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엘리트와 서구권 엘리트의 지식의 편중 차이

 

대체로 그 직감에는 상당한 진실이 있어. 다만 원인을 "동북아인이 본질적으로 더 교육받았다"라고 잡기보다는, 세계 교육·문화 체계가 서양사를 국제적 공통교양으로 만들어 놓은 비대칭성이 훨씬 중요한 설명이야.

예를 들어 한국·일본·대만에서 대학 교육까지 받은 사람이라면 최소한 그리스·로마,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로마제국, 기독교, 르네상스, 종교개혁, 프랑스혁명, 나폴레옹, 산업혁명, 양차 세계대전 같은 것들을 어느 정도 접할 가능성이 높아. 《일리아스》나 그리스 신화의 아킬레우스·헥토르·트로이 정도도 대중문화와 교육을 통해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고.

반대 방향은 확실히 약해. 평균적인 미국인이나 유럽인이 진·한 교체, 초한전쟁, 항우와 유방, 삼국시대의 위·촉·오, 조조·유비·손권의 관계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지. 《삼국지연의》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상당할 거고, 안다고 해도 게임이나 영화 등을 통해 이름 몇 개를 아는 정도일 가능성이 높아.

《손자병법》은 조금 다른 사례야. Sun Tzu와 The Art of War는 서양에서도 상당히 유명해. 군사학뿐 아니라 경영·리더십 분야에서 워낙 많이 인용되기 때문이야. 하지만 "손자가 어느 시대 사람이었나?", "춘추전국시대란 무엇인가?", "오·월 같은 당시 국가들은 무엇인가?"까지 들어가면 지식이 급격히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즉 책과 저자는 유명하지만 역사적 맥락은 거의 모르는 현상이 나타나는 거지.

《삼국지》와 《일리아스》를 비교하면 이 비대칭성이 특히 잘 보여. 동아시아의 교육받은 사람이 헥토르와 아킬레우스 이야기를 아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미국의 교육받은 사람이 관우가 누구인지, 적벽대전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도 별로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아.

그렇다고 이것을 전적으로 현재 동북아의 높은 학력 수준 때문이라고 하면 설명이 부족해. 더 큰 이유는 근대 이후 서유럽과 미국이 세계 정치·경제·학문의 중심이 되면서 서양의 역사가 '지역사'인 동시에 '세계사'가 되었기 때문이야. 현대 국가, 국제법, 자본주의, 산업혁명, 제국주의, 민주주의, 두 차례 세계대전 등을 이해하려면 유럽사를 배울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그리스·로마까지 서양사의 계보로 교육됐어.

반대로 중국의 초한전쟁이나 일본 전국시대가 세계사 전체의 전개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 선수지식으로 서양 교육과정에 자리 잡지는 못했어. 그래서 미국인이 항우를 모른다고 해서 자국에서 "교양이 부족하다"고 평가받지도 않아.

한 가지 재미있는 결과는 동아시아의 고학력자가 자기 문명권 + 서양 문명권을 동시에 상당히 아는 반면, 서양의 고학력자는 서양 문명권에 지식이 훨씬 편중될 수 있다는 것이야. 이 의미에서는 네가 느낀 '비대칭'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보는 게 타당해.

다만 "평균 동북아인이 평균 서양인보다 세계사를 훨씬 잘 안다"까지 일반화하려면 별도의 국제 비교자료가 필요해. 교육수준의 차이어떤 문명의 역사가 세계적 표준교양으로 지정되어 있느냐의 차이는 구별해야 하거든. 후자의 비대칭은 상당히 명백하지만, 전자는 국가·세대·교육수준에 따라 크게 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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