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후작 아내의 심리
이상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해. 자료를 더 보면 “감옥에 있을 때 갑자기 더 사랑했다”기보다는, 감옥이 Renée-Pélagie에게 사드를 사랑하면서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구조를 만들어줬다고 보는 게 훨씬 설득력 있어.
결혼 초 실제 사드와 함께 살 때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건 끊임없는 외도, 매춘부 사건, 폭력적 스캔들, 빚, 도피, 심지어 자기 여동생과 사드의 관계까지였어. 그런데 사드가 1777년부터 장기 수감되자 상황이 역설적으로 안정돼.
사드는 감옥 안에 있고 → 사고를 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고 → Renée는 감옥 밖에서 그를 돌보는 사람이 됐어.
그녀는 음식·옷·책을 보내고, 원고를 베껴주고, 변호사와 당국을 찾아다니고, 수감조건을 개선하려 하고, 석방을 위해 움직였어. 연구자 Cécile Guilbert의 표현으로는 그녀가 사드의 “confidente et factotum”, 즉 친밀한 고백 상대이자 모든 일을 처리해주는 사람이었고, 사실상 외부세계와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어.
그리고 사드도 그녀에게 엄청나게 의존했어. 감옥에서 필요한 물건부터 음식, 돈, 성적 도구까지 세세하게 요구했고, 때로는 애원하고 사랑을 표현하다가 뜻대로 안 되면 모욕하고 협박하고 비난했어. Le Monde가 당시 편지를 분석하면서 Renée를 동시에 사드의 “recours et souffre-douleur”, 즉 의지처이면서 화풀이 대상이었다고 표현한 이유야.
그런데 Renée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 1790년에 갑자기 마음이 180도 변한 것도 아니야.
1781년, 4년 만에 면회가 재개되자 사드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관계가 있다고 의심하며 심한 질투를 했고, 나중에는 아내가 면회하러 오면 죽이겠다는 말까지 했다. 결국 그녀는 Sainte-Aure 수도원으로 들어갔고 면회도 다시 중단됐다.
178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그녀는 점점 사드에게서 멀어졌어. 편지를 연구한 자료에서도 약 10년이 지나자 Renée가 “듣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대답하고, 궁리하는 것에 지쳤다”며 물러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즉 그래프를 그리면
헌신 → 헌신 → 헌신 → 피로 → 거리두기 → 종교생활 → 결별
에 가까워.
그런데 왜 하필 석방되자 완전히 끝냈을까?
여기가 심리적으로 제일 흥미로운 부분이야.
감옥에 있는 사드는 그녀가 구해야 하는 남편이었어.
밖에 있는 사드는 다시 그녀의 실제 생활 속으로 들어올 남편이었고.
이 차이가 엄청나.
감옥에 있을 때는 Renée가 사드를 사랑하고 돌보면서도 물리적 거리가 보장돼 있었어. 면회를 끝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사드의 생활을 직접 같이 견딜 필요가 없었지.
그런데 석방되면 다시:
성적 방종 + 빚 + 질투 + 폭언 + 스캔들 + 사드의 요구 + 가족과의 갈등
속으로 들어가야 했어.
실제로 사드 자신도 석방되기 전에 이걸 알아챘어. 아내의 행동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내 자유가 우리의 별거를 가져오리라는 것을 예견했다.”
고 썼어.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됐어.
1790년 사드가 13년 만에 자유인이 되자 Sainte-Aure 수도원으로 아내를 찾아갔는데 Renée는 만나주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두 달 뒤 법원에서 부부의 신체·재산상 별거가 확정됐다.
그래서 전기작가가 꽤 흥미로운 해석을 한다
Francine du Plessix Gray의 사드 전기를 평가한 역사학자 Robert Darnton은 이 부부관계를 아주 압축적으로 설명해.
감옥에서의 관계는 사실상
Renée → 주는 사람
Sade → 받는 사람
으로 굳어져 있었고, 자유가 찾아오자 그 관계를 유지하던 구조 자체가 사라졌다는 거야.
나는 이 해석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고 봐.
다만 이것만으로 “Renée에게 구원자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임상적으로 진단할 수는 없어. 18세기 여성의 현실도 고려해야 하거든. 귀족 여성에게 결혼은 지금처럼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개인적 계약이 아니었고, 가문·재산·자녀·종교적 의무가 전부 얽혀 있었어.
