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편지의 황대권: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야생초 관찰일기지만, 실은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한 젊은이가 타율과 감시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던 생명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감옥 마당에서 무참히 뽑혀 나가는 야생초를 보며 나의 처지가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구상에 지금까지 알려진 식물종 -- 물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식물, 사람들이 미처 이름을 붙이지 못한 식물종이 더 많습니다만 -- 이 약 35만여 종 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 35만여 종의 식물 중에서 인간들이 재배해서 먹고 있는 것은 약 3천종 가량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35만에서 3천을 빼면 숫자가 어떻게 됩니까. 대략 34만 7천 종의 식물들을 전부 잡초라고 없애 버리는 그런 우를 지금 인류가 범하고 있어요. 그것이 어째서 잡초인가. 그래서 저는 잡초라는 말을 안 씁니다. 대신에 저는 야초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 / 묵내뢰(默內雷). 겉으론 침묵을 지키면서 속으론 우레와 같다는 말이다. / 화개반 주미취(花開半 酒微醉)란 말 들어 보았는지? "꽃은 반쯤 피었을 때가 보기 좋고, 술은 약간 취했을 때가 기분이 좋다."란 뜻


 

야생초 편지의 황대권: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야생초 관찰일기지만, 실은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한 젊은이가 타율과 감시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던 생명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감옥 마당에서 무참히 뽑혀 나가는 야생초를 보며 나의 처지가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구상에 지금까지 알려진 식물종 -- 물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식물, 사람들이 미처 이름을 붙이지 못한 식물종이 더 많습니다만 -- 이 약 35만여 종 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 35만여 종의 식물 중에서 인간들이 재배해서 먹고 있는 것은 약 3천종 가량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35만에서 3천을 빼면 숫자가 어떻게 됩니까. 대략 34만 7천 종의 식물들을 전부 잡초라고 없애 버리는 그런 우를 지금 인류가 범하고 있어요. 그것이 어째서 잡초인가. 그래서 저는 잡초라는 말을 안 씁니다. 대신에 저는 야초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 / 묵내뢰(默內雷). 겉으론 침묵을 지키면서 속으론 우레와 같다는 말이다.  / 화개반 주미취(花開半 酒微醉)란 말 들어 보았는지? "꽃은 반쯤 피었을 때가 보기 좋고, 술은 약간 취했을 때가 기분이 좋다."란 뜻

 

 

https://blog.naver.com/hasselwisch/221988894743


아, 사람이란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치유하고 공부하며 가꾸어나갈 수 있구나, 책을 읽는 내내, 호기심과 놀라움이 끊임없이 피어났다.

13년 2개월의 감옥살이.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던 저자, 황대권은 <미주유학생간첩사건>에 휘말려 고문끝에 간첩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너무도 억울해서 5년간은 나가려고 '별별 짓'을 다했단다. 단식투쟁, 밀서, 등등. 그러다 얻은 건 몸의 병. 자신의 몸을 치유하려고 자연요법을 시작했고, 풀을 먹기 시작했다.

사람의 사고방식이 바뀌는데는 굉장한 시간이 걸린다. 황대권은 풀을 관찰하면서 풀을 먹으면서 조금씩 생태주의자가 되어간다.

《야생초 편지》는 옥에서 글을 보전할 수 없으므로 동생에게 보낸 봉함엽서를 모은 책이다. 책 속의 그림들도 모두 한 평 방에서 그가 그린 것이다.

옮겨 적거나 다시 읽어보고 싶은 데에

포스트잇을 잔뜩 붙였다.

이 나라의 가장 민중적인 야생초 네 가지를 꼽으라 하면, 나는 서슴없이 쇠비름, 참비름, 질경이, 명아주를 들겠다. 이 땅에서 가장 흔할 뿐 아니라 모두가 식용으로, 또 민간 약재로 광범위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야생초 편지, 황대권, 도솔 개정판 2쇄 2013년, 131쪽]

그림은 왕고들빼기, "야생초의 왕"

사실 나는 돌콩을 더 좋아한다. 먼저 보랏빛 꽃이 귀엽고, 덩굴 뻗어 나가는 모습이 훨씬 기운차고, 느낌이 시원스럽다. (…)/ 이담에 내가 살 집의 마당은 아마도 야생초 전시관이 될 거다. (…) / 내가 징역 들어와 야생초에 심취하고 나서 변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본격적으로 야생초를 섭렵하기 시작한 것은 지병이었던 만성기관지염을 고쳐보려고 한 데서였다. 양약을 먹다 지쳐서 풀을 뜯어 먹기 시작한 거다. (…) 결과적으로 나는 이 안에 들어와 담배, 술, 커피, 콜라, 사이다 등과 완전히 결별하게 되었다. 결별 정도가 아니라 지금은 그것을 먹으면 속이 영 거북하단다. 대신에 나는 늘 쑥이나 꿀풀 우린 물을 마신다. (…) 나는 요즘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연요법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154~156쪽]

"대구 교도소로 이감하면서

안동 교도소에서 못다 수확한

호박을 아쉬워하며 그렸다."

