처장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헤리티지재단의 연구원으로 있다가 노태우 정권이 출범하자 현대사회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했다(1988년). 이후 두 차례(1992년과 1996년)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12.12, 5.18 등과 관련해 구속기소되었고 유죄판결을 받아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사면된 이후 두 차례(2000년과 2004년) 각각 민주국민당과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 허 이사장은 지난 2021년 12월 <펜앤마이크>와 한 인터뷰에서 "단순한 민주화 요구를 넘어 민족적 차원의 민중혁명 노선을 추구하는 세력이 무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를 저지해야 하는 계엄군은 필연적으로 이들을 무력진압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이러한 충돌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이 바로 광주사태의 본질"이라고 '무력진압'을 합리화했다.

그런 허 이사장이 지난 8월 13일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과 5.18을 폄훼해온 '새역사국민운동'(공동대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이 공동으로 주최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공개포럼'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내빈석에 앉았지만, 주최측은 "초대하지 않았고, 본인 스스로 왔다"라고 밝혔다.

김 전 반장은 10·26과 12·12, 5·18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에 있었다. 보안사 소속으로 특전사 보안반장으로 파견나가 '전두환의 친구' 정호용 사령관을 보좌했고, 신군부의 핵심세력이던 '쓰리허' 등과 갈등하다 강제 예편당하기도 했다(1980년). 이런 경력 덕분에 5공과 6공을 만든 '신군부'의 동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신군부 인사들과도 친분을 유지해 왔다.

특히 지난 2012년 이후에는 '박근혜-전두환 화해 프로젝트'와 함께 '전두환-광주 화해프로젝트'를 추진해 전두환씨로부터 '광주에 가서 5·18에 대해 사과하겠다'는 약속을 얻어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는 5·18진상조사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5·18 당시 신군부 인사들에 대한 자료를 분석했다.

허 이사장과 김 전 반장은 군에서 함께 근무한 적이 있었지만 '악연'이었다. 김 전 반장은 "1969년 4월 육군 중위가 되어 506보안부대에 갔는데 그때 허화평 이사장은 수사계장이었다"라며 "1년 6개월 간 같이 근무했지만 남파간첩인 친동생에 대한 보안사의 봐주기에 항의하다 좌천됐고, 민정당 창당자금 모금건으로 크게 갈등했다"라고 회고했다.

최근 사망한 '광주학살 5적' 정호용... "전두환에게 '광주 사과하라'고 끈질기게 건의한 사람"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빈소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에 관여한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13일 오전 사망했다. 사진은 이날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정 전 장관의 빈소.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빈소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에 관여한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13일 오전 사망했다. 사진은 이날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정 전 장관의 빈소. ⓒ 연합뉴스

한편 12.12와 5.18 당시 김 전 반장이 특전사 보안반장의 신분으로 보좌했던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이 지난 13일 사망했다. '광주학살 5적'(전두환, 노태우, 박준병, 이희성, 정호용)으로 불리우는 정 전 사령관은 그에게 '애증'이 교차하는 인물이었다.

12.12 당시 최세창 3여단장의 발포를 문책하고, 김오랑 소령의 장례식을 부대장으로 거행하면서 국립묘지 안장을 추진하고, '쓰리허'가 주도한 언론통폐합을 반대한 것은 높이 평가하지만, 5.18과 관련한 진상규명에는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정 전 사령관은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5.18진상규명위)에 '진정서'라는 이름으로 진술서를 제출하긴 했지만, 최종 대면조사에는 응하지 않았다.

김 전 반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정호용 장군은 '군인이 대통령이 되려는 행위는 마땅하지 않다'며 전두환의 정치참여에 반대했다"라며 "당시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서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결정했는데 이를 '7년'으로 바꾸자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것도 옳지 않아서 6년도 감지덕지인데 7년으로 바꾸는 행위는 비열하다'고 비평했고, 전두환의 창당자금 모금도 못마땅해했던 인물이다"라고 회고했다.

김 전 반장은 "2006년 나와 정호용 장군이 주도해서 '전두환 광주 사과 결단 모임'('전두환-광주 화해 프로젝트')을 만들었고, 전두환에게 '광주에 가서 사과하고 화해하라'고 끈길기게 건의한 사람이었다"라며 "그래서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 위해 5.18진상규명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는데, 대면조사할 때가 되니까 육사총동창회의 조사 반대와 부인 핑계를 대면서 응하지 않았다"라고 큰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 전 반장은 "5공에서 장관이나 국회의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결국 제대로 된 평가를 못받고 비난 속에서 간 비운의 군인이다"라고 평가했다.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정 전 사령관의 빈소를 취재한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은 "텅 빈 전광판과 이름 없는 국화꽃 사진, 9월13일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35호실은 고인의 신원을 알리지 않은 채 치러진 '숨겨진 빈소'였다"라며 "내무부·국방부 장관을 지내고 두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됐던 인물의 마지막 길은 적막했다, 외부 조문객과 조화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라고 전했다(관련기사 : 이름 감춘 정호용의 마지막 길…침묵으로 끝난 '신군부 5인'의 씁쓸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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