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유럽의 포마드 문화 (1910~1960년대)
대략 1910년대~1960년대 중반을 일본 남성의 “멋내기용 포마드 문화” 전성기로 보면 가장 정확해. 다만 시작과 쇠퇴를 더 세분하면 이래.
일본에서 포마드는 **메이지 말기(1900년대 후반~1910년대)**부터 생산·판매되기 시작했고, **다이쇼 시대(1912~1926)**에 본격적으로 퍼졌어. 야나기야는 1920년에 ‘柳屋ポマード’를 출시했고, 1933년경에는 젊은 남성뿐 아니라 노년층까지 포마드로 머리를 정돈하는 것이 거의 당연한 풍조가 됐다고 회사 역사자료가 기록해.
전성기는 특히 1930년대~1950년대야. 전후 1947년 무렵 리젠트 스타일이 크게 유행하면서 포마드 수요가 폭발했고, 1950년에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새 공장을 지을 정도였어.
변곡점은 1960년대 초반이야. 아이비룩과 자연스러운 7:3 가르마가 유행하면서 끈적이고 번들거리는 포마드 대신 헤어 리퀴드가 젊은층에서 급속히 퍼졌어. 1962년 Vitalis, 1963년 시세이도 MG5 리퀴드가 나오면서 남성 정발료의 중심이 바뀌기 시작했지.
그래서 한 줄로 정리하면:
유행 시작: 1910년대~1920년대
전성기: 1930년대~1950년대
주류에서 밀려남: 1960년대 중반 이후
1970년대에는 이미 ‘전통적/구세대 스타일’ 이미지가 강해짐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고 이후에도 포마드는 계속 팔렸어. 하지만 “남자가 멋내려면 머리에 포마드를 바른다”는 사회적 표준은 대략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초중반까지라고 보면 돼. 이후에는 헤어리퀴드, 1970년대 말 젤, 1980년대 무스가 차례로 주류가 됐어.
유럽에서 포마드가 젊은 남성 기준으로 “구식” 이미지가 강해진 시점은 대체로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라고 보면 돼. 1960년대 영국을 중심으로 모드, 비틀스식 mop-top, 이후 장발·히피 스타일이 퍼지면서 딱 붙이고 번들거리게 넘기는 1940~50년대식 정발이 아버지 세대 스타일처럼 보이기 시작했어. V&A도 1960년대를 남성 패션에서 세대 구분이 뚜렷해진 시기로 설명하고, 후반에는 남성 장발과 더 자연스러운 스타일이 일반화됐다고 정리해. Victoria and Albert Museum
그래서 유럽은 대략 1950년대까지 포마드가 정상적인 멋내기 → 1963~67년경부터 젊은층 이탈 → 1970년대에는 전통적·구식 이미지라고 보면 가장 깔끔해. 물론 록커빌리나 클래식 바버 스타일에서는 계속 남았고, 나중엔 레트로 패션으로 부활했지.
포마드 문화의 원류는 유럽, 특히 프랑스·영국의 17~19세기 남성 그루밍 문화라고 보면 돼.
원래 pomade라는 말 자체가 프랑스어 pommade에서 왔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탈리아어 pomata와 연결돼. 초기 연고·향유에 사과(pomo/pomme)를 넣어 향을 냈던 데서 이름이 생긴 것으로 설명돼.
처음에는 지금 같은 헤어 스타일링제가 아니라 향이 나는 기름·연고에 가까웠고, 18세기 유럽에서는 동물성 지방, 특히 곰기름·돼지기름 등에 향료를 섞어 머리카락을 윤기 있게 고정하는 데 썼어. 상류층 남성의 가발·정발 문화와도 연결돼 있었고.
19세기 들어서는 영국·프랑스의 도시 중산층 남성들이 머리를 가지런히 넘기고 광택을 내는 스타일을 멋의 표준처럼 받아들이면서 현대적인 포마드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어. 이후 미국에서 바버숍 문화와 결합하면서 더 대중화됐고, 20세기 초에는 slicked-back, side-part 같은 스타일과 함께 전 세계로 퍼졌지.
일본은 이걸 메이지 말기~다이쇼기에 서구식 신사 문화와 함께 수입한 거야. 그래서 일본의 포마드 문화는 독자적으로 생긴 게 아니라 대략
유럽 상류층 정발 문화 → 19세기 서구 도시 남성 패션 → 미국·유럽의 바버 문화 → 일본
이 흐름으로 들어왔다고 보면 돼.
특히 일본에서는 양복, 중절모, 가죽구두, 포마드 머리가 한 세트처럼 “모던한 남성”의 이미지가 됐다는 점이 중요해.
유럽에서 굳이 한 나라를 찍으면 프랑스가 제일 핵심이야. 다만 뿌리는 이탈리아까지 올라가고, 실제 유행 확산에는 영국도 매우 중요해.
pomade라는 말은 프랑스어 pommade에서 왔고, 그 프랑스어는 다시 이탈리아어 pomata에서 왔어. 원래 16세기 프랑스에서 향이 나는 연고·헤어용 연고를 뜻했고, 18세기 프랑스 상류사회에서는 포마드와 파우더를 이용한 정발 문화가 크게 발전했어. 영국 상류층도 프랑스 유행을 적극적으로 따라갔고. 그래서 문화적 중심을 말하면 18세기 프랑스 귀족사회 → 영국을 포함한 유럽 확산으로 보는 게 제일 맞아.
그리고 일본에서 포마드가 1970년대부터 “촌스럽다/구세대 같다”는 이미지가 생긴 건 1970년에 갑자기 망한 게 아니라, 사실 1960년대부터 세대교체가 시작됐기 때문이야. 일본 포마드 업체 柳屋 자체 역사에도 1960년대 아이비룩과 짧고 자연스러운 7:3 머리가 유행하면서, 끈적하고 강한 광택의 포마드 대신 자연스러운 윤기와 부드러운 고정력을 주는 헤어리퀴드로 젊은층이 이동했다고 나와. 1962년 Vitalis, 1963년 MG5가 빠르게 퍼졌고, 1970년에는 Mandom 같은 새로운 남성 화장품 이미지가 등장했어.
결국 이유는 크게 세 가지야. 첫째, 포마드는 1930~50년대 아버지 세대가 이미 너무 오래 사용한 물건이 됐어. 일본에서는 1933년 무렵이면 청년부터 노인까지 포마드 사용이 당연할 정도였으니, 1970년대 청년 입장에서는 이미 **“아버지 세대 머리”**가 되어버린 거지.
둘째, 1960~70년대 젊은 남성 미학 자체가 바뀌었어. 아이비, 비틀스 이후의 장발, 포크·학생문화 등으로 딱 붙여 넘긴 번들거리는 머리보다 자연스럽고 움직이는 머리가 젊어 보이게 됐어. 그러니 포마드의 장점이었던 “광택 + 강한 정돈”이 오히려 낡아 보이는 요소가 된 거야.
셋째, 제품 기술도 바뀌었어. 헤어리퀴드 → 젤 → 무스처럼 덜 기름지고, 씻기 쉽고, 볼륨과 자연스러운 질감을 만들기 쉬운 제품이 계속 나왔어. 일본에서는 1979년 헤어젤, 1980년대 중반 무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기름 기반 정발료는 더 구식 이미지가 강해졌어.
그래서 아주 압축하면:
프랑스 귀족사회에서 정발문화가 발전 → 19~20세기 서구 남성 패션으로 대중화 → 일본에서 1930~50년대 전성기 → 1960년대부터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과 신형 정발료에 밀림 → 1970년대에는 ‘아버지 세대 스타일’ 이미지가 강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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