안동 교도소 시절 운동장에

황대권이 만든 야생초 화단과 채소밭

쑥밭이 부럽기 한량 없도다~^^

황대권의 야생초 화단에 심긴

야초들을 보라!

흔해서 발길에 채이는 잡초를 야초라 부르며 가꾼 지은이.

그 과정에서 진정한 생태주의자가 된 그는

"야생초와 더불어 짓는 농사"

"상업주의에서 해방시키는 농업"을 주창한다.

시민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두가 "생태농장"을 가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황대권씨. 코로나 위기로 식품 값이 치솟고 가까운 미래에 식량위기가 오리라는 진단이 많은 요즘, 자연과 공생하는 농사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꿈이 다시 피어오른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우선 동생 부부에게 추천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326752

 

황대권을 생각하면 늘 가슴이 아프다. 그의 책 "야생초편지"를 읽으면서도 엽서를 쓴 날짜를 일일이 확인하며, 그래 그때는 내가 아들을 낳았었지, 그래 그때는 내가 그런 일을 겪고 있었지 하는 추억들을 떠올리면 읽어 내려갔다. 내가 세상에서 내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그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다. 부도덕했던 정권이, 그리고 세월이 그에게 강요했던 그 억울함을 그리도 담담히 가슴에 묻고 야생초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적어나가고 있는 그의 필체들을 확인할때 마다, 가슴에는 늘 그를 가두어 두고 나만이 편한 생활을 해온 것은 아닌지 늘 미안한 마음이 일렁거렸다. 그는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왔던 나보다 훨씬 거인으로 살아왔으며 나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수확하며 살았음을 이 책으로 인하여 확인 하였다. 자유속에서도 자신을 가꾸지 못했던 수 많은 민초들보다 그의 삶이 더 아름다웠다는 이유가 그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기를 바란다. 이 땅에는 참으로 많은 야생초들이 지천으로 흐드러져 있다. 서울을 벋어나 지방의 산과들을 지날때면 그저 초록이구나 하는 느낌, 초록의 싱그러움으로만 느껴졌던 그 색깔들 속에 하나 하나의 이름이 있으며, 하나 하나의 의미가 있고 그 각각의 하나 하나마다 생존의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경이롭다. 시원스럽게 각진 농토들, 잡초하나 없이 잘 정돈된 산소들이 좋게 보였던 나에게는 내가 벌초를 한다는 이유로 뽑아 버렸던 많은 야생초들이 그렇듯 각각의 심오한 생명력과 의미있는 삶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미안스러웠다. 회색에 익숙해지고 작은 생명에 소홀했던 내 삶이 황대권으로 하여금 조금은 달라졌음을 느낀다. 책을 읽고 나서 아내에게 부탁하여 잘 마시지도 않던 향기좋은 국화차 한 잔을 부탁하여 황대권이 감옥속에서 향을 음미하며 즐기던 그 맛을 함께 느껴 보았다. 그가 보너스로 제공해준 맛스러운 그림들과 잡초가 아닌 야초들에 대한 작지 않은 지식들을 소중히 받았다. 아마 내 아이가 조금 더 자라고 나면 한 번쯤 읽어보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권해줄것 같다.그의 앞으로의 삶에 더욱 큰 보답같은 은총이 함께 하길 빈다

