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 마의 산의 프리메이슨 언급, 에코의 푸코의 진자에서 언급한 프리메이슨과 로스차일드, 그리고 다빈치 코드
토마스 만은 마의산에서 프리메이슨을 어떻게 해석했지? 토마스 만은 양성애자? 에코의 푸코의 진자에서 프리메이슨과 로스차일드에 대해 언급한 내용 빠짐없이 다뤄봐. 그리고 다빈치코드의 내용은 어떤 내용과 결말?
아래에는 세 작품의 중대한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1. 토마스 만은 《마의 산》에서 프리메이슨을 어떻게 해석했나
《마의 산》에서 프리메이슨은 주로 루도비코 세템브리니를 통해 제시된다. 세템브리니는 이탈리아 인문주의자이자 프리메이슨으로, 계몽주의·이성·과학·교육·민주주의·개인의 자유·인류의 진보를 옹호한다. 반대편의 레오 나프타는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나 가톨릭으로 개종한 예수회원으로서, 금욕주의·종교적 권위·혁명적 폭력·전체주의적 공동체를 옹호한다.
프리메이슨은 ‘계몽주의적 인류애’의 상징
세템브리니가 속한 결사는 인류를 교육과 이성으로 개선하고, 민족 간 전쟁을 극복해 보편적인 인간 공동체를 만들려 한다. 따라서 프리메이슨은 여기서 흔히 말하는 비밀 권력이나 사탄적 음모라기보다 다음과 같은 근대적 이상을 대표한다.
- 종교적 교리보다 이성
- 군국주의보다 국제주의
- 복종보다 개인의 자유
- 죽음 숭배보다 삶과 진보
- 민족적 배타성보다 보편적 인류애
세템브리니가 참여하는 ‘문학적 인류 진보 연맹’의 백과사전 사업 역시 지식을 체계화해 고통과 전쟁을 제거할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믿음을 풍자적으로 과장한 것이다.
그러나 토마스 만은 프리메이슨을 무조건 찬양하지 않는다
세템브리니는 작중에서 비교적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인물이지만, 만은 그의 사상을 충분한 해답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세템브리니는 종교의 상징·위계·복종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이 속한 프리메이슨 조직 역시 의식·위계·상징을 지닌다는 모순을 보인다. 또한 인간의 육체성, 욕망, 질병, 죽음, 비합리성을 ‘이성으로 극복해야 할 오류’처럼 취급한다.
즉, 그의 프리메이슨적 인문주의는 고귀하지만 다음과 같은 한계를 가진다.
- 이성을 거의 종교처럼 숭배한다.
- 인간의 욕망과 죽음 충동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다.
- 보편적 인류애를 말하면서도 상대를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내려다본다.
- 평화를 옹호하지만 때로는 전쟁도 진보를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한다.
- 형제애를 내세우는 조직이면서 비밀성과 위계성을 유지한다.
따라서 《마의 산》의 프리메이슨은 좋은 의미의 자유주의·인문주의를 대표하면서도, 현실의 복잡성을 포착하지 못하는 합리주의의 한계를 함께 드러낸다.
나프타와의 대립
나프타는 세템브리니의 자유주의를 위선적인 부르주아 이념이라고 공격한다. 그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성적이고 평화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부정하며, 권위·희생·공포·폭력·종말론적 혁명을 강조한다.
그러나 만은 나프타에게도 승리를 주지 않는다. 세템브리니의 합리주의가 생명력을 결여했다면, 나프타의 사상은 인간을 구원한다는 명목 아래 인간을 파괴한다. 결국 두 사람의 논쟁은 결투로 끝나고, 세템브리니가 일부러 허공에 총을 쏘자 나프타는 분노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장면에서 드러나는 핵심은 다음과 같다.
- 세템브리니는 논리적으로는 자주 밀리지만 인간을 죽이지 못한다.
- 나프타는 논쟁에서 날카롭지만 자신의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여 자기파괴에 도달한다.
- 프리메이슨적 인문주의는 불완전하지만, 전체주의적 광신보다 인간적이다.
토마스 만의 최종 입장은 어느 한쪽에 대한 단순한 선택이라기보다 이성만으로도, 광신과 죽음으로도 인간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눈보라 속에서 얻는 통찰, 즉 인간은 죽음에 대한 인식 때문에 사랑과 선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두 극단을 넘어서는 잠정적 해답이다. 세템브리니는 진리 전체가 아니라 그 해답에 필요한 한 축이다.
2. 토마스 만은 양성애자였나
단정적으로 말하면, 현대적 의미에서 토마스 만을 양성애자로 분류할 수는 있지만, 많은 연구자는 그를 동성애적 욕망이 강했던 남성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판단한다.
확인되는 사실
토마스 만은 카티아 프링스하임과 결혼해 여섯 자녀를 두었고, 가족생활을 지속했다. 그러나 사후 공개된 일기에는 남성, 청년, 소년의 아름다움에 대한 강렬한 성적·감정적 매혹이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욕망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아셴바흐와 타지오 관계를 비롯해 여러 작품에 반영되었다. 그의 일기는 1970년대부터 공개되면서 성적 정체성이 작품세계의 핵심이라는 연구가 본격화되었다.
다만 다음은 구분해야 한다.
- 여성과 결혼했다고 해서 반드시 양성애자인 것은 아니다.
- 남성에게 강한 욕망을 느꼈다고 해서 실제 동성 성관계를 했다는 증거가 자동으로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 당시에는 오늘날의 ‘게이·바이’라는 정체성 언어가 지금과 똑같이 사용되지 않았다.
- 만 자신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가족생활을 유지하면서 욕망을 주로 일기와 문학 속에서 통제·변형했다.
따라서 가장 신중한 표현은 다음과 같다.
토마스 만은 이성애적 결혼생활을 했지만, 남성에게 지속적이고 강렬한 동성애적 욕망을 느꼈으며 그것이 그의 문학을 깊이 형성했다.
‘양성애자’라고 부르는 것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성적으로 끌렸다고 입증된 것은 아니다. 일부 전기적 해석에서는 그를 억압되거나 승화된 동성애자에 가깝게 본다.
3.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에서 프리메이슨과 로스차일드
먼저 중요한 전제가 있다. 《푸코의 진자》는 프리메이슨·템플기사단·로스차일드가 실제로 세계를 지배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소설이 아니다. 정반대로, 서로 무관한 역사적 사실과 전설을 억지로 연결하면 얼마나 그럴듯한 거대 음모론이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풍자소설이다. 세 편집자가 장난으로 만든 ‘계획’이 실제 비밀결사 신봉자들에게 진실로 받아들여지면서 파국이 일어난다.
