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아일랜드를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평생 아일랜드에 대한 책만 썼던 제임스 조이스 / 조이스의 아일랜드에 대한 20-30대 시절 격렬한 증오감은 아로의 조센징에 대한 혐오감과 비슷한가?

 

왜 조이스는 1912년 이후 아버지를 다시 만나지 않았나?

여기에 “아버지와 절교해서”라는 극적인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두 사람은 편지를 계속 주고받았고 강한 애정이 남아 있었습니다.

1912년 방문은 조이스의 마지막 아일랜드 방문 자체였습니다. 그는 당시 《더블린 사람들》 출판 문제 때문에 더블린으로 돌아왔지만 출판사 George Roberts와 끔찍한 분쟁을 겪었습니다. 인쇄된 책이 사실상 파기되는 경험까지 한 뒤 아일랜드 출판계와 사회에 대한 환멸이 극심해졌고 다시는 아일랜드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1912년이 그의 마지막 귀국이었다는 것은 조이스 연표에서도 확인됩니다.

이후에는 Trieste → Zürich → Paris를 중심으로 살았고, 1차대전, 경제문제, 작품 집필, 반복되는 눈 수술, 가족문제 등이 이어졌습니다.

아버지는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면서 “dear Jim”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고 싶어 했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조우는?

1912년 더블린 방문 때가 마지막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나서 정확히 무슨 말을 했다”는 신뢰할 만한 대화 기록은 제가 확인한 자료에서는 없습니다. 만들어내면 안 되는 부분입니다.

마지막 편지는?

여기도 '아버지가 James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전문'이라고 확실하게 특정할 수 있는 공개 자료를 지금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Cornell의 Joyce collection에는 John Stanislaus Joyce → James Joyce 편지 5통이 보존되어 있다는 것은 확인됩니다.

확실한 것은 아버지가 죽은 뒤 조이스가 한 말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자신도 아버지를 언제나 매우 사랑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죄책감도 컸습니다. 아버지가 죽은 직후 태어난 손자를 보고 쓴 시 〈Ecce Puer〉 마지막에는 아버지에게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갈등 때문에 일부러 19년 동안 아버지를 안 봤다”는 해석은 지나칩니다. 조이스가 아일랜드 자체를 떠난 결과 두 사람이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된 쪽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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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12년 이후 조이스는 아버지도 안 볼 정도로 아일랜드를 거의 증오했나?
    한때는 실제로 ‘증오’라는 말을 쓸 정도로 격렬한 반감이 있었습니다. 1909년 편지에서 조이스는 아주 노골적으로 **“I loathe Ireland and the Irish”**라고 썼습니다.

1912년 《더블린 사람들》 출판이 좌절되고 출판사가 인쇄물을 파기하면서 그 감정이 더 굳어졌습니다. 그 이후 그는 다시는 아일랜드에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일랜드가 싫어서 아버지도 버렸다”**라고 하면 틀립니다. 아버지와는 편지를 계속 주고받았고 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자신이 아버지를 늘 사랑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반전이 있습니다. 죽기 한 달 전인 1940년에도 조이스는 아일랜드에 자신이 “daily and nightly like an umbilical cord”, 즉 밤낮으로 탯줄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집에서 아일랜드 라디오도 계속 들었습니다.

따라서 조이스의 감정은:

**아일랜드 사회·가톨릭주의·민족주의·문화적 폐쇄성에 대한 격렬한 혐오

  • 더블린과 가족·언어·기억에 대한 거의 집착적인 애착**

이라는 양가감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일랜드를 떠났지만 평생 거의 모든 중요한 작품을 아일랜드에 대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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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Joyce의 아일랜드 감정은 '애증'인가?

네. “애정”이나 “증오” 어느 하나보다 애증이라고 하는 것이 훨씬 정확합니다.

그런데 두 감정이 같은 대상을 향한 것은 아닙니다.

Joyce가 증오한 것은 상당 부분:

가톨릭교회의 억압 + 아일랜드 민족주의의 폐쇄성 + 검열 + 문화적 보수성 + 더블린의 무기력 + 지식인 사회

였습니다.

반대로 사랑한 것은:

더블린이라는 장소 + 더블린 사람들의 말투 + 가족 + 기억 + 거리와 술집 + 아일랜드인의 유머 + 언어와 생활세계

였습니다.

그래서 굉장한 역설이 생깁니다.

아일랜드를 떠남 → 다시는 돌아가지 않음 → 그런데 평생 아일랜드에 관한 글만 씀.

《더블린 사람들》도 Dublin, 《젊은 예술가의 초상》도 Dublin, 《율리시스》는 사실상 1904년 6월 16일의 Dublin을 문학으로 영원히 보존한 작품입니다.

나이에 따라 상당히 달라졌나?

그렇습니다.

20대: 반항과 탈출 욕구가 가장 강합니다.
가톨릭·가족·민족주의가 자신을 붙잡는 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Stephen이 바로 이 시기의 Joyce와 가깝습니다.

20대 후반~30세: 적대감이 가장 격렬해집니다.
1909년에는 실제로 **“I loathe Ireland and the Irish”**라고 쓸 정도였고, 1912년 출판 파동은 결정타였습니다.

1912년 출판 좌절 직후 Joyce가 쓴 **〈Gas from a Burner〉**는 그 분노가 그대로 폭발한 작품입니다. 출판사와 아일랜드 문화계를 조롱하고 그는 그대로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30~40대: 물리적으로 멀어지면서 오히려 Dublin을 문학적으로 집요하게 복원합니다.

여기서 증오는 점차 obsession에 가까운 애증으로 변합니다.

특히 《율리시스》가 극단적입니다. 더블린이 정말 싫기만 했다면 도시의 거리, 건물, 술집, 광고, 말투, 냄새까지 그토록 집요하게 재현할 이유가 없습니다.

50~60대: 향수와 애착이 훨씬 선명해집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일랜드와 화해해서 돌아가고 싶었다”는 식으로 단순화하면 안 됩니다. 그의 정치·종교·문화적 비판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Joyce의 일생을 한 줄로 만들면 저는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

젊은 Joyce: “나는 아일랜드에서 탈출해야 한다.”
중년 Joyce: “나는 아일랜드를 떠났지만 아일랜드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말년 Joyce: “내가 돌아가지는 않지만, 나는 여전히 그곳에 연결되어 있다.”

결국 감정적으로는 사랑보다 증오에 가까웠느냐? 이것도 시기에 따라 다릅니다. 20대~30세 무렵에는 증오·혐오 쪽으로 상당히 기울었고, 중년 이후에는 어느 한쪽이라고 말하기 힘든 강렬한 애증, 말년에는 그중에서도 향수와 애착의 비중이 커졌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그가 아일랜드를 정말 무관심하게 버렸다면 《율리시스》 같은 작품은 나오기 어려웠을 겁니다. Joyce에게 아일랜드의 반대말은 사랑이 아니라 무관심이었고, 그는 평생 아일랜드에 무관심해지는 데 실패한 사람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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