그런데 프랑스혁명이 터지면서 외부 환경까지 변했다. 기존의 가족·법적 질서가 흔들렸고, Renée 자신도 점점 종교생활에 깊이 들어갔다. 1790년 자료에는 가족이 이제 사드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결정했고, Renée도 거기에 동의하면서 지난 20년 동안 겪었던 고통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내가 그녀의 심리를 한 문장으로 재구성한다면 이거야.
“나는 이 사람을 버릴 수 없어서 평생 구하려고 했지만, 이 사람이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 다시 그의 삶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제는 더 이상 못 하겠다.”
오히려 감옥이 둘의 결혼생활을 끝낸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13년 동안 연장시켰을 가능성이 있어. Angela Carter도 비슷하게, 27년간 이어진 결혼의 혹독함이 사드의 장기 수감 때문에 오히려 완화됐을 것이라고 지적했어.
그리고 더 묘한 점은 Renée가 사드를 단순히 증오해서 떠난 것도 아닌 듯하다는 것이야. 후대 기록에서는 그녀가 사드와 연락을 끊은 뒤에도 그의 생활비를 간접적으로 챙긴 흔적이 있어. 즉 감정적으로는 “당신이 죽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다시는 당신과 함께 살지는 않겠다”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있어.
이렇게 보면 처음에는 기괴해 보이는 “감옥에 있을 때 헌신 → 석방되자 결별”이 오히려 상당히 일관된 행동으로 보여.
내가 앞서 “성적 도구까지 아내에게 요구했다”고 쓴 건 너무 뭉뚱그린 표현이었어. 정확히 말하면 사드의 수감 중 편지에는 성적인 물품과 외설적 자료에 관한 요구가 등장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현대식 sex toy를 아내에게 지속적으로 주문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건 부정확해.
사드가 아내에게 가장 집요하게 요구한 것은 오히려 책, 원고용품, 옷, 향수, 음식과 디저트, 술, 돈, 생활용품이었어. 성적·외설적 서적이나 이미지에 대한 요구도 있었고, 자신의 성적 환상을 편지에 상세하게 쓰기도 했지. 그러니 앞의 “성적 도구”는 취소하고 “성적·외설적 자료를 포함한 각종 물품”이라고 하는 게 맞아.
그리고 Renée-Pélagie는 결국 수도원적 생활을 택했고, 사드와 결별한 뒤 다른 남자와 재혼하거나 알려진 연애관계를 갖지는 않았어.
1790년 사드가 석방될 무렵 그녀는 이미 파리의 Sainte-Aure 수녀원/종교시설에 들어가 있었어. 사드가 석방되어 찾아왔는데도 만나기를 거부했고, 곧 법적으로 별거했다.
다만 중요한 구별이 있어. 그녀가 정식으로 수녀가 되어 종신서원을 한 것은 아니야. 당시 귀족 여성들이 수도원에 들어가 거주하면서 종교적인 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었고, Renée도 이런 형태에 가까웠어. 따라서 “수녀가 됐다”보다는 “수도원에 은거했다”가 정확해.
그 후에도 사드와 다시 합치지 않았고, 1810년 7월 7일 사망할 때까지 사실상 독신으로 살았다. 사드보다 4년 먼저 죽었어.
이게 앞 질문과 연결하면 상당히 의미심장해. Renée는 1763년 결혼해서 약 27년 동안 사드의 온갖 사건을 감당하고, 도피와 투옥 때까지 남편을 도왔는데, 혁명으로 사드가 드디어 풀려나자 오히려
사드와 재결합 ❌ → 수도원 생활 → 법적 별거 → 이후 약 20년간 재혼 없이 생활
을 선택한 거야.
그래서 단순히 “다른 남자가 생겨서 사드를 버렸다”는 설명과는 전혀 맞지 않아. 오히려 자료상으로는 사드와의 결혼생활 자체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종교적·은둔적인 삶으로 돌아선 모습에 가까워. 사드의 극단적인 무신론·성적 방종과 Renée의 말년의 종교적 생활을 나란히 놓으면 두 사람이 결국 정반대 방향으로 가버린 셈이기도 하고.
