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상 최초의 2000년대생 수상작: 2001년생인 젊은 작가 스즈키 유이가 23세의 나이에 첫 장편소설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책 속으로
출판사 리뷰
추천평
현실적으로 고전을 사랑하는 z세대로서 이런 소설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로망같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도 괴테를 좋아하는데 비슷힌 또레의 누군가가 이정도로 괴테사상과 현대를 함께 다루어 어느 평론가의 말대로 “고전과 현대 사이에 창문을 열어 공기를 통하게” 만든 것이 경이로웠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독일인들이 뭐든 말할때 장난스레 권위를 빌려 말할 때 쓰는 농담인데 제목이기도 한 이 농담이 작품 전체에 농담조를 입힌다.
괴테뿐만 아니라 단테, 엘리엇, 블레이크, 말라르메 등 수많은 사상가와 예술가들도 무리하지 않게 잘 담아내고 있어서 마치 이 책 전체를 꿰뚫는 문장인
를 그 자체로 실현했다. 이 책은 그것을 무겁지 않고 가볍게 달성해낸다. 농담과 욕망,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거기에서 더 나아가 21세기의 정신을 가지고 맛있게 요리한다. 이 책에 내려진 평으로는 “에코, 칼비노, 보르헤스 같다“는 평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어들고 마치 게임처럼 독자를 속이며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스포가 될까봐 길게는 쓰지 못하지만 작가는 독자를 특정 인물의 시선으로 끌고가고 20세기적 혹은 아날로그적 문법을 따른다. 나중에는 반전을 주어 이 책이 속한 시대가 비록 겉보기에 고전적인 소재를 취하는득 하나 20세기가 아니라 21세기임을 명명백백하게 밝힌다. 인터넷과 관련해 책을 읽어가며 z세대 독자로서 아주 답답한 부분이 많았는데 그것들을 단박에 시원하게 뚫어줬다. 마치 고전과 현대 사이에 창을 내어 환기를 시킨다는 평론의 인상깊은 내용 그대로였다. 21세기는 사전이 아닌 인터넷의 시대이며, 엄밀함보다는 즉각성의 시대다. 진실보다는 효과가 더 중요한 시대다.
책에서 중요한 소재로 나오는 명언에 대해서도 안상깊게 읽었다. 책에서 늘 명언을 끄집어 노트에 따로 적어두고 마음에 드는 명언 찾기를 해본적이 있는 명언 러버로써 공감되는 것도 많았다. 명언은 많은데 그 출처를 찾기가 꽤나 어려운 것이다. 출처를 찾아나가는 과정도 물론 번거로운 가운데 재미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무조건 찾고싶다는 집착이 생긴다. 웃기게도 그 문장이 아무리 매력적인들 출처가 정확하지 않으면 문장 자체의 매력은 사라지고 지우게 된다. 다만 계속 뇌리에 박혀 마치 성배를 찾듯이 거기에 메달리는 것이다. 주인공처럼 명언때문에 머리를 싸메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된 것이다.
쿤데라가 커튼이라는 에세이모음집에서 말했다. 우리의 통상적인 상식 즉, 예술이 예술 고유의 가치로서 인정받는다는 것과 대비되게도 클래식 음악의 단적인 예시를 들어 클래식 음악이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찬양받는다고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예컨대 베토벤이 만약 실제로 더 살아있었으면 작곡했을 33번 소나타가 있는데 그것을 21세기의 누군가가 똑같이 연주한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이때 사람들은 그 음악이 베토벤것인줄 알고들으면 고평가를 하고 현대작곡가가 했다고하면 그저 혼성모방의 장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명언도 비숙한 원리법칙에 지배받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문장의 아름다움은 무엇보다도 그 문장을 만든 사람의 무게가 실려야 아름다워지는 것일까? 명언에 대한 집착에서 그 속의 허영심을 조금 성찰할 수 있게되었던 책이다.
내 경우는 니체의 말이라고 알려졌으나 출처를 찾지 못하는, 그러나 너무도 니체적인 이 말이 있었다.
