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가 영국 대신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음을 보여준 1958년 디펜베이커 정부의 미국 BOMARC 도입 결정 및 그것을 실제로 실현시킨 1963년 피어슨 정부 / 가 미국으로부터 CIM-10 보마크를 구입해 캐나다 본토에 배치한 조치는 왜 반발을 불러일으켰는가? 한국의 사드배치와 맥락상 유사?

 

디펜베이커가 미국으로부터 CIM-10 보마크를 구입해 캐나다 본토에 배치한 조치는 왜 반발을 불러일으킴? 한국의 사드배치와 맥락상 유사?

맥락상 일부는 한국의 사드(THAAD) 배치 논쟁과 상당히 비슷하지만, 핵심 쟁점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먼저 하나 바로잡으면, 디펜베이커가 핵탄두까지 완전히 받아들여 배치한 것은 아닙니다. 그의 정부가 1958년 BOMARC 도입을 결정하고 미사일을 배치했지만, 정작 핵탄두 수용 문제에서 계속 머뭇거렸고, W40 핵탄두가 실제 캐나다에 들어온 것은 1963년 피어슨 정부 때였습니다.

반발이 컸던 가장 큰 이유는 BOMARC가 사실상 핵무기를 전제로 한 방공체계였기 때문입니다. 캐나다가 도입한 BOMARC는 소련 폭격기 편대를 요격하기 위해 핵탄두를 공중에서 폭발시키는 방식이 핵심이었고, 미국제 W40 핵탄두가 없으면 군사적 효용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미국제 미사일을 산다”의 문제가 아니라 캐나다 영토에 미국 핵무기를 들여올 것인가라는 문제가 돼 버렸습니다. 당시 캐나다에서는 반핵운동과 냉전 중립론도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주권 문제였습니다. 핵탄두는 미국 소유였고 미국의 핵무기 통제규정 때문에 캐나다가 완전히 독자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캐나다 영토의 핵무기를 최종적으로 누가 통제하는가?”, “캐나다의 방공정책이 사실상 워싱턴에 종속되는 것 아닌가?”라는 논란이 커졌습니다. 캐나다 정부의 공식 역사 설명에서도 당시 북미 공동방공 체계가 캐나다의 영공·영토 통제와 핵무기 정책이라는 주권 문제를 제기했다고 명시합니다.

여기에 Avro Arrow 취소 문제까지 겹쳤습니다. 디펜베이커 정부가 캐나다가 자체 개발하던 고성능 요격기 CF-105 Arrow를 1959년 취소한 직후 미국제 BOMARC가 들어오면서, 일부 캐나다인들에게는

“캐나다 자체 방위산업을 죽이고 미국제 무기에 의존한다”

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실제 RCAF 역사 연구에서도 이후 대중 기억 속에 Arrow = 캐나다 기술, BOMARC = 미국 의존이라는 대립 구도가 강하게 형성됐다고 설명합니다.

게다가 군사적으로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BOMARC는 주로 소련의 유인 폭격기를 요격하는 무기였는데, 1960년대가 되면서 전략적 위협의 중심이 ICBM으로 급속히 이동했습니다. 당시에도 “ICBM을 막지도 못하는 시스템에 왜 이렇게 많은 돈을 쓰느냐”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결국 논쟁 구조를 단순화하면 이렇습니다.

BOMARC 캐나다THAAD 한국
미국 주도의 동맹 방공체계미국 주도의 한미동맹 미사일방어체계
캐나다 영토에 미국제 무기 배치한국 영토에 주한미군 THAAD 배치
미국 의존·주권 논란미국 의존·전략적 자율성 논란
국내에서 찬반 격렬국내에서 찬반 격렬
소련 위협을 이유로 배치북한 탄도미사일 위협을 이유로 배치
미국과의 동맹 공약 문제한미동맹 공약 문제
외교정책·국내정치 문제로 확대중국 관계·국내정치 문제로 확대

이런 점에서는 사드와 매우 비슷한 구조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BOMARC는 핵무기 문제였습니다. THAAD는 핵탄두가 없는 재래식 요격체계입니다.

BOMARC의 W40은 실제 핵탄두였고, 적 폭격기 근처에서 핵폭발을 일으켜 파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심지어 전시에 캐나다 상공에서 핵탄두가 폭발할 가능성까지 논의됐습니다.

반면 THAAD는 탄도미사일을 kinetic hit-to-kill, 즉 요격체가 직접 충돌하여 파괴하는 체계입니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북한 탄도미사일 방어 목적이라고 설명했고, 중국은 특히 THAAD의 X-band radar와 미사일방어망이 중국의 전략핵 억지력과 미국의 대중국 군사전략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반발의 중심도 다릅니다.

BOMARC에서는
“우리 영토에 미국 핵무기를 둘 것인가 / 그 핵무기를 누가 통제하는가 / 미국에 너무 종속되는 것 아닌가”가 핵심이었습니다.

THAAD에서는
“북한 방어에 필요한가 / 중국의 전략억지력을 침해하는가 / 한미동맹과 중국 관계 사이에서 어떤 비용이 발생하는가 / 배치 지역 주민과 환경·절차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핵심이었습니다. 중국은 실제로 THAAD를 자국의 전략적 이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고, 한국에 경제적 압박도 가했습니다.

따라서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면 “BOMARC 논쟁은 냉전기 캐나다판 사드 논쟁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면이 있다. 다만 BOMARC는 미국 핵무기의 캐나다 배치와 통제권이라는 훨씬 직접적인 핵주권 문제가 중심이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논쟁은 단순 시위 수준에서 끝난 게 아니라 디펜베이커 정부 붕괴의 핵심 원인 중 하나가 됐습니다. 내각 자체가 핵탄두 수용 문제로 갈라졌고,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국과의 관계까지 악화되면서 1963년 정치위기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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