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상 최초의 2000년대생 수상작: 2001년생인 젊은 작가 스즈키 유이가 23세의 나이에 첫 장편소설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책 속으로

그 말은 장차 일본에서 괴테 전문가로 대성하리라는 뜻을 품고 있었던 당시의 도이치에게 묘하게 예언처럼 들렸고, 이윽고 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독일 사람은 말이야.” 요한이 말했다. “명언을 인용할 때 그게 누구의 말인지 모르거나 실은 본인이 생각해 낸 말일 때도 일단 ‘괴테가 말하기를’이라고 덧붙여 둬. 왜냐하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거든.”
--- p.23

어쩌면 일단 언어화된 생각이나 힘이나 행위는 핀으로 꽂아 표본 상자에 가지런히 넣어둔 나비처럼 두 번 다시 날갯짓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Das Wort erstirbt schon in der Feder(말은 붓에 닿는 순간 죽어버린다).” 아아, 또다. 결국 난 모든 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거야. 나비는 꽃들 사이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옮기는 모습이 아름다운 건데. 하지만 태풍에는 반드시 눈이 있는 법. 모든 말은 실상 그 한 점을 향해 몰아칠 뿐이다. 말의 탁류에 휩쓸리며 도이치는 몸을 일으켜 그 정지된 점을 아리아드네의 실처럼 움켜쥐고, 뽑아냈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 Goethe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그 속에 늘어선 글자가 점점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은 꼬리표 너머로 세계가 통째로 흐리게 보였다.
--- pp.38-39

“Die Liebe verwirrt nicht alles, sondern vermischt es.” 도이치는 눈앞에 있는 괴테의 명언을 독일어로 직역해 시험 삼아 소리 내어 읽어봤다. 그러자 갑자기 그 문장이 괴테스럽지 않게 느껴져서 놀랐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괴테가 한 말이라면, 18, 19세기 독일어를 언젠가 누군가가 영어로 번역했고 또 그것을 현대의 일본인이 독일어로 바꾼 셈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이번에는 일본어로 옮겨봤다. 그러자 조금은 괴테스러워졌다. 그때 도이치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물론 잼과 샐러드였다. 사랑은 모든 사물을 잼처럼 혼동시키지 않고 샐러드처럼 혼연일체로 만든다. 이렇게 파우스트 박사처럼 자기식으로 번역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mix’를 어떻게 해석할지 아직 뚜렷한 확신이 없었다. ‘confuse(혼동하다)’, 말하자면 잼적 도이치에 대한 대립 개념으로서 ‘mix(뒤섞다)’를 일단 샐러드적 도이치로 해석했는데,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그건 이 말의 원문을 찾아 문맥 속에서 판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것이 내가 생각한 그 문장이라면, 이야말로 내 괴테 연구의 진수를 한마디로 표현한 지언至言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쨌거나 도이치는 이 명언을 그저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로 대충 얼버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 pp.44-45

“전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인간이 모든 것을 말하기란 불가능하니까요. 그래도 괴테는 정말로 모든 것을 말하려고 했구나, 그런 생각은 듭니다.”
그 청년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도이치에게 결코 아무래도 상관없는 말이 아니었다.
--- p.97

도이치, 말을 찾는 건 학자의 본분이지. 구렁이 잡으러 갔다가 구렁이한테 잡아먹혀도 상관없다네. 하지만 말이란 끝까지 불편한 도구야. 도무지 익숙해지는 법이 없거든. 난 아직도 가즈코랑 싸워. 가끔 만나는 젊은 학생의 말을 가로막을 때도 있지. 누군가가 하는 말을 전혀 못 알아들어서 귀가 어두운 척하며 어물쩍 넘어가기도 하고…… 그걸 대신할 도구를 도통 찾을 수가 없어서 계속 쓰고 있을 뿐이야.
--- p.153

출판사 리뷰

문장 하나가 삶을 흔드는 힘을 지닌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독일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무슨 말을 하든 “괴테가 말하길 - ”이라 덧붙이면 그 자체로 설득력을 얻는다는 뜻이다. 스즈키 유이의 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바로 이 문장으로부터 출발한다.