차라투스트라에 비슷한 말이 있지만 이렇게 자기계발적인 뉘앙스가 풍부한 문장은 없다. 그렇지만 스스로 초인을 동경하며 떠올리기에 좋은 말이고 비록 날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말이지만 삶에서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적어도 내겐 자존감을 키울때 되뇌이는 말들 중 하나가 되었다.
또 키케로가 말했다고 잘못 알려진 출처를 신뢰하기 힘든 라틴어 격언, “
Dum vita est, spes est(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라는 말도 머리를 괴롭힌 말이었다.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실수와 우연 즉 명언이 진짜인가 명언을 누가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자체로 담고 있는 진실이 진실되다면 상관 없다는 것인 것 같다. 오히려 그러한 집착을 버리고 그 명언이 삶과 밀접해질 때 진실로 의미가 있다는 식이다. 책의 주인공 도이치 교수는 괴테 전공자인데 괴테를 전공하게 된 것도 실수와
우연에 의해서였다. 디즈니 판타지아의 마법사의 제자가 괴테의 시라는 것을 알게된 어릴 적, 그 원본을 알기위해 마법사의 제자가 아니라 파우스트를 읽으며 시작된 것이다. 또 교수는 학자로서의 의무인 고증과 연구 기반의 엄격함을 일정부분 포기하고 괴테가 한 말보다 이 출처를 알 수 없는 괴테의 말을 과테의 말이라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괴테학자로서 말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삶을 느낀다. 이런 우연적인것들, 탈진실적인 것들 역시도 비록 그럴지언정 삶의 큰 부분이고 이들마저도 수용하는 태도다.
심지어 인터넷과 탈진실을 넘어 AI시대인 현재, AI에게 예컨대 “세상에 없는 괴테식 명언을 10개 창조해봐”라고 해서 그중 하나를 인생명언으로 삼는 것은 어떠할까? 그것도 누군가에겐 나름의 의미가 있을 수 있지 않늘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런 책이 2025년에 아무렇지도 않게 일본에서 나온것이 놀라웠다. 괴테라는 200년전 독일 사상가를 2025년 일본에 불러내어 소설 소재로 삼아버리고 아쿠타카와 상까지 받다니. 한국에서 보기 힘든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인문학 토양이 역시나 강하구나 하고 감탄도 했다.
괴테뿐만 아니라 단테, 엘리엇, 블레이크, 말라르메 등 수많은 사상가와 예술가들도 무리하지 않게 잘 담아내고 있어서 마치 이 책 전체를 꿰뚫는 문장인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를 그 자체로 실현했다. 이 책은 그것을 무겁지 않고 가볍게 달성해낸다. 농담과 욕망,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거기에서 더 나아가 21세기의 정신을 가지고 맛있게 요리한다. 이 책에 내려진 평으로는 “에코, 칼비노, 보르헤스 같다“는 평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어들고 마치 게임처럼 독자를 속이며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스포가 될까봐 길게는 쓰지 못하지만 작가는 독자를 특정 인물의 시선으로 끌고가고 20세기적 혹은 아날로그적 문법을 따른다. 나중에는 반전을 주어 이 책이 속한 시대가 비록 겉보기에 고전적인 소재를 취하는득 하나 20세기가 아니라 21세기임을 명명백백하게 밝힌다. 인터넷과 관련해 책을 읽어가며 z세대 독자로서 아주 답답한 부분이 많았는데 그것들을 단박에 시원하게 뚫어줬다. 마치 고전과 현대 사이에 창을 내어 환기를 시킨다는 평론의 인상깊은 내용 그대로였다. 21세기는 사전이 아닌 인터넷의 시대이며, 엄밀함보다는 즉각성의 시대다. 진실보다는 효과가 더 중요한 시대다.
