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유대인이 만들었는가? 롤랑 바르토가 노동당은 있어도 부르주아당은 없는 이유는 부르주아가 양쪽 모두 조종하기 떄문 (양비론)이라 지적한 것은 흥미롭다

 

1.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형성에 대한 유대인의 역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서 유대인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을 설명한다.


1.1. 중세 시대 금융 활동과 유대인의 역할 

  1. 자본주의의 기원과 유대인의 역할 

    1. 베르노 존바르트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유대인이 만들었다고 한다. 

    2. 이는 유대인들이 2천 년간 생존 전략으로 돈과 권력을 추구하며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좌우 이념을 조종해왔다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 중세 유럽의 금융 구조와 유대인의 활동 

    1. 중세 시대 왕과 영주는 부자들에게 돈을 빌려 세금, 벌금, 토지 수입 등으로 원리금을 상환했다. 

    2. 유대인들은 왕실 대출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왕과 영주는 유대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세금을 뜯었다. 

    3. 이로 인해 농민들은 유대인들에게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했고, 왕과 영주는 이를 방치했다. 

    4. 이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유럽 왕과 영주들도 비난받아야 함을 시사한다. 

  3. 영국의 유대인 추방과 금융 변화 

    1. 영국 에드워드 1세는 유대인들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1290년 유대인을 추방했다. 

    2. 이후 영국은 피렌체와 제노아 상인들에게 돈을 빌렸으나, 이자율이 높아졌다. 

    3. 유대인 추방이 오히려 영국에 재정적 손실을 가져왔다. 

  4. 신성 로마 제국에서의 유대인 금융 활동 

    1. 유럽 대륙에서는 유대인들이 신성 로마 제국 내 300개가 넘는 공국과 1800개의 영지를 가진 기사들에게 대출을 제공했다. 

    2. 이들은 '궁정 유대인'이라 불리며, 왕과 영주에게는 낮은 이자를, 농민에게는 30~60%의 높은 이자를 받았다. 

    3. 이는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왕과 영주에게 공물을 바치기 위한 목적이었다. 

  5.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환경 

    1. 유대인들은 고리대금업, 야박함, 사기꾼 기질 등으로 비난받아왔다. 

    2. 하지만 이러한 환경은 1500년 동안 유럽 사회가 만들어 온 결과이며, 유대인들은 땅 개간, 장사, 이주의 자유를 제한받고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하는 등 척박한 사회 환경에서 살아왔다. 

    3. 이러한 환경 속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시대의 아이러니이다. 


1.2. 유대 금융 세력의 성장과 금융 시스템 변화 

  1. 유대인의 금융 활동 방식 

    1. 유대인들은 기독교 네트워크 안에서 비밀리에 금융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2. 귀족과 왕족은 끊임없이 돈을 대출하려 했고, 갚지 못할 경우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 

    3. 유대 금융가들은 겉보기에는 엘리트처럼 보였지만, 왕족과 귀족으로부터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는 불안한 위치에 있었다. 

  2. 이슬람 지역에서의 유대인 수용 

    1. 1500년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많은 유럽 국가들이 유대인 정착을 허용했지만 금융 활동을 제한했다. 

    2. 스페인, 프랑스, 영국, 리투아니아는 유대인 정책을 거부했다. 

    3. 유대인들이 자유를 찾은 곳은 이슬람 지역이었으며, 이슬람은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환영했다. 

    4. 오스만 제국은 유대인들에게 금융의 자유를 주었고, 유대 금융 세력은 오스만 제국의 팽창을 도왔다. 

  3. 유대 금융 세력의 유럽 진출 

    1. 17세기 말, 독일 지역으로 이동했던 유대인들과 영국, 네덜란드의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신규 금융 활동을 시작했다. 

    2. 1656년 영국 크롬웰이 유대인을 다시 받아들인 후, 유대 금융은 유럽에 정착하는 토대가 되었다. 