주인공 히로바 도이치는 일본 최고의 괴테 연구자다. 어느 결혼기념일에 간 식당에서 그는 홍차 티백 꼬리표에 적힌 낯선 문장을 발견한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괴테의 이름이 적혀 있지만, 평생 괴테를 연구한 그조차 본 적 없는 문장이다. 명언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한 교수의 탐색은 어느새 인용과 진실, 언어와 믿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적 모험으로 변해간다.

2001년생 천재 작가의 경이로운 장편 데뷔작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2001년생 스즈키 유이가 대학 도서관에서 단 30일 만에 완성한 첫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2000년대생 최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단을 뒤흔들었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새로운 문학의 탄생”이라고 극찬했고, 일본 언론은 그를 움베르토 에코, 칼비노, 보르헤스에 견주며 “일본 문학의 샛별”이라고 평했다. 이러한 극찬의 배경에는 1년에 1,000권이라는 엄청난 독서량과 고전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탐독이라는 문학적 토양이 자리한다.

작품의 중심에는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천착한 ‘말’이라는 주제가 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초등학생이던 작가는 어른들의 말이 제각기 다른 것을 목격하며 말에 대한 회의감과 ‘어떤 말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품게 되었고, 이러한 체험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의 원형이 되었다.

깊이 있는 문학적 소양과 시대적 경험이 결합된 이 작품은 21세기의 새로운 고전이 어떤 모습일지를 보여준다. 하루하루 급변하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지수 번역가가 말했듯이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언어로 다시 말할 때 그 말은 비로소 진짜가 된다”라는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는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언어 끝에서 사랑을 읽어내는 법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에서는 여러 문학적 장치가 인물들의 일상에 유머러스하게 재배치되며, 학문과 사랑, 언어와 일상이 자연스레 엮인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대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구제 불능의 산물이지만, 거기에 사랑이라는 띠를 둘렀습니다”라고 도이치가 말했듯이, 이 소설은 결국 ‘사랑이라는 띠’로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다. 도이치와 그의 가족, 제자, 동료 연구자들의 일상이 언어의 층위처럼 이어지고, 각각의 문장이 결국 하나의 의미로 수렴된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그 말이 농담이든 진실이든, 이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수많은 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당신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당신의 삶을 완성할 한 문장은 무엇인가? 그 문장에는 ‘사랑’이 있는가?

추천평

저자는 밝히지 않았지만, 이 책의 ‘후기’엔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의 ‘저자 노트’를 차용한 대목이 있다. 이는 이 소설이 반세기 전 유행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에 제 뿌리를 두고 있음을, 특히 위대한 작가의 비밀을 탐구하는 외양을 취하면서 결국 인생 그 자체의 비밀을 성찰하는 소설들의 영향권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흘러간 옛노래처럼 보일 위험을 무릅쓰고 이 장르에 도전했다는 것은 오히려 이 젊은 작가가 가진 야망의 크기를 알려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소설에서 교양과 지식의 광휘를 걷어낸 뒤에도 그 중심에 견고한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가 버티고 있음을 보여줄 자신이 없다면 감히 착수할 수 없었을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때론 앎이 삶을 소외시키곤 하는 학계를 배경으로, 어떤 문장의 출처를 ‘알아내는’ 것과 그 문장의 깊은 뜻을 ‘살아내는’ 것은 다르다는 지혜를 노련하게 설파하는, 『파우스트』의 새로운 버전이다. 그렇다고 아카데미를 비판하자고 쓴 건 아니고 “진짜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자는 소설인데, 나는 더 나아가, ‘읽고 쓰는’ 인간적 권리를 AI에 아웃소싱하는 이 자멸적 시대에 앎과 삶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사유하자는 취지의 소설로도 읽고 싶다. 아쿠타가와상을 “계획한 것보다 빨리” 받아버린 덕분에 23세에 그 상을 받은 훌륭한 선배들과 공통점이 생긴 그의 운명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축하와 기대의 마음을 담아 이렇게 적어보기로 한다: 오에 겐자부로, 히라노 게이치로, 그리고 스즈키 유이.
- 신형철 (문학평론가)
명언 수집가인 내가 상상만 하던 작품이 도착했다. 이 소설은 명언으로 지은 집이다. 세계 문학에서 채집한 문장들이 잘 박힌 못처럼 이야기를 지탱하며 진리와 삶에 대한 심원한 물음을 길어 올린다. 매력은 글이 젊다는 것. 모든 작가의 첫 책에만 들어 있는 자기다움을 밀고 나가는 에너지가 배어 있다. 압도적 지식과 오타쿠적 깊이는 매혹적이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삶의 공포에 맞서 좋은 문장을 저축하고 필사하는 이들에게 꼭 가봐야 할 명소가 될 것이다.
- 은유 (르포 작가)
스물 남짓한 젊은 작가가 쓴 오래된 느낌의 소설에 왜 이토록 호감이 가는지 생각해 보니, 여기에는 기쁨이 쓰여 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아는 것, 알고 싶어 하는 것, 인간이 가진 그 근원적인 기쁨이 이 소설에 가득 차 있다.
- 요시다 슈이치 (소설가)
문학 연구가 미스터리로, 모험 활극으로 변형될 수 있음을 증명한 새로운 메타 소설의 출현
- 시마다 마사히코 (소설가)
 
