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친스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결정적 계기
히친스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결정적 계기는 9·11이었습니다. 단순히 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시민권을 딴 것은 아닙니다.
그는 1981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20년 넘게 영주권자로 살았습니다. 미국인 아내와 세 명의 미국인 자녀도 있었기 때문에 굳이 시민권을 취득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죠. 그런데 9·11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고 직접 설명했습니다.
핵심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 9·11을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던 미국적 가치에 대한 공격으로 봤습니다. 히친스가 말한 것은 미국 정부 자체가 아니라 미국 사회의 pluralism(다원주의), openness(개방성), pursuit of happiness(행복추구), 세속주의와 개인의 자유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좋아했던 바로 그 미국이 공격받았다고 느꼈습니다.
- 그래서 계속 영주권자로만 사는 것이 일종의 “cheating on my dues”, 즉 미국 사회의 혜택은 누리면서 그에 따른 몫이나 책임은 다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특히 자신이 공개적으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지하며 다른 미국인들에게 전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자기 자신부터 미국 시민이 되는 것이 도덕적으로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 더 근본적으로는 원래부터 미국의 헌정체제를 영국 체제보다 높게 평가했습니다. 히친스는 미국의 성문헌법, 권리장전, 수정헌법 제1조의 언론·표현의 자유와 정교분리, 권력분립 등을 좋아했습니다. 반대로 영국의 군주제와 국교회 제도에는 평생 적대적이었습니다. 미국으로 이주한 이유 중 하나도 성문헌법과 명문화된 권리를 가진 나라에서 독립적인 작가로 사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이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시민권 취득 방식도 굉장히 히친스답게 상징적으로 선택했습니다. 2007년 4월 13일, 자신의 생일이자 토머스 제퍼슨의 생일에 워싱턴의 Jefferson Memorial에서 미국 시민권 선서를 했습니다. 히친스는 제퍼슨의 전기도 썼을 만큼 제퍼슨을 중요하게 여겼고, 특히 정교분리와 수정헌법 제1조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즉, 그의 미국 귀화는 흔히 생각하는 “영국이 싫어서 미국인이 됐다” 정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9·11 이후 미국의 세속적·공화주의적·계몽주의적 체제를 자신의 편이라고 명시적으로 선택한 정치적 선언에 가까웠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렇다고 영국인 정체성을 버린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나중에도 자신을 **“Anglo-American”**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미국인이 된 뒤에도 미국 정부의 NSA 영장 없는 감청 같은 문제에는 헌법을 근거로 직접 소송에 참여했습니다. 즉 그의 친미주의는 정부에 대한 충성이라기보다는 미국 헌법과 공화국의 원칙에 대한 충성에 더 가까웠다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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