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에서 영리하게 적을 공격한 단테 / 아로도 예술 속에서 얼간이들을 공격하여 그들로부터 핍박받은 것을 불멸의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이다

 

1. 《신곡》은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철학·종교적으로 수준이 높은가?

그렇습니다. 상당히 높습니다. 다만 “오늘날의 철학자나 신학자가 읽어도 현대 철학·신학과 동등하게 최신 수준이다”라는 뜻은 아닙니다.

단테의 사상적 기반은 기본적으로 13~14세기의 스콜라 철학과 기독교 신학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등의 영향을 매우 깊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현대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우주론이나 자연철학에는 당연히 시대적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의 철학·신학을 문학적으로 통합하고 체계화하는 능력은 오늘날에도 놀라울 정도로 높게 평가할 만합니다.

특히 《신곡》은 단순히 “천국·지옥에 대한 종교 이야기”가 아닙니다.

  • 인간의 자유의지
  • 죄와 책임
  • 욕망과 이성
  • 정의와 처벌
  • 정치권력과 종교권력
  • 인간의 행복
  • 사랑의 본질
  • 지식과 진리
  • 신과 인간의 관계

같은 문제를 계속 다룹니다. 현대 연구에서도 단테의 정치철학과 윤리학을 독립적인 연구 대상으로 다루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중세 종교문학이라서 오늘날에는 철학적으로 낡았다”**라고 보면 상당히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점은 형식은 중세인데 질문은 상당히 보편적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자유로운가?
잘못된 욕망은 왜 생기는가?
지식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정치권력은 어디까지 정당한가?
인간은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가?

이런 질문은 700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요.


2. 그런데 교황까지 지옥에 넣었는데 왜 교회가 《신곡》을 금서로 안 만들었나?

여기서는 제가 앞에서 너무 단순하게 말한 부분을 수정해야 합니다.

“《신곡》은 금서가 된 적이 없다”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후대에 검열·금지·삭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스페인·포르투갈 종교재판과 검열 체제에서 《신곡》의 특정 부분이 문제되어 삭제·수정된 판본만 허용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브랜다이스 대학 소장본에도 1614년 스페인 종교재판소의 검열을 거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신곡》 자체보다 《De Monarchia》(《군주정》)**가 훨씬 더 직접적으로 교회 권위와 충돌했습니다. 단테는 황제의 권력이 교황에게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직접 나온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교황권과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이 책은 14세기부터 비난받고, 1318년에는 롬바르디아에서 공개적으로 불태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신곡》이 살아남은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첫째, 단테는 기독교 자체를 공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단테의 세계관은 극도로 기독교적입니다.

그가 공격하는 것은:

“교회가 아니다.”

라기보다

“교회의 타락한 인간들이다.”

에 가깝습니다.

교황도 인간이므로 죄를 지을 수 있고, 교황이라는 직함 자체가 그 사람을 자동으로 구원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단테가 보니파키우스를 공격한다고 해서 곧바로:

“단테 = 이단”

이라는 논리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둘째, 당시에도 교황 비판 자체가 곧 이단은 아니었습니다.

중세 가톨릭 내부에는 교황의 정치적 행동이나 도덕적 타락을 비판하는 전통이 상당히 존재했습니다.

“교황이 잘못된 행동을 했다”와

“가톨릭 신앙 자체가 거짓이다”

는 완전히 다른 주장입니다.

단테는 후자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진짜 교황은 이래야 한다”**라는 기준을 가지고 현재의 교황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래서 단테가 보니파키우스를 지옥에 보낸 것은 단테의 관점에서는 반가톨릭적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적 정의를 요구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보니파키우스는 실제로 《신곡》의 여러 부분에서 계속 공격받습니다. 《지옥편》뿐 아니라 《연옥편》과 《천국편》에서도 언급됩니다. 프린스턴의 Dante Project는 보니파키우스가 《신곡》 전체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단테에게 부패한 교황권의 상징이었다고 정리합니다. 


3. 그리고 단테는 굉장히 영리하게 썼습니다

이게 진짜 재미있습니다.

1300년의 여행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단테가 살아 있는 사람을 지옥에 직접 배치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보니파키우스를 **“미리 예약된 지옥의 자리”**에 넣어버립니다.

니콜라오 3세가 단테를 보니파키우스로 착각하면서:

“벌써 왔느냐?”

라고 생각하는 장면입니다.

실제 보니파키우스는 그때 살아 있었습니다.

즉 문학적으로는:

“당신은 지금 살아 있지만, 내가 보기에 당신의 영혼이 향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다.”

라는 엄청난 정치적 공격입니다. 프린스턴 Dante Project도 이 장면에서 단테가 보니파키우스에게 미리 지옥의 자리를 배정했다고 설명합니다. 

이 정도면 현대 정치 풍자보다도 상당히 과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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