‘빠짐없이’라는 요청을 문자 그대로 적용해 모든 문장과 이름을 재현하는 것은 저작권상 불가능하고, 판본별 페이지도 다르다. 대신 프리메이슨과 로스차일드가 들어가는 주요 서사적·사상적 맥락을 모두 묶어 설명하겠다.
전체 줄거리의 토대
밀라노의 출판 편집자 벨보와 디오탈레비, 템플기사단을 연구한 카소봉은 오컬트와 비밀결사에 관한 황당한 원고들을 계속 접한다. 아르덴티 대령은 템플기사단이 14세기에 해체된 것이 아니라 지하로 들어가 수백 년에 걸쳐 세계를 장악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한다.
대령이 사라진 뒤 세 사람은 컴퓨터 ‘아불라피아’를 이용해 무관한 자료들을 조합한다. 템플기사단, 장미십자회,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카발라, 연금술, 예수회, 암살교단, 나치 신비주의, 지구의 비밀 에너지까지 모두 하나의 ‘계획’으로 연결한다. 출판사 소개 자체도 이 소설을 “세 편집자가 음모를 발명하고, 세계가 그것을 진짜라고 믿게 되는 이야기”로 요약한다.
프리메이슨의 위치
1. 템플기사단의 후계자라는 전설
‘계획’ 속에서는 1314년 템플기사단이 사라진 뒤 그 비밀 지식이 여러 파벌로 나뉘어 전승되었다고 설정된다. 프리메이슨은 그 후계 조직 가운데 하나로 편입된다.
여기에는 실제 역사와 후대 전설이 뒤섞인다.
- 중세 성전기사단
- 석공 길드의 상징
- 솔로몬 성전 전설
- 히람 아비프
- 성전의 건축과 재건
- 장미십자회
- 스코틀랜드 계통 의례
- 기사단 계급을 채택한 고위도 프리메이슨 의식
에코의 요점은 이것들이 아무 관련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부분적 유사성과 후대의 차용을 ‘하나의 끊기지 않은 비밀 지휘체계’로 바꾸는 순간 역사에서 음모론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2. 프리메이슨 내부의 분열도 음모론의 연료가 된다
소설 속 음모론자들은 프리메이슨을 하나의 단일조직으로만 보지 않는다. 영국·프랑스·독일·스코틀랜드 계열, 정규파와 비정규파, 신비주의 계열과 합리주의 계열 등 실제 또는 전설적인 차이를 모두 ‘위장된 분업’으로 해석한다.
즉,
- 서로 싸우면 계획을 감추기 위한 연극
- 서로 협력하면 동일한 지휘부의 증거
- 자료가 남으면 비밀 암호
- 자료가 없으면 은폐의 증거
가 된다. 반증이 불가능한 구조다.
3. 계몽주의와 혁명
프리메이슨은 미국혁명·프랑스혁명·민족주의 운동·이탈리아 통일과 연결된다. 역사적으로 일부 혁명가와 정치인이 프리메이슨이었던 사실이 있지만, ‘계획’은 이를 곧바로 “모든 혁명을 동일한 비밀조직이 설계했다”는 결론으로 확대한다.
여기서 에코가 조롱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A와 B가 같은 결사에 속했다.
A는 혁명에 참여했다.
그러므로 그 결사가 혁명을 설계했다.
B가 은행가라면 혁명과 금융도 하나의 계획이다.
이런 식의 연상은 사실 몇 개를 포함하기 때문에 완전한 거짓말보다 훨씬 강력하다.
4. 프리메이슨 의식과 상징
컴퍼스, 직각자, 기둥, 성전, 빛, 동방, 위계적 입문, 비밀어, 숫자 등이 반복적으로 음모의 증거로 해석된다. 그러나 같은 도형과 숫자는 건축·종교·천문학·연금술에서도 사용된다.
에코는 상징이 여러 시대와 문화에서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동일한 상징이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동일한 조직의 지속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5. ‘디오볼리칼’과 실제 프리메이슨의 차이
소설 속 편집자들은 오컬트 원고를 들고 오는 광신적 저자들을 ‘디오볼리칼’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실제 프리메이슨 역사보다 자신들이 상상한 초프리메이슨 조직에 더 집착한다.
결말에서 벨보를 납치하는 집단 역시 프리메이슨 전체를 대표하는 조직이라기보다, 프리메이슨·템플기사단·연금술·신비주의 전승을 실제라고 믿어버린 혼합적 비밀결사 신봉자들이다.
로스차일드가 들어가는 방식
로스차일드는 소설의 주인공도 아니고, ‘계획’을 실제로 지휘하는 것으로 확정되는 가문도 아니다. 그 이름은 유럽 금융·혁명·전쟁·철도·국가부채·유대인 세계음모론을 하나로 엮는 전형적인 음모론적 연결고리로 들어간다.
1. 프리메이슨과 금융의 연결
템플기사단은 중세의 금융·신용 기능과 연관되었고, 근대 프리메이슨은 국제적 인맥을 가진 엘리트 결사로 상상된다. 여기에 근대 유럽의 대표적 국제 금융가문인 로스차일드를 끼워 넣으면 다음과 같은 허구적 계보가 만들어진다.
템플기사단의 재정 비밀
→ 장미십자회와 프리메이슨
→ 일루미나티
→ 국제 은행가
→ 로스차일드
→ 혁명과 전쟁의 자금 조달
→ 세계지배 계획
에코는 이 계보를 진실로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음모론자가 어떻게 서로 다른 시대의 기관을 ‘돈’이라는 단어 하나로 연결하는지 보여준다.
2. 혁명도 반혁명도 모두 같은 가문 탓이 된다
음모론에서는 로스차일드가 군주국에 돈을 빌려주면 보수왕정의 배후이고, 혁명 이후의 정부에 자금을 제공하면 혁명의 배후가 된다. 전쟁 당사국과 거래하면 양쪽을 조종한 것이 되고, 거래하지 않으면 숨겨진 보이콧이나 압박으로 해석된다.
에코가 풍자하는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동일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이론은 설명력이 강한 것이 아니라, 검증 자체를 거부하는 이론이다.