    3. 이는 유대인들의 금융 활동이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1.3. 17세기 유럽의 혼란과 금융가들의 부상 

  1. 스페인의 몰락과 금융 위기 

    1. 영국의 경쟁자였던 스페인은 17세기 몰락하고 있었으며, 남미 광산에서의 송금이 원활하지 않았다. 

    2. 스페인은 1557년부터 1680년까지 120년 동안 아홉 번이나 국가 파산을 선언했다. 

    3. 이는 주머니에 돈도 없으면서 지중해 패권을 잡으려 했던 팽창 정책 때문이었다. 

  2. 17세기 유럽의 전반적인 위기 

    1. 17세기 유럽 전역에는 역병, 종교 전쟁, 마녀 사냥, 종교 검열 등이 난무했다. 

    2. 중국에서는 명나라가 멸망하고 지구 냉한기가 시작되어 기근과 추위로 수많은 백성이 죽었다. 

    3. 한국에서도 정묘호란, 병자호란, 경신대기근이 발생하여 백만 명이 죽었다. 

    4. 이는 21세기 가짜 팬데믹과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유사하다. 

    5. 17세기에는 기후 변화로 인한 감음과 기근이 심각했다. 

  3. 전 지구적 위기 속 금융가들의 단결 

    1. 이러한 전 지구적 혼란 속에서 17세기 단결했던 유일한 세력은 은행가들이었다. 

    2. 과거에는 왕과 영주가 협박하면 금융가들이 다시 대출해 주었지만, 17세기에는 금융 네트워크가 촘촘해져 왕이 꼼짝 못 할 정도가 되었다. 

    3. 금융가들 사이에서는 유대인 차별이 존재할 수 없었으며, 이는 21세기 빅테크 기업 운영자들과 유사한 모습이다. 

    4. 시대가 바뀌려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4. 유대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 그리고 금융 해방 

  1. 18세기 유대 금융가들의 독립 의지 

    1. 18세기 유대 금융가들은 왕실과의 직접 거래를 떠나 독립 은행으로 활동하고 싶어 했다. 

  2. 유대 계몽주의(하스칼라)의 등장 

    1. 18세기에는 부르주아 권력이 커지면서 왕실도 유대인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동화 정책을 쓰려 했다. 

    2. 유대 지식인들은 유대인들이 비밀스러운 만남을 벗어나 유럽 사회에 적극적으로 합류하라고 주장하는 '유대 계몽주의(하스칼라)'를 만들었다. 

    3. 대표적인 인물은 모세스 멘델스존이며, 이는 유대인 해방의 첫 단계였다. 

    4. 유대 계몽주의자들은 유럽 정부가 유대인을 해방하고, 유대인들도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 프랑스 혁명과 유대인 해방 선포 

    1. 칼 마르크스는 이를 그대로 복사하여 부르주아 혁명을 위해 유대인 부르주아도 함께 해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 미라보 백작은 하스칼라를 공부하여 프랑스 혁명에 유대 해방 문건을 들고 참여했다. 

    3. 1791년, 프랑스 혁명 2년 후 유대인 해방이 선포되었다. 

  4. 유대인 해방의 실제 목적: 금융 해방 

    1. 유대인 해방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대 금융의 해방이었다. 

    2. 겉으로는 유대인 해방을 내세웠지만, 실제 목표는 금융 활동의 자유를 보장받는 것이었다. 

    3. 하일리 하인도 은행가였으며, 프랑스 혁명 이후 프로이센에서 멘델스존의 아들들이 멘델스존 은행을 설립했다. 

    4. 유대인 시민권 운동의 목적은 은행 활동 보장이었다. 

    5. 멘델스존의 아들들은 개신교로 개종하며 유럽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려 했다. 

    6. 멘델스존 은행은 유럽 시장을 넘어 러시아 시장까지 진출하여 거대 은행으로 성장했다. 