사드와 결별한 뒤의 Renée-Pélagie(1741–1810)의 마지막 20년은 상당히 조용하고 종교적이며 은둔적인 삶이었어. 앞서 내가 “수도원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다”는 식으로 말한 건 정확하지 않아. 수도원에도 거처가 있었지만 주된 말년 생활은 가족 영지에서 딸과 함께한 것으로 보인다.
1790년 사드가 풀려났을 때 그녀는 파리의 Sainte-Aure 수도원에 방을 빌려 생활하고 있었어. 중요한 건 이곳의 수녀들이 귀족 여성들에게 약 40개의 방을 임대했고, 그 여성들이 반드시 수녀가 되려고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야. 즉 Renée도 정식 수녀가 아니었다.
사드가 찾아왔지만 그녀는 만나기를 거부했고 그해 법적으로 별거했다. 이후 재혼하지 않았고 알려진 연애관계도 없다. 종교에 상당히 깊이 귀의했고, 후대 전기는 그녀의 마지막 수십 년을 “la plus grande piété et réclusion”, 즉 극도의 경건함과 은둔 속에서 보냈다고 묘사한다.
생활의 중심은 부모의 재산이었던 노르망디 Échauffour의 성/영지였고, 딸 Madeleine-Laure와 상당 기간 함께 살았다. 파리에 올 때는 수도원에 마련한 거처를 이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고 사드와 관련된 모든 것을 즉시 끊어버린 것도 아니야. 두 사람은 사실상 별개의 삶을 살았지만 재산관계 때문에 접점이 남았다. 1790년대 중반 사드가 빈곤해지자 재산과 그녀의 지참금·미지급 금액 등을 둘러싼 문제가 계속됐다. 한편 1791년에는 사드가 자기 변호사에게 La Coste의 올리브유 몇 통을 Renée에게 보내라고 한 기록도 있어서, 적어도 완전히 증오만 남은 관계라고 단순화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의외로 중요한 일이 하나 있어. 1801년 사드가 다시 체포되어 열악한 Bicêtre에 갇히자 Renée와 자녀들이 더 나은 Charenton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다는 전승이 있다. 즉 부부관계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그를 완전히 인간적으로 버린 것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부분은 내가 찾은 자료 중에서는 후대 전기에 의존하므로 확정적인 1차자료 수준으로 말하진 않겠어.
말년에는 신체적으로도 많이 쇠약했다
Renée는 사드보다 먼저 1810년 7월 7일 Échauffour에서 사망했어. 1741년 12월생이므로 만 68세였어. 기록에 따르면 말년에는 거동이 불편했고, 귀가 들리지 않았으며, 시력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죽기 불과 1년 전인 1809년 장남 Louis-Marie가 나폴레옹 전쟁 중 이탈리아에서 전사했어. 그는 나폴리군과 관련된 전투/매복에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어머니는 그로부터 약 13개월 뒤 사망했다.
그래서 Renée의 인생을 보면 상당히 극단적으로 두 부분으로 갈려.
22세 결혼 → 약 27년간 사드의 아내로 스캔들·도피·재판·투옥을 감당 → 48세에 결별 → 약 20년 동안 딸과 가족 영지 및 종교적 환경에서 조용히 생활 → 68세 사망.
특히 흥미로운 건 사드와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노년을 보냈다는 것이야. 사드는 그녀와 헤어진 뒤 Marie-Constance Quesnet와 동거하고, 혁명정치에 뛰어들고, 《Justine》《Juliette》 같은 작품을 출판하고, 다시 체포되어 Charenton에서도 글과 연극과 성생활을 계속했어.
반면 Renée는 종교·가족·은둔 쪽으로 들어갔지.
그래서 그녀가 1790년에 사드를 거부한 것을 순간적인 분노로 보기는 어려워. 그 뒤 20년 동안 다시 남편에게 돌아가지 않고 완전히 다른 생활방식을 유지했다는 점을 보면, 오랜 세월의 소진 끝에 자기 삶을 사드의 세계에서 의식적으로 분리한 결정이었다고 보는 게 가장 자연스러워. 다만 이것은 행동에 근거한 역사적 해석이지 그녀에게 특정 심리진단을 붙일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