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인간성의 정의는 생물학적 고정값이 아니라 문명의 지향에 따라 변천해온 드러남과 확장의 역사다. / 과거 산업 혁명기의 기계가 그러했듯이, AI 역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간성을 드러내 줄 것이다. / 기계가 반복적인 육체노동을 대체하자, 인간성에 감춰져 있던 자유 시간과 창의적 여가의 가치가 드러났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한 노동이 인간 본질의 전부인 줄 알았으나, 기계 덕분에 인간은 노동 너머의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표준화 너머의 개성이다. 모든 것이 기계로 찍어낸 듯 똑같아지는 세상이 오자, 역설적으로 인간만이 가진 개성적 차이가 인간다움의 신영토로 드러났다.

 


최진석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

AI가 나오고 나서 “인간성이 파괴된다”거나 “인간성을 위협한다”는 말들도 나온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갇힌 자’들은 인간성의 파괴를 말하며, 미래를 지체시키고 과거를 살려고 한다. 그들은 AI가 나오기 전에도 기술 문명 자체가 인간성을 훼손한다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 사실은 AI가 나오기 전의 인간성에 갇혀 있을 뿐이다.

산업혁명기 기계가 근육 대신하며

인간의 지성을 더욱 돋보이게 했듯

AI로 미처 몰랐던 인간성 발견 가능

두려워 말고 과감히 AI로 진입할 때

인간성의 정의는 생물학적 고정값이 아니라 문명의 지향에 따라 변천해온 드러남과 확장의 역사다. 인간성은 늘 존재하지만, 시대에 따라 형태와 내용을 달리하며 영토를 넓혀왔다. 인간성이 달라지는 과정은 인간이라는 거대한 도서관에서 우리가 읽어내지 못했던 서가들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자기 이해의 확장사다. 도구적 본능에 가려졌던 사유, 신의 빛에 눌려있던 주체, 이성에 억눌렸던 욕망의 재발견이 그 증거다. 이 과정에서 전 시대에는 결함이라고 버림받던 것들이 다음 시대에는 인간다움의 정수로 당당하게 등장한다. 인간성은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광맥과 같아서, 주류의 시선이 바뀔 때마다 감춰져 있던 단면들이 새로이 드러날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맞이한 현재의 거대한 전환점도 이전 체계에 가려졌던 새 본질이 새롭게 드러나는 계기일 뿐이다. 기술 문명의 발전은 언제나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다움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를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에 대하여 새로운 응답을 이끌어 왔다.


영화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 중앙포토

산업혁명은 노동과 인간다움의 관계를 재정의하며 감춰진 진실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기계는 인간의 숙련된 솜씨와 장인 정신을 파괴하고, 자신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괴물이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가 보여주듯, 기계의 속도에 맞춰 나사를 조이는 인간은 더 이상 사유하는 존재가 아니라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했다. 이때 “인간성이 파괴되었다”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기계의 등장은 이전 시대에는 깊게 하지 않던 질문을 끌어올렸다. 단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기계가 반복적인 육체노동을 대체하자, 인간성에 감춰져 있던 자유 시간과 창의적 여가의 가치가 드러났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한 노동이 인간 본질의 전부인 줄 알았으나, 기계 덕분에 인간은 노동 너머의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표준화 너머의 개성이다. 모든 것이 기계로 찍어낸 듯 똑같아지는 세상이 오자, 역설적으로 인간만이 가진 개성적 차이가 인간다움의 신영토로 드러났다.

오늘날 우리가 AI를 보며 느끼는 공포도 비슷하다. AI는 이제 인간의 사유조차 기계화하려 하고, 실수 없는 논리로 인간의 설 자리를 압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AI 역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간성을 드러내 줄 것이다. 갇힌 자들은 산업 혁명기의 기계와 지금의 AI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한다. 차원이 다르긴 하다. 모든 기술은 다른 차원의 진보이다. 기계도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이제 지식의 양이나 계산 속도가 인간성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해졌다. 대신, ‘질문을 던지는 용기’, ‘가설을 세우는 무모함’, ‘신화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황당함’,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신체성’이나 ‘머뭇거림’ 등 그동안 지식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인간의 본질들이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낸다. 결국, 기계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인간성의 껍데기를 파괴하여 그 안에 감춰져 있던 더 핵심적인 인간다움을 탈피시키는 촉매제였던 셈이다. 산업 혁명기의 기계가 인간의 근육을 대신하며 지성을 돋보이게 했다면, 지금의 AI가 인간의 지성을 대신할 때 우리 안에서 새로 드러날 가장 빛나는 가치는 무엇이어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려 변두리에서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무모한 동심원들이 새 문명의 새 중심을 새롭게 잡아나갈 것이다. 여기서 낙오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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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AI가 인간의 지성을 대신할 때 지식의 그늘에 가려졌던 가치들이 새로운 인간성의 중심으로 떠오를 것이다. 김지윤 기자

갇힌 자들은 정해진 인간성과 현상적인 부작용들에 갇힌다. 갇힌 인간성은 그들에게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성벽이 되고, 새로운 기술은 그 성벽을 무너뜨리는 침략자가 된다. 인간성을 고정된 것으로 보는 이들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그것이 인류의 사유 지평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라는 실용적이고 창조적인 기획에 눈을 뜨지 못한다. 대신 과정의 소란함을 근본적인 파멸로 오해하며,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가?”라는 윤리적 검열을 제1선에 놓는다. 물론 윤리적 성찰은 필요하지만, 이들에게 윤리는 기술을 올바르게 이끌기 위한 나침반이 아니라, 기술의 진입을 막아서는 방어벽으로 기능한다. 이들은 기술을 윤리적으로 비난하거나 두려워하는 데 에너지를 쓰느라, 새로운 기술을 관통하는 구조의 설계자가 되지 못한다. 결국, 그 기술이 만들어 놓은 세계 안에서 겨우 적응하며 살아가는 변방의 기록원이나 소비자로 전락하고 만다. 두려워 말라. 우리는 더 진짜 인간이 되어가는 축복받은 물길을 타고 있다. 지금은 AI 속으로 과감히 진입할 때다.

최진석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3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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