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슈타인 가문: 보헤미아의 대지주로 카사노바, 베토벤 등을 후원 / 근세 유럽의 특수한 후원제도 / 발트슈타인은 러시아 황제 Alexander I 러시아 대공 Constantine 프로이센 국왕 Frederick William III 오스트리아의 Metternich Schwarzenberg Radetzky 등을 접대 / Waldstein 자신이 사람 수집(?)을 좋아했던 것 같아. 그의 Dux에는 나중에 괴테, 실러 같은 인물들이 방문했고, 1813년에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메테르니히, 슈바르첸베르크, 라데츠키 같은 거물들도 접대했다.
근데 Waldstein 에게 카사노바가 쓸모가 있었나? 뭔가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는 줫나? Waldstein 의말년은?
응. Waldstein 입장에서 카사노바는 실용적인 직원으로서의 가치보다 ‘지적 동반자이자 살아 있는 이야기책’으로서의 가치가 훨씬 컸다고 보는 게 맞아. 그리고 Waldstein 자신도 평범한 시골 귀족이 아니었어.
Waldstein에게 카사노바가 실제로 무슨 쓸모가 있었나?
도서관 업무가 완전히 가짜였던 것은 아니야. Dux 도서관은 4만 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했고 카사노바가 장서 정리·목록화 업무를 맡았다는 자료가 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카사노바를 13년 동안 먹여 살린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Waldstein은 예술·과학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카발라와 신비주의 문헌에 상당한 관심과 지식이 있었어. 19세기 전기자료도 바로 이것 때문에 박식한 카사노바에게 끌렸고, 그를 계속 곁에 두려고 사서로 임명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카사노바는 이런 귀족에게는 정말 엄청난 대화 상대였을 거야.
그와 몇 시간 앉아 있으면 실제 경험담만으로도
- 볼테르와 직접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 프리드리히 대왕을 어떻게 만났는지
- 예카테리나 2세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 파리에서 왕립복권 사업을 어떻게 했는지
- 베네치아의 악명 높은 Piombi 감옥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
- 유럽 각국의 귀족·외교관·도박꾼·정부 관계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 연금술·카발라·프리메이슨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 파리·런던·베네치아·빈·베를린·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사교계가 어떻게 다른지
같은 걸 “내가 직접 겪어봤는데 말이야…” 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거든.
Prince de Ligne가 실제로 Dux에서 카사노바를 여러 해 만나고 남긴 평가가 이걸 잘 보여줘. 그는 늙은 카사노바와 함께 있는 것이 자신을 정말 행복하게 했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 여전히 20세 청년 같은 생생한 상상력과 깊은 박식함을 들었어.
그러니까 우리가 카사노바를 그냥 “여자 많이 만난 난봉꾼”으로 생각하면 Waldstein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거야.
실제 카사노바는 여러 언어를 구사하고, 수학·문학·철학·정치·음악·신비주의에 관심이 많았으며 유럽 최고위층을 실제로 돌아다녀본 지식인 겸 모험가였어. 말년에 글쓰기·번역·유럽 지식인들과의 서신도 계속했다.
게다가 Waldstein 자신이 사람 수집(?)을 좋아했던 것 같아. 그의 Dux에는 나중에 괴테, 실러 같은 인물들이 방문했고, 1813년에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메테르니히, 슈바르첸베르크, 라데츠키 같은 거물들도 접대했다.
그러니 카사노바를 데려온 것도 이 문화의 일부라고 보면 이해가 쉬워.
“도서관 정리할 사람이 필요하네.”가 아니라
“이 인간 엄청 재미있는데? 내 성에 데려가서 살게 하자. 도서관도 맡기고.”
에 훨씬 가까웠던 셈이지.
그런데 둘이 실제로 친했나?
상당히 친했다고 보는 게 맞아. 단순 고용주-고용인 관계보다 훨씬 관대했어.
가장 웃기는 사건이 1795년이야.
카사노바가 Dux 생활에 질려 Waldstein에게 상당히 감정적인 작별편지를 남기고 몰래 떠나버렸어.
Waldstein의 반응은 화를 내거나 해고하는 게 아니라:
웃으면서 “저 사람 다시 돌아올 거다”라고 했다.