3. 반유대주의적 음모론과 《시온 의정서》
《푸코의 진자》에는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 템플기사단, 예수회, 프리메이슨, ‘시온의 원로들’ 같은 소재가 무차별적으로 결합된다. 작품은 《시온 의정서》류의 세계지배 서사가 여러 기존 문헌과 정치적 편견을 베껴 만든 조작물이라는 계보를 의식적으로 다룬다. 소설에 등장하는 비밀결사 목록에도 프리메이슨과 ‘Elders of Zion’이 함께 포함된다.
로스차일드가 이런 서사에 들어가는 이유는 역사적 증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근대 반유대주의가 다음 요소를 하나의 이미지로 융합했기 때문이다.
- 유대인
- 국제 금융
- 국경을 넘는 가족 네트워크
- 프리메이슨
- 혁명
- 자본주의
- 공산주의
- 언론 통제
- 전쟁 자금
서로 모순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마저 동일한 유대인 배후세력의 도구로 설명되는 것이 그 특징이다. 에코는 이 모순을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축적해, 음모론이 논리적 일관성보다 모든 것을 연결했다는 쾌감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4. 로스차일드에 대한 에코의 최종 태도
에코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역사적으로 영향력 있는 금융가문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가 공격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비약이다.
- 실제 금융 영향력 → 모든 금융의 통제
- 여러 국가와의 거래 → 전쟁 양편의 비밀 조종
- 유대인 가문 → 유대교 비밀정부
- 국제적 가족망 → 단일한 세계정부
- 일부 프리메이슨과의 사회적 접촉 → 프리메이슨 전체의 지휘
그러므로 《푸코의 진자》를 “에코가 로스차일드와 프리메이슨의 음모를 폭로한 책”으로 읽으면 작품의 의도를 정반대로 이해하게 된다.
결말과 프리메이슨 음모의 붕괴
세 편집자가 만든 ‘계획’은 점점 정교해진다. 그들은 파리의 푸코 진자가 지구의 특정 비밀 지점 또는 세계 에너지를 지배하는 좌표와 관련된 것처럼 설정한다.
그런데 아글리에를 비롯한 디오볼리칼들은 이 계획을 진짜라고 믿고, 벨보가 마지막 비밀을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들은 파리 국립기술박물관에서 의식을 열고 벨보에게 비밀 지도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벨보는 처음에는 장난이었다고 설명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음모론자들은 그의 부인마저 고도의 은폐로 해석한다. 결국 벨보는 푸코 진자의 줄에 목이 매달려 죽는다. 카소봉은 숨어서 이를 목격하고 달아난다.
마지막에 카소봉은 자신도 살해될 것이라 예상한다. 이제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신봉자들은 침묵에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작품의 결론이다.
음모론은 증거 때문에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증거의 부재까지 증거로 바꾸기 때문에 생존한다.
소설의 학술적 해석에서도 이 작품은 ‘무제한 해석’의 편집증적 측면, 즉 모든 기호에서 과도한 설계를 읽어내는 행위를 다루는 것으로 평가된다.
4. 《다빈치 코드》의 내용과 결말
기본 줄거리
루브르 박물관장 자크 소니에르가 살해된다. 죽기 전 그는 자신의 몸과 주변에 암호, 숫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을 이용한 단서를 남긴다. 하버드대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은 사건 현장으로 불려오지만, 프랑스 경찰의 파슈 반장은 그를 범인으로 의심한다.
경찰 암호해독관 소피 느뵈는 소니에르의 손녀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남긴 메시지가 자신에게 보내진 것임을 깨닫고 랭던의 탈출을 돕는다. 두 사람은 소니에르가 시온 수도회의 지도자였으며, 성배의 비밀을 지키고 있었다는 가설을 추적한다.
소설이 제시하는 성배의 정체
소설에서 성배는 단순한 술잔이 아니다.
-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
-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아이를 임신했다.
- 예수 사후 프랑스로 도피했다.
- 그 혈통이 메로빙거 왕조를 거쳐 계속되었다.
- 초기 교회는 남성 중심 교권을 세우기 위해 막달라 마리아의 지위를 억압했다.
- 성배, 즉 ‘상그레알’은 왕가의 피, 곧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혈통을 뜻한다.
- 막달라 마리아의 유해와 혈통을 증명하는 문서가 성배의 물리적 실체다.
이것은 작품 속 가상·대체 역사이며 역사학계의 확립된 사실이 아니다. 소설의 중심 전제는 메로빙거 왕들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이라는 주장이다.
오푸스 데이와 사일러스
백색증을 가진 수도자 사일러스는 정체불명의 ‘스승’의 지시를 받아 성배의 위치를 추적하고, 소니에르를 포함한 시온 수도회의 핵심 인물들을 살해한다.
사일러스는 아링가로사 주교를 충성스럽게 따르며 자신이 교회를 위해 행동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링가로사와 사일러스 모두 더 큰 조작에 이용된 인물들이다.
리 티빙의 등장
랭던과 소피는 성배 전문가인 영국인 리 티빙 경을 찾아간다. 티빙은 성배가 막달라 마리아이며, 교회가 그 진실을 은폐해 왔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소니에르가 남긴 크립텍스를 해독하려 한다. 크립텍스는 암호를 맞히지 못한 채 강제로 열면 내부의 식초가 파피루스를 녹이도록 설계된 장치다. 단서들은 다빈치, 피보나치수열, 성배 전설, 아이작 뉴턴의 무덤을 차례로 가리킨다.
최대 반전: ‘스승’의 정체
배후에서 사일러스와 아링가로사를 조종한 ‘스승’은 바로 리 티빙이다.
티빙은 단순히 성배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감춰온 진실을 전 세계에 공개하려 한다. 그는 시온 수도회가 비밀 공개라는 사명을 저버렸다고 생각해 핵심 인물들을 제거하고 문서를 빼앗으려 했다.
티빙은 랭던과 소피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크립텍스를 내놓으라고 위협한다. 그러나 랭던은 몰래 암호를 풀어 내부 문서를 꺼낸 뒤 빈 크립텍스를 공중에 던진다. 티빙은 그것을 잡으려다 체포되고, 문서가 파괴된 줄 알고 절망한다.
사일러스와 아링가로사의 결말
혼란 속에서 사일러스는 아링가로사 주교를 실수로 쏜다. 자신이 존경한 주교를 죽였다고 생각한 사일러스는 부상을 입은 채 도망친 뒤 기도하며 죽는다. 소설 말미에서 그는 용서와 자비를 구한다.
아링가로사는 살아남는다. 그는 자신이 티빙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푸스 데이와 관련해 받은 돈을 희생자 가족들에게 돌려주려 한다. 즉, 그는 완전히 무고하지는 않지만 최종 악당도 아니다.