 
종이책 구매 교수님, 요즘은 ㅇㅇ위키에 다 나와요
평점8점 | b*****2 | 2025.11.26. | 신고
현실적으로 고전을 사랑하는 z세대로서 이런 소설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로망같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도 괴테를 좋아하는데 비슷힌 또레의 누군가가 이정도로 괴테사상과 현대를 함께 다루어 어느 평론가의 말대로 “고전과 현대 사이에 창문을 열어 공기를 통하게” 만든 것이 경이로웠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독일인들이 뭐든 말할때 장난스레 권위를 빌려 말할 때 쓰는 농담인데 제목이기도 한 이 농담이 작품 전체에 농담조를 입힌다. 
괴테뿐만 아니라 단테, 엘리엇, 블레이크, 말라르메 등 수많은 사상가와 예술가들도 무리하지 않게 잘 담아내고 있어서 마치 이 책 전체를 꿰뚫는 문장인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를 그 자체로 실현했다. 이 책은 그것을 무겁지 않고 가볍게 달성해낸다. 농담과 욕망,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거기에서 더 나아가 21세기의 정신을 가지고 맛있게 요리한다. 이 책에 내려진 평으로는 “에코, 칼비노, 보르헤스 같다“는 평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어들고 마치 게임처럼 독자를 속이며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스포가 될까봐 길게는 쓰지 못하지만 작가는 독자를 특정 인물의 시선으로 끌고가고 20세기적 혹은 아날로그적 문법을 따른다. 나중에는 반전을 주어 이 책이 속한 시대가 비록 겉보기에 고전적인 소재를 취하는득 하나 20세기가 아니라 21세기임을 명명백백하게 밝힌다. 인터넷과 관련해 책을 읽어가며 z세대 독자로서 아주 답답한 부분이 많았는데 그것들을 단박에 시원하게 뚫어줬다. 마치 고전과 현대 사이에 창을 내어 환기를 시킨다는 평론의 인상깊은 내용 그대로였다. 21세기는 사전이 아닌 인터넷의 시대이며, 엄밀함보다는 즉각성의 시대다. 진실보다는 효과가 더 중요한 시대다.

책에서 중요한 소재로 나오는 명언에 대해서도 안상깊게 읽었다. 책에서 늘 명언을 끄집어 노트에 따로 적어두고 마음에 드는 명언 찾기를 해본적이 있는 명언 러버로써 공감되는 것도 많았다. 명언은 많은데 그 출처를 찾기가 꽤나 어려운 것이다. 출처를 찾아나가는 과정도 물론 번거로운 가운데 재미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무조건 찾고싶다는 집착이 생긴다. 웃기게도 그 문장이 아무리 매력적인들 출처가 정확하지 않으면 문장 자체의 매력은 사라지고 지우게 된다. 다만 계속 뇌리에 박혀 마치 성배를 찾듯이 거기에 메달리는 것이다. 주인공처럼 명언때문에 머리를 싸메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된 것이다.