정말로 카사노바는 다른 귀족들에게 일자리를 구하려 했지만 실패했어. 심지어 돈을 빌리면서 Waldstein 앞으로 환어음을 끊어버렸는데, Waldstein은 그것까지 지불해줬어.
그리고 카사노바가 Dux로 돌아오자 다시 받아주고 포옹했다.
이 정도면 그냥 고용관계라고 보기 힘들어.
Waldstein이 카사노바의 성격을 상당히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저 노인은 또 삐쳐서 나갔지만 결국 돌아온다.”
정도의 관계였던 거지.
그래서 앞에서 이야기한 하인 문제도 이해돼. Waldstein이 카사노바를 싫어해서 하인들에게 방치한 게 아니라, 오히려 Waldstein 자신은 카사노바에게 비정상적으로 관대한 후원자였어. 문제는 Waldstein이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성을 비우는 일이 많았고, 카사노바는 현지 직원들과 매일 부딪쳤다는 거야.
그런데 Waldstein 자신의 말년은?
여기서 상당히 재미있는 우연이 있어.
Joseph Karl Emanuel von Waldstein
- 1755년 2월 16일 출생
- 1814년 3월 17일 사망
- 59세
였어.
즉 카사노바보다 30살이나 어렸는데 카사노바가 죽은 지 16년밖에 지나지 않아 죽었어.
카사노바: 1798년, 73세 사망
Waldstein: 1814년, 59세 사망
그리고 더 기묘하게도 사드도 1814년에 죽었어. 사드는 그해 12월 2일 사망했으니,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세 사람의 마지막이 이렇게 겹쳐.
카사노바 → 1798
Waldstein → 1814년 3월
사드 → 1814년 12월
Waldstein의 말년은 카사노바처럼 몰락한 것이 아니야. 오히려 끝까지 대귀족의 삶을 살았다.
1797년에는 가문의 seniorat를 계승했고, 예술과 학문의 후원자로 계속 활동했다.
특히 그의 생애 마지막 해 바로 전인 1813년, 나폴레옹 전쟁의 Kulm 전투 이후 Dux에서 정말 엄청난 사람들을 접대했어.
러시아 황제 Alexander I
러시아 대공 Constantine
프로이센 국왕 Frederick William III
오스트리아의 Metternich
Schwarzenberg
Radetzky
등이 그의 손님이었다고 가문 자료가 전한다.
그러니까 카사노바와는 정반대야.
카사노바는 유럽 최고위층을 돌아다니던 사람 → 말년에 Waldstein의 성에 정착
Waldstein은 자기 성에 앉아 있음 → 유럽 최고위층이 자기에게 찾아옴
이었던 셈이지.
그리고 Waldstein은 결혼하지 않은 채 59세로 죽었다. 19세기 전기자료도 그가 미혼으로 사망했다고 기록한다.
그래서 나는 Waldstein이 카사노바를 13년 동안 후원한 것을 단순한 자선으로 보는 것보다 “돈 많은 지적 귀족이 아주 희귀하고 재미있는 인간을 자기 주변에 두는 데 돈을 쓴 것”으로 보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고 봐.
그리고 그 투자는 역사적으로 엄청난 결과를 낳았어. Waldstein이 카사노바에게 안정적인 방·돈·도서관·시간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Histoire de ma vie》가 지금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니까. 실제로 Dux에서 카사노바가 회고록을 비롯한 대부분의 후기 저술을 썼다는 것이 확인된다.
맞아. 비유로는 꽤 적절해. 물론 춘추전국시대의 식객과 유럽 귀족의 후원문화는 제도적으로 다르지만, “돈 많은 권력자가 흥미롭거나 유능한 인물을 자기 집에 먹여 살리며 곁에 둔다”는 점은 닮았어.
Waldstein 같은 대귀족에게는 오늘날처럼 영화·TV·인터넷 같은 오락이 없었고, 사교·음악·연극·독서·서신·손님과의 대화 자체가 중요한 오락이자 지적 생활이었어. 특히 Waldstein은 학문과 신비주의 등에 관심이 많았고, 카사노바는 대화 소재가 거의 무한한 사람이었지. 그는 수십 년간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왕과 군주, 볼테르 같은 지식인, 외교관, 귀족, 도박꾼 등을 직접 만났고 여러 나라의 궁정과 사교계를 경험했으니까.
그래서 카사노바의 가치를 현대적인 “사서라는 직업의 생산성”으로 계산하면 이해가 안 되고, 오히려 춘추전국시대 식객처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워.
