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반 고흐 가문의 비극: 비극적인 이야기의 첫 번째는 고흐 동생이자 열렬한 후원자였던 테오(1857~1891)가 결혼 후 1년 만에 당시로는 흔한 병인 매독(syphilis)으로 죽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테오의 큰 손자인 테오도르 반 고흐(1920~1945)가 나치의 총탄에 학살되었으며, 세 번째는 테오의 증손자로서 영화제작자인 테오도르 반 고흐(1957~2004)가 네덜란드계 모로코 무슬림 광신자에 의해 네덜란드 거리에서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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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의 5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후손들은 슬프고 잔인했던 과거를 추모하고 있다. 특별히, 1945년에 24세 학생 신분으로 총살당한 테오도르 반 고흐(Theodoor van Gogh, 1920~1945)를 기리고 있다고 아트뉴스가 5월 22일 자로 보도했다. 1920년에 태어난 테오도르는 고흐의 동생 테오(Theo van Gogh, 1857~1891)의 큰손자로, 1941년에 암스테르담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던 학생이었다.
네덜란드 노르트홀란트주의 주도인 하를럼(Haarlem) 인근 모래 언덕에 있는 'Field of Honour Cemetery'에 묻혀 있는 테오도르의 무덤 묘비명에는 "용감했고 자유를 위해 두려움이 없었다"라고 쓰여있다. 그는 독일군의 점령에 저항하는 학생 조직에 가입하여 유대인과 숨어지내던 사람들을 비밀리에 도왔으며, 1943년과 1944년에 나치에 의해 체포되었지만, 두 번 모두 그의 아버지가 개입하여 석방되었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나기 두 달 전인 1945년 3월 1일, 테오도르에게 운이 따르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동료 학생이었던 한스 바이스((Hans Bais)가 거리에서 검문을 당하여 조사를 받을 때, 그는 숨어서 몇 명의 사람들에게 빵을 가져다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독일군은 바이스에게 버터링스한스(Weteringschans)에 있는 그의 집으로 그들을 데려가라고 명령했고, 그곳에서 독일 군인들은 테오도르를 발견했다. 두 젊은 청년은 모두 체포되어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우연히도 버터링스한스는 1973년에 문을 연 반 고흐 박물관에서 걸어서 몇 분 거리 내에 있다. 며칠 후인 3월 6일, 네덜란드의 저항 세력은 점령 SS 경찰대의 독일 지도자인 한스 라우터(Hanns Rauter)에 대한 공격을 단행했다. 라우터는 심하게 다쳤고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나치는 당시 불과 24세였던 테오도르를 포함하여 네덜란드 시민 263명을 처형했다.
3월 8일, 전에 장미 정원(Rose Garden)으로 암스테르담 동남부에 있는 로제노르드(Rozenoord)의 'Fusilladeplaats'로 알려진 곳에서 총살되었다.
2015년, 이스라엘 태생의 네덜란드 조각가 람 카치르(Ram Katzir)는 총에 맞은 140명을 위해 사격대 광장 기념관을 설계했다. 기념물 로제노르드(Monument Eozennoord)에서 희생자들은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 위에 금속제 의자로 기억되고 있다.
"빈 의자들이 공원 주위에 흩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죽은 자들의 존재를 정말로 느낄 수 있었다. 노제노르드 희생자들과 기념비를 방문한 자들이 남긴 흔적은 덧없이 남아 있다 "고 한 람 카치르는 파리에 있는 뤽상부르 공원(Jardin du Luxembourg)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빈 의자'를 그렸다. 그 그림을 언젠가 그 의자에 앉은 사람과 동일하게 여겼기 때문에 의자로 된 기념물로 테오도르를 추모한 것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고흐가 그린 '빈 의자'는 현재 런던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2018년, 테오도르의 동생인 요한(Johan)이 로제노르 기념물 제막식에 참석하여 의자에 앉았다. 냉전 시대에 네덜란드의 정보 장교로 소련의 침공 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지난해 9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얀 그레스호프(Jan Greshoff, 1888~1971)가 쓴 이 책은 아마 테오도르의 22세 생일날 선물로 그에게 주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책 서문에는 벨기에의 상징주의 시인으로 고흐가 죽은 후 채 1년도 안 되었을 때, 고흐 그림에 대한 글을 출판한 최초의 비평가 중 한 사람인 에밀 베르하렌(Emile Verhaeren, 1855~1916)의 글이 실려 있다. 1915년, 암스테르담에서 출판된 이 책은 벨기에가 독일에 의해 점령된 전쟁 이전 동안 읽혔을 것으로 보이며, 전쟁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1세기가 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보관 상태가 좋았다.
이 책은 3명의 테오 반 고흐(Theo van Gogh)에 대한 비극적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비극적인 이야기의 첫 번째는 고흐 동생이자 열렬한 후원자였던 테오(1857~1891)가 결혼 후 1년 만에 당시로는 흔한 병인 매독(syphilis)으로 죽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테오의 큰 손자인 테오도르 반 고흐(1920~1945)가 나치의 총탄에 학살되었으며, 세 번째는 테오의 증손자로서 영화제작자인 테오도르 반 고흐(1957~2004)가 네덜란드계 모로코 무슬림 광신자에 의해 네덜란드 거리에서 살해되었다.
이번 달, 영화 제작자의 사촌인 빌럼 반 고흐(Willem van Gogh)는 3명의 테오도르(Theodoor)의 잔혹한 죽음 75주년을 기념하는 편지에서 "테오 세 사람 모두는 특별한 사람이었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의의 때문에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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