[인상깊은구절]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구상에 지금까지 알려진 식물종 -- 물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식물, 사람들이 미처 이름을 붙이지 못한 식물종이 더 많습니다만 -- 이 약 35만여 종 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 35만여 종의 식물 중에서 인간들이 재배해서 먹고 있는 것은 약 3천종 가량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35만에서 3천을 빼면 숫자가 어떻게 됩니까. 대략 34만 7천 종의 식물들을 전부 잡초라고 없애 버리는 그런 우를 지금 인류가 범하고 있어요. 그것이 어째서 잡초인가. 그래서 저는 잡초라는 말을 안 씁니다. 대신에 저는 야초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종이책 토종이 사라져도 우는 이가 없다
평점8점 | x*****e | 2004.06.30. | 신고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는 책 제목 그대로 편지체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다. 그는 1985년, '학원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형을 선고받고 13년 2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갇혀 지내면서 야생초에 관한 글을 봉함엽서에 적어 동생에게 보낸 것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그러나 이 글에는 작가의 전공인 농업과 미대를 지망했던 데생 솜씨, 미국에서 수학했던 정치학적 지식, 여기에 살아오면서 생각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이 숨쉬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들풀들, 논밭에 피어나는 이름모를 풀들, 그것을 우리는 잡초라 부른다. 그러나 저자는 단호히 야생초라 부르며, 야생초는 아직 그 가치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고 정의한다. 야생초에 대한 그의 생각은 야생초에 대한 그의 지식과 그것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토종적 사고의 뿌리들을 읽을 수 있다. 그 단편적인 예 몇 가지를 본다. 채소밭에 뿌릴 토종 씨앗을 구하기 위해 무척 어려움을 겪는데, 토종 씨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을 알고 "토종이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사회,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며 그는 비통한 한 마디를 내뱉는다. 딱지 꽃에 대한 관찰기에서는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고 소박한 야생초로부터의 배움을 이야기한다. 늘 평화롭게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분에게 사람들이 선생님은 정말 행복하시겠다고 물으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저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오리는 물 아래에서 얼마나 열심히 두 발을 움직여야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내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묵내뢰(默內雷). 겉으론 침묵을 지키면서 속으론 우레와 같다는 말이다. 교도서 한 구석에 마련한 화단 구석에 수줍은 듯 얌전히 피어 있는 주름잎 꽃을 보며 작은 꽃을 피우기 위해 화단 구석의 내밀한 공간 속에서 의젓하게 자리하기 위해 쉼없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그는 생각해 내곤 한다. 야생초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표면적으로 드러낸 글은 녹색평론 창간 10주년 기념행사에서 했던 강연 내용인 '뿌리내리기'라는 글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심은 것은 작물이고, 내가 길러 먹을 것 또한 작물이다. 너(잡초, 야생초)는 내가 길러 먹을 작물의 영양을 빼앗아 먹고, 재배하는 데 방해만 되니 하등 쓸모 없는 풀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이해와는 상반되는 적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미안하지만 너는 모조리 죽어 주어야겠다." 이것은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제3세계 민중들이 어떻게 대우를 받는지에 현상에 대한 시각이며, 또 그들이 어떻게 해야 자주적으로 자립적으로 살아 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야생초 편지』는 저자가 야생초를 통해 본 사회상이기도 하고, 야생초가 저자를 통해 이야기하는 세계관이기도 하며, 한 권의 야생화 도감이기도 하다. 중간 중간 저자가 직접 그려낸 야생화 그림은 참으로 현실감 넘치는 정밀화로 글 읽는 맛을 더해 주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화개반 주미취(花開半 酒微醉)란 말 들어 보았는지? "꽃은 반쯤 피었을 때가 보기 좋고, 술은 약간 취했을 때가 기분이 좋다."란 뜻인데, 나는 황금꽃을 관찰하면서 이 한자말의 의미를 진심으로 받아 들이게 되었다.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야생초 관찰일기지만, 실은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한 젊은이가 타율과 감시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던 생명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감옥 마당에서 무참히 뽑혀 나가는 야생초를 보며 나의 처지가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문을 읽으며 바보같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책 읽을 땐 웬만해서 잘 울지 않는데 책도 읽기 전에 책 앞뒤날개에 실린 글과 서문을 읽고 왈칵 눈물이 나오다니! 야생초 같은 처지가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13년 2개월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저자가 가여워서였을까.

 

  황대권이란 사람은 죄를 지어 교도소에 갇힌 자는 아니었다. 1955년 서울생. 서울농대를 졸업하고 뉴욕 소재 사회과학대학원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학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되었다고 한다. 2001년 6월 8일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 국가기관에 의한 조작극이었다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사회단체의 사면운동을 통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 책은 그의 옥중일기인 셈이다. 그는 1985년 서른 살부터 1998년 마흔네 살까지 교도소에서 생활했는데, 여기 실린 글은 1992년~1997년까지 안동, 대구, 대전교도소 내에서 야생초 화단을 가꾸며 살아온 6년간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감옥에서는 자기 글을 써서 가지고 있지를 못하고 나갈 때 다 빼앗기기 때문에 그는 편지형식으로 기록해서 밖으로 내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형식은 편지글이지만 내용은 일기라고도 볼 수 있다. 야생초의 섬세한 그림과 설명이 담겨있어 마치 식물도감을 보는 듯하다. 그의 아이디어 덕분에 내 눈이 호강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무릇 정성과 열심은 무언가 부족한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만약 내가 온갖 풀이 무성한 수풀 가운데 살고 있는데도 이런 정성과 열심을 낼 수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주어진 자연의 혜택을 느긋하게 즐기는 데 시간을 더 쏟았을 것이다. 물론 풍요로운 생활환경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열악한 생활환경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풍요로운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 (76쪽)

 

