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그렇지 않고서야, 5.18을 법으로 가둘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스타벅스 가지 말라고, 대통령이 나설 수 있겠는가. “손가락”들은 민주주의가 꽃피웠다고 난리지만, 한 여름밤의 “달”은 자유민주주의가 죽었다고 숨죽인다.

 나는 전라도의 자랑으로는 혁명이나 음식보다도 서정춘이 더 앞이라고 본다. 교수를 할 때, 내 연구실의 책상 옆 흰 벽에는 김수영의 “봄밤”이 18년 동안 붙어 있었다. 김수영은 “김일성 만세”를 1960년에 써서 숨겨두었다. 2008년에야 유작으로 공개되었다. 서정춘은 “진달래꽃”을 이렇게 썼다. “그해, 지리산 밑 오두막에 살면서/산막을 드나들다/총 맞은 가슴팍에 진달래꽃을 피워놓고 고요히 잠든/사내를 빨치산이라 불렀었지,” “김일성 만세”로 표현의 자유를 말한 김수영이나, “빨치산 가슴팍의 진달래꽃”으로 역사 속의 인간을 아파한 서정춘이나 자기가 살고 누리는 이념의 그늘로 보자면, 철이 덜 들었다. 그러나 시인은 ‘덜 든 철’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에 선다. 시인이 철이 안 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철이라는 것이 인간사의 일이다. 인간은 신의 세계를 떠나, 자신만의 세계를 따로 일구어야 하는 숙명을 받았다. 신의 세계, 즉 고향을 떠날 때, 어떤 누구는 고향을 뒤돌아보느라, 인간끼리만 사는 타향에 적응하는 속도를 잃는다. 타향에서 철이 들지 못하고, 가난하고, 외롭다. 모든 타향은 고향을 향하는 정거장일 뿐이다. 타향에서 겨우겨우 배웠던 말과 문자들 사이에, 남몰래 고향의 노래와 춤을 박아 두는 생명체들, 시인이다. 철든 인간은 철드는 데 힘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인간의 발명품인 문자들 사이에 고향의 노래와 춤을 심지 못한다. 그래서 시인은 “덜 인간”이기도 하다.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덜 인간”, 이 아이러니로 ‘철든 인간’이나 ‘더 인간’들에게 고향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자, 시인이다.

김수영은 “'김일성 만세'/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라고 하는데, 조지훈에 비해서 아직 이빨은 덜 났다. 세상의 단단한 고기를 씹어 삼키는 철든 이빨이 아니라, 고향의 젖을 빠는 아이의 잇몸 같다. 서정춘도 아직 이빨은 덜 난 듯하다. 고향은 멀다. 세상은 정거장에 서성이는 것을 삶의 전부로 삼느라, “온몸으로 바로 서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김수영, “시여, 침을 뱉어라”)을 살지 못하는 “유사 시인”들로 가득하다. 김수영의 “김일성 만세”가 세상에 나올 때, 문학 평론가들과 좌파 지식인들은 이 시를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표현의 자유’를 가장 용기 있게 외친 최고의 걸작”이라며 환호하며, “‘김일성 만세’라는 자극적인 단어(손가락)에 갇히지 말고, 그것을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민주주의의 조건(달)’을 보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흥미로운 점은, 2008년 이 시가 공개되었을 때 대다수 대중은 “와, 이런 시를 60년대에 쓰다니 대단하다. 진짜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지”라며 시인의 뜻에 감탄하고 공감했다. 그런데 그렇게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에 환호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불과 5~6년 뒤인 2014년 교학사 교과서 사태 때는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역사 해석을 담은 교과서는 선택될 자유조차 없다”며 물리적으로 퇴출시키는 집단행동으로 이어졌다. 표현의 자유를 말한 김수영에 감탄하고 공감하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김수영이 이빨이 덜 난 상태에서 쓴 “김일성 만세!”가 “손가락”이었는지, “달”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아류들에게 그것은 “손가락”일 뿐이다. 서정춘이 이빨이 덜 난 상태에서 아파한 빨치산의 진달래도 “달”인지, “손가락”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아류들에게 그것은 “손가락”일 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5.18을 법으로 가둘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스타벅스 가지 말라고, 대통령이 나설 수 있겠는가. “손가락”들은 민주주의가 꽃피웠다고 난리지만, 한 여름밤의 “달”은 자유민주주의가 죽었다고 숨죽인다. 우리는 성장이 멈췄다. 지금은 반대쪽 “손가락”들이 만든 1960년이다. 5.18을 법에 가두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시궁창에 처박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지적인 천박함과 사악함에 빠졌다. 지적 정체이거나 지적 후퇴를 겪고 있다. 어쨌든 66년 동안 우리는 한 뼘도 자라지 못했다. 2026년 7월 2일, “배운 사람이 그러먼 쓴다냐”는 말씀을 남기고 가신 어머니 제삿날에, 1960년 10월 6일, 김수영이 “김일성 만세!”를 쓰던 그때의 두려움과 사명감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남몰래 조용조용 두 마디 읊어본다. “나는 5.18을 왜곡한다!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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