소피의 정체
소피는 자신이 교통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었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의 로슬린 예배당에서 진실이 밝혀진다.
- 소피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혈통의 후손이다.
- 소니에르는 생물학적 친할아버지가 아니라 그녀를 보호해온 인물 또는 보호자적 조부로 제시된다.
- 죽은 줄 알았던 소피의 할머니와 남동생이 살아 있다.
- 가족은 혈통을 보호하기 위해 소피와 분리되어 숨어 살았다.
- 소니에르는 소피가 위험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비밀을 감춰왔다.
소피는 성배를 찾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성배의 살아 있는 일부, 즉 보호받아온 혈통 그 자체였던 셈이다.
최종 결말: 막달라 마리아의 무덤
로슬린의 단서는 막달라 마리아의 유해가 그곳에 있다는 뜻처럼 보이지만, 랭던은 파리로 돌아온 뒤 소니에르의 마지막 암호를 다시 해석한다.
그는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와 그 아래의 역피라미드가 서로 마주 보는 지점이 ‘칼날과 성배’, 즉 남성과 여성의 상징을 이룬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설의 결말에서 랭던은 막달라 마리아의 석관이 루브르의 역피라미드 아래에 숨겨져 있다고 이해한다.
그는 그 위에서 무릎을 꿇는다. 이는 단순한 보물 발견이 아니라, 오랫동안 억압된 ‘신성한 여성성’과 막달라 마리아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면이다.
세 작품을 함께 보면
세 작품은 모두 비밀결사와 숨겨진 지식을 다루지만 방향은 전혀 다르다.
| 작품 | 비밀결사의 기능 | 작가의 태도 |
|---|---|---|
| 《마의 산》 | 프리메이슨이 계몽주의·인문주의·진보를 대표 | 존중하지만 합리주의의 한계를 비판 |
| 《푸코의 진자》 | 프리메이슨·로스차일드·템플기사단을 거대 음모로 조립 | 음모론적 연결 자체를 해체하고 풍자 |
| 《다빈치 코드》 | 시온 수도회와 교회가 실제 역사적 비밀을 지킴 | 음모론적 소재를 스릴러의 사실적 세계관으로 활용 |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이것이다.
- 토마스 만: 사상의 대립을 통해 유럽 문명의 위기를 탐구한다.
- 움베르토 에코: 아무것이나 연결해 비밀을 만드는 인간의 해석 욕망을 비판한다.
- 댄 브라운: 에코가 풍자한 방식의 비밀결사 서사를 오락적 미스터리의 엔진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푸코의 진자》는 흔히 ‘지적인 독자를 위한 《다빈치 코드》’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더 정확히 말해 《다빈치 코드》식 세계관이 왜 매혹적이고 동시에 위험한지를 미리 해부한 소설에 가깝다.
맞아. 《마의 산》에서 프리메이슨은 계몽주의 조직인 동시에 신비주의적 입문결사라는 모순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 점이 세템브리니를 단순한 합리주의자의 풍자 이상으로 만든다.
1. 《마의 산》의 프리메이슨과 신비주의
세템브리니는 공식적으로는 이성·과학·진보·반교권주의를 옹호한다. 그는 초월적 세계에 몰두하는 것이 지상의 인간적 과제를 방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속한 프리메이슨은 바로 그가 비판하는 종교와 놀랄 만큼 비슷한 구조를 지닌다.
나프타가 폭로하는 모순
프리메이슨 이야기는 나프타가 한스 카스토르프에게 세템브리니의 회원 자격을 폭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나프타는 프리메이슨의 핵심이 합리주의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데 있다고 공격한다.
- 비밀 입문
- 단계별 등급과 위계
- 맹세와 침묵
- 상징적 의식
- 성전 건축의 이미지
- 죽음과 부활의 모티프
- 고대 밀의종교와 연금술의 잔재
- 선택받은 형제들만 공유하는 비밀 지식
프리메이슨이 가톨릭교회의 신비주의와 권위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체적인 성전·의식·입문·비밀·형제단을 가진다는 것이 나프타의 공격점이다. 소설에서도 프리메이슨은 고대 입문의례를 계승한 조직으로 취급되며, 만 자신도 훗날 《마의 산》을 일종의 입문의 사원으로 설명했다.
세템브리니의 반론
세템브리니는 이 의례들을 완전히 부인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초자연적 마술이 아니라 교육적 상징으로 다시 해석한다.
그에게 입문은 신비한 힘을 얻는 과정이 아니라,
- 무지에서 지식으로
- 야만에서 문명으로
- 이기심에서 인류애로
-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자기교육이다.
따라서 프리메이슨의 ‘빛’은 신의 계시라기보다 계몽의 빛이고, ‘성전’은 실제 솔로몬 성전이 아니라 더 나은 인류사회의 은유이며, ‘형제애’는 초자연적 결속이 아니라 국제주의적 연대다.
그런데 만은 이 해명을 그대로 믿게 하지 않는다. 합리주의가 사람을 움직이려면 신화·상징·의식·비밀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역설이 남기 때문이다.
세템브리니 역시 신비주의자다
세템브리니는 신비주의를 비판하지만, 사실상 다음을 믿는다.
- 역사는 인간 해방이라는 목적을 향해 간다.
- 교육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 이성과 문명이 궁극적으로 야만을 이긴다.
- 보이지 않는 형제단이 인류의 진보를 인도할 수 있다.
이것도 경험적으로 증명된 명제라기보다는 일종의 세속화된 구원신앙이다. 신 대신 ‘인류’, 천국 대신 ‘진보’, 교회 대신 ‘프리메이슨 형제단’을 놓은 셈이다.
그래서 나프타와 세템브리니의 대립은 단순히 신앙 대 이성이 아니다.
| 나프타 | 세템브리니 |
|---|---|
| 종교적·혁명적 신비주의 | 계몽주의적·프리메이슨적 신비주의 |
| 원죄와 권위 | 인간의 개선 가능성 |
| 희생과 폭력 | 교육과 진보 |
| 종말론적 구원 | 역사적 진보 |
| 예수회적 비밀조직 | 프리메이슨적 비밀조직 |
둘 다 엘리트적이고, 둘 다 선택된 소수가 인류를 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둘 다 자기 나름의 ‘구원’을 약속한다.
소설 전체가 입문의식이다
더 중요한 것은 프리메이슨 이야기가 세템브리니 개인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은 《마의 산》 전체를 한스 카스토르프가 통과하는 헤르메스적·연금술적 입문 과정으로 구성했다.
