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반데라의 폴란드인, 유태인 학살 때문에 우크라 나치라고 욕먹는다 /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관계는 왜 틀어졌을까? 우크라이나가 과거 학살을 자행한 부대 이름을 군대 이름으로 사용하면서 폴란드의 반발을 샀고, 이는 EU 가입 반대와 훈장 박탈로 이어졌습니다.


1.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둘러싼 폴란드와의 역사 갈등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둘러싸고 폴란드가 갑자기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양국 관계에 역사적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1.1.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추진과 예상치 못한 폴란드의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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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U는 최근 우크라이나, 몰도바,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4개국과의 가입 협상을 시작했으며, 몬테네그로와 알바니아는 2028년 회원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 

  2. 가장 주목받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협상은 러시아의 위협과 헝가리 총리의 반대로 지지부진했으나, 헝가리 야당의 총선 승리로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3. 하지만 최근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에 반대 입장을 밝히며 예상치 못한 갈등이 발생했다. 

    • 폴란드는 과거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강력히 찬성해왔다. 


1.2. 폴란드의 갑작스러운 반대 이유: 역사적 갈등의 재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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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폴란드는 지리적으로 우크라이나와 매우 가까우며, 러시아의 동유럽 진출 시 거쳐야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2. 러시아의 침공 이후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가장 적극적으로 전쟁 물자를 지원했으며, 100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했다. 

  3. 폴란드 대통령은 "폴란드에 있어 중요한 역사적 사안들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우크라이나의 EU 또는 NATO 가입을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4. 이러한 갈등은 지난 5월, 우크라이나가 자신들의 특수 작전 부대 이름을 '우크라이나 방군(UPA)'으로 변경하는 법령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 우크라이나 방군(UPA)은 우크라이나 독립을 위해 싸운 부대로 우크라이나 내에서는 영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5. 폴란드는 이 결정에 대해 "터무니없고, 이해할 수 없으며, 매우 실망스럽고 무례한 처사"라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6. 폴란드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수여했던 최고 국가 훈장인 '화이트 이글 훈장'을 박탈했으며, 젤렌스키 대통령은 SNS에 훈장을 반납하는 사진을 올리며 강하게 반발했다. 

    • 젤렌스키 대통령은 "다른 나라의 어떤 대통령도 우리에게 우리의 역사를 지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2.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복잡한 역사: 갈등의 뿌리를 찾아서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갈등은 단순히 최근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친 복잡하고 때로는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2.1.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기부터 제1차 세계대전 이후까지의 영토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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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6~18세기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대공국이라는 한 나라에 속해 있었으나, 종교적 차이와 폴란드 귀족의 우크라이나 농민 지배 등으로 갈등의 씨앗이 쌓였다. 

  2.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을 선언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현재의 국경 지역인 볼히니아와 갈리치아 지역을 두고 전쟁을 벌였다. 

    • 폴란드는 이 지역을 자국의 영토로 주장했고, 우크라이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3. 소련의 위협이 커지자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손잡고 소련에 맞서 싸우기 위해 동갈리치아와 서볼히니아 지역을 폴란드에 양보했다. 

  4. 하지만 결국 소련이 승리했고, 폴란드는 소련과 리가 조약을 맺으며 우크라이나를 버리고 후퇴했다. 

    •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소련에 병합되었고, 동갈리치아와 서볼히니아는 폴란드 영토가 되었다. 

  5. 이후 우크라이나는 스탈린의 대기근(홀로도모르)으로 천만 명 이상이 굶어 죽는 비극을 겪었다. 


2.2.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의 복잡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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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폴란드는 나치 독일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당했고,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일부로 남아 있었다. 

  2.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우크라이나 지역은 잠시 나치 독일의 영향권에 들어갔으나, 결국 소련이 승리했다. 

  3. 소련은 과거 폴란드가 차지했던 동갈리치아와 서볼히니아를 다시 소련 영토로 편입시켰고, 폴란드 영토는 서쪽으로 밀려났다. 

