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로 시작하는 섬집 아기는 한국 고유의 창작 동요

 

  1. **〈섬집 아기〉**는

    • 작사: 한인현
    • 작곡: 이흥렬

    입니다. 

    가사의 첫 부분이 바로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으로 시작하는 그 동요입니다.

    참고로 시(동시)는 1946년경 발표되었고, 동요로는 195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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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의 말:

  3. ChatGPT의 말:

    네. 〈섬집 아기〉는 외국곡 번안이 아니라 한국에서 만들어진 오리지널 창작 동요입니다.

    • 작사: 한인현
    • 작곡: 이흥렬
    • 한인현의 동시가 1946년 동시집 《민들레》에 수록됐고, 이후 이흥렬이 곡을 붙여 동요가 되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명확하게 **“한인현 작시, 이흥렬 작곡의 창작 동요”**라고 분류합니다. 

    따라서 멜로디까지 한국 창작곡이고, 흔히 외국 동요를 한국어로 번안한 곡들과는 다릅니다.

    참고로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이라는 가사는 한인현이 쓴 한국의 동시에서 나온 것이고, 1950년경 이흥렬의 곡이 붙으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4. ChatGPT의 말:

    두 사람의 삶은 꽤 대조적입니다. 한인현은 교사·아동문학가로 살았고, 이흥렬은 작곡가·음악교육자로 훨씬 넓은 음악계 활동을 했습니다.

    한인현 (1921~1969)

    한인현은 함경남도 원산 출신으로, 함흥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됐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동요를 가르쳤고, 해방 후에는 윤석중 등이 이끈 **‘노래동무회’**에서 어린이들에게 창작동요를 보급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섬집 아기〉는 1946년 동시집 《민들레》에 수록됐습니다. 이후 1950년 《소학생》에 실리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의 배경입니다. 한인현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바닷가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섬집 아기〉를 썼다는 설명이 전해집니다. 

    말년에는 교장으로 일하면서 전국초등학교빙상경기연맹 회장, 한국글짓기지도회 회장 등을 맡았습니다. 즉 단순히 한 편의 유명한 동시를 쓴 사람이 아니라, 평생 교육과 아동문학에 몸담은 교사 출신 문인이었습니다. 1969년에 48세로 비교적 일찍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한인현의 삶을 한마디로 하면:

    교사 → 아동문학가 → 교장·교육계 인사 → 48세에 사망

    입니다.


    이흥렬 (1909~1980)

    이흥렬은 한인현보다 12살 많고, 훨씬 전문적인 음악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1909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으로 일본 동양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1931년 귀국한 뒤 원산 광명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일했습니다. 이때부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도 작곡했습니다. 

    이후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가곡과 동요를 남겼고, 특히 우리가 잘 아는

    • 〈섬집 아기〉
    • 〈어머니의 마음〉

    등으로 한국인의 기억에 깊게 남았습니다. 2009년에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릴 정도로 대표적인 한국 작곡가로 평가받았습니다. 

    해방 후에는 한국작곡가협회 회장, 한국음악협회 고문 등을 역임했습니다. 따라서 음악계에서 단순히 인기곡 몇 곡을 만든 작곡가가 아니라 한국 음악계의 주요 인사였습니다. 

    그는 1980년, 71세로 사망했습니다. 


    둘의 관계를 보면 재미있습니다

    둘 다 함경남도 원산과 연결되고, 둘 다 처음에는 교육자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역할은 달랐습니다.

    한인현
    → 어린이를 위한 글과 동시를 씀
    → 교사·아동문학가

    이흥렬
    → 그 글에 음악을 입힘
    → 작곡가·음악교육자

    그리고 이 둘의 협업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도 부르는 **〈섬집 아기〉**입니다. 다만 정확한 작곡 연도는 현재 자료로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한인현은 1969년에 48세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섬집 아기〉가 훗날 국민적인 동요로 자리 잡는 모습을 오래 보지는 못했습니다. 반면 이흥렬은 1980년까지 살면서 자신의 곡들이 한국인의 대표적인 애창곡으로 자리 잡는 것을 상당 부분 지켜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정정할 점도 있습니다. 앞서 제가 **“1950년경 이흥렬이 곡을 붙였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최신 자료는 〈섬집 아기〉의 정확한 작곡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고 명시합니다. 1950년은 작품이 《소학생》에 실려 널리 알려진 시점과 관련된 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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