    7. 이 은행은 히틀러에 의해 인수되어 1935년에 폐쇄되었다. 


1.5. 증권 거래소의 탄생과 로스차일드 가문의 부상 

  1. 채무자 권력 분산의 필요성 

    1. 베르노 존바르트는 유대인들이 자산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왕실이나 권력자에게 직접 돈을 빌려주는 방식이 위험하다고 보았다. 

    2. 이를 해결하기 위해 채무자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방법으로 증권 거래소 설립을 제안했다. 

  2. 증권 거래소의 역할과 탄생 배경 

    1. 왕은 채권을 발행하여 증서를 여러 개로 쪼개 증권 거래소에서 판매함으로써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2. 증권 거래소의 중요한 역할은 군주나 귀족에게 직접 돈을 빌려주는 대신 채권을 발행하게 유도하고, 이를 백성이 구매하게 하는 것이었다. 

    3. 유대 금융가들은 증권 거래소에서 주가 조작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3. 골드 스미스와 로스차일드 가문의 등장 

    1. 18세기 증권 거래소를 통해 막대한 돈을 챙긴 유대인들은 골드 스미스 가문이었다. 

    2.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는 증권 거래소가 활성화되었으나, 프랑스는 여전히 은행가들이 군주나 영주에게 직접 대출하는 관행을 고수했다. 

    3. 골드 스미스 이후 로스차일드 가문의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가 증권 거래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4. 로스차일드는 증권 거래소에서 찌라시를 뿌리는 방식을 창안했다. 

    5. 가장 많은 수익을 내는 것이 영주나 왕의 전쟁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전쟁을 유발하여 채권을 발행하게 꼬신 첫 은행가가 로스차일드였다. 

  4. 로스차일드의 자본주의 창조 

    1. 전쟁이 없을 때는 땅부자들에게 기업 설립을 주선하고, 이를 기업 프로모션이라 했다. 

    2. 회사나 법인의 채권을 담보로 잡아 증권 거래소에서 판매하는 인공 수요를 만들어냈다. 

    3. 로스차일드는 인공 수요를 창출하여 차익을 얻는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많은 부분을 창조했다. 

    4. 전쟁을 유발하여 채권을 발행하게 하고, 평화시에는 공장을 세우거나 법인을 설립하게 하는 등 자본주의라는 이름 하에 벌어지는 거의 모든 것을 로스차일드가 이끌었다. 


1.6. 유대 네트워크의 확장과 금융 지배력 강화 

  1. 유대 네트워크의 필요성 

    1. 전쟁을 중심으로 채권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기 나라뿐만 아니라 상대국에도 금권을 연결하는 유대 네트워크가 필요했다. 

    2. 로스차일드는 유대인이 아니면 아무도 믿지 않았기에 유대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했다. 

  2. 로스차일드의 유럽 네트워크 구축 

    1. 18세기 말, 로스차일드는 로테르담, 암스테르담, 파리 등 유럽 주요 도시에 분소를 개설하며 네트워크를 확대했다. 

    2. 1798년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아들 네이선 로스차일드를 런던에 보내 자리를 잡게 했다. 

    3. 런던 지점을 통해 영국 왕실로 진출하는 호재를 잡았고, 이를 통해 전쟁으로 막대한 돈을 벌기 시작했다. 

  3. 유대인 해방론과 하일리 하인의 역할 

    1. 1810년부터 1821년까지 로스차일드는 유럽 5개 도시에 지점을 열고 범유럽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2. 영국이 잦은 전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로스차일드의 영향력 때문일 수 있다. 

    3. 1828년 하일리 하인는 '유대인 해방(emancipation)'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하며, 이는 정치, 경제, 법적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4. 하인리는 아일랜드인, 그리스인, 흑인 등 다양한 집단의 해방을 주장하며 물타기를 했지만, 결국 프랑크푸르트 유대인 해방을 강조했다. 