쿤데라가 커튼이라는 에세이모음집에서 말했다. 우리의 통상적인 상식 즉, 예술이 예술 고유의 가치로서 인정받는다는 것과 대비되게도 클래식 음악의 단적인 예시를 들어 클래식 음악이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찬양받는다고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예컨대 베토벤이 만약 실제로 더 살아있었으면 작곡했을 33번 소나타가 있는데 그것을 21세기의 누군가가 똑같이 연주한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이때 사람들은 그 음악이 베토벤것인줄 알고들으면 고평가를 하고 현대작곡가가 했다고하면 그저 혼성모방의 장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명언도 비숙한 원리법칙에 지배받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문장의 아름다움은 무엇보다도 그 문장을 만든 사람의 무게가 실려야 아름다워지는 것일까? 명언에 대한 집착에서 그 속의 허영심을 조금 성찰할 수 있게되었던 책이다.
내 경우는 니체의 말이라고 알려졌으나 출처를 찾지 못하는, 그러나 너무도 니체적인 이 말이 있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엇인가에 온 노력 을 쏟아야 한다”
 
차라투스트라에 비슷한 말이 있지만 이렇게 자기계발적인 뉘앙스가 풍부한 문장은 없다. 그렇지만 스스로 초인을 동경하며 떠올리기에 좋은 말이고 비록 날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말이지만 삶에서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적어도 내겐 자존감을 키울때 되뇌이는 말들 중 하나가 되었다.

또 키케로가 말했다고 잘못 알려진 출처를 신뢰하기 힘든 라틴어 격언, “

Dum vita est, spes est(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라는 말도 머리를 괴롭힌 말이었다.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실수와 우연 즉 명언이 진짜인가 명언을 누가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자체로 담고 있는 진실이 진실되다면 상관 없다는 것인 것 같다. 오히려 그러한 집착을 버리고 그 명언이 삶과 밀접해질 때 진실로 의미가 있다는 식이다. 책의 주인공 도이치 교수는 괴테 전공자인데 괴테를 전공하게 된 것도 실수와
우연에 의해서였다. 디즈니 판타지아의 마법사의 제자가 괴테의 시라는 것을 알게된 어릴 적, 그 원본을 알기위해 마법사의 제자가 아니라 파우스트를 읽으며 시작된 것이다. 또 교수는 학자로서의 의무인 고증과 연구 기반의 엄격함을 일정부분 포기하고 괴테가 한 말보다 이 출처를 알 수 없는 괴테의 말을 과테의 말이라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괴테학자로서 말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삶을 느낀다. 이런 우연적인것들, 탈진실적인 것들 역시도 비록 그럴지언정 삶의 큰 부분이고 이들마저도 수용하는 태도다.

심지어 인터넷과 탈진실을 넘어 AI시대인 현재, AI에게 예컨대 “세상에 없는 괴테식 명언을 10개 창조해봐”라고 해서 그중 하나를 인생명언으로 삼는 것은 어떠할까? 그것도 누군가에겐 나름의 의미가 있을 수 있지 않늘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런 책이 2025년에 아무렇지도 않게 일본에서 나온것이 놀라웠다. 괴테라는 200년전 독일 사상가를 2025년 일본에 불러내어 소설 소재로 삼아버리고 아쿠타카와 상까지 받다니. 한국에서 보기 힘든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인문학 토양이 역시나 강하구나 하고 감탄도 했다.
 
 
 
2001년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났다. 현재 세이난가쿠인대학 외국어학연구과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다. 연간 1,000권의 책을 읽는 독서광으로, 고전문학을 폭넓게 탐독해 왔다. 어린 시절 후쿠시마로 이주한 후 동일본 대지진을 직접 경험하며 언어와 진실에 대한 깊은 관심을 품게 되어,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소설을 쓴 것이 문학의 출발점이었다. 2024년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책이 필요한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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