책에서 중요한 소재로 나오는 명언에 대해서도 안상깊게 읽었다. 책에서 늘 명언을 끄집어 노트에 따로 적어두고 마음에 드는 명언 찾기를 해본적이 있는 명언 러버로써 공감되는 것도 많았다. 명언은 많은데 그 출처를 찾기가 꽤나 어려운 것이다. 출처를 찾아나가는 과정도 물론 번거로운 가운데 재미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무조건 찾고싶다는 집착이 생긴다. 웃기게도 그 문장이 아무리 매력적인들 출처가 정확하지 않으면 문장 자체의 매력은 사라지고 지우게 된다. 다만 계속 뇌리에 박혀 마치 성배를 찾듯이 거기에 메달리는 것이다. 주인공처럼 명언때문에 머리를 싸메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된 것이다.
쿤데라가 커튼이라는 에세이모음집에서 말했다. 우리의 통상적인 상식 즉, 예술이 예술 고유의 가치로서 인정받는다는 것과 대비되게도 클래식 음악의 단적인 예시를 들어 클래식 음악이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찬양받는다고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예컨대 베토벤이 만약 실제로 더 살아있었으면 작곡했을 33번 소나타가 있는데 그것을 21세기의 누군가가 똑같이 연주한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이때 사람들은 그 음악이 베토벤것인줄 알고들으면 고평가를 하고 현대작곡가가 했다고하면 그저 혼성모방의 장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명언도 비숙한 원리법칙에 지배받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문장의 아름다움은 무엇보다도 그 문장을 만든 사람의 무게가 실려야 아름다워지는 것일까? 명언에 대한 집착에서 그 속의 허영심을 조금 성찰할 수 있게되었던 책이다.
내 경우는 니체의 말이라고 알려졌으나 출처를 찾지 못하는, 그러나 너무도 니체적인 이 말이 있었다.
차라투스트라에 비슷한 말이 있지만 이렇게 자기계발적인 뉘앙스가 풍부한 문장은 없다. 그렇지만 스스로 초인을 동경하며 떠올리기에 좋은 말이고 비록 날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말이지만 삶에서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적어도 내겐 자존감을 키울때 되뇌이는 말들 중 하나가 되었다.
또 키케로가 말했다고 잘못 알려진 출처를 신뢰하기 힘든 라틴어 격언, “
Dum vita est, spes est(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라는 말도 머리를 괴롭힌 말이었다.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실수와 우연 즉 명언이 진짜인가 명언을 누가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자체로 담고 있는 진실이 진실되다면 상관 없다는 것인 것 같다. 오히려 그러한 집착을 버리고 그 명언이 삶과 밀접해질 때 진실로 의미가 있다는 식이다. 책의 주인공 도이치 교수는 괴테 전공자인데 괴테를 전공하게 된 것도 실수와
우연에 의해서였다. 디즈니 판타지아의 마법사의 제자가 괴테의 시라는 것을 알게된 어릴 적, 그 원본을 알기위해 마법사의 제자가 아니라 파우스트를 읽으며 시작된 것이다. 또 교수는 학자로서의 의무인 고증과 연구 기반의 엄격함을 일정부분 포기하고 괴테가 한 말보다 이 출처를 알 수 없는 괴테의 말을 과테의 말이라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괴테학자로서 말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삶을 느낀다. 이런 우연적인것들, 탈진실적인 것들 역시도 비록 그럴지언정 삶의 큰 부분이고 이들마저도 수용하는 태도다.
심지어 인터넷과 탈진실을 넘어 AI시대인 현재, AI에게 예컨대 “세상에 없는 괴테식 명언을 10개 창조해봐”라고 해서 그중 하나를 인생명언으로 삼는 것은 어떠할까? 그것도 누군가에겐 나름의 의미가 있을 수 있지 않늘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런 책이 2025년에 아무렇지도 않게 일본에서 나온것이 놀라웠다. 괴테라는 200년전 독일 사상가를 2025년 일본에 불러내어 소설 소재로 삼아버리고 아쿠타카와 상까지 받다니. 한국에서 보기 힘든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인문학 토양이 역시나 강하구나 하고 감탄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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