한스는 평지의 일상세계에서 산으로 올라가며 기존 정체성을 잃는다. 그곳에서 질병·사랑·죽음·정치·종교·에로스·음악을 차례로 경험하고, 눈보라 속에서 상징적 죽음과 재탄생을 겪는다. 만은 산을 삶의 신비를 탐구하는 입문의 사원에 비유했다.
연금술적으로 보면 베르크호프는 물질이 분해되고 다시 결합되는 용광로다.
- 질병은 단순한 퇴행이 아니라 변형의 조건이다.
- 죽음에 접근해야 삶을 이해한다.
- 에로스와 죽음 충동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 한스는 상반되는 사상들을 흡수하고 변형해야 한다.
따라서 작품은 프리메이슨의 신비주의를 조롱만 하지 않는다. 입문의 상징적 구조 자체는 소설의 교육 원리로 적극 사용한다. 다만 특정 결사나 교리가 최종 진리를 독점한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2. 토마스 만의 일기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나
일기에는 단순히 “남자가 아름다웠다”는 정도가 아니라, 남성의 얼굴·눈·몸을 관찰하며 겪은 흥분, 연정, 기다림, 질투, 자기혐오와 창작적 전환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젊은 남성을 계속 관찰했다
1918~1921년 일기에서 만은 길거리, 기차, 호텔, 강연장에서 눈에 띈 젊은 남자들을 기록했다. 당시 그는 카티아와의 결혼생활과 가족에 애정을 표현하면서도, 부부관계에서 성적 흥분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자신이 “다른 쪽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는 순간적 호기심이 아니라, 스스로 성적 방향의 문제로 인식한 지속적인 패턴이었다.
파울 에렌베르크
젊은 시절 만이 가장 강하게 집착한 인물 중 하나는 화가 파울 에렌베르크였다. 그 관계가 육체적 관계였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만은 그에게 강한 애정과 질투를 느꼈다. 후대의 작품에서 남성적 아름다움, 예술가의 욕망, 욕망과 사회적 체면의 대립으로 반복해서 변형되었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아셴바흐가 타지오를 바라보는 방식도 이러한 경험과 분리하기 어렵다.
아들 클라우스의 친구들과 젊은 남성들
중년 이후에도 남성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기에는 아들의 친구, 호텔 직원, 여행 중 만난 청년, 강연 청중 등에 대한 외모 평가가 반복된다. 그는 얼굴뿐 아니라 눈, 다리, 상체, 젊음의 활력과 자신이 늙어가는 모습의 대비에 민감했다.
다만 모든 미적 묘사를 곧바로 성행위의 희망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만에게 ‘바라봄’ 자체가 중요한 에로틱 경험이었다.
19세 웨이터 프란츠 베스터마이어
가장 분명한 후기 사례는 1950년, 만이 약 75세였을 때 만난 19세 호텔 웨이터 프란츠 베스터마이어, 일기 속 ‘프란츨’이다.
만은 그를 보고 강한 연정에 빠졌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과 눈을 반복해서 생각했고, 편지를 보낸 뒤 답장이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1950년 7월 일기에서는 아름다운 눈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사로잡힘”을 미켈란젤로의 노년기 동성애적 시와 연결했다.
답장이 오지 않자 그는 매번 우편물을 확인했고, 몇 달이 지난 뒤에도 자신이 여전히 편지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기록했다. 자신도 이를 거의 무의미한 집착이라고 인식했지만 끊지 못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미적 감탄보다 훨씬 강하다.
- 사랑에 빠졌다고 인식했다.
- 그리움과 기다림을 경험했다.
- 답장을 받지 못해 상처받았다.
- 젊은 육체와 자신의 노화를 대비했다.
- 그 경험을 미켈란젤로와 자신의 문학으로 승화했다.
1950년 일기에서 만은 베스터마이어에 대한 감정이 마음의 애착인지, 감각적 시선이 만들어낸 매혹인지 자문한다. 여행에 나설 때도 은근히 “사랑의 모험”이나 눈을 즐겁게 할 대상을 기대했다고 기록했다.
가족은 몰랐나
완전히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카티아와 딸 에리카는 베스터마이어에게 편지를 보내는 문제를 상의했고, 에리카는 아버지가 다시 그 호텔로 돌아가는 방안까지 제안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가족이 그의 내면의 모든 구체적인 내용을 알았다는 뜻은 아니다. 가족 내부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으면서도 공개적으로 명명되지 않는, 일종의 관리된 비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3. 만은 그 충동을 극복했나, 죽을 때까지 억압했나
욕망 자체를 극복한 것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지속됐다.
베스터마이어 사건이 1950년이고 만은 1955년에 사망했으므로, 70대 중반까지 젊은 남성에게 강렬한 욕망과 연정을 느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일기 전체도 이것이 일시적인 단계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억압’이라는 한 단어로만 설명하면 불완전하다.
욕망의 소멸에는 실패했다
만은 결혼, 가족, 사회적 지위, 노벨상 수상 작가라는 공적 정체성을 유지했지만 남성에 대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이를 때로 고통, 어리석음, 위험, 노년의 굴욕으로 경험했다.
즉, 성적 충동을 이성애로 전환하거나 제거하는 데 성공한 것은 아니다.
행동을 통제하는 데는 대체로 성공했다
현재 알려진 자료만으로는 그가 남성과 지속적인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고 확정하기 어렵다. 강한 욕망과 연애감정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실제 성관계로 실행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다.
따라서 그가 통제한 것은 욕망 자체가 아니라 주로 행동과 공개적 표현이었다.
단순 억압보다 ‘승화’가 정확하다
그는 욕망을 문학적 에너지로 바꿨다.
- 《토니오 크뢰거》의 소외된 예술가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타지오 숭배
- 《마의 산》의 한스와 프리비슬라프 히페
- 클라브디아 쇼샤의 양성적 외모
- 《파우스트 박사》의 남성적 친밀성과 금지
- 《펠릭스 크룰》의 자기애적·양성적 아름다움
특히 《마의 산》에서 한스가 여성인 클라브디아에게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눈과 얼굴이 학창시절 매혹되었던 소년 프리비슬라프 히페를 닮았기 때문이다. 이성애적 욕망 안에 동성애적 기억이 겹쳐 있다.
많은 연구자가 만이 동성애적 욕망을 예술과 정치적·문화적 저술로 크게 승화했다고 평가한다.