    •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 연합 내에 있었으나, 1991년 소련 멸망 후 독립하면서 이 지역들을 그대로 영토로 확보했다. 

  4. 1991년 소련 멸망 후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친서방 노선을 강화했고, 이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2022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이어졌다. 


3. 스테판 반데라와 우크라이나 방군(UPA)의 역사적 논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협력하여 폴란드인과 유대인 학살에 연루된 스테판 반데라와 우크라이나 방군(UPA)의 존재는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간 역사 갈등의 핵심 쟁점이다.


3.1. 스테판 반데라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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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소련을 공격하자, 소련의 지배 하에 있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독립을 시도하며 폴란드와 충돌했다. 

  2. 이 과정에서 스테판 반데라가 등장하여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파시스트로 불리며, 우크라이나 방군(UPA)을 결성하고 이끌었다. 

  3. 반데라는 폴란드 정부를 상대로 테러를 감행했으며, 나치 독일을 소련에 맞설 우군으로 판단하여 협력했다. 

    • 반데라는 나치 독일을 도와 폴란드인, 유대인, 러시아인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으며, 이는 그의 평가를 극명하게 엇갈리게 만들었다. 

  4. 독일이 반데라와 주요 간부들을 체포하자, 남은 민족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 방군(UPA)을 창설하여 독일, 소련, 폴란드 모두를 상대로 무장 투쟁을 벌였다. 


3.2. 볼히니아 학살과 그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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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43년, 우크라이나 방군(UPA)은 폴란드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에서 대규모 인종 청소인 '볼히니아 학살'을 자행하여 5만에서 1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 특히 1943년 7월 11일은 '볼히니아 피해 일요일'로 불리며, 이날 최소 99개에서 150개 이상의 마을에서 끔찍한 학살이 벌어졌다. 

  2.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은 우크라이나 방군을 분리주의자로 간주하여 수십만 명을 강제 수용소로 보내고 민족주의자 수만 명을 숙청했다. 

  3. 반데라는 1959년 독일에서 소련 스파이에 의해 암살되었고, 그의 암살자는 이후 행적이 묘연해졌다. 

  4. 소련의 극심한 적이었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냉전 시기 미국에 의해 반소련 활동을 위해 이용되었으며, 볼히니아 학살의 주범으로 불리는 미콜라 레베드도 미국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보냈다. 

    •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나치'라고 비난하며 전쟁의 명분으로 삼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4. 현재 진행 중인 갈등과 봉합 노력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들은 현재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양국은 갈등 봉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4.1. 볼히니아 학살 추모와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여론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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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년 폴란드 두다 대통령은 볼히니아 학살 희생자들을 기리는 국가 기념일 지정을 발표하며, 이를 양국 우호 관계 구축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우크라이나 방군(UPA)'이라는 부대 이름을 사용하면서, 자국민 10만 명이 학살당한 볼히니아 학살을 기억하는 폴란드 국민들의 분노가 커졌다. 

  3. 이 사건으로 인해 폴란드 내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찬성 여론이 90%에서 50%까지 급락했다. 

  4. 폴란드 총리는 볼히니아 희생자 추모 국가 기념관 건립을 발표하며, "민족주의에 대한 해답이 또 다른 민족주의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4.2. 갈등 봉합을 위한 외교적 노력과 미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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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재 폴란드 외무장관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하여 오해를 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2. 젤렌스키 대통령은 볼히니아 학살 희생자들을 기리는 합동 기도회에 참석하며, 우크라이나는 희생자들에 대한 진실 규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3. 젤렌스키 대통령은 과거 역사 문제도 중요하지만, 현재 러시아라는 공동의 위협에 맞서 싸우는 것을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4.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열풍과 폴란드에 대한 배려 부족이 양국 간 불화를 야기했지만, 외무장관 회담 등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잘못을 인정하며 협력하는 관계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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