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에 묘사된 동성애/양성적 욕망과 청나라, 에도시대의 현대와는 다른 동성애자에 대한 취급
《홍루몽》의 남성 동성애/양성적 욕망은 구체적으로 어디에 나오나?
대표적인 것이 **가보옥(賈寶玉)과 진종(秦鐘, Qin Zhong)**입니다.
진종은 매우 아름다운 소년으로 묘사되고 보옥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에게 강하게 매혹됩니다. 둘은 함께 가씨 집안 학교에 다니게 되고 매우 가까워집니다.
작품은 둘 사이에 실제 성관계가 있었다고 명시적으로 적지는 않지만 단순한 우정보다 성애적인 관계일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열어둡니다. 당시부터 이 관계를 그렇게 읽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가씨 집안 학교에서는 남학생들 사이의 동성적 관계를 둘러싼 소문과 질투 때문에 큰 싸움까지 벌어집니다.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이 **장옥함(蔣玉菡, Jiang Yuhan)**입니다. 아름다운 남자 배우인데 보옥과 만나 서로 호감을 갖고 허리띠와 향주머니 같은 개인적인 물건을 교환합니다. 장옥함은 Prince Zhongshun과도 성적인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암시됩니다.
그리고 **설반(薛蟠)**도 잘생긴 소년이나 남자 배우들에게 성적인 관심을 보입니다.
즉 보옥을 현대적인 의미에서 단순히 “게이” 또는 “바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지만, 그의 욕망이 현대의 엄격한 이성애 정체성 모델과 맞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1. 명·청 중국: 현대처럼 '성적 소수자'로 사람 자체를 분류하지 않았다
현대와 가장 큰 차이는 “남자와 성관계를 하는 남자 = 특별한 종류의 인간”이라는 생각 자체가 약했다는 겁니다.
명말~청대 중국의 일반적인 시각을 거칠게 번역하면:
“저 남자는 남색(男色)을 좋아한다.”
에 가까웠습니다.
즉 술을 좋아한다, 기생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소년을 좋아한다 같은 욕망/취향의 하나로 취급될 여지가 현대보다 훨씬 컸습니다. 특히 상류층 남성이 처첩을 두고 자식을 낳으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남자 배우나 소년과 관계를 갖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그 사람을 사회 밖으로 추방할 정도의 정체성 낙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평범한 것도 아닙니다. 남녀관계가 사회의 기본이고 남성 간 성행위는 분명 비정규적 성행위로 인식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청대에는 법적·도덕적 규제도 강화됩니다. 하지만 현대의 일부 사회에서처럼 “저 사람은 homosexual이라는 성적 소수자다”라는 독립적인 인간 유형으로 분류하는 방식과는 달랐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회적 경계선은 가문이었습니다.
남색을 즐기면서도:
결혼함 + 아들 낳음 + 부모 봉양함 + 조상제사 이어감
→ 사회적 역할을 수행.
반대로 남색 때문에:
결혼 거부 + 후사 없음 + 가문 단절
→ 유교사회에서는 훨씬 심각하게 비난받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질문하신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면 **“현대보다 덜 터부시됐고, 특히 특정 상류층 문화에서는 특이한 성적 취향 정도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상당히 컸다”**가 맞습니다. 다만 시대·지역·계층에 따라 편차가 컸습니다.
2. 에도 일본: 어떤 계층에서는 '특이한 취향'보다도 더 정상화돼 있었다
에도 일본, 특히 무사·승려·가부키 문화에서는 더 분명합니다.
남성 간 관계인 **衆道(shudō)**가 하나의 알려진 사회적 관습이었습니다. 그래서 특정 시대의 사무라이 사회에서는
“저 사람이 남자를 좋아한다니 충격적이다.”
라기보다는
“저 사람에게 저런 남성 관계가 있다.”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연장자인 nenja와 젊은 wakashū 사이 관계에는 성 + 애정 + 충성 + 교육이라는 문화적 규칙까지 붙었습니다.
물론 모든 일본 남성이 그런 관계를 가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고 관계의 연령·신분·역할에 대한 규범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성 간 성행위 자체가 현대의 '성적 소수자'처럼 강한 사회적 타자성을 자동으로 발생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 사회를 단순화해서 비교하면:
| 사회 | 일반적인 사회적 인식에 가까운 것 |
|---|---|
| 현대 한국 등 | “동성애자라는 소수의 성적 지향/정체성” |
| 명·청 중국 일부 계층 | “남색이라는 비정규적이지만 알려진 성적 취향/행위” |
| 에도 일본 특정 남성문화 | “사회적으로 알려져 있고 경우에 따라 문화적으로 정형화된 관계” |
3. 고대 그리스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도 '대놓고 동성애자'였나?
여기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게이였다”라고 표현하면 시대착오적입니다.
고전기 아테네에서는 성인 남성과 청소년 남성 사이의 에라스테스(erastēs)-에로메노스(erōmenos) 관계가 알려진 사회제도였습니다. 특히 귀족 남성문화에서는 교육·멘토링·애정·성적 욕망이 결합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아테네 상류사회에서
“남자가 아름다운 소년에게 성적으로 끌린다”
는 사실 자체는 현대사회에서 '커밍아웃'이 갖는 의미와 전혀 달랐습니다.
Socrates의 경우 특히 Alcibiades와의 관계가 유명합니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Alcibiades는 Socrates에게 성적으로 접근하려 했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Socrates는 오히려 그의 육체적 유혹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Plato의 《향연》 자체가 남성 간 에로스를 철학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작품입니다. Pausanias의 연설에서는 육체적 욕망을 넘어 젊은 남성의 영혼과 덕성을 사랑하는 관계가 논의되고, Socrates/Diotima의 연설에서는 에로스가 결국 아름다운 육체 → 아름다운 영혼 → 지식 → 아름다움 자체로 상승합니다.
그래서 플라톤적 사랑(Platonic love)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먼 후손으로 나온 겁니다.
다만 고대 그리스도 “아무 남자나 아무 남자와 자유롭게 성관계를 가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는 사회는 절대 아닙니다. 자유민 성인 남성이 어떤 성적 역할을 맡느냐, 상대의 연령과 신분이 무엇이냐가 명예와 남성성에 매우 중요했습니다.
즉 현대의 성별에 따른 orientation보다 당시에는 나이·신분·능동/수동 역할이 사회적 판단에서 훨씬 중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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