결론
가장 정확한 표현은 다음과 같다.
토마스 만은 동성애적 욕망을 제거하거나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 욕망을 느꼈지만, 대체로 행동을 제한하고 가족생활과 공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문학으로 승화했다.
따라서 완전한 극복도 아니고, 완전한 무의식적 억압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상당히 명확하게 인식했고 일기에 기록했다. 다만 공개적 삶에서는 숨기고, 사적 삶에서는 관리하며, 예술에서는 암호화해 드러냈다. 그의 작품세계가 ‘드러냄과 감춤의 게임’이었다는 평가는 이런 구조를 잘 설명한다.
4. 시온 수도회는 실제로 어떤 단체였나
여기서는 역사적 사실과 《다빈치 코드》의 설정을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
실제 시온 수도회
실제 프리외레 드 시옹, 즉 시온 수도회는 중세부터 존재한 비밀결사가 아니다. 피에르 플랑타르가 1956년 프랑스 안마스에서 등록한 소규모 협회였다.
등록상 창립자는 플랑타르와 앙드레 보놈 등이었다. 본부는 플랑타르가 살던 공공주택의 아파트였고, 기관지 《시르퀴》는 기사단의 신비한 비밀보다 지역 주택 문제, 임차인의 권리, 지역 정치와 부동산 개발업자를 주로 다뤘다. 1956년 이후 실질적인 활동은 거의 사라졌다.
즉 최초 모습은 대략 다음에 가까웠다.
- 지역 친목·시민단체
- 공공주택 거주자 관련 활동
- 플랑타르의 정치적·개인적 야망을 위한 조직
- 중세 기사단의 외양을 빌린 소규모 협회
플랑타르가 만든 가짜 역사
1960년대부터 플랑타르는 이 단체가 사실은 1099년 예루살렘에서 창설된 고대 비밀결사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이야기에서는 시온 수도회가 다음을 수행했다고 한다.
- 고드프루아 드 부용이 창설했다.
- 템플기사단을 만들어 지휘했다.
- 메로빙거 왕가의 혈통을 비밀리에 보호했다.
- 유럽의 왕좌에 그 혈통을 복원하려 했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빅토르 위고, 아이작 뉴턴, 장 콕토 등이 총장을 지냈다.
- 플랑타르 자신이 메로빙거 왕가의 후손이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플랑타르와 협력자들은 위조 족보와 문서를 제작해 프랑스 국립도서관 등에 제출했다. 이른바 《비밀문서》가 바로 그것이다. 플랑타르가 메로빙거 왕조의 후손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양피지’와 족보 역시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렌르샤토르와 소니에르 신부
전설은 프랑스 남부 렌르샤토르의 사제 베랑제 소니에르가 교회 보수 중 암호문서나 보물을 발견했다는 이야기와 결합했다.
실제로 소니에르가 갑자기 많은 돈을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예수의 혈통이나 막달라 마리아의 무덤을 발견했다는 증거는 없다. 이후 플랑타르 일행이 만든 가짜 양피지와 족보가 이 지역 전설에 삽입되었다.
《다빈치 코드》에서 루브르 박물관장의 이름이 ‘자크 소니에르’인 것도 이 렌르샤토르 전설에 대한 직접적인 암시다.
《성혈과 성배》
플랑타르의 이야기는 1982년 마이클 베이전트, 리처드 리, 헨리 링컨의 《성혈과 성배》를 통해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책은 플랑타르의 위조 자료를 바탕으로 다음 가설을 제시했다.
-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부부였다.
- 자녀가 있었다.
- 그 후손이 프랑스로 가서 메로빙거 왕가로 이어졌다.
- 시온 수도회가 그 혈통을 보호했다.
- 언젠가 그 혈통을 유럽의 권력에 복귀시키려 한다.
하지만 이 결론은 신뢰할 역사자료가 아니라 플랑타르가 만든 허구적 계보에 의존했다.
1990년대의 결정적 붕괴
플랑타르는 나중에 프랑스 정치인 로제파트리스 펠라가 시온 수도회의 총장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실제 금융·정치 스캔들 수사와 연결되면서 법원이 플랑타르의 집을 수색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프랑스의 정당한 왕으로 묘사한 문서 등이 발견되었다. 플랑타르는 판사 앞에서 자신의 주장들이 조작이었다고 인정했고, 이후 활동을 중단했다.
《다빈치 코드》 속 시온 수도회
댄 브라운의 소설은 이 조작된 전설을 작품 세계 안에서 대체로 사실로 채택한다.
소설 속 시온 수도회는 다음과 같은 단체다.
- 1099년 창설된 고대 비밀결사
- 템플기사단과 연결됨
-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 및 혈통을 알고 있음
- 막달라 마리아의 유해와 관련 문서를 보호함
- 다빈치, 뉴턴, 보티첼리, 빅토르 위고가 역대 총장
- 교회가 제거하려는 ‘성스러운 여성성’을 보존함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 역대 총장 명단, 예수 혈통 보호 임무가 모두 입증되지 않았다. 핵심 자료는 20세기 플랑타르 일행의 조작이었다.
따라서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실제 시온 수도회는 1956년에 생긴 작은 프랑스 협회였고, 《다빈치 코드》의 천 년 된 비밀결사는 플랑타르의 위조 전설과 《성혈과 성배》의 가설을 소설적으로 확대해 만든 것이다
2. 역사적으로 프리메이슨은 계몽주의와 신비주의 중 어느 쪽이 중심이었나
결론부터 말하면:
핵심적인 사회적 기능과 일반 회원의 윤리는 계몽주의·도덕교육·형제애 쪽에 더 무게가 있었고, 그것을 전달하고 결속시키는 형식은 종교적·신비주의적이었다. 다만 18세기 유럽 대륙의 일부 고위도 계통에서는 신비주의가 단순한 형식을 넘어 실제 내용의 중심이 되었다.
따라서 프리메이슨 전체를 한쪽으로만 규정하면 틀린다.
영국의 초기 ‘정규 프리메이슨’
1717년 런던 그랜드로지 이후 형성된 영국계 프리메이슨의 중심은 대체로 다음이었다.