“저 사람 박식하고 말도 재미있고 경험도 엄청나네 → 내 성에 방 하나 주고 생활비 주면서 도서관도 좀 맡기고 필요할 때 같이 이야기하자.”
이런 관계에 가까웠던 거지.
다만 전국시대 식객과 중요한 차이도 있어. 맹상군의 식객처럼 정치·외교·군사적 상황에서 주군에게 실질적인 능력을 제공하는 인재집단이라는 성격은 카사노바에게 훨씬 약해. Waldstein에게 노년의 카사노바는 정치고문이라기보다 지적·문화적 동반자 + 문인 + 명예직 사서에 가까웠어.
그리고 이것 때문에 Waldstein이 카사노바의 기행을 그렇게 오래 참아준 것도 더 이해가 돼. 애초에 업무효율을 보고 고용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저 노인 성격이 왜 저래, 해고해”가 아니라, 괴팍함까지 포함해서 카사노바라는 희귀한 인물을 소장(?)하고 후원하는 것 자체가 취향이었던 셈이라고 보면 상당히 자연스러워.
여기서 하나 정정해야 해. 카사노바의 후원자 Joseph Karl Emanuel von Waldstein(1755–1814)의 ‘직계 후손’은 현재 없어. 앞서 내가 그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식으로 말한 부분은 자료가 서로 충돌하는데, 계보를 따라가면 그의 Duchcov 계통 자체가 이후 단절된다.
Waldstein 가문 전체는 훨씬 큰 집안이야.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보헤미아 최고(最古) 귀족가문 가운데 하나이고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카사노바의 Waldstein이 속한 Duchcov(Dux) 계통은 1901년에 남계가 끊겼다. 반면 다른 Waldstein-Wartenberg 계통은 지금도 존재한다. 체코 귀족계보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살아남은 것은 주로 Mnichovo Hradiště 계통의 두 분파이고, 현대 후손들은 주로 오스트리아에 산다.
즉 현재의 Waldstein들은 카사노바의 후원자 Joseph Karl의 직계 자손이라기보다는 같은 대가문의 방계 친족들의 후손이라고 이해하면 정확해.
1945년이 이 집안에는 결정적이었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Waldstein 가문의 대규모 영지와 성들이 몰수되었고, 가족 대부분이 오스트리아로 이주했다. 현재 후손들이 빈·잘츠부르크 등 오스트리아에 거주한다고 가문 자체 자료도 설명한다.
그래서 지금은 18세기처럼
“백작이 성 수십 개와 마을을 소유하고 수백 명을 거느리는 대지주”
로 사는 집안은 아니야. 귀족 칭호도 오스트리아에서는 1919년 이후 법적인 신분이나 특권이 없어졌고, 체코의 옛 영지도 대부분 국가 소유 문화재가 됐어.
다만 가문 자체는 여전히 존재하고 자신들의 역사·계보를 관리하고 있다. Waldstein-Wartenberg 가문이 운영하는 공식적인 가족사 사이트에는 현대 후손들이 20세기의 정치적 격변 때문에 체코 밖에서 살게 되었다고 명시돼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집안의 역사적 규모야. 카사노바를 고용한 Joseph Karl은 사실 Waldstein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도 아니야. 그의 동생 Ferdinand Ernst von Waldstein은 베토벤의 후원자였고, 바로 그 사람에게 헌정된 작품이 오늘날 유명한 《Waldstein Sonata》, 피아노 소나타 21번 Op.53이야.
그러니까 이 집안은 한 세대 안에서
형 Joseph Karl → 카사노바를 13년간 후원
동생 Ferdinand → 젊은 베토벤을 후원
이라는 일이 벌어진 집안이야.
그리고 “현재 후손들이 정확히 무슨 직업을 갖고 사느냐”는 부분은 공개자료가 의외로 빈약해. 살아 있는 개인들이라 역사적 계보사이트에서도 현대인의 직업과 사생활을 상세히 공개하지 않는다. 확인 가능한 범위에서는 오스트리아 등에 거주하는 Waldstein-Wartenberg 방계 후손들이 존재한다 정도까지가 확실하고, “현재 당주는 누구이며 재산이 얼마이고 무슨 사업을 한다”까지 신뢰성 있게 공개된 자료는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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