    5. 이는 로스차일드 본점이 프랑크푸르트에 있었기 때문이며, 하인리와 로스차일드의 깊은 관계를 보여준다. 


1.7. 금융 해방과 유대인 시민권 운동 

  1. 유대인 해방의 실제 목적: 금융 해방 

    1. 유대인 해방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대 금융의 해방이었다. 

  2. 유대인 시민권 운동의 목표 

    1. 유대인 시민권 운동의 목적은 은행 활동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3. 멘델스존 은행 설립과 개종 

    1. 모세스 멘델스존의 아들들은 은행을 세우면서 동시에 개신교로 개종하여 유럽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려 했다. 


1.8. 칼 마르크스와 유대인 해방론 

  1. 하일리 하인과 로스차일드의 관계 

    1. 하일리 하인는 금융 해방을 유대인 해방과 동일시했으며, 그의 집안은 은행가 집안이었다. 

    2. 하인리는 귀족 계급에 반대하는 부르주아 해방을 주장했고, 이는 칼 마르크스에게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3. 유대인 해방의 속내는 은행업, 금융 활동, 경제 활동의 자유를 얻는 것이었다. 

  2.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혁명과 은행가들의 목적 

    1.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혁명 주장은 민중 해방이 아닌 은행가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한 목적일 수 있다. 

    2. 마르크스는 유대인이 금융을 장악했고 기독교 사회가 돈에 지배되는 사회가 되었으므로 유대인은 이미 해방되었다고 보았다. 

    3. 그는 유대 은행가들이 산업 부르주아를 장악하기 위해 노동자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4. 이는 노동자들이 산업 부르주아를 무너뜨리고 그 이익을 은행에 갖다 주게 하려는 의도였다. 


1.9. 소련의 금융화와 스탈린의 역할 

  1. 레닌과 JP 모건의 관계 

    1. 레닌은 1921년 JP 모건을 끌어들여 소련의 모든 자산을 넘겼다. 

  2. 스탈린의 역할 

    1. 스탈린은 이러한 과정을 막았으며, 그의 행동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았다. 


1.10. 영국에서의 유대인 지배력 강화 

  1. 영국의 유대인 구제법 통과와 총리 배출 

    1. 영국은 1858년 유대인 구제법을 통과시켰다. 

    2. 1868년 빅토리아 여왕은 최초의 유대인 총리인 벤저민 디즈레일리을 임명했다. 

    3. 런던 로스차일드 지점장 리오넬 로스차일드의 아들 알프레드 로스차일드가 영란은행 이사에 올랐다. 

  2. 로스차일드의 영국 금융 지배 

    1. 로스차일드는 영국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2. 1875년 리오넬 로스차일드는 디즈레일리 수상에게 수에즈 운하 회사 주식 매입 자금을 빌려주고 지분 45%를 매입했다. 

    3. 이는 이집트를 영국 영향력 아래 두게 하고 식민지 야욕을 키웠다. 

    4. 빅토리아 여왕은 디즈레일리와 리오넬 로스차일드의 하수인이 되었다. 

    5. 영국은 유대인의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3. 유대 문화의 유럽 확산과 해방 

    1. 영국에서의 유대인 숭배 문화는 유럽 대륙까지 영향을 미쳤다. 

    2. 1860년대에 이르러 대다수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해방되어 경제 활동의 자유를 얻었다. 

    3. 비스마르크는 1878년 베를린 회의에서 유럽 전체 유대인 해방을 선언했다. 

  4. 유대인 스타들의 등장 

    1. 1860년대는 '유대 웨이브' 시대로, 유대인들이 역사에 갑자기 등장하여 스타로 떠올랐다. 

    2. 벤저민 디즈레일리(총리), 칼 마르크스, 펠릭스 멘델스존(음악가), 사라 베르나르(여배우), 하일리 하인(시인), 아돌프 크레머(외무부 장관) 등이 유명해졌다. 