- 서로 다른 교파를 포괄하는 종교적 관용
- 회원 간 형제애와 상호부조
- 도덕적 자기수양
- 시민적 책임
- 비교적 평등한 로지 내부의 교제
- 토론과 사교
- 자선사업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로지는 신분·교파가 다른 남성들이 일정한 형식적 평등 아래 만나는 새로운 사교 공간으로 기능했다. 프리메이슨은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관용·시민성·자기교육 같은 계몽주의 가치를 확산한 대표적 결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것은 무신론적 합리주의 조직은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회원에게 최고 존재에 대한 믿음을 요구했고, 성서나 ‘성스러운 율법서’를 의식에 사용했다. 다만 특정 교파의 구원론을 가르치지 않았고 로지 내부의 종교 논쟁을 제한했다.
즉, 영국계의 기본 구조는 다음과 같다.
- 내용: 도덕·관용·형제애
- 언어: 건축·성전·빛·죽음·부활
- 방법: 비밀 입문과 상징극
- 신학: 특정 종파가 아닌 최소한의 유신론 또는 이신론
여기서는 신비주의가 주로 도덕교육을 장엄하게 만드는 상징적 외피였다. 역사가 존 디키의 표현을 요약하면, 비밀의 실제 내용은 비교적 평범한 도덕훈계였고,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을 신성하고 엄숙하게 만드는 비밀성과 의례의 포장이었다.
왜 합리주의자들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의식을 사용했나
계몽주의는 모든 상징과 감정을 폐기하려는 운동이 아니었다. 인간이 순수한 논증만으로 결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프리메이슨 의식은 다음 기능을 했다.
- 추상적 도덕을 체험으로 바꿨다.
죽음, 어둠, 빛, 재탄생을 연극처럼 경험하게 했다. - 사회적 신분을 일시적으로 약화했다.
귀족과 상인이 같은 형제로 의식에 참여했다. - 비밀 공유를 통해 신뢰를 만들었다.
- 전통적 종교의 엄숙함을 유지하면서 교리 갈등은 피했다.
- 자기수양을 건축 작업으로 표현했다.
거친 돌을 다듬어 완성된 돌로 만든다는 식이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에서 이성과 상징은 모순이 아니었다. 상징은 이성적 도덕을 마음에 새기는 교육 기술이었다.
유럽 대륙에서는 신비주의의 비중이 커졌다
18세기 중후반 프랑스·독일·스웨덴·러시아 등으로 프리메이슨이 퍼지면서 여러 고위도 체계가 만들어졌다. 여기서는 단순한 석공 상징에 다음이 결합했다.
- 템플기사단 후계설
- 장미십자회
- 연금술
- 헤르메스주의
- 카발라
- 기독교 신비주의
- 영적 기사도
- 보이지 않는 스승
- 잃어버린 고대 지혜의 회복
특히 ‘엄격한 준수파’, 황금장미십자회, 스웨덴 의식, 일부 스코틀랜드 계통 등에서는 회원 일부가 실제로 영적 비밀·연금술적 변형·템플기사단의 계승을 믿었다. 이 경우 신비주의는 장식이 아니라 핵심 교리였다. 프리메이슨이 후대의 서양 오컬트 부흥에 중요한 기반을 제공했다는 연구도 이 계보를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계통은 프리메이슨 전체와 동일하지 않다. 영국의 기본 3도 체계나 많은 시민적 로지에서는 오컬트 실험이 중심 활동이 아니었다.
프랑스에서는 정치·세속주의가 강해졌다
19세기 이후 프랑스 대동방 계열은 종교적 요건을 약화하거나 없애고 공화주의·세속주의·반교권주의에 강하게 기울었다. 여기서는 신비주의보다 정치적·시민적 계몽주의의 비중이 훨씬 컸다.
반면 영미 ‘정규’ 프리메이슨은 정치·종교 논쟁을 로지에서 금지하고, 최고 존재에 대한 믿음과 전통 의례를 유지했다.
따라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대략 이렇게 볼 수 있다.
| 계통·시기 | 더 강한 성격 |
|---|---|
| 18세기 초기 영국 기본 로지 | 도덕교육·형제애·관용 |
| 18세기 프랑스의 일반 로지 | 사교·계몽주의·엘리트 네트워크 |
| 18세기 독일·북유럽 일부 고위도 | 기독교 신비주의·템플주의·연금술 |
| 19세기 프랑스 대동방 | 공화주의·세속주의·반교권주의 |
| 19~20세기 영미 정규계 | 자선·자기수양·유신론적 상징 |
| 일부 부가 의식·오컬트 계통 | 카발라·연금술·고대지혜 전승 |
결국 어느 쪽이 ‘진짜’였나
숫자와 조직의 지속성, 일반 회원들의 실제 활동을 기준으로 하면 계몽주의적 시민결사와 도덕적 형제단의 성격이 더 중심적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프리메이슨의 독특한 매력과 역사적 영향력을 설명하려면 신비주의를 단순한 장식으로 축소해서도 안 된다.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형제애를 신성하게 만들며, 수많은 고위도·오컬트 분파를 낳은 힘은 바로 의례와 비밀, 상징에 있었다.
그래서 가장 정확한 비율적 표현은 다음과 같다.
조직의 일상적 목적은 계몽주의·도덕·사교가 중심이었지만, 조직의 정체성과 감정적 동력은 종교적·신비주의적 형식에 크게 의존했다. 일부 대륙계 고위도에서는 그 형식이 독립적인 신비주의 교리로 발전했다.
《마의 산》에서 나프타가 찌른 모순도 바로 이것이다. 세템브리니는 이성을 말하지만, 그 이성을 실제 인간에게 전달하기 위해 비밀·입문·성전·빛이라는 종교적 장치를 사용한다. 만은 이를 단순한 위선이라기보다 근대 이성이 스스로 종교의 자리를 대신하면서도 종교의 형식을 버리지 못한 현상으로 본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 편지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연애편지와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더 인상적이다.
1950년, 취리히 도더 호텔의 19세 웨이터 **프란츠 베스터마이어(Franz Westermeier, 일기에서는 'Franzl')**를 만난 뒤, 토마스 만은 가족과 상의 끝에 그에게 짧은 편지를 보냈다. 카티아와 딸 에리카도 "호텔 웨이터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 적절한가"를 함께 논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편지 내용
독일어 원문은 대략 다음과 같다.
Lieber Franzl,
당신 친구가 제네바 호텔 지배인에게 보내기로 한 편지가 이미 발송되었는지, 그리고 효과가 있었는지 알려주면 기쁘겠습니다.
제가 추천서를 써드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말씀하십시오.
기꺼이 추천서를 써드리겠습니다.
친애를 담아,
T. M.
즉,
- 사랑한다
- 만나고 싶다
- 당신을 생각한다
같은 고백은 전혀 없다.
