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국이 고백한 환상의 종말
제국이 고백한 환상의 종말
2026년 뮌헨안보회의가 끝났다. 회의 현장은 더 이상 '자유주의 국제 질서'라는 가공된 연대가 숨 쉬는 곳이 아니었다. 미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와 전쟁부 정책차관 엘브리지 콜비가 쏟아낸 발언들은 지난 수십년간 세계를 마취시켰던 단극 체제에 대한 공식적인 부고장이자, 제국이 생존을 위해 동맹을 제물로 삼겠다는 서늘한 선전포고였다.
루비오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찬란한 환상이 인류를 기만했음을 선언하며, 그들이 내세웠던 자유 무역과 보편적 가치라는 명분을 미국의 국익을 좀먹은 '어리석은 생각'이라 선언했다. 미 제국 스스로가 자신이 구축했던 질서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이 기괴한 광경은 이제 미국이 더 이상 전 세계를 통제할 힘도 의지도 없음을 자인하는 비참한 고백과 다름없었다.
제국의 전략적 후퇴는 'NATO 3.0'이라는 이름의 가혹한 청구서로 구체화되었다. 엘브리지 콜비 전쟁부 차관은 NATO 2.0의 파산을 선포하며, 미국이 더 이상 유럽의 재래식 방어를 책임질 여력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콜비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급격한 군사력 증강에 직면한 미국이 '전략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며, 유럽 동맹국들에게 GDP의 3.5%에서 5%에 달하는 방위비 분담을 요구했다. 안보를 위한 협력이 아니라, 쇠락하는 제국을 대신해 비용을 지불하라는 '제국세'의 징수이며 사실상의 전략적 유기 선언이다.
그리고 이제 미국은 '방위'라는 위선적인 가면을 벗어던지고 스스로를 '전쟁부'라 칭하며 힘의 논리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유럽에 '스스로를 지키라'고 압박하는 비정한 실용주의의 이면에는,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패권의 마지막 불꽃을 태울 결전의 전장으로 가기 위한 이기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 바로 인도-태평양이다. 그들은 그 사실을 숨기지도 않으며 노골적으로 유럽을 버리고 인도-태평양으로 힘을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을 최후의 보루로 설정한 것은 평화가 아닌, 오직 제국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어금니를 드러낸 것이다. 루비오가 역설한 서구 문명의 보전과 기독교적 유산, 그리고 모차르트와 베토벤, 비틀즈를 망라하는 문화적 자부심은 사실상 인종주의적 장벽을 쌓기 위한 비열한 가림막에 불과하다. 그들이 나열한 서구의 천재들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글로벌 사우스를 배제하기 위한 문명론적 도구로 전락했다. 특히 루비오가 강조한 '서구 중심의 공급망 재편'과 핵심 광물에 대한 통제권 확보는 동아시아를 미 제국의 자원을 조달하고 방어하는 하급 거점으로 전락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미국의 행보는 결국 이 땅을 제국의 몰락을 막기 위한 거대한 희생양이자, 후퇴하는 제국을 대신해 파도를 맞는 방파제로 삼겠다는 선언이다.
이제 국제법과 UN으로 대표되는 규범은 제국주의의 발길질 아래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루비오는 UN을 추상적 개념이라 비하하며 미국의 노골적인 군사 행동만이 유일한 정의임을 과시했다. 테헤란의 핵 시설을 타격하기 위해 B-2 폭격기 14발을 투하하고, 베네수엘라의 독재자를 끌어내기 위해 특수부대를 투입한 것을 성과로 치켜세우는 그의 모습에서 규칙 기반 질서를 운운하던 과거의 위선조차 벗어던진 벌거벗은 힘의 숭배를 본다. "국제 질서를 국민의 이익보다 위에 둘 수 없다"는 발언은 미국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무법천지의 가해자가 되겠다는 솔직함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루비오는 민주주의의 수호가 아니라 미국의 무기를 현금으로 팔아치우는 '펄 프로그램(Pearl Program)'의 연장선으로 묘사했다. 미국에게 전쟁이란 그저 자국 군수산업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비즈니스 모델일 뿐이다.
미 제국은 스스로 중산층을 도태시키고 제조업을 파괴했으나, 이제 내부의 실패를 동맹국에게 전가하고 있다. 그 쇠락하는 제국의 황혼 앞에서 한반도가 마주한 진실은 냉혹하다. 미국은 더 이상 동맹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국을 약탈할 뿐이다. 더군다나 인도-태평양으로 전력을 집중하며 우리에게 거짓된 '자주국방'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은 한반도가 그들의 몰락을 늦추기 위한 화약고로 설정되었음을 의미한다. 미제가 스스로 쌓아 올린 질서를 무너뜨리는 이 전환기의 혼란 속에서 맹목적인 추종은 곧 파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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