  어쩜 이리도 그림을 잘 그릴까. 자유스럽지 못한 공간에서도 이렇게 멋진 작품이 나올 수 있다니 놀랍고도 놀랍다. 미대 지망생이었던 저자가 그린 섬세한 그림까지 곁들여 읽는 맛이란 그야말로 일품이다. 며느리밑씻개, 스타펠리아, 달개비, 제비꽃, 강아지풀, 오이 덩굴, 닭의 덩굴, 딱지꽃, 녹두, 주름잎, 방가지똥, 여뀌, 루드베키아, 황금, 까마중, 매듭풀, 땅빈대, 수까치깨, 돌콩, 왕고들빼기, 마, 괭이밥, 쇠비름, 중대가리풀, 비름, 명아주, 박주가리 덩굴, 산국, 수크령…. 아는 것 몇 개를 제외하곤 그림을 봐도 대부분 낯선 것들이다. 저자는 쇠비름, 참비름, 질경이, 명아주를 가장 민중적인 야생초로 꼽았다. 이 땅에 가장 흔하면서도 모두가 식용으로, 민간 약재로 광범위하게 쓰인다는 게 그의 추천 이유다. 참비름과 질경이는 어릴 적 흔하게 먹고 자랐는데 쇠비름과 명아주를 먹는다는 건 처음 알았다. 우리 엄마도 아마 모르셨던 모양이다.        

 

 

까마중

 

여뀌

 

  이 책이 좋았던 건 단지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라기보단 야생초를 향한 그의 땀과 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풀과 벌레를 키우고 관찰하며 그가 누렸을 즐거움은 우리네 사치스런 취미와는 다르다. 교도소 내에서 만성 기관지염을 고쳐보려고 풀을 뜯어 먹다가 5만 원의 거금을 주고 산 식물도감으로 독학을 하고 여러 책을 읽으며 야생초에 대한 지식을 쌓아간다. 출소한 사람들에게 부탁해 씨앗을 하나 둘 모으고,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사회참관 시간에는 야생초를 캐느라 정신없었던 그 사람. 매일 한 시간의 운동시간에도 그는 화단에 물과 거름을 주고 그렇게 애지중지 야생초를 키웠다고 한다. 들풀모듬에 모듬풀 물김치, 십전대보잼을 손수 만들어 먹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의 꼼꼼하고 여성스런 글씨체만큼이나 보기 좋았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학식이나 용모, 혈통 등 자신이 갖고 있는 조건 때문에 우월감을 가지는 마음은 교(驕)인데 반해, 만(慢)은 무조건 자기 자신이 낫다고 느끼는 본능적 심성이라는 점이다. (중략) 내가 야생초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 속의 만을 다스리고자 하는 뜻도 숨어 있다. 인간의 손때가 묻은 관상용 화초에서 느껴지는 화려함이나 교만이 야생초에는 없기 때문이지. 아무리 화사한 꽃을 피우는 야생초라 할지라도 가만히 십 분만 들여다보면 그렇게 소박해 보일 수가 없다. 자연 속에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있을지언정 남을 우습게 보는 교만은 없거든. (101~102쪽)

 

  야생초 그림만큼이나 인상깊었던 건 맨 뒷장에 부록처럼 담겨있는 기념강연 내용이었다. '녹색평론 창간 10주년 기념모임'에서 '뿌리내리기'란 제목으로 강연한 내용이다. 우리 인간들의 관점에서 잡초란 그저 '잡스러운 풀', '원치않는 장소에 난 모든 풀들', '잘못된 자리에 난 잘못된 풀'로 정의하는데, 이건 다수가 잘못 아는 상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에머슨 학자의 말을 빌리면 '잡초란 그 가치가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풀'이라고 한다. 지구상에 지금까지 알려진 식물종은 약 35만여 종이며 그 중 인간들이 재배해서 먹는 것은 겨우 3천 종가량 정도가 된다고 한다. '녹색혁명'으로 인해 키우기 쉬운 다수확품종만이 살아남은 게 현실이다. '생태학적 제국주의'에 휩쓸려 그 가치가 인정받기도 전에 지구 상에서 사라져버리고 마는 토종 풀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토종 풀들이 사라지고 생태계가 균형을 잃어간다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심각성을 모르고 살아가는 게 더 큰 문제겠지만 말이다. 책 읽는 내내 자꾸만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잡초라고 여기며 뽑아버렸던 것들이 새록새록 생각나서였다. 화분 옆에 자라던 작은 풀을 열심히 뽑아버리곤 했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게 괭이밥이었다. 우리가 야생초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가져줄 때 자연은 우리에게 가치 있는 효능으로 보답할 거라 믿는다. 땅이 식물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그 울림이 노함으로 바뀌지 않게.

 

2009/12/10

Written by Da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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