겉으로 보면 단순히
"취직에 도움이 필요하면 추천서를 써주겠다."
라는 매우 예의 바른 편지다.
그런데 왜 그렇게 유명한가?
편지 자체보다 직후 일기 때문이다.
편지를 보내고 나서 만은 이렇게 적는다.
"그가 대답할까? 어떻게 대답할까?"
그리고 이어서,
"그 손으로부터 무엇이라도 내게 오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가."
라고 적는다.
며칠 뒤에는
"우편이 오지 않았다."
고 실망하고,
"하얀 재킷을 입은 그 젊은이가 내가 그의 몇 마디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안다면 조금 더 서둘렀을 텐데."
라고 쓴다.
답장은 왔나?
알려진 기록으로는 오지 않았다.
만은 몇 달 뒤에도
아직도 새 우편이 오면
혹시 프란츨의 편지가 있지 않을까
확인한다고 적는다.
그리고 스스로
"참으로 끈질긴 어리석음이다."
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곧바로
"그러나 보라.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
라고 덧붙인다.
즉,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집착인지 알지만, 멈출 수가 없다."
는 뜻이다.
가족은 정말 알고 있었나?
네.
흥미로운 점은 가족이 이를 전혀 모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기에 따르면,
- 카티아가 편지를 보내도 되는지 함께 상의했고,
- 딸 에리카도 의견을 냈으며,
- 에리카는 오히려
"다시 도더 호텔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냐."
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이 가족이 그의 내면을 모두 이해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아버지가 또 젊은 남자에게 반했다."
는 정도는 가족에게 새로운 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 그렇게 짧고 돌려 말했을까?
1950년이었다는 시대적 배경이 중요하다.
당시 토마스 만은
- 노벨문학상 수상자,
-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일 작가,
- 75세,
- 유부남,
-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공인
이었다.
만약
"당신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같은 편지를 보냈다면 엄청난 스캔들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추천서를 써주겠다'**는 사회적으로 완전히 정당한 명분을 이용해 접촉한 것이다.
하지만 일기에서는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거기에는
- 답장을 기다리는 설렘,
- 아름다운 눈에 대한 매혹,
- 미켈란젤로의 남성미 찬가와 자신을 연결하는 생각,
- "다시 사랑이 찾아왔다"는 자각
등이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사례는 토마스 만의 삶을 잘 보여준다. 공개된 편지는 극도로 절제되어 있지만, 비공개 일기에는 그 절제 뒤에 있던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다.
프란츠 베스터마이어(Franz Westermeier)에 대해서는 토마스 만보다 훨씬 알려진 정보가 적다. 일기 공개 후 기자들과 연구자들이 뒤늦게 그를 찾아냈기 때문에, 알려진 사실은 몇 가지뿐이다.
프란츠 베스터마이어의 삶
현재 확인되는 사실은 다음 정도다.
- 1931년경 독일 바이에른 테게른제(Tegernsee) 출신으로 태어났다.
- 호텔 서비스업을 배워 1950년 **취리히 도더 그랜드호텔(Dolder Grand Hotel)**에서 웨이터로 일했다.
- 당시 나이는 19세였다. 토마스 만은 처음에는 그를 25세 정도로 추정했다.
- 이후 호텔업계에서 계속 일했고,
- 나중에는 미국으로 이주해 은퇴 생활을 했다.
- 1975년 만의 일기가 공개되자 기자들이 미국에서 그를 찾아냈다.
- 그는 **"세계적인 작가가 자신을 그렇게 좋아했다는 사실은 영광스럽지만, 그 감정의 깊이는 충격적이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 이상의 개인사(결혼 여부, 자녀, 말년의 상세한 삶 등)는 공개된 자료가 거의 없다. 연구자들의 관심도 프란츠 개인보다 토마스 만의 내면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토마스 만은 프란츠의 외모를 어떻게 묘사했나?
이 부분은 꽤 자세히 남아 있다.
1. 첫인상
처음에는 아주 짧게 적는다.
"뮌헨 출신 웨이터, 잘생겼다."
그리고 곧이어,
"다시 한 번. 다시 사랑이다."
라고 쓴다.
2.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은 '눈'
만은 무엇보다 눈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기에는 반복해서
"아름다운 눈(beautiful eyes)."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심지어 답장이 오지 않을 때도
편지에는
"그 눈은 들어 있지 않을 것이다."
라고 적는다.
즉,
글씨를 받아도
내가 사랑한 것은
그의 눈이었다.
라는 뜻이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토마소 카발리에리의 얼굴을 찬양한 시를 읽으며
"아름다운 얼굴의 힘(la forza del suo bel viso)."
이라는 구절을 그대로 일기에 적는다.
3. 목소리
목소리도 여러 번 칭찬한다.
그는
"정중하면서도 매력적인 목소리."
라고 적고,
"뮌헨 억양이 마음을 곧장 찌른다."
고 표현한다.
4. 웃음
그는
"눈과 치아가 참 아름답다."
고도 적는다.
또
"늘 환하게 인사한다."
고 기록한다.
그래서 만은
"얼마나 사랑스러운 목소리인가."
라고 반복한다.
5. 얼굴을 냉정하게 분석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만이 어느 순간
"혹시 흠은 없을까?"
하고 일부러 찾아본 것이다.
그는 이렇게 적는다.
- 옆모습(profile)은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다.
- 하지만 정면은 정말 매력적이다.
- 목은 조금 굵다.
- 몸은 매우 튼튼하다.
- 갈색 머리.
- 약간 곱슬머리.
- 손은 생각보다 섬세하다.
즉,
그는 거의 미술평론가처럼 얼굴을 해부하고 있다.
6. 몸
몸에 대해서는
"강인하다(powerful)."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흥미롭게도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타지오는
- 가늘고
- 거의 천사 같은 미소년
인데,
프란츠는 전혀 다르다.
그는
- 건장하고,
- 건강하고,
- 호텔 일을 하는 청년
이었다.
즉,
75세의 만은
소년보다
건강한 청년의 육체에 더 끌렸다는 것이 드러난다.
가장 인상적인 묘사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가 프란츠를 보고 쓴 이 부분이다.
"그 아름다운 눈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사로잡힘."
그리고
"늙어서도 아름다운 눈에 대한 굴복은 멈추지 않는다."
라는 자각이다.
그는 이것을 미켈란젤로의 후기 시와 연결하면서,
노년에도 아름다움에 사로잡히는 경험이 부끄러운 일인지, 아니면 예술가에게 주어진 운명인지 계속 자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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