    3. 1860년대 유럽 내부에서 정치, 경제, 문화 모든 영역에서 유대 네트워크가 가장 크고 강하게 확대되었다. 


1.11. 영국 왕실과 유대 금융의 관계 

  1. 에드워드 7세와 유대 네트워크 

    1. 영국 왕실은 19세기 말 에드워드 7세 시절부터 유대인들과 깊이 어울렸다. 

    2. 에드워드 7세는 평생 영국 왕실 역사상 손꼽히는 난봉꾼이 되었다. 

    3. 그의 여성 편력 상대 중 절반 이상이 유대인 여성이었다. 

    4. 영국 왕실은 에드워드 7세가 성관계 시 사용했던 의자를 자랑스럽게 보관하고 있다. 

    5. 러일 전쟁을 일으킨 야코프 시프도 에드워드 7세와 연관이 있었다. 

    6. 영국 왕실은 완전히 유대인들의 개가 되었다. 

  2. 로스차일드와 시프 가문의 연관성 

    1. 야코프 시프는 로스차일드와 같은 프랑크푸르트 유대인 거주지에서 살았다. 

    2. 로스차일드 가문은 시프 가문이 오랫동안 사용했던 프랑크푸르트의 은행 건물 '하우스 그린 실드'를 인수했다. 

    3. 이때부터 로스차일드와 시프 가문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4. 야코프 시프의 아버지 모세 시프는 로스차일드 은행의 브로커 에이전트로 활동했다. 

    5. 로스차일드는 립먼, 쿠앤 립, 와버그 가문과, 시프 가문은 립먼, 와버그 가문과 사돈 관계를 맺으며 유럽과 미국 금융을 장악했다. 

  3. 영국 대영 제국과 유대-앵글로색슨 금융 복합체 

    1. 영국 대영 제국은 로스차일드와 이를 중심으로 한 유대-앵글로색슨 금융 복합체가 이끌었다. 

    2. 런던 로스차일드 가문의 문장과 영국 왕실 문장이 거의 똑같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3. 1878년 유대인 해방이 조건 없이 허용되면서 로스차일드 가문은 절정에 달했다. 


1.12. 자본주의의 발전과 유대인의 역할 

  1. JP 모건과 록펠러 가문의 등장 

    1. JP 모건이 등장하기 전까지 로스차일드에게는 적수가 없었다. 

    2. 20세기 중반 록펠러 가문이 등장하기 전까지 로스차일드를 당해낼 금융가나 산업 부르주아는 없었다. 

  2. 반유대주의와 유대인 해방의 이중성 

    1. 1960년대부터 불어닥친 유대인 숭배 문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유럽 전반에 반유대주의가 확산되었다. 

    2. 당시 반유대주의는 페미니즘과 유사하게 유대인을 해방해야 한다는 도덕적 관점에서 접근되었다. 

    3. 하지만 페미니즘처럼 유대인 해방 역시 숨겨진 목적이 있었다. 

  3. 독일계 유대인의 부와 사회적 지위 

    1. 서유럽 정치권은 유대인 해방을 계속 추진했으나, 유럽인들은 유대인이 부유하고 자유로운 것을 보며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2. 특히 독일계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잘 살았으며,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빈민가는 동유럽 유대인들이었다. 

    3. 1930년경 독일계 유대인들은 은행, 법률, 의학 등 전문직에서 40~60%를 차지했다. 

    4. 독일인들은 독일 최고의 부자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대인이 탄압받고 희생당했다는 주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5. 동유럽이나 러시아, 루마니아 지역에는 가난한 유대인들도 많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부유한 유대인들이었다. 

  4. 드레퓌스 사건과 시오니즘의 등장 

    1. 프랑스에서는 제3공화국 시절 유대인 해방을 당연하게 여겼으나, 유대인들이 금융과 산업을 지배하는 것을 경계했다. 

