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히토 이 색히가 마음만 먹었으면 태평양 전쟁도 없었을까?

 그 지적에는 상당 부분 동의해. 내가 앞서 “쿠데타 위험”을 히로히토가 개전을 저지하기 어려웠던 중요한 제약처럼 제시한 건 과하게 잡은 설명이었어.

1941년 일본에서 히로히토가 명확하게 **“대미전쟁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끝까지 버텼다면, 군부가 그 명령을 무시하고 천황을 폐위한 뒤 전쟁을 시작한다는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매우 낮았다고 보는 게 맞아. 

당시 일본군의 정당성 자체가 **천황의 군대(皇軍)**라는 데서 나왔기 때문이야. 메이지 헌법 제11조는 천황에게 육해군 통수권을 부여했고, 군인칙유 역시 군인의 충성을 천황에게 직접 연결했어. 육군 강경파가 정부 인사를 암살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적은 있어도 천황이라는 제도 자체를 뒤엎겠다는 군대가 아니었어.

가장 좋은 사례가 **2·26 사건(1936)**이야. 반란 장교들은 스스로 천황을 위한 ‘쇼와유신’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히로히토가 격노하여 진압을 요구하자 결국 반란군은 ‘천황의 적’이 되는 상황에 몰렸고 진압됐어. 히로히토가 심지어 근위사단을 직접 이끌고 진압하겠다는 취지의 말까지 했을 정도였지.

1945년에도 더 극단적인 사례가 나와. 항복을 막으려던 일부 장교들이 **궁성사건(宮城事件)**을 일으켜 옥음방송 녹음판을 탈취하려 했지만, 천황을 폐위해서 자기들이 새로운 정권을 세우려 한 것은 아니었어. 오히려 천황의 ‘진정한 의사’를 자신들이 구현한다는 식의 논리였지. 결국 실패했고 군은 천황의 항복 결정에 복종했어.

그래서 1941년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거야.

히로히토가 대미개전을 막을 실질적 능력이 없었던 게 아니다. 있었다.

다만 역사학에서 조심하는 부분은 **“그가 거부했으면 이후에도 어떤 형태의 대미전쟁도 절대로 발생하지 않았을 것”**까지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이야. 석유 금수, 중국전쟁, 남방진출 문제는 그대로 남았으니까.

하지만 훨씬 좁고 중요한 명제, 즉

“히로히토가 1941년 12월의 대미·대영 개전을 단호하게 거부했다면 그 개전 결정을 저지할 수 있었는가?”

에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고 보는 게 타당해.

따라서 책임 문제에서도 “군부가 결정했고 히로히토는 도장만 찍었다”는 식의 설명은 부족해. 그는 위험성을 인식했고, 반대할 권위와 제도적 수단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개전을 재가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히로히토의 전쟁책임을 둘러싼 논쟁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거고.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