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자도 당황한 앤디 워홀의 사망 원인은? l [그때 그 사인] / 정신병자 페미니스트

 https://m.youtube.com/watch?v=iP6-rlapFEw

 

응. 워홀은 총격 이후 솔라나스와의 접촉을 사실상 끊었고, 특히 출소 후에는 그녀를 다시 만나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다만 흥미로운 건 워홀이 그녀를 공개적으로 “증오했다”고 말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총격 전부터 이미 피하고 있었다

워홀은 1968년 총격 직전에는 솔라나스의 전화를 받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솔라나스를 처음에는 경찰 같은 사람으로 의심했다가, 나중에는 진지한 작가라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감지해서 피했다”고 말했습니다. 밤늦게 전화하는 것도 일종의 성가신 전화처럼 느꼈다고 했고요.

그러니까 원고 문제로 갈등이 심해지면서 워홀 쪽에서는 이미 “이 사람은 위험하다”는 감각이 생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총격 이후에는 완전히 달라짐

이 사건은 워홀의 인간관계 방식 자체를 바꿨습니다.

기존 Factory는 거의 누구든 들어와서 워홀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총격 이후에는 경계가 훨씬 강해졌습니다. AGO는 워홀이 이후 누구를 Factory에 들일지 훨씬 선택적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합니다.

워홀 본인도 나중에 회고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했고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돌려보냈으며, 자신도 작은 사무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누군가 총을 꺼내 나를 쏠까 봐 무서웠다”는 식으로 회고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1971년에는 무장한 남자 둘이 Factory에 들어와 워홀을 찾는 사건까지 생겼습니다. 이 때문에 총격의 트라우마가 단순히 솔라나스 한 사람에 대한 공포로 끝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워홀이 솔라나스를 미워했느냐?

의외로 “아니다”에 가깝습니다.

1969년 인터뷰에서 워홀은 솔라나스에 대해:

“I don't dislike her. I don't dislike anyone. It wasn't her fault … She wasn't responsible for what she did.”

라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즉 “나는 그녀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그녀가 한 일에 책임이 없다는 뜻”의 상당히 이상할 정도로 비난을 자제하는 태도였습니다.

이건 워홀의 성격과도 연결됩니다. 워홀은 사람을 도덕적으로 심판하거나 공개적으로 적대하는 방식보다는, 그냥 관계에서 물러나고 거리를 두는 사람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감정은 아마

증오 ←→ 애정

보다는

“이 사람은 위험하다 → 무섭다 → 이해할 수 없다 → 더 이상 가까이하지 않겠다”

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솔라나스가 출소하자 다시 문제가 생김

1971년 출소 후 솔라나스는 다시 워홀에게 연락하려 했습니다. 그녀는 Factory에 전화를 걸기도 했고, 워홀은 그녀가 다시 나타날 가능성을 상당히 두려워했습니다. 당시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워홀은 이후 솔라나스를 연상시키는 사람만 봐도 경계할 정도로 예민해졌습니다.

이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워홀은 “솔라나스를 미워해서 접근을 차단했다”기보다는 “다시는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사람 자체를 경계하게 됐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실제로 1978년 워홀은 일기에 총격 이후 자신이 “creepy people”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됐다고 썼습니다. 즉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여자를 싫어하게 만든 게 아니라, 워홀이 원래 가지고 있던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Factory’라는 세계관 자체를 무너뜨린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게 꽤 아이러니합니다.

솔라나스는 “워홀이 나를 무시하고 내 작품을 빼앗으려 한다”고 생각해서 총을 쐈는데, 실제 결과는 워홀이 사람들에게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즉 솔라나스가 워홀에게 원했던 “나를 진지하게 봐달라”는 요구가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뒤집혀서, 워홀은 이후 사람 자체를 덜 믿게 된 것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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