    2. 1894년 드레퓌스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유럽 유대인들이 모든 권리를 획득하고 막강한 유대 네트워크를 자랑하던 시기였다. 

    3. 드레퓌스 사건 이후 3년 뒤 시오니스트들이 모여 유대 국가 건설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4. 이 사건은 서구 사회를 좌파와 우파로 갈라놓았으며, 유대인 지지 여부에 따라 분열되었다. 

    5. 유대인들은 드레퓌스 사건을 이용해 이스라엘 귀환이라는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시오니즘을 만들었다. 

    6. 드레퓌스 사건은 이스라엘 탄생의 첫 단추가 되었다. 

  5. 유대인의 종교는 돈 

    1. 마르크스는 유대인의 종교는 유대교가 아니라 돈이라고 지적했다. 

    2. 유대인들은 자유, 해방, 민주주의를 주장할 때도 실제로는 돈과 장사를 위한 핑계였다. 

    3. 스피노자 역시 17세기 네덜란드의 서구 자유주의 우파 정서를 지니고 있었다. 

    4. 칼 마르크스는 자유주의 좌파 성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역시 유대인들이 만든 것이다. 

  6. 자본주의의 좌우 분열과 유대인의 역할 

    1. 로스차일드와 유럽의 유대 금융가들은 1785년부터 왕정과 가톨릭을 붕괴시키려는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에 합류했다. 

    2. 근대사는 유대인들이 이끌었으며, 자본주의 형성에 유대인들의 역할은 최소 50%를 차지한다. 

    3. 유대인들은 2천 년간 대의를 주장했지만, 그 뒤에는 항상 생존 욕구가 있었다. 

    4. 이러한 생존 욕구가 17세기를 거치면서 돈으로 집중되었고, 유대인들이 욕을 먹는 이유가 되었다. 

    5. 마르크스는 유대인 비판을 통해 기독교인들도 돈을 쫓는다고 지적했다. 

    6. 유대인들은 앞에서는 자유와 해방을 외쳤지만, 뒤에서는 돈과 권력을 쫓았다. 

    7. 유대인들은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생존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만들었다. 

    8. 유대인들은 변증법적으로 좌우를 갈라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살아남았다. 

    9. 이는 유대인들이 차별하는 서구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었다. 

    10. 유대인 지도자들은 모두 실용적으로 살아왔으며, 대의보다는 현실적인 생존 전략을 우선시했다. 

    11. 로스차일드는 유대인들을 믿지 말고 그들보다 더한 사기꾼이 되라고 아들들에게 말했다. 

    12. 자본주의의 좌파와 우파는 유대인들이 변증법적으로 갈라놓은 것으로, 이 좌우의 변증법이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있다. 


1.13.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붕괴 가능성 

  1. 좌우 변증법의 붕괴와 자본주의 위기 

    1. 좌우 변증법이 무너지면 자본주의도 균열되고, 자본주의가 무너지면 유대 네트워크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2. 버트런드 러셀의 예측 

    1. 버트런드 러셀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세력이 동등해지면 둘 다 붕괴한다고 예측했다. 

    2. 소련이 해체되고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이겼으나, 결국 자본주의도 무너졌다. 

    3. 현재 두 체제 모두 붕괴 중이며,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3. 현재의 위기와 빅테크의 역할 

    1. 이스라엘, 미국, 유럽 등 전 세계가 17세기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고 있다. 

    2. 빅테크 기업으로 유대 금융가들이 쏠리고 있으며, 이는 17세기 유대 금융가들의 행동과 유사하다. 

    3. 하지만 자본주의가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빅테크로 모이는 것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4. 유대 네트워크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4. 다극 체제로의 전환과 한국에 대한 경고 

    1. 세계는 다극 체제로 갈 수밖에 없으며, 중국, 러시아, 인도, 이란 등이 연대할 것이다. 

    2. 한국은 경거망동하지 말고, 특히 대통령은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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